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국은 얼굴에 드러난 분노를 금세 숨겼지만 잠깐이나마 스친 살기마저 도아린은 놓치지 않았다.“지현이 이제 쉬어야 해요. 그만 돌아가세요.”“넌 내가 오지 않았어도 쉬게 하지 않았을 거잖아. 하필 내가 오니까 쉬게 하려는 건 뭐니?”도정국은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내 아들이야,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아낀다고!”도아린은 갑자기 비웃음을 흘렸다.“제일 아끼는 애를 세 살 이후로 그냥 내버려두더니, 제가 지현이를 보내지 못하게 하자 제 생활비까지 끊어버렸잖아요. 세상에 이런 좋은 아버지가 어디 있죠?”도정국은 순식간에 얼굴빛이 변하더니 불만스럽게 손을 저었다. “오늘은 내가 지현이를 돌볼 테니 내일은 네가 돌보거라. 이제 지현이가 깨어났으니 간병인도 필요 없잖아.”“이모는 제가 고용한 사람이에요. 아빠랑 상관없으니까 이제 지현이도 깨어났고 누가 돌볼지 선택할 권리는 지현이한테 있어요.”도아린은 고개를 기울인 채 도지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치, 지현아?”도지현은 도정국을 흘겨보더니 다시 도아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봐요, 지현이는 제가 있기를 원하잖아요. 그러니 얼른 도유준과 상의해 보시는 게 좋겠네요. 도대체 도씨 가문의 재산을 누구에게 물려줄 건지.”도정국은 그제야 도유준이 찾아와 도지현을 자극할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였다.“그럼 내일 다시 올게.”도정국은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도아린은 서둘러 문을 잠그고 병상 옆으로 돌아왔다. “아빠가 밀었어?”도지현은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핏기 없는 입술을 꼭 다문 채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누나, 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야. 평생 누나를 돌보지도 못하고 오히려 누나에게 짐만 될 거야.”도지현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목소리까지 메여왔다. “나 때문에 누나가 배건후한테 시집간 것도 모자라 돈까지 요구하면서 멸시당했잖아.”“그런 일 없어.” 도아린은 동생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그녀는 애써 개의치 않은 척하며 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도지현은 한숨에 말을 마쳤고 얼굴은 전보다 더 창백해졌다. 몸이 여전히 허약했고 깨어난 뒤에도 감정 기복은 심했다. 몇 마디만 해도 이내 힘들어졌다. 도아린은 그에게 물을 두어 모금 먹였다. 도지현은 계속해서 말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내 가로챘다.그녀는 이미 사건의 전말을 모두 눈치챘다. 도아린은 도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 외삼촌을 통해 입양된 것이다.그럼 외삼촌이 해남에서 살고 있다면 혹시 친부모님도 해남에 있는 게 아닐까?순간 복도에서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안쪽에서 쉬고 있던 조이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혜진 씨가 왔어요.”안혜진은 손잡이를 비틀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문에 달린 작은 창문을 통해 안쪽의 상황을 보려는 순간 조이서가 그녀를 병실로 끌어들였다. 조이서는 밖을 살펴보고 물었다.“혹시 복도에서 누구 만났어요?”“아니요.”안혜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온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병상 쪽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동생이 깨어났네요? 누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도아린은 도지현에게 이분이 간병인 아주머니라고 소개하고 안혜진에게 죽을 먹이라고 부탁한 뒤 전화하러 나갔다.“정말 잘생겼네요.”안혜진은 병상 옆에 앉으며 말했다. “아빠를 닮았네요. 그럼 누나는 엄마를 닮았나 봐요.”조이서는 화제를 바꾸려고 이내 말을 돌렸다. “어떻게 왔어요?”“아들이 데려다줬어요.”“아이는 괜찮아요?”“괜찮아요. 별일도 아니었어요.”도아린은 베란다로 나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도아린입니다.”전화는 곧바로 연결되었다.“말씀하세요.”윤명희는 그녀에게 두 명의 보디가드를 붙여 주었고 그들은 차에 남아 있었다.“도정국 명의의 자산 중 도유준에게 넘어간 게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도아린은 베란다 난간에 기댄 채 말을 이어갔다. 전엔 도지현이 깨어날지 몰라 관여하지 않았다.게다가 도정국의 돈을 가질 생각도 없었고 만약 동생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면 도정
“방우진, 운 좋게 법의 제재를 피했다고 해서 매번 피해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도아린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방우진은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기울이더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나중에 잡히더라도 넌 아마 보지도 못할걸?”“글쎄?”“흠.”방우진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20억 주면 생각해 볼게.”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리더니 오만한 표정으로 머리를 넘겼다.“너도 알다시피 난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야. 20억은커녕 50억이라도 쉽게 줄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왜?”그녀는 덤덤하게 자리에 앉더니 무서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도발하는 듯했다.“너 배지유의 앞잡이잖아? 아, 그나저나 다리 저는 앞잡이지.”“...”방우진은 봉투를 휘두르던 동작을 그만 멈추고 도아린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도아린은 그가 격분한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내가 죽지 않는 이상 널 반드시 감옥에 집어넣을 거야. 증거는 이미 손에 넣었거든?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도아린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등 뒤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며 순간적으로 앞으로 몸을 던져 피했다.방우진이 휘두른 물건이 그녀에게 닿지 않자 그는 한 발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누른 채 땅에 쓰러뜨렸다.“오늘 널 저세상으로 보내주지. 이제 내 죄를 어떻게 물을 거야?”그는 봉투 안에서 벽돌을 꺼내 들더니 그녀를 향해 내리치려 했다.“방우진! 귀신이 되어서도 절대 널 놓아주지 않을 거야! 넌 자손도 없이 죽게 될 거야!”도아린의 독한 저주에 방우진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는 침을 삼키며 말을 바꿨다.“원수는 원수에게 갚는 거지, 배지유 그년한테 가서 따져.”방우진이 벽돌을 내리치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손목을 가로채더니 벽돌은 도아린의 등 위로 떨어졌다.“아!”곧이어 누군가 그를 옆으로 차버리자 방우진은 정자 안의 탁자에 몸을 세게 부딪히며 땅에 쓰러졌다.“아가씨!”경호원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었습니다.”
‘괜히 물어봤네. 이미 물어본 걸 취소할 수도 없고.”우정윤이 라이브 방송에서 산 얼룩 제거제를 가져오자 배건후는 이미 검은 얼굴 인형을 책상에 올려놨다. 그 인형은 도아린과 약간 비슷하게 생겼는데 노란색 후드와 검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과 다리 색이 많이 차이 나는 것도 특징이었다.우정윤은 사용법을 배건후에게 보여줬다. 배건후는 심각한 얼굴로 얼룩 제거제를 잡은 채 마치 억 단위의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것처럼 진지했다. 인형 얼굴을 한참 바라본 끝에 드디어 한 방울 짜냈다. 순간 투명한 액체가 인형 얼굴 위로 떨어졌다.배건후가 브러시를 들기도 전에 인형은 이미 그 액체를 흡수해버렸다.“...”“제가 해보겠습니다.”우정윤이 다시 액체를 짜내고 배건후가 바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쌍의 눈이 빤히 테이블 위 인형을 주시했다. 인형 얼굴의 커피 얼룩은 지워졌지만 원래 피부색도 함께 벗겨져서 마치 백반증이 걸린 것마냥 얼룩덜룩해졌다.“보너스 깎일 줄 알아.”‘리뷰 남기고 항의해야지.’회사를 나서던 배건후는 갑작스러운 두통을 느꼈다. 우정윤은 과로 때문일 거라며 며칠 휴가 내기를 권했다.가던 중 배건후는 머리가 찌르는 듯한 통증에 병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각종 검사를 마친 뒤 두통은 가라앉았지만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신경성 두통일 가능성을 언급하며 통증이 다시 찾아오면 바로 검사받으라고 권했다.우정윤이 사모님한테 알리려고 하자 배건후는 거절했다.그는 밤새 두통이 없었고 다음 날 오후, 회의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았다.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배석준과 남궁유민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가자, 가면서 설명하마.”두 사람은 배건후의 차에 올랐다.배석준과 배지유가 함께 쇼핑하던 중 경찰이 배지유를 찾아와 협조를 부탁했다.그는 딸이 걱정되는 마음에 함께 갔지만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배지유는 다시 나올 수 없게 되었다.배석준은 헛웃음을 지으며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
도아린은 말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숙여 타자하기 시작했다. 배건후는 주머니에 넣은 손가락을 움켜쥔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돌아가서 또 무슨 짓을 한 거야?”‘또?’도아린은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그녀의 표정은 덤덤하다 못해 거리가 느껴졌다. 도아린은 입꼬리를 살짝 휘어 올리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잖아.”그녀에게 묻는다는 건 이미 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배건후는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 안에서부터 화가 잔뜩 난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가 지유를 애지중지하시는 거 너도 알잖아? 며칠만 사이좋게 지내.”“그건 네 가문의 일이야.”배건후는 눈썹을 찌푸린 채 반박하려 했지만 남궁유민이 다가오더니 그를 데려갔다.“개나 소나 감히 내 딸과 엮이려고 하다니! 지유야,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아빠는 가슴이 아프단다. 남궁 변호사도 왔으니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아빠가 반드시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하지만 오빠가...”“감히 남의 편을 들었다간 아예 직책을 빼앗아버릴 거야.”배건후는 들어서자마자 그 한마디를 들었다. 그는 분노로 이마에 핏대를 세운 채 눈가에 눈물이 고인 아버지를 지나 울면서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배지유에게 시선을 옮겼다.남궁유민은 배건후에게 의자를 빼주었다.“말해봐, 이번엔 또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배건후가 자리에 앉았다.“오빠...”배지유는 순간 울음을 터뜨렸다.배석준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이게 무슨 태도냐, 지유가 무슨 짓을 했겠어? 우리 지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도아린이 마음대로 엮어대는 거야!”배건후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 배지유를 빤히 바라봤다.배석준은 못 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동생이 울고 있는데 오빠라는 게 그냥 보고만 있니?”“방우진이 다시 체포되었습니다.”남궁유민이 설명했다. “살인 미수 혐의로 고소당했습니다.”순간 배건후의 눈빛
“민재야, 도와줘...”“한 번 더 말해 봐!”도아린은 누군가에게 머리를 잡혀 억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뒤에 있는 남자의 싸늘한 이목구비를 본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건후 씨? 건후 씨가 왜 여기에...”남자는 안개가 자욱한 유리 벽에 도아린을 밀어붙이더니 그녀의 아래턱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여긴 내 방이야, 누구이길 바라는데? 응?”도아린이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 놓으라고요...”“날 건드렸으면 끝까지 버텨야지.”남자는 도아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마구 더듬었다.“으악...”쿵!도아린은 차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면서 꿈에서 깼다.앞에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버스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길가의 배수구에 빠지면서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버스 안에는 온통 욕하는 사람들과 우는 사람들뿐이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3년 전 그날 밤의 사고에 비하면 이번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아린은 그 사고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날 밤 그녀는 배건후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러다가 배씨 가문 사모님이 되어 위기들을 해결하긴 했지만...“죽고 싶어요? 얼른 밖으로 기어 나와요!”누군가의 재촉에 도아린은 이미 망가진 케이크를 버리고 선루프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구급차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도아린은 구급차가 멀지 않은 곳의 아우디 밴 옆에 멈춰 있는 걸 발견했다.의료진들이 구급차에서 내려 차 안의 다친 환자를 부축했다. 그때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 상체를 숙이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고 나온 후 구급차에 태웠다.찰나였지만 도아린은 그 남자가 바로 결혼한 지 3년 된 남편이라는 걸 알아봤다. 그리고 남편의 품에 안겨 있는 여자는 늘 잊지 못했던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는 유학 간 그녀를 줄곧 잊지 못했다.도아린은 팔이 아픈 것도 참아가며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남자의 싸늘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용건만 간단히.”“오늘 집에 들어와
“대표님!”배건후의 차를 알고 있는 경비원이 허리 굽혀 인사했다.“대표님, 아린 씨도 자주 농땡이 치는 건 아니에요. 근데 다른 도우미로 바꾸고 싶다면 소개해드릴게요...”관리사무소 팀장은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배씨 가문의 도우미들은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썼다. 게다가 월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재벌 2세를 만날 기회가 많기에 도아린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사람이 많았다.배건후는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리스마는 모두를 압도해 버렸다.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연성의 7월은 한창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사람들은 마치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1분 후, 유리창이 서서히 내려오면서 배건후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할 일 다 하고 여기서 수다질이야? 하기 싫으면 그만두고 꺼져.”관리사무소 팀장은 놀란 나머지 두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고 당장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배건후의 언행은 상업계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런 그가 관리사무소를 내쫓는다면 관리사무소는 연성에서 더는 발을 붙이기 어려울 것이다.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배건후의 날카로운 시선이 도아린에게 머물렀다.“타.”“난 할 일이 있어서요...”그러자 배건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도아린은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배건후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차 문 쪽에 최대한 붙어 앉았다.마이바흐가 맨션을 나간 후 배건후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평소에는 기고만장하다가 침대 위에서는 힘 한 번 쓰지 못하는 남자?”“...”도아린은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다 피운 배건후가 서류를 툭툭 두드렸다.“이거 무슨 뜻이야?”도아린이 힐끔 쳐다보니 그녀가 작성한 이혼 합의서였다.“이혼하고 싶어요.”차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숨 막힐 듯이 답답해졌다.운전기사 조수현은 당장이라도 도망
전화를 받으면서 도아린을 쳐다보는 배건후의 두 눈에 경멸과 조롱이 가득했다. 관리사무소 사람마저 그녀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데 무슨 자격으로 이혼 얘기를 꺼내겠는가?도아린은 배건후가 보는 앞에서 더러운 장갑을 팀장의 얼굴에 던져버렸다. 팀장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노트와 펜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관리사무소 팀장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요! 날 내쫓는다고 해도 당신은 에이트 맨션에 못 들어가요. 배건후 씨는 여우같이 교활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당신도 여우 같긴 한데 나이가 너무 많아요!”어차피 곧 떠날 거라 참고 싶지 않았고 이참에 배건후를 한 방 먹이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배건후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고 휴대전화를 꽉 쥐었다.도아린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물을 따라 마셨다. 방문이 열려있었는데 무언가가 현관의 거치대에 놓여있었다.짐 정리를 다 마치고 나와서야 거치대에 놓여있는 물건이 그녀의 휴대전화라는 걸 알았다.‘내가 휴대전화를 건후 씨 차에 떨어뜨려서 다시 들어온 건가?’이번에 도아린은 약삭빠르게 차고에 있던 카이엔을 몰고 나갔다.카이엔은 두 사람이 결혼할 때 배건후가 준 예물 중 하나였다. 평소 그녀는 별로 외출하지 않았고 또 연성에 차가 막혀 계속 차고에 가만히 세워두기만 했다.배건후의 재산을 나눠 가지진 못하더라도 이 차는 혼전 재산이라 그녀의 것이었다. 무뚝뚝하고 매정한 남자를 곧 떠날 거란 생각만 하면 도아린은 기분이 너무 좋아 액셀을 미친 듯이 밟았다.운전하는 중에 절친 소유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를 보고 걱정돼서 전화한 것이었다. 도아린이 힘들어할까 봐 기분도 풀 겸 술 먹으러 가자고 하자 도아린은 모든 걸 정리한 다음에 다시 축하하자면서 거절했다.아파트 청소를 마치긴 했지만 도아린은 처음 자는 침대에 눕기 전에 침구청소기로 청소하는 버릇이 있었다. 침대 위에서 청소기를 돌리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갑자기 들어왔다.“문 한참이나 두드렸는데 못 들은 것 같아서 문 열고 들어왔어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