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을 입은 남자는 농구공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귀가 빨개진 채로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저... 혹시... 연락처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저도 이 근처에 사는데... 나올 때마다 그쪽이 보여서...”온다연의 시선은 그의 옷 단추에 닿았다. 그러고는 멀지 않은 곳의 나무 그늘을 바라봤다. 네온사인 덕분에 주변은 아주 밝았다. 치밀하게 숨은 줄 알고 있을 상대도 진작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그녀는 곁에 있던 장화연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돼요?”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온다연은 다시 남자의 옷 단추를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이 근처에 사는 거 알고 있었어요?”온다연이 대답하자 그는 더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밤마다 여기 있길래...”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저쪽에서 고양이랑 같이 앉아 있었잖아요. 매일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카톡 친구 추가해도 될까요?”온다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공원에서 나오며 온다연은 다정하게 장화연과 팔짱을 꼈다.“집사님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일 아저씨한테 얘기 안 할 거죠?”장화연은 여전히 무표정한 모습이었다.“저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려서 뒤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저 여자 마음에 안 들어요. 우리 같이 혼내줄까요?”장화연은 덤덤하게 대답했다.“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온다연이 또 말했다.“제가 다른 남자한테 연락처 준 걸 알면, 아저씨가 저를 죽이려고 할까요?”장화연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그건 가능할 것 같네요.”온다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무서운 생각은 금방 지나갔다. 그녀는 장화연과 팔짱을 낀 채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집사님만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온다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집사님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집사님의 취향도 너무 훌륭해요. 집사님이 골라준 물건은 전부 마음에 들었거든요. 아쉽
장화연은 말수가 아주 적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온다연에게는 항상 다정했다. 더욱 짜증 나는 건 자신에게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미소를 장화연에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장화연과 팔짱을 낀 채 다정하게 머리까지 기댔다.심지어 그녀는 라떼까지 사다가 장화연과 함께 마셨다. 그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장화연에게는 마실 것까지 사다 주면서, 그에게 준 것은 곰돌이 커프스밖에 없었다.이때 온다연은 구월이를 장화연의 어깨에 올려놓았다. 심지어 자신의 라떼를 그녀에게 맛 보이기도 했다. 유강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를 바득바득 갈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온다연!”어디에서 들어도 바로 알아챌 수 있는 목소리였다. 온다연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나무 아래에 서 있는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유강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그는 압도적인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추위보다도 싸늘한 기운이었다.그는 가만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기는 했지만 화려한 네온사인보다도 눈에 띄었다.그가 언제부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몰랐던 온다연은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유강후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어디선가 찬바람이 불어와서 몸을 오소소 떨리게 했다. 라떼도 조금 전처럼 따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그녀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유강후의 냉기는 더욱 짙어졌다.“이리 오라니까!”도무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온다연은 구월이를 장화연의 어깨에서 내리더니 꼭 끌어안고 유강후를 향해 걸어갔다. 유강후는 그녀가 가까이 걸어오기도 전에 손을 뻗어 확 낚아챘다.그는 그녀가 들고 있는 라떼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뭐야?”온다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금 전처럼 신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라떼예요.”유강후가 규정한 식단에 존재하지 않는 음식이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마셔도 된다고
온다연의 걸음걸이는 아주 빨랐다. 그녀는 잠깐 사이에 거리를 훌쩍 벌렸다. 그러나 아무리 빨라도 유강후를 따돌릴 수는 없었다.그녀는 코너를 돌기도 전에 유강후의 품에 속박되었다. 유강후는 분노가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자기가 잘못해 놓고 투정을 부려?”온다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버둥거렸다. 목소리에는 서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이거 놔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유강후는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말 안 들으면 누구 말 들을 건데?”“놔요! 아프다고요!”이때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곁으로 지나갔다. 아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누나도 아빠 몰래 혼자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봐요. 아빠들은 왜 자꾸 잔소리를 하는 걸까요?”어린아이의 목소리는 유강후의 귀에 딱 꽂혔다. 그는 안색이 변하며 아이에게 물었다.“뭐라고?”아이는 그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저씨, 집착은 틀린 거라고 했어요. 누나는 이렇게 컸는데, 자꾸 집착하면 가출할 거예요.”아이의 어머니는 두 사람이 부녀가 아닌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보아냈다. 더군다나 아이의 말에 유강후는 화가 난 모양이었다.그녀는 아이를 훌쩍 안아 올리며 떠나려고 했다.“죄송합니다. 애가 이상한 소리를 하네요.”황급히 떠나는 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강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온다연도 슬슬 그가 진짜 화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번 백화점에 있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계속 고집을 부려봤자 그녀만 손해다.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면서 애교로 무마해 보려고 했다.“죄송해요, 아저씨. 저 라떼 안 마실게요. 이만 돌아가요.”유강후는 시선을 거두며 그녀의 손을 더 꽉 잡았다.“뭘 잘못했는데?”유강후에게 잡힌 손은 아주 아팠다. 그래도 온다연은 소리를 내지 못했다.“라떼 마신 거 잘못했어요. 의사 선생님이 음식 조절하라고 했는데...”유강후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녀의 붉어진 눈시울
혼란 속에서 유민준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남아 있었다.이때 신혜원이 다짜고짜 달려와서 온다연을 때리려고 했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유민준이 다쳤어! 어떻게 책임질 거야?!”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귀를 때렸다.그녀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썼다. 옆으로 휘청거리던 신혜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신혜원은 고함을 지르며 온다연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서 한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신혜원 씨, 저지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나 생각하시죠. 신씨 집안에는 꽤 큰 위기라고 생각되는데요.”신혜원은 무표정한 여자를 바라봤다. 온다연을 졸졸 따라다니는 도우미라도 생각했다.“네가 뭔데 나한테 큰 소리야? 38층에서 떨어져 볼래? 그 천한 목숨 신경 쓰는 사람이나 있을까?”장화연은 그녀를 확 밀치며 온다연의 상황부터 살펴봤다.“안 다치셨어요?”온다연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넋이 나간 신재원에게 물었다.“이러려고 나한테 접근한 거예요?”신재원은 이제야 정신 차리고 신혜원에게 물었다.“누나,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한테는 유씨 집안 사람이니까 잘 해보라고 했잖아.”“하, 유씨 집안 사람? 쟤는 그냥 그 집안에서 쫓겨난 개 같은 년이야.”“하지만 유강후 대표가...”“퉤! 유 대표의 여자친구는 은별 씨야. 쟤는 불쌍해서 입양한 개에 불과하다고. 천한 게 주제도 모르고 윤호 씨를 꼬셔? 죽여버릴 거야!”온다연은 동정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나은별 씨한테 들은 말이에요? 가짜 정보로 총대를 메게 돼서 참 안 됐네요. 오윤호 씨의 정혼자 되시죠? 오윤호 씨는 참 운이 좋네요. 강간범이 돼서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요.”이 말을 들은 신혜원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네가 먼저 옷 벗어 던지고 꼬신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너만 아니었어도 윤호 씨 집안 그렇게 안 됐어!”온다연
유민준보다도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신씨 집안에 더 화가 나 있었다.온다연에게 친구 두 명이 생긴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유치한 어린애들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신씨 집안은 꽤 순종적이었다. 그의 앞에서도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런 집안에서 나온 친구 정도는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온다연이 위층에서 떨어진 화분에 부딪혀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회의 중이었다. 신씨 집안의 책임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자칫 상대를 회의실에서 죽여버릴 뻔했다. 사람들은 그가 유민준이 다친 것 때문에 화가 났는 줄 알았다. 만약 수술실에 있는 사람이 온다연이었다면 신씨 집안의 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유민준이 온다연을 밀어냈다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는 신씨 집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 중 핏빛으로 물들지 않은 것은 없었다.유강후는 무릎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데, 내가 널 남겨둬서 뭐 하지?”그는 몸을 흠칫 떨면서 말했다.“제 착오입니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사건의 진위를 조사해 내겠습니다. 신씨 집안은 이런 일을 저지를 위인이 못 됩니다. 뒤에 배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그는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신씨 집안과 나씨 집안은 먼 친척 사이라고 합니다. 나씨 집안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이때 문이 열리고 나은별이 들어왔다. 그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민준이 얘기 나도 들었어. 신씨 집안에서 그렇게 됐다며... 나랑 진수를 봐서라도 한 번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신씨 집안의 안주인이 내 어머니 사촌 동생이야... 내가 다 알아봤어. 그냥 단순 사고래. 재원이가 다연 씨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준다고 꽃을 사 왔는데,
온다연은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달려가서 유강후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아저씨, 저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이제야 분노의 기운이 줄어든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온다연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꼭 잡고 있었다.“저 자꾸만 화분이 떨어지는 꿈을 꿔요. 피가 사방에 흐르고 너무 아팠어요...”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아저씨 곁에 있어서 미움을 사게 된 걸까요?”유강후는 손을 우뚝 멈추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누가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장화연도 뒤이어 들어왔다. 그녀는 나은별을 힐끗 보고 나서 유강후에게 말했다.“다연 씨가 악몽을 꾸면서 식은땀을 많이 흘리셨어요. 이러다 또 아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주 선생한테 연락해 줘.”그는 손을 들어 온다연의 이마를 만져봤다.“내가 곁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하니까 안심하고 자. 내일이면 다 해결될 거야.”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눈만 감으면 민준 오빠가 쓰러진 모습으로 가득해요. 저 무서워요. 하루코 씨도 자꾸 생각나요.”이다 하루코의 자살을 목격한 온다연은 심각한 충격을 받아서 며칠이나 실명했다.이 일은 유강후에게도 큰 교훈이었다. 그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다연을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번 사고를 막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온다연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끝까지 조사할 거야. 다연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널 힘들게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봐주지 않겠다고 했었잖아.”나은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어낼 것 같았다.‘아까 그냥 확 죽여버려야 했는데...’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온다연에게 말했다.“다연 씨
온다연은 천천히 걸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모습으로 나은별을 돌아보며 물었다.“아침에 화분 던진 사람 은별 씨 맞죠?”나은별은 안색이 확 변하면서 받아쳤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나 똑똑히 봤는데. 설마 발뺌할 생각이에요?”나은별은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말했다.“다연 씨 미쳤어요?”“내 앞에서 연기할 거 없어요. 나랑 아저씨가 어떤 사인지 발견하고 날 죽이려는 거잖아요. 아니에요?”나은별은 잠깐 침묵했다. 연기로 만들어진 나약함은 완전히 사라졌다.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봤다.“맞으면 어떡할 건데요? 나랑 강후 씨가 어떤 사인지 몰라요? 강후 씨는 다연 씨 말을 안 믿을 거예요.”“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나한테 더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은별 씨랑 결혼 안 하게 할 재주는 있다는 말이죠.”나은별은 안색이 확 변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나대지 마요. 이건 나랑 강후 씨 사이의 일을 넘어선 집안끼리의 약속이니까요. 시간 때우는데 쓰는 장난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난 강후 씨가 밖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거 반대 안 해요.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유씨 집안에서도 신경 안 쓸 거예요. 어차피 나한테 돌아올 걸 다 아니까요.”온다연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나은별을 바라봤다.“혹시 연서라고 알아요?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연서라는 분이에요. 은별 씨랑 결혼한다고 해도 연서의 대용품으로 여겼을 뿐이에요. 그렇게 보면 은별 씨도 반려동물과 다름없지 않나요?”나은별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설마 연서가 누군지 몰라요? 하, 아니다. 다연 씨 말이 맞아요. 강후 씨는 연서를 제일 좋아해요. 버림받고 싶지 않으면 함부로 그 이름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유씨 집안사람 앞에서도요.”‘유연서를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지?’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재수 없는 년, 내가 먹여주고 키워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거야?”심미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다시 한번 온다연의 뺨을 때렸다.“얼마나 지났다고 하령이를 이어서 민준이까지 이렇게 만들어?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 네가 이러면 내 처지가 어떻게 돼?”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온다연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온다연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심미진 씨가 언제 저를 키워줬다고 그래요? 심미진 씨는 잘 알잖아요. 알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양심에 찔리지 않아요? 아니면 제가 유씨 집안에서 어떤 취급 받으며 살았는지 잊었어요? 유민준이랑 유하령이 저를 괴롭힐 때, 심미진 씨는 어디에 있었죠?”심미진은 순간 멍해졌다. 이게 정말 온다연인가 싶었다. 온다연이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쳤다.“온다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온다연은 심미진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전에도 말했다시피, 저희는 인연을 끊었어요. 심미진 씨는 더 이상 제 이모가 아니에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심미진 씨와는 상관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제 앞에서 예의 좀 지켜요.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으니까요.”나은별 앞에서 면박을 당한 심미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온다연을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이 배은망덕한 것! 내가 없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길가에서 굶어 죽었을 거라고! 내가 널 숨겨주지 않았다면, 네 도박꾼 아버지가 진작 널 팔아버렸을 거야!”그녀는 말하다 말고 문득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온다연은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고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죠? 제 아버지요?”그녀의 아버지 온준용은 10년 전 첩과 첩의 아들도 함께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고 했다.심미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내 뜻은... 너희 엄마가 죽고 나서 팔아넘기
유자성이 차가운 얼굴로 문 앞에 나타나더니 경호원들을 향해 손짓했다.“유씨 저택으로 데려가요.”경호원이 망설였다.“문 앞의 경호원이 검문하면 어떡합니까?”유자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아버지의 지시라고 말해요. 그 사람들이 감히 아버지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요.”“네!”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유자성 씨, 회장님께서 찾으십니다.”유자성은 혼수상태에 빠진 유강후를 힐끗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얼른 데려가요. 그 다음 일은 할머님이 지시하실 거예요.”말하고 나서 그는 유재성의 병실에 들어갔다.유재성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고, 병색을 띠었지만 전반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그는 유자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색하며 말했다.“또 강후에게 전화했어? 그냥 잔병이고 고질병이야. 2-3일 지나면 퇴원할 수 있어. 강후가 바쁠 텐데 방해하지 마.”유자성은 뜨거운 물을 따라서 그에게 건네주며 웃었다.“아버지, 걔가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방금 전화했더니 비서가 받더라고요. 지금 국내에 없고 며칠 후에야 돌아온대요. 강씨 집안에 볼일이 있나 봐요.”유재성은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이더니 한참 후에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너희 두 형제가 얼마 전 마찰이 있었다던데, 강후가 돌아오면 내가 화해시켜 줄게. 친형제 사이에 분란이 생기면 안 돼야. 계속 이대로 나가면 유씨 집안에 조만간 큰 문제가 생길 거야.”유자성은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걔가 남을 위해...”“그건 강후의 선택이야.”유재성은 언짢은 얼굴로 유자성의 말을 잘랐다.“누구와 결혼하는지는 강후 자신의 선택이야. 형이라는 사람이 축하는 못 할망정 방해하다니. 그게 말이 돼?”유자성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걔는 이제 우리 집안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고 하령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에요.”“하령이 어렸을 때 그 고아와 약간의 마찰이 있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든 잘못을 하령에게 돌리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하령이
온다연은 그의 손을 반대로 잡았다.“혼인신고는 하루 이틀 늦출 수 있어요. 아버님이 더 중요해요. 그리고 그분은 다른 유씨 집안 사람들과 달라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유씨 가문이 무너지든 말든 그녀는 관심이 없다.하지만 유재성은 유강후의 친아버지다. 게다가 집에 있는 시간이 극히 적어 그녀와 마주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 유하령이 그녀를 괴롭히게 방임한 유자성과 달랐다.유강후의 눈빛은 유난히 어두웠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차에서 이권이 입을 열었다.“셋째 도련님, 강 대표님께 알릴까요?”유강후는 잠시 침묵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아니,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을 듣고 싶지 않으실 거야.”이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유강후는 생각에 잠겨 창밖을 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버지 사무실에 전화해서 정말 귀국했는지 확인해 봐. 너무 공교로운 것 같아.”이권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연결된 후 몇 마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서 회장님이 어제 귀국하셨고, 아파서 지금 병원에 있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얼굴을 찡그리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이권이 또 입을 열었다.“참, 영상을 올린 사람을 찾았는데, 자기가 아무 생각 없이 올렸고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고 잡아떼고 있어요.”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간단해. 지금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뒤에 있는 사람이 두려워서야. 우리가 그쪽보다 더 무섭고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하지 않을 수 없어.”이권이 고개를 끄덕였다.“각 플랫폼에서 인기 댓글과 동영상을 삭제하면서 이미 열기가 식었어요. 댓글 알바들도 우리 쪽의 맹렬한 반격에 꼼짝달싹 못 하고 있고, 일부는 신상까지 털려 아우성이에요.”“주희가 올린 영상도 한몫했어요. 열광적 팬들이 물고 놓지 않아 악성 댓글 작성자들이 뭇매를 맞았나 봐요.”유강후는 표정이 극히 차가웠다.“배후에 있는 자는 잘 숨는 게 좋을 거야. 누군지 알게 되면 내가 죽고
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이 말했다.“오늘 휴대폰을 안 쓰기로 했잖아.”온다연이 잠시 머뭇거렸다.“아직 외출하지 않았으니 한번만 볼게요.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받지 않으면 되죠.”유강후는 성큼성큼 방에 들어가 온다연의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안색이 흐려졌다.“왜 염지훈에게 네 전화번호가 있어?”온다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이 휴대폰 번호는 그녀가 퇴원한 후 유강후가 특별히 새로 개통한 것이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염지훈이 어떻게 아는 거지?온다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강후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염지훈의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연아, 괜찮아? 인터넷에서...”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유강후가 쌀쌀하게 잘라버렸다.“염지훈, 참 낯짝이 두껍구나. 우리 곧 결혼해. 나를 자극하지 마. 매번 네 형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줄 수는 없어.”염지훈이 코웃음을 쳤다.“유강후 씨, 낯짝이 두꺼운 건 당신이에요. 아저씨라는 명분으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을 숨겼잖아요. 왜 그렇게 친절하게 온다연을 곁에 두는가 했더니 그런 더러운 마음을 숨기고 있었네요. 당신이 강요한 거죠?”유강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더라도 너하고는 상관없어. 다시는 우리 앞에 얼쩡대지 마.”그는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온다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는 휴대폰 전원을 끄고 침대에 던져버렸다.아침을 먹을 때, 온다연은 혼인신고 후 기념사진을 찍을 생각에 약간 뒤숭숭했다.그래서 대충 먹고 수저를 내려놓았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우유와 계란찜을 그녀 앞으로 밀었다.“조금 더 먹어.”이때 장화연이 휴대폰을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다급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셋째 도련님, 본가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버님이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대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디가 편찮으시대요? 해외 방문 중이었는데, 귀국하셨어요?”장화연이 대답했다.“뇌경색인데, 지금 병원에 계시다고 합니다.”유강후는 손을 멈추었다.“심각하시대요?”
게다가 방금 뜨거운 사랑을 나눈 까닭에 얼굴에 옅은 홍조가 올라와 천진하고 아리따워 보였다.유강후는 한참 지켜보다가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꼬맹이는 그런 것에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 자그마한 양지옥 열쇠를 만지작거렸다.“진짜 예쁘네요. 언제 산 거예요?”유강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잡고 그 열쇠를 만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산 것이 아니야.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지.”온다연이 깜짝 놀랐다.“그렇게 비싸요?”유강후는 열쇠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를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옛날에 왕이 쓰던 옥인데, 큰돈을 들여 낙찰받은 후 최고의 수공예 장인을 모셔다 3년에 걸쳐 완성한 거야.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물건이지.”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뽀뽀하더니 정색하며 말했다.“이건 강씨 집안 여주인의 물건이라 강씨 집안 여주인만 사용할 수 있어.”“이 열쇠는 강씨 집안 금고 열쇠야.”온다연이 화들짝 놀랐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라 받을 수 없어요.”그녀는 말하면서 목걸이를 풀려고 했다.유강후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했다.“네가 감히 풀면 그 손을 분질러버릴 거야.”온다연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건 너무 귀중한 물건이에요, 아저씨...”그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우주그룹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재벌 그룹 중 하나이며 경제력이 탄탄해 한 나라의 경제를 어느 정도 조종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그런 우주그룹의 금고 열쇠를 그녀가 어찌 감히 받겠는가.“풀어서 넣어두는 게 좋겠어요.”유강후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안 돼. 적어도 오늘은 꼭 착용해야 해. 오늘은 우리가 혼인신고 하는 날이잖아. 오늘부터 너는 내 아내야. 즉 강씨 집안의 여주인이 되는 거지. 앞으로 매일 재무에 관한 지식을 가르쳐 줄 거야. 덩치가 큰 강씨 가문을 관리하려면 장부를 보는 법과 자산관리를 배워야 해.”온다연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키스했다.“
유강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참을 수 없어도 참아야 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온다연은 지려 하지 않았다.“고쳐야죠. 계속 이러면 제가 어느 날 정말 견딜 수 없어 아기를 데리고 떠날 수도 있어요.”그녀의 허리를 잡은 큰손에 갑자기 힘이 실리고, 몸이 앞으로 확 끌려가 유강후의 다부진 몸에 찰싹 붙었다.그의 목소리에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온다연, 다시 또 이런 말을 하면 정말 화낼 거야.”온다연은 수그러들지 않았다.“화를 내면 어쩔 건데요?”유강후는 실눈을 짓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받쳐 들고 나지막이 말했다.“이렇게 벌을 내릴 거야.”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었다.곧 가쁜 숨소리가 전체 공간을 채웠다.온다연은 뒤에 있는 서랍장 때문에 옴짝달싹 못 했다.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의 강력한 공세를 견뎠다.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저번에 서재에서 관계를 가진 이후로 유강후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그녀가 만족할 수 있게 힘 조절과 수위 조절을 완벽히 해냈다.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켰다.그는 그녀의 귓불을 가볍게 깨물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이래도 떠날 거야?”온다연은 모든 신경이 그의 몸에 집중돼 사고력을 잃은 듯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아니, 떠나지 않을 거예요...”유강후는 만족스러운 듯 그녀에게 더 큰 보상을 해주었다.온다연은 거의 통제력을 잃고 또 그의 옷을 더럽혔다.다 끝나고 그의 옷이 얼룩덜룩해진 것을 본 그녀는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서 내려올 힘조차 없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몸이 달아올라 옅은 분홍색을 띠는 것이 좋고, 그녀가 자기 손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사랑스럽다.수줍어하거나, 참지 못하거나, 약간 요염한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그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넌 이런 게 좋아?”온다연은 방금 방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부끄러워 감히 대답하
온다연은 불만스러운 듯 볼에 바람을 넣고 눈살을 찌푸렸다.“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왜 아저씨는 휴대폰을 쓸 수 있는데, 저는 안 돼요?”너무 귀여운 모습에, 유강후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알았어. 오늘은 업무용 휴대폰만 쓸게, 됐지?”몇 개 대기업을 관리하는 그에게 휴대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다연은 당연히 잘 알고 있다.중요한 일이 있을 때, 유강후의 전화가 연결이 안 되면 금융시장에 꽤 큰 파문이 일 수도 있다.온다연은 조금 걱정됐지만 기쁘기도 했다.그녀는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을 거예요?”그동안 유강후는 아침과 저녁에만 집에 있었고, 낮에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하루 종일 같이 있는다니 약간 기대가 됐다.유강후는 그녀에게 뽀뽀했다.“하루 종일 나와 함께 있고 싶어?”온다연은 귀 끝이 빨개졌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아기도 함께했으면 더 좋을 텐데.”아기도 곧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기쁨을 금치 못했다.“가족은 원래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어려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그녀는 그런 가슴 쓰린 아픔을 알기에 자기 아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아이가 커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며, 모든 고요한 밤과 희망찬 아침을 함께할 것이다.유강후도 이 아이를 몹시 아끼는 것 같고, 그녀가 지금까지 잃은 것들을 여기서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유강후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걸 간절히 원해?”온다연은 그의 가슴에 기댄 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이건 저의 모든 희망이에요. 아저씨, 저는 지금 너무 행복해요. 아기도 있고 아저씨도 있는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이런 걸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아저씨, 고마워요. 아저씨도 아기를 위해 큰 노력을 했어요. 아기를 지켜내지 못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말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주혜성이고 오늘 실검에 오른 온다연의 죽마고우입니다. 우리 둘은 같이 자랐고, 거의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온다연은 마음이 고운 사람이었고 상간녀가 될 리 없습니다.”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온다연과 그 남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누군가가 지어낸 헛소문입니다.”수줍게 웃는 그의 눈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제가 오랫동안 쫓아다녔는데도 온다연은 저를 받아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늙은 남자에게 반할 수 있겠습니까?”“제가 그 남자들보다 못생겼을까요? 그래서 그 남자들을 선택하고 저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온다연과 그 아가씨가 실랑이를 벌인 데는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 영상은 편집된 것입니다. 영상을 올린 분께서 전체 영상을 공개하시길 바랍니다. 일부만 공개해서 오해를 유발하지 마시고요.”“조금만 생각해 보면 헛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여러분, 법을 지키는 좋은 시민이 되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천천히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 모습은 성에서 걸어 나온 왕자처럼 우아했다.유강후는 동영상을 꺼버렸다. 그는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이 자식이 이런 방식으로 온다연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하다니.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모르겠다.주씨네 형제는 둘 다 정말 성가시다.이때 온다연이 침실에서 나왔다.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뒤에서 유강후를 끌어안더니 맹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아침부터 뉴스를 봐요?”유강후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돌아섰다.그는 온다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잘 잤어? 점심까지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온다연은 얼굴을 그의 손에 비비며 피곤한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또 악몽을 꿨어요.”“무슨 꿈인데?”“꿈에 아기가...”그녀는 말을 멈추었다.왠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꾸 아이가 없어지는 꿈을 꾼다. 게다가 꿈속의 아이는 유강후와 똑 닮았다. 그녀는 꿈속에서 너무
나은별은 전화기 너머에서 울기 시작했다.“강후 씨,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이렇게 뻔한 짓을 왜 하겠어?”“믿어줘. 정말 아니야. 강후 씨,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나에게 이 정도의 믿음도 없어?”유강후가 침묵을 지키자, 나은별이 울면서 말했다.“온다연 씨가 나를 오해하고 때렸어도 나는 온다연 씨한테 화풀이하지 않았어. 어쨌든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강후 씨 체면을 봐서라도 온다연 씨에게 손을 대지는 않아.”“내가 당장 해명 영상을 올려서 온다연 씨의 누명을 벗겨줄 테니 의심하지 마.”유강후는 휴대폰을 꽉 쥔 채 쌀쌀하게 말했다.“나은별, 이 일이 너랑 상관없기를 바랄게.”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이권이 가자마자 한이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어떻게 된 거야? 지금 일이 너무 크게 번졌어. 여론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악성 댓글을 아무리 삭제해도 계속 올라와.”“실시간 검색어를 최대한 삭제하고 있지만 이미 널리 퍼져서 덮기는 어려울 것 같다.”“뒤에서 누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빨리 퍼질 수 없어.”유강후는 휴대폰을 잡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덮어야 해. 악성 댓글 작성자 아이디를 전부 기록해. 헛소문을 퍼뜨렸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그는 전화를 끊고 즉시 몇몇 대형 SNS와 동영상 사이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들 중 몇 명은 평소에도 미래그룹과 사업상 접촉이 많은 터라 전화를 받은 뒤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다른 몇 명은 유강후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미래그룹처럼 덩치가 큰 거대기업이 먼저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어쨌든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인기 검색어 순위에서 점점 밀려나다가 점차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다.하지만 유강후는 방심하지 않고 동향을 예의 주시하라고 부하에게 시켰다.잠시 후 이권이 누군가가 댓글 알바를 고용해 인터넷에서 온다연의 과거를 캐기 시
집에 들어선 후, 유강후는 시원한 연고를 가져와 온다연에게 발라주었다.그런데 장화연이 어쩌다 이 장면을 보게 될 줄이야. 온다연은 한순간 얼굴을 들 수가 없었고, 밥도 먹지 않고 숨어 있었다.유강후도 너무 후회되어 그녀를 끌어안고 한참을 달랬다.저녁에 아기 보러 병원에 갈 때까지 이 상황은 계속됐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보고 온다연은 그제야 겨우 화를 풀었다.이튿날 아침 유강후가 침실에서 나오니 이권이 벌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셋째 도련님, 인터넷을 좀 보세요. 온다연 씨가 인터넷 스타가 됐어요.”유강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인터넷 스타라니, 무슨 소리야?”이권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건넸다.“일단 보세요. 제가 처리하고 있긴 하지만, 실검을 세 번이나 눌렀는데도 상황이 정리가 안 돼요.”‘상간녀가 보석 가게에서 본처를 때렸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댓글이 가득 달렸다.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동영상을 열었다.어제 온다연이 보석 가게에서 나은별과 싸우는 장면이었다.동영상만 보면, 확실히 온다연이 먼저 때렸다. 게다가 온다연은 날뛰고 있고, 나은별은 한 번도 반격하지 않은 채 처참하게 맞는 모습이었다.동영상은 온다연이 나은별을 때리는 데서부터 시작돼 조아영이 그녀를 끌어낼 때까지 1분여 동안 지속됐다.중간에 편집 흔적이 전혀 없어 딱 봐도 원본 영상이었다.‘좋아요’가 600만 개 이상, 리트윗이 300만 개 이상에 달하고, 댓글 창은 온통 욕하는 말들로 도배됐다.[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상간녀가 이렇게 대놓고 날뛰어도 되는 거야?][이건 너무 심하잖아. 상간녀가 누군지 신상 털어!][진짜 뻔뻔스럽군. 유부남을 꼬신 주제에 감히 이렇게 날뛰다니. 이 여자와 부모의 신상을 털어 온 가족이 고개를 쳐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본처가 진짜 나약하네. 내가 저 여자라면 그 자리에서 상간녀 머리를 부숴버렸을 거야.][상간녀가 어려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