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 소문의 진실, 방우는 누구인가‘그걸 얼마나 여러 번 가르쳤어? 성은의 비는 공평하게 내려야 한다고. 주씨 집안 그 기지배만 싸고 도니 원.’못난 놈!원용의는 정직하게: “저랑 주무신 적 없어요, 시집온 이래로 제 방에서 주무신 적이 없으셨어요.”태후가 약간 노해서, “어찌 이런 일이? 다섯째 그때와 똑같지 않은가? 시집와서 일년동안 합방을 한 적이 없었던. 그걸로 모자라던가? 내가 한 마디 해야겠구나.”“그러지 마세요, 제왕께서 와서 주무시는 거 싫어요. 혼자 자는 게 얼마나 좋은데요.” 원용의가 얼른 말하며 원경릉을 흘깃 보는데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 딱이야, 원용의와 초왕비 언니가 같은 상황이었다니.원경릉이 원용의의 이 눈빛을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이 기지배 진짜 기특하네!하지만 지금 제왕과 원용의의 상태는 그때 자신과 다섯째의 모습과 닮았다. 당시 다섯째의 마음속엔 주명취만 있었고 지금 제왕의 마음속에도 주명취만 있다.정말 형제가 쌍으로 눈이 멀었어!원경릉은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으로 이 얘기에 흥미가 없고 어서 주재상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게다가 여기서는 태후가 줄곧 자신의 배를 쳐다보고 있어 심각하게 불편하다.다행히 덕비가 이 때 일어서며: “태후마마 오수 드실 시간입니다. 초왕비 나와 저쪽에 좀 가지 않을 텐가?”원경릉이 바로 일어서며, “예!”원용의도 일어서며, “저도요!”세사람이 태후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와 같이 태후전을 나왔다.밖으로 나와 덕비가 원경릉에게, “초왕비 어째서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 무슨 일 있는 거야?”원경릉도 감추지 않고, 바로 희상궁 일을 덕비에게 알렸다. 덕비가 듣고 경악하며: “뭐라고? 밖에서는 방우가 희상궁때문에 곤장을 맞아 죽었다고 한단 말이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 소문을 낸 자는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원경릉이 서둘러 묻길: “이 일을 아세요? 그 금군 방우는 왜 죽은 거예요?”덕비가 분노하며: “방우는 당시에 태상황 폐하 측근의 어전 시위였는
희상궁의 자결 소식원경릉과 원용의는 덕상궁에 오래 머무를 겨를도 없이, 다시 건곤전으로 갔다. 태상황과 둘은 안에서 아주 통쾌하게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문을 잠가 놓고 아무도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하고 말이다.어쩔 수 없이 원경릉은 현비에게 문안 인사를 가고, 황후에게 문안하고 이렇게 한바탕 돌고나서 마지막엔 다시 덕상궁으로 돌아와 안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선에게 태상황이 다 드시거든 덕상궁에 알리라고 했다.한참을 기다리는데 기다리던 상선은 오지 않고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급한 전갈을 보내더니 덕상궁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이 우문호가 급한 전갈을 보냈다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들어갔다.잠시 후 사식이가 정신없이 뛰어 들어오더니 덕상궁에 들어와 덕비에게 문안을 여쭐 겨를도 없이 바로 울며, “왕비마마, 어서 돌아가요, 희상궁이 목을 맸어요!”이 말에 놀란 원경릉이 하마터면 혼절할 뻔 한 것을 얼른 심호흡을 하고 정신을 가다듬어 한 손에 원용의 손목을 잡고 사식이에게, “살아있어?”사식이가 울며: “몰라요, 피를 토하고 독주를 마셨다고만 해서, 바로 사람을 시켜 왕야를 찾아서 왕야께서 와서 보셨는데 친서를 써주며 어서 들어가 왕비를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부르러 온 사람은 갔고 제가 밖에서 서신을 받았어요.”덕비가: “초왕부에 어의가 있지 않느냐?”사식이가 눈물을 훔치며, “있어요, 조어의가 있어요, 하지만 왕야께서 왕비마마께서 돌아오셔야 한다고, 광이(光二)가 그러는데 희상궁 얼굴이 새하얗고 혈색이 하나도 없었데요, 죽은 것처럼. 서일이 방금 말을 몰아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너무 괴로워요, 왕비마마, 희상궁이 만약 죽으면 어떡해요.”말을 마치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원경릉이 한 소리하며: “울지 마, 우리 어서 출궁하자.”세사람이 같이 나오는데 마침 상선이 직접 오는 것이 보였다. 원경릉을 보더니 미소를 머금고: “왕비마마, 태상황 폐하와 두분 다 마치셨습니다. 가셔도 됩니다.”원경릉이 초조함을 겨우 억누르고
희상궁 소식을 듣고상선이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아, 아닙니다. 왕비께서는 무탈하십니다.”주재상이: “태상황 폐하 고정하시지요, 우선 상선의 말을 들어봅시다.”상선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이때 덕비가 앞으로 나와 예를 취하고: “태상황 폐하, 초왕부에서 사람을 보내 희상궁이 자신하였다고 알려와서 왕비는 바로 돌아갔습니다.”주재상이 벌떡 일어나 눈알이 튀어 나와 머리 꼭대기에 가서 달릴 듯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치며: “덕비마마 뭐라고요? 희상궁이 자진을? 지금 어떤가요? 왜 자진을 했답니까? 어떻게 된 거예요? 초왕부에서 수모를 당한 거 아닙니까?”소요공이: “주대인, 고정하시게, 우선 덕비마마가 하시는 말을 들어봅시다.”주재상이 긴 세월 쌓아온 위신이 하루아침에 다 물거품이 되고 미친 몰골로, “덕비마마, 말해요, 어서 말해요!”덕비가 숨을 삼키고 요점을 간추려, “요즘 밖에 나도는 소문에, 희상궁이 당시 재상과의 일이 있을 때 그녀가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 태상황 신변의 수석 궁녀란 신분을 무기로 주재상을 색으로 유혹하고 재상에게 버림받자 목을 매고 죽겠다며 재상을 협박 했으나 태상황에게 호되게 혼났다. 그래서 희상궁은 대상을 바꿔 방우와 사통하여 방우는 태상황에게 매를 맞아 죽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희상궁은 떠도는 소문이 너무도 추악하고 더러워서 견디지 못한 듯 합니다. 어찌 알았겠습니까. 왕비가 오늘 입궁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이었던 것을요.”주재상은 바로 이순간 건곤전에서 사라졌다.태상황이 노발대발하며, “방우? 밖에서 희상궁이 방우와 사통했다고 한단 말이냐? 게다가 방우가 나에게 맞아서 죽었다?”덕비가 어쩔 줄 몰랐지만 답할 수 밖에 없어: “이것은 왕비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왕비가 사람을 시켜 물어본 것으로 밖에는 이렇게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소요.” 태상황이 불같이 소리치며, 분노로 태산이라도 뽑을 듯한 기세로, “당장 조사해라, 소문을 퍼트린 자는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소요공이 어명을 받들고 조용히 나
상궁이 독을 먹었다. 그녀가 무슨 독을 먹었는지 어의는 찾아내지 못했고 방안에도 아무 흔적이 없었다. 심지어 독주를 먹은 잔이 깨끗하게 씻겨 있었다.조어의가 부랴부랴 해독 약을 만들어 그녀에게 두 알 먹였지만 약을 먹고 난 뒤에도 희상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힘없는 눈동자와 가는 숨소리는 그녀가 죽음에 문턱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광경을 본 원경릉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우문화 조어의를 막아서는 순간 약 상자를 꺼냈다. 침상 옆에 꿇어앉은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박동이 너무 약해……’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약 상자를 뒤져 아트로피닌을 꺼냈다. 희상궁이 무슨 독을 먹었든 관계없이 원경릉은 다급한 마음에 우선 약을 넣고 보았다.그 순간 주수보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문호가 그를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한 걸음에 희상궁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달려왔다.그는 입이 벌어진 채 공허한 눈빛으로 희상궁을 내려다보았다.주수보가 부중에서 출발하면서 사람을 시켜 쓸만한 약은 모조리 챙겨 왕부로 오라고 명령했다.그는 축 늘어진 희상궁을 보자 온몸에 한기가 돌고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해다.우문호는 그런 주수보의 모습을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재상…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주수보는 멍한 표정으로 원경릉이 희상궁에게 위를 세척하는 수액을 놓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주수보가 희상궁을 처음 만났을 때, 그때 그녀는 겨우 열다섯의 소녀였다. 그녀는 큰 눈에 웃을 때마다 쏙 들어가는 보조개가 아름다웠고 깔끔하게 빗은 쪽머리가 새침해 보였다. 고급스러운 자수가 놓인 비단 옷을 입은 그녀는 지금의 태상황, 당시 태자 옆에서 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날은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거세게 비가 내렸다. 태자는 비를 맞으면서도 지금의 주수보를 상대로 무술을 연마했다. 그때 상선도 어린 태감이었는데 그와 어린 희상궁은 항상 복도에 숨어서 태상황
오랜 기억 속에서 주수보는 점차 현실로 돌아왔다.그는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호흡은 점점 가늘어졌고 숨이 가쁜 듯 가슴이 연신 오르내렸다.침상에 삐죽 나온 그녀의 손목은 가시나무처럼 가늘었다. 주수보는 당시에 왜 그녀의 손을 놓았을까 왜 좀 더 용기내지 않았을까 후회됐다. 주수보는 희상궁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선 거친 눈보라가 치는 듯 혼란스럽고 무서웠다. 그는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았다.“가망이 없는 건가?”그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원경릉은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았다. 희상궁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아요. 약을 투여해 독성을 최대한 희석시키기는 했지만 독이 이미 몸에 스며들어서…… 얼마나 독이 퍼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조어의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겠어요.”어의가 다가와 희상궁의 맥을 짚었다.“맥박이 너무 약합니다. 몸속으로 독이 많이 퍼진 것 같습니다. 해독환을 먹이고 왕비께서 약도 썼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녀가 무슨 독을 먹었느냐.” 주수보는 아무런 표정 없이 조용히 물었다. 주수보는 감정을 숨기는 데 능했다. 기쁨, 슬픔, 노여움도 쉽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의의 대답을 기다리는 그의 바짝 마른 입술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의 공포를 보여주었다.“모르겠습니다. 희상궁의 방에서는 주전자와 독약을 담았던 종이를 태운 재를 제외하고 어떠한 것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희상궁을 독살하려고 독을 종이로 싸서 왔을 것이다. 그 종이까지 태워 무슨 독인지 모르게 하다니…… 범인은 희상궁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주수보는 희상궁을 바라보며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쩌다가… 이렇게…”주수보가 조용히 읊조렸다.우문호는 주수보와 희상궁이 단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원경릉을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원경릉이 뱉는 말이 칼처럼 우문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우문호는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이 처절하게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눈을 감았다.“미안해… 미안해…원경릉” 그의 목소리는 후회로 가득했고, 원경릉의 큰 눈에는 분노와 슬픔이 가득했다.주수보의 명을 받은 하인이 많은 약들을 가져왔다.주수보는 탁자 위에 약을 쏟고는 약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서 확인했다. 그리고 몇 개를 골라 먼저 먹어보더니 끓인 물에 약을 갈아 넣고는 희상궁 입에 조금씩 쏟았다. 원경릉도 어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수보를 지켜보았다.희상궁에게 약을 먹이고 난 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며 그의 얼굴에는 비통한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이기지 못할 절망에 빠지면 저렇게 되는 것일까? 주수보의 마음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손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으며 마음속으로 그녀가 살아나길 간절히 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선과 소요공이 도착했다. 소요공은 설연(雪莲)을 한 떨기 가지고 와 사람을 시켜 물을 부어 끓이게 했다. 물이 끓자 주수보가 먼저 먹어보고는 희상궁의 입에 넣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어의가 희상궁의 손목을 잡고 다시 진맥했지만 맥박은 여전히 가늘었다.“재상께서는 돌아가 보세요. 금방 돌아가시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처리하실 일도 있지 않습니까.”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뭐가 그렇게 급하십니까?”소요공의 말을 듣고도 주수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태상황께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를 엄벌하라고 했습니다.” 소요공이 조용히 말했다.“엄벌?” 주수보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를 띤 얼굴로 “다들 나가세요. 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주수보의 진지한 표정에 모두들 자리를 떴고 안에는 다시 희상궁과 주수보 둘만 남았다.원용의는 사식이를 위
“이제 들어가서 쉬세요. 아직도 자기가 이팔청춘인 줄 아십니까?” 소요공이 주수보에게 말했다.“난 괜찮아요. 이렇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좋네요.” 그는 희상궁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전에는 흰머리도 없었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시간이 무정하네요.”라고 말했다.주수보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역시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야심으로 가득 차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음고생 한 번 하지 않았겠는가. 원경릉과 우문호는 하루아침에 야위어버린 주수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원경릉 마음속에 주수보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점차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주수보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산 것인가…… 그 긴 세월 희상궁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그 순간 왕부의 하인이 안으로 들어오며 우문호에게 약 한 병을 주었다.“대주의 강영후(江寧侯)께서 약을 가져오셨습니다. 용태후께서 직접 조제한 용염단(龍焰丹)이라고 합니다. 본래는 황조부께 드리려고 한 것인데…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중독이 됐을 때 먹으면 아주 좋은 효과가 있는 약입니다.”어의는 대주의 용태후가 직접 만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뻐하며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약은 검은콩보다 작고 동그란 것이 윤기가 자르르 흘렀고 냄새를 맡으니 연꽃 향기가 났다.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무우환(無憂丸)보다도 향이 좋았다.“빨리 물을 떠오거라.”주수보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 침울하던 주수보의 얼굴이 용태후가 보낸 약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강영후가 보낸 약은 물에 타서 먹지 않고 혀로 꾹꾹 눌러 천천히 녹여 먹는 겁니다.”우문호가 말했다.주수보는 약을 들어 희상궁의 입을 살짝 벌리고 약을 집어넣었다. 주수보는 희상궁의 고개를 살짝 받치며 약이 녹아 기도로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녀 입안의 약이 천천히 녹아 흡수될 때까지 주수보는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약을 먹은 후에도 희상궁
주수보는 강영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탕양에게 강영후를 좋은 술집으로 데려가라고 부탁했다. 그가 술집으로 가기 전 희상궁의 상태를 살피려고 돌아오는데 원경릉이 대청에서 그를 막아섰다.“재상 혹시 밖으로 나가시려거든 덕화찻집으로 가서 바깥에는 어떤 소문이 도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덕화찻집은 소문의 근원지이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다.주수보는 빤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예, 왕비 이번 일은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그는 소요공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의 청색 옷은 바람에 나부꼈고 눈처럼 흰 머리카락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났다. 날씨가 추워진 탓에 백성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졌다. 그는 말을 끄는 시종(侍從)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며 소요공과 몇 마디 주고받고 싶었지만 그들은 서로 말을 아꼈다. 그들은 모퉁이에 다다르자 말없이 각자 제 갈 길을 갔다.주수보의 뒤에서 걷던 시종은 그의 뒷모습에서 쓸쓸함을 느꼈다. 길게 늘어진 그의 그림자에서 왠지 모를 고독함과 허망함이 보였다. 주수보는 허리를 곧게 펴고 따스하게 비추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난밤의 한기를 배출하였다.뒤에 있던 시종이 말을 재촉해 주수보를 쫓아왔다.그는 원경릉의 부탁을 듣고 시종을 불러 덕화찻집에 가보라고 했고 결과는 이미 주수보의 손에 건네졌다.그시각 주부(周府).주씨 집안의 큰 어른이 밤새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이 걱정하기 시작했다. 주수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답사나 업무를 보러 간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다. 그는 술을 먹으러 가도 집안 식구들이 걱정하지 않게 하인을 보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곤 했다. 그러나 어제 아침에 주부에서 말을 끌고 나간 후 종적을 감춘 것처럼 사라졌다. 그는 떠나기 전에 태상황님을 뵈러 간다는 말만 남겼을 뿐 아무 소식이 없었다.주부 사람들은 걱정되는 마음에 사람을 시켜 궁 밖에서 주수보의 행적을 물었다.왕부의 문을 지키는 수장이 주수보가 아침에 입궁하여 점심쯤에 출궁했고 그 후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이 말을 듣고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