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보았는데 너무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네가 여기 있어?!”그녀는 당황해서 뒤로 휘청거렸다. 그녀의 손이 잡혀 있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충분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뜻밖에도 그녀가 만진 사람은 그녀가 밤낮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녀의 오빠였다.허강민은 어두운 얼굴빛을 띈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허강민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평소처럼 음흉한 목소리가 아닌 꽤 진지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이, 이거 놔!” 허우연은 현장을 잡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신의 오빠에게 들켜서 그런건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한 건지 눈치채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이 잡고 있는 손의 위치를 보았다. 만약 방금 잡지 않았더라면 이 손의 위치는 더 아래로 내려갔을 것이다. 허강민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자신의 여동생이 이런 일을 저지를 줄은 생각도 못했다.김서진이 그녀를 언급했을 때, 그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심지어 믿지 않았다. 만약 그가 직접 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김서진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그녀를 모욕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손을 놓자 허우연은 뒤로 넘어졌다.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도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 답답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 김서진은?” 그녀는 이미 들통났기에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네가 어떻게 감히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 만약 여기에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뭘 하고 싶었던 건지 말해봐. 허우연, 너 미쳤어?” 허강민은 벌떡 일어나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꾸짖었다.그가 꾸짖자 허우연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한 쪽 다리를 꼰 채 고개를
그녀는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안색이 좋지 않은 허강민을 바라보며 방문을 열었다.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방문이 열리자 플래시가 터지며 파파라치들은 사진을 마구 찍어댔다. “허우연, 허우연이다!” 라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방 안에 그녀와 함께 있던 남자는 누구인가, 이 소식은 매우 뜨거웠다!그들은 급히 달려온 것이 헛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허우연은 앞으로 나아갔고 허강민은 여전히 방에 있었다. 그래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허우연은 팔을 들어 눈을 가린 채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다년간의 인터뷰 경험이 있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인터뷰를 하려면 먼저 매니저와 상의 후 해주세요.”“혼자 계셨던 건가요?”“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늦은 시간에 대본 상의하고 있던 건가요?”“우연 씨, 연애하는 거 아닌가요?”조금 예민한 질문들은 그녀 자신이 미리 준비했던 질문이었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오히려 난처한 질문이 되었다.“왜 이렇게 시끄러워?” 허강민은 눈썹을 찡그리며 안에서 나왔다.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파파라치: “...” “???”“허강민 씨?” 일 년 내내 스캔들에 노출되어 있는 부잣집 도련님들, 특히 허강민 같은 바람둥이는 스캔들이 끊이질 않았다.하지만...이 둘은 친남매였다. 이게 무슨 화제의 소식이란 말인가?“안녕하세요!” 그는 손을 들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제 여동생을 촬영하러 오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그래도 너무 힘들지 않게 개인 공간은 침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너무 힘들어해서요.”“왜 강민 씨가 여기 있죠?” 어떤 사람은 체념하지 않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이게 아닌데!그들의 행동을 보고 있던 허우연도 답답했다. 그녀 또한 방 안에 다른 사람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그녀는 힘 없이 이상한 방향
허우연은 무의식적으로 허강민을 바라보았고, 그녀는 지금까지도 김서진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이러한 상황에 그녀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걸어가 문을 두드렸고, 안에 누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지만 그녀의 직감을 믿고 끝까지 알아내고 싶었다. "안에 누구 계세요?”그녀가 물었지만 안에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려도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방금은 그렇게 인기척이 크게 나더니 갑자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객실부에 가서 손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좀 보라고 해."허강민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고, 막 사람을 부르려고 할 때 안에서 방문이 열리며 문 앞에는 윤설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눈을 반쯤 뜨며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누구세요?"“설아?"허우연은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안에 있을 줄은 전혀 몰랐고, 관건은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우연아, 왜……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암……”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하품을 했다.“너 쉬러 가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맞아, 쉬러 갔는데 오빠가 날 데리러 온 거야.”허우연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윤설아를 쳐다보았고, 이어서 그녀의 시선은 방 안으로 향했다.윤설아……김서진……허우연은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너희 오빠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널 집에 데려다준다고?”그녀는 머리를 한 움큼 움켜쥐며 말했다.“그럼 잘 가. 난 다시 좀 잘게!”윤설아는 말을 하며 방문을 닫으려 했다. 그러자 허우연은 문을 붙들며 닫지 못하게 한 뒤 윤설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설아, 방금 네 방에서 소리가 크게 났는데 뭐가 떨어진 거 아니야? 괜찮아?”말을 하며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윤설아가 그녀를 막아섰다.“별거 아니야, 내가 방금 너무 깊이 잠들어서 그만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그 소리를 너
"아직도 서진이를 언급을 해!”허강민은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고, 다급히 말했다.“내가 너한테 주의를 주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 네가 스스로 잘 하라고!” "……" 허우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어깨를 움츠린 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그래, 그녀가 잘되면 그만이지, 하지만 김서진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았는데 왜 그녀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 걸까?게다가 자신은 분명히 그가 마시는 술을 보지 않았는가.——방문을 닫은 윤설아는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몸을 돌려 화장실 문을 열고 샤워 커튼을 열었다.욕조 안에서 한 남자가 상반신을 드러낸 채 이상한 자세로 누워 있었고,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이 의식을 잃은 게 분명했다.그녀는 싸늘하게 흘겨보다가 돌아서서 세면대를 마주 보고 손을 깨끗이 씻으며 거울 안의 자신을 보았다.부드러운 머리칼이 약간 헝클어졌고 뺨 한쪽도 약간 붉어졌으며, 그것은 그녀가 방금 무방비로 이 남자에게 상처를 입은 것이다.손가락으로 뺨의 붉은 부분을 살짝 건드린 뒤, 그녀는 욕조 앞에서 천천히 자세를 낮춘 뒤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향해 뺨을 두 대 세게 내리쳤다. 그 힘은 매우 세서 때린 직후 뺨이 부어오른 것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코로 숨을 내쉬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뺨을 때리고 난 뒤에 만족했는지 그녀는 다시 일어나 화장실을 나왔고, 외투를 입은 뒤 꾸물꾸물 정리했다. 허우연은 허강민이 데리고 갔다. 즉, 김서진도 그녀의 방에 있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모든 것을 준비했다. 원래 이 바람둥이 조승안은 맞은편 1808룸에 가야 했고, 이 방에는 약을 먹은 김서진이 있어야 했다. 지금 허우연은 무사히 그녀의 오빠에게 끌려가고, 그녀는 조승안에게 괴롭힘을 당할 뻔했는데,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행방을 알 수 없는 그 남자뿐이다.아니면, 아침 일찍부터 그에게 들킨 것인가? 그 남자는 그녀의
허우연은 실질적인 처벌은 받지 못했지만 그 어떤 처벌보다 더 혹독한 징벌이었다."엄마……”울기도 하고 소란도 피웠지만 부모님의 태도로 보아 이 일은 의논의 여지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알려주었다."우연아……”한숨을 내쉬며 허 부인은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개를 돌려 아들의 눈치를 살폈고,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강민은 이전의 엄숙하지 못한 태도에서 벗어나 매섭게 말을 했다."이런 상황에서 넌 누구를 불러도 소용없어! 네가 서진이를 건드릴 배짱이 있었을 때, 어떻게 그 결과를 생각을 안 한 거야? 엄마, 엄마도 얘 좀 도와주지 마, 너무 버릇을 잘못 들여놔서 얘를 해친 거라고! 허우연을 해외로 보내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 허 씨 집안의 사업은 더 이상 할 수 없어. 허 씨 집안은 망할 거라고!” 허 부인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서, 설마! 아무리 그래도 우리 두 집안은 대대로 친분이 있고, 서진이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는데 말이야. 우연이는 잠시 생각을 잘못한 것뿐이지 어려서부터 서진이를 좋아했고 서진이도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다시 말해서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잖니. 정말 잘못을 저질러도 우리 우연이가 손해인데 어떻게……”“엄마!”허강민은 매우 골치가 아픈 듯 소리를 질렀고, 바로 이런 엄마가 있어서 여동생을 오늘처럼 이렇게 일을 저지를 때 결과조차 생각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허우연이 다른 사람한테 약을 먹였다고, 이게 얼마나 나쁜 짓인데 어디 소문이라도 나면 어떨거 같아? 만약에 두 집안의 정이 아니라 그 방에 다른 어떤 엉망진창인 남자가 들어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고함을 치자 두 모녀는 일제히 몸서리를 쳤다.특히 허우연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며 달갑지 않은 기분만 들 뿐,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허강민의 고함소리에 머리가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그렇다, 그때 만약 방 안에 허강민이 아니라 다른 어떤 지저분
"누굴 만날 건데?"허강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차는 천천히 마당으로 들어갔고, 아직 집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거실에서 가벼운 대화 소리가 들려오며 즐거운 듯 이따금 가벼운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윤설아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엄마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녀의 옆에는…….허우연?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고는 웃음을 머금고 걸어갔다. "엄마, 나 왔어. 우연이도 왔네!” 그녀의 표정은 매우 다정하고 자연스러워 다른 이상한 점은 볼 수 없었다. 요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우연이가 온 지 꽤 됐어. 나랑 얘기를 계속 나눴는데 정말 좋은 아이구나. 그런데 널 좀 보거라, 하루 종일 뭘 하는지, 엄마랑 얘기할 시간도 없고 말이야.” "요즘 회사에 일이 좀 많아서, 큰아버지 쪽도 바쁜 거 알잖아, 그래서 내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야지!” 손짓을 하며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만 그렇게 바쁘지!”요영이 그녀를 꾸짖으며 일어나 말했다.“그럼 우연이랑 대화 나누고 있어, 나는 마실 것 좀 가지고 오마.” “고마워 엄마!”허리를 굽혀 그녀의 뺨을 살짝 건드리자 윤설아는 그제야 한쪽에 앉았고, 활짝 웃는 얼굴로 허우연을 바라보았다. “오늘 웬일로 시간이 나서 온 거야, 나한테 미리 전화도 않고 말이야.” 허우연은 옆에 있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꺼냈다."내가 미리 전화했으면 네가 환영해 줬을까?”그러자 윤설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대답했다."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연히 환영이지! 난 매일 네가 오기를 간절히 원했는걸!”"그래?"천천히 잔을 내려놓으며 허우연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응? 왜?"윤설아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놀라움이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허우연은 순간 허강민이 한 말이 맞는다고 느꼈고, 자신이 정말 멍청하다고 생각했다.전에는 자신의 친한 친구가 전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설아, 그날 왜 거기 있었어?"허우연이 담담히 물었다. "아, 그날 내가 너무 많이 마셔서 좀 지쳐서 쉬려고 그랬지. 그리고 내친김에 너를 도와서 망을 보려고 한 거였는데……내가 그대로 잠이 들 줄은 나도 몰랐어.”그녀는 말을 하며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미안해! 아 맞다, 그래서 그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허우연은 입을 열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으며, 그 눈은 마치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리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쳐다보는데도 윤설아는 전혀 어색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무고한 듯 눈을 깜박이며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원래 파파라치들에게 10시에 오라고 통보했는데 왜 9시 반에 온 건지도 너한테 묻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난 물을 필요가 없을 것 같네.”잠시 뒤 허우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 왜?"윤설아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그 사람들이 9시 반에 왔다고? 왜 이렇게 빨리 간 거야!” “그러게, 왜 그렇게 빨리 왔을까?”허우연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아마도 다 하늘의 뜻이겠지! 어쩌면 내가 사람을 잘 몰라봤던 것에 대한 벌인지도 모르고.” “우연아, 너 왜 그래?”그녀의 손을 붙들며 윤설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허우연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없이 손을 빼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윤설아, 오늘에서야 네가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되었네, 정말로! 내가 알던 윤설아 보다 훨씬 대단해.” "뭐가 대단해, 네가 아는 윤설아는 그럼 뭔데? 우연아, 오늘 네가 하는 말을 왜 나는 다 못 알아듣겠지?”윤설아는 눈을 크게 떴고, 촉촉한 눈으로 허우연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무고한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순진한 듯 눈을 깜박이며 어리둥절해했고,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허우연이 말을 이어갔다."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이미 내가 원하는 답을 나는 얻었어. 어차피 나도 여길 떠날 거니까 난 너한테 아무런 가치가 없겠지. 너
"아무것도 아니야, 기분이 별로 안 좋나 봐.”어깨를 으쓱하며 윤설아가 웃었다.“엄마, 마실 걸 가져온다고 하지 않았어?” "넌 아직도 이렇게 식탐을 부리니, 살찌는 게 무섭지도 않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짓으로 준비한 디저트를 내오게 했다.“그나저나 저번에 이미 애인이 있다고 했잖아. 도대체 누구길래 널 데려다주는 걸 본 적이 없어?” "헤어졌어.”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고, 요영은 순간 멍해졌다.“헤어졌다고? 왜 헤어진 거야, 분명히 데리고 와서……”“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고 안 맞으면 헤어질 수 있지!” 윤설아는 손사래를 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꼭 최고의 사위를 찾아 줄 테니까!”그녀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며 요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어, 네 아버지는 내일 그 여자랑……”뒷말을 잇지 않았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윤설아는 먹던 일을 멈추더니 어머니를 돌아보며 물었다."정말 그 여자를 데려온다는 거야? 큰아버지가 동의를 했어? 아버지는 집안을 도대체 뭘로 보는 거야!” "이제 네 아버지는 굳게 결심하셨어, 누구의 말로도 그 사람의 결정을 좌우할 수 없어."이 말을 꺼내자 언제나 단호했던 그녀의 얼굴에도 근심이 피어올랐다. “결국은 내가 아들을 못 낳았으니……” "아들을 안 낳은 게 뭐 대수라고!”윤설아가 화를 내며 일어섰다. “큰아버지 집에도 아들은 있지만 그 사람이 가업을 이어받을 수 있겠어? 난 회사에서 몇 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아들보다 못하다고? 그 밖에 있는 사생아보다 내가 못한 게 뭐가 있어? 나는……”"설아?!"가볍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요영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마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요영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윤설아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목청을 가다듬었다.“내 말은, 이건 엄마 탓이 아니라, 아빠 탓이라는 거야. 그 사람이 아빠한테 미안해해야 한다고.” 그녀를 깊이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