뛰어내릴거야원경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후안무치 하게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누울 수도 없으니 안보면 안보는 대로 선선히 물러 갔다.상선이 놀라서 이렇게 선선히?상선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니, 삼대 거두와 명원제가 술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상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명원제가 얼른 묻길: “왔어? 갔나?”상선이: “황제 폐하께 아룁니다, 왕비가 왔다가 갔습니다.”명원제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시 묻길: “너는 뭐라고 했느냐? 이렇게 금방 간다고 했어?”상선이: “그저 황제 폐하께서 여기 계시지 않는다고 했고, 다음엔 왕비가 태상황 폐하를 뵙겠다고 했으나 소인이 태상황 폐하께서는 술을 드셔서 아무도 만나지 않으신다고 하니 왕비는 가셨습니다.”다들 마주보더니, 이거…… 이거 원경릉 스타일이 아닌데.“정말 갔나?” 태상황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정말 갔습니다.” 상선 자신도 상당히 의아했다.태상황이 오늘 사실 원경릉을 보고 싶었고 며칠을 못 봤지만……태상황은 담담하게 황제를 흘끔 보더니 이 놈은 오면 안돼, 살풍경하다니까.주재상이 느긋하게 술을 마시다가, 갔다고? 짐작컨대 아닐 걸.과연 잠시 후 금군이 바람같이 달려오느라 멈추지 못하고 거의 돌계단에 부딪힐 듯, 허둥지둥하며: “태상황 폐하, 황제 폐하, 초왕비가 문창각(文昌閣)에 올라가셨습니다. 난간에 앉아 계신데, 더 살수가 없다고 하십니다.”명원제가 격노해서, “고약한 놈! 오냐오냐 하면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긴다 더니, 짐을 위협하려 해,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어디 감히 뛰어내려?”세명의 어르신이 황제를 보고 아무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지 않았다.명원제가 속이 타서: “아바마마, 초왕비가 위협을 해서 만약 원하는 대로 되면 앞으로 아주 큰일입니다.”태상황이 담배를 뻑뻑 빨며 담담한 말투로: “됐어, 뛰어내리라고 해, 다음에 다른 아들한테 증손자 셋을 낳아서 과인에게 보여 달라고 하면 되지. 과인은 이 일에 상관하지 않겠다.”명원제가 이 말을 듣고 기세가 일시에 약해지
원경릉은 사람들이 오는 것을 보고 허리를 숙여 머리를 내밀었다. 명원제는 원경릉이 뛰어내리기라도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지금 왜 할아버지께서 오시지 않는 거지?’“내려와! 빨리 내려오라고!”명원제가 위를 보며 소리를 지르다가 답답한 표정으로 금군들을 보며 “뭐 하고 있느냐! 당장 올라가거라!”라고 말했다.“황상, 소신들이 계단으로 올라가려고 하니, 초왕비께서 한 걸음이라도 다가오면 바로 뛰어내리겠다고 하십니다.”금군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새해부터 초왕비가 소란을 피우자 명원제는 몹시 화가 났다. “명을 전하거라! 초왕비에게 어서방으로 오라고 해!” 명원제가 손을 저으며 금군에게 말했다.어서방으로 향하는 명원제의 뒷모습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은 명원제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나에게 이런 아들들을 내린 겁니까!’원경릉이 어서방에 들어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은 퉁퉁 부었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분노로 가득했던 명원제의 마음은 원경릉을 보자마자 슬픔으로 바뀌었다.‘어쩌다 이 아이가 거기까지 치닫게 되었을까.’명원제는 차분한 표정으로 원경릉을 보았다.“할 말이 있다면 말해보거라.” 명원제는 문창각(文昌閣)에서의 일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다.원경릉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명원제를 바라보았다.“부황, 악한 자가 거짓을 고할 수 없도록 며느리가 진실을 고하겠습니다.”“일어서서 말하거라.”“일어설 수 없습니다!” 원경릉은 울부짖으며 명원제를 직시했다.“……” “방금 너무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립니다.”명원제는 한숨을 내쉬더니 희상궁에게 원경릉을 부축하도록 했다. “이제 무서울 게 없느냐. 뱃속의 아이들을 방패로 짐에게 소리까지 지르고 말이다.”원경릉은 희상궁의 부축에도 다리가 덜덜 떨렸다. 그녀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숨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아니요. 사식이와 희상궁께서 허리띠를 뒤에서 끈으로 잡고 있습니다.”명원제는 탁자를 ‘쾅’ 내리치며 눈을 부라
원경릉의 말은 명원제를 놀라게 했다. 명원제는 빠르게 지나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제 북당의 군왕으로 왕자들의 싸움을 바라볼 때가 된 것 같았다.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가는 자식들끼리 황태자의 자리를 두고 싸우다가 모두 죽을 것 같았다.“돌아가봐.”명원제가 말했다.원경릉은 명원제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걸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고 명원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원경릉은 궁을 나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도 명원제의 슬픔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원경릉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답지 않게 무식하게 일을 해결하려고 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상황이 그녀를 문창각에서 뛰어내리게끔 만들었다.사식이는 원경릉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원누이 걱정 마세요. 황상께서도 화가 많이 난 것 같지는 않아요.”“사식아, 황상께서는 화는 내시지 않았지만…… 크게 상심하신 거다.”“황상께서 왜 상심을 하셨습니까?” 사식이는 명원제와 원경릉 사이에서 아무런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옆에 있던 희상궁이 한숨을 내쉬며 “왜 상심하지 않겠어? 위왕부는 혼란스럽지 제왕도 생사를 넘나들지, 기왕은 감옥살이 중이지…… 게다가 우리 왕야와 안왕도 소란을 피우고 있으니 황상 마음이 편하시겠어?”라고 말했다.사식이는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원경릉의 배를 보았다.“만약에 초왕께서 황태자가 돼서 나중에 북당의 황제가 된다면 원누이의 뱃속의 아이들도 황태자가 되기 위해 싸우겠지요?” 사식이가 물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의 표정이 잿빛으로 변했다.“사식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방금 네가 한 말이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왕야께 큰 화를 입힐 수 있어!”희상궁이 큰소리로 꾸짖었다.“아! 제가 실언했습니다.” 사식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원경릉은 한숨을 쉬며 바깥을 보았다. 희상궁은 사식이를 노려보며 허벅지를 꼬집었다. *건곤전.
“태상황님께서는 내심 초왕비 뱃속의 아이들이 사내이길 바라시죠?”주수보가 물었다.“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들이든 딸이든 마찬가지야.” 태상황이 말했다.“거짓말을 하시는군요. 전에는 꿈에 초왕비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셨으면서!” 소요공이 코웃음을 쳤다.“꿈은 꿈이고! 꿈이 내 마음을 완벽히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그래도 조금이라도 손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에 그런 꿈을 꾸는 게 아닙니까?” 주수보가 말을 하며 옆에서 소요공을 힐끗 보았다.“그래? 짐이 어젯밤에 너희 둘이 비렁뱅이가 된 꿈을 꿨는데 말이야.”태상황이 반격했다.“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소요공과 주수보의 미간이 좁아졌다.태상황은 두 사람의 반응이 웃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초왕비가 편안하게 출산을 하는 것이다. 그다음이 아이들의 성별이지.”“전에 유명한 고승(高僧)이 말하길,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소요공이 말했다.“넌 그런 말을 믿느냐? 그렇게 해서 만사가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히면 이 세상이 잘 돌아가겠느냐?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어!” 태상황이 코웃음을 쳤다.그 말을 들은 소요공은 조금 부끄러워졌다. 주수보와 소요공은 마저 술잔을 비우고는 늦었다며 건곤전 밖으로 나갔다.태상황은 취한 눈빛으로 상선을 바라보며 물었다.“초왕비는 왕부로 돌아갔느냐?”“예, 갔다고 합니다. 이제 태상황님께서도 쉬시지요.”상선이 말했다. “아니다. 오늘 날씨가 아주 좋으니 태후 쪽으로 걸어가 봐야겠다.”태상황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더니 취기가 올라오는지 약간 비틀거리며 태후가 있는 곳으로 갔다.“괜찮다. 짐이 언제 술 마시고 쓰러지는 걸 본 적이 있느냐? 만약 초왕비가 지금 짐을 봤다며 아주 야단법석을 떨었겠지 말이다.”“초왕비께서는 태상황님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러시는 거죠.”상선이 말했다.“지금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짐의 나이가 되면 그런 말이 하나도 소용이
“그럼 짐이 바라는 모든 게 이뤄진다는 말이냐.”태상황이 물었다.“예,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부처님께서도 아시고,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태후가 대답했다.“사람이 욕심이 있으니 법당에 와서 기도를 하는 게 아니겠느냐? 참 모순적이구나.”태상황은 입을 삐죽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상선은 그를 대신해 향을 올리고 그를 바라보았다.“태상황, 간절히 원하시는 것을 큰 소리로 말씀하십시오.”태후가 말했다.“묵념을 하면 안 되겠느냐?”“태상황, 무슨 일을 하든 먼저 상대의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말씀하셨잖아요. 원하는 것을 큰소리로 외치지 않으면 바쁘신 부처님께서 어찌 들으시겠습니까?”태후의 말에 태상황이 한참을 망설였다. “그럼, 딱 한 가지만 말하면 되는가?”“예, 일단 한 가지만 말씀하세요.”태상황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일단 초왕비가 순조롭게 출산하는 것, 부처님께서 초왕비를 잘 돌봐주십시오.”태상황의 말을 듣고 상선이 조용히 태상황에게 다가갔다.“태상황님, 아들을 낳아달라고 빌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태상황은 인상을 쓰고 기침을 하더니 상선을 보았다. “초왕비의 안위가 최우선이고 그건 다음에 부탁할 것이다.”‘차갑게만 보이던 태상황도 사람이었구나.’ 태후는 태상황을 보며 웃었다. 태후의 법당에서 돌아온 태상황은 침전으로 가서 잠을 청했고, 상선을 왕부로 보냈다.* 원경릉도 우문호도 모두 왕부에 일찍 돌아왔다. 서일은 우문호에게 약주를 발라주고 있었다.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걔가 나보다 더 많이 다쳤다고!”원경릉이 웃으며 우문호에게 약주를 발라주려고 하자 서일이 그녀의 앞을 막았다. “왕비께서는 약주를 만지면 안 됩니다. 이 약주는 피를 맑게 하고 어혈을 없애주지만, 뱃속에 태아가 있을 때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누가 그랬죠?” 원경릉이 물었다.“조어의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약주는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약물로 절대로 왕비께서는 만지셔서는 안 됩니다. 이미 희상궁
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너 모비(母妃)를 뵈면 어떻게 해?”“문안인사를 드리지.”“그리고 또?”“다른 거 없는데? 모비께서는 다 가지고 있으니, 난 그저 인사만 드려.”우문호가 머리를 긁적였다.“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환심? 태자 자리를 오르려면 환심을 사야겠지. 내 생각엔 안부인사를 제외하고는 뭐든 과한 것 같아. 그런 가식은 불필요해.”원경릉은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현비는 우문호를 태자로 만드려고 혈안이 돼있다. 그녀는 은근 우문호에게 미안했다. 다른 친왕의 부인들은 집안이 좋아서 친왕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정후부는 그럴 힘도 돈도 없기 때문이다. “날 잡고 입궁해서 부황과 장기도 두고 술도 마시고 곁에 있어드려. 그게 가장 큰 효도야.” 원경릉이 말했다.“그럼 부황께서는 내가 당신 비위를 맞춘다고 생각하겠지.” 우문호가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뭐라고 생각하든 네가 해야 할 일만 하면 돼! 만약에 네 아들이 너랑 데면데면하고 관계가 소원해진다면 넌 기분이 어떻겠어?” 원경릉이 발끝으로 우문호를 한 번 찼다.“아들은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는데, 딸은 절대 그럼 안 돼.”“참 나.”“경릉아, 나 결심했어. 우리는 세 딸을 낳는 거야. 아들들은 말썽만 피우고 크면 야심이 커서 무슨 사건을 일으킬 줄 몰라.”“그걸 네가 결심해서 뭐 해?” 원경릉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우문호의 시큰둥한 반응에 우문호가 툴툴거렸다. “세 명이니까 공주가 하나쯤은 있겠지.”“물론 그럴 수 있지. 근데 남아 3명 또는 여아 3명일 가능성이 훨씬 높아.”“남자, 여자가 섞일 수는 없는 거야?” 우문호의 눈이 동그래졌다.“그럴 가능성도 있긴 한데 지극히 적어.”“남자 셋이면 정말 눈물 날 것 같은데…… 공주 하나는 있어야지!”“우리가 이렇게 논해도 소용없어. 성별은 이미 정해졌어.”원경릉의 말에 우문호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아이를 내가 결정하지! 누가 결정해
기왕은 감옥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이 모든 것이 우문호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기왕부에서 우문호와 싸움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기왕부 부병을 동원해 그를 공격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자신을 모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심문을 하는 관리가 기왕부에서 일어난 싸움에 대해 묻자 그는 끝까지 함구하다가 우문호와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말했다. 명원제는 계속해서 심문을 하라고 했고 관리들은 더 이상 심문할 내용이 없어 난감해했다.‘단죄하든지 처벌하든지 해야 하는데…….’명원제도 계속 심문하라고 지시했지만, 그 역시도 기왕을 더 어떻게 심문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고, 시간을 조금 더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리하여 기왕은 감옥에 다시 갇혔다.기왕은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었지만 면회가 제한되지는 않았다. 그는 면회 소식만 기다리며 줄곧 주명양이 오길 바랐다. 주수보가 몇 마디 해주는 게 다른 사람이 백 마디 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주명양은 오지 않았다. 감옥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조바심이 났다. 예전에는 무슨일이 생겨도 밖에서 자신을 빼내줄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왕의 심복과 외가를 제외하고는 기왕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초엿새날, 기왕의 모친인 진비(秦妃)와 기왕비가 기왕의 면회를 왔다. 진비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멍청한 것!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야! 부황께서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기왕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모비, 소자 참으로 억울합니다. 소자를 믿어주십시오. 범인은 제가 아닙니다! 모비께서 부황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라고 말했다.“본궁이 부황께 부탁을 해봤자 소용없어! 기왕비가 본궁에게 말하길 네가 했다는 것을 증명할 증인도 있다고 하더라! 네가 한 것이 확실해졌다고! 너는 부황이 어떤 처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이야!”모친의 말에 기왕은 충격을 받았다. “그럼 주수보를 부를까요
“그럼 저는 밖에서 모비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기왕비가 기왕을 쳐다보지도 않고 휙- 밖으로 나갔다. 기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한없이 바라보았다.‘가라고 했다고 진짜 간다고?’눈물을 흘리던 진비도 기왕비의 매몰찬 태도에 기왕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지금 저거 제정신이 아닌 게지?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쌩 나가버린다고?”기왕은 주명양과 짜고 기왕비를 폐비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을 진비에게 말하지 못했다.“명양이가 입궁한 이후로 기왕비가 좀 이상합니다.”“너는 후궁 주명양은 애지중지 여기면서 정비는 왜 푸대접을 한 거야? 그건 왕부가 망하는 길이다. 절대 그러면 안 돼. 넌 지금 동씨 집안의 힘이 필요하다고!” 진비는 인상을 쓰며 그를 보았다.“언제 적 동가(佟家)입니까?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습니다. 동씨 집안도 부황에게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던데요?” 기왕이 말했다.“넌 참 근시안적이구나! 동씨 집안사람들이 궁 안에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리고 동씨 집안은 태생부터 돈이 많다고! 넌 기왕비를 잘 달래 보거라. 그리고 기왕비의 큰 오빠인 동안(佟安)이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는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부황께서 시국이 이러니 동안을 냉대하겠지만 그의 능력은 높게 사고 계셔.”진비의 말을 들은 기왕이 창백한 얼굴로 우물쭈물했다.“그럼 모비께서 기왕비를 좀 설득해 주세요. 동씨 집안사람들 중에 조정에서 일하는 관리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상소문을 써달라고 해주세요.”“이래서 집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니까? 후궁이 들어오자마자 그 계집에게 눈이 돌아서 정비를 홀대하다니…… 옥에 있는 동안 잘 생각해 봐. 네가 온전히 네 힘으로 기왕부를 이끌었는지 말이야. 기왕비가 없었으면 넌 그저 황제의 큰 아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야.”모비의 말을 듣기 싫었던 기왕은 인상을 썼다. “모비께서는 소자를 참 우습게 보십니다. 그럼 제가 여자 치마폭에 쌓여있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