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이 안 갔어요?” 원경릉이 물었다.“주진이 감히 어딜 와! 태상황 폐하와 소요공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지. 주 재상이 수술받으러 갔을 때 주진이 와서 시간을 끌어줬거든. 지금 태상황 폐하는 주진을 쳐다보시기는커녕 이름만 들어도 화를 내신다니까.”원경주와 원경릉은 웃음이 터졌다. “그렇구나. 뒤끝 있으시지.”“더 웃긴 건 아빠가 그분들께 여기 상황, 네 신분을 설명하신 건데, 결과적으로 양쪽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지금 그분들은 아빠와 그쪽에 있는 황 씨 부인이 불륜관계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계셔.”원경릉은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쩌다가 그런 큰 오해를 낳은거지? 제대로 얘기해 봐요. 오빠. 단순하게 넘어갈 일이 아닌데… 제가 그분들을 데리고 나가야겠어요. 제가 그분들께 잘 설명할게요. 일단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그분들이 의혹을 풀 시간이 그렇게 없는 건 아니니까, 사흘 밤낮을 설명해도 다 못하지만… 3개월은 돼야 돌아갈 수 있으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요.”원경주는 이 말을 듣고 솔직히 기뻤다. 앞으로 3개월간 동생이 여기에 있다는 소식에 말이다. 지난번 돌아왔을 때 2~3일 만에 돌아가서 밥도 서둘러 먹었는데 이번엔 3개월을 있으니 만약 우문호도 있다면 결혼식도 할 수 있다.아쉽게도 지금 시공간 터널을 이용할 수 없어 우문호가 올 수 없어 이 좋은 기회를 버리게 생겼다.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3개월 후엔 시공간 터널이 열릴 테니 곧 눈앞의 일이 아닌가? 이 3개월의 시간 동안 열심히 준비를 하면 된다. 결혼 준비를 하는데 다소 적은 시간 이긴 하지만 말이다. 집안에 큰 경사를 치를 생각을 하니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발이 가벼운 게 날아갈 듯 병원으로 향했다. 원 교수 부부는 병원 주차장까지 그들을 맞이하러 나왔다. 딸이 무사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원 교수 부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가슴 속에 납덩이같은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그들은 그동안 못했긴 이야기를 하며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너….!” 태상황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이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마구 비벼댔다. 원경릉이 들어온 것을 보고 벌떡 일어섰다가 긴장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기쁨과 흥분의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어, 태자비 마마!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소요공도 원경릉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원경릉을 보더니 다시 계속 티비로 눈을 돌렸다. 주 재상이 살짝 고개를 들더니 미소가 서서히 번졌다. “태자비 마마께서 드디어 돌아오셨군요!”주 재상은 수술을 마친 요 며칠 동안 진전이 빨라서 머리에 아직 붕대를 감고 있기는 했지만 정신은 상당히 또렷해졌다.병실 밖에 아무도 없는 관계로 원경릉은 법도대로 세 사람에게 예를 취하자, 예법을 본 세 사람은 일종의 격세지감 같은 것을 느꼈다.태상황이 원경릉을 끌어다 앉히고 뚫어지게 바라보며 티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원경릉을 위아래로 쭈욱 훑어보더니 물었다. “괜찮아?”“네, 괜찮아요.” 원경릉은 태상황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데 셋을 며칠 떼놓고 있었던 게 정말 미안했다.태상황이 눈빛을 빛냈다. “괜찮다니 됐어.”주 재상은 팔꿈치로 지탱하던 머리를 다시 들고 원경릉을 보며 부러운 듯, “태자비 마마는 어떤 의원에게 수술을 받으셨습니까? 어떻게 이렇게 금방 좋아지셨어요? 전 아직 며칠 더 있어야 걸을 수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퇴원해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요양을 해야 해요.”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제가 나이가 어려서 그래요. 어쩌면 체질적으로 제가 좀 좋을 수도 있고요. 재상께서는 퇴원하신 뒤에 몸을 잘 보살피시고 운동 잘 하셔야 돼요.”“그럼요, 이번에 큰 고비를 맞고도 안 죽었는데 당연히 몸을 소중히 관리해야죠! 마음에 담은 사람을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행운입니다.” 주 재상 답지 않게 감동적인 말을 했다.소요공은 티비를 보고 있다가 이 말을 듣고 주 재상을 째려봤다. “너 말을 왜 그렇게 해. 우리 다음 생에 못 만날 것처럼 말하냐! 이번 생에 누가 먼저 가도 다음 생에 전부 같이 만나
“노인이요?” 원경릉이 백발이 성성한 소요공 머리를 보며 ‘지금 우리 아빠를 노인이라고 하는 건가?’“그래요, 그 흰옷 입은 노인 말이에요. 그날 우리한테 와서 뭐라고 막 얘기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도 난처하지 않게 해드렸어요. 어쨌든 태자비께서 설명해 주실 테니까.” 소요공이 주 재상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다리가 영 불편한지 이불을 마 차더니 좀 편해진 모양이었다. 아주 대감마님 포스를 보여주었다. 소요공이 이 말을 꺼내자 다들 기대하는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봤다.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일단 좀 기다리세요. 가서 휠체어를 가져올 수 있나 물어볼게요. 재상 데리고 햇볕 좀 쐬러 나가요.”“드디어 나갈 수 있겠어!” 소요공이 길게 기지개를 켜며 기쁜 듯이 외쳤다. “이렇게 계속 답답하게 있다간 병날 뻔했어요!”원경릉이 오빠를 찾아가 얘기하니, 원경주가 데리고 갈 수 있지만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간호사를 시켜 휠체어 2개를 가지고 왔다.몇 명이 소요공을 휠체어야 앉히는 걸 돕고, 다시 주 재상을 침대에서 내려 휠체어에 앉혔다.태상황이 소요공을 밀고, 원경릉은 주 재상을 밀어 네 사람이 병실을 나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나 이거 알아요. 그때 우리가 바로 이걸 타고 여기로 올라왔었죠!” 소요공이 신기해하며 말했다.원경릉이 엘리베이터를 눌러 다들 들어가시라고 한 뒤 설명했다. “이건 엘리베이터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람이 계단을 걸을 필요 없이 빠르게 20층에서 1층으로 오르내리게 하는 장치예요. 아주 편하죠.”“엘리베이터?” 세 사람은 이 신기한 문물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아는 원경릉 앞에서는 아는 척할 필요 없으므로 원경릉이 의혹을 풀어주길 기다렸다.“엘리베이터와 어르신들이 병실에서 보시던 티비, 심지어 우리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 예를 들어 밥하고 물 끓이고 씻고 일하고 하는 일들은 전부 전기와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아직 우리 북당엔 이런 게 발명되지 않
세 사람은 곧 자세를 바로 하고 일제히 원경릉을 바라보며 조용히 설명을 기다렸다.잠시 후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릴 때 의문이 들더라도 일단 제 말을 자르지 마시고말을 마친 후 물어봐 주세요. 괜찮으시죠?”“그래, 얼른 얘기해 봐!”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요공은 주 재상 머리를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꽉 싸맨 뒤 고개를 돌려 원경릉에게 말했다. “말씀하세요. 이해 안 되는 건 일단 기억해뒀다가 물어볼게요.”“저는 사실 북당의 사람이 아닌, 이 시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약품을 연구하는.....”원경릉의 첫 마디에 모두 놀라서 수많은 질문을 묻고 싶었으나 그저 의문을 삼킨 채 원경릉이 계속 얘기하는 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저도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동종업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대한 대증 요법의 약품을 개발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점점 대뇌 개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대뇌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사용하는 건 아주 극소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당시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만약 우리가 열쇠가 되는 약품만 개발할 수 있다면 숨겨진 잠재력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힐 수 있는 게 아닐까?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아질 거야. 마침, 저와 같은 연구 방향을 가진 생명과학 투자자가 절 찾아내 저에게 최고의 조건을 제공해 주며 제가 오직 그쪽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해 주겠다고 했어요. 시쳇말로 대뇌를 여는 열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제 연구는 조금씩 성과를 내면서 처음엔 원숭이 몸에 실험했죠. 실험이 아직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약간 미흡한 게 보이니까 계속 개량해서.... 그때 전 흥분으로 일종의 주화입마(走火入魔) 상태였어요. 결국 영장류를 스킵하고…. 원숭이 몸에 실험하고 바로 저 자신에게 이 약품을 주사했어요. 이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 거죠. 약의 강력한 기운을 감당할 수 없었던 제 신체는 코마 상
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여러분들만 좋으시면 어디든지 모시고 갈 수 있죠.”태상황이 입을 열었다. “난 여기 군사 역량을 좀 보고 싶어. 참고로 할 만한 곳을 좀 봤으면 하는데.”원경릉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건 만족시켜 드리기 어렵겠는데요. 여기서 저는 그저 일반 백성에 불과해서요.”“권문세가는 귀족이 아닙니까?” 소요공이 경건하게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권문세가의 귀족 출신이 아닌 사람이 이렇게 큰 능력을 갖추고 있어 사람의 몸을 제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사회생시킬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다니, 이런 의술이 북당에 있었으면 받들어 모시고도 남았다.원경릉이 미소를 지었다. “여기엔 소위 권문세가 귀족이란 게 없어요. 관리의 자제라도 특권이 없고 보통 사람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시험을 봐요. 물론 돈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 유학을 갈 수도 있고 견문을 더 넓힐 수 있죠. 그리고 이 세계엔 노비가 없어요. 돈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고용해 일을 시킬 수 있지만 법률이 이 사람들을 보호해 이들도 고용주와 마찬가지로 평등한 권리를 가졌어요. 싫으면 바로 그만둘 수 있는 거죠. 노비문서가 존재하지 않아요.”삼대 거두는 서로 쳐다봤다는데, 모두 당황스럽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관리의 자제도 일반 아이들과 같다고? 이게 진정한 의미의 공평일까?’“이.. 이렇게도 세상이 돌아가나?” 태상황이 중얼거렸다.원경릉은 사실 이들에게 하려는 말이 더 있었다. 이 세상이 표면적으로는 공평한 듯해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일부 숨겨진 규칙이 있어 권력자나 부자는 일반인보다 많은 기회를 가지지만 적어도 가난한 사람과 평민도 경쟁의 기회는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3개월의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얘기하며 저들에게 이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혀주는 것이다.원경릉은 셋을 병실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갔다.삼대 거두는 꽤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원경릉의 신분이나 그녀가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왕조가 바뀌는 대다수 원인은 하층계급의 백성이 살기 어려워 무장봉기 외에는 다른 살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나라처럼 모든 사람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기회를 가진다면 적어도 원망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이것이 어쩌면 그들이 이번에 현대에 온 진정한 의의일지도 모른다. “다섯째가 한 번 와야겠어.” 태상황이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를 데리고 처가에 가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뵙는 게 마땅했다.태상황도 흔쾌히 응했다. “과인이 여기에 의지가지 하나 없는 게 아니라 어찌 됐든 사돈이 여기 있으니, 절반은 이쪽 사람인 셈이지. 과인이 마음속으로 계속 께름칙했던 게 정후 이 인간이 과인과 사돈이란 사실이었는데, 지금 태자비 말을 들어보니 과인이 께름칙할 필요가 전혀 없어.”“맞아요!” 소요공과 주 재상과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정후가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밉상도 그런 밉상이 없다. 원경릉이 집으로 돌아간 뒤 한참 있다가 만두가 돌아와서 엄마를 보고 기뻐하며 초왕부에서 생긴 일을 시시콜콜 엄마에게 알렸다. 예를 들어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여동생이 이제 젖을 토하지 않는다든지, 여동생에게 작은 반려동물이 생겼는데 그 반려동물이 주인을 알아볼 수 있고, 다 자라면 봉황이 된다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했다. 원경릉이 만두를 안고 가만히 그 얘기를 들었는데 기쁘면서도 그리운 감정이 들었다.원경릉은 만두가 초왕부로 돌아가면 아빠에게 주 재상이 이제 괜찮고 태상황과 일행이 천천히 여기에 적응하고 있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고 다 아주 좋다. 돌아가기까지 3개월가량 시간이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3개월로 부족할 수 있지만 그분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전해달라고 했다.만두를 안고 있는데 그 조그만 얼굴을 원경릉의 손에 대고 빨개진 눈으로, “전 엄마를 볼 수 있지만 아빠랑 다른 사람들은 못 봐요. 다들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는걸요. 정말
원경릉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엄마, 아빠 도움 없어도 돼요.”그러자 원경릉 엄마가 놀라서 물었다. “우리 돈이 필요 없어도 된다니? 그럼, 네가 어떻게 사게?”원경릉이 말했다. “제가 소요공에게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돌아가서 갚는다고 하면 돼요.”“그분이 가지고 계시…. 아, 네 아빠가 그러시더라, 그분이 금을 아주 많이 가져오셨다고. 그 금 가치가 단지 황금 가격만은 아닐 거라던데. 전부 골동품이라.” 원경릉이 엄마가 기쁜 듯 말했다.“응, 금 가치는 잘 모르지만, 값나가는 걸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원경릉이 말했다.소요공뿐 아니라 태상황과 주 재상이 지닌 구름무늬 벽옥비녀, 옥가락지 등도 상당했다.“그러네, 그럼 내가 바로 맞은편 부동산에 전화해서 물어보마! 그 집 전화번호 있거든. 그쪽에서 급매로 내놓은 거면 우리가 가격을 좀 다운시킬 수도 있고.”“네, 그리고 아빠께 골동품 수집가 좀 찾아봐 주시라고 해주세요. 정말 가치를 아는 수집가가 필요해요.”원 교수는 업계에서 저명한 인물로 적지 않은 권력가와 부유층을 환자로 두고 있다. 더불어 환자와 관계가 매우 좋고 가끔 왕래가 있어 골동품 쪽에 지식이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원경릉 엄마는 부동산에 전화한 뒤 모녀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다. 병원 밥이 입에 안 맞는 어르신들에게 진짜 집밥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국을 끓이고 엄마가 잘하는 반찬 몇 개를 만들었다. 원경릉은 운전하는 대신 택시를 잡았다. 여기 면허가 없기 때문으로 바로 병원으로 갔다.병원 밥은 확실히 밍밍하고 맛이 없었다. 삼대 거두는 나이가 많아 미뢰가 약간 퇴화해서 병원의 밍밍한 음식은 별로 먹지 않았는데, 안사돈이 한 음식은 싹 비워서 뒤에도 계속 그걸 먹고 싶다고 투덜거리며 병원 밥을 안 먹었겠다고 했다.원경주도 병실에서 이 얘기를 듣고 웃음이 터지고는 몰래 원경릉에게 말했다. “네가 없을 때는 저분들에게 이거 드세요 하면 드시고, 저거 하세요 하면
원 교수는 의사로 오랜 시간 지내며 많은 인술을 베풀어 왔다. 여러 분야의 엘리트들을 치료해 왔고 그 중엔 정상급 부호들도 있었지만 원 교수는 한 번도 사례를 받거나 특혜를 받은 적이 없었다. 상대의 신분이 어떻든 그들은 원 교수에게 늘 한 가지 신분, 환자였다.하지만 역시 여러 사람과 교류하다 보니 사귄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 어느 그룹 회장이 있는데, 얼마 전에 갑자기 심근경색을 일으켜 원 교수가 심장 스텐트 수술을 했다. 퇴원한 뒤 계속 원 교수에게 돈을 보냈으나 원 교수가 완곡하게 거절했다.회장은 이름이 꽤 알려진 사람으로 회사가 크기도 하지만 이름난 수집가로 도자기, 옥기, 목기, 명화, 보석과 장신구, 특히 골동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원 교수도 회장의 그런 취향을 잘 알기에 믿을만한 수집가가 없냐고 원경릉이 물었을 때 제일 먼저 회장을 떠올렸다. 원 교수는 회장에게 톡을 보내 약속 시간을 잡았다. 용건은 봐줬으면 하는 물건이 몇 가지 있다는 것으로 마음이 맞으면 팔려고 한다 했다.회장은 흔쾌히 응했다. 그는 원 교수가 뭔가 소장하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고, 그저 상대가 전에 완곡하게 자신의 사례를 거절했으나, 이제 신중하게 개인적 약속을 잡는 방식으로 사례를 요구하려는 것이겠지 생각했다.회장은 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어쨌든 원 교수 덕분에 자신의 목숨을 건졌으니 보답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가 너무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소위 소장품이라고 하는 걸 사주겠다고 마음 먹었다.‘의사 나부랭이가 무슨 소장품이 있을까? 살 수도 없고 감당도 안 되겠지.’원 교수는 카페에서 약속하고 원경릉과 함께 갔다. 원경릉이 동행한 건 아빠가 너무 솔직한 분이라 상대가 가격을 후려칠 것 같아서였다. 원경릉은 북당에 있으면서 마음이 전처럼 그렇게 약하지 않고 누가 부유한 상인이고 누가 사기꾼인지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 회장님!”“원 교수!”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치레를 몇번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