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에 온 원경릉포졸 하나가 급히 들어와 예를 취하며: “왕야, 왕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왕비가?”뭐 하러 왔지? 이 밤중까지 왜 안 잤어?우문호가 나가보니 정말 녹주가 원경릉을 부축해서 들어오고 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피곤에 절은 창백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오늘 공주마마께서 얘기해 주셨는데 황제폐하께서 7일의 말미를 줄 테니 사건을 해결하라고 하셨다면서요,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우문호가 부드럽게 안심시키며: “걱정하지 마요, 7일의 기한이 아직 다 되지 않았고, 7일 안에 사건을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원경릉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만약 정말 기한 안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면 집에도 돌아오지 못 할리 없다. 원경릉은 우문호를 잡아 끌고, “사건해결에 대하선 아는게 없지만 의술은 알아요, 시체 좀 보여주세요. 제가 뭔가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시체를 본다고? 안돼!” 우문호는 바로 반대하며, “죽은 사람이 뭐가 볼 게 있다고?”사람이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시체 안치소에 얼음을 층층이 쌓아 뒀지만, 시체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냄새가 심한데 원경릉이 어찌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을까?“하지만 당장 경조사도 별다른 진전이 없잖아요, 맞죠? 절 속이려는 생각 마세요.” 원경릉이 말했다.“날 믿어, 잘 될 거야.” 우문호 자신조차 자기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원경릉을 관아 뒤 후원으로 보내 나한상에서 좀 쉬게 한 뒤, 녹주를 불러 왕비가 쉬도록 잘 돌보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했다. 우문호가 자신을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다뤄주는 것에 감동했지만, 둘은 지금 이미 부부로 무슨 일이 생기면 둘이 함께 분담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래서 우문호의 이런 행동에 원경릉은 무력함을 느꼈다.하지만 억지로 할 일도 아니고 우문호는 정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원경릉은 마치 장소를 바꿔 자려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고 우문호는 여전히 사건때문에 정신이 없다.서일
시체를 부검하는 원경릉서일이 고개를 저으며 어쩔 줄 몰라: “소인은 그렇지 않습니다.”“나는 너를 도왔는데, 내가 너에게 부탁하는데도 네가 도와주지 않으니, 이런 걸 바로 배은망덕이라고 하는 거야.”서일이 난감한 표정으로 왕비를 보니, 차갑게 화가 있어 일순간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녹주도 앞으로 나와 사정하며, “서일은 왕야의 가장 측근에서 사건에 대해 고민했잖아, 왕비마마께서 흔쾌히 도우시겠다는데 왕비마마를 도와주는 게 어때? 그리고 막상 왕야께 알려진다고 해도 왕비마마의 명령이었다고 감히 저항할 수 없었다고 하면 돼지.”서일은 왕야께서 자기를 잘라버릴 걸 알지만, 사건조사가 지금까지 진전이 없고, 왕비마마는 지금까지 계속 기적을 일으키셨으니 혹시 왕비마마께서 보시고 뭔가 발견해 내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일은 고개를 들어: “좋습니다. 하지만 왕비마마 오래 머무시면 안되고, 시체 안치소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 그쪽으로 순찰을 하다가 발견되면 반드시 왕야께 알려집니다.”“알았어!” 원경릉이 한마디로 수락하고 녹주에게: “넌 여기를 지키다가 만약 왕야께서 오시면 내가 화장실에 갔다고 얘기해라.”“예, 알겠습니다,” 녹주가 말했다.서일이 등롱을 들고 원경릉을 데리고 나갔다.시체 안치소는 경조부 관아 좌측 뒤쪽에 있는데 대략 50제곱미터 크기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벽은 비교적 얇고 창이 2개있지만 둘 다 닫혀 있다.입구에 두개의 등이 걸려있어 엷은 붉은 등불이 시체 안치소 문을 온통 시뻘겋게 비추니 한밤중엔 특히나 음산하고 공포스럽다.서일이 덜덜 떨며 걸어 들어가다가 원경릉을 흘끔 보고, “왕비마마께서는 안 무서우십니까?”“뭐가 무서운데?” 원경릉은 안으로 들어가, “넌 여기서 기다려, 누가 오면 나한테 알리고.”“소인은 왕비마마를 따라 들어가겠습니다.” 서일은 원경릉 혼자 안에서 놀라서 실신할 까봐 걱정이 되었다. 입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안 무서운 사람이 어디 있어? 안에 그렇게 많은 시체가 있고,
시체의 사인을 밝히는 원경릉어쩌면 해부가 필요할 수도 있다.하지만 이미 시체의 부패상태로 보건대 혼자서 해부하기는 힘들 듯 싶다.잠시 생각하더니 자석을 꺼내 시체의 머리부분부터 아래로 쭉 훑어 나갔다.심장 부근을 훑어가는데 자석에 반응이 생기며 심장 부근도 약하게 움직였다.원경릉이 자석을 내려놓고 심장 위치를 자세히 관찰하자 심장에 바늘구멍 같은 것을 있다. 털처럼 얇고 가늘어 시체가 부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늘구멍이 여전히 눈에 띄지 않는다.보아하니 심장을 해부하는 수밖에 없다.해부는 쉬운 일이 아니다.원경릉은 경험도 부족할 뿐더러 의대를 다닐 때 해부학 수업을 들었을 뿐이다.그나마도 어깨에 상처가 있는 상태로 힘을 쓸 수 없으니 서일이 도와줘야 할 판이다.서일이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자 놀라 자빠지며, “왕…….왕비마마!”“들어와서 나 좀 도와줘.” 원경릉이 말했다.서일은 원경릉의 머리에 묶여 있는 손전등을 보고, “이게 뭡니까?”“쓸데 없는 말은 됐고, 빨리 와서 좀 도와줘, 뭘 발견 했어.”서일은 발견한 게 있다는 얘기를 듣고 급히 따라 들어갔다.코를 찌르는 냄새로 서일은 거의 토할 뻔 했지만 원경릉이 잽싸게 마스크를 꺼내 씌워줬다. 그래도 서일은 여전히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원경릉은 서일의 호흡이 좀 안정된 것을 보고 매스를 건네며, “날 도와서 망자의 심장을 해부할 거야, 난 안에 바늘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테니까.”“에? 심장을 해부한다고요?” 서일이 손을 덜덜 떨었다. 심지어 시체들이 녹색으로 변해 부풀어 커진 모습을 보고 일순간 아연실색해 버렸다.“뭘 그렇게 무서워 해? 인간은 다 죽어. 만약 네가 그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내면 저 사람들은 편안히 눈을 감고 너한테 감사할 거야.” 압박에 못 이겨 서일은 매스라는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었다.심장을 해부하니 전체 심장이 다 검은색이며 과연 작고 가느다란 바늘이 있었다.원경릉은 겸자를 끼워 검게 변한 심장을 들여다 봤다.“중독된 거죠?”
사인을 알게 된 우문호와 원경릉꾸짖으려던 우문호는 원경릉의 이 말에 말문이 막혔다. 검시관과 검률도 같이 있었는데 원경릉의 말을 듣고 검시관이 바로 나와: “왕비마마, 저들은 절대로 중독사 일수 없습니다. 소인이 여러차례 검시하였으나, 중독 증상이 없었습니다.”원경릉이: “이리 와서 좀 봐주세요, 모든 사체의 심장에 전부 독침이 있고, 이 두 개의 독침은 망자의 심장에서 꺼낸 거로 막 꺼내서 독성이 아직 심장에 봉인되어 있을 겁니다. 침에도 독성이 남아 있을 거구요, 확인하셔도 좋습니다.”검시관이 나와서 자세히 살피는 중 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내, “당장 관아 후원에 자러 가시오.” 원경릉은 고분고분하게 떼부리지 않고, “잘못했습니다. 그저 돕고 싶었을 뿐이니 화내지 마세요.”“가시오.” 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 내고, “분명 나를 도왔으나, 이걸 발견한 것으로 이미 충분하오. 남은 일은 저들이 할 테니 당신은 후원으로 가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시오, 사람을 시켜 목욕물을 길어오게 하리다.”“목격자가 있다면서요. 그 증인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원경릉이 나가는 김에 물어봤다.우문호가 어르고 달래며, “그래요, 내일 다시 물어봅시다. 그리고 개도 한 마리 증인인데 내일 같이 심문하기로 하지요.”“좋아요!” 원경릉이 웃으며 답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어쩌질 못하겠다. 하지만 마음은 뛸 듯 기쁜 게 적어도 며칠동안 생긴 첫 발견으로 이 발견은 철저하게 그들의 사고의 틀을 바꾸어 놓기 충분했다.만약 범인이 독이나 암기를 사용하는 고수라면 그들의 원래 가설은 틀렸다.당초에 추측한 살인자는 그들과 원한관계에 있는 백성이었다.그러나 고수가 살인 하는 데는 보수가 있어야 하고, 일반 백성은 그들에게 살인의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진짜로 나 강아지가 너무 좋은데 내일 나한테 그 강아지 데려다 줄 수 있어요?” 원경릉이 애원했다.어쨌든 우문호에게 그녀가 개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우문호는 눈을 흘기며, “내일 얘기합
온천에 몸을 담근 원경릉과 우문호초왕부에 온천이 하나 있다.이 온천은 희한하게도 여름에는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지 않고 봄, 가을과 겨울에만 나온다.전에는 물이 모이지 않더니 탕양이 이틀전에 와서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온천에 물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원경릉이 다친 상태기도 했고, 우문호도 사건이 급박해서 그녀를 데려올 여유가 없었다.오늘 어깨에 큰 짐이 사라진 데다 두 사람이 모두 전신에 악취가 심각하니 흐르는 온천수에 몸을 씻어 내기 안성맞춤이다.온천은 소월각 뒤쪽에 있는데 온천이 솟아나는 구멍은 전부 두 개인데 둘 사이 거리가 가까우나 온천탕이 큰 방 절반 정도는 돼서 작다고는 볼 수 없다.원경릉이 한 눈에 온천에 이름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상한 온천”원경릉이 웃으며, “왜 이상한 온천이라고 불러? 분위기 하나도 없는 이름이네.” 원경릉은 이 온천에 대한 인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역시 그랬어. 몸의 원주인이 시집온지 그렇게 오래 됐는 데도 소월각에 와 본 적이 없으니 여기도 알 리가 없다.“그건 이 온천이 요상하기 그지없기 때문이야. 여름에 비가 와서 물이 많을 땐 온천수가 나오지 않다가, 가을 겨울 가물 때 비로소 콸콸 온천이 터지니 요상하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아?”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우문호는 시녀가 들고 있던 옷을 받아 든 김에, 문을 닫고 녹주와 기라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온천 옆에는 옷장과 병풍이 하나씩 있어 우문호는 깨끗한 옷을 병풍에 걸쳐 두었다. 벽 위에는 밝은 구슬이 박혀 있어 촛불이나 등롱 없이도 충분히 밝았다.단지 빛이 충분하지 못하고 온천수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와 빛이 물안개에 휩싸여 한층 몽환적이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낭만적이고 편안한 곳이다.원경릉은 무심코: “여기 진짜 좋다, 여자를 몇 명이나 데리고 왔겠네?”우문호는 그녀의 어깨에 옷을 벗기며, “꽤 돼지, 하나씩 셀 테니까 들어 볼래?”원경릉의 어깨의 상처를 보니 이미 상당
우문호의 첫 상대원경릉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웬만큼 좋지 않고 서는 안 나오는 표정이다.더욱이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를 감겨 주다니 이건 정말 의외다.분명 우문호는 그녀의 인생에 등장한 첫날부터 권력을 가진 잔인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그런 그가 풋풋한 황족 훈남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그 여자들이 누군지 얘기해봐!” 원경릉이 눈을 감고 말했다.“없어, 장단 맞춰준 거야!” 우문호가 웃으며 말했다.원경릉이: “거짓말, 처음 하는 솜씨가 아닌데.”우문호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다행이 원경릉 뒤에 있어 보이지 않았다.“누가 처음이 아니래?” 우문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원경릉이 몸을 돌려 우문호에게, “내가 그랬어 왜. 단순히 호기심에서 하는 말인데, 질투 아니거든. 말해봐. 처음은 어땠어?”우문호는 원경릉의 눈빛을 피하며, “뭘 그런 걸 물어? 그게 뭐 좋은 거라고.”“호기심이라니까, 듣고 싶어, 얘기해 줘.” 원경릉의 두 손이 우문호의 목을 감싸 쥐고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말 안 해!” 우문호는 원경릉의 몸을 돌려 세우고 계속 머리를 감겨 준다.원경릉이 가볍게 한숨을 쉬며, “부부사이엔 매사에 솔직한 건 줄 알았는데, 넌 나한테 감추는 게 있네.”원경릉은 한 걸음 앞으로 가서 우문호와 거리를 두고, “내가 씻을 게, 신경 안 써도 돼.”우문호는 원경릉을 끌어 안고, 그녀의 얼굴색을 살피며, “화났어?”“아니, 그냥 우리 사이가 별로 솔직한 것 같지 않아서. 난 뭐든 다 얘기했는데 약 상자일까지 전부. 그런데 왕야는 이런 일조차 나한테 얘기하고 싶지 않아 하니까.” 원경릉이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했다.“그게 어떻게 같아?”원경릉이: “화 안 낸다고 약속 했는데도?”“그럼 맹세해.” 우문호는 원경릉을 돌려 세우고, “나한테 화내지 않고, 질투도 안 하겠다고 맹세해.”“맹세해!” 원경릉이 한 손을 들고 맹세했다.우문호는 팔을 당겨 그녀를 자신 앞에 껴안고, “그럼 애기할 게. 사실 딱히 할 말도 없
화가 난 원경릉과 혼자 남겨진 우문호우문호는 손을 뻗어 원경릉을 물 위로 끌어 올리고 긴장한 얼굴빛으로, “너 화났지? 화 안 낸다더니, 거짓말쟁이.”원경릉이 부드럽게 우문호에게, “정말 화 안 났어. 내가 화 안 났다면 안 난 거야. 어서 씻어. 방에서 기다릴 게.”원경릉은 말을 마치고 일어나 올라가 버렸다.“너 다 씻었어?” 우문호가 당황해서 원경릉의 얼굴을 보니 빙그레 웃는 모습이 정말 화난 얼굴은 아니다.“다 씻었어. 왕야도 빨리 씻어, 아직 머리도 안 감았잖아. 먼저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원경릉이 가운을 입고 뽀뽀하는 입모양을 지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예쁘다.우문호는 하마터면 실망할 뻔 했다.하지만 방에 가서 해도 좋지.“그럼 먼저 가서 기다려, 나도 금방 갈게.” 우문호는 잠수하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박박 감고, 원경릉은 손에 잡히는 대로 깨끗한 옷과 더러운 옷을 같이 들고 총총히 사라졌다.이상한 온천 밖으로 나와 기라와 녹주에게: “왕야께서는 오늘밤 봉의각에서 묵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너희 둘은 봉의각에 가서 내 시중을 들어 주렴. 며칠 묵지 않아서 침대보도 정리하고.”“예, 왕비마마!” 기라와 녹주는 우문호가 했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고 원경릉을 따라 갔다.원경릉은 이를 악물었다.화를 내면 안된다는 걸 안다. 전부 과거의 일이다. 우문호는 예전에 주명취를 좋아한 적도 있잖아. 원경릉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사실 이번 얘기도 신경 쓸 필요 없지.하지만 열 받는다. 열 받아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다.우문호의 말이 너무 또렷하게 그려진다.분노가 활활활활 타오른다고!봉의각으로 돌아와 원경릉은 바로 녹주와 기라에게 분부해, “봉의각의 문을 전부 닫고, 왕야께서 오시거든 밖에서 막고 내가 몸이 안 좋다고 말씀드려. 오늘은 손님 안 받아!”녹주와 기라는 서로 멀뚱히 바라보며, 잘못 들었나? 손님을 받는다고?왕비마마께 무슨 일이 있는 거지? 화나서 미친 모습인데.왕야, 도대체 무슨 일을
왕야의 추태와 탕양의 조언과연 바람같이 한 사람이 복도에 나타나 날쌔게 숨는 게 흡사 미행하는 것 같다.서일과 탕양은 눈을 부릅떴다가 자신의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이게 왕야라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우문호는 전신에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작은 차 마시는 탁자로 거기를 가리고 잽싸게 뛰어 왔다. 곧 눈을 부라리며 두 사람에게, “오늘밤 일이 밖에 새나갔다간 둘의 혓바닥이 남아 나지 않을 줄 알아라!”“왕야, 문턱이!” 너무 늦었다. 급한 나머지 차 마시는 탁자가 시선을 가려 우문호는 발이 걸려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아이고머니나, 서일. 어서 가서 왕야 부축해드리고, 아, 아니다, 넌 가서 옷을 가져오너라, 우선 덮어드려야지. 아이고, 상궁이 오는 구만…… 희상궁 일단 거기 멈춰요. 오면 안돼. 일 났어…….”희상궁은 왕비마마께서 왜 화가 나셨는지 물어보러 왔다가 뭔가 일이 터진 소리가 나서 황급히 달려온 것이다.소월각은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우문호는 이불을 감싸고 발로 서일에게 약주를 닦게 시키고 등을 꼿꼿하게 세우는 이 동작을 오랫동안 유지했다.화가 난 건지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다른 기분인지 모르겠으나 하여튼 우문호의 심경은 지금 상당히 복잡했다.복잡한 나머지 서일, 탕양은 물론 희상궁까지 잘게 다져서 개 먹이로 주고 싶을 정도다.희상궁이 비록 흘깃 봤으나 바로 봉의각으로 돌아갔다.우문호는 역시 한 둘을 죽여서 마음 속의 감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일과 탕양은 슬쩍 마주보며 ‘어째 왕야의 몸에서 살기가 느껴지지?’ 하는 눈빛을 교환한다.“왕비는?” 우문호는 천천히 냉정을 되찾고 물었다.“왕비마마는 왕야와 함께 목욕하신 게 아니셨습니까?” 서일이 물었다.우문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래, 그런데 도중에 갔지. 소월각엔 돌아온 적이 없지?”“없습니다. 마마께서 왜 중간에 가셨나요?” 서일이 궁금해서 물었다.우문호는 서일의 배를 한 대 걷어차며 분풀이를 하더니, “꺼져.”서
안지여는 풍도성 지하감옥에 갇혔다. 빛 한 줄기 없는 지하감옥에서 사방에 끝없는 어둠과 절망만이 안지여를 삼키고 있었다.훼천의 형벌은 12 시진 후면 사라져서, 앞으로 안지여는 그저 한 명의 폐인일 뿐이었다.안지여의 결사대가 성으로 공격해 들어오기 전에, 이리봉청은 오 선생을 찾아내 안지여가 저지른 모든 죄를 고백하게 하고 안풍 친왕이 친필로 받아 적었다. 안지여가 당시 천문 세가를 해친 경위를 소상히 써 내려간 뒤, 오 선생과 안풍 친왕의 직인을 찍고 인쇄해서 대중에게 공개했다.안지여의 죄악은 하늘을 찔러 백성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안지여의 결사대의 옛 부하들이 본래 성을 공격해 들어가 안지여를 구출할 계획을 세워놓았으나, 안지여의 죄상이 공포된 뒤로 많은 사람들이 해산하였다. 유일하게 무대장군만이 수천 명을 데리고 성으로 쳐들어왔지만, 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가 이미 대비해둔 덕분에, 경성에서 굴러온 돌이 무대장군의 박힌 돌을 빼내는 전투를 벌였다.풍도성에 온 지 7일째, 안풍 친왕은 풍도성을 접수하고 성에 살던 사람을 쫓아내며 서민으로 강등시켰다.안지여와 소여쌍에 대한 처분은 이리봉청에게 넘겼다.안지여는 캄캄한 지하감옥에서 6일을 지내는 동안, 처음엔 침착한 척 가장했으나 사흘째가 되자 울부짖으며 악독한 저주의 말을 내뱉더니, 나흘째가 되자 용서해달라고 애원하며 참회했다.손발의 힘줄이 끊어진 안지여는 일어나 걸을 수도 없고 심지어 스스로 몫숨을 끊을 힘도 없었다.그 와중에 매일 누군가가 먹고 마시도록 해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어 살 수 있다는 부질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훼천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절망은 살아도 죽느니만 못하고,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것으로, 온 마음으로 죽기를 바라지만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가, 안간힘을 쓴 뒤 다시 절망에 빠지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으로, 사람을 한없이 죽였다 살렸다 괴롭힌다고 했다.결국 안지여를 죽일지 말지 여부는 이리봉청에게 달렸는데, 그녀는 안지여를 단번에 죽여 천문 세가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