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궁, 더 할 말 있는가?” 기왕비가 주명양에게 물었다. 주명양은 퉁퉁 부은 뺨을 감싼 채 기왕비를 보며 “기왕비가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궤변인지 아닌지는 여기 경조부윤이 있으니 조사를 해보면 알겠지.”“경조부윤? 어디요? 경조부윤에서 이미 잘린 지 오래 아닙니까?”주명양이 웃었다. “정직이 됐던 건 맞지만, 황제께서 초왕을 경조부윤으로 복직시킨 것 모르시나요? 초왕께서는 여전히 경조부윤이십니다.” 원용의가 말했다.“복직? 그래요? 그럼 황제의 성지가 있습니까? 복직을 했다는 증거가 있을 거 아닙니까?” 주명양이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우문호는 그 말을 듣고 옆에 있는 서일을 불렀다. “서일, 관아에 가 보좌관과 포도대장은 지금 당장 기왕부로 오라고 전하거라. 그리고 필적 검사를 진행할 것이니 냉대인도 모셔오너라.”“다섯째,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 기왕부에서 일어난 일을 왜 관아에서 처리하느냐?” 기왕이 말했다. “형님께서 방금까지 입궁해서 이 일을 해결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입궁을 해서 부황께 말씀을 드리면 부황께서 분명히 경조부 신하들을 시켜 진상규명을 실시할 겁니다.”“이건 황실의 일이니 황실 사람들끼리 해결하면 되지 않느냐?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이야?”우문호는 기왕의 말에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오히려 한걸음 가까이 기왕에게 다가갔다.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원경릉의 사주팔자가 적힌 저주인형이 있는 이상 이 일은 기왕부만의 일이 아니라고!”“너……”“서일! 뭐 하고 서있어 당장 관아에 가서 본왕의 말을 전하거라!”“예!”서일이 빠르게 뛰어갔다. 달려가는 서일의 뒷모습을 보던 기왕은 부병들을 시켜 서일의 앞을 가로막았다. “본왕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기왕부를 나갈 수 없다!”부병들은 서일을 저지했고 서일은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한 부병들을 보며 당황한 표정으로 우문호의 명령을 기다렸다. “나가거라!” 우문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일이 장검을 뽑아 들었다.“기왕부에는 백여
기왕부의 난투극우문호가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장검을 휘둘러 두 사람을 베어내며 사식이의 포위망을 풀었다.사식이가 낭랑한 목소리로: “왕야 감사합니다!”“돌아가서 왕비를 지켜줘!” 우문호가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연환퇴를 시전하자 원용의 앞에 2명의 기왕부 병사가 나가떨어지고, 동시에 고개를 돌려 사식이에게 얘기까지 했다.그러나 사식이는 돌아가지 않고 그쪽은 만아로 충분하니 우문호와 원용의를 도와 계속 싸웠다.원경릉은 가슴이 철렁했다. 밖에는 기왕부 병사가 잔뜩 있고 우문호는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는데 벌써 싸우기 시작했으며, 기왕부 병사들은 그가 왕야 신분이라 감히 중상을 입히진 못해도 얕은 상처를 무수히 입혔다.게다가 우문호는 무공이 허접 해서 구사한테도 맞아서 멍 들고 얼굴이 붓는 지경 아닌가.만아가 위로하길: “왕비마마 안심하세요. 왕야께서 서일을 여기서 나가게 하실 겁니다.”과연 우문호의 초식이 민첩하고 빨라서 장검이 꽃처럼 원형으로 피어나며, 연속으로 몇명을 쓰러뜨리는데 중상을 입히지 않고 가볍게 넘어뜨리는 정도다.검에 불꽃이 튀는 와중에 우문호는 여유작작 기왕부 병사들 사이를 맴돌다가 여러 차례 눈 앞에서 포위되었는데도, 빛처럼 번쩍 날아올라 허공에서 검을 회전시켜 번번히 포위를 벗어나 여러 명을 찔렀다.찬 바람에 우문호의 옷자락이 나부끼며 추상같은 눈빛에 무지개 같은 검기가 피어 오른다. 서일과 일종의 암묵적으로 공격과 방어 짝을 이뤄, 둘 사이에 눈빛조차 교환하지 않아도 절묘하게 어울렸다.원경릉은 이때야 비로소 서일이 매번 그렇게 바보 짓을 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여전히 우문호가 서일을 곁에 두고 내쫓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하지만 기왕부 병사가 너무 많고 강호인이 난투극에 끼어들지를 않나 심지어 제왕을 압박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제왕은 잠시 숨었다가 결국 다시 나와, 원용의가 포위 당한 것을 보고 손에 아무 무기도 들지 않은 채로 달려들어 원용의를 한 손으로 끌어냈다.원용의가 자세를 가다듬고 약간 당황하더
기왕부에서의 한판 승부주명양이 격분해서 소리 질러, “원경릉, 나는 널 안 건드렸는데, 네가 날 건드려?”주명양이 손에 붉은 채찍을 들어 올리자 번갯불이 하늘에 번쩍이듯 채찍이 ‘쉭’하는 바람 소리를 내며 바로 원경릉의 배에 휘둘러졌다.만아가 대경실색하고 마음 속에 주명양에 대해 갖고 있던 두려움도 잊고 격하게 손을 뻗어 채찍을 잡자 주명양이 냉소를 지으며 채찍을 거둬들이는데 채찍엔 쇠로 된 못이 박혀있어 만아의 손은 온통 시뻘겋게 피와 살이 엉겨 붙었다.원경릉이 이 상황을 보고 화가 나서 배가 아플 지경이라 어장을 휘두르며 때리는데 만아가 앞에서 보호하니 주명양은 채찍을 거둬들이지도 못하고 심지어 채찍을 바닥에 떨어뜨려 머리를 감싸 쥐고 숨으며 날카로운 소리로 “왕야 살려주세요.”하고 외쳤다.기왕이 고개를 돌리자 주명양이 원경릉에게 뚜드려 맞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달려가는데, 기왕비가 날쌔게 와서 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왕야, 오늘 이 재미난 연극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말려들 줄 상상도 못했죠? 절 내쫓겠다고 아주 애를 많이 쓰셨어요.”“이 미친 여자가, 꺼져!” 기왕은 주명양이 걱정돼서 격노하며 손을 들어 조금도 사정을 두지 않고 기왕비의 따귀를 때렸다.기왕은 기왕비에게 지금 오직 증오와 미움만 있고 더욱이 기왕비의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보면 짜증이 났다.기왕비는 몸이 마르고 약해서 이 한대에 거의 바닥에 널브러졌다.기왕비가 비틀거리자 기왕이 재빠르게 앞으로 가려고 했다. 이때 기왕비가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기왕의 목을 누르고 손을 얼굴 위로 들어 머리채를 완전히 잡고 뒤로 끌어당기니 기왕은 순간 그대로 쓰러졌다. 기왕비는 원숭이처럼 잽싸게 올라타서 양 손으로 뺨을 때리는데 숨이 가빠져서 씩씩거릴 때까지 쉬지 않았다.기왕비의 이런 동작은 오래 연습한 것 같아서 폭발력이 어마어마했다.기왕이 손을 흔드는 순간 기왕비는 이미 비수로 그의 목을 누르고 머리카락이 뒤엉켜 흘러내린 가운데 얼음장 같은 눈빛이 형형하며, “어디 한번 움직여
기왕과 담판하는 우문호기왕이 차갑게 우문호를 노려보고 제왕에게, “일곱째야, 원인이야 어떻든지 간에 아바마마께서 하문하시면 너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어. 황자들이 치고 받아 반드시 벌을 내릴 테니, 일을 만들고 싶지 않거든 얼른 후궁을 데리고 나가거라.”제왕은 원래 귀찮은 걸 싫어하고 실오라기 하나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성격인데 이건 황후의 잔소리 탓이다.그리고 제왕은 형제 간에 다섯째랑 비교적 좋은 관계긴 하지만 사실상 누구한테도 미움 받기 싫다.게다가 큰형에 대해서는 경외하는 마음도 있다.기왕이 제왕을 보내주기만 하면 오늘 이 일도 황제 앞에서 변명할 수 있는 것이, 제왕이 저주인형 사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바마마도 제왕 한 사람만은 처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제왕은 꼼짝 않고 서서 잠시 머뭇거렸다.이때 원용의가 제왕 앞에 서서 담담하게: “우린 안가요, 관아 사람이 오는 걸 기다리죠 뭐, 오늘 일은 우리가 직접 봤으니 증인이잖아요.”제왕이 바로: “맞아요, 우리 안가요.”기왕이 화를 내며, “너……”우문호가 검을 손에 쥐고 아무렇지도 않은 눈빛으로: “큰형, 아직도 죽기 살기로 덤비실 겁니까? 저 오늘 형이랑 끝까지 갈 겁니다.”기왕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더니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고개를 돌려 기왕비를 찢어발길 듯이 노려봤다.오늘의 이런 변고를 기왕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원경릉을 저주인형 당사자로 삼은 것은 그녀가 아이를 가졌고 아바마마의 사랑이 깊어서 였다. 아바마마께서 훑어보시기만 해도 원경릉은 죄를 물어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기왕은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다섯째가 와서 소란을 피울 줄 상상도 못했다.기왕에겐 불리하다.기왕은 어서 주명양을 정비의 자리에 올려 주씨 집안의 도움을 받을 생각 밖에 없다. 왜냐면 몹쓸 계집의 친정에서 천천히 자금줄을 조여오며 더이상 그를 돕지 않기 때문이다.기왕에겐 절박한 상황인데, 몹쓸 계집이 사람을 시켜 다섯째를 오게 할 줄이야. 일곱째까지 올 줄은 더군다나 몰랐다.기왕은 지금 속으
십만 냥을 내 놓던지우문호가 이 말을 듣고 고집스럽게 웃으며, “큰형이 인정하게 만드는 거 어렵네요. 동생인 제가 한바탕 칼부림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기왕 큰형이 인정하셨으니 잘됐네요. 형이 전에 말끝마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따지셨는데, 지금 묻지요. 큰형은 이 일을 어떻게 책임 지시겠습니까?”기왕은 부글부글 끓어서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나, 꾹 참고 우문호와 얘기하는데 소위 말하는 변명도 마땅한 게 없다.기왕이 손을 들어 왕부의 병사를 앞으로 나오게 하고 우문호에게 사죄하게 했다.기왕부의 병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손을 잡고 앉아서 냉엄한 자세로, “큰형, 쓸데없는 말 하지 말죠, 책임진다는 게 고작 병사들이 무릎 꿇고 사죄하는 거면 전혀 필요 없습니다.”기왕은 오늘 꼼짝 없이 우문호의 수중에 잡혀 있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어쩔 도리 없이, “그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아바마마 앞에라도 가서 떠들고 싶으냐?”우문호가 차갑게 기왕을 노려보며, “아바마마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게 이런 일인데, 저도 당연히 아바마마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거야?” 기왕이 몰래 안도하며 아바마마 앞에서 거론하는 것만 아니면 다 괜찮다.우문호는 마치 전부터 다 생각이 있었다는 듯: “십만 냥, 원 선생이 선행으로 공덕을 쌓아서 형의 저주를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기왕이 얼굴이 하얘져서: “십만 냥이라니? 아예 도둑질을 하지 왜?”우문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비꼬듯이: “이렇게 큰 기왕부에서 고작 십만 냥도 못 만드는 건 아니겠죠?”기왕비는 한편으로 들으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십만 냥, 기왕은 낼 수 없다, 주명양이 내주지 않으면.하지만 주명양이 한번에 십만 냥을 낼까?십만 냥이라면 주명양이 시집올 때 패물과 함께 가져온 전액일 것이다.재상이 손녀를 결혼시키면서 비록 십리를 뻗친 행렬만은 못해도 십만 냥은 혼수로 전해줬을 거라고 외부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다섯째
주명양과 기왕, 원경릉과 우문호기왕은 주명양의 눈물을 닦아주고 손가락으로 얼굴의 상처를 매만지며 가슴 아픈 듯이: “아프지?”주명양이 울면서: “아파요, 이 상처 흉터 남지 않겠죠? 왕야가 저 대신 갚아주세요.”기왕이 음흉한 눈빛으로, “걱정하지 마요,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단단히 따질 테니까.”기왕은 홱 돌아서서 냉정한 눈빛으로 기왕비를 노려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몹쓸 계집, 잘 하는 짓이다.”기왕비는 입꼬리를 올리고 맑게 웃으며 비꼬는 빛이 가득한 눈으로, “왕야, 저를 내쫓고 싶으시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될 것을, 뭐 이런 방법을 쓰셔서 명성을 더럽힙니까? 일이 이지경이니 괜히 사이좋은 척 가장할 필요 없겠죠. 오늘 당신이 내 털 한 오라기라도 건드리면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방금 큰오빠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풍이를 보냈어요. 만약 내가 기왕부에서 어떤 재난이나 모욕을 당하면 내 수중에 있던 증거가 전부 큰오빠에게 전해져서 그 사람들과 당신이 서로 싸우게 할 겁니다. 그리고 그 십만 냥은 스스로 조달할 충분한 능력이 있어야 될 걸요. 제 도움을 빌리지 않으려면요. 일을 저지르기 전에 3번은 생각 하세요.”말을 마치고 기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싸늘하게 돌아서서 갔다.기왕이 열 받아서 한 발로 탁자를 차서 엎자 하인들이 놀라서 얼른 밖으로 숨었다.주명양도 안에서 우문호가 하는 요구를 들었지만 이 큰 기왕부에서 십만 냥도 못 낼까 생각했다.주명양은 우문호의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고 기왕비가 멋대로 날뛰는 게 더 불만이었다.원망을 담은 말투로: “왕야, 당신은 어쩜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했어요?”주명양은 확실히 일이 이렇게 커질 줄 생각도 못했고, 만약 우문호 쪽까지 떠들썩하게 할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주명양은 주명취만큼 계산이 ‘빠삭’하진 않지만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이번 계획을 보고 기왕에게 약간 실망했다.최근 주명양을 격하고 강압적인 형태로 총애하길래,
북적대는 초왕부와 주명양의 방문원경릉은 사실 기왕부를 나온 뒤로 이런 느낌이었다.왜냐면 기왕비가 없는 기왕은 이빨 없는 호랑이에 불과하다.이빨 없는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이나 써먹지, 살아서는 그냥 평범하고 무능할 뿐이다.하지만 황제는 한사코 기왕을 보호하면서 수차례 그에게 기회를 준다.과연 장자라는 신분 때문일까?“왕야가 이 일을 아바마마 앞에 가져가지 않는 것도 그래서야?” 원경릉이 물었다.우문호의 표정에 무력함이 가득해서, “맞아, 이 일을 아무리 크게 난리를 쳐도 설사 네가 기왕부에서 진짜 죽었다고 해도, 아바마마께서 큰형의 목숨은 뺏지 않으실 것이고 심지어 친왕이란 봉호도 빼앗지 않으실 테니까.”소위 은총을 입는 다는 게 언제 겉으로 노력한다고 됐나? 아바마마께서 원 선생을 예뻐 하는 것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은 한계가 있고, 아니나 다를까 우문호가 후궁을 맞는 것을 원 선생이 반대하자 아바마마께서는 안면을 몰수하셨다.하지만 큰형이 한 일이 어찌 이 뿐일까?우문호 자신은 애진작에 알아봐서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하지만 오늘처럼 원 선생 관련된 일을, 우문호는 떳떳하게 입궁해 아바마마께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다.우문호는 속에 천불이 나고 원 선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우문호는 조용히 탄식하며, “억울하게 했지.”원경릉이 웃으며, “조금도 억울하지 않은데, 오늘 왕야의 솜씨를 봤는 걸. 확 숭배하게 됐어. 왕야, 나랑 살아갈 사람은 왕야지 다른 사람이 아니거든, 난 왕야가 나한테 잘하는 지만 관심있어. 다른 사람은 전혀 안중요해.”우문호는 원경릉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굴에 살포시 걸린 미소는 맑고 순수하면서도 투철하다.우문호가 손을 뻗어 끌어 안으며 원경릉이 우문호를 따른 이래 초왕부에선 거의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고, 오히려 정후부에 쫓겨나고 서야 조용한 나날을 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쓴웃음이 나며 정후부로 쫓겨난 걸 감사해야 하는구나.초왕부가 북적대기 시작했다.사람이 줄줄이 드나들고 초왕비가
기왕비의 속마음이 십만 냥은 주명양이 팔만 냥, 기왕비가 만 냥 그리고 나머지를 기왕 자신이 마련한 것이다.주명양은 원경릉에게 딱 한 마디 하길, “같잖게 사람 깔보지 마요. 십만 냥은 나한테 별거 아니니까.”말을 마치고 약간 상처가 남은 얼굴을 들고 냉랭하게 떠났다.원경릉이 이 말을 듣고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기왕비는 가지 않고 약을 더 달라고 했다.이제 수액을 맞을 필요도 없어서 며칠 안 왔는지라 원경릉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그 참에 얘기를 나누었다.“주명양은 왜 따라 온 거예요?”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웃으며: “적당히 하인들을 시켜서 보낼 은자가 아니라고요. 기왕도 직접 오기 싫어서 나한테 맡겼는데 주명양은 그게 안심이 안된 거죠. 어쨌든 본인이 팔만 냥을 내고 난 겨우 만 냥을 냈을 뿐이니까.”“만 냥을 또 냈어요?” 원경릉이 의아해서, “왜 기왕을 도와줘요?”기왕비가 웃으며, “이 만 냥은 초왕비가 나에게 돌려줄 거라고 생각해서지요.”원경릉이 고개를 흔들며, “아뇨.”기왕비가 완전 불쌍하게, “내가 지금 모아 놓은 것도 별로 없고, 계속 친정에 달라고 할 수도 없어요. 이 만 냥은 돌려주세요.”“그럼 반드시 말해야 해요. 왜 기왕에게 만 냥을 줬는지.” 원경릉이 물었다.기왕비가 한숨을 쉬며, “좀 편히 지내볼까 하구요, 은자 만 냥을 주는 건 가슴 아픈 일이고 그럴 가치도 없지만 적어도 기왕이 계속 날 괴롭힐 수 없게 하는 힘은 발휘할 테니까, 나도 내 일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죠.”기왕비의 마르고 약한 얼굴은 여전히 창백한 채 숨을 들이쉬며: “어쨌든 살아야 지요, 내 딸도 기왕부에 있고 난 갈 수 없어요.”아이를 위해서라면 원경릉은 이해가 갔다.이 시대의 합의 이혼은 이혼한 뒤에도 아이를 만날 수 있거나 아이의 양육권을 쟁취할 수 있는 현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만약 기왕비가 합의 이혼한다면 다시는 자신의 딸을 볼 수 없게 된다.사람의 마음은 가지각색이지만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매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