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만찬은 8시 정각에 시작되었다. 고운란과 이강현이 연회장에 들어가려 할 때 고건강이 두 사람을 막아섰다. “운란아, 아까 장 지관께서 분부하신 일이 있는데 저녁에 음기가 짙어진 후 음살이 토양에 대한 침식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해. 그래서 사람을 공사장 중심구역에 보내 흙을 한 웅큼 가져오라고 하던데 이강현을 보내는 게 어때?” 고운란은 고건강의 말에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차키를 꺼내 이강현에게 건넸다. “당신이 얼른 다녀오는 거 어때?” “알겠어. 후딱 다녀올게.” 이강현이 차키를 들고 떠나자 고건강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운란, 우리는 들어가자고. 내가 보기에 장 지관이 널 아주 좋게 본 것 같아. 그러니 오늘 저녁 장 지관님을 잘 모셔야 해.”고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건강을 따라 연화장으로 들어갔다.장 지관은 정중앙에 앉아 있었고 고민국은 장 지관의 오른쪽에 앉아있었는데 왼쪽 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민국은 고운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운란아, 얼른 장 지관님 곁에 앉아.” 고운란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할 수 없이 장 지관의 왼쪽 빈자리에 앉았다. 장 지관은 빙그레 웃으며 고운란을 바라보았다. “고운란 씨 오셨군요. 방금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고운란 씨가 여장부의 기질을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장 지관님, 과찬이십니다. 제가 무슨 여장부씩이나 되겠습니까? 다 큰아버지께서 절 너무 과대 평가한 것일 뿐입니다.” 고운란이 겸손하게 말했다. 이때 고민국은 술잔을 들고 장 지관에게 술을 권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고 씨 가문을 대표하여 저희를 도와주러 먼 길 와주신 장 지관님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고민국은 술잔을 바로 비워냈다. 하지만 장 지관은 다만 술잔에 입만 살짝 댈 뿐이었다. 장 지관은 자신이 마시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고민국의 체면은 충분히 세워주었다고 생각했다. 고민국도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고운란을 바라보고
이강현은 남아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공사장 중심구역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곳에 잠복해 있던 명덕은 이강현이 공사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핸드폰을 꺼내 중심구역에 매복해 있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명덕은 이강현을 상대하기 위해 6명의 고수들을 매복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입구 밖에 남아있다가 귀신인 척하며 나타나 남아있던 사람들을 겁을 주려고 했다. 이강현은 느릿느릿 공사장의 중심구역에 도착했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다 나와라. 너희들의 수작은 나에게 하나도 안 먹힌다. 장 지관이 너희들을 보낸 것이냐? 정말 너무 유치하군.” 이강현은 말하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매복해 있던 고수들은 이강현의 말을 듣고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어떻게 들킨 거지? 저 자는 무슨 수를 쓴 거야?’ 여섯 사람들은 눈을 마주쳤지만 경거망동하지 않고 이강현이 다른 움직임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강현은 여섯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하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발끝으로 발밑의 돌멩이를 걷어찼다. 그리고 돌멩이는 씽씽 날아올라 풀숲으로 들어가 한 고수의 머리에 부딪혔다. 퍽- 돌은 총알처럼 날아와 그 고수의 두개골을 뚫고 그대로 뇌에 박혔다. 돌을 맞은 고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를 뿐이었다. 몸은 두어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바로 숨이 멎어버렸다.다른 다섯 명의 고수는 동료가 잔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오직 돌멩이로만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니, 이는 남아있던 다섯 명 고수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당신! 감히 사람을 이렇게 죽이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 한 고수가 참지 못하고 튀어나와 이강현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 그러자 다른 네 명의 고수들도 몸을 일으켜 이강현을 에워쌌다. 이강현은 주위의 고수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너무하다고 말할 자격이나 있어? 만약 내가 손을 대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먼저 나를 죽여버렸을 거 아니야?
다섯 명의 고수들 중에는 이강현의 상대가 하나도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구의 시체가 되어 땅에 누워 있었다.게다가 방금 이강현이 찬 돌에 맞아 죽은 사람까지 합치면 명덕이 배치한 6명은 전부 죽어버렸다. 명덕은 이미 슬그머니 공사장으로 들어가 작업장 밖에서 농간을 부리며 인부들에게 겁을 주고 있었다. 놀란 인부들은 벌벌 떨며 한데 웅크리고 있었다. 대충 겁을 줄 만큼 줬다고 생각한 명덕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고, 이강현이 공사장에 들어간 지 15분이 지났다. 명덕은 배치한 고수들이 이미 이강현을 죽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공사장 중심구역으로 달려가 이강현이 죽은 현장을 꾸미려고 했다.그러나 명덕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의 눈앞에는 여섯 구의 시체만 보였고 명덕은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명덕은 거친 말을 퍼부으며 놀라 힘 빠진 두 다리로 얼른 도망치려 했다. 그리고 이때 마침 이강현이 뒤에서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명덕은 등골이 서늘해져 얼른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뒤로 한 걸음 물러나는 찰나 명덕은 시체에 걸려 순식간에 시체 더미 속에 넘어지고 말았다. 명덕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온통 창백한 시체인 주위를 보고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악!” 이강현은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가 명덕의 가슴을 밟았다. “이것들은 네가 안배한 사람들이냐?” “저, 네, 아니, 제가 아닙니다. 전 정말 아닙니다. 전부 장 지관님께서 시킨 일입니다. 전 단지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뿐입니다.” 명덕은 당황해하며 말했는데 낮에 그 득의양양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명덕은 지금에야 낮에 자신이 오만했던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은 후회로 가득 찼고 왜 이강현 같은 고수를 알아보지 못했는지 정말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장 지관? 그 늙은 사기꾼이 또 뭘 꾸미고 있느냐?”“그, 그는 당신의 아내를 손에 넣으려고 약물을 준비하게 했습니다. 당신 아내를 속여 자
이강현이 돌아간 후, 남아있던 인부들은 당황하여 전화를 걸어 방금 전 있었던 기이한 사건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전화는 층층이 전달되었고 결국 왕 사장은 고민국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했다. 고민국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 장 지관은 고민국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은근히 기뻐했다. 그리고 명덕 쪽에서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민국 씨, 무슨 일입니까? 전화를 받더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요.” 장 지관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고민국은 순간 얼굴에 바로 웃음을 짓더니 술잔을 들고 말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장 지관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방금 공사장 쪽에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네? 무슨 일입니까? 말해보세요.” 장 지관이 연신 물었다. “방금 공사장에 남아 있던 인부들이 그곳에서 귀신을 봤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들은 작업장 쪽에 숨어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밖에서 귀신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네요. 귀신이 목숨을 앗아갈 것 같다고 하는데 듣기만 해도 아주 끔찍합니다.” 고운란은 고민국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철렁하여 이강현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강현이 방금 공사장에 갔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죠? 저, 저도 공사장에 가봐야겠습니다.” 고운란이 당황하여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 장 지관은 실눈을 뜨고 고운란을 가로막고 말했다.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제자들을 보낼 테니 고운란 씨는 그 위험한 곳에 가지 마세요. 한 밤중에는 음살의 기운은 더욱 무거워지니 한 여인이 어찌 그런 곳에 가겠습니까?” “운란아, 장 지관님의 말씀 듣거라. 이강현 쪽은 걱정하지 말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니 괜찮을 것이다.” 고건강이 따라서 말리기 시작했다. 고운란은 잠시 망설이다가 기도하는 눈빛으로 장 지관을 바라보았다. “얼른 제자를 보내주십시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당황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장 지관은 오른손을 내밀고 엄
전화기 너머의 소리에 연회장 안은 모두 멍해졌다. ‘이강현 한 명만 죽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여섯 명이 죽은 거지?’ “너희들 똑똑히 봐, 어떻게 여섯 명이야!” 고민국이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똑똑히 봤습니다. 확실히 여섯 명이예요. 모두 눈을 뜬 채 죽었습니다. 저희는 이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너무 끔찍합니다!” 남아있던 인부들은 말을 마치자 전화를 끊고 잇달아 도망쳤다. 고민국은 얼굴을 돌려 장 지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 지관님, 이건 무슨 상황입니까? 여섯 명이나 죽다니요!”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섯 명이 죽은 일만으로도 고민국은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 이 일은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 분명했고 경찰이 개입한다면 공사장의 봉쇄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이 봉쇄를 해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봉쇄가 풀렸다고 해도 장 지관이 전에 한 말도 있으니 공사장의 시공을 맡을 사람이 아예 없을 수도 있었다. 고민국은 거의 울고 싶었는데 본래 이강현만 죽이려 했던 일이 왜 이렇게 큰 일로 번졌는지 알 수 없었다. 장 지관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여섯 명이나 죽다니, 자신이 보낸 일손들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궁리하고 있었다! 고운란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스쳐 지났고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이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전화가 연결되자 이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나 보고 싶었어?” “너 괜찮아? 지금 어디야?” “곧 연회장 도착할 거야. 이미 입구에 있어.” 고운란은 고개를 들어 연회장을 바라보았는데 마침 이강현이 명덕을 끌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강현이 무사한 것을 보자 고운란은 그제야 완전히 안심했다. 장 지관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보기 흉해졌고, 도대체 왜 시체가 여섯 구인지에 대해 울부짖고 싶을 정도였다. 고민국은 안색이 어두운 장 지관을 보고 자기도 모르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장 지관도 이강현을 제압하진
“고 씨, 이번엔 당신의 판단이 틀렸어. 사기꾼을 찾아 골칫거리를 만들었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한껏 늘여놓았는데 고민국은 너무 수치스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자신이 사기꾼을 찾아 풍수지리를 보러 오게 했다는 사실이 소문난다면 틀림없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치심에 화가 난 고민국은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그는 이강현이 사기극을 폭로하여 손실을 만회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감격하지 않고 오히려 이강현이 자신의 체면을 구겼다고 느꼈다. 장 지관은 손을 뻗어 이강현을 가리키더니 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날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 배후에 날 지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우리는 인연이 된다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두고 봐!” 이미 사기꾼임이 들통난 이상 장 지관도 계속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36계 줄행랑이 상책이었다. 한 무리의 제자들이 옆 테이블에서 일어나 장 지관을 우르르 에워싸고 떠나려 했다. 이강현은 명덕을 때려 기절시킨 후 장 지관의 앞길을 막았다. “사기를 쳐놓고 가려고 하다니, 쉽게는 못 보내죠.” 이강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기랄, 대체 뭘 도 하려는 건데? 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우리 장 씨 집안의 저력은 감히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장 지관이 숨을 크게 몰아쉬며 노발대발했다. “허허, 저력? 당신이 그런 걸 논한 자격이나 있어?” 이강현은 고개를 저으며 경멸의 눈빛으로 가득 찼다. 장 지관은 이를 꽉 깨물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 “당신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는데 뭔가 보상을 해야 하지 않겠어? 내가 그들을 대신해 먼저 약간의 이자부터 받도록 하지!” 이강현은 두 손을 휘두르며 장 지관의 얼굴을 호되게 후려쳤다. 탁- 장 지관은 이강현에게 뺨을 맞고 넘어졌는데 입에서는 피가 섞인 침이 뿜어져 나왔고 치아도 두 개 뽑혀버렸다.한 무리의 제자들은 장 지관이 매를 맞자 잇달아 호통을 치며 이강현을
“무슨 일이야 있겠어? 저 사기꾼이 하는 말 듣지 마, 업보를 받아도 저 늙은 사기꾼이 받겠지.” 이강현이 웃으며 말했다. 고운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강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느꼈다. 장 지관이 저지른 일들을 봤을 때 업보가 있다면 그들에게 떨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고민국은 이미 밥을 먹을 마음이 없어졌다. 연회의 주인공도 끌려갔고 자신도 웃음거리가 된 마당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지요. 정말 여러분들을 볼 낯이 없네요.” 고민국은 안색이 어두워져 말했다. 손님들은 모두 비웃으며 고민국을 위로했다. 그리고 확실히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고민국을 보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강현과 고운란도 손을 잡고 떠났다. 고민국은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땅에 침을 뱉었다. “퉤!” 고민국의 눈에는 악랄한 빛이 번쩍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 “형님, 저희도 좀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공사장 쪽 일은 모두 운란에게 맡겨 처리하죠.” 고건강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비록 장 지관이 잡혀갔다고 하더라도 공사장의 땅에서 여섯 명이나 죽었고 그곳이 음산한 땅이라는 소문은 분명 점점 더 거세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리고 계속 공장 건설을 추진한다면 틀림없이 골치 아픈 일들이 무수히 생길 것이었다. 게다가 공사장에서 여섯 명이나 죽었으니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고민국은 얼른 이 일에서 손을 떼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고민국은 실눈을 뜨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핸드폰을 들고 고운란에게 전화를 걸었고 모든 일을 그녀에게 떠넘겼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고운란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야?” 이강현이 궁금해서 물었다. “큰아버지께서 새 공장 건설에 관한 일을 전부 나한테 떠넘기셨어. 지금 이렇게 큰일이 생겼으니 아마 착공은 기약 없이 멀어질 텐데, 일이 오래 지체되면 큰아버지는 또 뭐라 이상한 말들을 잔뜩 늘여놓겠지.” 이강현은 웃
황후는 자신의 목숨을 매우 아꼈기에 혹시 모를 암살을 대비하기 위해 거금을 들여 자신만의 이동 수단을 만들었다. 용후는 차 안에 앉아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비록 황후는 나이가 적지 않았지만 과학기술과 여러가지 관리로 그녀의 얼굴은 30대 밖에 안되어 보였다. 뽀얀 피부는 반짝반짝 광택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맞춤형 드레스는 황후의 아름다운 몸매를 더 돋보이게 했는데 마치 세월은 그녀만 비껴간 듯했으며 성숙한 분위기는 사람을 홀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권무영은 고개를 숙은 채 넓은 차 안에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마음속에는 이강현에 대한 분노가 넘쳤다. “너, 왜 이강현을 죽이려고 한 것이냐!” 황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 단지 당신의 앞길을 위해 걸리적거리는 이강현을 치워버리고 싶었던 겁니다.” 권무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내 앞길을 위하는데? 네 주제를 알아!” 권무영은 고개를 점점 더 낮게 숙였는데 거의 머리가 가슴에 파묻힐 지경이었다. ‘침대 위에 있을 때는 자기라고 부르더니 지금은 권무영이라고 불러? 정말 지긋지긋하네!’ 권무영의 마음속에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고 왕후에 대한 경외심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내가 이강현을 못 죽여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내가 입만 놀리면 당장 이강현을 죽이러 갈 사람은 널렸어!” “그럼 왜 사람을 보내지 않는데요? 그 녀석은 결국 우리 눈엣가시입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가 용문을 물려받아야 한다고요!” 권영무는 고개를 번쩍 들어 황후를 쳐다보았다. “그건 내 아이지, 네 아이가 아니야. 알겠어?” 황후의 눈에 살기가 드러났다. 권무영은 마치 죽음의 기운을 느낀 듯 벌벌 떨었다. “알, 알겠습니다.” “이강현의 손에 아주 중요한 물건이 있다고 해. 진짜인 지 확실치 않으니 이강현을 만나 확인해 봐야겠어. 만약 이강현이 그 물건을 파괴한다면 용문도 끝장이야!” 권무영은 이 말을 듣고 무슨 물건이기에 용문을 끝장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
“무슨 소리야! 이강현 그 자식 내 손자 발 뒤꿈치에도 못 가! 딴 소리 말고 그냥 할 건지 말 건지나 말해.”어르신은 말을 마친 후 분노에 찬 눈으로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고운란이 이강현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저 역시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강현이 한 말이 바로 제 뜻이예요.”“너 정말! 나 너 같은 손녀 없어, 너희들 우리 고씨 집안 자식 아니야!”어르신이 소리를 지른 뒤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화가 나서 고건민에게 더 심한 말을 하려고 할 때 고건강은 어르신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화내면 몸이 상해요, 진정하세요.”고건강은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만약 고씨 집안이 무너지면 고운란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아 잘 보이려고 하였다.어르신은 고건강을 노려보며 고건강까지 욕하려고 하였다.“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형님한테 끌려가면 안 돼요. 큰 형이 둘째 형한테 원한이 많은 거 아시잖아요. 우리 사이가 틀어지면 그게 큰 형이 바라는 거예요.”“근데 지금 둘째 형 쪽이 대세인데 앞으로 그쪽한테 기대할 지도 모르니까 사이가 틀어지면 우리도 득 볼 게 없어요. 일단 넘어가세요.”이득 외에 고건강 눈에는 도덕 같은 게 보이지 않았다. 충분한 이득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 팔아먹을 수 있었다.그래서 지금 고건강은 자기 먹거리를 챙기기 위해 고민국 생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르신도 늙은 여우라 고건강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방금 화가 난 김에 하마터면 일을 그를 칠 번 했다. 지금 고운란의 위세든, 이강현이 말한 진성택과의 관계든 두 사람의 세력이 강해짐을 보여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나서 어르신은 마음을 진정시켰다. 고건강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셋째야, 네 말이 맞아, 방금 내가 큰 실수를 할 뻔했어.”“잘 생각했어요. 이럴 때 강력하게 나가면 두 쪽 다 다치게 돼요.”어르신 표정이 느긋해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현의 손에서 득을 못 보게 될 것을 알아차리고 어르신은 즉시 전략을 바꿔 고운란을 찾기로 하였다.뭐라해도 자기 친 손녀인데 할아버지가 부탁하면 아무리 싫어도 자기 말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이강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르신이 좀 지나치시다고 생각했다. 할말 못할 말 다 했는데 늙은 티를 내면서 덕 좀 보려고 하니 어이없었다.“할아버지, 상황은 다 얘기했고, 계속 고집부리시겠다면 운란에게 전화하세요.”“보자 보자하니, 네가 누구인 줄 알아! 너는 그냥 이 집안의 데릴사위일 뿐이야!”고민국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허허.”이강현은 가볍게 웃으며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갔다.“너 무슨 태도야! 거기 서!”고민국은 앞으로 나가 이강현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강현을 혼내려고 하였다.고건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형님, 말로 하시죠, 화내지 마시구요.”“흥! 쟤 말 잘하는 거 좀 봐? 너무 건방지잖아!”어르신이 핸드폰을 들고 말했다.“입 다 다물어, 운란이한테 전화할 거야!”고민국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강현을 잡은 손은 놓지 않았다.이강현은 차가운 눈으로 구민국을 바라보았다. 고민국은 뒷머리가 섬뜩한 것을 느끼며 이강현의 눈빛에 완전히 겁을 먹고 손을 놓아버렸다.“너 여기 가만히 있어, 내 명령없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고민국은 겁을 누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어르신 전화가 연결되었고, 전화 저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 할아버지.”“빨리 돌아와, 할 말이 있어.”고운란이 어리둥절했다. 지금은 손님을 접대해야 해서 움직일 수 없었다.“할아버지, 아빠랑 이강현이 돌아가지 않았나요? 무슨 일 있으세요?”“이강현 그 새끼 얘기 꺼내지도 마! 그 자식 정말 사람 미치게 하는 재주 있어. 너 지금 원일그룹 사장 아니야? 집안 사업 망하게 생겼어, 원일그룹이 사라고 해.”고운란이 듣던 중 자기 할아버지 상업도덕에 어긋하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할아버지, 지금 손님을 접대해
어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강현을 보고 있는데 마치 금덩어리를 발견한 눈빛이었다.“이리 와서 내 옆에 앉아.”어르신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고민국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황급히 몸을 숙이고 어르신 귀에 대고 말했다.“아버지, 이 쓰레기랑…….”“흥!”건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르신은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고민국을 노려보았다.“쓰레기는 네가 아니야?! 회사를 너한테 맡기고 나서 지금 무슨 꼴이야!”“아버지,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아무 쓸모 짝도 없어, 이강현을 봐봐, 이게 진정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야!”어르신은 말하면서 고민국에게 눈짓을 했다.이강현 때문에 들어온 오더이니 다시 가져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때 좋은 말 몇 마디로 이강현을 안정시키면 잃어버린 오더를 모두 찾아올 수 있고, 고씨 집안 사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아, 네네, 이강현 너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아, 내가 의자 가져다 줄게.”고민국은 의자를 들고 어르신의 옆에 놓았다. 의도적인 호의였다. 이강현은 의자에 앉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큰 아버지가 들어온 의자 제가 감히 어떻게 앉겠어요. 할아버지의 뜻도 이해합니다. 근데 고씨 집안 제품을 사면 진성택도 돈을 내면서 받는 거니까 저도 진성택이 계속 손해보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어르신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이강현이 한 마디로 그가 곧 꺼낼 말을 막아버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색하게 웃고 나서 어르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진성택이 어떻게 손해를 봐, 그 사람 돈 많잫아.”“돈은 많는데 손해보면서 우리를 돕는 건 사실이잖아요. 전에 저를 도와준 건 갚을 게 있어서 그랬고, 지금 약속한 시간이 되었으니 거두어들여도 당연한 거죠.”이강현은 그들을 돕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금 이 상황에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궂게 굴어 이강현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울 생각을 단념하게 했다.만약 처음부터 잘못을 인정했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다. 고씨
“진성택과 제 관계는 말할 필요 없고, 말 해도 믿지 않을 테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아시면 돼요.”이강현은 뒷짐을 지고 고개를 들어 상위권의 기세를 보여주었다.이강현의 도도한 모습에 고민국과 고건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성택이 왜 네 말을 들어, 네가 뭐라고!”고건강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이강현은 고건강을 상대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어르신만 바라보았다.어르신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고민국에게 말했다.“전화해서 진성택 지시 맞는지 확인해봐.”“아버지! 그걸 왜 물어봐요. 순전히 허튼소리예요! 믿을 필요 없어요!”“하라면 하지, 쓸데없는 말이 왜 그렇게 많아.”어르신의 표정이 더욱 언짢아졌다.고민국은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어 마지못해 휴대전화를 꺼내 바이어들의 전화를 뒤지기 시작했다.고건민은 그 틈을 타 이강현을 끌어당기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솔직히 말해 봐, 진성택이랑 무슨 관계야?”“제가 진성택 손자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운란이 힘들어 하니까 그냥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고건민은 눈알을 굴리더니 이강현을 깊이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고건민의 속으로 이강현의 해명을 믿지는 않았지만 진성택이 이강현의 지시를 따른 다른 말은 믿었다.예전에 왕씨 어르신 생신 때 진성택이 이강현을 데리러 차를 몰고온 장면이 떠올리고 고건민은 이강현과 진성택 사이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더욱 깊이 믿었다.그러나 지금 고건민은 깊이 따질 마음은 없고, 오히려 고민국과 고건강이 망신을 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였다.몇 년 동안 고건민은 고민국과 고건강으로부터 온갖 탄압을 받았으며 많은 고통을 겪었으니, 지금 그들이 좌절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없이 기쁜 일이다.고민국이 건넨 전화는 이미 상대방에게 연결되었고, 연결된 후 상대방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열정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형님, 저 민국이예요.”“어 그래, 나 지금 회의 들어가봐야
“운란이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도우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도움을 수 있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가족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이강현이 말을 마치자 그들 모두 가슴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체면이 깎인 어르신은 고민국을 매섭게 노려보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를 원망했다.고민국은 이를 악물고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네가 뭘 안다고 나서? 그래,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래도 운란이 우리 회사 제품 독점판매해서 도와줄 수 있잖아!”“그건 돕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거죠, 그럼 한 달도 못 버티고 쫓겨날 건데 그걸 바라세요?”이강현이 되물었다.할 말을 잃은 고민국은 이강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뭘 그렇게 말해, 우리 제품 사다가 중간에서 가격을 올려 팔면 되잖아, 실적도 올리고!”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민국의 말에 동의하였다.“민국이 말이 맞아, 회사 제품을 사가서 다시 팔면 문제없어.”“허허.”이강현은 약간 경멸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왜 오더가 빠지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기술, 생산라인, 원가 아무 것도 경쟁력이 없는 제품 누가 사겠어요?”“전에 장사가 잘 됐다는 얘기하지 마시구요, 그건 제가 받아온 오더예요! 운란이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진성택에게 사람을 시켜 오더 내리라고 부탁했어요!”이강현의 말이 나오자 방 안의 사람들 모두 놀라하며 눈을 크게 떴다.사실 그들도 회사 제품이 가격이 높지만 그에 비해 품질이 뒤떨어 시장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운란이 오더를 받아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자신의 미모로 고객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강현이 한 말은 그들의 생각을 뒤엎었다.이강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너, 너 여기서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진성택을 찾아? 진성택이 무슨 사람인데 네가 부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 거 같아?!”고민국은 이강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어르신의 엄격한 말투에 고건민의 마음은 두려웠다.“그래요 아버지, 운란이 사장이라도 아버지 손녀딸이에요.”“흥!”어르신이 콧방귀를 뀌며 눈을 지긋이 감고 말했다.“사장이라고 집 장사도 잊은 게야?! 있는 지분을 다 팔았다고 연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해?!”“그게…… 일도 그만뒀는데 그럴 명분이 안 되죠.”고건민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둘째 너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운란이 나가고 나서 오더 크게 줄었다고 들었어, 네 딸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별말 없이 지분 팔 때 알아봤다니까, 갈 곳을 찾아두고 가족 사업 망치려고 작성한 거 맞죠.”고건강이 따라 말했다.그들의 비난에 고건민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이미 마음속 선입견을 두어 고건민이 뭐라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게다가 고건민도 지금 말하고 있는 이유 모두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왜 말이 없어? 인정 못하겠어? 너희들 정말 이렇게까지 비열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족 사업 망치고 나서 우리한테 미안하지도 않아?!”고민국이 노호했다.얼굴이 하얗게 변한 고건민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아니요, 집안에 해가 되는 일 정말 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 믿어주세요.”“다른 말은 필요 없고, 원일그룹도 의약업을 하고 있지, 운란이 집안 사업에 도움을 보태라고 말해, 오더도 주고, 지금 그만한 능력이 있는 거 아니야?”어르신이 이제서야 용건을 말했다. 고건민은 쓴웃음을 지으며 목이 쉬어 말했다.“운란이 사장이지만 아직 막 부임해서 너무 티 내서 하면 안 돼요, 그보다 지금 회사일 운란이 한 마디로 움직이는 거 아니잖아요.”“그래서 안 하겠다는 거야? 눈뜨고 집안 사업이 망하는 거 보고싶어? 너 그러고도 내 자식이야?!”어르신은 눈을 부릅뜨고 고건민을 노려보며 죽여버릴 것만 같았다.고건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려 이강현을 바라보며 이강현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다.“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건민은 이런 대우에 푹 빠졌다. 마치 제왕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다리를 꼬이고 흔들면서 고건민 머리를 쳐들고 말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누구겠어! 네 형이지!”고민국이 화 내며 소리쳤다.고건민은 귓가에 있는 전화를 내려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고민국 번호이다.오늘 같이 기분 좋은 날에 고민국 전화를 받은 고건민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기분이었다.“아, 제가 지금 바빠서 누구 전화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이예요?”“아버지가 널 찾아, 빨리 돌아와.”고민국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요? 아버지가 왜요? 혹시 몸이…….”“닥쳐! 아직 건강해, 돌아오라고 하면 빨리 돌아와!”고건민의 마음이 비로소 놓였다. ‘몸이 안 좋은 줄 알았잖아.’‘근데 이때 왜 날 불러, 왠지 수상해.’“네, 곧 돌아가겠습니다.”전화를 끊고 고건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강현을 향해 걸어갔다.지금 고운란은 한성 거물들을 모시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이강현을 찾아갔다.“아까 본가에서 연락이 왔어, 나보고 어르신 만나러 가래.”고건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강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할아버지도 뵐 겸 제가 데려다 드릴게요.”“그게…….”잠시 머뭇머뭇하다가 고건민은 이강현이 따라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강현이 따라가면 번거로운 부분도 부담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래, 그럼 지금 출발하자.”“네.”이강현은 고건민과 함께 차를 몰고 어르신의 집으로 향했다.곧 두 사람은 어르신의 집에 도착했다. 들어서자마자 어르신의 싸늘한 눈빛에 고건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건민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방금 밖에서 산 과일과 영양제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어르신 앞으로 걸어갔다.“아버지, 저 왔어요.”“흥! 날 잊은 건 아니고?”어르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제가…….”“뭘 말하고 싶은데?! 네 딸이 사장이 됐다며, 이제 고씨 집안과도 인연을 끊을 거야?!”고건민의 이마에 식은
고민국과 고건강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나서 어르신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지금 위급한 상황에서 어르신이 나서야 했다.두 사람이 상의를 마친 후 급히 어르신 거처로 달려갔다.의자에 누워 라디오를 끌어안고 듣고 있던 어르신은 두 아들이 황급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곧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너희 둘 무슨 일로 왔어? 할말 있으면 그냥 말해.”어르신은 이미 알아차렸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고민국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헤헤,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해결이 어려운 문제이니 아버님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세요.”“내가? 집안일에만 손댈 수 있는 노인한테 경영은 아니지.”어르신이 눈을 감았다.“집안일 맞아요. 둘째가 경영에서 물러났잖아요. 저랑 건강이 2억으로 그 지분을 사들이고 나서 고운란도 회사에서 퇴직한 거 아버지도 알고 있죠.”“맞아, 그건 나도 알고 있어, 2억이면 은혜를 셈이지.”일찍이 고건민 집안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어르신이라 그들이 경영에서 물러난 것도 바라는 바이다.고민국은 조금 난처한 듯 고건강을 쳐다보고는 고건강에게 계속 말하라고 눈길을 주었다.“운란이가 회사 업무 쪽 일을 맡았잖아요, 그래서 걔가 퇴사한 후 원래 바이어들이 주문을 취소해서 회사 매출이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운란이가 원일그룹 사장이 된 거 있죠!”눈을 감고 있던 어르신이 눈을 번쩍 뜨며, 눈에 의아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뭐?! 고운란이 어떻게 원일그룹 사장이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제 겨우 몇 살인데, 어떻게 사장이 될 수 있어?”“정말이예요, 아까 티비에도 나왔다니까요, 한성에 이름을 댈만한 사람들이 다 참석했어요. 고운한 그 년이 분명 무슨 거래를 한 게 분명해요.”“콜록콜록.”고건강 말이 빗나간 것을 보고 고민국은 힘껏 기침을 두 번 했다.“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운란이 보고 원일그룹 오더를 우리한테 넘기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어르신은
“작은 좌절일 뿐이야, 이겨내야 해! 고운란이 없으면 회사가 망해? 예전에도 힘든 적이 있었잖아!”고민국은 책상을 힘껏 치며 소리내어 말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이 난국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건강은 입을 삐죽거리며 이상한 말투로 말했다.“지난번 난국도 고운란이 해결한 거잖아요, 잊었어요?”빵!구건국의 주먹이 책상에 세게 부딪혔다.“무슨 뜻이야?”“솔직히 말해 지금 이 상황 고운란과 관련이 있는 거 분명해요. 그 바이어들은 대부분 고운란이 데려온 겁니다, 형님, 잘 생각해보세요.”고민국이 아무 말없이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사실 고민국도 생각을 못한 바는 아니다. 바이어 주문 취소가 고운란 퇴사와 관련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구운람을 쫓아냈고, 지분까지 헐값에 사들였는데 지금 후회하여 고운란을 모셔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tv 속 화면은 원일그룹 정문 앞으로 옮겨졌고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되었다.센터에는 고운란과 이강현이 서 있었고, 기타 한성 거물들도 모두 테이프 커팅식 대열에 포함되었다.곧바로 원일그룹 테이프 커팅식이 시작됩니다. 그 한가운데에는 원일그룹 고운란 사장이 서 있고…….”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고민국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두 손으로 가슴을 꽉 쥐었다.고건강은 부러운 듯 질투의 눈빛으로 센터에 선 고운란을 바라보며 그 자리가 자기 자리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을 품었다.수천억의 대그룹을 손에 넣는 기분 정말 상상할 수 없었다.“푹!”고건강이 한창 부러워하고 있을 때 고민국이 피를 토했다.피가 멀리 뿜어져 나와 TV의 스크린에 튀어 스크린에 핏기를 보였다.“형, 형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왜 피를 토해요!”고건강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해하였다.고민국은 입가의 피를 닦았다. 피를 토하고 나니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난 괜찮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고운란이 원일그룹을 사장이 될 줄은, 그러면 우리 고씨 가문에게도 얼마간 혜택을 줘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