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부가 초왕부 안으로 들어가자 희상궁이 나와서 그를 맞이했다.태부는 희상궁의 손을 잡고는 “태자비와 태자는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고, 어떠한 고난도 헤쳐나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태부께서는 걱정 마세요. 제가 두 분께 꼭 전하겠습니다.”희상궁은 태부의 손을 떼고 싶었지만 위태부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손을 뗄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전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두 사람의 이해관계를 따져봐야 합니다. 문둥산에는 왜 갔으며, 정말로 그들을 고칠 수 있는지, 문둥산 사건으로 지금까지 쌓아온 태자의 덕과 공이 한순간에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아, 예……”“그나저나 희상궁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손이 반드르르합니까? 어째서 나만 늙고 희상궁은 그대로입니까?”희상궁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손을 뒤로 당겨빼더니 한 발짝 물러서서 태부를 껄끄러운 표정으로 보았다.‘다 늙은 양반이 어디서 수작이야?’*우문호는 왕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위태부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말머리를 돌려 관아로 돌아갔다.“전하께서 태부를 상대하지 않으면 태부께서는 틀림없이 태자비를 찾아갈 겁니다!” 탕양이 그의 뒤를 쫓아오며 말했다. 하지만 탕양이 뭐라고 하든 우문호는 말을 채찍질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한 둥지 살던 새도 큰 재난이 닥치면 각자 도망가는 법이야!”우문호는 말이 많은 사람을 극도로 싫어했다. 특히 위태부는 했던 말을 주야장천 계속하는 것으로 조정에서도 유명했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면 눈물까지 흘렸다.우문호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다 모아 놓은 집합체가 바로 위태부였다.탕양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태자비 혼자 위태부를 상대하게 남겨둘 수 없다.*지금 원경릉이 문둥산에 오르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문둥산 사건 이후로는 백성들이나 문무백관 심지어 안왕부 사람들까지 문둥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환자를 치료하고 초왕부로 들어올 때는 미색과 함께 변장을 해서 태자비임을 숨겼다.“태자비는 죄인이다!”“태자비가
원경릉은 위태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녀는 조정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혼내러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녀는 위태부가 말이 많으면 뭐 얼마나 많겠어?라고 생각했다. 위태부는 태자비를 앉혀놓고 한 시간 동안 쉼 없이 말을 했다. ‘저 가냘픈 몸에서 저렇게 말할 기운이 나오는 게 용하네……’“태자비께서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백성들이 공황과 혼란에 빠진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너나없이 문둥병의 발병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황상께서는 태자를 폐할 생각까지 하고 계십니다.”“……”“황상께서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는지 태자비께서는 모르시지요?”“……”“황상께서 기력이 쇠하셔서 오늘 소신이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가 그 자리에서 그만 기절까지 하셨단 말입니다!”위태부의 말을 듣고 있던 원경릉은 눈이 서서히 감기는 것을 느끼더니 앞으로 고꾸라져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옆에서 잠을 자던 희상궁이 ‘쿵’소리에 눈을 떴고 바닥에 고꾸라진 원경릉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사식아, 만아야 이리 오거라!”문어귀에서 졸고 있던 두 사람은 희상궁의 고함을 듣고 달려왔다. 사식이는 머리를 들고 만아는 발을 들어 신속히 원경릉을 옮겼다.순식간에 일어난 일로 위태부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입을 떡 벌리고 어버버하는 순간 원경릉은 두 사람에 의해 밖으로 실려 나갔다.위태부는 옆에 있는 희상궁을 보며 입을 열었다.“희상궁, 노부가 아까도 말을 했지만, 태자비께서 지금 저 모양이니…… 지금부터 노부가 할 말을 잘 정리해서 나중에 태자비에게 전하세요. 그러니까……”희상궁는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자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날이 이미 어두워졌으니, 위태부께서도 일찍 돌아가 쉬십시오. 할 말이 남았다면 내일 다시 오세요. 거기 밖에 누구 없습니까? 탕양! 서일! 빨리 태부 님을 댁으로 보내주세요!”탕양과 서일이 태부 옆에서 그를 끌고 나가다시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태부는 고개를 돌려 희상궁
우문호는 조정에서 원경릉과 이혼하겠다고 했지만 그녀와 이혼은 하지 않았다.바로 이때 황제가 갑자기 황태손을 책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삼둥이들이 태어난 지 꽤 됐는데도 불구하고 황태손 책봉을 하지 않다가 지금 책봉을 한다고?’명원제가 죽고 우문호도 죽으면 황태손이 후계자가 되는데 즉, 황태손이 미래의 북당의 황제가 된다는 뜻이다. 황태손 책봉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황제가 실제로 태자를 폐위시킨 뒤 황태손을 양성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황태손의 책봉식에 문둥산에 다녀온 원경릉은 당연히 갈 수 없었다. 원경릉은 아이들이 떠난 후 한산해진 틈을 타 문둥산에 전보다 더 자주 올라갔다.*현비는 소답화가 의뢰한 자객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자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원경릉은 왜 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지금쯤 원경릉이 죽었어야 하는데 말이야……’현비도 원경릉과 마찬가지로 황태손 책봉식에 가지 못했다. 태후는 현비에게 화가 나서 금령을 내린 후부터 그녀를 궁궐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했다.황태손 책봉을 맞아 오랜만에 경중으로 돌아온 안왕이 황태손 책봉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왕비와 함께 입궁했다.안왕은 군영에서 몇 달 동안 지내면서 얼굴이 시커메진 것은 물론이고 전보다 많이 야위어 안왕비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다.황태손 책봉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시끌벅적한 군중 속에서 명원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싱글벙글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안왕은 기뻐하는 명원제의 모습을 가만 지켜볼 수 없었다.기왕도 왔다. 기왕이 황태손에게 다가와 학문과 무공을 열심히 하라며 덕담을 했고, 명원제도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손왕은 전보다 살이 좀 빠진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밝은 황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등장했다. 그가 황태손에게 다가와 미소를 짓자 전에 두 겹으로 겹치던 턱살이 한 겹밖에 겹치지 않았다. 태상황이 들어오자 명원제가 만두를 들어 태상황의 품에 안겨주었다. 태상황은 만두를 안고는 엄숙하면서도 부드
황태손이 책봉된 후 초왕부의 문 앞에는 소란스러움은 사라지고 예전의 평온함을 되찾았다.이리 나리는 설랑들이 자꾸 왕부로 회귀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설랑들을 초두취로 데리고 오기 위해 초왕부에 자주 드나들었고, 그러면서 원경릉의 무공도 봐주었다.원경릉은 그에게 아침저녁으로 무공을 배우겠다고 했다.그녀는 배운 무공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하면 이리 나리를 초두취를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원경릉은 전보다 체력도 무공도 많이 좋아졌다. 전에는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던 그녀가 지금은 정원에 대추나무까지 뛰어가도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리 나리는 기함을 토했다.“태자비, 이렇게 무공을 익히면 앞으로 누군가에게 쫓겨도 도망갈 수 있겠네요.”*원경릉은 이리 나리의 투박한 칭찬을 듣고 너무 기뻐서 저녁에 우문호를 껴안고 한 시간이나 재잘거렸다.우문호도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그는 이리의 말대로 원경릉이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위협을 당할 때 다른 사람이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상황을 도망치길 바랐다.*섣달 열여덟 날은 회왕이 미색을 아내로 맞이하는 날이다.원경릉은 두 사람의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문둥산에 이미 많은 약들을 구비해두었기에 앞으로 며칠 동안 올라가지 않아도 됐다. 이리 나리는 미색에게 혼인 선물로 경중에서 호화로운 집을 하나 마련해 주었다. 미색에게 줄 집 내부에는 각종 진귀한 가구와 골동품,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잔뜩 있었다. 이리 나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오랜 기간 혼례복만 전문적으로 만든 이에게 은돈 십만 냥을 들여 주문 제작했다. 며칠 후 미색의 혼례복이 도착했고, 미색은 상자를 열어보고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혼례복에 놓인 수는 지금까지 그녀가 보았던 혼례복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 땀 한 땀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더없이 화려했다.미색이 혼례복을 꺼내 입자 원경릉은 미색의 눈부신 미모에 숨이 턱 막힐 뻔했다.원경릉의 반응에 미색은 멋쩍은
우문호는 원경릉에게 빚을 지은 것 같았다. 당시에 그가 원경릉과 혼인할 때 기분이 좋지 않아 혼례를 망쳐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원경릉과 그는 이미 부부 사이가 되었기에 다시 혼례를 할 수는 없다.지금 여섯째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그는 그때로 돌아가 원경릉과 다시 한번 혼인식을 하고 싶었다. ‘경릉이에게 난 어떤 신랑이었을까? 경릉이는 혼인식만 생각하면 화가 나겠지? 그나저나…… 다시 혼인을 한다면 경릉이가 정후의 집안이 아닌 이리의 집안이면 좋겠네. 그럼 혼수로 들어온 물품으로 대대손손 부유하게 살 수 있을 텐데……’우문호는 잠깐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회왕의 혼인식에서 문둥산 사건은 잊어버린 채 마냥 즐거워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아파서 비실거리던 여섯째가 혼인을 하여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회왕의 혼인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즐거워했다. 제왕도 기분이 좋은 듯 거하게 취해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본왕은 오늘 너무나도 기쁩니다. 나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형제…… 회왕이 드디어 장가를 가다니! 진심으로 축하하고,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다 같이 건배합시다! 건배!”제왕이 웃고 떠드는 사이에 원용의가 조용히 나타났다.원용의는 제왕에 눈에 띠지 않으려고 조심히 다녔는데도 불구하고 제왕은 한눈에 그녀를 발견하고 말았다. 축제 분위기 속에 상반되게 두 사람 사이에는 냉기가 흘렀다.원용의의 조모는 원경릉과 함께 문둥산 환자를 치료한다면, 그녀에게 다시 혼사를 주선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조건은 원용의의 구미를 당기지 못했다.그녀는 한살이라도 젊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오늘 밤 원경릉은 이곳에 오지 않고 이리 가문에 남아서 이리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원경릉은 이리 가문에 사람들이 하나같이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을 보고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느꼈다.이리 가문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초두취 사람들과 그 거래처 그
사실 회왕의 혼인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역시 노비였다.명원제도 이렇게 좋은 날 빠질 수 없었다. 그 역시도 주황후와 함께 궁을 나와 회왕의 혼인식에 참석했다.미색이 명원제를 보고 무릎을 꿇어 인사를 하자 노비는 감동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다. 노비는 자신의 뱃속에 있던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여인을 맞이하는지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됐네, 그만 일어나게.”명원제가 말했다.노비는 이렇게 기쁠 일을 미색의 신분을 들먹이며 시간을 끌었는지 후회가 됐다.‘앞으로는 기뻐할 일만 남았네.’혼례가 한창 고조되고 있었고 명원제와 주황후 그리고 노비가 함께 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밖에서 대흥국(大興國)의 숙친왕(肅親王)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7개국 중에서 대흥국과 대월국(大月國)이 경제나 무역 심지어 농업 면에서도 북당보다 훨씬 좋았다.대흥국과 북당은 일찍 국교를 수립한 적이 있었으나 일부 국경문제로 명원제가 등극한 후 양국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왔다. 그렇다고 크게 전쟁을 한 것은 아니지만, 단편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았다.심지어 대흥국은 우문호를 태자로 책봉할 때에도 3품 짜리 사신을 보내 축하의 말을 전했다.그런데 회왕의 혼인식에 대흥국의 숙친왕이 오다니? 명원제는 물론이고 황실 친왕들도 깜짝 놀랐다.주수보는 회왕 혼인 중매가 성공해 이리 가문에서 사례비를 받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 술에 거하게 취해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숙친왕의 등장에 주수보는 술이 단번에 깨는 듯했다.숙친왕은 대흥국 문황제(文皇帝)의 친동생으로서 문황제가 제위하기 전에 대흥국에서는 그가 더 똑똑하고 용맹하다고 하마터면 숙친왕을 황제로 삼을뻔했다.숙친왕은 대흥국의 이름난 대장으로서 전장에서도 수많은 활약을 했으며 지금은 대흥국의 병부상서직을 맡고 있었다.‘군직을 맡고 있는 숙친왕이 회왕의 혼인식에 온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란 말인가?’모두들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흥국의 숙친왕과 그의 시종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
숙친왕이 왜?어쨌든 노비는 후궁의 몸이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회왕은 이상야릇한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나가 예를 취하고, “친왕 전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일단 제가 드리는 혼례 축하주 한 잔 받으시지요?”숙친왕이 시선을 거두고 작게 한숨을 쉬더니, “혼례 축하주는 안 마시겠습니다. 제가 마시는 게 마땅하지도 않고요, 대신 차 한잔 올리시며 장인 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이 말이 떨어지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고 회왕도 어리둥절해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숙친왕의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지?역시 우문호의 반응이 빨라서, “왕야 말씀은 그러니까, 미색이 왕야의 여식이라는?”숙친왕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흠, 그렇습니다.”노비가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세상에 미색이 대흥국의 군주라는 말입니까? 어째서 말하지 않았나요?”명원제가 작게 헛기침을 하자 그제서야 노비가 자신이 예법에 어긋났음을 느끼고 앉았으나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숙친왕을 바라봤다.명원제가, “자순(子順),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숙친왕이 작은 목소리로, “폐하, 소신 내일 보고드림을 용서하십시오, 우선 미색을 좀 만나보고 싶습니다.”명원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오더니 숙친왕을 안내했다.숙친왕이 일어나 예를 취하고 물러나자 커다란 그림자가 재빠르게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하객들이 상당히 놀란 것이 전에는 다들 ‘회왕은 폐병을 알아서 상인 집안의 딸과 겨우 혼인하는 거라 가문의 격이 맞지 않지만 돈은 많다더라’ 하고 결혼 잔치에 참석하면서도 다소간 새 신부를 무시했었다.하지만 새 신부는 무려 대흥의 군주인 것이다.신분이면 신분, 돈이면 돈, 회왕은 정말 복도 많다.미색은 오늘 기쁨이 넘쳐서 신방에 들어온 뒤로 계속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에 그녀의 성정을 생각하면 이렇게 적막한 고통을 참아낼 리가 없지만 오늘은 감히 꼼짝하지 않는 것이 수모(手母, 혼례에서 신부를 도와주는 여자)가 그러는
미색의 삼자대면회왕이 다급한 목소리로, “때리지 말아요, 무슨 일이든 저한테 하세요.”숙친왕이 손을 들어올린 건 원래 미색에게 겁을 주려고 한 행동인데, 이 녀석이 뛰어들어와 미색 앞을 가로막고 서는 바람에 기왕 이렇게 된 거 이 녀석을 밀치며 무공이 어느 정도인가 시험해 봤더니 이거 허약한 것 좀 봐, 역시 못쓰겠어.회왕은 병을 앓았을 때도 무공수련을 했다. 비록 요 몇 년간 병으로 수련에 소홀하긴 했지만 반년 넘게 수련을 해와서 숙친왕이 밀쳤을 때 그래도 안정적으로 서있고 한쪽으로 밀쳐지지 않았다.하지만 미색은 아버지가 회왕을 밀친 것을 보고 분노하며 벌떡 일어나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길, “낭군을 왜 때려요? 낭군은 환자인데 환자 앞에서 세다고 뽐내는 거예요? 어디 저한테 덤벼 보시죠, 우리 나가서 싸운 다음 아버지가 지면 대흥으로 돌아가세요.”미색은 혼례식 전에 회왕과 개인적으로 두세 번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부드럽고 순종적인 성격이라 길 가다가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 밟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광분해 소리치는 걸 듣고 순간 넋이 나가서, 회왕은 미색을 다시 보는데 나와 혼인할 신부가 바꿔 치기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미색도 자신의 실수에 ‘아차’싶었지만 눈앞의 상황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만약 회왕이 이때문에 자신을 싫어하면 이 혼례는 없었던 일이 되고 미색은 다시는 시집을 가지 못 가니,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솟구쳐올라 발을 쾅쾅 구르며, “봤죠? 그래서 제가 아버지가 오시지 말았으면 했던 거예요. 아버지가 오시면 내 혼사를 깨 버리실 게 분명하니까. 어렵게 어렵게 원하는 낭군을 만나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이제 틀림없이 절 싫어할 거예요.”아름다운 여인이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니 눈가에 보석이 매달린 듯한 것을 보고, 회왕의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오며 숙친왕이 자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색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오늘 당신과 내가 혼례를 치르고
요부인의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말은 항상 그녀의 불안을 사라지게 해주었다.그녀가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아이가 정말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정말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네. 이렇게 좋은 아버지를 두었으니. 아이가 우리 곁에 올 수 있기를 너무 바랐네."그가 아버지로서 얼마나 훌륭한지, 희열과 희성은 여러 번 그녀에게 말했었다.그들은 밖에서 모두 아무 말 없이 침묵하며, 두 사람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 마침내, 미색이 참다못해 물었다."나이가 좀 많다는 것 외에, 다른 위험이 있습니까?""나이가 많다는 것 자체가 큰 위험이다. 출혈도 있고, 다른 증상도 있을 텐데 말하지 않더구나.""무슨 증상이요?"미색이 잠시 멈칫했다."혹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증상 때문에 아이를 지킬 수 없다면 그때 다시 아이를 포기해도 됩니까?""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가정할 수는 없다. 너무 많은 경우가 생겨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그저 지금의 상황과 몸 상태를 고려해 볼 뿐."나이가 많은 여인이 임신하면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태아에게도 위험이 생길 것이다. 임신 중에는 자간, 경련, 두개내출혈, 태반 조기 박리가 있을 수 있고, 출산 후에는 선천적 결함이나 선천성 심장병 등이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임산부의 위험이 더 컸다. 임신성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그리고 신장병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 증상들이 꼭 나타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정상 연령대의 임산부보다는 확률이 훨씬 더 높고, 흔히 보는 증상이었다.원용의가 물었다."그럼, 가장 나쁜 결과는 무엇입니까?"원경릉이 고개를 흔들었다."가장 나쁜 결과는 모두가 예상한 것처럼 어머니와 아이 모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가 클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알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바로 그때, 훼천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
미색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정말 잘됐습니다! 정말 임신이라니요!"원용의와 손왕비는 서로 눈을 마주쳤을 뿐, 미색처럼 기뻐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웠다.그들은 모두 요부인이 이 나이에 임신한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특히, 요부인이 황후와 함께 걸어 나올 때, 황후의 눈빛에서도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의술에 정통한 그녀마저도 낙관적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들은 더더욱 낙관할 수 없었다.원경릉이 미색과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요부인과 훼천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나가자꾸나."미색은 잠시 멈칫했다."우리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까?""그래. 부부끼리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원경릉이 미색을 끌어당겼고, 미색은 워낙 눈치가 빨라 이 말을 듣자마자 단번에 깨달았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요부인에게 물었다."설마... 아이를 포기할 셈입니까? 왜요?""미색아, 헛소리하지 말고, 먼저 나가자."원경릉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문밖으로 향했다. 손왕비와 원용의도 이 모습을 보고는 함께 따라 나갔다.미색은 잠깐 머뭇거렸지만 결국 원경릉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계속 원경릉을 붙잡고 캐물었다."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입니까?"뜰로 나와서 원경릉은 말했다."나이가 있으니, 지금 상태로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잘 상의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손왕비와 원용의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미색은 멍하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그러니... 지금 두 분은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논의 중이신 것입니까?""이건 그들 부부의 일입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우린 그저 지지해 주면 됩니다."원용의가 담담히 말했다.그러자 미색이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예. 물론 지지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꼭 지지할 것입니다."그녀는 돌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문지르고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이도 이 세상을 한번 보고 싶었을 텐데요."다들 아이
원경릉은 도무지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훼천이 자네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심지어 이 아이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고 하는데, 어찌 위험을 감수하려 하는 것인가? 자네가 없는 세상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그에게 이 아이는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네."그들은 혼사 후 줄곧 행복하게 지냈다. 아이가 없어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만약 그녀의 몸이 견딜 수 있다면 문제 없겠지만, 이제 막 임신한 상태에기에 벌써 출혈이 생겼다. 게다가 이후에 그녀가 말하지 않은 다른 증상이 생길 가능성도 높았다.그러면 너무 위험해진다.요 부인이 아랫배를 어루만졌는데, 얼굴에는 모성애가 감돌고 있었다."처음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 나도 이 아이를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네. 내 몸이 임신과 출산을 견뎌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네. 난 간절하게 그와의 아이를 갖고 싶네. 너무 이기적인 걸 알지만, 그 바람이 나를 흔들었네. 그가 아버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네.""그는 이미 아버지네. 훼천은 언제나 희열과 희성을 친자식처럼 여겼네."원경릉이 말했다."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심지어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래서 더욱 미안한 것이네. 다른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더라면, 자식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나를 선택한 탓에, 그는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없네. 그도 정말 아이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아이를 원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원한 적은 없네. 임신한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말할 용기가 없다는 건, 그도 위험을 감수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네."요 부인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나도 알지만... 참 아쉽네."그녀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사실 혼사를 올렸을 때, 그도 아이를 더 가질 필요 없이 희열과 희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네. 하지만 두 딸은 그의 성을 따를 수 없네. 임신한 적
과거에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미색은 풍부한 출산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훼천은 그녀의 경험이 필요했다.훼천은 미색을 한 대 쥐어박으려 튀어나오려는 손을 억누르며 원경릉에게 다가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황후 마마, 부디 맥을 짚어 상태를 확인해 주시옵소서."원경릉이 물었다."이미 의원에게 진맥을 받지 않았는가? 회임이 확실한 것인가?""몸이 좋지 않다고 하니, 그제 돌아온 희열이가 맥을 짚어 보고는 임신했다고 했네. 나도 잘 모르겠네."요 부인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 나이에 임신이라니, 정말 부끄러웠다.그녀는 원경릉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부르더니, 조용히 속삭였다."사실 아닐 수도 있네. 몇 달째 월경을 하지 않아서...""몇 달 동안 하지 않았다니요? 그럼… 임신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내력이 깊은 미색은 요부인이 원경릉에게 바짝 다가가 낮게 말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말았다. 그리고 미색은 바로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조용히 하거라!"원경릉이 웃으며 그녀를 나무랐다.‘미색도 참...’"정말 임신한 것인지, 어서 확인해 보게나."손 왕비가 말했다."그럼, 방으로 가세."원경릉은 요 부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미색도 따라가려 했지만, 훼천이 그녀를 막았다."여기서 기다리시지요. 어차피 의술도 모르잖습니까.""나도 도우려는 것이다. 훼천아, 너도 참... 호의를 몰라주는구나."미색은 목을 길게 빼고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일 먼저 알아내야 했다. 그러자 원용의가 그녀를 붙잡았다."그냥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임신이 맞는다면 원 언니가 곧 알려줄 것이니."미색에는 다시 훼천을 바라보며 물었다."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지 않았느냐? 어찌 임신을 막는 약을 쓰지 않은 것이냐?"훼천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지금 너무 걱정되었다.이 나이에 아이를 가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희열과 희성도 효심이 깊었고, 외손자까지 얻었기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리 나리가 말했다."훼천이 집으로 왔는데, 기쁘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래서 물으니 다 말해주었소. 석 달 동안 비밀로 하려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검사도 하고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황후에게 알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소."목여 태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원경릉을 찾아갔다.원경릉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요 부인이 임신했다는 목여 태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실험 도구를 급히 내려놓으며 물었다."정말인가?""부마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목여 태감이 대답하자, 원경릉이 말을 이었다."정말 큰 일이네. 요부인의 건강 상태가 원래 좋지 않았는데, 이제야 임신하다니. 그래도 큰 경사니, 내일 당장 찾아가야겠소."지금은 이미 오후였기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것이 좋았다.저녁이 되어 우문호가 궁으로 돌아오자, 원경릉이 말했다."내일 요부인을 만나러 갈 것이오. 아마 밤늦게 돌아오게 될지도 모르오.""다녀오시오."우문호가 말했다.그는 겉옷을 벗으며 물었다."이 나이에 임신해도 괜찮소?""아직 쉰 살은 안 됐지만, 고령 임산부인 건 맞소. 게다가 건강 상태가 원래부터 좋지 않아서 나도 좀 걱정되오.""그럼 당신이 곁에서 잘 챙겨주시오."우문호가 배려하며 말했다.그는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원경릉의 도움이 필요하면 무조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오늘 저녁 여섯째도 궁에 왔소. 그래서 이 소식을 전했으니, 아마 내일 미색도 갈 것이오."우문호가 말했다."미색이 알게 됐다면 내일 아주 많은 사람이 몰리겠소."원경릉이 웃으며 말했다.미색은 비록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기쁜 일에는 지나치게 열정적이었다.다음 날 아침, 원경릉은 이른 아침부터 약상자를 들고 출발했다.요부인의 저택 앞에 도착하니, 역시 미색의 마차뿐만 아니라 원용의와 손 왕비의 마차까지 줄지어 서 있었다.문을 들어서자마자 미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제부터입니까? 대체 언제부터 우리한테 비밀로 하고 있었던
특히 황제가 된 지금, 그는 평화가 있어야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두 사람은 손을 꼭 맞잡았다. 각자 자신의 신념과 소망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이틀 후, 이리 나리가 궁에 찾아와 다섯째와 함께 경단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논했다.그러자 우문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돌아오다니? 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어젯밤에도 교류했지만, 귀경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지금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쯤 불러들일 생각인지 묻는 것입니다.""한두 해는 지나고 부를 셈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계획을 세울 생각입니다."이리 나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1~2년이라면 금방 지나가겠군.’우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속셈입니까?""전에 말했잖습니까? 경단이는 내 가업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제자가 그럴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제자의 자식을 탐낼 수밖에요."이리 나리의 제자 원경릉은 장사에 소질이 없었기에 그저 냉가의 가업을 그녀에게 맡길 수 없었다.이리 나리는 전부터 경단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만두는 경성으로 돌아와 군무를 배우고 있으니, 경단도 그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한두 해 뒤에 돌아오면, 몇 년만 더 가르치면 대성할 것이었다.그러자 우문호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 진심이십니까? 냉가의 산업을 몽땅 삼켜버릴까 봐 걱정되지 않습니까?"하지만 이리 나리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우선 몇 년 동안 가르칠 것입니다. 먼저 배울 것이 바로 부친의 뻔뻔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입니다."우문호가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내 아들을 데려가면서, 어찌 이득도 못 보게 하는 것입니까?!""이득은 무슨, 이건 그야말로 통째로 삼켜버리는 거잖습니까? 욕심이 너무 크십니다."이리 나리는 옷소매를 휘날리며 자리에 앉은 후, 목여 태감에게 말했다."황후에게 가서 전하시오. 할 일이 생겼다고."목여 태감은 어리둥절했다."부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일을 하셔야
우문호는 종일 바빴다. 그는 차 한 잔을 들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닌, 그저 밥은 먹었는지, 무엇을 먹었고 내일 무엇을 할 셈인지 묻는 것 뿐이었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요즘 잘 지내는지, 무슨 책을 읽고 있느지에 대해서도 물었다.마치 처음으로 전화기를 접한 시골 사람처럼 신기해했지만 그는 마땅한 대화 주제를 찾지는 못했다.한편 원경릉은 홀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우문호는 이미 능숙해진 듯 보였고, 심지어 목욕하러 가면서도 아이들에게 말을 남겼다.그가 목욕하러 가자, 원경릉은 곧장 아이들과 교감하며 이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다섯째는 지금 억제제를 맞은 상황이었다.아이들은 잔뜩 흥분한 채 앞으로 언제든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는 의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를 미친 사람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목욕을 마친 우문호는 마치 의기양양한 수탉처럼 걸음걸이조차 전보다 더 당당해 보였다."원 선생, 계란이가 그곳이 이곳보다 훨씬 덥고, 과일도 적다고 하오. 과일을 말려, 아이들에게 나누어 보내는 것이 어떻소?"그러자 원경릉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소. 그럼 내일 함께 말리는 것이 어떻소?""좋소! 아, 그리고 만두한테도 물어야겠소. 깜빡하고 어디까지 갔는지 묻지를 못했소."우문호는 앉아서 머리를 수건으로 닦은 뒤 다시 눈을 감고 우문예와 대화를 시도했다.그 모습을 보며 원경릉은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침대에 누워서도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 상태였다. 그는 두 손을 베고 말했다."원 선생, 당신이 없었으면, 정말 많은 재미를 놓쳤을 것이고, 이렇게 많은 걸 배울 수도 없었을 것이오. 세상에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소. 우리가 경험한 일들이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지조차 믿기 어렵소.""알겠소."원경릉은 그의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난 당신이 살던
"그래, 좋구나. 죽여서 천도를 꼭 바로잡아야 한다!"우문호가 말했다."천도?""법이다! 죽여서 법을 바로 세워야 한다!"냉정언이 꼬투리를 잡자, 우문호가 급히 정정하며 억울한 표정으로 까다로운 그를 바라보았다.천도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는 요즘 천도를 따르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저녁 무렵 소월궁으로 돌아온 우문호는 흥분한 얼굴로 원 선생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 하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사색에 잠겨 한쪽에 앉아 있는 원경릉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가 돌아온 것도 모르는 듯했다."원 선생...?"우문호가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원경릉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없는 문제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며 넋을 잃고 있다가, 우문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다급히 일어나 말했다."돌아왔소? 곧 저녁을 올릴 테니, 손 씻고 오시오."그가 괜히 입맛을 잃을 수도 있으니, 그녀는 일단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려 했다.하지만 우문호는 신이 나서 앉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급할 거 없소. 할 말 있소."원경릉이 그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따라 웃었다."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소? 어찌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오?"우문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오늘 계란이와 연락이 닿았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소."그러자 원경릉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정말이오? 목소리를 들었소? 뭐라고 했소?"순간 우문호의 얼굴에 빛이 나는 듯했다."밥 먹었냐고 물으니, 먹었다고 답하며 나한테 식사를 했는지 물었소. 그래서 굴비를 먹었다고 말했네.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고, 조만간 우리를 보러 오겠다고 했소."원경릉은 그의 말이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와 아이들이 교감할 수 있는 것은 자기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다섯째는 그들과 다른 상황이라 교감이 가능할 리가 없었지만 기쁨에 가득 찬 그의 표정으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했다."말을 한 것이오?"원경릉이 다시 묻자, 우문호가 이내 고개를
점심을 먹은 후, 그녀는 혼자 산꼭대기로 올라가 먼 곳에 있는 금나라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거세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그녀는 문득 스승님이 금나라로 돌아갔는지 궁금해졌다.그녀는 스승님이 며칠 더 머물기를 바랐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히 금나라로 떠났다. 그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일은 좀처럼 없었기에 이상했다.방금 들린 낮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녀는 순간 스승님이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들려, 어머니가 아버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버지의 정신력이 이렇게 먼 곳까지 전달될 수 있는 걸까?그녀는 마음을 집중해 답해 보았다.“아바마마, 저는 식사를 했습니다. 아바마마는 드셨습니까?”한편, 경성 황궁 어서방에서 냉수보, 이리 나리, 탕양, 그리고 몇몇 친왕과 중신들이 과거 시험 개혁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이리 나리가 자신의 의견을 차근차근 얘기하고 있었고 모두가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우문호가 갑자기 고개를 살짝 기울이더니, 이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기쁨에 찬 얼굴로,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먹었어, 먹었다. 굴비를 먹었는데, 정말 맛있더구나."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그가 탁자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잔이 앞으로 날아가, 열변을 토하던 이리 나리의 얼굴을 강타해 버렸다. 이리 나리는 코를 맞은 것도 모자라,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이리 나리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서 옷을 털어내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사과와 해명을 하시지요."그러나 우문호는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그는 이리 나리의 어깨를 붙잡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듣고 있으니, 어서 계속 이야기 하십시오. 나리의 의견이 너무 뛰어나,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나리는 정녕 전무후무한 북당 최고 부자입니다! 훌륭합니다!"냉수보가 무표정하게 말했다."북당의 수보는 접니다만."이때, 목여 태감이 황급히 달려와 걱정스러운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