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여태감이 놀랐다. 황제는 초왕이 당시에 원경릉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을 알았을까? 초왕에게 원씨 집안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도록 황명을 내려놓고는 지금 그는 왜 초왕에게 분노하는 걸까? 목여태감은 오랫동안 황제를 모셨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폐하, 초왕이 원씨 집안의 혼인 계략에 속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그렇게 냉대하십니까?” 목여태감이 물었다. 명원제는 노여움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다섯째는 정후와 원경릉 이 둘이 만든 진흙탕에서 뒹굴던 사람이다. 이미 때가 탔다는 말이지. 그런 이에게 짐이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목여태감은 명원제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명원제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명원제가 화가 났을 때는 말을 걸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랑 같기 때문이다.사실 목여태감은 이 일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명색에 황후 쪽에서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저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황제도 황후가 보낸 옥집사를 꽤 신뢰하고 있었다. 옥집사는 황실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으며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함부로 말을 전하지 않았을 것이다.명원제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태자의 자리를 염두한다는 것은 곧 그의 역린(逆鳞)을 건드리는 것이다. 우문호가 태자 자리를 탐내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이를 위해 결코 정세를 위협할만큼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짐이 하사한 남주를 초왕비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으니, 차용증서와 함께 가져오거라.” 명원제가 목여태감을 보며 말했다. 목여태감은 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호숫가에서 사색에 잠겨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별전 밖에 돌계단에 잠깐 앉아 있었다.“왕비님!” 목여태감이 걸어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는 원경릉을 바라보았다.‘총애를 얻었지만, 꾀가 많아 이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는구나 아깝다 아까워’목여태감은 속으로 생각했다. “태감님!’ 원경릉이 목여태감을 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 인
목여태감이 들어간 뒤 원경릉도 따라 들어갔다. 우문호는 몸을 살짝 일으키며 목여태감을 보았다. “태감님, 부황께서 남주를 받으셨다는 말씀입니까?”목여태감은 빙빙 돌려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묻는 우문호를 보고는 자신도 솔직하게 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왕야께서 그렇게 물으신다면, 제가 몇 말씀드리지요.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고깝게 듣지 마시지오. 왕야께서 황후에게 마음을 표하려거든 다른 방법도 많았을텐데, 굳이 황제께서 초왕비에게 하사한 남주를 황후께 보낼 필요가 있었습니까?”이 말을 듣자 우문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원경릉을 향했다. 원경릉은 눈을 아래로 드리우고는 무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향했던 눈동자가 천천히 목여태감 쪽으로 움직였다. “태감님께서는 이만 돌아가주시지오. 본왕이 왕비에게 긴히 할말이 있습니다.”목여태감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일단 남은 남주 한 꿰미와 차용증서부터 돌려주시지오. 황제께서 화가 단단히 나셨습니다.”“태감님 남주 한 꿰미는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직접가서 부황께 사죄를 드릴테니 먼저 돌아가십시오.” “지금와서 소용 없습니다. 황제를 더 화나게 하시려는 겁니까?” 원경릉의 태도에 태감은 화가 났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노려보았다. “태감께 돌려드려!”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잃어버렸으니 제가 사죄드리러 가야죠.”목여태감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비께서 남주를 잃어버렸다고만 하신다면 저희 쪽에서도 달리 도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왕비께서 잃어버린 그 남주 한 꿰미를 중신궁(中珅宮) 옥집사가 가져왔습니다. 정말 왕비께서 잃어버린 물건이라고 한다면 중신궁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다시 잘 생각해보시지요!”태감은 말을 마치고 우문호를 보았다. “왕야. 소인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 왕비께서 끝까지 황제께 직접 사죄를 하길 원하신다면야. 다만 분실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그저 왕비께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변명없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왕야!” 탕양이 다급하게 불렀다. “왕비가 황제님을 더 노하게 할까 염려됩니다!”우문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원경릉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그의 귓전에 맴도는 것 같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맘대로 하라 그래. 부황은 이미 본왕에 대해 실망할 대로 실망했으니 더 실망시킬 수도 없을거야.”“왕비는 왜 황후께 남주를 선물했을까요? 서일은 애써 그녀의 행동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왜 겠는가? 당연히 아첨하려는 목적이지!” 우문호가 대답했다. “아첨을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서일이 다시 물었다.탕양은 어이없는 눈빛으로 서일을 바라보았다. “바보도 알겠다! 정후는 줄곧 주씨 집안에 기대려고 했지않는가? 이는 자네도 모르는 일은 아닐테고.”서일은 코웃음을 쳤다. “정후 그 노인네가 뻔뻔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왕야께서 황제에게 총애를 받을 때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다가, 지금 우리가 권세를 잃으니 바로 주씨 집안에 발을 담그려 하다니요!”서일은 우문호가 듣고 있다는 것도 깜빡 잊었다. 우문호가 이를 듣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탕양이 서일을 보고 “무슨 헛소리야! 입 다물거라!”라고 소리쳤다.서일은 자신이 실언했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우문호를 한번 보더니 자신의 입을 막았다. 우문호는 마음이 시큰거렸다. 아무도 그가 마음 속으로 원경릉이 변하기를 바라는지 모른다. 그의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이 분노와 실망스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원경릉은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귓가에 스친다. 그녀는 손을 들어 뺨을 만져보니 피가 손에 묻어나왔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더욱 씩씩하게 걸었다. 걸으면서 피가 뚝뚝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래나 저래나 죽을 목숨, 이깟게 무슨 대수라고.’별전과 어서방(御書殿)의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그녀는 평소보다 오래 걸었다. 입구에 다다른 원경릉을 발견한 목여태감이 명원제에게 알렸다.“기다리라고 해.”명원제가 싸늘하게 말했다.원경릉은 밖에 서서 꼼짝 하지 않았다
몹시 화가 난 명원제는 목여태감으로 하여금 원경릉을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손왕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부황이 화를 원경릉에게 풀까봐 걱정이 되었다. 듣자하니 우문호가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고 하던데, 우문호에게 가서 초왕비를 데려올 방법을 찾아보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경릉이 궁 안으로 들어오자 명원제는 “무릎을 꿇어라!” 하고 소리쳤다. 그녀는 명원제의 말에 따라 무릎을 꿇고는 “부황을 뵙습니다!”라고 말했다. 궁 안은 어수선해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손왕을 향해 물건을 던진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바닥 한켠에는 남주 한 꿰미도 떨어져 있었다. “방금 목여가 돌아와 전해주었다. 짐이 네게 하사한 남주를 한 꿰미 잃어버렸다고? 어디서 잃어버린 것이냐?” 명원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건곤전에서 잃어버렸습니다.”“보아라. 이 바닥에 떨어져있는 남주가 네가 건곤전에서 잃어버린 남주가 아니더냐?”원경릉은 바닥에 남주를 보며 “맞습니다.” 라고 했다. “이 남주는 황후를 모시는 집사가 가져온 것이다. 네 말이 맞다면, 황후가 남주를 훔쳤다는 말이냐?” 명원제의 목소리에 실망스러움이 가득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인은 누가 남주를 가져갔는지 알고 있습니다.”“어?” 명원제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누가 가져갔는지 알고있다고?”“네. 누가 가져갔는지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명원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원경릉이 잠시 침묵하더니 “희상궁.”이라고 말했다. 명원제가 분노하여 탁자를 내리쳤다. “터무니 없는 소리!”이 상황을 지켜보던 목여태감이 급히 달려왔다. “왕비!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다니요. 희상궁은 태상황님의 사람이지 않습니까?”“네. 그렇죠.” 원경릉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난해한 표정으로 말했다. 명원제가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는 방금 원경릉이 뱉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
남주의 바친 목적은 무엇인가?현비는 인삼차를 내려놓고 원경릉을 보더니 머뭇거리며: “초왕비도 있었군요? 그럼 신첩은 이만 폐하를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겠습니다.”명원제가: “기왕 온 김에 앉으시게. 이 일은 그대의 아들과도 관계가 있으니.”:초왕과 관련이 있다는 말에 현비는 원경릉을 능지처참해도 성이 풀리지 않을 지경이다.현비는 분노를 삭이며, 입술엔 변함없이 웃음을 띤 채, ‘예!”현비가 발길을 돌려 앉는 동안, 빠른 속도로 상황을 되짚어봤다. 원경릉이 황후에게 아첨한 것이 다섯째 의도라고 황제는 생각하지만, 다섯째가 그럴 리 없다. 안 그래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서지 말아야 할 때에 다섯째가 이런 경거망동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아내를 잘못 얻었군.만약 이 일로 다섯째가 황제의 눈 밖에 나서 추방이라도 당하면, 현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경릉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어쩌다가 이 따위 여자에게 휘둘리게 되었지? 당초에 순리대로 주명취를 아내로 맞았으면 오늘의 이런 상황이 벌어질 리 없는데. 현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원경릉의 뼈마디를 분질러도 시원치가 않은 마음이다. 원경릉은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데, 죽일 듯이 노려보는 현비의 시선을 못 느낄 수가 있겠는가? 이 일 때문이 아니어도 현비는 원경릉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그때 “황후 마마 납시오!” 태감의 목소리가 들렸다.명원제는 손을 흔들어, 뜻을 표하자 목여태감이 달려 나가고, 황후가 옥집사를 데리고 오는 것이 보였다. 목여태감이 보니 희상궁도 방금 도착했기에, 황후께 나아가 몸을 숙이며, “마마,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목여태감은 이제 다시 희상궁을 보니, 희상궁은 얼굴이 태연하고 꾸밈없는 기색이다.목여태감이: “상궁은 안으로 들게!”황후와 옥집사가 앞서 가고, 희상궁이 뒤를 따르는 모습으로 세 사람이 어서방에 들어갔다.현비는 황후를 보고, 황급히 일어나 예를 취하며, “신첩 황후마마를 뵙습니다.”황후는 평상시처럼 현비를 한 번 쳐다보고, “현비도
진주 사건이 밝혀지자, 구전단의 범인이?주황후는 의아하다는 듯 옥집사를 보고, “뭘 잘못 들었다는 거지? 진주를 돌려 드리라고 했는데, 뭐라고 아뢴 것이냐?”“마마……” 옥집사는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며, “제가 멋모르고, 초왕비가 보낸 진주는 초왕을 위해서라 생각해서, 그만,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초왕비가 황후께 초왕에 대해 잘 말씀해 주셨으면 한다고.”주황후가 노발대발하며, “넘겨짚는 것도 정도가 있지? 간이 배밖으로 나온 모양이구나!”그때 황후가 문득 정신이 들며, 옥보가 황후를 따른지 오래되었고 평소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황제 폐하 앞에서 결코 함부로 넘겨짚은 말을 내뱉을 사람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황후는 바로 주명취를 떠올렸다.전에 주명취가 현비를 찾아가자고 했으나, 황후는 당장 현비와 맞붙을 필요도 없고, 현비는 태후의 조카라 눈 밖에 나면 오히려 일이 힘들어 진다고 생각했다.명원제의 낯빛이 졸지에 험악해 졌다. 옥보가 어찌 감히 단독으로 이런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황후의 명령이었겠지, 명원제의 싸늘한 눈빛이 황후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주황후는 명확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기에, 손으로 옥집사의 따귀를 때리며, 성난 목소리로: “방자한 것, 제멋대로 추측하고, 함부로 폐하 앞에서 지껄여?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구나?”옥집사는 바닥에 꿇어 앉아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폐하 용서해 주소서. 폐하 용서해 주소서!”명원제는 무표정하게 명령했다: “여봐라, 옥보를 끌어내 곤장 30대를 매우 쳐라.”주황후는 가슴이 아팠지만 옥보를 위할 수 없어 길길이 날뛰며: “좀 봐주려 해도 말이야. 어서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고 빌지 못해?”옥집사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반쯤 축 늘어진 몸으로 얼굴에 핏기가 없다. “소신을 벌해 주시니 폐하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옥집사가 끌려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퍽퍽하는 곤장 치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주황후는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은 표
희상궁의 자백“감히 자네가 약을 바꿔 치기 한 것이 아니란 말이냐?” 원경릉이 물었다.희상궁은 침묵했다.명원제는 탁자를 치려 했으나, 천천히 손을 내려 놓으며 고요하게 희상궁을 바라본다.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는다.희상궁은 분명 한 마디로 반박할 수 있음에도, 아무 말이 없다.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명원제는 놀라움과 분노가 몰아쳤다. 어째서 희상궁이란 말인가?“왕비 마마, 증좌는 있는 것이겠지요?” 목여태감은 가슴이 철렁해서 참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원경릉은 평소처럼: “증좌는 건곤궁에 있지요, 태상황 폐하의 곁에 말입니다. 희상궁, 자네는 태상황 폐하 앞에 가야 이실직고 하겠느냐? 자네가 태상황 폐하를 해하였으니, 폐하께서 자네 때문에 화병을 일으키셔도 할 수 없지, 건곤궁에 가서 대질하자 꾸나.”희상궁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이 시시각각 암담해지고 팽팽하던 얼굴이 푸석해 지며 눈꼬리가 처지고 순식간에 나이를 먹은 것 같다.“건곤궁까지 가실 필요 없으십니다. 쇤네가 했습니다!” 희상궁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실내는 죽음과 같은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명원제의 분노에 찬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명원제의 목소리가 다시 천천히 울려 퍼지나 공허하고 창백하게, “왜 그랬지?”희상궁은 얼굴에 울음보다 흉한 웃음을 흘리며, “쇤네는 태상황 폐하를 해하려는 마음을 먹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약은 쇤네가 바꿨지요, 독약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알고 난 뒤엔 이미 너무 늦었지요.”“그래서 남나인을 죽여 네 죄를 대신 씌웠느냐!” 원경릉이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제가 죽인 것이 아닙니다.” 희상궁이 말했다.“누가 너에게 약을 바꾸도록 시켰느냐?” 명원제는 등골이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궁중에서 희상궁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희상궁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폐하, 쇤네를 죽여 주시옵소서, 쇤네는 말할 수 없습니다.”“자네……” 명원제는 실망이 극에 달해, “일이 이지경이 되었거늘, 배후에서 지시한
희상궁, 원경릉과 함께 초왕부로희상궁은 쓴웃음을 지으며, “인정에 빚을 지면 결국 갚아야 하나 봅니다. 쇤네가 작년에 큰 병에 걸렸는데 초왕비께서 좋은 약을 보내주셔서 나았지요. 이번에 초왕비 마마를 도와드린 것으로 그때의 빚을 갚은 셈 쳐주세요. 쇤네 생각에 초왕비께서는 벌을 받지 않으실 겁니다. 태상황 폐하께 마마가 필요하니 기껏해야 욕이나 좀 들으시는 정도겠지요. 쇤네는 누구도 해치고 싶지 않습니다.”희상궁은 말을 마치고 머리를 땅에 세게 조아리고 고개를 들며 평온한 안색으로, “쇤네는 더 말씀 드릴 게 없습니다. 폐하, 쇤네에게 독이 든 술을 내려 주시옵소서!”이생에 진 빚을 희상궁은 이미 다 갚았다.내일 저승길을 떠나도 그분께 빚진 건 없다.명원제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자네가 만약 배후에 있는 자를 실토하면, 짐은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다.”희상궁은 침묵했다. 이미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결연함이다. 명원제는 극도로 미우면서도 가슴이 아려 도저히 희상궁을 죽일 수 없으며, 태상황께 이 사실을 고할 수도 없다. 태상황이 지금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곁에서 자신을 수십 년간을 모셔온 사람이 자기를 해치려 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잠시 침묵한 끝에 황제가: “태상황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자네 말을 믿겠네, 추궁하지도 않을 것이네, 단지 자네는 나이가 들었으니 다시 태상황 폐하의 시중을 들기엔 적합하지 않아. 초왕비와 자네가 마음이 맞는 것 같으니 짐이 초왕비를 위해 태상황께 양해를 구해 보지. 초왕비는 희상궁을 초왕부로 데려가라.”명원제는 결국 자기가 손을 쓰기 싫으니, 희상궁이 원경릉을 해치려 했는데도 그녀에게 딸려 보내 처리하도록 시켰다.원경릉은 눈이 동그래지며 말문이 막혔다!“희상궁은 먼저 물러가라.” 명원제는 노기를 거두고 평소처럼 얘기했다.희상궁은 복잡한 심경으로 원경릉을 보고 예를 취한 뒤 물러났다.명원제는 상선에게, “살펴보러 가거라, 가서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