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경릉은 이런 수술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지만 꽤 힘들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양여혜를 믿기로 했다. “그럼, 전부 선생님께 맡길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수술의 중요한 부분은 제가 담당하지만, 일부 선생님들께서 도와주러 오세요. 지금 수술실을 준비하고 계시고요.” 양여혜가 고개를 돌려 주진에게 말했다. “주진씨는 기본적인 검사랑 준비를 진행해 주세요. 수술은 3~4시간 후에 진행될 예정이고 수술 전에는 공복을 유지해야 하니 배가 고파도 꼭 참으세요. 우린 먼저 사전 작업을 해야 해요. 원래 몸의 뉴런을 꺼내 약품으로 신경 시냅스 연결을 촉진한 뒤 저온을 유지하고, 일단 휴지상태로 만든 뒤에 의식에 성공한 후 다시 가동하는것으로 하죠.”“알겠어요. 맡겨주세요!” 주진이 말했다.양여혜가 수술실에 들어간 뒤 주진은 일단 원경릉의 뇌전도 검사를 했다.잠시 후 겸사 결과가 나오자, 주진이 설명했다.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지금 상황은 아주 위험한 정도는 아입니다. 대략 한 두 달 정도는 버틸 수 있겠어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연장할 수는 없으니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마음이 놓일 거예요.”원경릉이 뇌전도파 그래프를 보며 말했다. “사실 여기로 돌아온 이후에는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 없었어.”“그게 정상이에요. 근거리에서 이미 전파를 받으니까 여러 층의 시공간을 지날 필요가 없는 거죠” 주진이 웃으며 말했다.“주진, 이 시공간의 터널이 혹시 웜홀이 아닐까?”주진이 미소를 지었다. “아, 시공간의 터널을 그쪽에서는 웜홀이라고 부르죠. 시공간의 모든 출입구는 전부 웜홀로 감싸져 있어서 어떤 공간으로든 다 갈 수 있어요. 과거든 미래든, 규칙만 파악되면요. 하지만 웜홀도 우주의 각종 자기장과 에너지의 영향을 잘 받아요. 아주 미미한 영향에 불과해도 웜홀에서는 수천수백 년의 편차를 일으킬 수 있거든요. 바로 선배가 여기 오면서 겪었던 회오리바람과 시공간의 왜곡 등이 규칙을 역전시켜 커다란 편차가 나타나는 거죠.” “정말 웜홀이 있었구나!” 원
검사를 마친 주진은 원경릉에게 원숭이의 대뇌를 보여주었다.원숭이의 대뇌는 유리 상자에 넣어 냉동된 상태로, 기존 냉동고 온도와는 조금의 차이도 없었다.유리 상자에는 선이 여러 개 꽂혀 있었는데 바깥에 있는 뇌파 검사기구와 온도 모니터에 연결되어 있었다. 원숭이의 대뇌는 선홍색으로 대략 손바닥 정도 사이즈인데 크기로 볼 때 원숭이 본래의 대뇌보다 더욱 발전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주진은 뒤를 돌아 종이 하나를 원경릉에게 건네며 물었다. “이건 원숭이의 정보를 읽어내서 분석한 그림인데 혹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나요?”원경릉은 종이 위에 그림을 뚫어지게 보았는데, 산 형태인 것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게 했다. “늑대골인가..?”“정말 늑대골인가요?” 주진이 물었다.“확신은 못 해. 난 늑대골에 안 가봤으니까. 그냥 느낌이…. 그래.” 원경릉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순간 이렇게 추측하는 게 반드시 정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산 그림은 맞으나 산은 다 비슷하게 생겼으며 원경릉은 늑대골에 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럼 이거 빼고 또 읽어낸 게 있어?”“아직은 없어요. 그럼, 이 일은 일단 그냥 두죠. 선배 일부터 잘 해결할고 다시 얘기하기로 해요!”원경릉은 그림을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돌아간 다음에 이 그림을 그려서 홍엽이나 훼천에게 보여줄 생각이였다. 만약 늑대골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원숭이를 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원경릉의 수술은 극비였기에 주진은 상부 사람들과 연락한 뒤 요 며칠 동안 아무도 연구소를 들락거릴 수 없도록 했다. 로양도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데려와 지켰는데, 원경릉은 그중에서 한 사람이 상당히 낯이 익었다. 하지만 헤어스타일이나 옷, 분위기가 매우 달라서 의아해 했는데 원경릉이 물어보기도 전에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제자 어머님, 접니다. 기억하시나요?”“기화인가?” 원경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고머리를 한 그 남자, 기회를 보고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여기 사람이었어요?”
그 말을 듣자 원경릉은 약간 긴장됐다. 원경릉이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기억 상실이었기 때문이다. 원경릉은 주진의 손을 꽉 잡고 처량한 눈빛으로 물었다. “정말 기억을 잃지난 않는 거지?회복하는 데는 얼마나 오래 걸려?”“15일 정도요. 선배의 대뇌엔 선배가 원래 주사한 약품이 있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해도 이식 수술이 성공하기만 하면 선배의 모든 기억은 천천히 응집될 거예요. 심지어 어릴 때의 사소한 일이라 전에는 완전히 잊혔던 사실까지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되죠.”기억을 잃지 않는다는 말에 원경릉은 그제서야 안심했다. ‘기억이 없어져 남편과 아이들, 북당에서 일을 기억하지 못하면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겠나...’잠시 후 마취약을 주사하자 원경릉은 금세 마치가 된 듯 눈을 감았다.주진은 원경릉을 들여보내기 전에 원경릉 엄마에게 전화해서 수술이 곧 시작된다고 알렸다.원경릉 엄마는 안에 들어올 수 없었는데 양여혜가 의사와 간호사가 노출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었다. 원경릉 엄마는 그저 연구실 밖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기화는 주진이 원경릉을 수술실로 밀고 들어가는 걸 도와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주진은 비록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병원에 있는 세 노인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해 어쩔 수 없었다. 주진은 지금 이 세계에서 그들을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주진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한편, 소요공은 다리를 깁스로 고정하고 있었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던 사람이 땅을 밟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쉬어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태상황은 다행히 가벼운 뇌진탕으로 약을 먹은 뒤 두통이 그렇게 심하지 않고 구토도 하지 않았으나 조금 더 관찰이 필요한 상태이다.주재상의 수술도 준비 중이었다.원경주는 엄마가 연구실 밖에서 기다리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전화를 했다. 하지만 원경릉 엄마는 심장이 너무 뛰고 걱정이 되어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원경주는 그녀가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할 게 더
원경주는 이쪽에 지식이 없었기에 주 재상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괜찮을 겁니다. 절 믿고 이쪽으로 오세요. 머리 밀어 드릴게요.”주 재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경주의 부축을 받아 가만히 의자에 앉았다.태상황과 소요공 또한 미심쩍어했다. ‘머리통을 열었는데 살아 있을 수가 있다고? 전에 전장에서 적의 머리통을 깼을 때 바로 죽었는데 주 재상은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다는 거야?’머리를 다 밀자 동글동글한 것이 딱 볼링공 같은 게 오히려 젊어 보였다.하지만 태상황과 소요공은 주 재상의 상태가 영 이상하게 보였다.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없어졌다니..!원경주가 나가자마자 주 재상은 입을 삐죽 내밀며 태상황과 소요공에게 물었다. “정후 집안에 큰 조카 수염 나 있었어?”태상황과 소요공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수염은 없었어.”주 재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더러 자꾸 믿으라는데 정후 집안에 믿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그리고 수염도 안 났다면서. 옛 어른들이 수염도 안 난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미덥지 못하다고 했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을 지금 어떻게 믿어?”“그러니까!” 소요공은 주 재상을 아무리 쳐다봐도 익숙해 지지가 않았다. 특히 이 동글동글한 머리에 구멍을 뚫는다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렸다. 아이고 무서워!하지만 곧 닥칠 일이고, 수술하지 않으면 주 재상의 목숨을 보전할 수 없다고 하니 소요공은 그저 격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큰 조카, 그래도 꽤 성실해 보였어. 태자비도 그 사람을 아주 믿고 있고. 그러니까 우리 한번 믿어보는 게 어때?”셋이 같이 손을 맞잡고 한참을 침묵하더니 태상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 재상의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주었다. “이마가 춥겠어!”“조금..” 주 재상이 대답하고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다. “십팔매 말이 맞아. 태자비가 저 사람을 믿는다는 건 저 사람이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게 틀림없어. 그리고 전에 그 사람이 태자 전하를 치료했잖아. 말 안 했지만, 만
원경주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이보세요, 뭐라고요? 늙어 보인다고요?!”소요공도 말을 보탰다. “맞아, 늙어 보여. 인자해 보인달까? 비록 수염은 나지 않았지만 딱 봐도 5~60세는 돼 보이는 게 경험이 많아 보이군.”주 재상의 둘의 말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온화한 목소리로 원경주에게 집안 내력을 물었다. “자네 몇 살에 의원이 됐는가? 손자는 몇 살이고? 집안 사람들은 다 여기 있지? 북당으로 돌아간 적은 없고?”원경주는 많은 질문에 그만 슬퍼졌다.손자는 고사하고 원경주에게는 와이프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원경주는 얼른 몇 마디 얼버무리고는 밖으로 뛰쳐 나갔다.수술 전에 주진도 다가와 원경주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수술하려고 주 재상을 데리고 나갈 때 검사하러 간다고만 하세요. 다들 걱정하시게 수술 시작한다고 하지 마시고. 저분들은 걱정하면 가만히 앉아계시지 않고 나가서 난리를 치실 것 같아서요.”원경주도 마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원경릉의 상태를 묻자 주진이 답했다. “수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걱정은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양 닥터는 이런 수술 경험이 많아요. 선배 수술은 당신이 주 재상 수술하는 것과 난이도는 같지만,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릴 뿐이에요.”원경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심하고 양 닥터에게 맡긴다고 해도 동생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기전까지는 안심이 안 되네요.”“안심이 안 돼도 그 생각하실 틈이 있나요! 얼른 수술 준비하셔야죠!”“예! 알겠습니다!”간호사에게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 오는데 다시 검사를 받는 것으로 검사 시간이 어쩌면 약간 걸릴 수도 있으니, 검사를 마치면 곧 수술할 수 있도록 했다.세 사람은 믿겠다는 듯 고개글 끄덕였고, 간호사는 조심히 주 재상을 휠체어에 태워서 나왔다.두 사람한테 주 재상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주진이 특별히 들어와 배달 음식을 먹이고 티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병실엔 이미 티비가 있었지만 세 사람이 들어와서 그동안 줄곧
한편, 북당.우문호는 아이들과 이미 경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만두는 가는 길 내내 거의 잠들어 있었다. 우문호는 고생한 만두를 안고 때때로 혹여나 만두가 깼는지 잘 살폈다.만두가 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우문호를 들었다 놨다 했기에 더 잘 보호해야 했다. 다른 아이들도 점점 졸음이 쏟아졌다. 한참 뒤 만두가 깨어나 눈을 비비자, 아이들이 전부 둘러싸고 만두를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그러자 만두가 입을 열었다. “재상과 엄마는 수술 중이고 엄마 이번 수술은 6시진동안 지속될 거래요. 이제 외할머니 곁에 있어 드려야 해서 제가 계속 이 곳에 있을 수 없어요. 외할머니 혼자 집에 계시거든요. 걱정돼요.”“그래, 우리 만두 효자네!” 우문호는 대견하다는 듯 만두를 꼭 안고 목이 메어 말했다.만두가 다시 자려고 하자 우문호가 한 마디 먼저 물었다. “수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돕고 있어? 그 사람들 다 실력 좋은거지?”“그 얘기는 따로 없었어요, 하지만 주진이 우리보고 안심하랬어요. 엄마한테는 반드시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만두가 말했다.우문호는 알겠다고 답하고는 손을 뻗어 만두의 볼을 만졌다. “알겠어, 이제 자러 가자.”“아빠, 좀 쉬세요. 눈이 너무 빨개요!” 만두는 우문호의 눈이 온통 붉은 실핏줄로 가득한 것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다른 아이들도 우문호에게 달라붙었다. 엄마가 없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아빠는 괜찮아. 얘들아, 자 자!” 우문호는 만두 등을 톡톡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만두는 외할머니가 걱정되는 마음에 눈을 감자마자 곧 바로 잠에 들었다.서일과 나 장군은 밖에서 마차를 모는데 바람 소리가 너무 커 안에서 하는 얘기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궁금해 미쳐버리겠는 서일이 가끔 가리개를 젖히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우문호를 쳐다봤다. 소식이 오면 우문호가 얘기할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번에 가리개를 젖히자 우문호가 드디어 작은 소리로 얘기해 주었다. “원 선생과 재상은 수술 중이고, 아직 자세한 상황은 알
태상황과 소요공이 티비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식사를 마치자 어느덧 2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검사하러 간 주 재상이 아직 돌아오지 않자 태상황과 소요공은 걱정돼서 티비 속에 소인이나 주진의 흥미 있는 얘기 따위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연신 밖을 내다보며 주 재상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그러고는 불안한 마음에 주진에게 말했다. “너희들 몰래 재상 머리를 열기만 해봐. 우리가 같이 들어가서 곁이 있어야 해. 그 녀석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심지어 늙은 데다 눈도 멀어서 무서울 거라고.”주진이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같이 계실 수 있도록 꼭 얘기해 드릴 테니까요.”사실 태상황은 주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 교활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항상 그런 미묘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무서운 말투로 소리쳤다. “네가 감히 과인을 속인다면 과인이 네 목을 칠 것이다!”태상황은 주진에게 자신의 위엄을 알려야지, 그의 말을 잘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서 아무도 자기한테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몰래 자신들을 비웃는 것이 영 체면이 구겨지는 기분이 들었었다. “속일 리가 있나요. 누가 감히 여러분들을 속이겠어요?” 주진이 달래며 속으로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이 두 사람이 주 재상이 개두술 하는 걸 보면 깜짝 놀랄 건 말할 것도 없고 피를 보는 순간 원경주의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려 놓을게 뻔했다. 직접 보느니 차라리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태상황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서 티비로 눈을 돌렸다. 주진은 그들을 오래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몰래 메시지를 보내 로양에게 응급실에 사정 청취하는 교통경찰에게 전화하도록 했다. 그들이 빨리 와서 두 사람에게 질문을 유도하도록 말이다.역시 주진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태상황은 수도 없이 문밖에 주 재상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하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결국 이불을 걷어차 버리고 침대에서 내려와 주진에게 물었다. “어떻
교통경찰은 오기 전에 상부로부터 미리 통지를 받았는데, 상해자 두 사람이 경증 혹은 중증도의 망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행동을 보고도 경찰은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했지만 아무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저들 상태는 이미 중도를 넘어 심각한 중증으로 보였다.경찰이 이름과 직업을 물을 때 소요공은 원경릉의 분부를 받들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원경릉이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만 하면 유효한 신분증을 꺼낼 필요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교통경찰은 점점 미간을 찡그리며 이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 못 하는 사람들이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나 있겠어?’그들이 상황을 서술하자 경찰은 말없이 주요한 단어들을 기록했다. 말 없는 마차 2대가 전후로 그들을 쳤는데, 첫 번째 마차와 부딪혔을 때는 허리와 다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고 했다. 두 번째 마차가 쳤을 때는 경공을 사용했으나 실패했다. 두 번째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으나 놀라서 일어날 수 없었으며, 또 마차에 치일까 봐 무서웠다고 했다. 그 뒤로 또 세 번째 말이 없는 큰 마차가 자기들에게 왔다고 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남녀가 다 있고 자신들을 들어서 차로 옮겼고 상대가 공격성 무기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에게 낯선 길이라 이곳엔 엄호할 근위병도 없어서 참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흰옷을 입은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려고 했다는 것을 듣고 분명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교통경찰은 한마디로 정하기 어려운 기록을 마치고 물었다. “두 분을 친 기사는 당신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병원비를 대신 지불하지 않고 도망갔어요. 그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돈을 정산하고 돌아오겠다고 설명한 적이 있나요?”“없어. 그 두 사람은 아주 쓸데없이 말이 많아. 마차로 따라오는 내내 쓸데없는 소리만 지꺼렸다고! 그들은 돈이 없어 보였어.” 소요공이 옆에서 발굽 모양 금을 꺼내서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돈이 없지
“우선 박원이랑 소홍천 의사부터 물어보자. 억지로 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동안 그들이 날 많이 도와줬으니 전부 원하는 대로 하자고.” 우문호가 말했다.“그러자!” 원경릉이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저녁 애들 데리고 어머님께 가서 수라를 들려면 빨리움직여야 해. 꾸물대면 늦을거야.”그러자 우문호도 계란이를 안고 일어섰다. “그래, 우리 황조모한테 가서 맘마 먹자.”우문호가 나가서 부르자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왁자지껄하게 수라를 들러 황태후 전으로 갔다.황태후는 원래 우문호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식사 자리에 아이들이 있어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다 먹은 뒤 우문호와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원경릉이 황태후와 얘기를 나눌 때 말을 꺼냈다.“천행이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부마를 풍도성으로 보낼 수가 있지.. 공주가 얼마나 괴로웠을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공주는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이리 나리께서 풍도성에 가는 걸 지지하셨는걸요.”“말은 그렇게 해도, 출산 후에 여자 곁엔 남편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이것도 단지 우리 가족끼리 하는 얘기일 뿐이고, 조정 일을 내가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는 노릇이지.”황태후는 이리 나리가 풍도성으로 간 진정한 목적을 전혀 몰랐으며, 단순히 어지러운 형국을 정리하러 갔다고만 알았기 때문에 순수하게 공주를 아끼는 마음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어마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나리는 이미 돌아오는 중이래요.” 원경릉이 위로하자 황태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거 잘됐네!”온 가족이 별빛을 받으며 천천히 소월궁을 거닐었다.계란이는 아빠 품에서 잠이 들었고, 아이들은 놀다 지쳐서 아빠 엄마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으며, 목여 태감이 궁인 둘을 데리고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는 가운데, 궁 안은 인적이 드물어 밤이 되자 상당히 고요했다.“어마마마께서 공주를 아끼셔서, 이리 나리가 하필 이때 풍도성에 보냈냐고 하셨어.” 원경릉이 말했다.“날 원망하셨어?” 우문호는 품에 있는 아이가 깰
늑대파 사람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질질 끌고 나가는데, 소여쌍은 여전히 미친사람처럼 웃어대기만 했다.이리봉청은 그들이 끌려 나가는 것을 보자, 눈앞에 안지여가 자신을 데리고 소여쌍의 침대 앞으로 가서 소여쌍의 그 악랄한 말을 듣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여리여리하고 아름답던 그녀가 이렇게 변해 버린 게 꿈처럼 느껴졌다.풍도성을 접수한 뒤 안풍 친왕은 관리들을 새롭게 임명했고, 더 이상 성주 같은 것을 두지 않고 조정과 이부에 적합한 인사를 선발해 풍도성 지부로 앉힐 것을 요청했다. 풍도성은 더 이상 이전의 독립 자치 지역이 아닌, 다른 주나 현과 마찬가지로 조정에 귀속되어 통일서 있게 다스리게 되었다.더불어 안풍 친왕은 별도로 서신을 써서 황제인 우문호에게 보냈는데, 풍도성을 추천하지만, 이건어디까지나 건의와 추천이니 황제가 생각하는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안풍 친왕의 추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동시에 안지여의 잔당들이 계속 나타났다.안풍 친왕이 이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고, 호랑이와 눈 늑대, 회색 늑대까지 출동시킨 건 바로 모든 세력을 강화하고, 신속하게 진압해 풍도성을 조정에 복귀시키고 보름 만에 비적을 토벌하며 기본적인 숙청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박원은 잔당의 남은 불씨가 다시 타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안풍 친왕의 영패를 가지고 부근에 5천 명의 군사를 파견시켜 풍도성을 지켰다. 이리 나리는 자금을 지원해 천문 세가의 묘를 이장하였는데, 이전 무덤은 안지여가 고른 곳으로 폐허에 가까워, 그는 천문 세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안식을 취하기를 원하지 않았다.풍도성에 온지 거의 한 달가량 될 때쯤, 대군은 경성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돌아가기 전에 미색이 안지여와 소여쌍을 보러 갔다가, 돼지우리에서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그제야 비로소 맺혀 있던 한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미색은 이리 나리와 어머님에게 알리지 않은 것이, 두 사람은 이미 안지여가 누군지 잊은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리봉청에게 있어 모든 건 지나가지 않았고, 36년 전 일은 여전히 어제 일 같이 느껴졌다.“어머니, 그를 어떻게 처분하시겠어요?” 이리 나리는 이리봉청의 마음을 넘겨짚을 수 없어 함께 걷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생각은 어떠니?” 이리봉청이 다시 되묻자 이리 나리가 원한에 사무친 눈빛으로 말했다. “제게 처분하라고 하면 전 그를 죽여 버릴 겁니다.”이리봉청은 알았다며 대답만 했다가, 다시 30분쯤 걷다가 정자에 앉아 을 때 말을 덧붙였다. “난 안 죽일 거야.”이리 나리가 약간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또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이리봉청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반대야. 그 인간을 죽이는 게 마음이 약해진 거지. 사실 며칠 동안 이전의 원한을 내려놓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는데,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 인간을 백번이라도 죽이겠지만, 난 그럴 수 없더구나. 아들아, 게다가 오늘 천문 세가 대문을 들어서는 그 순간, 더욱 마음을 굳혔단다.”이리봉청이 일어나 집안을 둘러봤다. 이곳은 그녀의 가족들이 살아 원래 온통 사람 소리로 가득한 곳이였다. 그들의 웃던 광경이 눈앞에 비치는가 하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천문 세가는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없는데 멸문지화를 당했고, 가엾게도 그 중엔 아이들이 많아서 제일 어린아이는 이제 태어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었다.이리봉청의 얼굴에 눈물이 타고 흐르며 가슴이 미어졌다. “그자와 소여쌍을 밖에 내버리고 사람을 시켜 지켜보도록 해. 죽게 두지 말고 계속 살려둬. 36년은 더 살면서 이 세상의 고생을 모두 겪어야, 내 마음에 맺힌 한이 풀리고 억울한 망자들도 안식에 들지!”이리 나리는 온몸으로 그 마음이 느껴져, 어머니가 눈물 흘리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네, 전부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게요.”안지여와 소여쌍은 버려졌다. 짧은 며칠 사이에 안지여는 의기양양하던 성주에서 시궁창 쥐로 변해, 사람들이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