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궁도 회왕부의 일을 듣고 놀랐지만, 금방 안정을 되찾은 채 원경릉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몸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말을 할 기운도 없어 눈을 감은 채 잠에 들었다.손왕은 침상에 엎드린 상태로 누워있었고, 그 옆에 손왕비가 직접 그를 돌보고 있었다. 침상 옆에 앉은 손왕비는 어딘가 모르게 자세가 이상했다. 꼿꼿이 허리를 편채 목을 길게 빼고 마치 기린이 아래를 내려다보듯 손왕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눈을 떼지 않는 듯하니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같았지만 눈빛에는 분노가 비쳤다. 그녀는 화가 나있었다.손왕비는 손왕에 뒷통수에 대고 당신이 무술을 좀 더 열심히 배웠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그녀는 손왕에게 부지런히 무술을 연마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녀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먹고 마시기만 하며 온몸을 지방으로 가득 채웠고, 행동은 날이 갈수록 굼떠졌다.우문호가 들어오는 것을 본 손왕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입을 열었다.“잘 오셨습니다. 이 사람이 정신 좀 차리게 말 좀 해주세요.”우문호는 둘째 형님이 베개에 머리를 푹 집어넣고 손왕비에게 욕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둘째 형의 몸이 회복도 안됐는데, 그런 얘기는 지금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지난밤 황실의 체면을 이 사람이 다 구겼습니다! 뚱뚱한 몸으로 화살을 막은 게 무슨 자랑입니까? 창피해죽겠습니다!” 손왕비는 감정이 격해져 우문호에게 쏘아붙였다.손왕은 파묻었던 얼굴을 빼꼼 드러내더니“어쨌든 본왕이 초왕비를 구하지 않았느냐.”라고 반박했다.“무술 연마를 잘 했다면 자객한테 그렇게 당하지 않았을 거야! 초왕비가 그렇게까지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손왕비는 뻔뻔한 손왕의 낯짝을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그리고 어쩜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거야?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했던 여덟째를 제외하고 이렇게 많은 친왕들 중에 당신빼고 다 열심히 무술을 잘 하잖아! 심지어 몸이 안좋은 여섯째도 부황께서 손이 빠르다고 칭찬을 하
원경릉의 촉촉한 눈이 미소를 머금은 채 우문호를 보았다.“너 어렸을 때, 개한테 물렸다는 거 말이야.”이 말을 들은 우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입에 담기 부끄러운 어린 시절 사건 하나쯤은 누구에게도 있지않은가? 우문호는 상궁을 내보내고는 원경릉에게 “빨리 자!”라고 말했다.원경릉은 또 잠이 들었다. 그녀는 오래간만에 잠을 푹 잤더니 등뼈가 뻐근했다.“나 이제 안 잘래. 이틀 내내 잤더니 나가서 좀 걷고 싶어.”원경릉은 누워서 애처로운 표정으로 말했다.“안 돼.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어딜 나가. 오늘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집에서 치료해.”원경릉은 이틀 내내 회왕부에 가서 회왕에게 주사를 놓았다. 마지막 주사를 놓는 날 그녀는 회왕부에 3일분의 약을 남겨두고 왔기에 오늘은 외출을 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어 안 나갈 테니까. 너는 빨리 관아로 돌아가.” 원경릉은 그를 재촉했다.“내가 오늘 꼭 관아로 돌아가는 것만 아니었음 여기서 널 감시했을 텐데, 그럼 말 잘 듣고 밖에 돌아다니지 마!” 우문호는 원경릉의 목 바로 아래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초롱초롱한 원경릉의 두 눈을 보니 우문호는 일도 내팽개치고 하루 종일 원경릉과 함께 있고 싶었다.“알겠어, 나 아무 데도 안 갈게.” 그녀는 그를 빨리 관아로 보내기 위해 고분고분 대답했다. 우문호는 가볍게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는 그녀의 볼을 살짝 만졌다. “아니면 내가 너 잠드는 것만 보고 갈게.”우문호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말을 듣고 풉하고 웃음이 터졌다.“아 됐어! 빨리 가 언제까지 이렇게 떠들 거야, 너 여기 있으면 나도 너랑 얘기하고 싶어서 못 쉬어!“그럼 우리 얘기하자!” 우문호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원경릉은 그런 그를 떠밀며 “빨리 가. 일 빨리하고 돌아오면 되잖아?”라고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두 볼을 잡고 쪽하고 입을 맞추고는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좋아 나 진짜 간다? 오늘 저녁에 일찍 돌아올게. 약 잊지 말고
바보는 땅에 엎드리더니 큰 절을 하였다.“일개 초민이 왕야를 뵙습니다!”우문호는 그에게 절을 하라고 시킨 자가 포도대장임을 확신하고 포도대장을 노려보았다. 우문호와 눈이 마주친 포도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우문호는 바보에게 최대한 온화한 표정으로 물었다.“네 이름이 무엇이냐?”“석(石)이!” 바보는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우문호를 쳐다보았다.우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권(宗卷)을 펼치더니“우자양(牛子陽)의 집을 아느냐?” 라고 물었다.석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끌끌 찼다.“알아. 죽어 다 죽어. 많아 피가 많아.”라고 말했다.“그 날 무엇을 보았느냐?” 우문호가 되물었다.석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봤지. 아주 긴 보검(寶劍)을 가지고 들어가는 걸 봤지, 엄청 무서워! 내가 그 사람을 한 번 쓱 봤더니 그 사람도 나를 쓱 봤지.”라고 말했다.“그래서 네가 그 사람을 따라갔느냐?” 우문호가 물었다.“무서워 안 가. 왜 따라가! 그 사람 칼이 엄청 길어.” 석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얼마나 길어?”석이는 양팔을 쭉 펴더니 “이만큼!”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칼이 일장(一丈) 정도 된다는 건데, 그만큼 긴 칼은 있을 수가 없었다.“헛소리하지 마! 세상에 그렇게 긴 칼이 어디 있어?” 포도대장은 화가 나서 말했다.“진짜!”석이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치며“정말 길어! 나만 본 게 아니야 걔도 봤어.”라고 말했다.“걔? 걔가 누구냐? 그자는 어디에 있어?” 우문호의 눈이 반짝였다.“개는 이부귀(李福貴)네 집 개야.”석이가 말했다.우문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걔가 아니라 개라고…….”“근데 그 개는 봤어! 칼이 그렇게 길었는데 개는 안 무섭나 봐! 쫓아갔어!” 석이는 개가 쫓아가는 모습을 흉내 냈다. “또 뭘 봤어? 그 사람이 나가는 모습도 봤어?” 보좌관이 석이에게 물었다.석이는 고개를 저으며 “못 봤어, 그리고 그림자만 쓱 지나갔어.”라고 말했다.보좌관은 한숨을 내쉬며 “왕야 이
사건을 통해 죽은 두 가족 모두 평범한 집안이었으며,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만약 집안에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 근처 이웃들이 비명소리 하나 듣지 못했다면, 그들이 모두 동시에 죽었거나,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해둔 뒤 살해했을 것이다.그러나 시체 부검 결과 그들은 날카로운 칼이 아닌 무딘 칼에 찔려 죽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칼을 맞은 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을을 살펴보니 집이 다닥다닥 붙어 이웃들이 비명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다. 담 하나 넘으면 바로 보이는 집에서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목격자가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석이가 말하길 범인이 칼을 썼다고 했는데, 부검 결과 모두 칼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고하니 석이의 말은 쓸모가 없었다.우문호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땅 꺼지겠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원경릉이 두 손으로 그의 미간을 쓰다듬었다.우문호는 그녀를 꽉 안으며 “아무 일도 아냐. 그냥 사건이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거짓말!” 졸린 눈을 비비며 그녀가 두 발을 들어 상처가 바닥에 닿지 않는 편안한 자세를 하고는“뭐 걱정되는 거 있지? 사건 관련된 일이야?”라고 물었다. 우문호는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다친 다리를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렸다.“넌 어떻게 그렇게 똑똑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아.”“그러니까 나 속이려고 하지 마.”원경릉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해 봐. 혹시 알아 내가 도울 수 있을지?”라고 말했다.우문호는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이 두 사건 모두 단서가 남아 있지 않아. 그래서 범인이 어떤 무기를 썼는지도 모르겠어. 마치 눈에 보이는 대로 흉기를 들어 사람을 찍은 것 같아.”라고 말했다.“미친놈이 그런 건가?”원경릉이 물었다.“미친놈 같긴 한데, 꼭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어.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았고, 흉기도 목격자도 찾지 못했으니까…… 목격자
기라는 미소를 지으며 “왕야 정말 세심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왕야께서 이렇게 세심한 분이셨다니,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기라는 속으로 생각했다.우문호가 이렇게 세심하게 변한 데는 원경릉이 한몫했을 것이다. 그녀를 한번 잃을뻔한 이후 우문호는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조정에는 문무관원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명원제가 천천히 보좌에 앉자 신하들이 만세 삼창을 했다. 그는 그런 신하들을 위엄 있는 표정으로 훑어보더니 “모두 일어나서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게!”라고 말했다. 명원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수보(周首輔)가 일어나서 말했다.“폐하, 최근 경중에서 발생한 두 번의 멸문 참안(滅門慘案) 때문에 백성들이 말이 많습니다. 하루빨리 범인을 잡아 처벌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불안에 떨 것입니다.”주수보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이자 주수보의 주변에 있던 신하들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어김없이 이 사건에 대해 말이 많구나.’우문호는 주수보의 말이 신경 쓰였다. 명원제는 우문호를 보고 “사건에 진전이 있는가?”라고 물었다.사건에 진전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렇다고 하며 대답을 얼버무렸겠지만, 진전이 손톱만큼도 없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현재 흉기도 증인도 단서도 하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이 말을 들은 명원제의 얼굴에는 ‘불쾌’라는 두 글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바보 같이 어쩜 그리 솔직한 것이냐……’“왕야께서 경조부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사건을 처리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으니, 차라리 이 사건을 직접 형부(刑部)로 이관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형부에서 이 사건을 빨리 처리한다면 백성들도 안심할 것 입니다.” 주수보가 말했다. 주수보의 말대로 사건을 경조부에서 형부로 이관한다면, 그야말로 우문호가 무능하고 쓸모없다는 것을 제 손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우문호를 경조부윤으로 임명한 명원제도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다. 명원제는 주수보의 말에 화가 났지만 최대한 덤덤한
우문호는 기왕의 얼굴에서 묘하게 기세등등한 표정을 보았다. 조회(朝會)에서 주수보가 자신을 비판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상했기에 우문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주수보는 국사(國事)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조회에서 한 말이 틀린 얘기는 아니다. 이 살인 사건은 그의 말대로 백성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그래서 주수보는 가능한 한 빨리 사건을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낸 것이다.하지만, 지금까지 찾아낸 단서라고는 목격자라고 하기도 애매한 바보 한 명과 개 한 마리뿐인데……. 과연 이 단서들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퇴조(退朝) 후에 우문호가 초왕부에 돌아왔다. 그는 원경릉이 회왕부에 간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이렇게 가만히 있지를 않는 것이냐.’관아로 돌아온 우문호는 신하들에게 일주일 내에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황제의 뜻을 전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관아에서는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우문호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한숨 쉴 시간에 빨리 단서를 찾아라! 사건 현장에 가서 사람들을 탐문하고 주변을 더 샅샅이 뒤져 흉기라도 찾아오라는 말이다!”‘왕야께서 저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걸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게 분명해.’우문호의 천둥같은 호령에 관아는 한순간에 조용해졌다.며칠 동안 우문호는 원경릉이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에 나가서 그녀가 잠이 든 후에 돌아왔다. 원경릉은 그가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자신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되도록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고,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상처도 점차 회복되었다. 예전처럼 행동이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발로 땅을 딛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시간을 내서 정후부에 들르기도 했다. 그녀는 조용히 가서 노마님에게 약을 지어주고는 쥐도 새도 모르게 왕부로 돌아왔다. 회왕부도 태평했다. 노비는 회왕부를 내부를 철저하게 조사해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싹 제거했다. 이 소식을 듣고 부중(府中)에서도 한바탕
풀리지 않는 살인 사건노비는 원경릉을 보고, “만약 기왕비가 너에게 치료해달라고 부탁하면 가서 치료할 거니?”원경릉이 웃으며, “기왕비가 저한테 부탁할 리 없어요.”“그건 모를 일이야, 기왕비는 가늠할 수가 없어.” 노비가 말했다.낙평공주도 호기심을 가지고 원경릉에게, “만약 정말 부탁하면?”원경릉이 잠시 생각하더니, “마음은 하고싶지 않을 게 틀림없어요.”기왕은 전에 우문호에게 손을 썼고 그때의 자상으로 우문호는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뻔 했다.기왕비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고, 심지어 기왕보다 모질고 독하다. 그렇지 않고 서야 고의로 회왕을 오인하게 만들어 치료를 포기하도록 했을 리 없다.기왕 부부가 발목을 잡지만 안았어도 원경릉의 인생이 훨씬 평탄했을 텐데.원경릉은 유시(오후5시~7시)가 끝날 즈음 초왕부로 돌아와 우문호가 돌아오길 계속 기다렸다.원경릉은 며칠 밤을 너무 피곤한 나머지 기다리다 잠이 들어버렸는데 오늘은 기필코 우문호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야 말겠다.그런데 우문호는 돌아오지 않았다.이렇게 오래 조사를 거듭했는데 여전히 아무런 진전이 없고, 범인이 도대체 몇명인지 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흉기에 대해서도 단서가 전혀 없다.우문호는 심지어 방을 붙여 만약 흉기와 유사한 도끼를 발견해 관아에 가져오면 은 열 냥을 상으로 걸었다.내리 이틀간 식칼은 적지 않게 들어왔지만 상처에 들어맞지 않았다. 백성들이 은 열 냥의 상금에 눈이 멀어 가짜를 진짜라고 속인 것이다.우문호는 가슴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서 초왕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이 폭발할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자시(밤11시~1시)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녹주가 밤을 새다가 원경릉이 나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달려가, “왕비마마, 어찌 아직 안 주무십니까?”원경릉이: “왕야께서는 아직 안 오셨느냐?”녹주가: ‘방금 서일이 와서 오늘밤 왕야께서는 관아에서 묵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쇤네는 왕비마마께서 주무시는 줄 알고 들어가 고하지
경조사에 온 원경릉포졸 하나가 급히 들어와 예를 취하며: “왕야, 왕비마마께서 오셨습니다.”우문호가 고개를 들고, “왕비가?”뭐 하러 왔지? 이 밤중까지 왜 안 잤어?우문호가 나가보니 정말 녹주가 원경릉을 부축해서 들어오고 있다.원경릉은 우문호의 피곤에 절은 창백한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오늘 공주마마께서 얘기해 주셨는데 황제폐하께서 7일의 말미를 줄 테니 사건을 해결하라고 하셨다면서요, 이렇게 큰 일이 있는데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우문호가 부드럽게 안심시키며: “걱정하지 마요, 7일의 기한이 아직 다 되지 않았고, 7일 안에 사건을 해결할 자신이 있으니.”원경릉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만약 정말 기한 안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면 집에도 돌아오지 못 할리 없다. 원경릉은 우문호를 잡아 끌고, “사건해결에 대하선 아는게 없지만 의술은 알아요, 시체 좀 보여주세요. 제가 뭔가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시체를 본다고? 안돼!” 우문호는 바로 반대하며, “죽은 사람이 뭐가 볼 게 있다고?”사람이 죽은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 시체 안치소에 얼음을 층층이 쌓아 뒀지만, 시체가 이미 부패하기 시작했다. 냄새가 심한데 원경릉이 어찌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을까?“하지만 당장 경조사도 별다른 진전이 없잖아요, 맞죠? 절 속이려는 생각 마세요.” 원경릉이 말했다.“날 믿어, 잘 될 거야.” 우문호 자신조차 자기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원경릉을 관아 뒤 후원으로 보내 나한상에서 좀 쉬게 한 뒤, 녹주를 불러 왕비가 쉬도록 잘 돌보지 못했다고 꾸지람을 했다. 우문호가 자신을 손바닥 위의 구슬처럼 다뤄주는 것에 감동했지만, 둘은 지금 이미 부부로 무슨 일이 생기면 둘이 함께 분담하는 것이 마땅하다.그래서 우문호의 이런 행동에 원경릉은 무력함을 느꼈다.하지만 억지로 할 일도 아니고 우문호는 정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원경릉은 마치 장소를 바꿔 자려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고 우문호는 여전히 사건때문에 정신이 없다.서일
안지여의 이마에 파란 힘줄이 불끈불끈했으나 냉정을 가장했다.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았나 보지? 죽음도 두렵지 않은데 뭘 더 두려워하겠어?”“넌 두려울 것이야!” 이리봉청이 고개를 돌려 이리 나리를 보고 살짝 그의 팔을 잡았다. “내가 오는 길에 늑대파 사람이 그러던데, 천하에서 제일 잔혹한 형벌을 아는 사람이 늑대파에 있다고. 그게 사실인 것이냐?”이리 나리가 가볍게 답했다. “물론 사실이죠. 훼천이라고 합니다. 늑대골 출신이에요.”“안지여가 버틸 수 있는지 어디 한 번 보고 싶구나.” 이리봉청이 말했다.이리 나리가 엄숙한 태도로 명을 내렸다. “훼천!”그러자 훼천이 급히 나왔다. “이리 나리, 분부하시지요!”이리 나리는 그가 짐짓 냉정한 척하고 있으나 눈빛이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워 훼천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작해!”안지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욕했다. “난 네 아버지거늘,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 같으니라고!”이리봉청이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는 눈빛으로 이리 나리를 바라봤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아버지는 오직 저를 키워주신 안풍 친왕뿐이십니다.”이리봉청이 살짝 안도했다. “저 인간이 단지 나만 해쳤으면 네 체면을 봐서 놔줬겠지만 천문 세가의 수백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니 난 용서할 수 없구나.”“이리봉청, 너 언제 이렇게 악랄하게 변했어? 죽이려거든 그냥 죽여. 난 천문 세가 사람을 죽이긴 했어도 그들을 괴롭히진 않았어. 네가 날 죽이려거든 깨끗하게 단번에 죽여!”안지여가 크게 노해 몇 번 몸부림을 치다가 상처가 벌어지는 바람에 배에서 선혈이 흘러나오고, 훼천이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두려움이 깊어졌는데, 늑대골 출신 훼천은 온몸에서 피비린내가 뿜어져 나와 안지여를 덜덜 떨게 했다.“이리율!” 안풍 친왕비는 시ㅈ가하기 전에 이리 나리를 불렀다. “내가 여기서 네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 넌 먼저 나가 있거라!”이리 나리가 안풍 친왕비에게
안지여에게 구원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리 나리 일행이 성을 제압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대오가 경성에서 출발하기 전에, 안풍 친왕비가 미리 사람을 풍도성으로 보내 각처, 특히 성 수비군과 군대에 잠입시켜, 음식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독을 풀어, 오늘 중독 증상이 나타나도록 독의 분량을 조절했다.적어도 내일까지는 안지여를 도우러 올 사람은 없었다. 독성은 적어도 이틀이 지나야 깨끗해지기 때문에 이틀 동안 그들은 설사와 전신 무기력으로 성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걸 알아도 와서 도울 수 없었다.그리고 그들이 기력을 회복할 때쯤이면, 안지여는 벌써 죽었을 것이다.안풍 친왕과 이리 나리는 성을 통제하고, 안지여 부부를 제압해 두 사람을 줄로 묶고 지혈시켜 주었다.안지여는 요 몇 년 동안 자신이 상당히 대단하다고 여겼다. 이는 풍도성이 부유하기 때문으로, 돈으로 많은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여러 곳에서 추켜세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처절하게 패배한 적이 없었던 이유는 진정한 적이 없기 때문으로, 주변의 떠돌이 비적은 작은 마을 규모로 너무 작아서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그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적이 너무 약해서였다.조정 사람과 비교했을 때, 그는 제대로 훈련받은 적 없는 비적었기에 일격도 감당할 깜냥이 못됐다.이리 나리는 둘을 중정에 묶어 두었다. 온 바닥에 남은 음식과 깨진 기와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본 안지여는 마음속 깊이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생일날, 그를 다치게 한 것이 바로 그의 친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욱이 오늘 이렇게 많은 고수가 현장에 있었는데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이런 결말을 맞다니 너무 불쾌했다. 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을 부축하고 안지여 부부 앞으로 가서, 그녀가 안지여 부부를 내려다보자, 그들은 낭패에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이리봉청은 분노하는 마음과 함께 서글픈 마음도 들었다. 그들을 죽이면 커다란 복수는 이뤄 천문 세가 망자의 원혼은 달랠 수 있었다.하지만 저들을 이렇게 쉽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이리 나리가 검을 휘두르며 안지여를 겨누자, 안지여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후퇴했다.공자들은 돕고 싶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안지여는 이리율 것으로 그들은 주변 사람을 제압하기만 할 뿐 옆에 서서 전투를 관전하고 있었다.이리율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를 가르친 안풍 친왕 부부를 제외하고, 사실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이리율의 검법은 신속하고 맹렬해서 안지여는 상대하느라 쩔쩔매고 구석으로 몰리고 있었다. 성안의 호위들은 늑대 무리와 늑대파, 홍매문 사람들에게 막히는 바람에 안지여는 홀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버틸 수 있었다.하지만 30분을 못 가서 안지여는 질게 틀림없었다.놀란 나머지 계속 실성해 있던 소여쌍이 갑자기 이리봉청을 향해 바싹 마른 손을 뻗어, 그녀의 목을 조르며 광적인 집착과 분노에 사로잡혀 성질을 부렸다. “멈춰, 다들 멈추라고. 안 그러면 내가 이년을 죽여버릴 것이니까!”소여쌍은 무공을 할 줄 알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이 어릴 때부터 계속 중병을 앓아 무공 연습에 소홀했고 성주 부인이 된 뒤로는 더욱 병기에 가까이할 일이 없었지만, 공력만큼은 아직 약간 있었다.소여쌍은 증오의 힘으로 이리봉청의 목을 졸랐는데, 소여쌍이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이리봉청의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았다.안풍 친왕이 차가운 눈빛으로 나서려 하자, 안풍 친왕비가 말리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뜻으로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참으라는 눈짓을 하자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모두가 이리봉청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손가락으로 뭔가를 쥐고 있어 소여쌍의 어깨 위를 휘감고 팔을 눌러 소여쌍이 머리를 돌리게 했다. 이리봉청 손에 쥔 것은 바늘로, 그대로 소여쌍의 오른쪽 눈을 찌르고 들어갔다.소여쌍이 절규하며 이리봉청을 놔주고 선혈이 흐르는 눈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다 바닥에 쓰러져 데굴데굴 구르며 새된 소리를 지르는데, 원망과 저주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
풍도성 중정에는 안지여의 아들들과 사위가 그의 곁에 남았는데,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점점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이 사람들, 아주 대단하구나!’안지여는 이리봉청을 보고 비록 조금 냉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갑자기 소여쌍이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앞뒤로 흔들며 눈물을 찔끔거리더니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이리봉청을 가리키며 원망했다. “뜻밖에 네가 안 죽었단 말이지? 게다가 아들까지 있고. 참으로 황당하구나. 정말 너무 황당해. 원래 죽어야 했을 인간은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사람은 36년간 괴로움을 당했어. 이리봉청 네가 날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넌 이제 지옥에 떨어져야 해.”이리봉청은 소여쌍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했는데, 그녀 눈에는 지금 안지여만 들어왔다.안지여는 36년을 살아왔지만, 이리봉청에게 있어 36년은 마치 사라진 시간처럼 멸문지화의 원한이 어제 일 같았다.안지여도 이리봉청의 눈에서 분노와 악랄함을 보고, 처음으로 마음속에 두려움을 느꼈다.안지여는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네 사람을 데리고 가. 지난 일을 묻지 않을 테니. 그렇지 않으면 풍도성에서 곧바로 10만 대군이 올 것으로, 살아서 도망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는 게 좋아.”이리봉청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우리는 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바로 네 성으로 쳐들어갈 수 있어. 넌 이미 졌어.”안지여가 웃었다. “졌다고? 그래?”안지여는 수하의 대장군이 믿음직해서, 그들을 당하게 놔줄 수도 있다고 여겼다. 대장군의 부대는 분명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으로, 아마 지금쯤이면 궁수들이 이미 배치를 마치고 그들을 전부 쏴 죽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이리 나리가 이리봉청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머니, 저자와 말 섞으실 필요 없어요. 앉아서 지켜보시기만 하면 됩니다!”말을 마치고 의자를 올리더니 이리봉청을 부축해서 앉혔다.안지여가 이리 나리를 보는데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안지여가 퍼뜩 눈을 돌려 이리 나리를 보았다.‘이리봉청이 저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건러니까?이리 나리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찬찬히 훑어보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안 성주와 좀 오래된 원한을 따져야 하는데, 관련되기 싫으신 분은 자리를 피해 주시지요!”그때 한 사람이 검을 짚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무슨 자격으로 자리를 피해라 마라야? 안 성주를 귀찮게 할 생각이면 일단 나부터 통과해 보시지!”그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장검을 뽑아 파죽지세로 이리 나리를 향해 휘둘렀다.이리 나리는 손을 살짝 움직여 손바닥으로 칼자루를 밀자, 검이 날아가며 그 사람의 귀를 베어 한 줄기 피가 공중에 뿌려지더니, 방금까지 기고만장하던 자가 비명을 지르고 귀는 바닥에 떨어졌다.검이 다시 이리 나리 수중으로 정확히 돌아왔다.이 모든 게 3초 안에 벌어진 일이었다.“회선검?” 검법을 아는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현장은, 숨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회선검은 검마의 검법으로, 그렇다는 건 저 사람이 검마의 계승자?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무리에서 검마를 찾았다. 과연 두 손으로 검을 안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도 차가운 안광이 느껴졌다.과연 진짜 검마구나, 사람들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검마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리 나리를 흘끔 보더니 속으로 의아해했다. ‘이 자식, 언제 내 비장의 검법을 배운 거야?’이리 나리의 검 끝에선 아직 선혈이 떨어지는데,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했다. “이 아수라장에 끼고 싶은 거라면, 제가 무례하다고 원망할 생각 마세요.”“무엄하도다!” 안지여가 몹시 놀랐다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치켜뜨며 이리 나리를 노려봤다. “너는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내가 네 아버지다!”이리 나리가 코웃음을 쳤다!안지여의 몇몇 아들이 달려 나와 소리쳤다. “아버지, 저희가 지켜드리겠습니다.”안풍 친왕이 젓가락을 던지고 일어나 차갑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성주의 생일이기에 경사라 섣불리 피를 볼 수는 없으므로 칼은 빼 들었지만 먼저 나서서 늑대를 죽이는 사람은 없었다.안지여는 어두운 눈빛으로 ‘늑대 무리라고? 척후병의 보고로는 안풍 친왕이 늑대 무리를 끌고 온다고 했는데, 저들이 의외로 성으로 직접 쳐들어 왔다 이거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지여는 잔을 들고 꿈적도 하지 않은 채, 무너지기 직전까지 미동도 없는 태산처럼 냉정하고 침착했다. 늑대 무리는 안으로 들어온 뒤로 두 패로 나뉘어 서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호시탐탐 엿보며 으르렁거렸다.“성주님, 성주님, 저들이 기어코 쳐들어오겠다고….” 문지기가 외치는 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더니, 그보다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이 먼저 들이닥쳤다.앞에 걸어들어오는 두 사람을 안지여는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풍 친왕 부부로 예전에 그들이 천문 세가 사람들을 조사하러 왔을 때 그에게 속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당시 일면식 뿐이었으나 천문 세가 일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탓에 그들의 얼굴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째서 별로 변한 게 없는 거지?’안풍 친왕 부부 뒤에 따라오는 10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그들의 호위 무사일 것으로, 주인인 안풍 친왕 부부는 별 표정이 없었으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와 고개를 들자 괴팍하고 악랄한 얼굴이 안지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안지여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미소는 띠고 있었지만 매서운 눈빛으로 저들이 돌계단을 오르면 그때 일어나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게 그의 태도였다.하지만 안풍 친왕 부부는 돌계단을 오르지 않았고, 손님 중 건배를 권하느라 자리를 비운 사람들 의자에 검은 옷을 입은 노인들이 차지하고 앉아, 그들을 대놓고 밀치더니 품에서 자기 젓가락을 꺼내 옆 사람 상관하지 않고 먹기 시작해 사람들이 다 경악했다.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두 사람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
풍도성 안은 술잔을 주고받고 건배하며 흥겨운 잔치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안지여는 오늘 황금색 예복을 입었는데 예복에 거대한 이무기를 수놓았으며, 황실의 밝은 황색과는 약간 구별되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진짜 곤룡포로 착각할 만큼 거대한 이무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 구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용과 매우 흡사했다.안지여는 자신의 야심을 이미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당연히 안지여는 오늘도 야심을 감출 생각 없이 손님들에게 보란 듯이 자세를 잡았다. 심지어 인근 지역 조정 관리들이 손님으로 왔어도 안지여는 전부터 맺어온 관계였기에, 그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매우 두터워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황제가 그들을 시시콜콜 관리할 수 없었다.그 자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오늘 황실에서 파견한 일행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연회석에서 큰 소리로 물었다. “성주님, 듣자하니 안풍 친왕 전하와 이리 부마께서 오늘 오신다던데 어째서 안 보입니까?”안지여가 잔을 들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진심으로 생일을 축하한다면 결국 오겠지요.”“여정을 듣기론 오늘 분명 풍도성에 도착한다고 했는데, 어째서 밤이 되도록 아직 안 보입니까? 설마 성주님이 직접 나가서 맞이하셔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성주님이 가서 맞이하셔야 한다고? 아주 허세가 대단한데? 퉤!”“누가 아니랍니까? 진심으로 생신을 축하하는 거였으면 며칠 전에 풍도성에 도착해 성의를 보여야지, 오늘까지 늑장을 부리다가 늦게서야 와서, 아직도 잔치에 오지 않은 건 분명 성주님의 체면을 안중에도 두지 않은 행태입니다. 제가 보기에 못 들어오게 막고 돌려보내시지요, 마음만 받은 셈 치고요. ”“맞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풍도성에서 받은 공물이 적지 않았으니, 만족한 줄도 알아야죠.”“풍도성은 더 이상 조공을 바칠 필요 없어요. 뭐 때문에 그럽니까? 수백 년 전에 풍도성은 원래 북당의 영토가 아니었어요. 선을 긋고 나와 독립해야 합니다.”모두 안지여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서, 몇 잔 들어가자, 비위를
소여쌍의 욕은 거의 반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이것도 별로 드문 일이 아니라 무쌍거 사람들은 다 익숙해져 있었다. 성주가 오지 않거나 소여쌍이 아프기 시작해도 이렇게 욕을 해댔다.욕하다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늙은 몸종이 가서 달랬다. “부인 그러실 게 뭐가 있으십니까? 몸이 가장 중하십니다.”소여쌍이 의자에 기대 늘어졌다. 극도로 피곤해 풀린 눈으로 천정을 보며 비참함이 가슴 깊은 곳을 타고 내렸다. “오늘이 초엿새지?”“네!” 늙은 몸종이 대답했다.소여쌍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곧 15일이구나. 또 내 명을 재촉하는 고통이 오겠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그러자 늙은 몸종도 매우 괴로워했다. “부인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고통도 며칠이면 그럭저럭 지나가서, 그동안도 그렇게 지내셨잖아요?”“며칠이면 뭐 그럭저럭 지나가나?” 소여쌍이 잔인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건 네가 이 고통을 안 당해봐서 그래. 이게 다 이리봉청 그년 짓이야. 오빠가 그년을 쫓아가서 죽이게 한 걸 정말 후회해. 그년을 잡아 와서 가두고 내가 한 번씩 아플 때마다 그년을 갈기갈기 찢어발겨 나보다 수천 수백 배 고통스럽게 해야 했어.”늙은 몸종이 소여쌍의 손을 쥐었다. “부인 그런 생각 마세요. 벌써 죽은 사람을 이제 와서 생각해 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성주님과 자꾸 다투지 마세요. 자꾸 다투시다 보면 감정이 사라집니다.”소여쌍이 처연한 웃음을 지었다. “오빠는 진작부터 나한테 아무 감정 없어.”“성주님은 이리봉청에게 아무 감정 없으세요. 감정이 있을 리도 없고요. 안 그러면 당시 부인을 위해 이리봉청을 죽이고 천문 세가 사람을 다 죽이셨을 리가 없죠.”소여쌍이 고개를 돌리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전에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요 몇 년간, 성에 들어온 여자들 생긴 걸 보라고. 전부 이리봉청을 쏙 빼닮았잖아? 오빠는 역시 후회하고 있는 거야. 날 위해 이리봉청을 죽인 걸.”소여쌍은 늙은 몸종의 손을 잡는데 고여서 썩
안지여는 소야쌍을 놓고 천천히 안으로 걸어갔다. “이틀 뒤가 내 생일인데, 당신 몸 상태는 어때?”그러자 소여쌍은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얼른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 했는데, 몇 걸음 만에 휘청거리더니 하마터면 안지여 뒤로 넘어질 뻔했다.안지여는 소여쌍을 잡아줄 수 있었지만, 손을 뻗지 않고 그녀를 등지며 보이지 않는 척했다.시녀는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얼른 소여쌍을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는 것까지 막았다.소여쌍이 숨을 돌리고 살짝 웃었다.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오빠 곁에 있을 수 있어요. 오빠 생일에 당연히 제가 곁에 있어야죠.”안지여는 그제야 소여쌍을 돌아봤다. “생일엔 손님이 많이 올 거야, 올해는 다른 어떤 해보다 성대하게 하니까 당신도 잘 차려입어. 내가 내일 사람을 시켜 장신구를 보내도록 하지.”“네, 알았어요!” 소여쌍이 기쁜 듯이 말하며 안지여를 한없이 바라봤다.하지만 안지여는 소여쌍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사정 설명했고 체면도 차렸으니 됐다 싶어 말했다. “난 아직 일이 있어서. 당신 쉬는 걸 방해하지 않을 테니 잘 쉬고 있어.”안지여는 말을 마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려고 했다.이때 소여쌍이 갑자기 닭발 같은 손을 뻗어 안지여의 팔을 붙잡으며 서둘렀다. “오빠, 어렵사리 왔는데 저랑 얘기 좀 더 해요.”안지여가 고개를 숙이고 소여쌍의 마르고 늙은 손을 바라봤다. 손등에 주름이 자글거리는 것이 구겨진 비단 뭉치처럼 너무 흉해서 혐오감이 든 나머지 쓱 손을 뺐다. “말했잖아, 일이 바쁘다고.”소여쌍의 눈빛이 갑자기 매서워지며, 늙고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이 바쁜 거예요, 아니면 그 여우 년을 찾아가는 거예요? 제가 모를 줄 아세요?! 여자를 성에 얼마나 숨겨놨는지.”안지여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헛소리야?”소여쌍이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축 처진 눈에서 원한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늙었다고 싫어하는 거잖아요, 아녜요? 잊지 마세요. 오빠의 동안도 결국 늙는다고요. 이리봉청이 아직 살아있어도 지금 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