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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8화

사식이가 기왕부에 도착했다.

기왕부는 후궁을 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중에 주모(主母)가 중병에 걸린 것을 잊어버렸는지 성대하고 떠들썩했으며 왕부가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부중의 모든 하인들이 후궁을 맞을 준비에 힘을 쓰는 바람에 병든 정비는 쓸쓸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식이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왕비를 찾아갔다.

기왕비는 좌우로 긴 의자에 누워서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 올리더니 게슴츠레하게 사식이를 보았다.

“용건이 무엇이냐.”

“초왕비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내일부터 약을 제조할 예정이라 병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봐야 하니 내일 초왕부로 오시라고 합니다.”

기왕비는 냉소를 지으며 “그래? 무서운가 봐? 아니면 내가 말한 조건에 동의를 한건가?”라고 말했다.

사식이는 단호한 목소리로 “왕비께서 제가 하신 말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초왕비께서는 병을 고치고 싶지 않으시다면 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휙 몸을 돌려 나갔다.

“저 계집 말하는 거 봐! 기왕비님 저 계집 정말 재수 없습니다!”

기왕비의 옆에 있던 시녀가 화를 냈다.

사식이의 말을 들은 기왕비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별 수 없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내 목숨만 살려준다면 너도 저렇게 방자하게 굴어도 된다.” 기왕비가 차갑게 말했다.

“쇤네 어찌 감히 왕비님께 방자하게 굴겠습니까.” 시녀가 눈썹을 치켜뜨며 고개를 숙였다.

기왕비는 속으로 화를 삭였다. 생각할수록 분노가 올라왔지만 그녀는 꾹꾹 분노를 눌러 삼켰다.

그녀는 자신이 죽으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질 딸을 생각했다. 주명양이 정비가 되면 기왕은 주씨 가문의 비위를 맞추느라 딸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원경릉은 그녀의 약점을 잘 알고 있고 그녀가 애써 살아야만 하는 이유도 알고 있다.

기왕비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이승에 남고 싶었다. 죽지만 않는다면 살아만 있다면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누가 장담하겠는가. 병만 나으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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