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요. 우선 병원부터 가야 해요. 당장이라도 수술을 받으셔야 해요.” 원경릉이 주재상을 보며 말했다.주재상이 의혹의 빛을 띠고 한참 망설이다가 물었다. “말씀하신 수술 치료라는 게 도대체 어떤 겁니까? 치료한 뒤에 제가 눈을 다시 쓸 수 있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건가요?”주재상은 원래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고, 단지 원경릉을 옆에서 지키고자 온 것이기에 자신의 수술에 대한 문제를 이제서야 제대로 고민하게 된 것이다.“그럴 가능성이 커요. 재상, 안심하셔도 됩니다!” 원경주가 원경릉을 대신해 답하고는 끝에 한 마디 더 보탰다. “저는 당신의 집도의로 유사한 수술을 많이 진행했으며 이번보다 훨씬 복잡한 수술도 다 진행했어요. 성공률이 매우 높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주재상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전 두려운 게 아니라, 단지….”“단지 태상황 폐하와 소요공이 곁에 계시기를 바라실 뿐이죠?” 원경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오랜 기간 의사 생활을 해 왔기에 곧 큰 수술을 받을 사람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속으로 무엇을 망설이고 어떤 심리적인 의지가 필요한지 말이다.주재상은 부인하지 않고 가만히 한 마디만 더했다. “저는 그저 그들의 평안한 모습을 보고 싶을 뿐입니다.”원경릉은 주재상이 두 사람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에 한 가지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우리 다 기다릴 필요 없이, 제가 우선 재상과 병원에 가고 만약 양 선생님이 두 분을 찾으면 모시고 병원으로 와서 우리와 합류하는 것으로 하는 거예요. 어때요?”주 재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원경주가 바로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원경주는 바로 차를 수배해 로양에게 감사 인사와 간단한 설명을 한 뒤 차를 몰고 떠났다.주 재상은 보이지 않아 자신이 타고 있는 차가 어떤 차인지 모르지만, 속도감은 잘 느낄 수 있었기에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이건 도대체 무슨 마차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지? 이렇게 달리면 하루에 천리라고 가겠어!’이 나라가 북당을
주재상은 실명한 탓에 귀가 예민해져 원경릉과 엄마의 대화를 듣고는 순간 의구심이 들어 자신을부축하고 있던 주진에게 물었다. “태자비 마마께서 말하는 분께서 마마의 사부님이십니까?”주진이 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원경릉 오빠가 대신 말했다. “마마의 부모님이세요. 저는 마마의 오빠고요.”그러자 주재상은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그럼 정후께서 이 곳에 계신단 말입니까? 마마의 오라비시면? 원륜문이 아닙니까? 어째서 목소리가 다른가요?”원경주는 약간 멍해졌다. 주재상은 얼굴에 의혹의 빛이 가득한채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은 데리고 왔으면서 아직 제대로 얘기를 안 한 것 같은데? 설마 유괴해서 데려온 건 아니겠지?’라며 생각했다.원경릉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일단 들어가서 다시 얘기해요.”…한편, 어떤 병원 응급실에서는 나이 든 엑스트라 두 명이 교통사고로 이송되었다. 같이 온 사람은 울상을 짓고 있는 사람으로 두 사람은 얌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응급실에 이송된 뒤 얼마 후 한 간호사가 와서 물었다. “다치신 분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 약물 알레르기 있으세요? 앓고 계신 지병이 있으신가요? 최근 어떤 약을 사용하셨죠?”두 사람은 벙찐 채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모르는데요. 우리 차 두 대가 접촉 사고를 내서 병원으로 데리고 온 거예요.”간호사가 미간을 찡그렸다. “경찰은요? 그럼 경찰부터 불러서 조사해야죠.”두 사람이 놀라서 물었다. “아직 경찰에 신고 안 했어요!”간호사가 ‘어머’하며, “경찰에 신고를 안 하고 어떻게 보상 책임을 져요?”라고 답답한 듯 물었다. 두 사람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쭈뼛거리며 말했다. “순간 당황해서 생각을 못했습니다.”“치료만 해주시면 우리는 보험이 없으니 보상 책임을 따질 필요가 없어요. 얼마가 나오면 둘이 나눠 내면 됩니다.”그러자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었다. 이렇게 책임감이 부실한 사람들을 대하는 게 일 년에도 여러 차례였기에 치가 떨렸다. “의료비와 약제비는 나누실
“1번!”“1, 다음은요?”“그냥 1번!” 간호사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는데, ‘혹시 이 분들 머리 부딪힌 거 아닌가요?’ 하고 묻는 듯 했다.의사도 역시 우선 검사부터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태상황에게 물었다. “지니고 계신 돈 있으세요? 두 분 상황이 당분간 생명의 위협은 없으므로 이어지는 검사는 먼저 수납부터 해야 해서요.”“나 있지!” 소요공이 순간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그제서야 응급실에 의사와 간호사들이 전부 안도하며 소요공이 소매 속에서 꺼내는 물건을 바라보았는데… 웬 금덩어리?!“왜 금을 가지고 와? 종이돈은 안 가지고 왔어?” 태상황이 꾸짖었다. “종이돈을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금은 공용이잖아요!” 소요공이 말했다.의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어르신, 드라마 소품은 넣어두세요. 가족 전화번호를 기억 못 하시겠으면 제가 주임에게 물어볼게요. 일단 검사부터 하고 수납할 수 있는지 봐야겠어요. 사실 두 분 연세에 차 2대에 치이신 거면 상황이 매우 심각한게 정상일텐데 초기 검사결과로는…. 에휴, 됐습니다. 일단 엑스레이 부터 찍으러 가시죠.”의사가 두 사람을 보고 아이러니를 느낀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이 둘이 처음에 왔을 때는 허리가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고 했는런 지금은 일어나서 다리도 움직일 수 있고 아픈 증상이 없는 것이 오히려 머리에 좀 문제가 있어 보였다. 계속 영문을 모르겠는 말과 영문을 모르겠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예를 들면 주사기를 무는 게 마치 예전 시대에 담뱃대를 무는 모습과도 같았다.의사는 돌아 나가며 간호사에게 계속 그들에게 이름과 집 주소 및 가족 정보를 물어보라고 했다.“어르신” 간호사가 노트를 들고 한숨을 쉬며, 이름, 나이, 집 주소등을 물어보았고, 태상황이 답했다. “과인은 우문호, 52세, 과인은 평생을 황제와 태상황을 역임했다네.”소요공이 킥킥 웃었다. “고작 52세라고? 72세겠지!”태상황이 얼굴을 굳히고는 엄숙한 목소리로
두 사람을 검사실에 보내자 의사가 금을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잘 뒀다가 나중에 저분들께전해주세요.”간호사도 금을 들어보니 꽤 무거워서 무게를 재자 정말 금 열 돈의 무게와 같았는데 색을 보니 순금 같지는 않았다. ‘요즘은 드라마 소품을 이렇게 진짜 같이 만드나?’간호사가 잠시 생각해 보다가 얘기했다. “주임님께 좀 봐달라고 하죠, 만약 정말 금이면 잃어버리면 큰일이니깐요.”…소요공과 태상황은 CT실에 도착했다. 태상황은 방금 진짜 이름과 신분을 얘기한 것을 생각하고 나중에 문제시되지 않을까 싶어 소요공에게 잔소리해댔다. “저 사람들이 또 물으면 넌 자기 이름이랑 신분 얘기하지 마. 아무것도 기억 안 난다고 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지 않는 틈을 타 우리 몰래 달아나자. 조금이라도 빨리 산으로 돌아가야지. 다들 산에서 얼어 죽었을까 봐 걱정이야.”소요공이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들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잖아요. 우리가 꼭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그러니까 말이다.. 일단 지켜보자고. 먼저 모험하지 말고. 어쨌든 길도 낯설고 정말 무슨 상황이 생기면 금위위가 없는 상태니까.” “알겠어요. 태자비 마마를 번거롭게 해선 안 되죠, 기억하겠습니다.” 소요공이 말했다.CT실 문이 닫히자 간병인이 두 사람 몸에 금속을 지닌 게 없는지 묻고는 전부 벗으라고 했다.소요공이 ‘알겠다’하고는 소매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데 금 한 덩이, 두 덩이, 세 덩이, 네 덩이, 다섯 덩이.... 수도없이 나왔다. 태상황이 멍하니 보더니 놀라 또 잔소리를 해댔다. “넌 뭘 그렇게 들고 왔어!”“돈이 없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들잖아요. 궁에만 오래 계셨는지 바깥세상 현실을 아무것도 모르시네요.제가 금을 좀 가지고 있어야 그나마 먹고 마실 걱정이 없죠.” 소요공이 말했다.CT실 의사와 간호사는 눈이 커지고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 정말 금이야?’간병인이 빼놓은 금을 잘 보관해 두고 순서대로 들어가게 한 뒤 CT를 찍었는데 무슨 전
주재상이 고분고분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원경릉은 바로 주진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소식이 있었는지 물었다.주진도 전화를 걸어봤는데 양여혜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주진은 원경릉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아직 찾고 있는데 산이 너무 커서 아마 한두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원경릉은 조금 걱정이 됐다.CT촬영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릴 필요 없이 병실로 올라갔는데 원 교수는 주 재상을 위해 1인실을 배정해 주었다.주 재상이 온 지 10여 분이 채 되지 않아 원 교수가 보고서를 들고 와서 주 재상과 원경릉에게 얘기했다. “네 추측과 별반 차이 없이 뇌경부에 출혈이 있고 핏덩어리가 신경을 압박해 실명을 일으킨 거야. 지금 아직 신경이 괴사한 흔적은 없지만 시간을 더 끌 경우 좋지 않을 수 있으니, 수술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겠어. 그러니 내일 하도록 하지.”원경주가 CT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빠. 그럼 이 수술은 제가 하죠.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니깐요.”“좋아, 네게 맡기마!” 그러고는 원 교수가 주재상을 바라봤다. 이 사람이 만두와 우문호에게 듣기로는 북당의 중신이며 재상으로 평생을 북당을 위해 노심초사한 충신이라고 했다. 원 교수는 이런 위대한 인물이 자신의 앞에 있으니 숙연한 마음과 함께 존경심이 들었다.막 몇 마디 인사를 나누려는 찰나 주재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를 맡았어요. 분명히 십팔매입니다. 태자비 마마 어서 나가 보세요. 그들이 찾아왔어요!”원경릉이 듣자마자 막 문을 밀어서 열려고 하는데 간호사 하나가 달려오며 원경주에게 말했다. “원 선생님, 방금 환자 두 분이 응급실에서 왔는데, 56, 57번 베드로 호 선생님께서 원 선생님이 좀 와서 봐주셔야겠다고 하셨습니다. 환자 두 분은 뇌진탕인데 2회 토했고 얌전히 있지를 않고 계속 도망 다니신다고 합니다.”“제가 가서 보죠.” 원경주가 말했다.간호사가 주 재상을 흘끔 보더니 신기해했다. “정말 신기하네요, 56, 5
원경릉은 화들짝 놀랐다. 태상황이 진지하게 청진기를 꽉 쥔 채 주변 의사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자신에게 건네주는 것을 보니 저 청진기는 이 의사에게 빼앗은 모양이었다.원경릉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도망치기도 힘든 상황에 자신을 잊지 않다니. 원경릉은 청진기를 받아 들고, “어떻게 절 위해 이것까지 신경 쓰실 생각을 다 하셨어요?”태상황이 입을 열었다. “여긴 내가 모르는 곳인 데다, 사람들이 다 소복을 입고 있어서 과인이 영 마음이 헛헛했는데 이걸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놓였거든.”소복? 원경릉이 무심코 태상황의 눈이 향한 곳을 따라가 보니 옆에 서 있는 의사와 간호사로, 그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 이거 심각하게 오해하셨네.’“주 꼬맹이는?” 태상황이 다시 물었다.원경릉은 소요공도 그렇고 둘 다 걱정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얼른 대답했다. “괜찮으시니 걱정하지 마세요. 막 검사 마치고 병실로 오셔서 수술을 기다리시는 중이세요.”“그럼 우리 셋이 같이 있게 해주면 되겠구먼!” 소요공이 얼굴을 들었다.원경릉은 오빠에게, “그렇게 할 수 있어? 저분들 떨어져서 못 지내시거든.”오빠가 말문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할 게. 재상께서 이 수술이 어떤 건지 이해를 잘 못하셔서 긴장하고 계시더라. 있다가 수술을 위해 이발할 때는 더 긴장하실 수 있는데 친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훨씬 나으실 거야.”원경주가 호 의사에게 얘기했다. “호 선생, 내가 조치하면 되니까 가서 일 봐요!”“그러죠!” 호 의사는 두 노인을 한 번 더 바라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드라마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저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게 호칭이나 대화가 꾸밈이 없었다.병실을 옮기며 두 사람 짐을 챙기던 원경릉은 소요공의 침대에서 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누런 비닐봉지가 묵직했는데 들려고 하자 옆에 있던 호 의사가 얼른 얘기해 줬다. “이 구리 덩어리 무거워서 바닥을 받치고 들어야지, 안 그러면 봉지 찢어질걸요.”구리
“신고했다고요? 그럼, 사정 청취가 있지 않아요?” 원경릉이 놀라서 태상황과 소요공을 바라봤다. 두 사람은 신분증이 없는 불법 체류자인 데다가 말이 영 앞뒤가 맞지 않고 뒤죽박죽이라 금방이라도 들통날 게 뻔했다. “우린 아무것도 몰라.” 소요공이 여전히 경계하는 투로 말하자 원경릉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맞아요, 계속 그렇게 모른다고 얘기하셔야 해요!”어쨌든 이미 CCTV에 두 사람이 찍혔으니, 경찰들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이때 주진이 원경릉에게 전화해 시간이 얼마 없으니 인제 그만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주재상의 수술이 마치고 가려 했으나 주진은 주재상 수술은 빠르면 빨랐지, 난이도도 그렇게 높지 않으니 지키고 있을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원경릉의 엄마도 집에 만두가 왔으니 일단 집으로 오라고 했다.원경릉은 계속 정신이 없던터라 그제서야 자신의 가족들이 생각났다. 우문호가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모두 안전하다는 소식을 빨리 전해줘야 했다. 원경릉은 곧바로 태상황 일행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원경주의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원경릉이 나가자, 태상황이 원경주에게 물었다. “태자비는 자네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제 여동생입니다!” 의혹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태상황에게 원경주가 웃어 보였다. “일단 이 일은 제 동생이 와서 자세히 설명해 드릴 겁니다. 세 분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동생은 다른 곳에서 치료를 받을 겁니다. 다들 금방 좋아지셔서 같이 북당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태상황이 원경주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불현듯 입을 열었다. “그럼 자네가 바로 태자비의 사촌 오빠인가?정후의 큰 조카?”우문호는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호송되어 올 때 태자비와 사촌 오빠라고 불리는 사람이 같이 우문호의 상처를 돌봐줬다는 얘기를 일부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태상황은 이 상황을 전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가 지금 원경주의 말을 듣고 따져보니 앞뒤가 딱 들어맞았다.“맞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러자 세 노인은 어리
원경릉과 일행이경호를 떠난 뒤에도 우문호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호숫가에 앉아 있었다. 속에서 뭔가를 캐내 간 듯 가슴이 뻥 뚫린 상태였다.아이들은 그런 우문호 곁을 지켰고, 한참을 만두가 잠들었다 일어나서 ‘엄마 아직 안 왔데요.’ 한마디 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다. 원경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에 우문호는 금방이라도 경호에 뛰어들고 싶었다. 현대로 간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아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안전하게 도착했을 거라고.. 분명 그럴 거라고.. 긍정적인 생각만 했다. 한편, 안풍친왕 부부는 이미 도장으로 돌아가 버려서 잘 떠났는지는 우문호도 몰랐다. 나 장군과 서일은 경호 위쪽의 정자에서 우문호 일행을 지키고 있었다. 태자비 일행이 뛰어들어 사라진 것만 알지 우문호처럼 경호 아래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그들은 태자비와 태상황이 한 순간에 경호로 사라진 게 당황스러웠다. 원경릉과 태상황 일행이 사라졌을 때부터 서일과 나 장군 마음속엔 그들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차고 있었다.날이 밝을 때까지 지키고 있자, 드디어 만두가 깨어났다. 우문호는 만두를 끌어안고 핏발 선 눈으로 만두를 바라보았는데 차마 입을 열지는 못했다.그러자 만두가 우문호의 목을 끌어안고 속삭였다. “엄마를 봤어요. 엄마 잘 도착하셨어요.”우문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서야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우문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긴장하고 있었던가.’ 눈물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안도하는 그 순간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순식간에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 내려갔다. 아이들도 한시름 놓고 하나둘 우문호를 안더니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곁에 있던 서일과 나 장군 또한 원경릉이 무사하자 매우 기뻤는데, 함께 펑펑 우는 그들을 보자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혹여나 아이들이 볼까봐 아무리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