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이 안 갔어요?” 원경릉이 물었다.“주진이 감히 어딜 와! 태상황 폐하와 소요공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 주 재상이 수술받으러 갔을 때 주진이 와서 시간을 끌어줬거든. 지금 태상황 폐하는 주진을 쳐다보시기는커녕 이름만 들어도 화를 내신다니까.”원경주와 원경릉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구나. 뒤끝 있으시지.”“더 웃긴 건 아빠가 그분들께 여기 상황, 네 신분을 설명하신 건데, 결과적으로 양쪽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지금 그분들은 아빠와 그쪽에 있는 황 씨 부인이 불륜관계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계셔.”원경릉은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쩌다가 그런 큰 오해를 낳은거지? 제대로 얘기해 봐요. 오빠. 단순하게 넘어갈 일이 아닌데… 제가 그분들을 데리고 나가야겠어요. 제가 그분들께 잘 설명할게요. 일단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그분들이 의혹을 풀 시간이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니까, 사흘 밤낮을 설명해도 다 못하지만… 3개월은 돼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요.”원경주는 이 말을 듣고 솔직히 기뻤다. 앞으로 3개월간 동생이 여기에 있다는 소식에 말이다. 지난번 돌아왔을 때 2~3일 만에 돌아가서 밥도 서둘러 먹었는데 이번엔 3개월을 있으니 만약 우문호도 있다면 결혼식도 할 수 있다.아쉽게도 지금 시공간 터널을 이용할 수 없어 우문호가 올 수 없어 이 좋은 기회를 버리게 생겼다.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3개월 후엔 시공간 터널이 열릴 테니 곧 눈앞의 일이 아닌가? 이 3개월의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를 하면 된다. 결혼 준비를 하는데 다소 적은 시간 이긴 하지만 말이다. 집안에 큰 경사를 치를 생각을 하니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발이 가벼운 게 날아갈 듯 병원으로 향했다. 원 교수 부부는 병원 주차장까지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딸이 무사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원 교수 부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가슴 속에 납덩이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그들은 그동안 못했긴 이야기를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너….!” 태상황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마구 비벼댔다. 원경릉이 들어온 것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가 긴장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기쁨과 흥분의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어, 태자비 마마!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소요공도 원경릉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더니 다시 계속 티비로 눈을 돌렸다. 주 재상이 살짝 고개를 들더니 미소가 서서히 번졌다. “태자비 마마께서 드디어 돌아오셨군요!”주 재상은 수술을 마친 요 며칠 동안 진전이 빨라서 머리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기는 했지만 정신은 상당히 또렷해졌다.병실 밖에 아무도 없는 관계로 원경릉은 법도대로 세 사람에게 예를 취하자, 예법을 본 세 사람은 일종의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꼈다.태상황이 원경릉을 끌어다 앉히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티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원경릉을 위아래로 쭈욱 훑어보더니 물었다. “괜찮아?”“네, 괜찮아요.” 원경릉은 태상황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데 셋을 며칠 떼놓고 있었던 게 정말 미안했다.태상황이 눈빛을 빛냈다. “괜찮다니 됐어.”주 재상은 팔꿈치로 지탱하던 머리를 다시 들고 원경릉을 보며 부러운 듯, “태자비 마마는 어떤 의원에게 수술을 받으셨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금방 좋아지셨어요? 전 아직 며칠 더 있어야 걸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퇴원해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해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제가 나이가 어려서 그래요. 어쩌면 체질적으로 제가 좀 좋을 수도 있고요. 재상께서는 퇴원하신 뒤에 몸을 잘 보살피시고 운동 잘 하셔야 돼요.”“그럼요, 이번에 큰 고비를 맞고도 안 죽었는데 당연히 몸을 소중히 관리해야죠! 마음에 담은 사람을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행운입니다.” 주 재상 답지 않게 감동적인 말을 했다.소요공은 티비를 보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주 재상을 째려봤다. “너 말을 왜 그렇게 해. 우리 다음 생에 못 만날 것처럼 말하냐! 이번 생에 누가 먼저 가도 다음 생에 전부 같이 만나
“노인이요?” 원경릉이 백발이 성성한 소요공 머리를 보며 ‘지금 우리 아빠를 노인이라고 하는 건가?’“그래요, 그 흰옷 입은 노인 말이에요. 그날 우리한테 와서 뭐라고 막 얘기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도 난처하지 않게 해드렸어요. 어쨌든 태자비께서 설명해 주실 테니까.” 소요공이 주 재상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다리가 영 불편한지 이불을 마 차더니 좀 편해진 모양이었다. 아주 대감마님 포스를 보여주었다. 소요공이 이 말을 꺼내자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봤다.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좀 기다리세요. 가서 휠체어를 가져올 수 있나 물어볼게요. 재상 데리고 햇볕 좀 쐬러 나가요.”“드디어 나갈 수 있겠어!” 소요공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기쁜 듯이 외쳤다. “이렇게 계속 답답하게 있다간 병날 뻔했어요!”원경릉이 오빠를 찾아가 얘기하니, 원경주가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간호사를 시켜 휠체어 2개를 가지고 왔다.몇 명이 소요공을 휠체어야 앉히는 걸 돕고, 다시 주 재상을 침대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혔다.태상황이 소요공을 밀고, 원경릉은 주 재상을 밀어 네 사람이 병실을 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나 이거 알아요. 그때 우리가 바로 이걸 타고 여기로 올라왔었죠!” 소요공이 신기해하며 말했다.원경릉이 엘리베이터를 눌러 다들 들어가시라고 한 뒤 설명했다. “이건 엘리베이터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람이 계단을 걸을 필요 없이 빠르게 20층에서 1층으로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예요. 아주 편하죠.”“엘리베이터?” 세 사람은 이 신기한 문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원경릉 앞에서는 아는 척할 필요 없으므로 원경릉이 의혹을 풀어주길 기다렸다.“엘리베이터와 어르신들이 병실에서 보시던 티비, 심지어 우리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 예를 들어 밥하고 물 끓이고 씻고 일하고 하는 일들은 전부 전기와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아직 우리 북당엔 이런 게 발명되지 않
세 사람은 곧 자세를 바로 하고 일제히 원경릉을 바라보며 조용히 설명을 기다렸다.잠시 후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릴 때 의문이 들더라도 일단 제 말을 자르지 마시고말을 마친 후 물어봐 주세요. 괜찮으시죠?”“그래, 얼른 얘기해 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요공은 주 재상 머리를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꽉 싸맨 뒤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말했다. “말씀하세요. 이해 안 되는 건 일단 기억해뒀다가 물어볼게요.”“저는 사실 북당의 사람이 아닌, 이 시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약품을 연구하는.....”원경릉의 첫 마디에 모두 놀라서 수많은 질문을 묻고 싶었으나 그저 의문을 삼킨 채 원경릉이 계속 얘기하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저도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동종업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대한 대증 요법의 약품을 개발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점점 대뇌 개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대뇌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사용하는 건 아주 극소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만약 우리가 열쇠가 되는 약품만 개발할 수 있다면 숨겨진 잠재력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아질 거야. 마침, 저와 같은 연구 방향을 가진 생명과학 투자자가 절 찾아내 저에게 최고의 조건을 제공해 주며 제가 오직 그쪽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해 주겠다고 했어요. 시쳇말로 대뇌를 여는 열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 연구는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처음엔 원숭이 몸에 실험했죠. 실험이 아직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약간 미흡한 게 보이니까 계속 개량해서.... 그때 전 흥분으로 일종의 주화입마(走火入魔) 상태였어요. 결국 영장류를 스킵하고…. 원숭이 몸에 실험하고 바로 저 자신에게 이 약품을 주사했어요. 이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거죠. 약의 강력한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제 신체는 코마 상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들만 좋으시면 어디든지 모시고 갈 수 있죠.”태상황이 입을 열었다. “난 여기 군사 역량을 좀 보고 싶어. 참고로 할 만한 곳을 좀 봤으면 하는데.”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건 만족시켜 드리기 어렵겠는데요. 여기서 저는 그저 일반 백성에 불과해서요.”“권문세가는 귀족이 아닙니까?” 소요공이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권문세가의 귀족 출신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큰 능력을 갖추고 있어 사람의 몸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다니, 이런 의술이 북당에 있었으면 받들어 모시고도 남았다.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엔 소위 권문세가 귀족이란 게 없어요. 관리의 자제라도 특권이 없고 보통 사람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시험을 봐요. 물론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 유학을 갈 수도 있고 견문을 더 넓힐 수 있죠. 그리고 이 세계엔 노비가 없어요. 돈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고용해 일을 시킬 수 있지만 법률이 이 사람들을 보호해 이들도 고용주와 마찬가지로 평등한 권리를 가졌어요. 싫으면 바로 그만둘 수 있는 거죠. 노비문서가 존재하지 않아요.”삼대 거두는 서로 쳐다봤다는데, 모두 당황스럽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관리의 자제도 일반 아이들과 같다고? 이게 진정한 의미의 공평일까?’“이.. 이렇게도 세상이 돌아가나?” 태상황이 중얼거렸다.원경릉은 사실 이들에게 하려는 말이 더 있었다. 이 세상이 표면적으로는 공평한 듯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숨겨진 규칙이 있어 권력자나 부자는 일반인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지만 적어도 가난한 사람과 평민도 경쟁의 기회는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3개월의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얘기하며 저들에게 이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혀주는 것이다.원경릉은 셋을 병실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삼대 거두는 꽤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원경릉의 신분이나 그녀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왕조가 바뀌는 대다수 원인은 하층계급의 백성이 살기 어려워 무장봉기 외에는 다른 살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나라처럼 모든 사람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기회를 가진다면 적어도 원망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이것이 어쩌면 그들이 이번에 현대에 온 진정한 의의일지도 모른다. “다섯째가 한 번 와야겠어.” 태상황이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를 데리고 처가에 가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뵙는 게 마땅했다.태상황도 흔쾌히 응했다. “과인이 여기에 의지가지 하나 없는 게 아니라 어찌 됐든 사돈이 여기 있으니, 절반은 이쪽 사람인 셈이지. 과인이 마음속으로 계속 께름칙했던 게 정후 이 인간이 과인과 사돈이란 사실이었는데, 지금 태자비 말을 들어보니 과인이 께름칙할 필요가 전혀 없어.”“맞아요!” 소요공과 주 재상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정후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밉상도 그런 밉상이 없다. 원경릉이 집으로 돌아간 뒤 한참 있다가 만두가 돌아와서 엄마를 보고 기뻐하며 초왕부에서 생긴 일을 시시콜콜 엄마에게 알렸다. 예를 들어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여동생이 이제 젖을 토하지 않는다든지, 여동생에게 작은 반려동물이 생겼는데 그 반려동물이 주인을 알아볼 수 있고, 다 자라면 봉황이 된다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했다. 원경릉이 만두를 안고 가만히 그 얘기를 들었는데 기쁘면서도 그리운 감정이 들었다.원경릉은 만두가 초왕부로 돌아가면 아빠에게 주 재상이 이제 괜찮고 태상황과 일행이 천천히 여기에 적응하고 있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다 아주 좋다. 돌아가기까지 3개월가량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3개월로 부족할 수 있지만 그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만두를 안고 있는데 그 조그만 얼굴을 원경릉의 손에 대고 빨개진 눈으로, “전 엄마를 볼 수 있지만 아빠랑 다른 사람들은 못 봐요. 다들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는걸요. 정말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엄마, 아빠 도움 없어도 돼요.”그러자 원경릉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 돈이 필요 없어도 된다니? 그럼, 네가 어떻게 사게?”원경릉이 말했다. “제가 소요공에게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돌아가서 갚는다고 하면 돼요.”“그분이 가지고 계시…. 아, 네 아빠가 그러시더라, 그분이 금을 아주 많이 가져오셨다고. 그 금 가치가 단지 황금 가격만은 아닐 거라던데. 전부 골동품이라.” 원경릉이 엄마가 기쁜 듯 말했다.“응, 금 가치는 잘 모르지만, 값나가는 걸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원경릉이 말했다.소요공뿐 아니라 태상황과 주 재상이 지닌 구름무늬 벽옥비녀, 옥가락지 등도 상당했다.“그러네, 그럼 내가 바로 맞은편 부동산에 전화해서 물어보마! 그 집 전화번호 있거든. 그쪽에서 급매로 내놓은 거면 우리가 가격을 좀 다운시킬 수도 있고.”“네, 그리고 아빠께 골동품 수집가 좀 찾아봐 주시라고 해주세요. 정말 가치를 아는 수집가가 필요해요.”원 교수는 업계에서 저명한 인물로 적지 않은 권력가와 부유층을 환자로 두고 있다. 더불어 환자와 관계가 매우 좋고 가끔 왕래가 있어 골동품 쪽에 지식이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원경릉 엄마는 부동산에 전화한 뒤 모녀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병원 밥이 입에 안 맞는 어르신들에게 진짜 집밥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국을 끓이고 엄마가 잘하는 반찬 몇 개를 만들었다. 원경릉은 운전하는 대신 택시를 잡았다. 여기 면허가 없기 때문으로 바로 병원으로 갔다.병원 밥은 확실히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삼대 거두는 나이가 많아 미뢰가 약간 퇴화해서 병원의 밍밍한 음식은 별로 먹지 않았는데, 안사돈이 한 음식은 싹 비워서 뒤에도 계속 그걸 먹고 싶다고 투덜거리며 병원 밥을 안 먹었겠다고 했다.원경주도 병실에서 이 얘기를 듣고 웃음이 터지고는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 “네가 없을 때는 저분들에게 이거 드세요 하면 드시고, 저거 하세요 하면
원 교수는 의사로 오랜 시간 지내며 많은 인술을 베풀어 왔다. 여러 분야의 엘리트들을 치료해 왔고 그 중엔 정상급 부호들도 있었지만 원 교수는 한 번도 사례를 받거나 특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상대의 신분이 어떻든 그들은 원 교수에게 늘 한 가지 신분, 환자였다.하지만 역시 여러 사람과 교류하다 보니 사귄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어느 그룹 회장이 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심근경색을 일으켜 원 교수가 심장 스텐트 수술을 했다. 퇴원한 뒤 계속 원 교수에게 돈을 보냈으나 원 교수가 완곡하게 거절했다.회장은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으로 회사가 크기도 하지만 이름난 수집가로 도자기, 옥기, 목기, 명화, 보석과 장신구, 특히 골동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원 교수도 회장의 그런 취향을 잘 알기에 믿을만한 수집가가 없냐고 원경릉이 물었을 때 제일 먼저 회장을 떠올렸다. 원 교수는 회장에게 톡을 보내 약속 시간을 잡았다. 용건은 봐줬으면 하는 물건이 몇 가지 있다는 것으로 마음이 맞으면 팔려고 한다 했다.회장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원 교수가 뭔가 소장하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고, 그저 상대가 전에 완곡하게 자신의 사례를 거절했으나, 이제 신중하게 개인적 약속을 잡는 방식으로 사례를 요구하려는 것이겠지 생각했다.회장은 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어쨌든 원 교수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건졌으니 보답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가 너무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소위 소장품이라고 하는 걸 사주겠다고 마음 먹었다.‘의사 나부랭이가 무슨 소장품이 있을까? 살 수도 없고 감당도 안 되겠지.’원 교수는 카페에서 약속하고 원경릉과 함께 갔다. 원경릉이 동행한 건 아빠가 너무 솔직한 분이라 상대가 가격을 후려칠 것 같아서였다. 원경릉은 북당에 있으면서 마음이 전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고 누가 부유한 상인이고 누가 사기꾼인지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 회장님!”“원 교수!”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치레를 몇번 했
우문호는 즉시 얼굴에 기쁨을 띠며 종이를 구겼다.“뭘 가져왔는가? 한 잔 마시겠네. 지금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네!”목여 태감이 바로 들어와 차를 올리며 말했다.“어의가 처방한 화기와 열을 내려주는 약입니다. 약간 달면서도 쓴맛이 나는데, 등심초와 하기초, 그리고 연심을 조금 넣어, 열을 내리기에 제일 맞을 겁니다. 폐하께서 쓴맛을 싫어하실까 봐 꿀대추도 하나 넣었습니다!”그는 약을 탁자 위에 놓고 부채를 찾아 부쳐주려 했지만, 우문호는 이미 손으로 약그릇을 들어 가까이 가져가 불며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날씨가 조금 추운 탓에 약이 미지근한 상태로 전달되어, 몇 번 불어 마시기에 딱 적당했다.그는 약을 단번에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은 후, 목여 태감을 바라보며 말했다.“역시 자네가 세심하군. 앞으로 짐의 기거와 음식은 자네가 더 신경 쓰게.”“이것은 소신의 본분입니다!”목여 태감은 다소 감격하며 말했다.“자네는 짐이 원로 신하들과 얼마나 격하게 싸웠는지 모르네. 앞으로 자네가 옆에 있으면서 짐을 도와 몇 마디 해주시게. 도통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으니.”목여 태감이 안쓰럽게 말했다.“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폐하가 계신 곳에는 항상 제가 함께하며 결코 폐하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습니다.”우문호의 침울했던 눈빛이 갑자기 생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 선생이 언제나 그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었기에 큰 감사함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늘 그의 삶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하려 노력하고 있었다.우문호 부모님의 생신도 잊지 않았고 숙왕부의 어르신들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돌보며 곁을 함께 했다. 그와 동시에 원경릉은 자기 일도 바쁘게 처리하고 있었다.가끔 피곤하다고 느낄 때 그녀를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사라지곤 했다.“폐하? 지금 황후마마를 그리워하시는 것입니까?”목여 태감은 바로 그의 마음을 알아채고 웃으며 말했다.“시간도 조금 있으니, 소월궁으로 돌아가 황후마마와 함께 식사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좋네. 어서 돌아가세!”
목여 태감은 필요에 대한 결핍을 느꼈다.사실 우문호는 그가 힘들까 봐 걱정되어 그를 배려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태상황을 그렇게 오랜 세월 모셨으니 그의 노고가 매우 컸고, 그가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하지만 문제는 계속 바쁘게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가해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무공도 뛰어난 데다 신체 능력도 젊은이들보다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았다.갑자기 그를 쉬게 하면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그리고 현재 어서방이든 소월궁이든, 그가 비록 그곳에 있긴 했지만 우문호가 사람을 시켜 일을 처리할 때 그를 시키는 일은 전혀 없었다. 매번 그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 했다. 어쩌면 우문호가 그를 늙어서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태감!” 원경릉이 그를 불렀다. 그러고는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 요즘 늦게 주무시고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지셨네. 몸에 열이 많은 것 같은데, 태감이 보기에 어의를 불러 몇 해열탕을 몇 첩 지어야 할 것 같소?”목여 태감은 긴장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열이 오르셨다고요? 그렇다면 어의를 불러 맥을 짚어 봐야 합니다.”“맥을 짚을 필요는 없네. 내가 보아하니 열이 오른 것 같네. 태감이 약 몇 첩을 지어 잘 달인 뒤 어서방으로 보내 주시게.” 목여 태감이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인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아주 바빠 보였다. 다시 활력이 생긴 것 같았다.원경릉은 몇 자 적고는 녹주를 시켜 어서방으로 보내 우문호에게 전달하게 하였다. 의정 논의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에 들여보냈고, 그의 공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다.녹주는 쪽지를 받아 어서방 밖에서 기다리다가, 잠시 틈이 생기자 어전 시위에게 전달하며 황제께 전해 드리라고 했다. 이어서 황후 마마께서 보내신 것이라고 덧붙였다.우문호는 오늘 대신들과 아주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가 이전에 발탁했던 한
원경릉은 그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잘 생각 하셨소, 내 사람을 시켜 전골을 내오라 하겠소.”우문호는 고개를 돌려 아내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그는 스스로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큰 행운은 그녀를 만난 것이었고, 그녀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가슴 벅찼다.그는 그저 아톰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만약 아톰의 마음속에 일곱째 아가씨가 없다면, 아톰이 평생 장가를 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몇 마디 잔소리를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에 그는 안타까웠다.둘은 전골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날들이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우문호는 최근 공무가 바빠 식사 후에 보고를 가져와 검토하였고 원경릉은 옆에서 그를 보필하며 이따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밤은 고요했지만 아주 평화로웠다.보고를 다 읽었을 때는 이미 자시가 되어 있었다. 목여 태감이 이미 여러 차례 들어와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라고 재촉했었다.우문호는 아직 잠이 오지 않았지만 원 선생이 그 때문에 밤을 새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잠에 들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그에게 며칠 후에 어딘가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겸사겸사 양여혜가 이끄는 다른 팀의 신약 데이터도 살펴보고, 추 상궁의 피를 조금 뽑고 돌아가 검사해서 약의 억제 효과를 확인하려 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시 돌아와 조정을 해야 했다.“얼마나 가 있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일주일 정도. 나도 너무 오래 있을 수는 없소. 추 상궁 쪽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오.” 원경릉이 답했다.“그럼 좋소. 내 경호까지 바래다 드리겠소.”“필요 없소.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번거롭지 않소!”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우문호가 말했다. “알겠소. 아이들도 가고, 냉정언이랑 홍엽도 떠나고, 서일도 가고, 탕양도 가고, 이제 당신까지 가니,
“급한 일이 아니면 일단 잠시 미뤄 두게. 짐이 자네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으니…”“정말 급한 일입니다. 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탕양은 말을 마치자마자 예를 갖추어 인사하고 몸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치듯 달려갔다.우문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정말 재빠르게 도망치는군. 누가 잡아먹겠다고 했나, 그저 속마음을 좀 털어놓으려 했을 뿐인데. 저 이기적인 놈, 내 또 누구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겠나?” 목여 태감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폐하, 탕 대인께서는 폐하께서 잔소리하실까 봐 그러시는 겁니다!” “짐이 언제 잔소리를 했단 말이냐? 몇 번…아니 열몇 번, 많아야 백 번 정도 말했을 뿐이지 않나?” 우문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네 그럼요, 폐하께서는 잔소리하지 않으십니다!” 목여 태감이 웃으며 말했다. 황제가 탕 대인을 매우 아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었다. 황제는 그가 홀로 밖에서 고생하는 것을 안쓰러워하며, 집에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 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짐이 그를 설득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사람마다 뜻이 있는 법이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면 내버려두는 수밖에. 다만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네. 사람의 일생이란, 정말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꼭 붙잡아야 하는 법 일세.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가 되어 한평생을 되돌아보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겠나?”“짐도 잔소리가 좀 심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저 이 일에 대해서만 잔소리를 하고자 하는 것이야. 감정적인 일은 억지로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급하구나.”목여 태감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었다. 이전 사례로 보아 황제는 또 한동안 탕 대인 일로 잔소리를 늘어놓을 터였다. 탕 대인 일이라면 황제가 탕 대인보다 더 안달복달이었다.정말이지, 태감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황제만 애가 타 죽을 지경이었다.우문호는 소월궁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원경릉은 책을 보면
탕양은 손을 뻗어 일곱째 아가씨의 손등을 살짝 눌렀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지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안내인도 있고, 지도도 있으니, 독산 어디든 원하시는 곳에 가실 수 있습니다. 사람을 써서 사전에 모든 위험을 제거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지만 독산에 위험이 제거되면 관광지로 개발해 입장료를 받고 사람들을 들일 수 있습니다. 어떠십니까?”“관광지로 개발한다고요? 그거 참 기발한 생각이네요. 하지만 그렇다면 독산을 저 혼자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겠군요?” 일곱째 아가씨는 냉소했다.“15년 동안은 아가씨께서 독점하시고, 그 후에는 수익의 3할을 가져가시는 겁니다!”일곱째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개발, 물론 좋은 일이다. 좋은 곳, 좋은 경치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마땅하다. 게다가 그가 말한 것처럼 입장료를 받고 조정의 협력까지 더해진다면 꽤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향할 것이다. 어쨌든 조정은 다섯 곳의 성지를 발전시키려 할 테니,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게다가 황제는 현재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력을 쏟고 있었다. 경제가 발전되고 북당이 점점 부유해지니 돈을 좀 들여서 놀러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고, 이는 장기적인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다.그녀도 이제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해 봐야 했다. 독산은 정말 좋은 곳이고, 그녀의 꿈이 깃든 곳이다. 독산에서 여생을 보낸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었다.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원 가문의 퇴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계약하죠!”이렇게 성급하게 5백만 냥짜리 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평소 신중했던 일곱째 아가씨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부자에게 있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번쯤 돈을 쓰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었다.“일곱째 아가씨께서는 역시 호탕하시군요! 과연 여장부십니다!” 탕양이 웃으며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첨은 그만 하시고, 말씀하시지요. 제 안내인은 어디 있나요? 제가 직접 한번 가 보고, 정말 독산 전체를 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에요?”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공부에서 오는 길입니다. 복지 시설 건립 건에 작은 문제가 생겼거든요. 지금은 다 처리했습니다.” “탕대인께서 나서셨으니, 안 될 일이 없겠죠.” 일곱째 아가씨는 탕양의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하였다.그녀는 차 재료를 넣고 잠시 끓인 후, 탕 대인에게 따라 주며 말했다. “입술이 바싹 말라 다 트셨네요. 어서 드세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탕양은 차를 받아 들고 몇 번 불더니, 단숨에 마셔 버렸다. 차가 뜨거웠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말 몹시 목이 말랐던 모양이다.그가 두 잔을 마시고 나서야 일곱째 아가씨가 물었다. “저를 찾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탕양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상단에서는 혹시 약도성 재건 사업에 참여할 생각을 해 보셨는지요? 안심하십시오,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저는 민간 상단입니다. 어떻게 성 재건에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된다고 하셨으니, 분명 문제없을 겁니다.” 탕양이 말했다.일곱째 아가씨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탕 대인, 이런 좋은 일을 어쩌다 저희 상단이 맡게 된 것입니까? 혹시 대인께서 뒤에서 저희를 위해 힘써 주신 건 아니신지요? 어쨌든 호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은혜가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민간 상단이 약도성의 재건에 참여하려면 막대한 은화를 지출해야 하는데, 재건 이후 그녀의 상단에 돌아갈 이익은 아마 봉토 정도 일 것이다.약도성은 택란 공주의 영지이고, 철광이 많으며, 정세도 이미 안정되었으니 채굴은 시간문제이다.하지만 광산은 예로부터 조정의 소유였으니, 민간 상단에 봉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설령 봉토를 내린다 해도 쓸모없는 산지나 몇 개 주어질 뿐일 것이다.일곱째 아가씨가 이 일을 엄청난 호재라고 말한 것은 탕양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함일 뿐, 사실 그녀는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 탕양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홍엽이 조용하고도 냉정한 말투로 물었다. “공무를 보러 가는 것이냐?”“저는 원래 공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무를 보러 가는 것도 여행이라 할 수 있죠.”냉정언이 온화한 눈빛으로 냉명여를 바라보았다. “손자도 이제 다 컸으니, 함께 데리고 나가 바깥세상을 경험해 볼 때가 되었지.”냉명여가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의 눈빛은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이 집안에서 냉정한은 엄격했으며, 홍엽은 편애를 받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보완이 되었다.“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짐부터 싸야겠네요. 얼마나 가 있는 겁니까?”홍엽이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면 되니 일수는 생각할 필요 없다. 어쨌든 우문호는 항상 나에게 짐을 지우고 있었으니, 우리도 즐길 때가 되었지.”냉정언이 복수하듯 말했다.홍엽이 웃었다. “정말 그럴 만도 합니다.”그의 수양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 무척이나 기뻤다.홍엽이 우문호에게 품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자신과 수양딸 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수양딸임에도 우문호가 독점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과한 처사였다.황제가 된 사람들의 성격은 대체로 좋지 않았다.세 명의 사람과 한 마리의 원숭이가 조용히 성을 빠져나갔다. 흠차라고는 하지만 어떠한 허례허식도 없었다.그들이 떠난 뒤, 탕양도 약도성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탕양은 최근 몇 년 동안 바쁘게 일하며 많이 늙었고, 머리카락은 흰머리가 수북했다.그는 이전에 우문호의 최측근 신하였으며 지금은 우문호의 전반적인 심부름꾼이었다. 관직이 내려져 고용된 것이 아닌, 그저 유용한 사람으로써 투입된 것이었다. 그는 우문호에게 직접 보고를 올렸으며, 어떤 관청에서도 그를 관리할 수 없었다.근래 몇 년 동안 그는 병부에서 군사를 정리하고 호부에서 전국의 땅과 세금을 다루며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부에서 심사에 참여하고 형부에서 중대 사건을 옆에서 다루었다.황후는 탕대인이 벽돌과도 같아 필요한 곳 어디에서든 쓰일 수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능한 빠를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정의 은혜를 이어 갈 수도 있습니다.”냉정언은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 들였다.그리고 잠시 멈칫하고는 우문호를 바라 보았다.“그리고 공주님을 보살 피라는 말씀이시지요?”“역시 지혜로운 수보구나. 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꿰뚫어 보고 있어.”우문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폐하께서 공주님을 아끼시는 건 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인이 궁에 들어오기 전에 폐하께서 갔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짐이 생각 해보았지. 지금 때에 약도성에 들리면 이득이야. 조정을 향한 백성의 믿음도 생기고, 결코 짐이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 될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내가 조정을 떠나면 나에게 반심을 가진 자들이 모여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어. 자네를 수보의 신분으로 보내는 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네.”냉정언이 고개를 끄덕였다.“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 소인은 폐하께서 직접 가실 것 같아 설득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우문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짐이 자식들 때문에 나랏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으로 보이는가.”“공주님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요.”냉정언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소인이 폐하를 너무 얕보았나 봅니다.”“짐도 구분은 할 줄 아네. 쉽게 위험 속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야.”게다가 그는 집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아닌가. 냉정언이 답했다.“네, 알겠습니다. 홍엽 공자에게 일러 두겠습니다. 내일 출발 할 수 있게 말입니다.”“홍엽 공자도 가는 것인가?”우문호가 눈을 크게 떴다.“소인이 오랜만에 나가는 외출 입니다. 제 아들도 바깥 세상 한번 구경 시켜줘야 하지 않겠습니까.”우문호가 의미심장한 태도로 답했다.“그래, 명여도 데려가게. 사내 아이는 많이 둘러 보는 게 좋지.”“명어 그 아이는 홍엽 공자를 잘 따릅니다.”냉정언이 말했다.“그래, 네가 누굴 데려가든 상관없다.네가 가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우문호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말을 끝나
하지만 새해의 기쁨도 초 닷새 날까지뿐이었다.초 엿샛날이 되자 각 부서들이 하나둘씩 출근하기 시작했다.우문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출근 때문이 아니라 택란이 약도성에 다녀오겠다는 말 때문이다.약도성은 큰 화재 때문에 재건설을 했다.그녀는 직접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게다가 형제들도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원경릉은 우문호를 하룻 밤 내내 설득하기 바빴다.곧이어 우문호는 위왕과 안왕에게 임무를 주었다. 강북부에 도착하면 즉시 그에게 보고를 하라는 내용이었다.위왕과 안왕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왕의 위치에 오르니 사람도 변한다는 사실이 와닿았다.우문호는 한 사람씩 배웅을 해주었다.하지만 아이들은 반겨 하지 않았다.그들의 삼촌을 지켜줘야 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문호는 자신의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옆에 있던 서일도 같이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 이유는 출장 비용을 황후가 흔쾌히 내어 주기 때문이다.아이들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역란은 자신이 벌써 열 살이라며 강조했다.나이가 어떻게 되든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다.“역란아, 아바마마가 마음이 아프다.궁에 남아 나와 더 놀아주지 않겠어?”마차가 지나가고, 경단이 역란에게 물었다.“이만하면 됐습니다. 조금만 더 지내면 싫어하실 거예요.”역란이 혀를 내밀고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이고, 이 녀석아.”경단은 역란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적당한 거리가 아련함을 만든다.’마차가 천천히 성 밖을 나갔다.한편, 어서방 안.30분 전, 우문호가 냉정언에게 바둑을 두자고 불렀다.몇 판을 졌지만 우문호는 화도 내지 않고, 바둑판을 엎지도 않았다.다음 판이 또 시작되자 냉정언이 그를 말렸다.“폐하, 무슨 일이 있으시면 말씀을 하세요. 계속하셔도 저한테 질 뿐입니다.”“지지 않을 걸세!”우문호가 그를 노려 보았다.냉정언이 차를 한 입 들이켰다.“그래서 무슨 일 이십니까?”우문호의 인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