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와 우문호의 일전우문호는 진짜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다.명원제가 자신에게 무슨 호박 아가씨인지 호 아가씨인지와 혼인하라는 말을 듣고 지붕에 기왓장을 전부 날려버릴 만큼 열이 받았다.우문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완강하게: “아뇨, 누구와도 혼인하지 않겠습니다. 호박 아가씨든 수박 아가씨든 일절 혼인하지 않겠습니다.”“이런 몹쓸 자식, 무엄한 지고!” 명원제는 이럴 줄 알았지만 역시 화가 치밀어서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어째 시름을 덜어주는 놈이 하나도 없다.“소신 이 생에 ‘원경릉’이란 왕비 하나만 둘 뿐 후궁은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문호가 말했다.명원제는 홧김에 우문호의 머리를 한 대 갈기고, “이 못난 놈아, 그냥 여자 하나가 아니냐? 혼인하고 데려가서 싫으면 건드리지 말고 초왕부에 두면 그만이지, 너희 부부한테 방해 될 게 뭐가 있어?”우문호 머리가 단단해서 오히려 때린 명원제 손만 아팠다.우문호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불끈하며, “아바마마 만약 그러실 거라면 굳이 그녀와 혼인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녀와 잘 될 리도 없는데 혼인해서 초왕부에 데려가는 건 그녀의 일생을 망치는 일이 아닙니까. 저는 그런 음흉한 일은 할 수 없습니다.”“음흉해? 뭐 음흉하다고!” 명원제가 듣고 화가 치밀어 올라 두 대를 연거푸 때리고, “이건 권력에 대한 계책이고 견제와 균형이야, 그래도 모르겠어? 짐은 널 위해 앞길을 터주려 는데 너는 감사는 고사하고, 짐을 분통이 터져서 죽이려는 작정이냐.”명원제가 열 받아서 몹쓸 자식이라고 연거푸 욕을 해댔다.우문호 얼굴이 창백해 지며, “어쨌든 소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소자는 혼인하지 않겠습니다.”명원제가 화가 나서: “네가 동의하지 않아도 해야만 할 것이다. 진북후가 이미 조정으로 개선하고 있으니 딸도 같이 올 거다. 부녀가 경성에 다다르면 혼례를 준비하기 시작할 것이고, 만약 싫거든 감옥에 가라, 짐이 네가 주명취를 죽인 사실을 엄밀하게 조사하도록 하지.”“그럼 아바마마께서 조사하시지요, 제 목이
아버지와 아들이 아들은 고집은 좀 센 편이지만 역시 능력이 있긴 하다.불 붙이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아니지, 중요한 임무를 맡길 땐 꼭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우문호가: “아바마마 만약 진북후가 껄끄러우시면 꼭 소자를 호 아가씨와 혼인 시킬 게 아니라, 아바마마께서 호 아가씨를 양녀로 삼으시고 공주로 책봉한 뒤 입궁해 어마마마와 함께 지내게 해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명원제가 우문호를 노려보며, “어떻게 같아?”이 녀석은 경중을 모른다니까.호 아가씨와 혼사를 치르면 진북후는 우문호의 장인이 되니 이게 진북후에게 있어 얼마나 큰 혜택이고 비호인가?보아하니 아직은 한참 더 갈아도 되겠다. 예리함을 전부 갈아 없앨까 걱정할 게 아니라 뾰족한 날부터 매끄럽게 좀 해 놓고.명원제는 정말 화가 났다. 호 아가씨를 양녀로 삼아 공주에 책봉하는 걸 전에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이제 보니 안될 것도 없다.하지만 벌써 일이 벌어져서 원경릉은 친정으로 쫓겨났고 이 녀석은 고집을 부리고 있다. 이 참에 따끔하게 혼을 내두지 않으면 앞으로 무법천지로 날뛸까 두렵다.그리고 원경릉은 다섯째에게 너무 큰 영향을 미친다. 최대한 이걸 빌미로 둘을 갈라놓는 편이 좋겠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명원제는 차갑게: “주명취가 옥에서 죽은 것에 대해 네가 개인적으로 살인하여 입막음을 했다고 누군가 상소를 올렸다. 어떤 이유로든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 사건은 짐이 조사를 명할 것이며 너는 계속 정직상태다. 원경릉은 스스로 잘난 척하며 친정으로 갔으니 친정에서 한동안 살게 할 것이나, 만약 네가 정후부에 가서 감히 소란을 피우거나 가만 있지 않을 시엔 짐은 원경릉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를 죽이는 건 미련이 남지만, 원경릉 하나 죽이는데 짐이 손이 떨려 못할 성 싶으냐?”“원 선생은 회임을……”명원제가 책을 집어 던지며, “닭은 잡고 알은 가져올 것이다.”독하다! 우문호는 냉기를 느꼈다.“꺼져!” 명원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네가 만약 감히 정후부에
희상궁과 정후정후가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 희상궁을 봤다.희상궁이 오기 전에 특별히 신경 써서 단장을 한데다 어두운 보라색 둥근 자수 무늬 비단옷을 입고 하얗게 센 머리를 가지런하게 틀어 올려 여의 무늬 옥비녀를 꽂았다. 희상궁 온몸에서 궁중에서 관리를 담당하던 시절의 위엄이 넘쳐 흘렀다.희상궁이 정후에게 살짝 예를 취하며, “후작 나리, 제 쪽은 예를 갖추어 앞으로 정후부에 있는 동안 소인이 왕비마마를 돌보는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태상황 폐하의 명이 있어 황실의 핏줄은 결코 잃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으니, 후작 나리의 많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정후가 황급히: “당연하지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희상궁이 사식이를 끌고 와: “이 분은 원 노마님께서 왕비마마와 함께 하라고 보내신 분으로 넷째 항렬입니다.”사식이가 명랑한 목소리로: “후작 나리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어이쿠” 정후가 서둘러 사식이를 훑어보고, “이거 원씨 가문 아가씨였군요.”정후는 속으로 의심이 드는 게 오밤중에 돌아온 것과 목여태감이 직접 데리고 온 것을 보면 분명 원경릉이 뭔가 일을 저질러서 황제 폐하께 벌을 받아 돌려 보내진 게 틀림없다.정후는 계속 이혼장을 받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목여태감이 왔을 때 이혼장을 꺼내지는 않았다.그러나 어떻든 이렇게 늦은 시간에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기로 한 것은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태상황 폐하도 사람을 보내 원경릉을 돌보고, 원씨 집안에서도 사람을 보내 원경릉과 함께 있게 하다니 또 쫓겨난 거 같지는 않다.“후작 나리!” 희상궁이 불렀다.정후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희상궁을 봤다.희상궁이 미소를 지으며: “후작 나리 사람을 시켜 장소를 정해주시지요, 지금 왕비마마께서는 쉬셔야 합니다.”정후가 분부해 원경릉이 형녕각(邢寧閣)에 짐을 풀도록 했는데 이 곳은 원경릉이 전에 살던 곳이다.이미 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정후부 사람은 벌써 쉬고 있어 원경릉도 일단 쉬고 내일 다시 노마님을 뵙기로 했다.정후가
잠못드는 원경릉과 희상궁정후도 자기가 왜 이리 재수에 옴이 붙었는지 알다 가도 모를 지경이다.예상대로 잘 해왔다. 딸을 초왕부에 시집 보내려고 계획을 세웠을 땐 주명취란 귀인이 나타나 도와줘서 성공했다.혜정후와 혼사도 합당하게 매듭지어가고 있었기에, 정후는 초왕의 장인이자, 혜정후의 장인으로 주씨 집안과 인척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는데 어쩌다가 지금 아무것도 건진 거 없게 됐을까. 딸은 퇴물이 돼서 반품됐으니 앞으로 다시 누구에게 시집을 보낼 수 있기나 할까? 어느 대가집에서 원경릉을 원할거야? 애비 팔자가 세상에 불쌍하기도 하지!정후는 씩씩거리며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내일 원경릉이 혼자가 되면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이었다.원경릉도 거의 밤새 잠이 들지 못했다.전에는 누가 곁에서 자는 것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왕야가 곁에 없는 것이 낯설게 느껴 지다니 습관이란 무섭다.왕야 성격이면 어젯밤에도 궁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모를 일이다.우문호는 원경릉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을 원망할까? 분명 그럴 것이다. 우문호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니까. 이 사람은 존재 자체가 결점투성이다. 원경릉 외에 누가 그를 참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호 아가씨는 변경에서 자라 성격이 아주 부드럽지는 않을 게 틀림없다. 만약 정말 그녀와 혼인한다면 하하,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고 우문호는 그녀를 매정하게 대했었다.하지만 둘의 성질은 자못 다르다. 그때 몸의 원래 주인인 원경릉은 분명 우문호를 비참하게 만들었기에, 원경릉에 대한 우문호의 태도는 아내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원수에 대한 태도였다. 당연히 매정할 수 밖에 없었다.하지만 호 아가씨는 비록 강요된 혼인이지만 주도적으로 우문호를 해친 게 아니고 둘 사이에 치열하게 싸울 만한 일이 전혀 없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원경릉은 오히려 잠을 들 수 없었다.사실 마음 속으로 우문호가 호 아가씨와 혼인할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지금 상황과 옛날의 양상이 서로 다르지만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황상께서는 저를 가둬두려고 하십니다. 다섯째는 황상께서 시키는 대로 할 것이고…… 지금 저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이 일을 태상황께서는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희상궁이 말했다.희상궁의 말을 듣고 원경릉은 고개를 저었다.“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태상황님께 도움을 청할 수는 없습니다. 태상황께서는 이미 저를 여러 번 도와주셨습니다. 만약 이번에 또 저 때문에 태상황께서 황상과 대립하게 된다면…… 제가 두 분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그리고 황상께서 하신 일도 태상황께서 보시기에 잘못했다고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모든 일은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릅니다.”희상궁이 말했다.원경릉은 물 잔을 들어 희상궁에게 건네었다. “이제 그만 자야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왕부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외부와 차단되어 온전히 태아를 키우는 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상궁님, 내일 만아를 시켜서 회왕부에 약을 전달해달라고 해주세요. 그리고 기왕부에 가서 기왕비께 정후부로 곧장 오시라고 해주세요.”“예! 알겠습니다!” 희상궁은 물 잔을 탁자 위에 놓고 돌아와 침상 옆 장막을 내렸다.*다음날 원경릉은 날이 밝았는데도 잠을 자고 있었다. 원경병은 시녀에게서 원경릉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원경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는 내내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밤중에 돌아오다니? 게다가 후부에 며칠 더 묵는다고 하는 건……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원경병이 그녀를 깨우러 들어오자 만아도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원경릉이 눈을 뜨자마자 원경병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침상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꼭두새벽부터 나타나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이유가 뭐야!”원경릉은 침상을 손으로 짚으며 자리에 앉았다. 배가 불러오니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곤욕스러웠다.원경병은 침상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아 눈을 부라렸다.“혹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세요. 여기서 듣겠습니다.”원경릉이 말했다.잠시 후 정후가 뒷짐을 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정후는 검은 물고기 문양이 들어간 푸른색 두루마기를 입고 허리춤에 옥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는 어딘가 모르게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원경릉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후부에 온 이유가 뭐야? 여기에 금붙이라도 숨겨둔 것이냐?”“부친!”원경병이 침상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자 원경릉도 몸을 일으켜 부친에게 인사를 했다.정후는 밤새 원경릉이 왜 정후부로 왔는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그는 원경병이 자리에 있는 것도 개의치 않고 원경릉에게 쏘아댔다. “밤중에 정후부에 온 이유가 무엇이야 혹시 쫓겨나기라도 한 것이냐?”“부친, 딸이 왕부에서 억울함을 당해 친정에 위로를 받으려고 왔습니다. 부친께서는 딸이 온 게 그렇게 못마땅하십니까?”원경릉이 수심찬 표정으로 정후를 보았다.정후는 그녀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잔말 말고 왜 왔는지 말해봐. 설마 쫓겨난 게냐?”원경릉은 한숨을 쉬었다. “부친께서 이혼장을 받으셨다면 이혼을 당한 거겠죠. 아직 이혼장을 못 보셨다면…… 사실 지금 상황으로는 이혼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네요.”그녀의 말을 들은 정후는 탁자를 두드리며 화를 냈다. “이혼장? 무슨 일인지 말해 봐.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바로 쫓아낼 것이야!”“부친! 누이를 쫓아내신다니요! 누이는 잘못한 게 없습니다!” 원경병이 원경릉 앞을 가로막았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오밤중에 친정으로 쫓겨났으면 분명 누군가에게 미움을 사서 이리로 보내진 것 아니겠느냐! 왜 온 것이야 그 이유를 똑바로 말하거라!”“부친께서 진정하시거든 제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원경릉은 자리를 잡고 앉으며 정후를 보았다정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원경릉의 모습에 놀라 뒷짐을 지고 혀를 차며 욕지거리를 해대더니 결국 자리에 앉았다.“빨리 말하거라!”“제가 황상께 노여움을 샀습니다. 그래서 황상께서 저를 친정으로
정후가 정신을 차리자 눈앞에 근심에 가득 찬 원경릉 얼굴이 보였다.공포에 사로잡힌 정후는 원경릉의 손목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정말 주명취가 황상께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이야? 황상께서는 크게 노하셨느냐!”원경릉은 그런 정후를 연민의 눈빛으로 보았다.“부친, 만약 그 일이 아니라면 임신까지 한 저를 왜 친정으로 보냈겠습니까? 빨리 해결 방법을 강구하세요!” ‘주명취 가증스러운 계집…… 죽으려거든 혼자 죽을 것이지. 죽어서까지 정후부를 괴롭히는구나.’ 정후는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아 입술을 물어뜯다가 고개를 돌려 원경릉의 배를 쳐다보았다. 넉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배는 크고 둥근 것이 딱 딸을 품은 것 같아 보였다. 정후는 혀를 차며 고개를 떨구었다.정후는 원경릉이 딸을 낳는다면 앞으로 자신의 벼슬길에는 희망이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코 앞에 닥쳐온 정후부의 몰락에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후작으로 임명된 이후 그는 조상의 영전에서 지난날의 정후부 명성을 되찾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알기에 온 힘을 다해 권세가 기우는 곳에 빌붙었으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다고 더 치고 올라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정후부는 몰락의 수렁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한동안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더니 축 처진 어깨로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그늘 진 그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문밖으로 나온 정후는 줄곧 의지해 온 둘째 노마님을 찾아 이 일을 상의했다. 원경릉이 친정으로 돌아왔기에 이 일은 정후부의 둘째 노마님이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했다.아침부터 정후가 찾아와 얘기를 하자 둘째 노마님은 깜짝 놀라 눈이 뒤집힐 뻔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그녀는 충격으로 손과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온몸이 저릿저릿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우리가 살기 위해서
“둘째 숙모님, 머리가 안 돌아가십니까? 경중에서는 그런 임산부를 찾기 힘들 수 있으니 저 멀리 돈 없고 힘없는 계집을 찾아야겠죠. 거지 소굴같은 곳을 잘 찾아보면 은화 몇십 냥만 주면 갓난아이뿐만 아니라 자기 며느리도 내어줍니다.”“맞네, 맞아. 이 일은 내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둘째 노마님은 요즘 들어 집안의 기강을 잡는 첫째 노마님 때문에 맥을 못쓰고 있었기에 만약 이 일을 잘 처리한다면 그녀에게 기세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정후가 떠난 후 원경병이 원경릉을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누이, 방금 한 말이 사실입니까?”원경릉은 빙그레 웃으며 “겁 좀 줬지.”라고 말했다.원경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왜 부친을 겁주십니까?”라고 물었다.“그래야 나를 귀찮게 할 시간이 없을 것 아니냐?”원경릉은 정후부가 소란스러워야 정후가 자신을 찾아와 귀찮게 할 확률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우리 조모를 뵈러 가자. 조모께 문안을 드려야지.”원경릉이 말했다.원경병은 누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세세하게 물으려다가 조모를 뵙고 와서 다시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이가 이른 아침부터 조모를 뵈러 가려고 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노마님께서도 어제저녁에 원경릉이 정후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아침 일찍부터 원경릉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노마님의 정원에 들어서자 손씨 아주머니가 급히 나왔다.“아이고! 왕비님께서 오셨군요! 안 그래도 노마님께서 애타게 기다리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원경릉은 발걸음을 재촉해 안으로 들어갔다.노마님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원경릉이 노마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으려고 하자 손씨 아주머니가 그녀를 부축했다. “왕비, 무릎을 꿇지 마세요. 몸이 무거우시니 그냥 편하게 앉으세요.”노마님을 보기 전까지 평온했던 원경릉의 마음이 초조한 노마님의 표정을 보자마자 파도에 휩쓸리듯 흔들렸다.“조모!”“왕비,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노마님은
잔뜩 긴장한 채로 앞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있었던 주 지부는 우렁찬 상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중심을 잃은 듯 비틀거렸다. 그는 이내 팔을 뻗어 망루의 기둥을 붙잡으려 했지만, 허공에서 멈추고 말았고, 그대로 몸이 앞으로 쏠려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말에서 빠르게 날아올라,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주 지부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를 안고 빙 돌아서 바닥에 착지했다.주 지부는 깜짝 놀라서 그만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반짝거리는 눈망울에, 품위 있는 모습의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주 지부는 그를 황제의 호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거의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새도 없이 그에게 예를 올렸다.“대인,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그때 말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서일이 먼저 말에서 내려, 다급히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으십니까?”우문호도 매우 놀란 듯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주 지부는 정말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숨을 들이쉬었다.“괜찮다.”그러고는 주 지부를 보며 물었다.“자네는 누구요?”주 지부는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누가 황제인지 추측했다.황제는 올해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알려져 있었기에 위엄이 넘쳐 보일 것이었다. 그는 일행 중, 냉 수보와 홍엽을 만난 적 있었기에, 거친 모습을 한 이 인물은 아마도 호위로 추측된다. “묻지 않았소? 자네는 누구요? 어찌 죽으려고 하는 것이오?”서일은 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큰 소리로 다시 물었다.주 지부는 울 지경이었다. 냉 수보가 그를 보고 있으니, 예를 올려야 하지만, 황제도 자리에 있으니, 바로 냉 수보에게 예를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누가 황제란 말인가?그는 황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어, 결국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는 그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은 목소
원경릉의 말은 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자리에 있던 관리들은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대인은 땅에 엎드려 온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자신이 황제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평소 차분하고 신중한 주 지부도, 그도 감정이 격해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했다.황후를 만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황제까지 오신다는 소식에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원경릉은 평생을 경성에서 다섯째와 함께 있었기에, 그녀는 그저 그가 온다는 사실을 간단히 전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녀는 다들 걱정 없이 역병을 치료하고, 언제나 황제가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보니, 황제가 직접 오는 것이, 지방 관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원경릉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폐하게서는 그저 역병 때문에 온 것이니, 모두 각자 맡은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네.”“예, 예, 마마의 명을 따르겠습니다.”주 지부가 눈물을 닦으며 답했다.그렇게 관아와 의서가 협력하여, 오계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원 할머니는 역병을 치료할 수 있는 처방을 몇 가지 내렸다. 경증 환자는 약차를 계속 마시고, 증상이 악화하거나 중증 환자는 그녀의 처방을 사용하도록 했다.전에 이미 근처 주부에 연락해 약을 보내라 명했고, 오계부에서 구비한 약까지 있으니, 이번 역병을 대처할 수 있었다.오계부 의서는 이번 역병을 과거의 역병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한 것 외에는 준비가 충분했다.원경릉은 황제 일행이 저녁 무렵 오계부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다.주 지부는 원래 여러 관리와 함께 황제를 맞이할 예정이었지만, 원경릉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녀는 황제가 미복 순행 중이니, 과하게 맞이하여 백성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그 말에 주 지부는 당황했다.황제가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맞이하지 않는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다는 말인가?그러나 그는 황
약을 쓰자, 주 지부의 열이 단번에 내려갔다.열이 내려가니 정신이 맑아져,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애써 자리에서 일어나 황후마마에게 예를 올리겠다고 고집 피웠다.원경릉은 그에게 누워 있으라고 말한 후, 역병에 관해 이야기하며 주 지부에게 이를 중시할 것을 당부했다.주 지부는 이를 듣고 깜짝 놀라 말했다.“소신은 매일 의서에 사람을 보내, 역병의 상황을 보고받고 있사옵니다. 매일 보고된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역병이 발생했지만, 작년과 비슷한 정도였고, 약재도 충분한데, 어찌 이렇게 심각해진 것입니까?”“매년 역병이 발생했으나, 대대적으로 퍼지지 않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네.”원경릉이 답했다.“의서의 이 대인을 불러,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주 지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어제 이미 그를 찾아가, 환자 수와 사망자 수를 조사하라 명했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것이네. 자네가 사람을 보내, 관아에 와서 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게.”“예!”주 지부는 곧바로 사람을 보냈다.푸른 옷을 입은 남자는 관아에서 일하는 관리였기에, 그는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관아 내에서 병에 걸린 자가 얼마나 되는지 통계해냈다.관아 내에서 역병 증상을 보인 사람은 총 열여덟 명이었고, 그중 두 명은 병세가 심각하여 이미 집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주 지부는 관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린 줄 몰랐고, 관리의 보고를 들은 후, 큰 충격을 받았다.의서의 이 대인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바삐 움직였다. 서관 대인이 직접 오셨으니, 어떻게든 시키는 일을 완성해내야 했다.그는 사실 역병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고, 그저 작년과 비슷하다고 여겼었다.하지만 여러 지역과 의원을 돌아보고 나서야, 이번 역병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처음엔 그저 서관 대인에게 보고만 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원수를 통계하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다섯째 일행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그래서 원경릉과 할머니는 다른 의관을 더 둘러보기로 하고, 몇 군데 더 돌아본 뒤 관아에도 갈 계획을 했다.그런데 한 의관에 들어서자마자, 푸른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다급히 뛰어오며 말을 걸었다. “수 의원, 대인께서 병세가 위중합니다. 어서 봐주셔야 합니다.”의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약상자를 집어 들고 다른 환자들을 그냥 남겨둔 채, 푸른 옷의 중년 남자와 함께 나가려 했다.원경릉이 그를 막아 세우며 말했다.“의관에 있는 환자들을 돌봐야 하지 않소? 우리 할머님께서도 의원이니, 지부 대인의 병은 할머님께서 봐 드릴 것이오.”푸른 옷의 사내는 초조한 듯 원경릉을 향해 소리쳤다.“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오!““대인의 병세가 급박한데, 혹여라도 지체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나 있겠소?”바로 그때, 원 할머니가 호패를 꺼내, 그의 눈앞에 들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길을 안내하거라!”조급한 표정을 짓던 푸른 옷의 사내는 호패를 보자마자 표정이 얼어붙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그는 곧장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말했다.“서관 대인께서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무례를 범해 송구하옵니다.”“그만 사과하고 길 안내나 하시오.”원경릉이 말했다.“예, 예!”사내는 급히 물러서서, 예를 갖춰서 길을 가리켰다.“마차가 밖에서 대기 중입니다. 서관 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원경릉은 할머니를 부축해 마차에 올랐고, 곧장 관아로 향했다.지부 대인은 따로 사저가 없어 관아의 뒷마당에서 거주 중이었다. 혼자 지내는 데다 관아가 워낙 가까워 편리했기 때문이다.관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주 지부는 병세가 꽤 심각해져 있었다. 그는 어지럼증과 흉통에 시달려, 침대에 누운 채 말을 꺼낼 힘도 없었다.원경릉은 직접 치료에 나섰고, 약상자를 열어 체온 측정기와 청진기를 꺼냈다.푸른 옷의 사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가씨께서도 의원이십니까?”그러자 곁에 서
이 대인이 원경릉에게 의학을 잘 모른다고 반박할 틈도 없이, 원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대로 하게. 하루만 줄 테니, 그 안에 역병에 관한 모든 자료를 가져오게. 사망자 수도 포함되어야 하네." 이 말까지 듣자, 이 대인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비록 조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서관 대인이 멀리서 오계부까지 왔으니, 시키는 일은 해야지 대인의 마음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명한 후, 이 대인은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원경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의서에 의원이 많지 않으니, 대인도 바쁘실 텐데요. 저희가 직접 오계부를 돌아보겠습니다." 이 대인은 그녀가 원 할머니의 힘을 빌려 위세를 부린다고 생각해,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말에 답도 하지 않고, 원 할머니에게 예를 올렸다. "어르신께서 머무실 계획이 있으시면, 부디 저에게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밤 대인을 잘 대접하라, 명을 내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일이나 보게." 원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원경릉에게 말했다. "먼저 좀 돌아보다, 객사를 찾아 머물자꾸나." "예!" 두 사람은 역병을 조사하기 위해 다급히 이곳을 찾아왔기에, 먼저 각지의 의원을 직접 돌아보려 했다. 아마 다섯째 일행은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쯤 도착할 것이었다. 두 사람이 의서를 나서자, 이 대인은 뒤따라 나오려다 원 할머니의 날카로운 눈빛에 움찔하며 발길을 멈췄다. 두 사람은 오계부의 거리로 향했다. 거리가 꽤 번화했고, 사람들도 제법 많아, 대낮에는 조금 붐볐다. 그들은 곧장 의원으로 향했다. 의원 앞에는 약차가 많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환자는 얼마 없었다. 겉보기엔 역병이 퍼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요즘 들어 약차가 잘 팔리고 있고, 하루에 천 봉지가 넘게 팔린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도 역병
늦게 출발한 원경릉은 신속하게 오계부로 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오계부 근처 주현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현지 혜민서로 가야 한다며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러고는 혜민서에 오계부로 약을 공급할 준비를 하게 했고, 명을 받으면 바로 오계부로 보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당부했다. 혜민서 산하의 의료기관들은 지난 몇 년간 개혁을 통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었고, 지역 간의 연결도 긴밀해졌다. 특히 역병을 상대하는 체계가 가동되면 상부에서는 전력을 다해 의원과 약을 지원해줄 수 있었다. 신신당부한 뒤에야 원경릉과 할머니는 오계부로 재빨리 향했다. 곧이어 오계부에 도착했는데, 우문호 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계부는 인구가 500만 명에 이르는 곳으로, 두 개의 주부가 통합된 지역이었다. 열대에 있어, 경작지가 많고 산이 많아 농업을 위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조정은 이곳을 서부의 주요 곡창지대로 삼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제도 번화했고, 현지 백성들은 벼 외에도 감, 자두, 리치 등을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리치는 신선할 때 먹을 수도 있고, 말려서 건과로 만들어 팔 수도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 오계부는 백월국과 인접해 있었는데, 백월국은 북당의 속국으로 사이가 우호적이며 경제 교류도 활발했다. 이는 양국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계부의 지부는 장씨 성을 가진 오계부 출신이었다. 장 지부는 훌륭한 관리이며 지역 백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었다. 원경릉과 원 할머니는 오계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지역 혜민서를 찾았다. 할머니는 혜민서의 서관(署館) 신분을 밝혔다. 그녀는 북당 각 주부의 의서를 총괄하는 인물이고,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혜민서의 이 의원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사람을 안으로 청한 후, 바로 예를 올렸는데, 마치 신선이라도 본 것처럼 목소리까지 떨고 있었다. "소인은 이자옥이라 합니다. 어르신께서 친히 오신 줄도
그녀는 일단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냉 대인이 자세한 상황을 묻는 사이에 제 대인의 피를 뽑았다. 약상자는 기능이 꽤 다양하기에, 바이러스 검사도 문제없었고, 안에는 양여혜가 준 소형 현미경도 있었다. 하지만 바이러스 관찰이나 세균 배양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오계부로 향하고, 그녀는 이곳에 남아 제 대인을 치료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면 바이러스든, 세균 감염이든, 결과가 나와야 제대로 된 치료 방안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미색이 말했다. "저도 이곳에 함께 남겠습니다. 제가 환자를 돌보는 것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찮으니 먼저 가거라. 어쩌면 내가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으니깐." 원경릉이 말했다. 그녀는 혼자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미색까지 데리고 가는 건 무리였다. "우리가 먼저 출발하는데, 어찌 더 일찍 도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미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능한 일이다. 원 선생은 늘 기적을 만들어내니." 우문호가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원경릉에게 다가가 조심하라고 몇 마디 당부했다. "알았소. 지체하지 말고, 어서 떠나시오. 오계부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아를 찾아가, 의원의 빠른 대처를 명하라 하시오. 만약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내가 관아를 찾아가겠소." "알겠소. 그럼, 먼저 가겠소!" 우문호는 그녀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보는 이가 많으니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일은 황후를 홀로 두고 가는 것이 걱정되어, 우문호를 따라나서며 계속 물었다. "정말 황후를 이곳에 혼자 남겨도 되는 것입니까?" "그럼, 네가 남을 것이냐?" 우문호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도 원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느냐?" 회왕 부부도 걱정은 되었지만, 다섯째의 여유로운 모습에 자신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섯째 부부는 늘 비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들은 더 이상 신경
원경릉은 밖으로 나가, 오계부에 역병이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오계부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기후가 더운 탓에 가끔 역병이 생기긴 했었지만 백성들은 고뿔 치료에 쓰이는 약초로 끓인 차를 즐겨 마시기에, 대규모로 역병이 돈 적은 없었다. 냉 대인이 말했다. "오계부에서는 이 상황을 조정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해마다 역병이 생기긴 하지만, 빠르게 통제해 왔으니, 이번에도 예전과 같은 상황이지 않겠습니까?" 원경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대인의 형도 역병으로 돌아가셨고, 그와 가까이 지낸 사람들도 병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관아에만 역병에 걸린 자들이 많으니, 예전보다 더 심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해마다 역병이 생겼으니, 그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있을 것입니다." 원경릉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역병이 생겼지만,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기에, 현지 관리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쉽게 통제될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할 수도 있으니깐요." 우문호가 물었다. "원 선생, 역병을 어떻게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역병 상황이 안 좋을 것이라 추측할 뿐, 정말 오계부의 상황이 어떠한지는 아직 모르네. 제 대인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수액을 맞히고 해열제를 먹였소. 냉 대인과 함께 들어가 상황을 자세히 물어봐야겠소. 하지만 꼭 마스크를 끼고, 병을 막아야 하오." 원경릉은 유행성 독감이나 변이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일 것이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살던 세계에서는 A형 독감의 대규모 변이가 십수 년마다 한 번씩 발생했는데, 그런 변이 독감은 현대에서도 의료 체계에 큰 부담이 되곤 했다. 그러니 지금 이곳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역병이 다시 시작한다면, 가능한 한 빨리 통제해야만 했다. 원경릉의 말을 우문호와 냉 대인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그의 폐를 확인해 보았는데, 남녀가 가까이 접촉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제 대인은 이내 손을 뻗어 그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병세가 심해 아픈 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묘한 위압감을 풍기는 의원의 단호한 눈빛과 기운에 그만 압도당하고 말았다. 원경릉은 앞쪽을 청진한 뒤, 그에게 옆으로 돌라고 한 다음에 꼼꼼히 살피고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며칠을 아프신 것입니까?" 제 대인은 꽉 막힌 코 때문에 콧소리를 내며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답했다. "며칠 사이의 일입니다. 오계부를 떠날 때도 멀쩡했는데, 밤새 달리고, 말을 오래 타다 보니 고뿔에 걸렸나 봅니다." "기침 말고, 가슴 통증도 있습니까?" "예. 이곳이 아픕니다!" 제 대인은 가슴 근처를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가, 숨쉬기가 어려운 듯 손바닥을 움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아프고, 온몸 뼈마디도 다 아픕니다." 그러자 원경릉은 더 자세히 증상을 확인한 뒤 말했다. "약을 준비할게요. 수액을 좀 맞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액이요?" 제 대인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예. 질문은 하지 마시고, 그저 치료에 협조만 해주십시오. 병세가 꽤 심각한 편입니다." 원경릉은 제 대인이 폐렴이라 확신했고, 중증 폐렴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 대인은 병이 심하다는 말에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했다. "의원 나리, 제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십시오… 저에게는 아직 모셔야 할 노모가 있습니다. 지난달 병으로 형님께서 세상을 떠난 터라, 형님의 자식들도 제가 돌봐야 하니, 절대 이대로 목숨을 잃을 수는 없습니다." 원경릉이 답했다.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집중하시지요!" 제 대인은 감동을 받은 듯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원경릉은 곧바로 약을 지어 수액을 준비했다. 수액을 맞는 동안, 제 대인은 여전히 놀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