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냅니다. 감사합니다. 쇤네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희상궁이 웃으며 말했다.예빈(丽嫔)과 소빈(苏嫔)이 덕비(德妃)와 희상궁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일어섰다.희상궁은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인사를 했다.“두 분은 안녕히 가세요.”예빈이 웃어 보였고, 소빈은 바로 떠났다.희상궁은 두 사람이 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희상궁은 조용한 목소리로 “덕비 마마, 쇤네가 마마께는 꼭 말씀을 드려야 할 게 있으니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내보내주십시오.”라고 말했다.덕비는 엄숙한 표정으로 옆에 있던 상궁들에게 모두 나가있으라고 명령했다.그녀의 명령을 받고 모든 상궁이 나갔고 문은 굳게 닫혔다.덕비는 희상궁을 보며 “본궁은 희상궁이 바쁘다는 것을 압니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덕상궁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십니까?”라고 물었다.“희상궁,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쇤네는 그저 마마님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본궁은 상궁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궁은 늘 상궁님이 오시길 기다립니다.”덕비는 몇 년 동안 자식이 없었지만 황상의 총애를 받았고, 자연스럽게 궁 안의 많은 여인들의 질투를 받았다. 하지만 태상황의 최측근인 희상궁이 덕상궁에 자주 와서 덕비를 만났다. 그렇기에 희상궁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연히 못된 꿍꿍이를 품은 사람들이 덕상궁에 오지 않았다희상궁은 덕비를 바라보았다.“덕비마마 몇 년 동안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쇤네는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쇤네는 마마님이 결백하다고 믿습니다. 궁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혹시 덕상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모르십니까?”희상궁의 말을 듣고 덕비는 깜짝 놀랐다.“상궁님,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혹시 덕상궁의 여인들이 밖에서 일을 저질렀습니까? 설마…… 황후를 다치게 했습니까?”희상궁은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이 작은 일이라면, 쇤네가 마마님까지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팔황자가 사고가 났을 때, 구사 대인께서
덕비는 가서 상궁에게 소빈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덕상궁(德尚宫)의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소빈은 궁 안에 무릎을 꿇은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덕비는 그녀를 보고 화가 치밀었다. ‘평소에 영리하고 사리분별이 빠른 소빈이 어떻게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단 말인가.’덕비는 가까스로 화를 참았다. “그 사람은 누구야?”소빈은 고집 있는 얼굴을 치켜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마마님 그냥 죽여주십시오.”“네가 죽으면 다 해결이 되느냐! 이 일 때문에 우리 가문까지 위험해졌어! 네 부형들도 2년만 있으면 귀경할 텐데 네가 그 앞길을 막는 것이야?” 덕비가 분노했다.“소첩이 자백한다고 어쩔 수 없습니다. 부형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그냥 죽여 주십시오.”“후회하기는 늦었다! 너는 황상께 부형들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을 바른대로 실토하거라!”“황상께 용서를 빌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마마 소첩께서 여태까지 가르침을 주고 사랑해 주셨는데 소첩이 죄를 지었습니다.” 소빈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덕비는 화가 나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둘은 오래 알고 지냈고, 오랜 기간 한집에서 살았다. 덕비도 소빈이 신경 쓰이고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덕비는 소빈이 아무리 무릎을 꿇고 빌어도 이미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너의 죄로 궁중을 혼란에 빠뜨렸으니 네 죽음을 달게 받아라. 너의 내연남도 어서 불거라! 그렇게 하면 네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살길이 있을 것이야! 스스로 잘 생각해 보거라.” 덕비가 소빈에게 충고했다.소빈 주변의 남자들의 수는 제한적이기에 조금만 공을 들이면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덕비는 그녀가 자백하여 벌을 조금이라도 적게 받기를 바랐다.그 순간 덕상궁의 집사궁녀가 들어와 덕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덕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전한 궁녀는 밖으로 나왔다.소빈은 당황한 표정으로 덕비를 쳐다보았다.“사실은 언제나 드러날
“자네가 연기를 이렇게 잘하는지는 몰랐네.” 덕비는 눈에 불꽃이 일었다.“마마,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초왕이 아니라면 왜 구사가 나서서 죄를 뒤집어쓰려고 하겠습니까?”소빈은 울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소빈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덕비는 소빈을 믿지 않았다. 덕비는 소빈이 한 말이 밖으로 퍼지게 해서는 안 되며, 만약 이 소식이 밖으로 퍼진다면 다섯째에게 큰 누를 끼칠 것을 알았다.잠시 후 덕비는 차가운 목소리로 하인을 불렀다.“밖에 아무도 없느냐!”그러자 문이 열리며 상궁이 들어왔다.“마마님 분부하시지요.”“소빈을 궁전으로 데려가 입을 틀어막아라! 한 마디 말도 하게 해서는 안 돼!”상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머니에서 천 조각을 꺼내 소빈의 입속에 집어넣었다.“소빈마마 이리 오세요.”소빈은 황급히 끌려나갔다.덕비는 이 모습을 보며 한시라도 빨리 다섯째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여보게! 본궁이 태아에게 좋은 약을 몇 알 가지고 있다고 초왕을 이리로 부르게.”“예!” 하인이 명을 받고 나갔다.우문호는 당일에 근무했던 금군의 명단을 조사하던 중 덕비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덕상궁으로 찾아갔다.우문호가 덕상궁에 도착하자 덕비는 그에게 문을 닫으라고 했다.“덕모비, 어떠십니까? 그녀가 자백을 했습니까?”덕비는 그를 빤히 보았다. 우문호는 그녀가 어릴 적부터 키웠던 아이로 결코 이런 불미스러운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앉아서 본궁의 말을 잘 들어라.” 덕비가 말했다.우문호는 엄숙한 그녀의 표정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소빈이 자백을 했다. 그 계집이 내연남이 초왕이라고 했어.”“예상대로군요.”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덕비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소빈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느냐?”“덕모비, 소인은 당일에 어서방에서 나온 후 모비의 몸이 편찮다는 말을 이태감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명화전 쪽으로 향하던 와중에 우연히 구사가 소빈의 내연남을 보게 됐고 옆모습
덕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팔황자가 그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는 것이냐?”“제 예상은 그렇습니다.” 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현재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부황께서는 이 사건을 빨리 해결하라고 하셨고 만약 소인이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또는 여덟째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소빈이 거짓을 고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덕비가 물었다.“음…… 방법이 있긴 한데……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합니다.”“그럼 빨리 가보거라 본궁은 그놈이 누구인지 주시하겠다. 그리고 소빈은 걱정 마라.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할 테니.”우문호는 고개를 저었다. “덕모비, 시간을 지체할 필요 없습니다. 소빈이 발설한 마당에 부황이 이 일을 아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덕비를 보고 말했다.“만약에 누군가가 부황에게 이 일을 고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명화전 부근에서 순찰을 하고 있었던 금군이어야 논리에 맞습니다. 그러나 현장을 실제로 본 사람은 그 남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습니다."덕비는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빤히 보았다. “네 말은 그 간부(奸夫)가 이 일을 황상에게 고할 것이라는 게냐?”“예, 분명 그가 직접 고할 것입니다. 그날 간부는 소빈과 함께 명화전에서 나를 해치기 위해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구사가 나타나면서 계획이 틀어졌고 그들의 계획이 혼란에 빠진 겁니다. 심지어 이 사건을 조사하는 책임자도 저이기에 범인을 저로 몰아가려면 분명 누군가가 부황에게 범인이 초왕이라고 고해야 합니다. 아마 사건이 벌어진 후 소빈은 이 연극을 하기 위해 분명 그 간부와 만나서 얘기를 했을 겁니다. 덕모비, 즉시 사람을 시켜서 사건 후에 소빈이 누구를 만났는지 알아보게 하십시오. 여기 당일에 당직을 했던 금군 명단을 가져왔습니다.”우문호는 옷소매에서 둘둘 말린 명단을 덕비에게 꺼내주었다.덕비마마는 명단을 넘겨받아 자세히 보았다. ‘오숙화(吳叔化)……?’그녀는 이 이름을 보고
“덕모비, 이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소빈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한 남자를 위해서 자신의 가족들을 희생하지는 않을 겁니다. 덕모비께서는 제 통지를 기다리십시오. 만약 오숙화가 황제께 가서 이를 고한다면 그때 덕모비께서 소빈에게 자결하라고 하십시오. 당신이 내린 명령이라고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됩니다. 덕모비는 이후에 소빈이 범행을 자백했고, 수치심에 자살했다고 하십시오. 그녀를 절대 부황에게 보내시면 안 됩니다.”덕비는 인상을 쓰며 “다섯째, 만약 내가 네가 말한 대로 한다면 오히려 너는 오숙화와 함께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이야.”라고 말했다.“덕모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아마 부황께서는 오숙화의 말을 듣고 구사를 부를 겁니다. 그렇게 되면 구사가 자신이 본 그대로를 얘기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입니다. 그때 구사가 오숙화가 범인인 것을 말하면 됩니다. 부황께서 구사에게 왜 사건의 진실을 지금에서야 말하냐고 물으신다면 황제의 첩인 소빈과 다른 사내가 밀회를 했으니 이는 곧 황제의 명예가 손실되고 체면을 깎는 일이니 신중했다고 하면 됩니다.”“약간 억지스러움이 있구나. 본궁 생각엔 그렇게 한다고 너와 구사가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는 없을 듯싶다.”우문호는 그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문호는 사람을 시켜 이태감이 왜 그를 명화전으로 안내했는지, 이태감이 오숙화와 마찬가지로 이 일에 혐의가 있는지 냉정언을 시켜 조사하라고 했다. 냉정언은 부황의 심복으로서 부황은 그를 신뢰하고 있었고, 냉정언은 사건 판단이 빠르고 증거를 잘 찾는 것으로 유명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덟째의 회복이다. 그가 깨어나기만 한다면 이 사건은 바로 해결될 것이다.하지만 우문호는 부황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에 오숙화가 부황을 찾아가 사건을 고하고 부황이 분노하여 우문호의 설명조차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덕모비는 제가 당부드린 대로만 하십시오.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오숙화 쪽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을 시켜 덕모비께
소빈은 얼굴이 굳고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덕비마마를 바라보았다.“능지처참이요?”덕비는 그녀를 바라보며 온화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본궁도 여자다. 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본궁은 너를 데리고 황상을 만나야겠다. 황상을 뵙고 사실을 고하거라 황상에게 용서를 구하고 죄를 달게 받거라.”이 말을 들은 소빈은 바닥에 엎으린 채 심장을 부여잡았다.“소빈을 일으켜 어서방으로 데리고 가거라!” 덕비가 명령했다.어서방에는 명원제가 바닥에 꿇어앉은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난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그게 사실이냐?” 명원제는 목소리는 음침하고 차가웠다.“소인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지금 황상께 이렇게 죄를 고합니다. 소인이 황상의 명예에 영향을 끼칠까 두려워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줄곧 고민했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오숙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말을 들은 목여태감이 너무 놀라 벌벌떨며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네가 본 사람이 초왕이 확실한가?” 명원제가 물었다.“소인이 직접 보았습니다. 초왕이 태감을 참수할 때 소인이 바로 통천각(通天阁)을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명화전의 상황은 초왕이 소태감을 죽이고 팔황제도 공격했습니다. 팔황자가 정면에서 들어오는 칼을 손으로 막았습니다. 그러자 초왕이 담벼락을 넘어 도망쳤고, 소빈마마의 소매가 벽에 걸려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구사가 사건 현장에 왔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도망가려고 할 때 금군들이 달려왔습니다. 곧바로 초왕이 다시 돌아와 팔황자를 안아들었고 금군은 이 상황을 보고 범인이 구사라고 오해한 겁니다. 구사는 초왕을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쓴 겁니다.”같은 시각 어서방 문 앞.오숙화가 명원제를 만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문호는 밖에서 부황의 부름을 기다렸다.우문호는 덕비가 자신이 당부한 대로 소빈을 자결시켰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오매불망 소빈의 사망 소식을 기다렸다. “왕야, 황상께서 들어오시라고 합니
우문호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표정으로 오숙화를 힐끗 보았다. 오숙화는 바닥에 엎드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오숙화의 눈알은 재빠르게 굴러갔다.덕비가 소빈을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폐하! 신첩이 관리 부족으로 소빈을 이지경까지 만들었습니다. 신첩이 죄를 지었습니다!”소빈은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오숙화를 보고 자신도 무릎을 꿇고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폐하, 신첩이 몸 관리를 잘 못하여…… 더럽혀졌습니다. 이 죄는 신첩이 죽어서도 속죄하겠습니다.”덕비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소빈을 쳐다보았다.오숙화는 소빈의 말을 가로챘다.“황상! 소빈 마마가 초왕에게 모욕을 당했는지는 소인이 잘 보지 못했습니다. 소빈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응한 것인지, 초왕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땅에 엎으려 있던 소빈이 오숙화의 말을 듣고 심장을 부여잡고 비통하게 말했다.“폐하! 소첩은 원치 않았습니다. 초왕의 강요로 일어난 것입니다! 소첩은 초왕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폐하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덕비는 두 사람의 뻔뻔한 연극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폐하! 이 둘의 말을 모두 거짓입니다! 소빈이 간통을 저지른 간부(奸夫)는 바로 저 오숙화입니다! 둘이 짜고 초왕을 모함하고 있습니다!”덕비와 소빈 그리고 오숙화의 총체적 난국의 상황을 보고 있자 우문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명원제는 격노하여 탁자를 내리쳤다.“다 입 다물어!”소빈과 덕비가 명원제의 호통에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명원제는 우문호를 보며 “저 둘의 말이 사실인가?” 라고 물었다.우문호는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해도 황제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사실이 아닙니다. 소자는 그날 소빈을 본 적이 없나이다.”명원제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고 덕비를 쳐다보았다.“너는 무슨 증거로 저 여자의 간부가 오숙화라고 단정하는 것이지?”덕비는 입이 열 개라도 그 사실을 우문호에게 들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그녀는 소빈
명원제가 소빈을 쳐다보았다.“사실을 말해라.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소빈은 울먹거리며 벌벌 떨었다.“왜 우는 것이야? 사실대로 말하라고!”겁에 질린 소빈이 입을 열었다.“그날 소첩이…… 홀로 산책을 하다 보니 명화전에 다다랐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저를 끌고 명화전으로 들어갔습니다. 소첩은 너무 놀라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첩의 옷이 벗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다섯째 형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눈앞에는 초왕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초왕은 칼을 꺼내 소태감을 살해했고 연이어 팔황자에게도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소첩을 끌어 담장 밖으로 갔습니다.”“만약 네 말대로 내가 너를 강제로 탐했다면 본왕이 너까지 죽여야 하지 않겠어?”우문호가 그녀의 말에 냉정하게 받아졌다.이 말을 듣고 소빈은 넋이 나간 듯 무의식적으로 오숙화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명원제도 반사적으로 소빈과 오숙화를 번갈아 보았다.명원제는 무언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내막을 파헤쳐야겠다고 생각했다.‘다섯째가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못된다.’명원제는 한참 생각에 빠졌다.“소빈을 덕상궁으로 데리고 가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초왕을 암실로 데려가 조사하거라! 그리 오숙화도 함께 데리고 가거라!” 명원제가 소리쳤다.우문호는 부황의 명령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부황이 이렇게 냉정하게 명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은 부황의 마음속에도 소빈과 오숙화를 향한 의심이 생겼다는 것이다.소빈은 마음속으로 ‘살았다’를 외쳤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이 사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 그 생각뿐이었다.‘이제 모든 것은 여덟째에게 달렸네.’현장의 목격자들이 모두 초왕을 보았다고 말했고 심지어 구사도 소빈의 간부를 초왕이라고 오해해 죄를 뒤집어썼다. 여덟
며칠 뒤, 다섯째가 정말 아이를 데리고 궁에서 나왔다.원경릉은 이미 화를 풀었다. 그가 어찌 나쁜 마음을 품었겠는가? 그는 단지 딸과 단둘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사실이 증명하듯이, 계란이는 무상황을 만난 후 아버지를 금세 잊어버렸다. 그녀는 무상황을 태조부라고 부르며 함께 뜰을 산책하고, 함께 식사하며,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 함께 바둑도 두었다.이때 택란이가 조심히 원경릉에게만 말했다.“어마마마,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돈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금이고 은이고 다 주려 한다면, 틀림없이 아주 사랑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원경릉은 순간 자신이 이 사실을 잊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무상황의 계란이에 대한 애정은 누구보다 특별했다.예전에 그녀는 무상황이 계란이를 너무 편애하여 다른 왕비들이 질투해, 형제자매 사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실제로 손왕비가 몇 마디 불평하며 약간 질투를 내비치긴 했지만, 미색이 바로 반박했다. “뭘 안다고 그러십니까? 이 금을 계란이에게 준다면, 앞으로 조정에 돈이 필요할 때 계란이가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손왕비나 제가 받았다면, 돈을 내놓으려 하겠습니까?”이 말에 손왕비는 순식간에 화를 가라앉히고, 곧장 원경릉에게 사과했고, 그 이후로 원경릉도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우문호와 원경릉은 함께 정원을 거닐며, 안풍친왕의 자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섯째도 이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그들을 만나보고 싶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오? 아니면 작은아버지라고 불러야 하오?”아직 그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그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오.”원경릉이 대답했다.“안풍친왕의 성격을 생각하니, 자녀들도 그를 닮았을지 궁금해졌소.”원경릉이 웃으며 여우 같은 한 가족이진 않을까 생각했다.안풍친왕의 자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원용의에게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원용의가 아이를 낳았다.제왕은 아이를
“황조부님, 다섯째와 계란이가 왔습니까?”원경릉이 무상황에게 묻자, 무상황이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고, 얼굴에 기쁨을 띄우며 말했다.“그들이 온다고? 그럼, 얼른 사람을 불러 음식을 더 준비하라 해서 둘이 술 한잔해야겠구나!”원경릉은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을 들으니, 그들 부녀가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그들은 그녀를 찾으러 궁을 나선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 바쁘던 그가, 오늘 이렇게 일찍 업무를 마쳤는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로 간 걸까?그녀가 궁을 나설 때, 그는 틈이 나면 왕부에 들르겠다고 약속했었다.무상황은 그녀가 말이 없자 물었다.“그래서 온다는 것이냐, 안 온다는 것이냐?”원경릉은 그들 부녀가 자신을 두고 나가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안 옵니다.”무상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래, 무슨 계란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오겠느냐?! 쓸데없는 생각이구나.”그의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자, 원경릉이 더 기분 상할 틈도 주지 않게 서둘러 그를 달랬다. “분명 온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많은 탓에 아직도 바삐 보내나 봅니다.”“거짓이다!”하지만 무상황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계속 바쁘면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아이만 보내면 되지 않느냐? 그놈은 계란이가 이곳에 오면 궁에 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계란이를 빼앗아 갈지 걱정해서지.”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딸에 대한 다섯째의 애정은 언제나 독단적이었다. 심지어, 어머니인 그녀의 자리를 탐낼 때도 있었다.원경릉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왕비님께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조부님께선 알고 계셨습니까?”“알고 있지.”무상황이 순간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되물었다. “넌 몰랐단 말이냐?”“아무도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원경릉은 억울해하며 답했다.“부부라면 자녀가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걸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 것이냐?”무상황은 그녀를 약간 어리석게 여겼다.“……”원경릉은 잠시 생각하다
원경릉은 추 할머니와 함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리 나리를 몰래 끌고 나가 조용히 물었다.“왕비께 자녀가 있습니까?”그러자 이리 나리가 되물었다. “예이와 진이를 말하는 것이냐?”원경릉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네, 예이와 진이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북당에는 없다. 하지만 스승님께서 이미 추 마마를 보러 오라고 하셨다는구나.”추 할머니와 왕비가 같은 세대 사람이였기 때문에 이리 나리는 항상 추 할머니를 마마라고 불렀다.“그들이 돌아온다니… 정말입니까?”원경릉은 순간 이유 모를 흥분을 느꼈다.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북당이 그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아,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기뻤다.“그래. 돌아올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돌아올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부님이 명을 내렸으니, 감히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아마 다섯째도 만나고 싶을 것입니다. 어찌 그들은 친왕과 왕비의 곁에서 지내지 않는 것입니까?”“상황을 대충 알고 있지 않느냐? 사부님께서 한때 황태자가 될 뻔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무상황도 장인어른께서도 황위에서 물러나 다섯째가 황제가 되었다. 상황이 변했으니, 그들도 이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혹시 그들이 너무 조심스러웠던 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것입니다.”원경릉이 답했다.이리 나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작은 위험이라도 있을 수 없다. 작은 일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조정에 폐를 끼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동안 일이 참 많지 않았냐?”원경릉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에 수많은 문제가 쌓여 있어 몇십 년 동안도 해결되지 않았으니, 굳이 더 많은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자세히 생각하니, 북당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참 많은
하지만 원경릉은 거절했다. 모두가 시중을 들지 않는데, 그녀만 시중을 데리고 오면 괜히 특별한 척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황후라는 신분도 숙왕부 사람들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처럼 보일 뿐이었다.그녀는 짐을 다 챙긴 후, 계란에게 아버지를 잘 돌보라고 당부하곤, 서일의 보호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그러자 사식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막 궁에 왔는데, 원경릉이 다시 나가버리니 앞으로 심심한 나날을 보내야 할 자신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원경릉이 숙왕부에 도착했을 때, 이리 나리 부부도 추선을 방문하기 위해 와 있었다.이리 나리도 추선과 정이 깊은 사이었다. 공주는 원경릉에게 이리 나리가 어렸을 때부터 왕비가 키웠다고 말해 주었다. 처음에는 왕비가 아이를 키우는 법을 모르기에 대부분 추할머니가 그를 돌보았는데, 나중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도 추할머니 덕분에 엄한 왕비 곁에서 고생을 조금 덜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원경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군요. 왕비께서 아이를 낳지 않으셨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익숙하지 않으셨겠지요.""듣자 하니, 왕비께서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으셨다고 하네. 열몇 살에 어디론가 보내셨다네.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리도 그들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왕비께서 아이를 낳으셨다니요?"원경릉이 살짝 놀란듯 물었다."저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보친왕..."공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아니네. 정말 아니네. 왕비께서 직접 낳으신 아들딸이네. 쌍둥이고, 나리보다 훨씬 나이가 많네.""그렇습니까?"원경릉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거 왕비 부부가 은거하고 지낸 탓에 자녀를 보지 못한 것이 이해는 되었지만,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경성에 머물러 있었고, 자녀들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몇 년 동안 부모를 찾아오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 혹시나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 되었다. "그렇네. 나리가
추선의 방에서 나온 원경릉은 청우헌으로 가서 세 거두와 이야기를 나누고 혈압까지 재주었다.그녀는 그들의 말에서 추선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추선으로, 왕비의 옛 시녀였다. 그러나 가장 힘든 시절에 추선은 왕비와 왕부를 떠나지 않았고, 줄곧 평남왕 우문극을 돌봐왔다고 했다.그리고 그 두 명의 첩인 운 마마와 몽 마마는 실제로 왕비의 첩이라고 했다. 대체 왜 왕비의 첩이 되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들은 이미 왕비의 첩으로 불렸다.세 거두는 추선의 병세를 물었다. 원경릉이 악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자 충격을 받았다.현대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악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들의 얼굴에 한순간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아, 원경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왕비의 시녀라 하셨는데, 잘 아시는 것입니까?”무상황이 말했다.“숙왕부에서는 누구의 시녀인지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매미도 시녀를 그만두고, 모두와 함께 고생했다. 평생 혼인도 하지 않고.”“매미요?”“네가 말하는 추선이다.”원경릉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추선의 이름을 매미로 부르는 것도 어찌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추선이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숙왕부 전체에 퍼졌고, 많은 사람이 원경릉에게 그녀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릉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그렇게 침통한 표정을 짓는 것도, 누군가를 이렇게 걱정하는 모습도 처음 보았다. 평소 그들은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유일하게 열정을 보일 때는 식사 시간뿐이었으니 말이다.그날, 원경릉은 숙왕부에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숙왕부의 식사 방식은 한 사람이 큰 사발 하나씩 받는 것이었다. 이날 집안사람들은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아, 남긴 음식이 가득했다.이런 일은 전례가 없었다.원경릉은 이로부터 추선이 그들 마음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소요공에 따르면, 과거 추선은 적성루에서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맡았다고 했다. 고기를 얼마나 줄
“이전에 무슨 큰 병을 앓았습니까?”원경릉이 물었다.“폐결핵이었네. 의원을 불러 치료했지만, 몇 년 동안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네.”왕비가 대답했다.“치료했던 의원의 능력이 뛰어났겠습니다. 누구였습니까?”“주진이요.”왕비가 말했다.주진의 이름을 들으니, 원경릉은 그녀가 왕비와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자라는 것을 확신했다.원경릉은 초능력을 사용해 노파의 폐 상태를 감지했다. 결절과 섬유화가 있었고, 심지어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도 발견했다. 나이가 많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우선 약물을 통해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그저 악성이 아니길 바라며 기도할 뿐이었다.우선 링거를 놓고 산소를 공급하며,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기관지를 확장해 그녀가 조금 더 편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했다.약물을 사용하자 노파의 안색이 서서히 나아졌고, 호흡도 훨씬 수월해졌다.그러자 노파가 감사의 말을 전했다.“이렇게 숨을 쉬어본 게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두 명의 나이 든 여성이 방을 드나들었다. 다들 원경릉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왕비가 그녀들을 소개해주었다.“모두 수년간 나와 함께해온 사람들이네.”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내 첩들이네.”그러자 원경릉은 자신이 잘못 들은건 아닌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첩인지 아니면 왕의 첩인지 궁금했지만, 차마 질문하기엔 입이 쉽게 열어지지가 않았다.잠시 후, 원경릉이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그럼, 이분은요?”“날 처음 모신 사람이네. 이름은 추선이야. 수십 년 동안 대부분 평남왕부에서 평남왕을 돌보며 지냈네.”왕비가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원경릉은 이해했다. 그들은 정말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지내던 사람들을 하나씩 데려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었다.젊은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이니, 나이가 들어도 서로 곁에 머물고 싶어 했다.왕비는 원경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진지하게 말했다.“심각하다는 건
다섯째는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졌다.아이가 혼인을 올리지 않고 곁에 머무는 건 분명 기쁜 일이었고 효심이 있는 일이었지만 평생 결혼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만약 자기와 원경릉이 저세상으로 떠난다면, 그녀가 혼자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그렇다고 해서 혼사를 허락하자니, 세상에 과연 걸맞은 사내가 있을지 걱정되었다.택란을 그녀보다 못 한 사내에게 보내는 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다섯째가 갈등하는 것 같자 원경릉이 웃으며 그를 다독였다.“택란은 이제 여덟 살이네. 너무 앞서 생각하지 마오.”다섯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자네는 모르네.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가네. 벌써 여덟 살이니, 7년만 지나면 성인이 되오.”그는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흘렀으면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두는 게 좋소. 너무 멀리 내다봐도 소용없네.”원경릉은 그의 손을 잡고 살며시 깍지를 꼈다.“아이도 운명과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만약 언젠가 자네만큼 훌륭한 남자를 만난다면, 그와 혼사를 해도 나쁠 게 없지 않겠소?”“그런 남자는 있을 리 없소!”우문호는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런 칭찬해도 우문호는 여전히 복잡해 보였기에, 원경릉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했다. 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었다.택란이 태어난 날부터 우문호에게는 새로운 적이 생겼다. 바로 택란과 혼인할 상대였다.그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여전히 미워하고 있었다.더구나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혼사를 직접 언급했으니, 이제 그 적은 실체가 생겼고, 이에 따라 그는 한동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그 후 며칠간 택란은 매우 순진하고 착하게 행동했다. 아버지가 시간이 날 때마다 곁에 머물며 대화를 나누고, 놀고, 책을 읽고, 글씨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어린 나이임에도 이미 아부하는 법을 터득해, 다섯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 더 이상 화낼 수 없게 했다.다
”이제 화가 풀린 것이오?”원경릉이 웃으며 물었다.“화 풀렸네. 하지만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조심해야 하오. 어린 자식이, 정말 너무하오!”우문호는 선물을 하나 열었다. 안에는 알록달록한 도자기로 만든 정교한 인형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까지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이 도자기 인형, 정말 우리 딸을 닮았구나. 예쁘오!”“내가 산 것이오!”원경릉이 질투라도 난듯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산 것이니 더 좋소. 아주 좋아!”우문호는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몇 개를 연 후에야 그는 약도성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원경릉은 자리에 앉아 약도성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특히 택란이 약도성에서 보여준 대처 방법에 대해 상세히 말했다.그러자 우문호가 매우 놀라며 말했다.“택란이 지진을 예측하고 백성들을 대피시켰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오. 정말 대단하네. 원 선생, 난 택란이 약도성에서 놀기만 했을 줄 알았네. 몰래 이런 큰일을 해내다니.”“택란과 경단은 모두 자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오. 자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네. 그래서 자네한테 말하지 않았던 거고. 이게 택란이 자네를 더 사랑한다는 이유요. 자네를 평생 아끼며 짐을 덜어주고 싶어 하오.”우문호는 그녀의 손을 놓고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 선생,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소.”원경릉은 그의 팔을 감싸 안으며 웃으며 말했다.“그래, 우시오. 우리 큰 아기 울어도 괜찮네!”우문호는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자네가 날 ‘큰 아기’라고 부르니 눈물이 갑자기 멈추네요.”“그럼 울지 말고 어서 앉으시오.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말해주겠소.”원경릉이 그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는, 약도성에서 한 달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하며 감동하였다. 특히 약도성 백성들이 택란을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믿기 어려워했
우문호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며 깜짝 놀랐다.“청혼? 누가 청혼을 한 것이오? 미친 것이오? 겨우 여덟 살인데!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이런 짓을……”그는 너무 충격을 받아 분노가 치밀었다. 겨우 여덟 살인 딸을 누군가 눈독을 들이고, 심지어 청혼까지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그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반드시 혼쭐을 내겠다고 마음먹었다.원경릉이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이미 택란의 비밀을 다 털어놨으니, 이제 더 이상 나한테 화내면 안 되오.”“말하시오. 용서할 테니 더 말하시오!”우문호는 더 이상 원경릉에게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심하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고, 복잡한 감정만이 뒤섞여 답답할 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들도 모두 사라지고, 이 터무니없는 사건이 더 중요해졌다.원경릉은 택란이 금나라에 가서 10만 냥을 얻은 전말을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의 어린 황제가 그녀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고 전부 털어놓았다. 단 한 글자도 숨기지 않고 진실만 말했다.우문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그건 너무 대담하잖소! 금나라에서 10만 냥을 빼앗았다니? 어찌 이야기가 이렇게 익숙한 것이오? 그래, 기화요! 어찌 스승이 이런 짓을 가르친 것이오? 그리고 그 금나라의 어린 황제는 이제 몇 살이오? 듣자 하니 겨우 열 살이라고……”“열셋이오. 금나라의 진국왕이 그의 권력을 누르려, 일부러 열 살이라고 소문낸 것이오.”우문호는 벌떡 일어나 뒷짐을 지고 방을 빙빙 돌며 어쩔줄 몰라했다. “열다섯이라도 안 되네! 금나라가 북당의 경성에서 얼마나 먼지 알고 있소? 아이가 그곳에 시집가면 1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올 것이네. 북당의 진국 공주를 부인으로 삼겠다니? 허망 된 꿈이요! 꿈!”“아이들의 농일 뿐이요.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원경릉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농담이라도 안 되네. 황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 귀한 딸을 부인으로 삼겠다니? 이런 녀석은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