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후는 벌을 주듯 그녀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디 갔었어?”온다연은 고통에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아무리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아 몸을 웅크리며 그의 손길을 최대한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가 뭘 좀 먹었어요.”‘뭘 좀 먹고 왔다고?'‘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하네!'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품으로 확 당기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온다연은 그의 몸 위로 안긴 꼴이 되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식당으로 내려간 거야? 룸서비스도 있는데 굳이?”그의 차가운 시선을 도저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정말로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으로 내려갔던 거예요. 못 믿으시겠으면 내려가서 물어보셔도 돼요. 음식을 주문한 기록도 있으니까...”유강후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어투는 여전히 냉담했다.“정말로 그랬어?”온다연은 고개를 돌리며 다소 삐친 듯한 모습을 보였다.“못 믿겠으면 믿지 마세요.”작고 나른한 목소리엔 불만이 가득했다. 보기 드물게 삐친 것이다.유강후는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네가 신고한 거야?”온다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는 얼굴로 보았다. 아주 순진하고 무구한 눈빛으로 말이다.“아저씨, 무슨 말씀이세요? 신고라니요?”유강후는 그녀의 턱을 잡으며 다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똑바로 말해.”그녀가 장난을 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가 어떻게든 수습해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온다연은 막막한 눈길로 그를 보았다.“그러니까 누가 신고를 했다는 말씀이세요?”“그래, 누군가 신고했더군. 3층에 누군가 나쁜 짓을 한다고. 호텔 매니저까지 올라왔었어.”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했다.“아저씨가 방금 3층에 계셨잖아요. 3층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유강후는 손에 힘을 주었다.“똑바로 말하라고!”온다연은 느껴지는 통증에 유강후의
유강후는 창밖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밖은 추워. 나 오늘 밤늦게 끝날 것 같아.”온다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말했다.“저 혼자 있으면 무서워요.”유강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럼 두꺼운 패딩 입고 와.”온다연은 곧 가장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집을 나서기 전 유강후가 또 목도리를 둘러주었다.그들이 향한 곳은 경찰서였다. 유민준과 이효진은 그곳에서 심하게 싸우고 있었다.이효진은 유민준과 함께 있던 사람이 온다연이 아닌 진설아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충격받았다. 진설아는 매일 그녀에게 아부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평소에는 잘 유지하던 재벌가 딸의 이미지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진설아의 머리채를 잡고 마구 뺨을 때렸다.진설아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그저 울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과 유민준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며 이효진에게 양보해 달라고 애원했다.그 말을 들은 이효진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진설아를 죽을 때까지 때릴 기세였다. 다행히 경찰이 말려선 덕분에 초상 치를 일은 없었다.이때 유민준은 술이 완전히 깬 상태였다. 그는 차갑게 이효진과 진설아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그의 생각은 단순했다. 진설아와는 더 이상 엮일 필요가 없었다. 돈 좀 주면 끝날 일이니 말이다. 대신 이효진이 빨리 파혼을 결심해 주기를 바랐다.그는 비교적 평온했다. 온다연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온다연이 유강후와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히 온다연의 손을 잡으려고 하며 말했다.“다연아, 난 너랑 같이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왜 갑자기 진설아가 됐는지는 정말 모르겠어.”온다연은 그를 피하며 유강후의 뒤로 숨었다.“오빠가 사람 잘못 봤겠죠.”그녀의 냉담한 태도와 시선에, 유민준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하늘에 대고 맹세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니야, 내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너였어. 내가 아무리 취해도 그거까지 착각하지는 않아. 다연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그는 또다
온다연은 처음 스스로 사냥에 나선 어린 짐승과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 먹이를 잡아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저 유강후가 하던 것처럼 입술을 마구 물어뜯었다. 그녀의 작은 혀가 입술을 따라 움직일 때마다, 그는 몸속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키스를 하면서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곳에까지 뻗었다. 유강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가 하는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였다.그녀의 키스는 처음 하는 것처럼 어설프고 서툴렀다. 이 점이 그는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다른 남자와 키스한 적이 없는 게 분명했다.온다연은 힘든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이 접근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유강후가 알기로 그녀의 곁에서 도와준 적 있는 사람은 이웃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부모가 사망한 후 경원을 떠났다.즉, 지난 몇 년 동안 온다연은 임혜린 이외의 친구가 없었다.이는 그가 바라는 바였다. 그는 자신이 온다연의 유일한 친구이자, 유일한 가족이 되기를 바랐다. 온다연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줄 생각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도록 말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그는 입을 더 깊게 맞췄다. 주동권을 빼앗은 그는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온다연은 당황한 듯 손을 놓으며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살살해요, 아저씨. 아파요.”유강후는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생각으로 그랬어?”온다연은 그의 손가락을 살짝 물며 말했다.“싫어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된 걸 보니, 조금 기뻐서요.”“기뻐서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진 거야?”온다연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스쳤다. 조금 전에는 이유 없이 그냥 키스하고 싶었다. 그와 더 가까이 있고 싶었다.오늘 일어난 일로 봤을 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유강후와 함께 할 날도 얼마 없다는 뜻이다.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헤어질 사이에 미련을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은별에게 밟혀
유강후는 온다연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만족했어?”온다연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몇 곳은 심하게 아프기까지 했다. 그녀는 몸을 뒤척이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댔다.“아저씨, 그런 말 하지 마요!”유강후는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왜 아까처럼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온다연은 차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장면이 다시 떠오르자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고삐 풀린 자신이 너무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온다연이 아니었다. 유강후에게 홀린 다른 사람이었다.온다연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다리가 풀렸어요. 저 좀 안아서 데려다주세요.”유강후는 이불을 가져와 그녀를 감싸서 위층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 그녀를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온다연은 침대에 닿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 유강후는 방을 나와 거실에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영상을 정리해서 올려줘요. 내일 오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야 해요. 그리고 진설아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집안 도우미의 딸이에요. 최근 소비 내역과 인간관계 전부 조사해서 알려줘요.”...온다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오후였다. 그녀는 처음으로 이토록 깊게 잠들어 봤다. 꿈속에는 주한도, 어머니도,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도 없었다.그녀는 몸을 움직여 봤다. 아픔이 한결 덜해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반쯤 잠든 상태에서 유강후가 약을 발라주었던 것이 생각났다.부끄러운 생각이 또다시 밀려오자,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은 오후 2시 반이었다.유강후는 보이지 않았고, 침대 머리맡에는 그가 남긴 쪽지가 있었다. 쪽지에는 짧은 몇 글자만 적혀 있었다.“깨어나면 전화해.”간결한 일곱 글자는 마치 그처럼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다. 힘찬 필체는 마치 금으로 조각한 듯 아름다웠다.온다연은 그 작은 쪽지를 한참 바라보다가 고이 접어서 핸드폰 케이스 안에 끼워 넣었
전화 너머로도 온다연은 유강후가 주는 강렬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아저씨, 인터넷에서 보니까 근처에 괜찮은 분식집이 있던데... 저 거기 가서 먹고 싶어요. 집이랑 엄청 가까워요. 저 ... 가도 돼요?”마치 초등학생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온다연의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반대로 유강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식당 음식은 깨끗하지 않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방에 얘기해.”온다연은 고집스럽게 말했다.“그래도 전 가고 싶어요!”잠시 침묵이 흐른 후, 유강후가 마침내 대답했다.“알았어. 근데 너무 많이 먹지는 마. 뭘 먹었는지 사진 찍어 보내고.”“네, 아저씨.”“어제저녁에 입었던 두꺼운 옷 입고, 목도리도 잘 두르고 나가.”온다연은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곧 준비를 마치고 호텔을 나섰다. 뒤에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왔다. 누가 봐도 유강후의 사람들이었다.발걸음을 재촉해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온다연은 빠르게 골목길로 들어서서 ATM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재빨리 어딘가로 송금했다.다시 모퉁이로 돌아갔을 때, 검은색 승용차는 도로 끝에 정차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건장한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그중 한 명은 어딘가 약간 비굴해 보이는 모습으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온다연이 다시 나타나자, 두 남자는 누가 봐도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온다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담담하게 근처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그녀가 다 먹고 나왔을 때 검은색 승용차는 여전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줬다. 타라는 뜻으로 말이다.그녀는 이 차가 유강후의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올라탔다. 차는 유강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온다연이 도착했을 때 유강후는 아직 회의 중이었다. 온다연은 그의 사무실에서 기다렸다.핸드폰을 보던 중, 온다연은 이효진이 인기 검색어에 오른 것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강후도 등장했다. 나은별은 그와 팔짱을 끼며 무어라 다정하게 말했다. 유강후는 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나란히 선 두 사람은 천상의 커플 같았다.온다연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입은 옷을 봤다. 캐주얼 하게 예쁜 옷이기는 하지만, 나은별에 비해서는 너무 유치해 보였다.그녀가 다시 시선을 옮겼을 때 그들은 사라져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여니 밖에서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중에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도 있었다.“너무 갑작스러워요. 그런 분이 왜 연락도 없이 오셨대요?”“그분 우리 대표님 아버지세요. 몰랐어요?”“여자분은 대표님 약혼녀시죠? 너무 아름다워요. 역시 재벌가 딸은 다르네요.”“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요. 사진 몇 장 찍어서 저장해야겠어요.”...온다연은 잠깐 듣고 있다가 외투를 챙겨 들고 탕비실에 갔다. 사무실에 올지도 모르는 나은별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서였다.유재성은 딱히 그녀를 미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있는 자리에 그녀처럼 애매한 사람이 끼어 있는 건 불편할 것이다.역시 예상대로, 잠시 후 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유재성의 굵은 목소리와 나은별의 맑고 달콤한 목소리 전부 있었다. 간간히 ‘강후 씨’라고 부르는 나은별의 목소리는 귀에 콕 박혔다.그 소리를 들으며 온다연은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원래도 밝지 않았던 조명이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그녀는 탕비실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른 문을 통해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모든 사람이 유재성을 맞이하는 데 정신이 팔렸기에, 아무도 그녀가 나가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회사를 나서며, 온다연은 머리를 돌려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넓은 유리창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그녀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강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이때부터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점점 강해져서 옷깃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어 추위가 느껴졌다. 오랫동안 걸은 후에야 그녀는 서둘러 나오느라 목도리를 가져오지 않았던
온다연은 잠시 침묵한 후 가볍게 입술을 움직였다.“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서 전화 한 통 했을 뿐이에요. 아저씨한테 안 전해도 돼요. 그럼 저는 이만...”전화를 끊고, 그녀는 다시 천천히 호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로는 고작 1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걸어서 가자니 시간이 생각 밖으로 오래 걸렸다.눈은 점점 많이 내렸다. 가슴 속에 뚫린 구멍도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차가운 바람은 일부러 그녀를 괴롭히려는 듯 구멍을 향해 몰아쳤다.호텔 정문에 거의 도착했을 때, 온다연은 몇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천천히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어두운 환경 속에서도 그중 한 대가 유강후의 차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회사에 있는 줄 알았더니... 벌써 호텔에 돌아온 거야? 그렇다면 나은별 씨는 호텔에서 전화를 받은 건가? 샤워도 호텔에서 했다는 말이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온다연은 그림자 속에 서서 열린 차창 너머로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냉정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고 여자는 달콤하고 우아했다.정말이지, 그들은 빛나는 한 쌍으로 늘 햇빛 속에 서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반면 그녀는 어둡고 초라한 구석에 숨어서 살아가야 할 한낱 들풀에 불과했다.이때 차 안에 있던 나은별의 시선이 그녀 쪽으로 스쳐 지나갔다. 마치 그녀를 발견한 듯 나은별은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그녀를 바라봤다.나은별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유강후의 시선을 막고 차창을 올렸다. 온다연의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두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갈라놓은 것처럼 보였다.온다연은 눈보라 속에 서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보았다. 유강후와 함께했던 모든 일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두 사람의 신분 차이를 생각했을 때, 유강후가 그녀를 의도적으로 찾아주지 않았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호텔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그녀를 알아보
자그마한 곰돌이. 유강후의 프로필 사진은 자그마한 곰돌이였다.그는 온다연이 좋아하는 줄 알고 바꾼 것이다. 지난번 그에게 선물한 커프스 단추도 귀여운 곰돌이 모양이었기 때문이다.그건 그녀가 처음으로 선물해 준 물건이다. 하도 귀해서 아직 써보지도 못했다. 사진으로 찍어서 혼자 감상하던 중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들어서 프로필 사진으로 해놨다.그날로 SNS는 난리가 났다. 오전 사이로 유재성까지 전화가 와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게 영원을 지나가는 길에 회사까지 찾아왔다.더욱 시끄러운 건 한이준이었다. 그는 유강후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고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다.유강후는 다시 한번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 얌전한 모습이 온다연과 많이 닮아 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걸 사람들은 왜 유난인지 이해가 안 갔다.그는 핸드폰 넘어 곰돌이를 쓰다듬다가 이권에게 문자를 보냈다.[다연이는 뭐 하고 있어?]이권은 금방 답장을 보냈다.[침실에 계셔서 뭐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들어간 지 세 시간이 됐는데, 제가 노크해서 확인할까요?][됐어. 잠들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내버려둬. 밖에 나오면 나한테 문자 보내고.][네, 알겠습니다.]유강후는 핸드폰을 거두고 창밖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기사한테 널 데려다주라고 할게.”이 말은 나은별한테 하는 것이었다. 나은별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그 잠깐 같이 있는 것도 안 돼? 아버님이 가시자마자 날 쫓아내는 거야? 강후야, 너 저기 기억해? 진수도 있을 때 우리 자주 갔었잖아. 네 18살 생일도 저기서 보냈어.”나은별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실은 나 어제 꿈에 진수가 나왔어. 너랑 진수가 같이 바다에 빠지는 꿈이었어...”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강후야, 나 진수 보고 싶어. 곧 진수 생일이잖아. 우리 저기라도 가보면 안 돼?”옛친구가 언급되자 유강후는 침묵에 잠겼다. 그는 한진수의 희생 덕분
그 말과 함께 온다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이렇게 빌게요. 제발 아이를 다른 사람한테 주지마요. 안 그러면 확 죽어버릴 거예요.”“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제발 아이만...”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애써 이성을 유지하며 온다연을 일으켰다.“다연아, 거짓말이 아니야. 저 아이는 우리 아들이 아니라니까?”온다연은 그를 바라봤다.“말했잖아요. 우림이랑 유전자 검사해 봤다고요. 혈연관계가 없다는 결과를 이미 확인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날 속일 거예요?”하얗게 질린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저 아이가 내 아들이 아니라면 진짜 아들은요? 누구한테 줬어요?”유강후는 말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고 점점 더 과격해졌다.“말하라고요. 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요.”어느새 유강후의 눈에도 슬픔이 차올랐지만 입을 꾹 닫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왜 대답을 못 해요? 말해줘요. 내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말하라고!”이때 뒤에 서 있던 이권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도련님, 이제 사실대로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큰일 날 것 같습니다.”온다연은 고개를 돌리더니 이권을 쳐다보며 물었다.“이권 씨는 알고 있죠?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요.”“이권, 입 닫아.”유강후가 단호하게 호통을 쳤지만 이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다연 씨, 아이는 죽었어요.”“그 작은 아이가 5개월 동안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요.”“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련님의 손바닥 위에서 마지막 숨이 끊겼습니다.”그 말은 날벼락처럼 날아가 온다연의 가슴을 후벼 찧었다.‘죽었다고?’‘내 아들이 죽었다고?’그녀의 눈빛은 서서히 생기를 잃었고 마치 영혼 전체가 고통에 휩싸인 것처럼 공허하고 슬퍼졌다.‘아니야. 분명히 건강을 되찾고 있었어.’‘거짓말하는 게 분명해. 세상이 지금 날 속이고 있는 거야.’심장이 멎은 듯 숨이 막혀온 온다연은 몸을 떨면서 중얼
유강후는 단호하게 말했다.“얼른 막아.”그러자 경호원들이 앞으로 나서며 온다연을 가로막았다.“사모님, 밖에 비가 옵니다. 여기 있는 게 좋을 거예요.”온다연이 계속 피하려고 하자 몇몇 경호원은 아예 문을 막아버렸다.다급함과 초조함이 밀려온 그녀는 또다시 경호원의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다행히 이를 알아챈 경호원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사모님, 또 총을 쓰시려고요?”온다연은 자신의 의도가 간파되자 뒤로 돌아서더니 주저 없이 창문으로 달려갔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창가에 다가가기도 전에 이미 창밖에는 건장한 경호원이 자리 지키고 있었다.절망은 밀물처럼 온다연을 덮쳤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슬픔에 잠식할 듯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유강후를 째려봤다.유강후도 이제는 그녀의 마음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끝내 벽 모퉁이에 다다르고서야 온다연은 품에 있는 아이를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후 씨, 이건 내 아이예요.”유강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 고통을 애써 참으며 온다연에게 손을 내밀었다.“다연아, 우리의 아이는 우림이야. 그러니까 이리 줘.”“싫어요.”온다연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너무 긴장하고 불안한 탓인지 그녀의 옷은 어느새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이마와 손바닥도 땀투성이였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아이를 빼앗아 그녀의 곁에서 떼어 놓을까 봐 극도로 두려워했다.온다연은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그녀는 품에 있는 아이를 꼭 껴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아이가 내 아들이잖아요.”온다연은 고개를 들어 유강후를 바라봤다.“내 아이 맞잖아요! 강후 씨, 제발 부탁인데 빼앗지 마요. 사실 이미 알고 있어요. 우림이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는걸.”유강후는 그대로 얼어붙었고 심장이 터질 듯 아팠다.“이 아이는 재혁이의 아들이야. 경호원 이재혁 알지? 우리의 아이는 우림이가 맞아.”그 말
온다연은 말없이 진시현의 품에 있는 포동포동한 아이를 바라봤다.유강후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넋이 나갔다.그녀의 영혼은 아이에게 빨려 들어갔고 아이의 모든 움직임에 매료되었다.유강후는 혼이 나간 듯 얼굴마저 창백해진 온다연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열은 없었다.그는 온다연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이 사람이 진시현이야. 로운의 부하이자 네가 말한 그 여자... ”온다연의 눈에는 아이밖에 없었기에 유강후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녀는 유강후의 손을 뿌리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진시현 앞으로 걸어갔다.진시현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사모님, 안녕하세요. 진시현이라고 합니다. 저랑 대표님의 관계를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온다연은 정신이 멍해져서 진시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다만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가 있었다.‘네 아이잖아. 이건 네 아들이라고.’온다연은 가까이 다가가 아이의 생김새를 관찰했다.하얗고 토실토실한 아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맑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봤다.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유강후의 모습이 언뜻 스쳐 갔다.호흡마저 가빠진 온다연은 재빨리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아봐도 될까요?”얼굴은 식겁할 정도로 창백했지만 온다연의 아름다운 미모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진시현은 지금껏 멀리서만 온다연을 봤었다. 물론 그때도 청순하고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처럼 가까이에서 보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온다연의 피부는 매우 하얗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여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했다.한편으로는 유강후가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납득되었다.다만 아이를 바라보는 온다연의 눈빛은 평소와 매우 달랐는데 마치 당장이라도 아이를 빼앗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게다가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고 하니 진시현은 무의식적으로 유강후의 눈치를 살폈다.유강후도 온다연의 이상함을 눈치챘다.“다연아, 아이가 보고 싶어서 그래? 장 집사한테 얘기해서 우림이 데려올게.
유강후는 잠시 생각했다.“같이 데려와. 다치지 않게 옆에서 잘 경호해.”그의 눈에는 착잡함이 스쳐 지나갔다.“자식은 부모의 보물이나 다름없어. 재혁이가 날 돕기 위해 기꺼이 아들을 보내줬는데 절대 다치게 해서는 안되지.”이권이 답했다.“그건 당연히 제가 할 일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재혁 씨의 아들도 하얗고 토실토실해서 엄청 예쁘더라고요. 심지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표님과 많이 비슷해요. 닮은 거로만 봤을 땐 우림 도련님보다 훨씬 더 대표님과 다연 씨를 닮았어요.”유강후는 기분이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야? 재혁이는 우리 엄마 먼 친척의 아들이야. 친척끼리 당연히 닮은 구석이 있겠지.”“권아, 왜 이렇게 뭉그적거리지? 빨리 안 가고 뭐 해.”“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두 곳은 서로 가까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시현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찾아왔다.오늘 진시현은 가면 대신 가벼운 메이크업을 했다.최근 온다연을 따라 해서 그런지 눈매와 행동까지 점점 온다연과 매우 흡사해졌다.캐주얼한 운동복을 입은 그녀는 아이를 소파에 눕히고 자연스럽게 놀아줬는데 그 모습은 유난히 온화해 보였고 로운조차도 힐끔힐끔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얼마 후 유강후가 다가와 그녀에게 몇 마디 설명했다.그러고선 자연스레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보면 볼수록 이재혁의 아들은 강씨 가문과 많이 닮았고 그제야 이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문득 세상을 떠난 아이가 생각난 유강후는 가슴이 미어졌다.‘우리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이만하겠지?’온다연과 유강후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어쩌면 훨씬 더 예쁠지도 모른다.이때 아이가 갑자기 손을 뻗어 유강후의 옷깃을 잡더니 옹알이했다.흠칫한 유강후는 홀린 듯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았다.어찌나 작고 가벼운지 깃털처럼 느껴졌고 말랑한 몸은 마치 작은 고양이를 안은 것처럼 부드러웠다.유강후는 씁쓸한 미소를 드러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이름은 뭐야?”진시현이 웃으며 답했다.“진하림이요.”“재혁이의 아들인데 성
자연스레 유강후도 주성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곧바로 흰머리 한두 가닥을 보게 되었다.그는 겁에 질린 채로 재빨리 다가가 온다연의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다연아.”그러나 온다연은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유강후는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아직 뜨거웠다.가슴을 쥐어뜯듯 고통이 밀려왔다.유강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설명해 줬고 심지어 아이까지 보여줬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몰랐다.이때 주성원이 입을 열었다.“다연 씨의 현재 상태는 매우 심각합니다.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말했다.“대표님, 병원에 데려가 정밀검사를 받는 게 어떠신지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네요. 자칫하다가 암으로 발전될 수도 있으니 검사를...”유강후는 고개를 휙 돌렸다.“뭐라고요?”주성원은 말을 이었다.“장난으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 일만 30, 40년 해왔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다연 씨는 위에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합니다.”“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상태가 악화된 거죠? 불과 한두 달밖에...”순간 유강후의 머릿속에는 막연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어쩌면 온다연이 아이가 없어진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저 이런 추측이 스쳐 지나갔을 뿐, 곧바로 그에게 부정을 당했다.유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연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시잖아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뭐든 속에 담아두는 성향이에요. 제가 아무리 옆에서 달래도 절대 입을 열지 않거든요. 아마 최근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된 것 같네요.”“혹시 다연이의 입을 열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주성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이건 대표님이 공들여 유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연 씨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어쩌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대화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게 좋습니다. 속에 담아둔
온다연은 심장이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비틀거리며 비웃었다.“대면이라뇨? 이번에는 또 어떤 연극을 하려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협조하길 원하는 거죠?”그녀는 천천히 침대 위 아이를 바라보았다.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요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보였다.아이는 참으로 순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그녀의 마음은 누군가 마구잡이로 흔들어대는 것처럼 아팠다.내장이 모두 뒤틀리는 듯한 통증에 온다연은 견딜 수 없었다.지금 당장이라도 유강후에게 따져 묻고 싶었다.왜 자신의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지, 그리고 침대 위의 이 아이는 누구의 아이인지.하지만 만약 지금 모든 것을 폭로한다면, 유강후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쩌겠는가?그가 침대 위의 아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상상만으로도 두려웠다.유강후는 차갑고 냉혹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아이 하나 없애는 건 그에게 아무것도 아닐 터였다.온다연이 아이를 보며 움직이지 않자 유강후는 다가와 아이를 품에 안고 그녀의 앞으로 걸어왔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이 깼어. 안아 줘.”그는 아이를 온다연에게 건네려 했다.하지만 온다연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강후를 밀쳐냈다.“꺼져요. 내 앞에서 위선 떠는 거 짜증 나니까!”그녀의 목소리가 다소 컸는지라 놀란 아이는 ‘와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던 유강후는 아이를 그녀에게 억지로 넘기려 했다.두 사람의 실랑이 끝에 결국 아이는 품에서 벗어나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순간 두 사람 모두 얼어붙었다.온다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아이를 안아 올려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다행히 방바닥에는 두툼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아이도 옷을 두껍게 입고 있어 크게 다치지 않았다.그러나 충격을 받은 아이는 더욱 크게 울기 시작했다.온다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달랬다.그러나 왜인지 평소에는 얌전했던 아이가 이번에는 좀처럼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유강후는 장화연에
“내가 낳은 아이라고요?”온다연은 유강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치 그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어떻게 거짓말을 하면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지? 난 대체 얼마나 어리석었길래 이 사람의 모든 행동을 사랑이라 믿었고 진심이라고 여겼던 걸까?’갑자기 온몸이 지치는 듯한 피로감에 휩싸이더니 온다연은 차갑게 말했다.“아저씨, 나 속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유강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눈빛에 잠깐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널 속인 적 없어.”“속인 적 없다고요?”온다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앞에 섰다.눈빛이 마치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을 평가하듯 차갑고 날카로웠다.유강후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라도 뚫으려는 듯 온다연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침내 눈물까지 흘러내렸다.“속인 적 없다니... 아저씨, 아저씨 입에서 진실된 말이 단 하나라도 나온 적이 있긴 해요?”“하늘을 걸고 맹세해봐요. 날 속인 적 없다고. 정말 진실만 말했었다고요!”“할 수 있겠어요?”그녀는 한 번도 이렇게까지 감정을 폭발시킨 적이 없었다.목이 터질 듯 외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하여 유강후는 온다연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어디 아픈 거 아니야? 주성원 선생님 부를까?”“손 치워요!”온다연은 그의 손을 세게 쳐내며 격렬히 숨을 몰아쉬었다.‘참을 만큼 참았어.’다정하면서도 유강후의 몸에서는 여전히 달달한 향수 냄새가 났다.역겨웠다. 정말 끔찍하게 역겨웠다.그와 얽혔던 모든 기억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온다연은 유강후를 밀쳐냈다.“아저씨는 정말 역겨워요. 진짜 끔찍해요!”순간 유강후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창백한 온다연의 얼굴을 보며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온다연, 지금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 방금 한 말 당장 취소해.”그러자 온다연은 차가운 웃음을
“예전에는 작은 도련님을 앞에 데려다만 놓으면 꼭 안아서 놓으려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만지려고도 하지 않아요.”잠시 망설이던 장화연이 이어 말했다.“사모님이 아마 이 아이가 자기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것 같아요.”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유강후는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그리고 장화연은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건네며 말했다.“차라리 이제 사실을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어때요?”유강후는 마음이 죄어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눈빛이 어두워졌다.“안 돼. 견디지 못할 거야. 정말 죽을 만큼 아파할 거라고...”장화연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리고 이제는 제 말을 믿지도 않고 제게 응답도 하지 않아요. 진시현 씨 일은 직접 사모님에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강후는 고개를 돌려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방 안에서 온다연은 유강후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의 볼을 살짝 건드리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이제 이 아이만 보면 자신의 아들이 그 여자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 고통은 마치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했고 유강후에 대한 증오가 점점 깊어졌다.그의 무정함과 거짓말이 더욱 미웠다.장화연을 시켜서 외부의 여자가 자신의 대역이라는 말이나, 누군가 그녀를 암살하려 했기에 보호를 위해 대역을 세웠다는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온다연은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이런 허술한 거짓말을 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걸까? 설령 누군가 내 목숨을 노렸다 해도 어떻게 내 아들을 그 대역한테 맡길 수 있어? 웃겨서 정말!’그의 입에서는 한 마디의 진실도 나오지 않았다.온다연은 멍하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너는 내 아기가 아니지만 명목상 내 아이니까 정말 좋긴 해. 걱정 마. 내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작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널 데리고 나갈 거야.”“하지만 지금은 널 좋아한다는 걸 티 내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가 널 이용해 날 또 옥죌 거니까.”“그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괴
병원에서.며칠간의 치료와 정성 어린 간호 끝에 나은별은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그녀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며 소이섭이 깎아준 사과를 받아들었다.“그 사람은 어떻게 처리했어요?”소이섭은 안경을 살짝 고쳐 쓰며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죽었어. 너무 많은 걸 아는 사람은 살려둘 수 없지.”나은별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 강후 씨 비서였잖아요. 갑자기 죽으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요?”그러자 소이섭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강후는 지금 온다연이라는 여자애를 찾느라 온 세상을 뒤지고 있어. 이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곧 나은별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이번 수는 제대로 먹혔네요. 비서를 이용해 강후 씨의 말을 왜곡해서 아래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하고 강후 씨가 온준휘를 구하지 않으려 한다는 오해를 만들었잖아요. 그 결과 온준휘는 골든타임을 놓쳐 죽게 됐고 지금 온다연의 눈에는 강후 씨가 살인범이나 다름없겠죠.”“온다연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했어요. 자신이 잠깐 돌봐줬다는 이유만으로 심미진이 온다연을 학대하고 유하령이 괴롭히게 놔뒀는데도 아직도 심미진을 잊지 못하더라고요. 그런 애가 가장 중시하는 건 가족이에요. 그런데 온준휘가 강후 씨의 무관심으로 죽었다고 믿고 있으니... 온다연이 강후 씨를 용서할 리 없겠죠.”“게다가 온다연은 강후 씨가 자기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버렸다고 믿고 있어요. 이제 강후 씨를 더더욱 용서하지 못할 거예요.”“근데 정말 보고 싶어요. 그 여자가 자기 아이가 사실 이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해!”소이섭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차갑게 말했다.“지금은 온다연이 그 사실을 알게 하면 안 돼. 김원도와 계획한 대로 모든 걸 진행해야 해. 하지만 걱정 마. 온다연이 너한테 그런 짓을 했던 만큼 내가 온다연한테 그보다 더한 고통을 줄 거니까.”나은별은 이를 드러내며 비웃었다.“온다연 따위가 감히 나와 경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