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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러시아워 시간대라 그런지 한참을 기다려도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한소은은 차 한 대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타던 차는 노형원이 사고 노형원 명의로 된 차였다. 그때는 누구 명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뭐, 어차피 노형원이 잔뜩 쌓아놓은 쓰레기 따위 이젠 관심도 없지만.

시간을 확인하던 한소은이 차라리 지하철을 타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남자의 손이 분명한 두터운 손바닥과 손에 담긴 힘까지, 왠지 호의를 가지고 다가온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한소은은 미간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리고 낯선 적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던 그때.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소은, 지금 나 때리려고 그러는 거야?”

조금 마른 체격, 빳빳하게 다린 정장에 목까지 단추를 채운 셔츠, 그리고 코랄트 블루 빛을 내뿜는 커프스단추...

“차성재?!”

한소은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리 옮겨서 얘기하지?”

차성재가 눈썹을 실룩거렸다. 비록 어깨에 올린 손은 내려놓았지만 말투는 여전히 강압적이었다. 그 모습에 왠지 기분이 불쾌해졌지만 도로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법, 한소은은 차성재의 뒤를 따라 작은 골목으로 향했다.

도망칠 곳도 없이 한쪽이 벽으로 막힌 골목길의 끝까지 들어간 뒤에야 차성재는 천천히 돌아섰다.

“한소은, 오랜만이다?”

차성재는 한소은의 모든 변화를 분석해 내려는 듯 그녀의 온몸 구석구석을 훑어보았다.

“나 만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말도 안 되는 우연에 한소은이 질문했다.

차성재의 정보력으로 그동안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 아는 건 숨 쉬는 것보다 더 쉬울 터, 그럼에도 손길 한 번 내밀지 않았다는 건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매정하게 돌아선 건 한소은이 먼저였으니 이제 와서 아쉬울 것도 없었다.

한소은을 바라보는 차성재는 온갖 감정들이 몰려왔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당연한 거 아니야?”

차성재가 한발 다가섰다.

“지금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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