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요.”예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연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오빠랑 만나서 너무 좋아요.”갑작스러운 고백에 소이연은 쑥스러웠다.자신도 육현경과 만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민의 친모가 보는 눈이 없어서 다행이지. 아니면 이렇게 좋은 언니를 어떻게 만나겠어요.”예수진이 아부하는 티가 확 느껴졌다.“빨리 자요.”소이연이 재촉하고는 부랴부랴 욕실로 들어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예수진이 킥킥 웃으면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여자들이란 참, 먼저 쓰레기 같은 남자를 만나야 정신을 차리고 진짜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건가?소이연이 문서인 쓰레기를 만난 것처럼 자신도 불행하게 계지원과 만났다고 여겼다.…이튿날 아침 예수진이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휴대폰 액정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전화를 받았다.“다인, 계지원이 다 알아서 처리한다고 말했잖아. 우린 그냥 기다리면 되니까 날 귀찮게…”“계 감독님이 이미 발표했어.”갑자기 잠을 확 깬 예수진이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서 앉았다.커다란 인기척에 소이연도 깨어났다.침대에서 일어나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예수진을 바라봤다.예수진이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일면에 계지원의 개인 성명이 올라와 있었다. 그와 예수진의 연애 관계를 확실하게 부정하고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일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문서아와 지금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불법 언론사에 사실과 어긋나는 말과 사진을 함부로 올리지 말라고 요구했다.소이연이 옆에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계지원과 문서아가 사귄다고?문씨 가문에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문서아는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수진!”다인이 휴대폰 너머로 큰소리로 불렀다.“어.”예수진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조용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너 계 감독님과 정말 아무도 없었어?”다인은 믿기지 않았다.아무도 없었다면 왜 사진에 찍혔냐고? 그것도 야심한 밤에 육씨 저택에서.육씨 저택이 그렇게 쉽게 드나
예수진이 침묵했다.다인은 그녀가 불쾌해한다는 걸 눈치채고 한숨을 내쉬었다.계지원과 문서아의 재산을 따진다면 예수진이 빼앗겨도 할 말이 없다.예수진이 안쓰러워서 위로했다.“연예계에 좋은 남자가 널리고 널렸다. 남자가 계지원 하나뿐이겠어? 지금 계지원과 문서아가 서로 입장을 발표한 이상 우리 작업실에서도 축하해줄 생각인데 그래도 괜찮겠어?”그녀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다.“알아서 결정해.”“그럼 오늘 하루 쉬어, 내가 촬영팀에 말할게.”“알았어.”예수진이 전화를 끊고 문서아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문서아가 개인 SNS에도 글을 올렸다.‘저와 지원 씨는 오랫동안 연인 사이로 지냈어요. 우리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이어갈 거예요. 여러분의 지지와 축하에 감사드려요.’라는 글와 두 사람이 친밀하게 찍은 사진도 첨부해서 올렸다.계지원과 문서아가 얼굴을 맞대고 웃는 모습이 정말 애틋하게 사랑하는 연인 사이처럼 보였다.하지만 댓글은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어제 예수진과 계지원의 스캔들이 나서 기뻤는데 오늘 눈을 뜨고 보니까 다른 여자로 바뀌었네. 능력 좋다!][딱 봐도 예수진이 계지원한테 놀아난 거네. 야심한 밤에 계지원 따라 집에 가서 뭘 했겠어? 지금 두 사람이 스캔들이 나오니까 계지원이 시치미를 떼를 것 좀 봐.][계지원 정말 무책임하다. 우리 수진이만 가엽게 속았네.]예수진이 덤덤하게 댓글을 읽었다.소이연도 옆에서 세 사람에 관한 뉴스들을 검색해 보았다.여론이 빠르게 한쪽 방향으로 쏠렸다. 모두 계지원이 무책임한 바람둥이라고 비난했지만 문서아는 오히려 멀쩡했다. 그래도 계지원과 연인 사이라고 발표한 이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예수진은 온전히 피해자가 되었다.그래서 자신의 명의로 예수진의 미래를 바꾸는 게 계지원이 말한 처리 방식이란 말이야?뭔가 수상한데?소이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계지원이 예수진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는 것 같았다.그런데 예수진은 왜 그렇게 싫어할까?아무런 이유 없이
싫어한다면 예수진을 위해서 왜 명의까지 잃어가며 혼자 책임을 졌을까?“두 사람 관계는 좀 복잡해. 계지원은 내 친구이지만 촌수로 따지면 삼촌 뻘이야. 내가 대신 비밀을 지켜주고 있어. 그러니까 두 사람은 될 수 없는 사이야.”육현경이 알려주지 않아서 소이연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말해줄 수도 있어.”그러다 육현경이 말을 바꿨다.“…”순순히 알려줄 리가 없지.육현경은 언제나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씨 가문의 사적인 문제라 외부인에게 말하기가 좀 그렇거든. 근데 나한테 시집을 온다면 자연스럽게 집안의 모든 일을 알게 될 거야.”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에 소이연은 어이가 없었다.어제 예수진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늙은 여우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육씨 가문에 여우들만 모여서 사는 가문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수진이 잠시 부탁할게. 걔가 살 집을 마련하면 그때 옮길 거야.”“알았어.”예수진이 오래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혹시 여행가고 싶어?”육현경이 화제를 돌렸다.“…”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네?소이연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거절했다.“안 돼. 나 바빠.”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려면 준비할 것이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얼마나?”상대방의 퉁명한 소리가 들렸다.“3개월 정도.”마지막 결승전까지 버틴다면 3개월은 바쁘게 보내야 한다.“3개월 뒤에 거절하지 마.”듣기엔 명령 같지만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소이연은 가슴이 설레었다.결국 마지못해 대답해서야 전화를 끊었다.…일주일 뒤.계지원에 관한 이슈가 사나흘 만에 관심도가 하락했다.육씨 가문에서 손을 쓴 것 같았다.계지원도 꽤 영리한 두뇌를 갖고 있다. 육씨 가문에서 예수진이 연예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관여하지 않지만 계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터지면 무조건 압박을 가해서라도 처리해주니 그것을 이용한 것 같았다.그렇다 해도 부정적인 뉴스 때문에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계지원은 사람들 뒤에서 일하는 직업이라 아무
소나은이 입을 열기 전에 문서아가 몇몇 실장을 꼬리에 달고 다가와 지껄였다.“정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도 만난다더니 세상이 너무 좁지 않아요?”문서아까지 올 줄은 몰랐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이번 프로그램에 초청한 연예인들 중에 인기 연예인은 없었다. 일부분은 한물간 배우이고 다른 한 부분은 2,3 선에서 배회하는 여자 연예인뿐이었다.일반인들끼리 파트너를 맺는 자리에 인기도 높은 연예인들이 올 자리는 아니었다.소이연은 두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돌아서 갔다.“이연 언니. 아무리 자신감이 넘쳐도 자만하지는 말아야죠. 전국 국민들 앞에서 정말 괜찮겠어요?”문서아가 비아냥거렸다.“서아, 너나 걱정해. 내가 그동안 계 감독님을 지켜봤는데 쓸데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여자는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소이연이 대꾸했다.문서아의 안색이 순간 싸늘해졌다.계지원을 내세워서 협박할 줄은 몰랐다.“참, 전에 현경 씨 생일 때, 내가 지원 씨 하고 술도 마셨어.”소이연이 일부러 신경을 긁었다.“다음에 또 모인다면 서아도 데리고 나왔으면 좋겠다.”소이연이 말을 마치고 돌아서 갔다.그 모습을 보던 문서아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소이연, 너 지금 나를 비꼬는 거야?아무리 뉴스에서 커플이라고 나불거려도 실은 진정한 연인 사이가 아니다, 이 거야?그날 저녁 계지원과 예수진이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을 때 계지원이 새벽 3시에 문서아에게 연락했다. 자신과 사귄다면 날이 밝는 대로 대외에 발표하겠다고 말하면서 발표하는 즉시 자신의 평판이 바닥을 치는 것은 물론 그녀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문서아는 고민도 없이 단번에 대답했다.평판이 나빠지는 건 일시적일 뿐, 계지원이 먼저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승낙한 뒤, 두 사람이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는 사진 몇 장을 찍기 위해서 계지원이 새벽 4시에 문서아의 별장에 왔었다.계지원이 입장을 발표를 한 뒤에 문서아더러 개인 SNS에 사진과 글을 올리라고 했다.그래서 두 사람
소씨 가문만 의지해서는 안 되었다. 소씨 가문은 워낙 남존여비 사상이 강해 한두 개 원고를 사는 건 문제없지만 거액을 들인다면 틀림없이 반대해 나선다. 그러니 문씨 가문의 재력까지 이용한다면 쉽게 이름을 날릴 수 있다.먼저 문서인을 찾아가서 문씨 그룹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요구했다.문서인에게 손톱만큼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지만 승승장구하려면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다행히 문서인이 거절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줬다.무엇을 요구하면 한마디 잔소리도 없이 해줬다.만약 소나은이 빈털터리가 된다고 하면 문서인도 따라서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하지만 문씨 가문에서도 손해보는 건 없었다.이번 대회에서 문씨 가문 대표로 대상을 받게 되면 문씨 가문에서 영광을 얻게 되니까.소나은이 눈을 찔금 감았다.은하그룹에 있을 때 진정한 실력을 발휘하지 않았다.소이연이 압박을 가할 때마다 대충 하는 시늉만 냈었다.어쨌든 그녀를 위해 일하는 건 썩 내키지 않았다.그러니 이번 대회에 진지하게 임한다면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참가자들이 녹화장에 들어가 감독의 안배에 따라 각자 자리에 앉았다.예고편을 찍을 때 현장에 참여한 관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연예인들과 파트너를 정한다.소이연이 앞에 나서서 자기소개를 할 때 모두 경멸하는 시선을 보냈다.다들 은하그룹 수석 디자이너라는 직함도 스스로 안배해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수군거렸다.그렇게 되면 소이연과 소나은 두 자매가 맞서서 겨루는 상황이 되어버리니 이 좋은 구경거리를 놓칠 사람이 어디 있을까?소이연이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 어떤 연예인도 그녀를 택하지 않았다.필경 파트너와 업무는 서로 성질이 다르니, 첫 번째 대결에서 소이연 때문에 탈락하고 싶지 않았다. 프로그램 규칙은 디자이너가 탈락하면 파트너도 탈락하기에 서로 신중하게 파트너를 골라야 했다.소나은이 자기소개를 할 때 국제디자이너대회에서 글로벌 수상 5위, 아시아 수상 2위, 은하그룹 수석 디자이너 및 문씨 그룹 수석 디자니어 등등 수상
”솔로 디자인 쇼” 프로그램이 방송한 후 대중들의 인기를 한 번에 샀다.예고편과 제1회가 방영되자 반응도 좋고 시청률도 꽤 높았다.그때서야 육현경이 소이연이 말한 바쁜 3개월에 뭘 하려는 지 알게 되었다.모니터 화면을 통해 소이연이 나온 부분만 무한 반복으로 돌려봤다.몇 분도 안 되는 영상을 30분이나 보다니, 옆에서 지켜보던 이명진은 할 말을 잃었다.사모님은 워낙 예쁘게 생겨서 연예인들과 같이 서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돌려보고 돌려 보고 또 돌려 본다면 마지막에 눈알이 돌아가 버릴 지도 모른다. 대표님의 눈이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순간 살의 그득찬 시선을 느끼고 바로 입을 닫아버렸다.“그렇게 웃겨?”육현경이 물었다,“웃기지 않습니다.”이명진이 대답했다.“역시 사모님의 미모는 아름답습니다.”그 말에 육현경이 침울해졌다.이명진은 울고 싶었다. 예쁜 걸 예쁘다고 말한 것뿐인데.예쁘다고 칭찬도 못해요?“나가!”육현경이 짜증을 냈다,이명진이 무거운 짐이라도 덜어버린 듯 쏜살같이 달려나갔다.사무실에 혼자 남은 육현경은 늘씬한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들고 소이연의 번호를 눌렀다.한편, 소이연은 마침 회의를 여는 중이었다.휴대폰 액정을 힐끗 보더니 ‘회의 중입니다. 잠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간편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확인한 육현경의 얼굴이 한층 더 침울해졌다.그때 단톡방 메시지가 떴다.육현경이 4인 단톡방을 열고 들여다보았다.하도경이 영상 하나를 보냈다.바로 육현경이 방금 계속 돌려보던 그 영상이었다.친절하게 육현경의 이름까지 태그해서 보냈다.“현경아, 네 마누라 봤어? 예능에 참가했던데 인기 꽤 있더라? 댓글에서 예쁘다고 난리 났어. 제1회에서 역전승하고 5위를 따냈어.”문자 메시지만 봐도 지금 하도경이 얼마나 격동해 있을지 상상이 갔다.육현경은 그 흔한 이모티콘도 보내지 않고 무시해 버렸다.하도경이 이번엔 계지원을 태그했다.“네 마누라도 참여했어. 소나
”여자친구 실력도 우습게 보지 마.”“소이연, 당신 뒤에 튼튼하고 견고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금산이 있다는 걸 항상 잊지 마.”그 말에 소이연이 웃음을 터뜨렸다.참 유혹적이고 인상 깊은 표현이었다.“저녁에 시간 있어?”육현경이 화제를 돌렸다.“있어.”보름이나 만나주지 않았으니 저녁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해도 그의 요구를 들어 주기로 했다.“이따가 회사 앞으로 갈게. 너희 집에 가서 저녁 먹자.”육현경이 안배했다.“…”소이연은 잘못 들은 줄 알고 확실하게 말했다.“우리 집에 먹을 거 없어.”“라면도 없어?”“라면 먹을 거야?”소이연이 되물었다.“응.”육현경이 흔쾌히 대답했다.“알았어.”그때 비서가 노크하고 업무를 보고하러 들어왔다.“일 봐야 돼. 이따가 보자.”“그래. 이따가 봐.”소이연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저녁 7시 30분쯤 되었을 때 갑자기 육현경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부랴부랴 휴대폰을 들고 전화했다.“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어.”휴대폰 너머로 원망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착 깔린 쉰 목소리는 감미로웠다.“어디 있어?”“창 밖으로 내려 봐.”소이연이 창가 옆으로 다가가자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검정색 마이바흐가 눈에 띄었다.마이바흐에 탄 남자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분명 평범한 행동인데도 멋져 보였다.“지금 내려갈게.”육현경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재빨리 가방을 챙기고 퇴근했다.회사 입구 앞에서 육현경이 마이바흐 옆에 기대 있었다.소이연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미안, 전화하지 그랬어. 회의하느라 까먹었어.”“기억하면 됐어.”육현경이 포기한 말투로 말했다.“…”내가 그렇게 믿음이 안 가는 사람이었나? 난 정말 바빴는데.“얼른 타.”육현경이 그녀가 탈 수 있게 문을 열어주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소이연은 잠시도 쉬지 않고 앞치마를 둘렀다.냄비를 가스에 올려 놓고 라면을 열심히 젖고 있을 때 육현경이 뒤에서 감싸 안았다.키가 워낙 훤칠해서 작고
“아, 아니…”소이연은 고개를 흔들었다.뜨거운 국물에 잠깐 닿은 거라 곧 괜찮아졌다.그녀는 참을 수 있었다.그보다 갑작스럽게 훅 다가온 육현경의 숨결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졌다.워낙 키가 큰 편이라 그녀가 바텐더에 앉아있어도 그와 비하면 여전히 작았기에 아담해 보였다.육현경은 소이연의 말을 듣지 못한 채 그녀의 작고 여린 손을 찬찬히 훑어보았다.빨갛게 데인 흔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우리 이연이는 왜 자꾸 덤벙거리지?”나무라는 것 같았지만 사실 애정이 듬뿍 담긴 말이었다.“내가 언제!”소이연은 반박하기에 급급했다.하지만 금세 풀이 죽었다.육현경과 집에서 오붓하게 밥 먹은 적이 몇 번 없었는데 번마다 해프닝이 있었다.그녀는 육현경의 깊어진 눈을 마주치면서 대답했다.“네 앞에서만.”그녀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런 적이 없었다.“그래?”육현경의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면 그녀의 대답에 만족스러운듯했다.“네가 기댈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해. 나의 영광이야.”뭘 또 이렇게 오버해?소이연은 몸부림쳤다.“라면 불겠다.”그러고는 바텐더에서 내려오려 했다.“가만히 있어.”육현경은 명령조로 말했다.“라면 불면 맛없는데…”“내가 갈게. 우리 이연이는 가만히 앉아있어.”육현경의 말을 들은 소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순간, 그녀는 육현경한테 애 취급당한 느낌이 들었다.육민을 대하듯이 말이다.아, 육민은 그한테서 지나친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소이연은 가만히 앉아서 육현경이 라면을 건져내 두 그릇에 나눠 담고 옆에 있는 식탁에 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바텐더에 앉은 소이연을 안아서 내려주었다.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아 오붓하게 라면을 먹었다.그냥 라면인데 둘이 함께 먹으니 맛나고 행복했다.육현경은 식사를 다하고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오히려 객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소이연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오늘 저녁에 집에서 디자인을 할 생각이었다.평소에는 은하그룹
하지수는 송문수와 하도경을 따라 나갔다. 차는 천씨 가문의 차량으로, 운전사는 천씨 가문 소속이었다. 하도경은 조수석에, 송문수와 하지수는 뒷좌석에 앉았다.송문수와 하도경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여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갔다.대화의 대부분은 그들 간의 이야기였다. 하지수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았지만, 시끄럽다고 느끼지 않고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고 받았다.“승우 오빠.”하도경과 열심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송문수는 잠시 시선을 멈췄다. 하도경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송문수는 금세 원래의 태도로 돌아와 하도경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문수랑 함께 있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문수랑 함께 있다고? 어디야?”송승우는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는 멀리 가지 않았다. 물론 호텔 앞에는 없었지만, 하지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랬다.그는 오늘 송문수에게 전화를 걸어 분명히 말했다.송문수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좋지 않은 관계를 고려할 때, 송문수는 하지수에게서 멀어지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는 하지수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었다고 믿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하지수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는 하지수가 어릴 때부터 강하고 독립적인 성격이었다고 생각했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발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하지수에게 잘 위로하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는데, 대답은 송문수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완전히 다른 답이었다. “우리는 지금 서울 구경하러 나갔어요.”하지수가 말했다. “둘이 나가서 놀고 있다고?”송승우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송문수와 하도경이 같이 가고 싶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어요.” “너... 개의하지 않냐?”송승우가 물었다. “뭘 개의치는데요?”하지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말은, 너와 송문수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 함께 놀
“오해라고?”송문수는 무관심한 듯 말했다. “오해야.”하지수는 확신하며 말했다.“승우 오빠가 사진을 올릴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러니까 안 올린다고 해서 그게 존재하지 않는 일이 되나? 너희 사이에 감정이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 그건 웃기는 일이다. “아니야.”하지수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평소에 송문수가 이렇게 말 잘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성적도 좋지 않고 평소엔 느긋하게 지내던 그가 지금은 그녀를 말문이 막히게 만들고 있었다.“내 말은, 그저 관광객으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그가 올리면서 상황이 애매해진 거야. 그래서 네가 오해할까 봐 걱정됐어.”하지수는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그래서 돌아온 거야.” 송문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다.하지수가 자신을 조금은 좋아하는 것 같았다.“결국 돌아와서 내가 본 건 이런 장면이라니!”하지수는 방금의 장면을 떠올리며 다시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없이 있었다. 그냥 너무 힘들고 속상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걸까? 부부로서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속상한 건지, 아니면 그에게 진짜 호감이 생긴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하지수는 어릴 적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송승우가 돌아왔고 송승우가 하지수를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가 송승우를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송문수는 입술을 다물고 말없이 있었다. “네가 정말로 원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송문수는 여전히 침묵했다. “어때?”하지수가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나쁘지 않았다. 송문수는 사실 출소 이후로 여성과의 접촉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대답을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저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수는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
송문수는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는 하지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런 말의 위험성을 알고 있을까?정말 자각이 없는 걸까?하지수는 송문수의 붉어진 얼굴과 귀를 바라보며 찡그렸다. 이건 착각일까? 송문수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많은 전투를 경험한 사람이 이런 표정을 보이다니?그녀가 잘못 본 걸까? 하지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송문수의 뺨을 만졌다. 송문수는 순간 얼어붙었다.하지수가 말했다.“정말 뜨거워.” “너 뭐 하는 거야?” 송문수는 재빨리 몸을 떼었다. 하지수는 찡그렸다. 그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는구나. 하지만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단지 소통과 교류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감정은 천천히 쌓일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네가 얼굴이 붉어졌다고 생각해.”하지수가 말했다. “내가 붉어졌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야?”송문수는 부인했다.“이건 화가 난 거야 알겠어? 화가 나서 가슴이 두근거려서.” “뭘 그렇게 화내?”하지수가 물었다. “내 사람을 쫓아냈으니 내가 뭐로 화내지 않겠냐?” “내가 보완할 수 있어.” “하지수, 너 조금 자제할 수 없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이렇게 무례하게.” 송문수는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내가 내 남편한테... 그게 무례한 거야?”하지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녀의 얼굴도 붉어지고 귀와 목도 빨갛게 변했다. 마치 익은 게살 같았다. 송문수의 아담한 목이 움직였다. 그 깊은 욕망이 그를 자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게다가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남편... 그는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하지수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다시 화가 치밀었다.“아직도 안 입고 있니?” 하지수는 붉어진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그녀는 송문수를 흔들지 못했다.비록 그녀가 이 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준비한 것이 많았다. “정말 성가셔.”송문수는 하지수가 오랫동안 아무 행동을 하지 않
그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늘 그 여자도 그냥 형식적으로 불렀을 뿐이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도덕적으로 강요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하지수의 관계를 깔끔하게 끊고 싶어 했다. “한번 해보면 어때?”하지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해보지 않을 거야.”송문수는 단칼에 거절했다.“하지수, 너...” 송문수는 정말 화가 나버릴 지경이었다. 하지수가 몰래 연습했다는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올랐다. “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 알겠어?” “필요 없어.” “송문수, 그렇게 싫어해?”하지수는 겨우 참았던 눈물이 이제는 미친 듯이 쏟아졌다.“울지 마.”송문수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하지수가 언제 이렇게 잘 울었어?크면서 울고 있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결혼한 후 하지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성숙하고 침착해져서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송문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수가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송승우에게만 보여줬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하지수는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평소의 침착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여자를 내보내.”하지수는 침대에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이 순간 두 사람의 시선에 충격을 받았다. 오늘 큰 거래를 성사했고 가격이 맨몸으로 뛰어다니게 할 만큼 좋았다. 여자는 올 때 모든 매력을 한껏 발산하려 했고, 돈이 문제인 게 아니라 진짜 남자를 보고 나니 뭔가 대박을 터뜨린 기분이었다.잘생길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은 여자는 직감적으로 이 남자가 큰 만족감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여자는 자신의 모든 기술을 사용했지만 남자는 여자를 한 번도 보지 않고 규칙을 지키라고 했다. 둘은 같은 이불 속에 누워 있었는데 여자를 만지지 말라고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자는 혼란스러웠지만 돈을 위해서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지금 이 장면이 벌어졌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다.
“하지수, 너 미쳤어?”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을 강하게 바라보며 눈이 금세 충혈되었다. 그의 표정은 분노라기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컸다.하지수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여러 가지 반응을 떠올려보았다. 송문수를 때리며 분을 풀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수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둘째, 침대에 있는 여자를 쫓아낼 수도 있었다. 예전에 그런 적이 있었다. 셋째, 돌아서서 그냥 떠날수도 있었다.이 세 번째 가능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관없다면 아무 반응도 없을 것이다. 사실 하지수는 방금 떠났었다.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지?그리고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다니, 송문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송문수는 서둘러 하지수의 옷을 올려주며 말했다.“하지수, 너 미쳤어?” 하지수는 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억울한 모습에 송문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자신을 위해 울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갑자기 이렇게 울어버리다니. 하지수가 버림받은 듯 처참한 마음이었다.그런데 하지수는 송승우를 좋아하는 것 아닌가?송문수는 하지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서 있었다. “송문수, 나도 할 수 있어.”하지수는 절규하듯 말했다. “뭐?”송문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송문수의 눈에는 오직 하지수의 눈물만 보였고,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도 너와 함께 잘 수 있어.”하지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슬픔에 차서 그녀는 계속 흐느꼈다. 송문수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도 하지수를 더 울릴 것 같았다. 송문수는 갑자기 그녀가 울어버릴까 두려워졌다. 어릴 적처럼. 그는 사실 매번 하지수를 울리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수의 시선이 항상 송승우에게 향해 있었기에 그가 장난을 치지 않으면 하지수는 그를 전혀 주목하
이렇게 보니 그 여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방금 송문수가 침대에 누웠을 때 하지수도 그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설마... 하지수는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송문수는 찡그린 얼굴로 하지수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지수가 갑자기 돌아왔으니... “아!”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하지수가 여자의 이불을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침대는 어젯밤 하지수가 덮었던 것이고 지금은 다른 여자가 그 이불을 품고 있었다. 송문수는 정말 더럽지 않은가? 정말 더럽다고 느끼지 않는가? 다른 장소로 옮길 수는 없었나?굳이 그녀가 잤던 침대에서 하겠다는 것인가?굳이 이렇게 그녀와 마주쳐야만 하는가? “뭘 하는 거야!”송문수가 하지수를 힘껏 잡아당겼다. 힘이 세서 하지수는 비틀거리며 거의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송문수는 본능적으로 하지수를 받쳤다. 다음 순간 그는 즉시 하지수를 놓아버렸다. “나가.”송문수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문수는 바로 몸을 돌렸다. 하지수는 송문수의 냉담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수는 방금 송승우에게 송문수가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지금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정말 아프게 맞았다. 하지수는 입술을 깨물어 하얗게 변했다. 조용한 방에서 하지수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여자는 하지수의 행동에 놀랐다. 이 여자는 그들과 함께하려는 건가?이건 너무 자극적 아닌가?아직 준비가 안 되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의 등 뒤를 바라보며 하지수가 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송문수는 하지수가 돌아온 걸 알고 있었다. 송승우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송승우는 그들 사이에 감정이 없다면 더 이상 엉켜 있지 말라고 했다. 그는 하지수가 예전의 일로 송문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서 그를 위
“지수야, 너는 좋은 아이라는 걸 알아. 네가 얼마나 착한지도 알아. 하지만 네가 이렇게 집착하는 건 원하지 않아.”송승우가 좀 더 진지해졌다.“너의 방식은 너 자신을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문수에게도 상처를 주고 있어.” 하지수는 잠시 멈칫하며 송승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다시피 너와 문수의 결혼은 네가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네가 이혼하지 않는 한 부모님은 너희를 이혼할 수 없어. 그런데 네가 이렇게 송문수와 얽히고 있으면 그의 감정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는 이혼하고 싶지만 이혼할 수 없고 놀고 싶어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돼. 지금 문수도 진퇴양난이야.” “하지만 나는 송문수가...”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 음주 운전까지 하면서 너를 만나러 오려 했던 거?”송승우가 물었다. 하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실제로 송문수가 자신을 어느 정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런 일을 했을까? 술을 마셨는데도 쉽게 떠날 수 없었던 그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빗속을 뚫고 오는 데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고 인정한다.송문수에게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그녀는 그가 출소하기를 기다리며 진심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했지만 송문수 계속 거절했다. “지수야, 너는 너무 순수해.”송승우가 말했다.“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나면 당연히 신경 쓰게 돼. 송문수가 네 사고 이후에 너를 찾아온 건 인간적인 걱정일 뿐이고, 그의 음주 운전은 법을 무시한 행동이었을 뿐이야. 혼동하면 안 돼.” “하지만...” “지금 나는 너를 강요하지 않아. 네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시간을 줄게.”송승우가 하지수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네가 상처받는 걸 원하지 않지만 지금 보니 너는 끝까지 가봐야만 마음을 바꿀 것 같아.” 하지수는 침묵했다. 그래. 하지수는 더 노력하고 싶었다. 하지수는 송문수와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송문수는 차갑게 물었다.하지수는 송문수가 술을 마셨는지 전혀 몰랐고, 그냥 주소를 알려주었다.말을 마친 후 차 안에서 오랫동안 송문수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사실 전화를 끊고 나서 하지수는 후회와 놀라움을 느꼈다. 왜 송문수에게 전화했을까? 가장 도와주지 않을 사람은 송문수였다. 하지수는 경찰에 전화했야 했다. 아니면 보험사나 4S 매장에 전화해야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 하지수는 이미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송문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결국 송문수는 오지 않고 전화로 물었다.“심각하게 다쳤니?”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아. 차 앞부분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고, 내 머리도 좀 긁힌 것 같아.”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 그리고 보험 회사와 4S 매장에 연락해 손해를 평가받아.”송문수는 말을 마친 후 전화를 끊었다. “안 오니?”하지수가 그에게 물었다. 그 순간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하지수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변호사이기 때문에 정해진 절차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사고가 나서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오늘 밤의 사고는 하지수에게 세상을 떠난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안 갈 거야.”송문수가 차갑게 말했다.“하지수, 너는 변호사잖아. 사고 후의 절차를 더 잘 알지 않을까?” 말을 마친 송문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그때 그녀는 송문수에게 정말 실망했다. 어떤 정도로 실망했냐고? 하지수는 그들 사이에 다시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이혼도 생각했다. 그 후 그녀는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한 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온몸이 피투성이인 송문수를 만났다. 옆에는 두 명의 경찰이 있었다. 하지수는 자신이 잘못 봤다고 생각해 달려가서 물었다. “송문수,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피투성이야?” “내 피가 아니야.”송문수는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구 거야?”
송승우는 잠시 얼어붙었다. 그는 놀라서 물었다.“이제 막 한 관광지를 갔는데 다른 두 곳도 준비했어. 먼 곳도 아니야. 왜 벌써 피곤해? 아니면 오후에 일이 있어?” “아니에요.”하지수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더 놀다 가자.”송승우가 농담처럼 말했다.“걱정하지 마, 미아로 만들지는 않을게.” “승우 오빠, 우리 서로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요.”하지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송승우의 얼굴에 있는 미소가 서서히 굳어졌다. “지수야, 내가 그렇게 싫어?”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어요. 오빠에게도 나에게도 송문수에게도 오해를 주고 싶지 않아요.” “왜?”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나는 네 마음을 알아. 너는 송문수를 좋아하지 않고 나를 좋아했잖아. 그런데 왜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데 다시 거부하는 거야? 부모님이 강요한 거야? 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에게 잘 설명할게. 어떤 일이든 내가 감당할 거야.” “부모님 때문이 아니에요.”하지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이제는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요.” 송승우는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충격에 그는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의심했다. “지수야, 너 뭐라고 했어?” “예전에 오빠를 정말 좋아했어요. 결혼 준비 중에 오빠가 떠나서 많이 힘들었어요. 왜 갑자기 결혼식에 도망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송문수와 결혼하기로 한 것뿐이에요. 오빠 부모님이 나를 키워주신 은혜도 있지만 오빠한테 화가 난 게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하지만 그건 예전 일이고 지금은 송문수와 잘 지내고 싶어요.”하지수가 한 단어씩 강조하며 말했다.“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감정은 식기 마련이고 오빠를 향한 그리움은 이제 없어요. 지금은 송문수와 함께 있고 싶어요.” “송문수한테 미안해서 그래?”송승우가 하지수에게 물었다. 그는 하지수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었다. 송승우가 하지수를 계속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