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벌을 주듯 그녀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디 갔었어?”온다연은 고통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아 몸을 웅크리며 그의 손길을 최대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가 뭘 좀 먹었어요.”‘뭘 좀 먹고 왔다고?'‘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품으로 확 당기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온다연은 그의 몸 위로 안긴 꼴이 되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간 거야? 룸서비스도 있는데 굳이?”그의 차가운 시선을 도저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으로 내려갔던 거예요. 못 믿으시겠으면 내려가서 물어보셔도 돼요. 음식을 주문한 기록도 있으니까...”유강후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어투는 여전히 냉담했다.“정말로 그랬어?”온다연은 고개를 돌리며 다소 삐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못 믿겠으면 믿지 마세요.”작고 나른한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다. 보기 드물게 삐친 것이다.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네가 신고한 거야?”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얼굴로 보았다. 아주 순진하고 무구한 눈빛으로 말이다.“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신고라니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똑바로 말해.”그녀가 장난을 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어떻게든 수습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막막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그러니까 누가 신고를 했다는 말씀이세요?”“그래, 누군가 신고했더군. 3층에 누군가 나쁜 짓을 한다고. 호텔 매니저까지 올라왔었어.”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했다.“아저씨가 방금 3층에 계셨잖아요. 3층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었다.“똑바로 말하라고!”온다연은 느껴지는 통증에 유강후의
유강후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밖은 추워. 나 오늘 밤늦게 끝날 것 같아.”온다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저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두꺼운 패딩 입고 와.”온다연은 곧 가장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 유강후가 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그들이 향한 곳은 경찰서였다. 유민준과 이효진은 그곳에서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이효진은 유민준과 함께 있던 사람이 온다연이 아닌 진설아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충격받았다. 진설아는 매일 그녀에게 아부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평소에는 잘 유지하던 재벌가 딸의 이미지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진설아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 뺨을 때렸다.진설아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과 유민준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이효진에게 양보해 달라고 애원했다.그 말을 들은 이효진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진설아를 죽을 때까지 때릴 기세였다. 다행히 경찰이 말려선 덕분에 초상 치를 일은 없었다.이때 유민준은 술이 완전히 깬 상태였다. 그는 차갑게 이효진과 진설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진설아와는 더 이상 엮일 필요가 없었다. 돈 좀 주면 끝날 일이니 말이다. 대신 이효진이 빨리 파혼을 결심해 주기를 바랐다.그는 비교적 평온했다. 온다연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온다연이 유강후와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온다연의 손을 잡으려고 하며 말했다.“다연아, 난 너랑 같이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왜 갑자기 진설아가 됐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온다연은 그를 피하며 유강후의 뒤로 숨었다.“오빠가 사람 잘못 봤겠죠.”그녀의 냉담한 태도와 시선에, 유민준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하늘에 대고 맹세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니야, 내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너였어. 내가 아무리 취해도 그거까지 착각하지는 않아. 다연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그는 또다
온다연은 처음 스스로 사냥에 나선 어린 짐승과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 먹이를 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저 유강후가 하던 것처럼 입술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녀의 작은 혀가 입술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그는 몸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키스를 하면서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곳에까지 뻗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그녀의 키스는 처음 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서툴렀다. 이 점이 그는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키스한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온다연은 힘든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이 접근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유강후가 알기로 그녀의 곁에서 도와준 적 있는 사람은 이웃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부모가 사망한 후 경원을 떠났다.즉, 지난 몇 년 동안 온다연은 임혜린 이외의 친구가 없었다.이는 그가 바라는 바였다. 그는 자신이 온다연의 유일한 친구이자, 유일한 가족이 되기를 바랐다. 온다연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줄 생각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도록 말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그는 입을 더 깊게 맞췄다. 주동권을 빼앗은 그는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당황한 듯 손을 놓으며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살살해요, 아저씨. 아파요.”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으로 그랬어?”온다연은 그의 손가락을 살짝 물며 말했다.“싫어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된 걸 보니, 조금 기뻐서요.”“기뻐서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진 거야?”온다연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스쳤다. 조금 전에는 이유 없이 그냥 키스하고 싶었다. 그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오늘 일어난 일로 봤을 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유강후와 함께 할 날도 얼마 없다는 뜻이다.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헤어질 사이에 미련을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은별에게 밟혀
유강후는 온다연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만족했어?”온다연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몇 곳은 심하게 아프기까지 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아저씨, 그런 말 하지 마요!”유강후는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왜 아까처럼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온다연은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고삐 풀린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온다연이 아니었다. 유강후에게 홀린 다른 사람이었다.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다리가 풀렸어요. 저 좀 안아서 데려다주세요.”유강후는 이불을 가져와 그녀를 감싸서 위층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 그녀를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온다연은 침대에 닿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유강후는 방을 나와 거실에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영상을 정리해서 올려줘요. 내일 오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야 해요. 그리고 진설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집안 도우미의 딸이에요. 최근 소비 내역과 인간관계 전부 조사해서 알려줘요.”...온다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오후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토록 깊게 잠들어 봤다. 꿈속에는 주한도, 어머니도,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없었다.그녀는 몸을 움직여 봤다. 아픔이 한결 덜해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반쯤 잠든 상태에서 유강후가 약을 발라주었던 것이 생각났다.부끄러운 생각이 또다시 밀려오자,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다.유강후는 보이지 않았고, 침대 머리맡에는 그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 쪽지에는 짧은 몇 글자만 적혀 있었다.“깨어나면 전화해.”간결한 일곱 글자는 마치 그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힘찬 필체는 마치 금으로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온다연은 그 작은 쪽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이 접어서 핸드폰 케이스 안에 끼워 넣었
전화 너머로도 온다연은 유강후가 주는 강렬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아저씨, 인터넷에서 보니까 근처에 괜찮은 분식집이 있던데... 저 거기 가서 먹고 싶어요. 집이랑 엄청 가까워요. 저 ... 가도 돼요?”마치 초등학생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온다연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반대로 유강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식당 음식은 깨끗하지 않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방에 얘기해.”온다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전 가고 싶어요!”잠시 침묵이 흐른 후, 유강후가 마침내 대답했다.“알았어. 근데 너무 많이 먹지는 마. 뭘 먹었는지 사진 찍어 보내고.”“네, 아저씨.”“어제저녁에 입었던 두꺼운 옷 입고, 목도리도 잘 두르고 나가.”온다연은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곧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뒤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누가 봐도 유강후의 사람들이었다.발걸음을 재촉해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온다연은 빠르게 골목길로 들어서서 ATM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재빨리 어딘가로 송금했다.다시 모퉁이로 돌아갔을 때, 검은색 승용차는 도로 끝에 정차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건장한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어딘가 약간 비굴해 보이는 모습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온다연이 다시 나타나자, 두 남자는 누가 봐도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온다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근처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다 먹고 나왔을 때 검은색 승용차는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줬다. 타라는 뜻으로 말이다.그녀는 이 차가 유강후의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탔다. 차는 유강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온다연이 도착했을 때 유강후는 아직 회의 중이었다. 온다연은 그의 사무실에서 기다렸다.핸드폰을 보던 중, 온다연은 이효진이 인기 검색어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강후도 등장했다. 나은별은 그와 팔짱을 끼며 무어라 다정하게 말했다. 유강후는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나란히 선 두 사람은 천상의 커플 같았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입은 옷을 봤다. 캐주얼 하게 예쁜 옷이기는 하지만, 나은별에 비해서는 너무 유치해 보였다.그녀가 다시 시선을 옮겼을 때 그들은 사라져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여니 밖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중에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도 있었다.“너무 갑작스러워요. 그런 분이 왜 연락도 없이 오셨대요?”“그분 우리 대표님 아버지세요. 몰랐어요?”“여자분은 대표님 약혼녀시죠? 너무 아름다워요. 역시 재벌가 딸은 다르네요.”“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요. 사진 몇 장 찍어서 저장해야겠어요.”...온다연은 잠깐 듣고 있다가 외투를 챙겨 들고 탕비실에 갔다. 사무실에 올지도 모르는 나은별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서였다.유재성은 딱히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자리에 그녀처럼 애매한 사람이 끼어 있는 건 불편할 것이다.역시 예상대로, 잠시 후 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유재성의 굵은 목소리와 나은별의 맑고 달콤한 목소리 전부 있었다. 간간히 ‘강후 씨’라고 부르는 나은별의 목소리는 귀에 콕 박혔다.그 소리를 들으며 온다연은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밝지 않았던 조명이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그녀는 탕비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른 문을 통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모든 사람이 유재성을 맞이하는 데 정신이 팔렸기에, 아무도 그녀가 나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회사를 나서며, 온다연은 머리를 돌려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이때부터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져서 옷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추위가 느껴졌다. 오랫동안 걸은 후에야 그녀는 서둘러 나오느라 목도리를 가져오지 않았던
온다연은 잠시 침묵한 후 가볍게 입술을 움직였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서 전화 한 통 했을 뿐이에요. 아저씨한테 안 전해도 돼요. 그럼 저는 이만...”전화를 끊고, 그녀는 다시 천천히 호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로는 고작 1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걸어서 가자니 시간이 생각 밖으로 오래 걸렸다.눈은 점점 많이 내렸다. 가슴 속에 뚫린 구멍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은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듯 구멍을 향해 몰아쳤다.호텔 정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온다연은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그중 한 대가 유강후의 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회사에 있는 줄 알았더니... 벌써 호텔에 돌아온 거야? 그렇다면 나은별 씨는 호텔에서 전화를 받은 건가? 샤워도 호텔에서 했다는 말이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온다연은 그림자 속에 서서 열린 차창 너머로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냉정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고 여자는 달콤하고 우아했다.정말이지, 그들은 빛나는 한 쌍으로 늘 햇빛 속에 서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반면 그녀는 어둡고 초라한 구석에 숨어서 살아가야 할 한낱 들풀에 불과했다.이때 차 안에 있던 나은별의 시선이 그녀 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치 그녀를 발견한 듯 나은별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그녀를 바라봤다.나은별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유강후의 시선을 막고 차창을 올렸다. 온다연의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갈라놓은 것처럼 보였다.온다연은 눈보라 속에 서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유강후와 함께했던 모든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생각했을 때, 유강후가 그녀를 의도적으로 찾아주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호텔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그녀를 알아보
자그마한 곰돌이. 유강후의 프로필 사진은 자그마한 곰돌이였다.그는 온다연이 좋아하는 줄 알고 바꾼 것이다. 지난번 그에게 선물한 커프스 단추도 귀여운 곰돌이 모양이었기 때문이다.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선물해 준 물건이다. 하도 귀해서 아직 써보지도 못했다. 사진으로 찍어서 혼자 감상하던 중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들어서 프로필 사진으로 해놨다.그날로 SNS는 난리가 났다. 오전 사이로 유재성까지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영원을 지나가는 길에 회사까지 찾아왔다.더욱 시끄러운 건 한이준이었다. 그는 유강후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고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다.유강후는 다시 한번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얌전한 모습이 온다연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걸 사람들은 왜 유난인지 이해가 안 갔다.그는 핸드폰 넘어 곰돌이를 쓰다듬다가 이권에게 문자를 보냈다.[다연이는 뭐 하고 있어?]이권은 금방 답장을 보냈다.[침실에 계셔서 뭐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들어간 지 세 시간이 됐는데, 제가 노크해서 확인할까요?][됐어.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버려둬. 밖에 나오면 나한테 문자 보내고.][네, 알겠습니다.]유강후는 핸드폰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기사한테 널 데려다주라고 할게.”이 말은 나은별한테 하는 것이었다. 나은별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그 잠깐 같이 있는 것도 안 돼? 아버님이 가시자마자 날 쫓아내는 거야? 강후야, 너 저기 기억해? 진수도 있을 때 우리 자주 갔었잖아. 네 18살 생일도 저기서 보냈어.”나은별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실은 나 어제 꿈에 진수가 나왔어. 너랑 진수가 같이 바다에 빠지는 꿈이었어...”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강후야, 나 진수 보고 싶어. 곧 진수 생일이잖아. 우리 저기라도 가보면 안 돼?”옛친구가 언급되자 유강후는 침묵에 잠겼다. 그는 한진수의 희생 덕분
온다연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요. 당장 갈게요. 병원 위치를 보내주세요!”그녀는 전화를 끊고 침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문 옆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유강후를 발견했다.온다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의 손을 잡고 침대 쪽으로 이끌었다.“아직 열이 나는데 왜 일어났어요?”유강후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방금 누구 전화였어? 어딜 가려고?”“염지훈 씨가 위출혈로 쓰러졌대요. 병원에 가야 해요.”남자는 즉시 표정이 어두워졌다.“안 돼. 절대 못 가.”유강후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하지만 그녀는 가지 않을 수 없었다.“염지훈 씨는 이곳에 가족이 하나도 없어요. 꼭 가봐야 해요.”유강후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내뱉었다.“안 돼. 그 자식이 널 속인 거야. 소처럼 튼튼한 놈이 갑자기 아플 리 없잖아. 너를 내 곁에서 떼어 놓으려는 술수야!”온다연은 조용히 그의 눈을 응시했다.“강후 씨도 평소에 건강한데 지금 앓아누웠잖아요. 워낙 그 사람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오늘 가지 않으면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릴 것 같아요.”유강후는 얼굴빛이 흐려지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나도 많이 아파. 열이 펄펄 끓어.”그는 온다연의 손을 끌어다 자기 이마에 얹었다.“못 믿겠으면 만져봐.”손바닥에 전해지는 열기에 온다연은 좀 걱정됐지만 염지훈의 상태가 더 위중하다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그녀는 손을 뿌리치며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님과 집사들도 강후 씨를 돌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염지훈 씨는 이곳에 아무도 없고 지금 위출혈로 의식도 없대요.”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단호했다.“후딱 갔다 올게요. 걱정되면 이권 씨랑 같이 가도 돼요.”“강후 씨는 가지 말아요. 둘이 또 주먹질할까 봐 두려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강후가 동의하든 말든 옷을 갈아입고 현관문을 나섰다.안색이 어두워진 유강후는 온다연이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따라나섰다.병실 문을 열자마자 온다연은 염지훈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미모
바닥에 널브러진 빈 술병만 열 개가 넘으니 염지훈은 완전히 만취 상태다.권예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속삭이듯 말했다.“위도 안 좋은데, 이렇게 많이 마시고 죽고 싶어요?”그녀는 말하면서 염지훈을 부축해 소파 쪽으로 끌었다.하지만 190cm에 가까운 큰 키에 우람진 체격인 염지훈을 그녀가 160cm의 가냘픈 체구로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허우적대다가 염지훈의 몸이 그녀 쪽으로 기울었다.그녀의 가냘픈 몸으로는 거대한 남자의 체중을 지탱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순식간에 두 사람은 바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권예진은 그의 몸에 눌려 바닥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그녀는 필사적으로 그의 등을 치며 소리쳤다."저기요, 제가 밑에 깔렸어요. 얼른 일어나세요!""박현욱, 개자식! 나를 깔아 죽일 셈이야? 비켜!""3초 안에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 부른다!""야, 빨리 일어나!"하지만 염지훈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만 흘러나올 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다.권예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간신히 그의 몸 아래에서 빠져나왔다.하지만 바닥에 쓰러진 염지훈을 다시 부축하려던 순간,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이상한 감촉이 전해졌다.염지훈의 입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바닥은 이미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깜짝 놀란 권예진은 황급히 손으로 그의 얼굴을 치며 소리쳤다. “괜찮으세요? 피를 토했는데, 위출혈이 아니에요?”염지훈은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손을 잡아끌면서 웅얼거렸다.“다연아, 가지 마, 가지 마...”“유강후한테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줘... 약혼 파기하지 않을게...”권예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냈다.“비서님, 지금 당장 들어오세요. 대표님이 과음하셨는데, 위출혈인 것 같아요. 병원으로 이송 부탁드립니다.”염지훈의 비서는 이내 도착했다.두 사람은 엄청난 노력 끝에 간신히 염지훈을 차에 실었다.다행히 근처에 대형 한인 병원이 있어서 급히 달려갔지만 도착했을 때 염지훈의 상태는 더욱
사건은 잠시 일단락됐다.***저녁에 권예진이 염지훈의 별장을 찾았는데, 문에 들어서자 진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안쪽을 들여다보니 염지훈이 술병 더미 속에 비스듬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권예진은 깜짝 놀라 급히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염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다연아, 너 왔구나...”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권예진은 가슴이 찌릿찌릿 아려와 그 자리에 멈춰 섰다.‘나를 그 여자로 착각한 건가? 그 약혼녀로?’염지훈은 흔들거리며 일어나 권예진에게 손을 내밀었다.“다연아...”권예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에요.”염지훈이 몸을 휘청이며 다가왔다.“다연이 아니면, 넌 누구야?”“아니, 넌 다연이야. 나를 보려고 북아메리카에 온 거야?”그가 하도 꽉 껴안아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된 권예진이 소리 질렀다.“염지훈 씨, 저는 진유나가 아니라 권예진이에요.”“아니!”염지훈은 갑자기 감정이 격해졌다.“넌 다연이야. 내 아내! 이 손을 놓으라고? 절대 못 놓아!”그는 흐느껴 울었다.“네가 먼저 나를 건드렸잖아. 네가 갑자기 내 차에 올라탔고, 같이 산에 눈 구경을 가자고 했어. 네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며 자꾸 내 마음을 흔들었어. 그래서 빠져든 거야.”“이제 와서 놓아달라니.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많은 걸 했는데, 어떻게 놓아줘?”그가 너무 꽉 껴안아 권예진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취해서 사람을 잘못 봤어요. 박현욱 씨, 저는 당신의 다연이 아니에요.”그녀가 저항할수록 염지훈의 팔에 힘이 더 실리면서 그녀를 옥죄었다.“아니, 넌 내 아내 다연이야. 내가 이번 생에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은 유일한 사람!""다연아, 유강후 곁에 있지 마. 그 자식은 좋은 사람이 아니야. 자격도 없어!""넌 잠시 잊었을 뿐이야. 유씨 가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해
오후에 유강후가 깨어났을 때 온다연은 옆에 없었다.그가 막 입을 열려는데 오진숙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넸다.“도련님, 물을 좀 마셔요.”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나 지금 아파?”오진숙이 걱정스럽게 말했다.“네, 의사 선생님께서 상처 부위가 감염돼 며칠 동안 열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릴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는 평소에 잘 아프지 않는 체질이고, 온다연이 곁에 없던 그 몇 년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열이 나면서 혼수 상태에 빠지자 전체 강씨 가문이 불안에 떨었다.유강후는 물을 조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다연은 어디 있어?”“서재에서 화상회의를 하고 계십니다.”오진숙의 말에 유강후는 미간을 찌푸렸다.“진씨 가문에서 전화가 왔어?”오진숙은 감히 숨기지 못하고 그가 누워있는 동안 벌어진 일들을 대충 이야기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유강후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듯하게 대처한 것 같았고 심지어 리더십도 있어 보였다.한편으로는, 그녀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면서 더 이상 이전처럼 그녀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불안감도 밀려왔다.더 큰 그물을 짜야만 그녀를 지켜낼 수 있을 것 같다.그는 옷을 갈아입고 서재로 갔다.널찍한 서재에 놓인 네 대의 컴퓨터가 모두 켜져 있었다.화상회의용 대형 스크린도 켜져 있었다.온다연이 컴퓨터 앞에 서서 이권 등에게 주식 매매를 지휘하고 있었다.화상회의 화면 속에서는 1,000여 명의 트레이더들이 그녀의 지시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매매를 진행 중이었다.이 광경을 본 유강후는 살짝 놀랐다.꼬맹이가 주식 그래프를 분석하면서 이렇게 많은 트레이더들을 지휘하다니.‘이 정도면 내가 해도 버거울 텐데...’그녀는 전혀 부담 없는 표정이었다.문 앞에 한참 서 있은 뒤에야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다.그때쯤 주가는 이미 기본적으로 안정된 상태였다.이권이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깨어나셨네요? 온다연 씨가 저희를 이끌고 주식시장을
“찾긴 찾았는데 그쪽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해요. 1,400억을 줘야 말을 바꾸겠대요.”이권의 말을 들은 온다연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는 건 경제적으로 몹시 쪼들리고 있다는 의미예요. 그자의 아내와 아이 등 가족을 찾아봐요. 그자가 신경 쓰는 사람이나 일이 반드시 있을 거예요.” “미래그룹 홍보팀에 연락해서 영상 속 인물은 유강후가 아니라는 성명문을 내도록 해요. 그리고 법무팀에 도촬범과 접촉해 감옥에서 썩게 하겠다고 겁을 주라고 하세요.”“이중 압박을 받으면 물러서리라 생각해요.”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저는 염지훈에게 연락해 영상 속 인물이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라고 할게요. 세 가지 수단을 동시에 쓰면 아마 해결될 수 있을 거예요.”이권은 넋을 잃은 채 온다연을 바라보고 있었다.부드럽기만 하던 소녀가 이렇게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일 줄이야. 심지어 말솜씨와 일 처리 스타일에서 유강후의 모습이 약간 보였다.이권이 멍해 있는 것을 본 온다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멍하니 서서 뭐 해요? 당장 진행해요. 미래그룹같이 덩치 큰 회사는 주식이 1분만 떨어져도 손실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네, 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이권이 급히 대답하며 나가자, 온다연은 강현미에게 말했다.“어머님, 주가 문제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강후 씨만큼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하락세가 지속되는 건 막을 수 있습니다.”그녀는 혼수 상태인 유강후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지막이 말했다.“강후 씨가 오늘은 정상적인 업무 처리가 불가능할 것 같아요...”이때 의사가 입을 열었다.“이전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제 싸우면서 상처 부위가 다시 찢어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새로 생긴 상처를 제때 처치하지 않아 감염됐습니다...”“앞으로 3~5일 정도 계속 열이 오르내릴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진유나 씨 말씀처럼 당분간 업무 처리는 어려우실 듯합니다...”강현미가 가
온다연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가느다란 두 다리를 꽉 조였다.그러자 유강후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타일렀다.“남편한테 보여주는 게 뭐가 부끄러워요.”온다연은 목소리마저 떨렸다.“못생겼어요. 보지 마요.”“예뻐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예뻐요.”말하면서 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다리를 벌렸다.분홍빛을 띄며 부드러워야 할 그곳은 이미 빨갛게 부어있었고 찢겨진 흔적도 보였다.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다.후회가 밀려온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약 가지러 갈게요.”이미 수없는 애정 행각을 했음에도 온다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그만 봐요. 아까 의사 선생님이 약 발라줬어요. 그리고 이제는 많이 안 아파요.”유강후는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나갔다.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는 작은 연고가 들려있었다.“지난번에 상처에 쓰고 남은 건데, 다른 약보다 효과가 좋을 거예요.”유강후가 직접 약을 발라주려고 하자 온다연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혼자 할게요.”그걸 두고 볼 리가 없었던 유강후는 그녀를 달래며 침대에 눕혔고 직접 약을 발라줬다.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나쁜 손은 또 이리저리 만져대기 시작했다.거친 손길에 온다연은 얼굴이 상기된 채로 그를 세게 걷어찼다.그렇게 꽁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이 되고서야 유강후는 그녀를 껴안고 잠이 들었다.다음날 온다연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점심이 되었고 그녀는 깨어나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예전에는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유강후는 꼭 정해진 시간에 일어났기에 늘 늦잠 자는 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보다 더 깊이 잠들었다.옆에서 툭툭 밀었지만 유강후는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게다가 손에 느껴지는 그의 열기에 깜짝 놀랐고 유강후는 고열인 게 틀림없었다.온다연은 다급하게 집사를 불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와 강현미가 부리나케 달려왔다.강현미는 아들의
온다연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말했다.“왜 이렇게 속이 좁은지 이해가 안 되네요. 두 사람이 싸울 때 들었어요. 예전에 우리가 안 좋은 일로 헤어졌다면서요?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줘요.”유강후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목소리마저 가라앉았다.“염 대표가 질투심에 눈이 멀어 헛소리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요. 우린 헤어진 적 없어요. 그 사람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해서 유나 씨를 빼앗아 가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살려둔 건 자비를 베푼 거죠.”온다연은 생각에 잠겼다.“우리 두 사람 사이에 꽤 많은 일이 있었나 봐요? 끼어들 기회가 엿보여서 이간질했던 게 아닐까요?”유강후가 답했다.“어차피 앞으로는 기회가 없을 거예요.”“아니, 예전에도 기회를 준 적은 없어요. 내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서 유나 씨를 데려갔거든요. 이제는 우리 사이에 끼어들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걸 알면서 뻔뻔하게 끼어든 파렴치하고 비열한 놈이죠.”이때 온다연이 말했다.“예전의 기억을 되찾고 싶어요. 강 대표님이 실력 있는 최면사를 소개해주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유강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많이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래서 유나 씨가 기억을 되찾는 걸 원치 않아요.”그러나 온다연의 태도는 확고했다.“아니요.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해도 내가 직접 겪은 그때만의 추억이잖아요. 강 대표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좋든 나쁘든 놓치고 싶지 않아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아이가 태어나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 기억을 되찾아도 늦지 않아요. 이런 일로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유강후는 아이를 좋아하는 온다연의 성격을 고려해 일부러 이런 얘기를 꺼냈다. 아이가 생긴다면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생각나도 결국 아이를 지키기 위해야 곁에 머물 테니까.그 말을 들은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차라리 아이가 없을 때 기억을 되찾는 게 좋지
강현미를 불러오려던 집사를 온다연이 나서서 말렸다.“별일 아니니까 얘기하지 마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약만 잘 바르면 금방 나을 거예요. 늦은 시간에 찾아가는 건 괜히 실례일 수도 있어요.”온다연은 도우미들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넘어져서 다친 거라고 얘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죠?”아무도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다.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유강후의 태도를 지켜봐 왔기에 온다연의 명령을 거역하는 건 불가능했다.다만 겉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온다연이 일 처리할 때만은 매우 냉정하고 단호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온다연은 유강후에게 약을 발라주려고 다가갔다. 그러나 유강후는 고민도 없이 그녀를 안아 올려 침대로 내던졌다.부드러운 애무나 키스는 건너뛰고 유강후는 매우 거칠게 그녀를 다뤘다.그들은 신체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에 아무런 준비동작 없이 이어진 갑작스러운 행동에 온다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평소와 달리 유난히 확고한 유강후는 거친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온다연은 유강후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예전처럼 아프다고 소리치는 게 아닌 오히려 힘을 풀고 자신의 몸을 열어 그를 꽉 껴안았다.전혀 자제하지 않는 유강후 때문에 온다연은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어쩔 수 없이 한밤중에 여의사를 불러왔다.의사는 침대에 묻은 피를 보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감히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온다연에게 조심스럽게 약을 발라주며 최근 며칠 동안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충고했다.온다연은 아파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유강후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그제서야 유강후도 정신을 차렸다.3년 전 온다연을 잃었던 두려움과 무력감이 염지훈이 그녀를 데려간 순간 다시 솟구쳐
온다연은 눈살을 찌푸린 채 경호원이 건넨 약상자를 받아들며 그에게 다가갔다.“여긴 너무 어두워요. 차에서 발라줄게요.”유강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서 해줘요.”사실 그는 별장의 큰 유리창을 통해 온다연이 염지훈에게 약을 발라주는 걸 목격했다.그는 질투심으로 이미 미쳐가고 있었다.‘염지훈... 분명히 일부러 그런 거야. 보기에는 심각해도 솔직히 얼마 다치지도 않았잖아? 하여튼 꾀병은.’경호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려는 유강후를 말리지 않았다면 염지훈은 지금쯤 이미 병원에 누워있었을 것이다.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아파요.”온다연은 쪼그리고 앉아 다친 부위를 주의 깊게 살폈다.염지훈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여러 군데가 파랗게 멍들었고 피부가 벗겨진 곳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다친 걸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아픈 걸 잘 참는 유강후가 고작 이런 작은 상처에 아프다고 호소하니 온다연은 어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치료해 줬다.“이제 됐으니까 가요. 남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의사 선생님한테 처리해 달라고 해요.”유강후가 손을 뻗어 힘을 가하자 온다연은 그의 다리 위에 주저앉았다.곧바로 턱을 잡더니 격렬한 키스가 이어졌다.그는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온다연을 물어뜯었고 피비린내를 맛보고 나서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온다연은 찢긴 자신의입술을 만지며 차갑게 말했다.“미쳤어요?”그러자 유강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도착하자마자 온다연을 차에 앉히더니 문을 닫은 후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유강후의 손을 붙잡았다.“정말 미쳤어요? 밖이잖아요.”유강후는 전혀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옷을 찢었다.불과 몇 초 만에 입고 있던 옷이 전부 벗겨졌다.온다연은 너무 화가 나서 그를 두 번이나 걷어찼지만 유강후는 이를 무시하고 셔츠를 벗어 그녀에게 입혔다.“나이도 많은 사람이 왜 이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