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은 이미 김서진이 알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자, 자신이 정말 바보 같다고 느껴졌다.굳이 밖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좀 울적했다.김서진은 그녀의 눈빛만 봐도 그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싼 다음 끌어당겼다. “정말 어제 발견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나한테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물어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나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당신도 망설이고 있어서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빨리 나에게 알려줘서 고마워요.”김서진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듯했다.진심 어린 그의 말을 듣자 그녀는 마음속 있었던 울분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단지, 자신이 빠르게 그에게 알려주고, 그와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가장 정확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그럼, 당신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김서진은 그 질문에 고개를 저으며 반문하였다. “당신은 그럼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나에게 이 일을 말하길 망설였다는 것은…혹시 당신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건가요?”“모르겠어요. 그냥 그저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좀 이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요.” 한소은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책임감이 막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한소은은 어릴 적 부모님이 돌아가셨기에, 이런 일에 대해 한 번도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일찍이 그녀는 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해 동경했던 적은 있다. 하지만, 동경과 진짜 자신이 대면하는 것은 현저히 큰 차이가 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 선택에 맡길게. 병원에 같이 가줄 수도 있어요.”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당신도 원하지 않는 거예요?” 한소은은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내심 서운하였다.“아니, 난 사실 갖고 싶어요!” 그는
“아이를 원한다고요?”“네!”한소은 그녀는 이 아이를 지키기로 결정하였다. 아이를 가지게 된 운명을 받아들인 것이다.단지 아이를 좋아하고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물리치기엔 충분했던 것이다.“저는 확실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좋은 엄마가 되는 책임이 막중할까봐 조금 두렵지만, 저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노력할거예요. 이 아이가 저희에게 온 것은 하늘의 뜻일 거예요. 제 이기적인 이유로 이 작은 생명을 빼앗고 싶지 않아요.”그녀의 말은 김서진을 매우 감동시켰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덥석 안았다. “당신은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당신은 이미 정말 좋은 엄마가 되었어요!”——정하진은 뷔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보통 이런 뷔페식당에서는 커플이나 가족들이 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넓은 식당에 혼자 와서 와인을 곁들어 밥을 먹는 사람은 정하진 밖에 없었다.투명한 창가에 앉아 도시의 경치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놀랍기까지 했다.그러나 그 여유로움은 여기까지였다. 하이힐 구두 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고, 이어서 한 청순한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정하진은 고개를 들기도 귀찮은 듯,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쟁반 위의 불고기를 뒤척거렸다.그의 푸대접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뻔뻔하게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앞에 앉아도 되죠?”“아니, 꺼져.”사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는 여자는 수도없이 만났다. 이러한 일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일상적인 일이었으며, 이렇게 거절하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었다.그는 앞에 앉은 여자를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먹었다.“하진 씨, 사람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면,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거예요.” 윤설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뭐라고?” 하진은 마침내 앞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았다.정말인지 이 여자는 낯짝 한번 두껍다. 일반적
“친구는 적이 아니잖아요.” 윤설아는 조용히 정하진을 바라보았다.정하진은 비웃으며 말했다.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미 차고 넘쳐. 너 같은 게 내가 원하는 자격을 맞출 수나 있을까?”“내 자격이 충분한지 아닌지는 당신이 판단하면 되죠.” 윤설아는 휴대폰을 집어들고선 손가락으로 가볍게 몇 번 터치하였다. 이어 정하진이 책상 위에 놓은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하였다.정하진은 조금 당황한 듯 울리는 휴대전화를 바라보았다.그녀를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자신의 핸드폰을 보았다. “이 자료는 바로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앞으로 저와 친구가 되면, 더 큰 선물도 드리죠.” 윤설아가 말했다.윤설아가 보낸 파일 안에는 한소은에 관한 상세한 자료가 들어있었다. “겨우 이걸로 나랑 친구를 하겠다는 건가?” 정하진은 여전히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자료는 나도 쉽게 구할 수 있어.”“맞아요. 하진 씨도 이런 정보는 충분히 쉽게 구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적인 일들까지 알아낼 수는 없을 거예요.” 윤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이 자료는 모두 한소은과 가까웠던 사람이 구해준 자료이기 때문이죠.”“제가 듣기로는 한소은을 조사하기 위해서 해성 시에 왔다고 들었어요. 더욱 적은 노력으로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요?”정하진은 파일 속 정보들을 대충 훑어보았다. 사실 그는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자신이 알아내지 못하였던 사적인 정보들까지 모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료, 도대체 어디서 얻은 거지?”“어디서 얻은 건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제가 한 말들은 모두 거짓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는 거죠. 이미 저는 하진 씨에게 좋은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이 드는데, 저희가 친구가 될 지는 하진 씨에게 달려있겠네요.” 윤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당신 이름이 뭐지?” 마침내 정하진이 질문을 던졌다.“윤…윤설아예요.”“윤설아?” 정하진은 곰곰히 생각하였다.
보통 이런 명문가의 자제들은 단정하고 조용한 스타일이거나, 교만하고 제멋대로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 여자는 표정은 순진하지만, 하는 말은 꽤나 대담한 것이 아닌가.정하진은 그런 윤설아를 보며 웃기 시작하였다. 사실 자신에게 들이대는 여자들은 수도없이 봐왔지만, 지금껏 이런 타입의 여자는 보지 못하였다.“내 기억상에는 당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우리 초면이지? 그런데 초면부터 날 원한다라…너가 원하는 건 내 지위인가? 아니면 내 재산?”“당신이요. 제가 원하는 건 정하진, 당신이예요.”“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네. 근데, 그렇다고 이런 자료로 날 가지려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닌가?”“당연히 이 자료로 당신을 가지기엔 부족하겠죠. 이건 저희의 좋은 시작에 불과해요. 저와 친구를 맺게 된다면, 절대 손해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윈윈하는 관계가 될 거라는 소리예요.” 그녀의 표정을 보아하니, 결코 농담 같지 않았다. “윈윈?”“정 씨 가문은 확실히 전국에서 매우 유명하죠. 그러나 저희 윤 씨 가문도 결코 뒤쳐지는 가문은 아니예요. 저희 가문은 하진 씨가 하고 싶은 일을 충분히 후원해주고 지지해줄 수 있어요. 저희 집안은 당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거예요.” 윤설아가 말했다.이런 그녀의 제안에 정하진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또, 어떤 좋은 점이 있지?”“정 씨 가문은 정치를 하고, 저희 가문은 사업을 하죠. 이것 자체가 서로 윈윈이 되는 관계 아닌가요?” 사실 윤설아가 한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저는 사실 빙빙돌려 얘기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저는 당신의 외모, 학력, 집안을 모두 마음에 들어요. 솔직히 저 정도 되는 여자면, 결코 손해보는 장사는 아닐텐데…한번 고민이라도 해보시죠?”그녀의 직접적인 유혹은 정하진을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사실 그녀가 말한 것도 맞다. 자신의 가문은 정치를 하는 가문이고, 저 여자의 가문은 대대적으로 사업을 하는 집안이니, 가문 대 가문으로 봤을
아이를 낳기로 한 이상 초기 검진은 필수였다. 이참에 화학약품을 접촉하고 환경이 안 좋은 실험실에 장시간 머물렀는데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은 없을지 검사해봐야 했다.병원에 방문하여 초음파, 소변검사를 마치고 나니 오히려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며칠 전까지 불안했었는데 그가 밖에서 기다린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벌써 엄마가 된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했다.“한소은 씨?”의사가 검사결과를 들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임신이 아닙니다.”아이를 가지려면 뭘 조심해야 하는지 아직 묻지도 못했는데 한소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초음파 결과가 나왔어요. 임신 아닙니다.”말을 마친 의사가 검사 결과지를 그녀에게 건넸다.멍한 표정으로 검사지를 받아 살펴보았지만 뭐라고 썼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어쨌든 최종 진단에 임신이 아니라는 글자만 똑똑히 보였다.“임신이… 아니라고요?”옆에 있던 김서진은 그녀에 비해 침착한 편이었다.“그런데 집에서 테스트기로 테스트했을 때는 두 줄이었어요.”“테스트기가 다 정확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이 건 두 줄이 그렇게 선명하지도 않고 좀 흐릿하네요. 내분비 실조나 호르몬 변화 때문에 이렇게 나올 수도 있어요. 초음파가 가장 정확하죠. 임신은 아니고 생리가 늦어지는 건 아마 스트레스가 많거나 최근에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그럴 거예요.”한소은은 그 말을 들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김서진이 의사와 몇 마디 나누었지만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마치 농락당한 기분이었다.며칠이나 고민하고 결정했는데 임신이 아니라니. 헛웃음이 나왔다.차에 오른 뒤에도 한소은은 멍한 표정으로 배를 붙잡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많이 혼란스러워 보였다.“차라리 잘 됐어요.”김서진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물론 그도 실망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맞을 준비까지 했는데 헛수고였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로써 그는 아이를
거리 곳곳에 그들의 광고판이 붙었다.전광판 뿐이 아니라 TV와 SNS에 “빅토리”라는 향수가 도배되었다. 신제품은 아직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많은 관심을 끓었다.대윤 그룹 공식 홈페이지에 안내된 구매예약 링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매진될 정도였다.엄청난 실적에 윤소겸은 물론이고 윤중성까지 입이 귀에 걸렸다. 실적 보고서를 확인한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아버지, 보셨죠?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이 팔렸어요.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니까요!”윤중성의 맞은편에 다리를 꼬고 앉은 윤소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제가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했잖아요!”“그래! 잘했어!”한바탕 칭찬이 끝난 뒤, 윤중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공장 쪽은 물량 충분하지?”“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다 준비했죠. 노동자들은 3조 교대로 근무형태를 바꾸었어요. 돈을 준다는데 누가 안 하겠어요?”윤소겸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참, 아버지. 공장 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노형원 그 자식은 도대체 뭐하는 놈이에요? 공장 측에서는 거의 출근을 안 했다고 하는데…. 왜 그런 게을러빠진 놈을 데리고 있어요? 저 혼자 그 많은 일 처리를 하느라 바빠죽겠다고요!”“그래?”윤중성이 미간을 찌푸렸다.“정 안되면 꺼지라고 해! 모레 임원 회의 열 거야. 그때 너도 참석해서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임원들에게 보고해. 네 입지를 다지는데 도움이 될 거야. 회사 사람들한테 네 실력을 증명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꼭 참석하도록.”임원회의에 참석하라는 말에 윤소겸은 신바람이 났다. 회사에 입사한지도 한참 되었지만 공식적인 회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리 윤중성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자격미달이라고 윤중성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그는 결국 사생아였다.“이틀 사이에 철저히 준비해. 내일 정식 출시니까 긴장 늦추지 말고. 중요한 시기니까 어떤 사고도 없어야 해.”자리에서 일어선 윤중성은 손으로 아들의 어깨를 부드럽게 다독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이렇게
한편, 윤설아는 쇼핑백을 가득 들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마침 외출하고 돌아오는 요영과 마주쳤다. 요영은 무슨 일인지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또 땄나 보네?”윤설아가 생긋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요영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조금? 요즘 운이 좀 좋아. 이대로 가다가는 그 여편네들이 나랑 게임 안 한다고 하겠어. 오늘도 내가 따니까 다들 똥 씹은 표정을 하더라고.”“예전에는 그 사람들도 많이 땄잖아. 설마 그러겠어?”윤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쇼핑백을 내려놓고 신상백 하나를 요영에게 건넸다.“이번에 새로 나온 신상인데 엄마랑 어울릴 것 같아서 하나 샀어.”“내가 외출할 일이 뭐가 있다고. 됐어.”말은 그렇게 해도 어느새 눈은 가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들고 나갈 일이 없으면 진열장에 넣어둬. 보기만 해도 기분 좋잖아.”가방을 내려놓은 윤설아는 뒤돌아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건넸다.“그리고 이거.”“향수네?”향수를 건네 받은 요영은 뚜껑을 열고 향을 맡더니 말했다.“괜찮네! 조금 진하기는 해도 무난한 것 같아.”윤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엄마, 이 향수가 뭔지 알아?”“뭔데?”“이게 빅토리야!”“촌스러운 이름이네. 전혀 고급스럽지 않아.”요영은 이름이 촌스럽다고 비웃으며 다시 손목을 코에 대고 향을 맡았다.“향이 조금 이상하네. 그런데 어디가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어.”말을 마친 그녀는 티슈를 꺼내 손목을 닦았다. 윤설아는 향수를 탁자에 내려놓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보았다.요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향수가 뭐가 특별해?”“엄마, 이 향수 어디 제품인지 궁금하지 않아?”요영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설마 한소은이 새 제품을 내놓았어?”“아니야!”윤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거 우리 대윤 그룹 신제품이야.”요영이 멈칫하며 다시 물었다.“그러니까 그 자식이 만든 향수라고?”“회사에서 최근 진행하는 새 프로젝트 있잖아.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어. 나도 응원하는 셈치
요영이 딸의 손을 잡으며 뭐라고 말하려는데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네 아빠 오셨나 보다.”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윤중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쇼핑백 하나가 들려있었다. 거실에 나와 있는 요영 모녀를 보자 그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걸음을 멈추었다.“설아도 집에 있었구나.”거실에 들어선 그가 소파로 다가가며 말했다.“마침 잘됐다. 네 엄마랑 하나씩 나눠서 가져.”“이게 뭐야?”윤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서 쇼핑백을 건네 받았다.“어? 향수네?”반가워하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던 윤중성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대윤그룹의 첫 향수야. 벌써 초기 물량이 매진됐다고 하더구나! 공장에서 특별히 가져온 거야. 가족부터 챙겨야지.”요영은 남편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대윤 그룹이 첫 향수를 출시해서 기쁜 게 아니라 밖에서 낳아온 사생아 자식이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는 사실에 더 들뜬 것 같았다.기분이 언짢으니 표정이 곱게 지어질 리 없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아빠가 우리 거 챙겨올 줄 알았으면 돈 주고 사지 않는 건데.”윤설아는 아깝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놀란 윤중성이 물었다.“뭐? 너도 샀어?”“당연하지! 우리 대윤 그룹 첫 향수잖아. 게다가 소겸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진행한 프로젝트라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소장용으로 하나 샀어!”말을 마친 윤설아는 탁자에 놓인 향수를 가리켰다.“엄마도 써보고 좋다고 했어. 안 그래, 엄마?”요영도 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윤중성은 곁눈질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사실 그녀가 기분이 언짢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이럴 때는 자신이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본처와 애인이 화목하게 지내는 게 그의 바람이었다.본처인 요영이 가만히 있어 준다면 밖에서 기자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이 없었다.“어쩐지 우리 마님한테서 좋은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