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당신의 아내에게 장 지관의 차문을 열라고 한 것이 아닙니까? 그건 복입니다. 장 지관께서 당신의 아내를 제자로 받아들이면 앞으로의 날들은 반드시 순탄대로일 겁니다.” 왕 사장 등 사람들이 이강현을 설득할 때 한복을 입은 제자들이 장 지관을 빼곡히 둘러싸고 걸어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는 겁니까? 우리 도를 닦는 사람들은 마땅히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법, 명덕아 이유를 자세히 말해보거라.” 장 지관은 방금 기세등등하던 제자를 바라보았다.명덕은 이강현을 힐끗 쳐다보더니 장 지관을 향해 몸을 살짝 굽혔다. “사부님, 이 녀석이 사부님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부님을 사기꾼이라고 말하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음?” 장 지관은 콧소리를 내며 불만스러운 뜻을 내비쳤다. 당당한 지관을 사기꾼이라고 몰다니, 이건 장 지관에 대한 역린이었다. 전에 장 지관을 사기꾼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결국 모두 파멸의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파멸된 이야기는 점점 전설이 되어 장 지관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이었다. “장 지관님, 이강현은 잠시 헛소리를 한 것뿐입니다. 일부러 당신을 사기꾼이라고 몰려는 것이 아니라 다 저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겁니다.” 고운란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말했다. 장 지관은 고운란을 바라보았고 순간 눈빛이 반짝였다.‘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마땅히 내 밑으로 들어와 밤낯으로 날 섬겨야 하거늘, 평범한 사람의 조강지처가 되다니 참 아깝구나.’ “오, 그렇군요. 부부간의 정이 깊으면 그럴 만하지요. 명덕아, 앞으로 일을 할 때 경솔해서는 안 된다. 네가 저지를 일 좀 보거라.” 장 지관은 제자를 살짝 꾸짖었고 명덕은 몸을 굽혀 말했다. “제자, 가르침 받들겠습니다.” “응. 그래도 일이 먼저니 너희들 먼저 이곳의 풍수지리를 살펴보거라.” 장 지관은 말을 마치고 고민국 등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결국 눈빛은 고운란에게 멈췄다. “이 여인은 이번 풍수지리를 살펴봄에 있어서 인연이 있
고운란은 장 지관의 곁에서 한 무리의 제자들에 빼곡히 둘러싸인 채 공사장으로 향했다. 명덕은 여섯 명의 제자를 데리고 남아 호시탐탐 이강현을 노려보며 그를 불안요소로 삼았다. 고민국과 고건강 등은 장 지관이 호통을 치지 않은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 이 쓸모없는 자식, 미쳤어? 장 지관에게 감히 무례하게 굴다니, 장 지관의 노여움을 사 우리 집의 풍수를 망치려는 거야?” 고민국이 화가 나 이강현에게 호통을 쳤다. 이강현은 고민국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실눈을 뜨고 멀어져 가는 장 지관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는데 마치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이강현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본 고민국은 갑자기 화가 났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 고민국은 더욱 호되게 말했다. “너 내 말 안 들려? 귀 머거리인 척하긴! 장 지관님께서 넓은 아량으로 널 감싸주셨지만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어? 얼른 명덕 사부님에게 사과드려라!” 명덕은 두 팔을 앞으로 모아 팔짱을 끼고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이강현을 쳐다보았다. “허허, 이 녀석은 정말 고집불통이네요. 지금 이 녀석을 혼 낼 필요 없습니다. 이제 저희 사부님께서 자연히 이 쓰레기를 혼낼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이강현은 명덕을 바라보며 살기를 내뿜었다. “허허, 무슨 뜻인지는 내가 말해도 넌 알아듣지 못할 거야. 내일 되면 자연히 알게 될거야. 하하하.” 명덕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고운란과 장 지관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는데 두 사람은 2미터의 거리를 두었다. 장 지관의 눈빛은 끊임없이 고운란에게서 맴돌았다. 그리고 점점 더 고운란의 곁으로 가까이 기대기 시작했는데 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2미터에서 1미터로, 1미터에서 반미터로 되었다. 장 지관이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고운란의 마음은 점점 더 긴장되었다. “장 지관님, 풍수를 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왜 나침판은 쓰지 않는 거죠?” 고운란은 긴장한 표정으
고운란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건 여자의 천성이었기에 장 지관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수련이 위험하진 않겠죠? 많은 사람들이 수련 중에 병을 얻었다고 들어서요.” 고운란이 멈칫하더니 말했다. “하하하. 그건 모두 명사를 따라 수행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저를 따라 수련하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당신과 저의 인연이니 저녁 만찬 후, 제 방으로 오셔서 바로 수련을 시작하면 되겠습니다.” 장 지관은 경계심이 꽤 강한 고운란 때문에 수련의 요구를 낮췄다. 그리고 고운란을 자신의 방으로 유혹할 수만 있다면 그 후의 모든 것은 전부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운란은 잠시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따가 제 남편의 의견도 들어봐야겠어요.” 장 지관은 의아하게 고운란을 쳐다보더니 다시 아까 이강현의 태도를 떠올렸는데 눈에는 음흉한 빛이 번졌다. “허허, 이건 제가 당신에게 주는 기회이니 고운란 씨께서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남편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정말 유감이고요.” 고운란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장 지관님께서 풍수를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지요.” 장 지관은 사방을 둘러보며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끊임없이 나머지 네 손가락 관절에 가져다 대며 움직였는데 마치 무언가 추론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장 지관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멈추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곳은 매우 험한 땅입니다. 만약 이곳에서 공사를 시작한다면 재앙이 계속되어 사람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네?” 고운란은 장 지관이 한 말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그럴 리 없습니다. 장 지관님께서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고운란이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제가 틀릴 리 없습니다. 믿지 못하겠으면 당장 공사를 시작해 보십시오. 일을 시작한 지 3일 안에 반드시 누군가 죽을 것입니다.” 장 지관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장 지관의 명성대로라면 당연히 믿어야 하
장 지관은 또 능청맞게 공사장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무거운 안색의 고운란과 함께 공사장의 입구로 돌아왔다. 이강현은 고운란이 아무 일 없는 것을 보고 그제야 안심했다. 고민국 등은 얼른 장 지관을 에워싸고 풍수의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장 지관님, 이 공사장의 풍수는 어떻습니까? 뭘 변경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장 지관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음산한 땅입니다. 만일 이곳에서 공장을 세운다면 앞으로 해마다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고민국과 고건강의 안색이 급변했다. 만약 해마다 사람이 죽는다면 배상 문제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머리가 아플 노릇이었다. “이, 이럴 수가, 이곳이 음산한 땅이라니. 장 지관님, 반드시 우리를 도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합니다.” 고건강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왕 사장 등도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그들이 공사 중에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이었기에 장 지관이 나서서 해결해 주지 않는다면 왕 사장은 심지어 이 일을 받지 않으려 했다. 이강현은 고운란을 끌고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사기꾼이 방금 당신은 안 속였어?” “사기꾼? 왜 장 지관이 사기꾼이라고 그렇게 단정 짓는 건데?” 고운란이 이강현이 왜 장 지관을 사기꾼이라고 단정 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공손하게 장 지관을 둘러싸고 있는데, 만약 장 지관이 사기꾼이라면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속였단 말인가?’ 이강현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미신은 그 자체로 이미 속임수야. 그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지관이라면 고민국이 초대할 수 있지도 않았을 거야. 간단히 말해 고민국이 접할 수 있는 건 사기꾼뿐이란 말이야.” 고운란은 한동안 말없이 생각했는데 방금 장 지관이 자신을 속인 것은 딱히 없다고 느꼈다. 기껏해야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공법이 있다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생술과 같은 공법이
장 지관은 의미심장하게 오른손을 내밀어 계산하는 척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30억.” 고민국은 오히려 한숨을 쉬었는데 30억은 비록 너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정말 조금도 적지 않은 액수였다. 게다가 이 가격은 마침 고민국이 마음을 모질게 먹으면 내놓을 수 있는 그런 액수였다. 그러나 고민국은 아직은 마음을 다잡지 못했했다. 비록 장 지관의 말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설마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까 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30억은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닙니다. 그러니 저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고 가족과 함께 상의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민국은 핑계를 대며 잠시 미루려 했다. 장 지관은 이런 상황을 많이 겪은 듯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시죠. 사흘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 지관님. 그럼 먼저 호텔로 데려다 드리지요. 이따가 성대한 만찬을 마련한 후 다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 지관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럼 저와 제자들은 먼저 가보겠습니다. 잘 상의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 방금 저를 사기꾼이고 하던 분은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이강현에게로 향했고 쌤통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는데 장 지관이 이강현을 어떻게 처리할지 기대하고 있었다. 이강현은 장 지관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장 지관께서 무슨 일이신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를 사기꾼이라 말한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전 단지 높은 사람에게 불복하고 함부로 말하면 그 업보를 치를 수 있다는 걸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앞으로 조심하세요.” “지금 저를 협박하는 겁니까?” 이강현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너 죽음을 자처하는 거냐? 감히 사부님께 그런 말을 하다니!” “사부님, 저 미친놈에게는 이 자리에서 당장 본때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명덕 등은 모두 소리치며 이강현을 상대하려고 했다. 장 지관은 이강현을 빤히 쳐다보
시스틴 호텔은 장 지관이 묵는 호텔이었다. 그리고 장 지관을 위한 만찬도 이곳 시스틴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고민국과 고건강은 일찍 호텔로 달려가 준비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고민국은 명덕에게 메시지를 보내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고민국은 장 지관의 취향을 물어보고 저녁에 그를 즐겁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명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국이 있는 룸으로 들어갔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두 분께서 저를 보자고 하시다니, 무슨 일이신지요?” “명덕 사부님, 얼른 앉으세요. 저희는 방금 그 땅에 대해 묻고 싶은데 정말 그렇게 심각한가요?” “그렇습니다. 만일 작은 음살이었다면 장 지관님께서는 진작에 손을 써서 해결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의 그 공장을 세울 곳은 아주 큰 음살이 있어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매년 7~8명의 사람이 죽어나갈 것입니다.” 명덕의 말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일 년에 7~8명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공장을 여는 것은 고사하고 가지고 있는 돈도 전부 피해자들의 보상금으로 나갈 것이 분명했다. “30억은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 도대체 당신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모르겠군요. 혹시라도 장 지관님의 말씀이 정확하지 않으면 30억은 팔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참 멍청하시네요.”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장 지관님께서 여기에 3일 동안 머물러 있는 이유는 이 3일 안에 반드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전 이미 다 말씀드렸으니 앞으로 3일 동안 지켜보시지요.” 고민국과 고건강은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렇게 허황한 일이 남에게 일어난다면 아무 상관도 없겠지만, 자신에게 일어난다면 그건 너무도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정말, 정말 사흘 안에 사람이 죽을까요?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사람이 죽기야 하겠습니까?” 고건강이 입을 벌벌 떨며 말했다. “허허, 아직도 믿기지 않나 보군요. 그럼 오늘 밤
장 지관은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이때 명덕이 기쁜 얼굴로 다가왔다. “장 지관님, 이미 그들에게 겁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저녁에 이강현을 공사장에 보낼 겁니다. 마침 그때 그 자식을 죽이면 될 것 같습니다.” “잘했어. 솜씨 좋은 사람 몇 명 골라서 저녁에 그를 죽여라. 현장은 보기 좋게 꾸미고.” 장 지관은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한두 번도 아니고, 경험은 이미 충분히 많으니 제가 잘 준비해 두겠습니다.” 장 지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명덕은 몸을 돌려 떠났고 일손을 찾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운란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이강현이 장 지관의 미움을 산 일만 떠올랐다. ‘장 지관이 마지막에 이강현에게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했으니 만일 정말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생각하면 할수록 고운란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리하여 저녁에 이강현을 장 지관에게 사과시켜 그에게 닥칠 재앙을 풀어주길 청하려고 했다. 이강현은 고운란이 초조한 모습을 보고 곁으로 가 그녀의 머리를 문질러 주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다 미신일 뿐이야. 지금은 디지털 시대인데, 왜 그런 늙은 사기꾼의 말을 믿는 거야?”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걸 어떡해. 혹시라도 그가 한 말이 모두 맞을 수도 있잖아. 이런 현학적인 것들은 설명하기 어렵다고.”고운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 신중해지려 했다. 이강현은 고운란이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당신이 말한 대로 할게.” “정말? 그럼 만찬 때 장 지관한테 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술이라도 권하는 건 어때?” 고운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이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승낙했다. 고운란이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 아파하지 않는다면 이강현에게 있어 장 지관에게 사과하는 것쯤은 큰 일도 아니었다. 이강현이 승낙하자 고운란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웃기 시작했
저녁 만찬은 8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고운란과 이강현이 연회장에 들어가려 할 때 고건강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 “운란아, 아까 장 지관께서 분부하신 일이 있는데 저녁에 음기가 짙어진 후 음살이 토양에 대한 침식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해. 그래서 사람을 공사장 중심구역에 보내 흙을 한 웅큼 가져오라고 하던데 이강현을 보내는 게 어때?” 고운란은 고건강의 말에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차키를 꺼내 이강현에게 건넸다. “당신이 얼른 다녀오는 거 어때?” “알겠어. 후딱 다녀올게.” 이강현이 차키를 들고 떠나자 고건강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운란, 우리는 들어가자고. 내가 보기에 장 지관이 널 아주 좋게 본 것 같아. 그러니 오늘 저녁 장 지관님을 잘 모셔야 해.”고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건강을 따라 연화장으로 들어갔다.장 지관은 정중앙에 앉아 있었고 고민국은 장 지관의 오른쪽에 앉아있었는데 왼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민국은 고운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운란아, 얼른 장 지관님 곁에 앉아.” 고운란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할 수 없이 장 지관의 왼쪽 빈자리에 앉았다. 장 지관은 빙그레 웃으며 고운란을 바라보았다. “고운란 씨 오셨군요. 방금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고운란 씨가 여장부의 기질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장 지관님, 과찬이십니다. 제가 무슨 여장부씩이나 되겠습니까? 다 큰아버지께서 절 너무 과대 평가한 것일 뿐입니다.” 고운란이 겸손하게 말했다. 이때 고민국은 술잔을 들고 장 지관에게 술을 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고 씨 가문을 대표하여 저희를 도와주러 먼 길 와주신 장 지관님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고민국은 술잔을 바로 비워냈다. 하지만 장 지관은 다만 술잔에 입만 살짝 댈 뿐이었다. 장 지관은 자신이 마시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고민국의 체면은 충분히 세워주었다고 생각했다. 고민국도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고운란을 바라보고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