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취와 우문호, 그리고 소요공의 판단“한가지만 물어보게요, 그때 나에게 결혼 약속했던 거 실행할 수 있어요?” 주명취는 서일이 같이 있는 것에도 불구하고 눈가를 붉히며 물었다.서일은 눈이 왕방울만해 져서 귀를 쫑긋했다.우문호는 서일을 노려보는데 서일이 있으니 참으로 말하기가 불편하다.“제왕비,” 우문호가 정색하며: “내 생각에 과거 일은 이미 과거이니 피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듯 해.”주명취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결국 역시 원경릉 때문이군요, 설사 예전이라 해도 초왕은 저에게 원경릉처럼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어요.”우문호가: “다행히 그녀가 내 아이를 낳고 키우길 원하니 그녀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하늘에서 벼락을 맞을 일이지, 일곱째가 너에게 잘하지 않느냐, 제왕비가 받은 복을 소중히 여기길 바래.”“제왕은 후궁을 맞았다고!” 주명취가 차갑게 말했다.우문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후궁은 네가 일곱째를 위해 데려온 거잖아? 듣기로 네가 일곱째에게 후궁을 붙여주자고 직접 황후마마께 사정했다고 하던데, 네 스스로 청했으니 틀림없이 네가 흔쾌히 한 거잖아, 감당할 수밖에.”주명취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열렬한 눈빛으로 우문호를 보고 목소리를 낮추어 최대한 서일이 들을 수 없게, “마지막으로 한번만 물을 게요. 만약 내가 제왕과 헤어지면 당신은 원경릉과 헤어지고 나를 정비로 맞아들이길 원해요? 원경릉이 할 수 있는 일은 나도 할 수 있어요, 나도 당신을 위해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싶어요, 절대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서일이 듣더니 눈이 똥그래지고 찬 공기를 한 모금 들이 마시고, 안되겠어, 이 말은 반드시 왕비마마께 알려야 해, 앞으로 조심하시라고.우문호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평소처럼: “제왕비,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잘 안 들리는 군. 난 일이 있어서 그럼 이만!”말을 마치고 귀신에게라도 쫓기듯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말을 달려 떠나면서 서일이: “왕야, 방금 얘기 왕비마마께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소인
대작하는 주재상과 소요공주재상은 자기에게 피를 봐야 끝이 날 재앙이 닥쳤다는 느낌이 들며 사람을 시켜 술을 가져오라고 하고 소요공과 나한상에 앉아서 양반다리를 하고 술을 마셨다.“다섯째 이 녀석이 속이 좁아.” 소요공이 슬쩍 웃으며, “너무 마음 쓰지 말게.”주재상이 아무렇지도 않게: “속이 좁다고? 오히려 그 반대일 걸, 공처가인 게 걱정이긴 하지만.”소요공이 껄껄 웃으며 술잔을 들고 주재상과 잔을 부딪히며, “자네 그 말엔 반박하지 않겠어, 확실히 그래. 여자를 위해서는 참으로 목숨을 던질 수 있으니 말이야, 자네한테 미운 털 박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다니.”주재상이 소요공을 째려보며, “우문호같은 황실 사람은 나한테 밉보이면 왜 안돼? 큰일나냐?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고 치지만 너는 나랑 사귄 게 얼만데? 아직도 이렇게 말하고 진짜 이렇게 좋은 술 주기가 아깝다.”말을 마치고 술을 빼앗아 갔다.소요공은 박수를 짝 치고 입맛을 다시며, “됐네 됐어, 삐쳤군 아니야? 너한테 한마디 했다고 그걸 듣기 싫어하냐, 사실 몇년간 주씨 집안이 방자하게 군 일이 어디 한둘인가? 수하 사람들 관리 좀 해야 하네, 막돼먹은 배짱이나 부리고 말이야, 어린 여자애도 시건방지게 다른 사람에겐 시집가지 않겠다고 감히 친왕에게 큰소리를 치지 않나.”소요공이 자기 얼굴을 두드리며,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녀? 체면은? 내가 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네.”주재상이 냉랭하게: “관리 좀 하라고? 안 하는 게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바쁘잖아, 주부의 일은 전부 큰애에게 맡겼는데 큰애 성격이 유약해서 됐네, 그만 하세, 운명이 다한 거면 조상의 음덕도 이게 끝인 거지, 확실히 나도 관 짝에 발 한쪽 넣고 있는 나이니 걔들을 관리해서 뭐하겠나? 죽을 사람은 죽은 건데, 짜증내지 말자고!”“자네가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까봐 걱정이라서 그래, 관을 박차고 뛰어나올라.” 소요공이 누에콩(茴香豆子)을 한 알 집어 먹으며 평소처럼 말했다.주재상이 손을 흔들며,
쫓겨난 만아이 화제는 더이상 얘기하지 말자.소요공이 가고, 주재상은 사람을 시켜 만아를 헛간에 가두고 사람을 붙여 엄하게 심문했다. 만아는 신쟝(新疆) 남부지역 사람으로 집안이 몰락해 수도로 팔려와 기예를 팔다가 신쟝 남부 사람이란 신분때문에 쫓겨났는데 주명양은 본디 만아를 잘 대해줄 생각이 없었지만 재주가 있는 것을 보고 곁에 남아 있게 했다.신쟝 남부사람은 은혜와 원수를 확실히 따져서 어쨌든 주씨 집안 둘째 아가씨가 거두어 주었으니 충심으로 보답했던 것이다.주재상은 경조부 관아 계획은 만아가 세운 것이 아님을 알고 매를 쳐서 주씨 집안에서 쫓아냈다.그 만아가 짐을 꾸릴 때 주명양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했다.주명양은 매를 맞아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는데 만아가 쫓겨난다는 얘기를 듣고 황급히 고개를 들어, “네가 어차피 쫓겨날 바엔 하나만 내 일을 도와라.”“둘째 아가씨 말씀하세요.” 만아가 말했다.“넌 신쟝 남부사람이니 무고를 할 줄 알 거야, 원경릉을 죽여버려.” 주명양이 이를 갈며 말했다.만아가 놀라서, “저…… 사람을 죽이는 일은, 쇤네는 할 수 없습니다.”“못 하는 거냐?” 주명양이 만아를 쳐다봤다.“아닙니다. 단지 아무 이유 없이 어떻게 사람을 죽인다는 말입니까? 쇤네는 초왕비와 원한관계가 없습니다.” 만아가 말했다.주명양이 큰 소리로 꾸짖으며, “이 쓸모없는 멍청한 것, 일 좀 시키니까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안 해? 이번 일도 네가 먼저 가면을 벗지만 않았어도 경조부 사람도 감히 추적조사를 못 했을 것이다. 이 일을 망친 건 네 년이란 사실을 아직 벌하지도 않았건만.”만아가: “둘째 아가씨, 이 일과 가면을 벗은 것은 아무 관계도 없을 뿐더러 쇤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재상 어르신 흉내를 낸 것은 저희가 관아에 무사히 들어가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미 일을 다 끝이 났으니 다시 모험할 필요는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이지요.”만아는 앞에 꿇어 엎드려 고개를 들고 주명취를 흘끔 바라보며, “그리고 둘째 아가씨도 쇤네를 속이셨습니다
거지와 만아, 돌아온 우문호만아가 고개를 들어 거지를 보니, 온몸에 때가 꼬질꼬질한 더러운 소년이 살벌한 눈빛으로 적의에 가득 차서 쳐다보고 있다. 만아가 눈물을 쓱 닦으며, “내가 네 집에 앉았다고? 미안해. 내가 옮길 게, 옮겨 갈게.”“손발이 멀쩡한데 가서 일을 찾아봐요.” 소년이 차갑게 말하며, “구걸할 필요가 어디 있어요?”만아가 울음을 터트리며, “난 신쟝 남쪽 사람이라 어느 집도 신쟝 남쪽 계집은 필요 없다더라.”“부두에 가서 짐을 날라요, 손발이 건장하니 힘도 세겠네.” 소년이 앉아서 뱃가죽을 만졌다. 오늘 또 아무 수확없이 돌아 왔다. 꼬마 거지는 벌써 이틀째 먹을 걸 못 구하고 물로 배를 채웠다.만아가 몸을 일으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만아가 돌아왔는데 손에 찐빵 두개가 들려 있고, 소년에게 건네며, “먹어.”소년이 머뭇머뭇 하고 고개를 들어 만아를 보더니, “당신 혹시……”“내가 산 거야, 훔친 거 아냐.” 만아가 귓불을 만지며, “원래 주인집에서 귀걸이 한 쌍을 나한테 줬는데, 팔았어. 돈으로 바꾸려고.”“거지 아니었어요?” 소년이 받아 들고 한입 씩 먹는데 한 입을 한참을 씹고서야 넘겼다.“아니야, 하지만 앞으론 구걸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 만아가 슬프게 말하고 앉으며 소년에게, “부두에서 포대를 나르는 곳에서 여자도 쓴데?”소년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분명 아닐 걸요.”만아가 ‘아이고’하며 부은 눈을 닦고는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소년이: “무술을 좀 할 줄 알아요?”“조금 해.”소년이: “내일 서집(西集)에 가봐요, 어떤 집에서 무술을 할 줄 아는 계집을 구한다 던데.”“난 신쟝 남쪽 사람이잖아.” 만아는 일반 사람들이 신쟝 남쪽 사람을 싫어하는 걸 안다.소년이 좀 짜증을 내며, “가서 한 번 부딪혀 봐요, 난 더이상 말 안 할거야.”“어, 알았어.” 만아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소년이 사람은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한편 우문호는 초왕부로 돌아온 뒤 어떻게 주명양의 죄를 묻고, 어떻게 주씨 집안의
원경릉에게 주명취와의 일을 얘기하는 우문호우문호는 눈을 부라리며, “넌 나가라, 내가 알아서 말 할 테니까.”서일이 풀이 죽어 나갔다.원경릉이 두 사람의 ‘상호작용’을 보고, “응? 다른 얘기가 있어?”우문호가 또 물을 마시고, 침을 몇 번 삼킨 후에 조심스럽게 원경릉을 바라보며: “이건 진짜 나랑 별 관계 없는 건데, 그래도 내 생각에 너한테 일단 얘기는 해야 할 것 같아.”“말해.” 원경릉이 우문호의 얼굴에 이 일이 작은 일이 아니라고 써 있다.“그러니까 그게 나갈 때 있잖아, 나랑 같이 서일도 나갔거든, 그때 주명취가 쫓아와서……” 우문호가 기침을 하며 뭔가 부자연스럽게, “그러니까 그 제왕비가……”“주명취가 누군지 아니까, 빨리 말해!” 원경릉이 목소리를 높였다.우문호가, ‘응’하고 시선을 회피하며, “제왕비가 쫓아와서 그 옥패를 나한테 돌려줬는데, 가져갔던 그 옥패있잖아, 황조부께서 나한테 주신 그거, 너도 알지, 내가 원래 이 옥패를 소중히 여겼잖아, 그게 3조각이 난 걸로 주니까 열 받는 거야……”원경릉이 탁자를 치며, “핵심을 말해!”우문호가 고개를 숙이고 발음도 불분명하게 잽싸게 말하는 게, “제왕비가 나한테 묻길, 만약 자기가 합의 이혼하면 나도 너랑 이혼하고 자기를 정비로 맞아줄 수 있냐고.”원경릉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맙소사!”우문호가 얼른 변명하며,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바로 서일을 끌고 나왔어.”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쓴 웃음을 지으며: “우문호, 너를 못 잊어 하는 여자가 도대체 몇 명이야?”“하지만 난 너만 그리워하잖아.” 우문호가 원경릉의 손을 잡아당겨 끌어 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맹세해, 너 외에 절대 딴 마음 먹지 않는다고.”원경릉이 우문호의 가슴에 기대, “난 왕야를 믿어, 하지만 분명 나보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특히 앞으로 만약 우문호가 정말 황제가 된다면, 구중궁궐의 비빈들이……원경릉은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 너보다 좋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좋다고
인력 시장에서 만아와 만난 사식이와 희상궁희상궁과 사식이가 요 며칠 비교적 바빴지만, 초왕부에 인력이 부족한데다 앞으로 왕세자가 태어난 뒤엔 각종 일로 더 바빠질 게 분명하니 초왕부는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제일 좋은 건 무술을 좀 할 줄 아는 것으로 이건 사식이가 제안한 것인데, 왕비가 드나들 때 무술을 할 줄 아는 시녀가 따라다니는 것이 안심이라는 이유에서 이다.그래서 다음날 일찍, 사식이는 희상궁을 데리고 서집(西集)에 갔다.둘은 자기들이 초왕부 사람이란 얘기를 하지 않고 단지 솜씨가 괜찮은 시중드는 여자를 구한다고만 말한데다 돈도 충분히 내놓았다. 그래서 매일 지원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사식이 요구 조건이 높아서 그런 것인데 지원자는 10 초식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안타깝게도 3초식까지도 못 갔다.오늘의 좌판을 벌여 놓고 인력소개꾼이 다가와 묻자 사식이가 손을 내젓고는, “그만 둬요, 우리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사식이는 인력소개꾼을 믿지 않는데, 말하는 거나 성격 등 조목조목을 전부 외우게 해서 진짜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가 없다.인력소개꾼이 실실 웃으며, “이삼 일을 보시고도 한 사람도 못 찾으셨는데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은 왜 안 보세요? 마르고 가냘픈 미인, 풍성한 미인, 원하는 여자는 다 있답니다.”사식이가 시큰둥하게: “우리가 몸매 보고 사람 뽑습니까? 우리한테 필요한 사람은 성격이 단정하고 무술을 좀 아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가세요. 가. 길 막지 말고, 바로 누가 올 테니.”인력소개꾼이 흥미를 잃고 떠났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건실해 보이는 여자였는데 사식이가 무술을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니 여자가 힘이 세서 큰 가마솥도 단숨에 들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초식을 겨뤄보니 사식이가 호미걸이로 그녀를 땅바닥에 넘어뜨렸다.“아무리 솥을 들 수 있어도 소용없어요.” 사식이가 탄식했다.희상궁이 웃으며: “됐어. 건장한 아이 몇을 찾으면 돼지. 이 나이에 무공을
만아가 초왕부에?번화가 한복판에서 두 사람이 100합이 넘게 겨뤄도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단지 숨만 좀 찰 뿐이다. 사식이가 초식을 거두고 웃으며: “그만 합시다. 충분해요.”만아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기뻐하며: “정말요?”상궁이 사식이에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어떻게 물어보지도 않는 것이냐? 집안이 어떤 지, 이름이 뭔 지.”사식이가 웃으며: “전 실기 담당이니, 필기는 상궁께서 보세요.”상궁이 만아에게 묻길: ‘이름이 무엇이냐? 나이는? 어디 사람이지? 경성에 온 지는 얼마나 됐고?”민아가: “저는 고만아(古蠻兒)로 경성에 온 지 3년 되었습니다. 올해 17살이고요, 전에 어느 대가집에서 몸종으로 있다가 나왔습니다.”“어디 사람이지?” 상궁이 물었다.만아가 멈칫멈칫 하며 소매를 꼭 쥐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쟝 남쪽 지역이요.”“전에 있던 주인집은 어디냐?” 상궁이 물었다.“주부입니다.” 만아가 말했다.상궁이 당황해서, “주재상 어르신 집 말이냐?”“예.” 만아가 조금 긴장했다.상궁이 부드러운 말투로, “주씨 집안은 규율이 엄격한데 주부에 있었다니 규율을 잘 알고 있겠구나. 됐다. 너를 거두마.”만아가 ‘아’하더니, “저…...저는 그……신쟝 남쪽 사람으로……”상궁이 아무렇지도 않게 만아를 보고, “신쟝 남쪽 사람은 다리가 4개더냐? 그냥 평범한 사람 아니냐? 넌 챙겨야 할 게 있느냐? 언제부터 집으로 올 수 있지?”만아가 감동해서: “지금 돼요, 지금 바로 갈 수 있어요.”상궁이 진중하게, “그래, 하지만 순서에 따라 너와 얘기를 나눠야 할 게 있다. 장기 계약과 단기 계약 그리고 완전히 몸을 의탁하는 매매 계약이 있는데, 3년, 5년, 10년, 20년, 종신이다.”만아가 얼른: ‘10년이요.”상국이 웃으며, “아직 집에도 안 가보고 10년을 덥석 계약하려고?”“그럼 여기저기 일자리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까요, 일자리 찾기가 너무 어려워요.” 만아가 말했다.상궁이 계약서를 쓰고: “서명을 하고 엄지
초왕부에 온 만아와 이를 본 서일서일이 사식이에게, “내가 뭘, 본 적이 있다는 게 뭐가 뻔뻔해?”“딱 봐도 예쁘장하니까 본 적이 있다 느니 하는 거잖아요. 당신 같이 밝히는 남자들 많이 만나봤거든요.” 사식이가 쌩하고 가버렸다.서일이 어리둥절하다가 사식이를 한손으로 붙잡고 벽으로 쾅 밀어붙이더니 한 손으로 벽을 치며 사식이를 자신의 큰 그림자 안에 가두고는, 얼굴을 들이밀고 엄숙한 말투로: “어디 똑바로 말해봐, 누가 밝히는 남자라고?”사식이가 깜짝 놀라서 정신없이 손으로 서일의 얼굴을 덮고 밀며, “뭐 하는 거예요?”사식이가 손을 밀자, 손가락이 서일의 눈을 찍어 눌러 서일이 얼른 손을 뻗어 쳐내니 사식이도 손을 뻗어 쳐내고 두 사람이 이렇게 몇 초식을 겨뤘다.서일이 화가 나서, “너 정말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는데, 내가 너희 원씨 성을 두려워 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너 맨날 내가 멍청하다고 해도 너랑 다투지 않았더니 이제 와서 내가 밝히는 남자고 내 눈을 후벼파?”사식이도 화를 내며, “난 그냥 당신이랑 농담 좀 한 건데, 이 돼지 콧구멍이 못 알아듣나 보네?”“돼지 콧구멍은 너지.”“돼지 콧구멍이 누군지 몰라? 가르쳐줘?” 사식이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화를 냈다.서일이 보니 사식이가 또 주먹이 앞설 자세라 손으로 그녀를 밀치며, “비켜……”하자사식이가 결국 폭발해서 서일이 손으로 밀친 곳 위치를 보고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벽력같이 소리치며, “서일, 이 여자나 밝히는 놈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사식이가 펄쩍 뛰어 올라 서일의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서일이 손으로 얼굴을 움켜쥐었다가 슬금슬금 손을 내리더니 의아하다는 듯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 본 다음 사식이의 가슴을 보더니 얼굴이 공포로 물들며, “맙소사, 너 진짜 여자였어.”“자다가 봉창 두드려? 내가 여자인줄 몰랐어?” 사식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서일이 목을 움츠리더니 멈칫멈칫하며, “맨날 왁자지껄 구는데 네가 여자인줄 누가 알겠냐?”“죽을라 고 이게!” 사식이가 주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