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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온다연은 고개를 숙였다. 마치 사나운 짐승에게 겨냥당한 듯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온다연은 문에 한껏 기대어 최대한 유강후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유강후는 바로 앞에 있고 공간이 좁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유강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꼈다.

맑은 솔방울 같은 냄새에 은은한 술 냄새가 섞여 온다연의 피부에 다가왔다. 그러자 온다연은 갑자기 3년 전의 점심에도 이렇게 더웠는데 술에 취한 유강후가 방에 쳐들어와 통제를 잃고 폭력적으로 행동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 기억이 떠오르자 온다연은 혼란스러워서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유강후와의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너무 가까운 탓에 유강후의 옆을 지나가려 할 때 온다연의 팔은 유강후의 손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닿은 곳은 살짝 화끈거리며 유강후의 기운이 남았다.

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씨 가문 저택은 학교에서 너무 멀어서 기숙사에 살고 있어요.”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온다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낮아서 유강후는 그녀를 혼내고 싶었다.

게다가 이 3년 동안 거짓말하는 것도 배웠다니.

하지만 유강후는 아직 온다연을 까발릴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는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내 번호 차단했어?”

온다연은 눈을 내리깔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번호 바꿨어요.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 나서 모든 번호가 사라졌거든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유씨 가문 사람들 중 이모 심미진의 번호만 저장했다.

“휴대폰 줘 봐.”

온다연은 순순히 휴대폰을 건넸다.

살짝 낡은 휴대폰이었는데 스크린은 손상된 정도가 심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고 자신의 휴대폰으로도 온다연의 카카오톡 QR코드를 스캔해 추가했다.

그리고 다시 휴대폰을 돌려주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까는...”

“알아요.”

온다연은 유강후의 말을 잘랐다.

“그분들 다 삼촌 친구들이잖아요. 농담한 거 알아요. 괜찮아요.”

온다연은 유씨 가문에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신경 쓰지 않았다.

유강후가 만졌던 휴대폰은 뜨거워졌다. 온다연은 저도 모르게 휴대폰 스크린을 자신의 치마에 닦았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은 온다연의 그런 행동에 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졌고 원래도 차가웠던 눈빛에 분노가 감돌았다.

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가려고?”

“네. 저녁에 수업 있어서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유강후는 눈을 살짝 감았다.

“마침 잘됐네. 나도 나가야 해서 학교로 데려다줄게.”

그러자 온다연은 당황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때 이권이 다급히 걸어들어왔다.

“도련님, 은별 아가씨가 몸이 불편하시다고 도련님더러 집으로 바래다 달라고 하십니다.”

유강후는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는 괜찮았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

이권이 말했다.

“어떤 분이 두 분의 약혼을 축하드린다며 은별 아가씨에게 술을 권했거든요. 그래서 몇 잔 마시고 취하신 것 같습니다.”

유강후는 눈썹을 찡그린 채 온다연의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람 붙여서 바래다줄게.”

온다연은 긴장한 듯 옷끝을 만지며 눈을 깔고 거절했다.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유강후는 대답하지 않고 온다연을 몇 초간 쳐다보다가 돌아서서 떠났다.

유강후의 뒷모습이 사라진 후에야 온다연은 정신을 차렸다.

‘유강후가 소꿉친구 나은별과 약혼하려는 건가? 그래서 2년 일찍 들어온 거구나.’

온다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한 다음 유씨 가문을 나섰다.

밤 11시의 경원시는 사람이 북적거렸다.

시끄러운 야시장 거리에서 온다연의 초상화 그려주기 부스 앞에는 여러 손님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늘 장사는 나쁘지 않았다. 몇 명의 손님이 온다연의 카카오톡을 추가하고 초상화를 그리기를 예약했다.

부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아래 검은색 리무진 한 대가 주차해 있다.

경원시에 이 차를 타는 사람을 적지 않기 때문에 특수 방탄차로 손을 좀 봤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일으키지 않았다.

차 안에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남자는 부스 앞에 있는 온다연을 지켜봤다.

그 눈빛은 마치 생생한 먹이를 노리는 커다란 맹수처럼 털을 곧추세우고 당장 온다연의 몸에 핏자국 몇 개를 남기고 싶은 듯했다.

이권은 옆에서 유강후를 흘끗 쳐다보고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온다연이 앞으로 위험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권은 유씨 가문에서 10년 이상 일해 왔으며 유강후의 수단을 잘 알고 있었다. 유강후는 전혀 도덕적이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유씨 가문 수준의 도련님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 아무도 따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도련님 형수의 조카라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유강후는 시선을 거두었다.

“유씨 가문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고 나가서 저런 곳에서 사는 거야?”

이권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다연 양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유강후는 휴대폰을 꺼내어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온다연은 아직 그의 친구 요청을 수락하지 않았다.

유강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철 좀 빨리 들게 만드는 방법 알아?”

그러자 이권이 답했다.

“그런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아마 엄청난 괴로움을 겪고 나면 빨리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온다연은 이미 부스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건을 다 박스에 넣고는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는 앞에서 천천히 갔고 검은색 차는 멀지 않은 곳에서 서두르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다연은 낡은 동네로 꺾어 들어갔다.

그러자 유강후의 차도 동네 입구에서 멈췄다.

온다연이 박스를 들고 빌라 입구에 막 들어섰을 때 갑자기 길가에 서 있던 페라리의 문이 열리더니 잘생긴 청년이 달려가 화를 내며 온다연을 붙잡았다.

막 차에서 내리려던 유강후는 손을 움찔거리다가 동작을 멈췄다.

그 청년은 그의 형의 아들 유민준이었다.

빌라는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고 입구도 좁아서 유강후는 창문을 조금 내리는 것만으로도 유민준과 온다연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온다연, 너 멍청한 거 아니야. 내가 선물한 별장보다 이런 쓰레기 집에서 살고 싶어?”

온다연의 손목은 유민준에게 너무 세게 잡혀 부러질 것처럼 아팠다. 온다연은 힘을 써서 유민준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오빠, 이거 놔요.”

유민준은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불빛 아래서 유남준의 빨개진 눈이 선명히 보였고 잘생긴 얼굴은 살기로 가득 차서 일그러졌다.

온다연은 위험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 행동이 유민준을 화나게 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유민준은 폭력적으로 온다연을 나무에 밀치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

“너 벌써 3개월 동안 집에 안 왔고 날 차단하기까지 했어. 나를 피하는 거야?”

온다연은 차가운 눈빛에 눈에 띄지 않게 혐오감이 번뜩이며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그러나 온다연은 이 상황에 유민준의 기분을 완전히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이거 놔요. 사람들이 오해할 거예요.”

그러자 유민준은 코웃음을 쳤다.

“오빠? 누가 네 오빠야? 네가 유씨 가문 사람이야? 너 아니야! 게다가 난 네 오빠가 되고 싶지 않아. 어디서 순진한 척이야?”

온다연은 혐오감을 감추기 위해 눈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가 무슨 말 하는 건지 못 알아듣겠어요.”

유민준은 온다연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사실 예전에 그는 온다연도 심미진처럼 촌스럽고 부잣집 가문에 빌붙고 싶어 하는 줄 알고 싫어했다. 그래서 늘 유하령과 함께 온다연을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온다연은 예뻐졌고 유민준은 저도 모르게 갑자기 머릿속이 온다연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술기운에 유민준은 점점 더 온다연이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일부러 자신을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온다연의 턱을 잡고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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