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두의 말에 원경릉은 웃음이 났다. “왕야, 소인이 부황과 다시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장담하긴 이릅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저랑 먼저 약속을 하시지오.”손왕(孙王)이 말했다.“왕야께서는 이미 수라상을 많이 드셨지 않습니까.”“왕비는 모릅니다. 부황께 따로 요리사가 있습니다. 설마 먹고도 맛의 차이를 못느끼셨다는 겁니까?” 손왕은 고개를 저으며 아쉽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전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깝다! 아까워!” 손왕은 매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왕비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어요! 그런 태도로 음식을 대하는 것은 죄입니다!”그는 손에 들린 닭다리는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닭다리든 부황의 수라상이든 모두 짐심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는 할말을 마친 표정으로 닭다리를 마저 뜯었다. 원경릉은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며 ‘음식에 참 진심이구나’하고 흐뭇해했다. 손왕을 보아하니 딱히 일이 있어보이지도 않았고, 그녀도 정처없이 걷던 상태였기에 그녀는 손왕과 몇 마디 더 주고받기로 결정했다.“왕야, 근데 왜 풀숲 속에 숨어서 드십니까?” 그녀가 손왕에게 물었다. “본왕이 몰래 닭다리를 먹고 있는 것을 다른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요.” “몰래?” 원경릉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닭다리를 몰래 먹는걸까?“본왕은 살을 빼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닭다리를 하나 다 먹었다. 그는 먹고 남은 닭뼈를 호숫가에 던졌다. 그는 손을 슥슥 닦더니 원경릉을 보며 손을 흔들고는 “가보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유유히 걸어갔다.살 뺀다면서 몰래 먹는건 뭐람? 원경릉은 명원제의 아들들 중에 정상인 아들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호숫가에 서서 심호흡을 몇번 했다. 손왕과 대화를 하고 나니 화난 감정도 약간 가라앉았다. 사실 화낼 필요가 있었나? 우문호는 주명취가 좋은 사람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상태고, 또 그 둘은 죽마고우로 만약 원경릉이 없었다면 결혼까지 했을
“현비마마를 뵈옵니다!” 제왕과 주명취가 와서 안부를 물었다. “예의는 생략하고 어서 앉으세요!” 현비는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앚자 주명취가 현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듣자하니 현모비께서 두통이 있으시다고 하던데, 어의는 보셨습니까? 이제 좀 괜찮으십니까?”현비는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이렇게 효심이 깊은 여인이 우문호의 짝이 되지 못하다니.’“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머리가 좀 아픈 것 뿐입니다. 익숙해졌습니다.” 현비가 답했다. “현모비님 건강을 잘 살피셔야합니다.” 주명취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현모비에게 다가갔다. “제가 문질러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현비의 관자놀이를 능숙하게 주물렀다. 현비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기술이 좋으십니다. 노집사보다 훨씬 실력이 좋으십니다.”그러더니 제왕을 바라보며 “제왕은 이리 좋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니 얼마나 복이 있습니까.”현비는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제왕은 몹시 자랑스러운 얼굴로 주명취를 한번 쳐다보며 “현모비께서 말씀한 것이 맞습니다.” 라고 하였다. 주명취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황송하옵니다. 왕야는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지오. 제가 현모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제왕은 군말없이 자리를 떴다. 왕이 밖으로 나가자 주명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현모비님. 몸 조심하셔야 합니다. 제가 항시 여기에서 보살펴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소인이 참 걱정이 되옵니다.”이 말을 들은 현비는 주명취의 손을 잡고 손등을 다독였다. “다섯째는 정말 복이 없구나. 자네 같은 여인을 아내로 삼지도 못하고, 이제와서 이렇게 말하기도 뭐하지만…… 참 안타깝네.”“초왕께서는 잘지내십니다. 요 근래 황제께서 초왕비를 굉장히 아끼십니다. 황제께서 초왕비에게 남주(南珠) 두 꿰미를 하사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 꿰미를 마마께 드린다고 하니 효심이 지극하지 않습니까.”현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황제가 그녀에
현비는 원경릉이 한 행동을 곱씹어 보았다. 생각해보면 그리 일리가 없는 행동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화를 꾹 참아냈다. 희상궁은 중신궁(中珅宫)에 도착하여 남주를 바치며 말했다. “초왕비가 황실의 며느리로서 남주를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고 하며 황후마마를 섬기는 마음으로 드린다고 했습니다.”황후는 이 말을 듣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본궁은 필요 없습니다. 가져가세요.”희상궁이 미소지으며 “마마께서는 왜 왕비의 효심을 저버리십니까? 좋든 싫든 황제께서 하사하는 물건인데 마마님께서 받지 않으시면 귀비나 현비의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받으시는게 낫지 않으시겠습니까? 받으시고 어떻게 처리하시든 그건 마마의 몫입니다.” 라고 말했다.“희상궁의 말이 맞습니다. 마마께서 받아서 황제께 보내십시오. 초왕비가 기가 살아서 위세를 부리는건지 아니면 황후마마께 아첨하려고 한건지 황제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시지요.” 중신궁의 집사도 한마디 거들었다. 황제는 자신이 하사한 물건을 황후에게 준 것을 알면 분명 화를 낼 것이다.황후는 두 사람의 말에서 황후는 깨달음을 얻었다. “자네들의 말이 맞네. 황제께는 태후마마께서도 받지 못한 남주를 황후인 내가 어찌 받겠느냐고 말하며 보내면 좋겠네.”그녀는 류큐에서 보낸 남주 꾸러미가 아직 태후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희상궁이 웃으며 말했다. “쇤네는 건곤전으로 돌아가 태상황님을 모셔야 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예. 들어가보시지오.” 중신궁 집사가 희상궁을 배웅했다. 희상궁이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문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 빚은 모두 갚았으니, 이 한 평생에 더 이상 빚진 것은 없다.”맞은 편에 주명취가 미소를 머금고 희상궁을 보고있었다. 희상궁은 그녀를 보고 몸을 굽혀 인사했다.주명취는 다가와 희상궁에게 조용히“수고하셨어요.”라고 말했다.희상
목여태감이 놀랐다. 황제는 초왕이 당시에 원경릉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을 알았을까? 초왕에게 원씨 집안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황명을 내려놓고는 지금 그는 왜 초왕에게 분노하는 걸까? 목여태감은 오랫동안 황제를 모셨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초왕이 원씨 집안의 혼인 계략에 속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그렇게 냉대하십니까?” 목여태감이 물었다. 명원제는 노여움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다섯째는 정후와 원경릉 이 둘이 만든 진흙탕에서 뒹굴던 사람이다. 이미 때가 탔다는 말이지. 그런 이에게 짐이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목여태감은 명원제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명원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명원제가 화가 났을 때는 말을 걸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랑 같기 때문이다.사실 목여태감은 이 일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명색에 황후 쪽에서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황제도 황후가 보낸 옥집사를 꽤 신뢰하고 있었다. 옥집사는 황실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으며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함부로 말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명원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태자의 자리를 염두한다는 것은 곧 그의 역린(逆鳞)을 건드리는 것이다. 우문호가 태자 자리를 탐내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이를 위해 결코 정세를 위협할만큼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짐이 하사한 남주를 초왕비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차용증서와 함께 가져오거라.” 명원제가 목여태감을 보며 말했다. 목여태감은 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호숫가에서 사색에 잠겨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별전 밖에 돌계단에 잠깐 앉아 있었다.“왕비님!” 목여태감이 걸어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는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총애를 얻었지만, 꾀가 많아 이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구나 아깝다 아까워’목여태감은 속으로 생각했다. “태감님!’ 원경릉이 목여태감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
목여태감이 들어간 뒤 원경릉도 따라 들어갔다. 우문호는 몸을 살짝 일으키며 목여태감을 보았다. “태감님, 부황께서 남주를 받으셨다는 말씀입니까?”목여태감은 빙빙 돌려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묻는 우문호를 보고는 자신도 솔직하게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왕야께서 그렇게 물으신다면, 제가 몇 말씀드리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고깝게 듣지 마시지오. 왕야께서 황후에게 마음을 표하려거든 다른 방법도 많았을텐데, 굳이 황제께서 초왕비에게 하사한 남주를 황후께 보낼 필요가 있었습니까?”이 말을 듣자 우문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원경릉을 향했다. 원경릉은 눈을 아래로 드리우고는 무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향했던 눈동자가 천천히 목여태감 쪽으로 움직였다. “태감님께서는 이만 돌아가주시지오. 본왕이 왕비에게 긴히 할말이 있습니다.”목여태감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일단 남은 남주 한 꿰미와 차용증서부터 돌려주시지오. 황제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태감님 남주 한 꿰미는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직접가서 부황께 사죄를 드릴테니 먼저 돌아가십시오.” “지금와서 소용 없습니다. 황제를 더 화나게 하시려는 겁니까?” 원경릉의 태도에 태감은 화가 났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태감께 돌려드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잃어버렸으니 제가 사죄드리러 가야죠.”목여태감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비께서 남주를 잃어버렸다고만 하신다면 저희 쪽에서도 달리 도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왕비께서 잃어버린 그 남주 한 꿰미를 중신궁(中珅宮) 옥집사가 가져왔습니다. 정말 왕비께서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한다면 중신궁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시지요!”태감은 말을 마치고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소인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 왕비께서 끝까지 황제께 직접 사죄를 하길 원하신다면야. 다만 분실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그저 왕비께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변명없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왕야!” 탕양이 다급하게 불렀다. “왕비가 황제님을 더 노하게 할까 염려됩니다!”우문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원경릉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의 귓전에 맴도는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맘대로 하라 그래. 부황은 이미 본왕에 대해 실망할 대로 실망했으니 더 실망시킬 수도 없을거야.”“왕비는 왜 황후께 남주를 선물했을까요? 서일은 애써 그녀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왜 겠는가? 당연히 아첨하려는 목적이지!” 우문호가 대답했다. “아첨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서일이 다시 물었다.탕양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서일을 바라보았다. “바보도 알겠다! 정후는 줄곧 주씨 집안에 기대려고 했지않는가? 이는 자네도 모르는 일은 아닐테고.”서일은 코웃음을 쳤다. “정후 그 노인네가 뻔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왕야께서 황제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다가, 지금 우리가 권세를 잃으니 바로 주씨 집안에 발을 담그려 하다니요!”서일은 우문호가 듣고 있다는 것도 깜빡 잊었다. 우문호가 이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탕양이 서일을 보고 “무슨 헛소리야! 입 다물거라!”라고 소리쳤다.서일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우문호를 한번 보더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우문호는 마음이 시큰거렸다. 아무도 그가 마음 속으로 원경릉이 변하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그의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이 분노와 실망스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원경릉은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귓가에 스친다. 그녀는 손을 들어 뺨을 만져보니 피가 손에 묻어나왔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씩씩하게 걸었다. 걸으면서 피가 뚝뚝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래나 저래나 죽을 목숨, 이깟게 무슨 대수라고.’별전과 어서방(御書殿)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그녀는 평소보다 오래 걸었다. 입구에 다다른 원경릉을 발견한 목여태감이 명원제에게 알렸다.“기다리라고 해.”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밖에 서서 꼼짝 하지 않았다
몹시 화가 난 명원제는 목여태감으로 하여금 원경릉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손왕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부황이 화를 원경릉에게 풀까봐 걱정이 되었다. 듣자하니 우문호가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고 하던데, 우문호에게 가서 초왕비를 데려올 방법을 찾아보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경릉이 궁 안으로 들어오자 명원제는 “무릎을 꿇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녀는 명원제의 말에 따라 무릎을 꿇고는 “부황을 뵙습니다!”라고 말했다. 궁 안은 어수선해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손왕을 향해 물건을 던진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바닥 한켠에는 남주 한 꿰미도 떨어져 있었다. “방금 목여가 돌아와 전해주었다. 짐이 네게 하사한 남주를 한 꿰미 잃어버렸다고?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냐?” 명원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건곤전에서 잃어버렸습니다.”“보아라. 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남주가 네가 건곤전에서 잃어버린 남주가 아니더냐?”원경릉은 바닥에 남주를 보며 “맞습니다.” 라고 했다. “이 남주는 황후를 모시는 집사가 가져온 것이다. 네 말이 맞다면, 황후가 남주를 훔쳤다는 말이냐?” 명원제의 목소리에 실망스러움이 가득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인은 누가 남주를 가져갔는지 알고 있습니다.”“어?” 명원제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고있다고?”“네. 누가 가져갔는지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명원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원경릉이 잠시 침묵하더니 “희상궁.”이라고 말했다. 명원제가 분노하여 탁자를 내리쳤다. “터무니 없는 소리!”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여태감이 급히 달려왔다. “왕비!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다니요. 희상궁은 태상황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네. 그렇죠.” 원경릉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난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원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는 방금 원경릉이 뱉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
남주의 바친 목적은 무엇인가?현비는 인삼차를 내려놓고 원경릉을 보더니 머뭇거리며: “초왕비도 있었군요? 그럼 신첩은 이만 폐하를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겠습니다.”명원제가: “기왕 온 김에 앉으시게. 이 일은 그대의 아들과도 관계가 있으니.”:초왕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현비는 원경릉을 능지처참해도 성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다.현비는 분노를 삭이며, 입술엔 변함없이 웃음을 띤 채, ‘예!”현비가 발길을 돌려 앉는 동안, 빠른 속도로 상황을 되짚어봤다. 원경릉이 황후에게 아첨한 것이 다섯째 의도라고 황제는 생각하지만, 다섯째가 그럴 리 없다. 안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 다섯째가 이런 경거망동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아내를 잘못 얻었군.만약 이 일로 다섯째가 황제의 눈 밖에 나서 추방이라도 당하면, 현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경릉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어쩌다가 이 따위 여자에게 휘둘리게 되었지? 당초에 순리대로 주명취를 아내로 맞았으면 오늘의 이런 상황이 벌어질 리 없는데. 현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원경릉의 뼈마디를 분질러도 시원치가 않은 마음이다. 원경릉은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죽일 듯이 노려보는 현비의 시선을 못 느낄 수가 있겠는가? 이 일 때문이 아니어도 현비는 원경릉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그때 “황후 마마 납시오!” 태감의 목소리가 들렸다.명원제는 손을 흔들어, 뜻을 표하자 목여태감이 달려 나가고, 황후가 옥집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목여태감이 보니 희상궁도 방금 도착했기에, 황후께 나아가 몸을 숙이며, “마마,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목여태감은 이제 다시 희상궁을 보니, 희상궁은 얼굴이 태연하고 꾸밈없는 기색이다.목여태감이: “상궁은 안으로 들게!”황후와 옥집사가 앞서 가고, 희상궁이 뒤를 따르는 모습으로 세 사람이 어서방에 들어갔다.현비는 황후를 보고, 황급히 일어나 예를 취하며, “신첩 황후마마를 뵙습니다.”황후는 평상시처럼 현비를 한 번 쳐다보고, “현비도
택란은 어릴 적부터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담담해 보였지만, 그녀는 내면의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화염을 제어하지 못할 위험이 있었다. 스승님을 따른 후, 스승이 계속해서 그녀에게 약점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의 틈새가 생기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항상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모든 일을 담담히 대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진심 어린 감정을 흔들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그녀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꼬마 봉황이 날개를 펼쳐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해 주었다.그들은 수년간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성장해 왔고,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잠시 후, 택란은 다시 구조 현장으로 나갔고, 여전히 평온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섰다.위왕과 안왕은 어린 조카의 침착함에 깜짝 놀랐다. 겨우 여덟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이의 천성은 어디로 간 것인가?그들은 택란이 애초에 아이로서의 천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태어난 후, 조금이라도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녀는 빠르게 세상을 이해하며, 지혜롭고 노련한 어른처럼 모든 것을 맞서야 했다.사실 그녀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녀를 한두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기대나 요구가 없었으며, 능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처럼 그녀의 모든 행동을 걱정하고 감시하지 않았다.아버지 앞에서 그녀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약도성의 일이 안정된 후, 그녀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아갈 계획이었다. 이번 약도성 방문은 그녀에게 있어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습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의지와 감정을 단련할 수 있는 장소였고, 실제로 그녀는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구조 작업은 계속되었고, 지진이 발
한 마을 주민이 눈물을 닦으며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원 같은 건 절대 없을 것이오. 조정은 우리를 모조리 죽이길 바라오. 우리가 죽어야 조정은, 이 약도성을 완전히 삼킬 수 있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소.”택란은 화가 나서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왔잖냐! 빨리 계속 파시게!”주민이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웬 꼬마가, 넌 누구냐?”택란을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어둠 속이라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린아이가 여기 있는 걸 보고 다들 의아해했다.“약도성의 성주, 우문택란이다!”그녀는 단호하게 말한 뒤, 산사태가 난 지역을 향해 다시 걸어갔다. 작은 몸집이 시선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작아 보였다.황실의 공주라는 말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공주가 이런 곳에 직접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주는 저택 안에서 잘 보호받고 있어야 할 존재다.그녀는 알 수 없는 힘을 사용해 접근한 곳의 흙을 한 겹씩 옮겨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울부짖는 소리와 구조 요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녀를 따라가 급히 구조 작업에 참여했다.약도성의 지진은 강북부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낡은 집도 무너졌지만, 심각한 피해는 없었다. 약도성에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왕과 안왕은 신속히 구조 병사를 파견했다. 그들은 택란이 약도성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들 여태껏 택란이 스승과 함께 떠났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의 네 오빠들은 바로 병사를 데리고 약도성으로 향했다. 지진 발생 12 시진 후 약도성에는 8천 명 이상의 병사가 합류했다.약도성의 백성은 조정이 지원군을 보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정이 약도성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든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과거에도 가뭄, 메뚜기 떼, 산사태 등의 재난이 일어났지만, 북막조정은 몇 포대의 쌀만 보내며 형식적인 구조를 했을 뿐이다.약도성
지진이 발생하기 전, 호명과 주 아가씨는 약도성 중심부에서 백성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새벽녘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할 시간이다. 억지로 잠에서 깨어난 백성들은 분노했다. 그중 한 집안은 도축업을 하는 홀아비가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새벽 무렵에야 돼지를 잡고 고기를 나눠주고 돌아와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잠에서 깨어난 데다 아이까지 깨우니,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옆집 사람은 칼을 들고 나가 저들을 쫓아내면 다시 잘 수 있다고 부추겼다. 남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던 상황이라 아들을 방으로 데려다 놓고, 즉시 칼을 들고 나가 주 아가씨와 맞섰다.그가 칼을 휘두르며 집안 식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그 순간, 지진이 발생했다. 그들은 자기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먼지가 자욱했고, 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옆집 역시 무너졌고,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이 집 처마 아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깔려 있었다.“아들! 아들아!”홀아비는 그제야 안으로 데려다 놓았던 아들을 떠올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집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다. 겨우 세 살밖에 안 되는 아들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희박했다.그는 미친 듯이 벽돌과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주 아가씨와 호명도 서둘러 도왔다.지진은 단 몇 초 만에 일어났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무너진 집에 깔린 백성들이 매우 많았다. 약도성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사방에서 울부짖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평소 조정과 맞서던 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무력해 보였다. 그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홀아비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다들 함께 벽돌을 치우고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도구가 없어서 맨손으로 작업해야 했다. 주 아가씨의 손은 금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흙벽을 밀어내고 벽돌을 옮겼다.반 시진 후, 주 아가씨가 마침내 아이를 안고 왔다.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쳐 엉엉 울고 있었다. 홀아
“그럼... 호명, 가십시다!”주 아가씨는 왠지 모르게 택란의 말을 믿었다.호명도 주 아가씨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지진이 생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귀찮게 한 정도로 끝날 테지만, 정말 지진이 발생한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게다가 약도성의 백성들은 조정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더 미움을 사도 중요하지 않다.일행은 즉시 돌아가 병사들을 소집해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백성에게 넓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알렸다.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백성은 역시나 원치 않았다.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성주가 단호하게 명령한 일이었기에, 백성들은 마지못해 끌려 나갔다.그러나 문제는 강제로 밖으로 끌어낸 사람들을 계속 감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떠난 후 많은 백성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게다가 일부 폭도들은 이를 계기로 병사들과 정면으로 맞서며 심각한 충돌을 일으켰다.부분 병사가 백성들이 소란을 피우는 마을로 향했다. 이곳에 있는 마을은 거의 조정을 적대시하는 곳이었다. 너무 외진 곳이고 여인도 적은 곳이라, 이곳 남자들은 혼사도 치르지 못하고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하루 세 끼를 유지하기조차 힘들었고, 금나라의 선동이 더해져 이 지역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이 몇몇 마을에서 15세 이하의 아이들은 열 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병사들이 징과 북을 울리며 백성을 깨우자, 폭도들이 화를 내며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20여 명의 병사들이 이들에게 압도당해 심하게 얻어맞았다.결국 병사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약도성에서 대피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약 만 명 정도였다. 대부분 병사가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조정이 백성을 괴롭힌다고 욕하며 약도성에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주 아가씨가 분노를 참지 못해 말했다.“성주께 말씀드려서 집을 전부 불태워버리자고 해야겠습니다! 정말 너무합니다.”호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녁 무렵, 그들 일행은 출발했다.약도성의 밤은 전혀 활기가 없었다. 해가 지고 나면 거리에서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수년간 치안이 매우 나빴다. 비록 저녁에 병사들이 순찰하고 있지만, 백성들은 이미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덕분에 이번 외출은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약도성이 가난하다 보니, 부유한 이들의 저택만 튼튼할 뿐, 대부분의 집은 돌집이나 흙집, 나무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초가 거의 다져지지 않은 상태여서 지진이 발생한다면, 대부분의 건물이 버틸 수 없을 것이다.택란은 이 점이 걱정되었지만, 아직 지진이라 단언할 수 없었다.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길한 예감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그녀는 꼬마 봉황에게 물어보았고, 꼬마 봉황이 하늘로 날아올라 몇 바퀴를 돌며 주변을 살폈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것을 본 꼬마 봉황은 택란에게 알렸다. 그녀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택란은 호명과 주 아가씨에게 자신의 걱정을 털어놓으며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호명과 주 아가씨는 믿지 않았다. 약도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만 지진이 발생하였다.주 아가씨가 말했다.“오늘 밤하늘을 보니 지진운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걱정하신 것 같습니다.”“지진운은 믿을 수 없소. 강가로 한번 가보시게.”이곳에는 바다가 없고, 산을 따라 흐르는 큰 강만 있었다.다들 풍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강물의 흐름은 빠르지 않았고, 눈에 띄게 가뭄의 흔적이 드러나 있었다. 물 높이는 겨울이나 봄에 비해 많이 낮아졌고, 어떤 곳은 강바닥이 드러나 있었다.택란은 풍등을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수심이 얕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이곳에 샘물이 있소?”택란이 주 아가씨에게 물었다.“있습니다. 여기서 2리 정도 떨어진 곳에 큰 샘물이 하나 있는데, 근처 주민들이 그곳에서 물을 떠다 마십니다.”“좋소. 가보겠소!”택란이 말했다.일행은 다시 큰 샘물로 향했다. 주 아
그녀는 부엌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찾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뱀이야! 부엌에 뱀이 들어왔다! 어서 뱀을 잡아! 성주께서 놀라시면 안 된다!”몇몇이 부엌으로 몰려가 한바탕 소동 끝에 뱀 세 마리를 잡아냈다. 비록 정원에 뱀이 나타나지만,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찌 집 안으로 들어온 걸까?택란은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오?”공연이 서둘러 대답했다.“성주님, 방으로 돌아가십시오. 여기 뱀이 있습니다.”“뱀이 집 안으로 들어왔소?”택란은 뱀을 힐긋 보았다. 그 뱀은 독성이 없는 풀뱀이다.“어제 요리사가 쥐가 많이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뱀이 여기저기 기어다니네. 정말 이상한 일이오.”“별일 아닙니다!”공연은 손을 씻고 와서 말을 이었습니다.“제가 성주님을 방으로 모시겠습니다.”택란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직 정오였고, 태양이 세게 내리쬐고 있었습니다.“약도성에 예전에 지진이 난 적이 있었느냐?”택란이 고개를 돌려 요리사에게 물었다.요리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지진이요? 땅이 움직이는 것을 말씀하십니까?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큰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흔들려서 집도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하셨습니다.”“성주님 겁주지 말고 할 일 하시오.”공연은 택란이 놀랐을까 봐 걱정하며 요리사에게 떠나라 했다.택란은 방으로 돌아간 뒤, 꼬마 봉황을 불렀다.뱀, 곤충, 쥐, 그리고 새는 지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꼬마 봉황은 영적인 새이기에 더더욱 그렇다.꼬마 봉황이 조금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꼬마 봉황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큰일이 닥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설마 지진이 나는 건 아니겠지?”택란은 바닥에 엎드려 귀를 대고 지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녀의 청력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기에, 지진이 오고 있다면 땅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하지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생각으로, 택란은 이에 관해 세게 명을 내렸다.성내 백성들은 택란이 이 도시의 성주이자 진국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특히 그들은 택란이 낭산의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낭산 도적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을 누가 믿을까?이곳의 백성들은 평생 황실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지금 이렇게 직접 마주하자, 감정이 폭발하여 약도성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황실에 대한 깊은 원망을 드러냈다.약도성에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백성은 백여 명에 불과했고, 셈조차 모르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원망은 쉽게 극대화되었다.특히 금나라 사람들이 부추기자,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처음엔 택란도 외출을 하곤 했지만, 적대적인 감정이 격렬해지자 외출할 때마다 돌멩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호명이 그녀의 안전을 염려해 경호를 강화하면서 크게 다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양두는 백성들과 다투며 분노를 터뜨렸습니다.“자네들이 원망해야 할 대상은 북막의 황실과 진가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고 북당을 침략하려다 패배하는 바람에 약도성을 내놓은 것이오. 다들 그때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소? 전쟁을 지지해 놓고 이제 와서 북당을 원망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양두는 기세가 등등했고 욕도 도리가 있어, 백성들을 순간 잠잠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돌멩이가 그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고, 양두는 머리를 감싸며 도망쳐야 했다.이들은 이성적으로 도리를 따질 사람이 아니었다.호명은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생각해, 택란에게 경성으로 돌아가길 권유했다. 하지만 택란은 단호히 거절했다.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십 년이 지나도 변화는 없을 것이고, 약도성은 영원히 이 상태로 남을 것이다.호명은 사고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호를 더욱 강화했다.그는 주 아가씨에게도 특별히 경계를 강화해
이리 나리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말곁으로 걸어가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사람이란 이래야 하는 법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재산은 평생을 써도 남을 만큼 많으니 아끼며 살 필요 없다는 것이다.”그는 말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탄 뒤, 천천히 자리를 떠났다.원경릉은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가 앞서 한 말은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뒤이어 한 말은 또 다른 의미로 그녀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저렇게 자랑하지 않으면 못 참는 걸까?랑문서가 정식으로 설립된 날, 삼대 거두는 길고 긴 폭죽을 보내왔다. 폭죽 소리는 십 리 밖까지 울려 퍼졌고, 이는 북당이 한 걸음 더 발전했음을 상징했다.수도에서 천 리 떨어진 약도성에서도 이날 폭죽 소리가 울려 퍼졌다.도성 중심에 새로 만들어진 상업 거리가 성대하게 시작을 알렸다. 이곳은 택란이 계획한 곳으로, 각종 장사를 한곳에 모아 거래를 규범화하고, 관아에서 관리하여 사기와 도둑질 같은 문제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상업 거리라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는 시작일 뿐,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만들 예정이다.같은 날, 또 다른 기념행사가 열렸다. 바로 도로 건설의 시작이었다. 간소한 의식을 치른 뒤, 도로 공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다른 성들과 비교하면 약도성은 광산 자원을 개발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광산 개발을 위해서는 금나라와의 합의만 아니라, 산을 개척하고 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기초 공사도 필요했다.조정에서 약도성에 특별히 자금을 지원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작업은 성에서 스스로 해내야 했다. 다행히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확보했기에, 이를 공사에 사용할 수 있었다.한편, 택란은 계속 금나라의 상황을 꼬마 봉황을 통해 접하고 있었다.진국왕은 얼음에 맞은 후 죽지는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되었다.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크게 화를 내며 자신의 지위를
주 어르신은 원경릉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자, 한마디 더 덧붙였다.“세상 만물은 도법을 떠날 수 없다.”원경릉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주 어르신은 정말 학식이 깊으십니다!”“대충 추측한 것이다!”소요공이 손으로 부채질하며 원경릉에게 물었다.“또 진맥하러 온 것이냐? 어제 네 할머님도 다녀갔다.”“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 손가락을 찌를 것입니다!”원경릉이 말했다.무상황은 손가락 찌른다는 말을 듣고, 재빨리 안쪽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는 얼마 전 혈당이 높다는 진단을 받았고, 며칠에 한 번씩 손가락을 찔러 혈당을 측정해야 했다. 손가락을 찌르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가?원경릉은 그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차분히 약상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어르신은 모범을 보이듯 먼저 혈압을 쟀고, 소요공도 뒤따라 검사했다.검사를 마친 두 사람은 무상황을 붙잡아 의자에 앉히고, 손가락을 원경릉 앞으로 내밀었다. 소요공이 말했다.“세게 찌르거라!”원경릉은 물론 세게 찌를 리 없다. 그녀가 부드럽게 처리했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소요공을 노려보았다.혈압과 혈당이 조금 높긴 했지만, 심각한 편은 아니라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다.모든 검사를 마친 후, 원경릉은 랑문서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주 어르신은 중요한 일이니 곧바로 동의했고, 바로 이리 나리를 불러왔다.이리 나리는 이미 이런 노골적인 요구에 익숙해져 있었다.그는 과거 늑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평생에서 얻은 것이 많지만, 그 어떤 것도 공주보다 귀하지 않다. 만약 내 모든 것을 공주와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바꾸겠다. 늑대파도 포함해서 말이다.”이 말에 늑대파 사람들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그를 둘러싼 채 한바탕 두들겨 팼다. 이리 나리는 가까스로 틈에서 빠져나와 힘겹게 말했었다.“하지만 설랑은 제외다!”그는 결국 더 심하게 두들겨 맞았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