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유민준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남아 있었다.이때 신혜원이 다짜고짜 달려와서 온다연을 때리려고 했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유민준이 다쳤어! 어떻게 책임질 거야?!”온다연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따귀를 때렸다.그녀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썼다. 옆으로 휘청거리던 신혜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신혜원은 고함을 지르며 온다연을 때리려고 했다. 그러나 뒤에서 한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신혜원 씨, 저지른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나 생각하시죠. 신씨 집안에는 꽤 큰 위기라고 생각되는데요.”신혜원은 무표정한 여자를 바라봤다. 온다연을 졸졸 따라다니는 도우미라도 생각했다.“네가 뭔데 나한테 큰 소리야? 38층에서 떨어져 볼래? 그 천한 목숨 신경 쓰는 사람이나 있을까?”장화연은 그녀를 확 밀치며 온다연의 상황부터 살펴봤다.“안 다치셨어요?”온다연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넋이 나간 신재원에게 물었다.“이러려고 나한테 접근한 거예요?”신재원은 이제야 정신 차리고 신혜원에게 물었다.“누나, 이게 무슨 상황이야? 나한테는 유씨 집안 사람이니까 잘 해보라고 했잖아.”“하, 유씨 집안 사람? 쟤는 그냥 그 집안에서 쫓겨난 개 같은 년이야.”“하지만 유강후 대표가...”“퉤! 유 대표의 여자친구는 은별 씨야. 쟤는 불쌍해서 입양한 개에 불과하다고. 천한 게 주제도 모르고 윤호 씨를 꼬셔? 죽여버릴 거야!”온다연은 동정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나은별 씨한테 들은 말이에요? 가짜 정보로 총대를 메게 돼서 참 안 됐네요. 오윤호 씨의 정혼자 되시죠? 오윤호 씨는 참 운이 좋네요. 강간범이 돼서도 이렇게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요.”이 말을 들은 신혜원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네가 먼저 옷 벗어 던지고 꼬신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너만 아니었어도 윤호 씨 집안 그렇게 안 됐어!”온다연
유민준보다도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신씨 집안에 더 화가 나 있었다.온다연에게 친구 두 명이 생긴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저 유치한 어린애들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신씨 집안은 꽤 순종적이었다. 그의 앞에서도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그런 집안에서 나온 친구 정도는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온다연이 위층에서 떨어진 화분에 부딪혀 죽을 뻔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회의 중이었다. 신씨 집안의 책임자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자칫 상대를 회의실에서 죽여버릴 뻔했다. 사람들은 그가 유민준이 다친 것 때문에 화가 났는 줄 알았다. 만약 수술실에 있는 사람이 온다연이었다면 신씨 집안의 책임자는 그 자리에서 비명횡사했을 것이다.유민준이 온다연을 밀어냈다는 말을 듣고는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는 신씨 집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계획 중 핏빛으로 물들지 않은 것은 없었다.유강후는 무릎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이렇게 작은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데, 내가 널 남겨둬서 뭐 하지?”그는 몸을 흠칫 떨면서 말했다.“제 착오입니다.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사건의 진위를 조사해 내겠습니다. 신씨 집안은 이런 일을 저지를 위인이 못 됩니다. 뒤에 배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그는 잠깐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신씨 집안과 나씨 집안은 먼 친척 사이라고 합니다. 나씨 집안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혹시라도...”이때 문이 열리고 나은별이 들어왔다. 그는 유강후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흘렸다.“민준이 얘기 나도 들었어. 신씨 집안에서 그렇게 됐다며... 나랑 진수를 봐서라도 한 번 용서해 주면 안 될까? 신씨 집안의 안주인이 내 어머니 사촌 동생이야... 내가 다 알아봤어. 그냥 단순 사고래. 재원이가 다연 씨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준다고 꽃을 사 왔는데,
온다연은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달려가서 유강후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아저씨, 저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이제야 분노의 기운이 줄어든 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온다연의 몸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유강후의 옷깃을 꼭 잡고 있었다.“저 자꾸만 화분이 떨어지는 꿈을 꿔요. 피가 사방에 흐르고 너무 아팠어요...”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아저씨 곁에 있어서 미움을 사게 된 걸까요?”유강후는 손을 우뚝 멈추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야. 누가 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장화연도 뒤이어 들어왔다. 그녀는 나은별을 힐끗 보고 나서 유강후에게 말했다.“다연 씨가 악몽을 꾸면서 식은땀을 많이 흘리셨어요. 이러다 또 아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사를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주 선생한테 연락해 줘.”그는 손을 들어 온다연의 이마를 만져봤다.“내가 곁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하니까 안심하고 자. 내일이면 다 해결될 거야.”온다연은 그의 옷깃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눈만 감으면 민준 오빠가 쓰러진 모습으로 가득해요. 저 무서워요. 하루코 씨도 자꾸 생각나요.”이다 하루코의 자살을 목격한 온다연은 심각한 충격을 받아서 며칠이나 실명했다.이 일은 유강후에게도 큰 교훈이었다. 그는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다연을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런데도 이번 사고를 막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온다연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끝까지 조사할 거야. 다연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널 힘들게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봐주지 않겠다고 했었잖아.”나은별은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는 당장이라도 불을 뿜어낼 것 같았다.‘아까 그냥 확 죽여버려야 했는데...’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그녀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온다연에게 말했다.“다연 씨
온다연은 천천히 걸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모습으로 나은별을 돌아보며 물었다.“아침에 화분 던진 사람 은별 씨 맞죠?”나은별은 안색이 확 변하면서 받아쳤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나 똑똑히 봤는데. 설마 발뺌할 생각이에요?”나은별은 그녀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처럼 말했다.“다연 씨 미쳤어요?”“내 앞에서 연기할 거 없어요. 나랑 아저씨가 어떤 사인지 발견하고 날 죽이려는 거잖아요. 아니에요?”나은별은 잠깐 침묵했다. 연기로 만들어진 나약함은 완전히 사라졌다.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온다연을 바라봤다.“맞으면 어떡할 건데요? 나랑 강후 씨가 어떤 사인지 몰라요? 강후 씨는 다연 씨 말을 안 믿을 거예요.”“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나한테 더 흥미를 느끼고 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은별 씨랑 결혼 안 하게 할 재주는 있다는 말이죠.”나은별은 안색이 확 변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덤덤했다.“나대지 마요. 이건 나랑 강후 씨 사이의 일을 넘어선 집안끼리의 약속이니까요. 시간 때우는데 쓰는 장난감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난 강후 씨가 밖에서 반려동물 키우는 거 반대 안 해요.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유씨 집안에서도 신경 안 쓸 거예요. 어차피 나한테 돌아올 걸 다 아니까요.”온다연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나은별을 바라봤다.“혹시 연서라고 알아요? 아저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연서라는 분이에요. 은별 씨랑 결혼한다고 해도 연서의 대용품으로 여겼을 뿐이에요. 그렇게 보면 은별 씨도 반려동물과 다름없지 않나요?”나은별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설마 연서가 누군지 몰라요? 하, 아니다. 다연 씨 말이 맞아요. 강후 씨는 연서를 제일 좋아해요. 버림받고 싶지 않으면 함부로 그 이름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유씨 집안사람 앞에서도요.”‘유연서를 강후 씨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한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하지?’그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재수 없는 년, 내가 먹여주고 키워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 거야?”심미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다시 한번 온다연의 뺨을 때렸다.“얼마나 지났다고 하령이를 이어서 민준이까지 이렇게 만들어? 너 때문에 우리 집안이 발칵 뒤집혔어! 네가 이러면 내 처지가 어떻게 돼?”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온다연을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온다연은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심미진 씨가 언제 저를 키워줬다고 그래요? 심미진 씨는 잘 알잖아요. 알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양심에 찔리지 않아요? 아니면 제가 유씨 집안에서 어떤 취급 받으며 살았는지 잊었어요? 유민준이랑 유하령이 저를 괴롭힐 때, 심미진 씨는 어디에 있었죠?”심미진은 순간 멍해졌다. 이게 정말 온다연인가 싶었다. 온다연이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쳤다.“온다연,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해?”온다연은 심미진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전에도 말했다시피, 저희는 인연을 끊었어요. 심미진 씨는 더 이상 제 이모가 아니에요.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심미진 씨와는 상관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제 앞에서 예의 좀 지켜요.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으니까요.”나은별 앞에서 면박을 당한 심미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온다연을 가리키며 욕을 퍼부었다.“이 배은망덕한 것! 내가 없었으면 넌 벌써 죽었어! 길가에서 굶어 죽었을 거라고! 내가 널 숨겨주지 않았다면, 네 도박꾼 아버지가 진작 널 팔아버렸을 거야!”그녀는 말하다 말고 문득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는 걸 깨닫고 입을 틀어막았다.온다연은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고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방금 뭐라고 하셨죠? 제 아버지요?”그녀의 아버지 온준용은 10년 전 첩과 첩의 아들도 함께 바다에 빠져서 죽었다고 했다.심미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내 뜻은... 너희 엄마가 죽고 나서 팔아넘기
온다연이 지금과 같은 처지가 된 건 유강후의 잘못도 있었다. 그녀는 유씨 집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던 유강후의 말만 아니었어도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유강후를 포함한 유씨 집안사람 모두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온다연은 창가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아름다운 동상이라도 된 것처럼 연약한 몸집으로 가만히 서서 대화를 거절했다.오늘은 동짓날이다. 주한이 있을 때는 항상 양갈비를 사서 고소한 국물을 만들었다. 그녀와 주희는 곁에 서서 군침을 흘리고는 했다.주한은 국물에 당근과 상추도 넣었다. 그녀의 그릇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고추 양념도 넣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겨울과 연상 되는 맛이었다.거위 털 같은 눈은 겨울바람과 함께 마구 휘날렸다. 이 세상 전부 하얗게 뒤덮을 기세였다.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하늘이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온다연이 계속 창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장화연은 양털 카디건을 걸쳐줬다.“오늘 저녁 폭우가 내린답니다. 기온은 영하 20도로 떨어집니다. 따듯한 거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준비시키겠습니다.”온다연은 이제야 몸을 움직이며 구월이를 내려놓았다.“밖에 있는 사람들은 갔어요?”“네, 갔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여기에 들어올 리는 절대 없습니다.”“유민준은요?”“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셋째 도련님이 아직 안 돌아오신 걸 봐서는 심하게 다치신 것 같습니다.”온다연은 말없이 구월이를 쓰다듬었다.“집사님은 혹시 연서가 누군지 알아요?”장화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며 몸이 굳었다. 유연서와 유강후는 그녀가 어릴 적부터 키워온 아이들이다.그녀는 10대 때부터 두 사람을 보살펴왔다. 기억 속의 천재 소녀 유연서는 그녀를 화연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좋은 것이 생기면 항상 그녀부터 챙겨주고는 했다.그러던 10년 전, 천재 소녀는 한낱 독감 때문에 비 오는 날 생을 마감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너무나도 아픈 일이라 유씨 집안사람도, 강씨 집안사람도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정도
온다연은 고개를 돌렸다. 유강후는 마침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눈보라가 거셌는지 그의 어깨에는 눈꽃이 쌓여 있었다. 그는 냉기를 뿜어내며 무거운 표정으로 온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온다연은 구월이를 내려놓고 그의 코트를 벗겨서 걸어놓았다. 그러고는 따듯한 차를 따라주면서 물었다.“민준 오빠는 어떻게 됐어요?”유강후는 한 손으로 찻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입을 맞췄다.“아직 혼절 상태야.”“아저씨도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제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거예요.”그녀는 목이 완전히 드러나는 스웨터를 입고 고개를 숙였다. 뽀얀 목선에 드리워진 검은 머리카락은 아주 유혹적이었다.유강후는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아예 찻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안고 침실에 가려고 했다. 그의 변화를 느낀 온다연은 황급히 말했다.“안 돼요. 저녁 먹을 시간 다 됐어요.”유강후는 그녀의 목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내가 더 급해.”걱정거리가 많았던 온다연은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녀는 점점 더 세게 반항하면서 말했다.“싫어요. 지금 그럴 기분 아니에요. 억지로 이러는 거 싫어요.”유강후는 눈살을 찌푸렸다.“유민준 때문에 그래?”“...네.”“허락도 없이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거야?”온다연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병원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저니까요.”유강후는 불쾌한 말투로 말했다.“그래서 걔가 좋다는 거야, 뭐야?”온다연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무 말도 안 했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모습에 유강후는 더욱 불쾌해졌다. 그는 그녀의 턱을 잡으면서 말했다.“앞으로 다시는 친구 얘기 꺼내지 마. 네가 이상한 친구를 사귀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야. 너한테는 나만 있으면 돼. 친구는 필요 없어, 알았지?”유강후는 강압적으로 그녀를 침실로 데려갔다.저녁 식사를 끝낸 장화연은 침실 문에 노크하려고 했다. 그러나 침실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문틈 사이로 신음과 온다연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거
이렇게 3, 4일 동안 난리를 치다 보니, 유씨 집안사람들은 극도로 지쳐 있었다.새엄마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 했던 심미진도 사흘 밤낮을 새운 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휴게실에서 한숨을 내쉬며 앉아 있었다.유자성은 창가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는 얼굴이 잿빛이 되어 돌아서며 말했다.“제가 온다연을 데려올게요.”이 말을 들은 강해숙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안 돼! 난 그년을 보고 싶지 않아!”유자성은 계속해서 말했다.“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민준이 아무도 가까이 오게 하지 않아서 의사조차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마 온다연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온다연을 불러서 며칠간 돌보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을 바꾸거나 검사를 하는 것도 어려울 겁니다.”심미진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그건 강후 씨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강해숙은 화가 나서 지팡이로 바닥을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동의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어. 민준이는 그년 때문에 다친 거니까, 와서 며칠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참 지독한 년이지. 민준이가 이렇게 다쳤는데도 얼굴 한 번 안 비추네. 천성이 나쁜 건 역시 어쩔 수 없어. 저건 집안 내력이야.”말을 마친 강해숙은 또 심미진을 흘겨봤다. 심미진은 난처한 듯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당장 강후한테 전화해서 그년을 데려오라고 해. 친조카를 놔두고 왜 남을 싸고돈단 말이냐! 강후 걔 유씨 집안사람이 맞기는 한지, 전화해서 물어봐!”유자성은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제가 전화해 볼게요.”유강후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온다연은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구월이와 놀고 있었다.유자성의 말을 듣고 유강후는 가볍게 응답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온다연의 손에서 장난감을 빼앗으며 말했다.“이따가 나랑 같이 병원에 가서 민준이 좀 보자.”온다연은 가볍게 대답했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그러자 유강후가 다시 물었다.“넌 가고 싶어? 가기 싫으면 가지 마. 안 가도 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