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저문 후였고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니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든든했다.방에 들어가면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김서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TV를 껐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 끓고 있는 뜨거운 국물을 한 그릇 담았다. 그녀가 신발 갈아 신고 들어오면 딱 마실 수 있게 해두었다.“춥죠?” 김서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요영 여사의 차에서 내리고 나니 위치가 애매했다. 택시 잡는 것도 나쁘진 않았지만, 집에서 그다지 멀지도 않은 거리였기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걸어왔다.국물을 조금 마시니 감칠맛이 점점 몸 안에 퍼지면서 그녀를 만족시켜주었다.김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이 내려앉아 있고 입을 조금 벌린 채 국물을 마시자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의 목은 가늘고 길었으며 전설 속에서 등장할 법한 새하얀 백조만큼 피부가 새하얗다.까만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어 올리고 평소의 장난기가 사라지자 그녀의 여성스러움이 더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뭘 보고 있는 거예요?” 한소은은 국을 반 정도 마신 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예뻐서요.” 김서진이 말했다.그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진 채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도 그릇을 내려놓고 그의 얼굴을 감싸 쥐며 열정적으로 말했다. “당신도 예뻐요!”손에 여전히 국그릇의 열기가 남아있어 그의 뺨이 따뜻해졌다.김서진은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으며 그녀의 표현을 바로잡았다. “전 남자예요. 남자한테 그런 식으로 표현하면 안되죠.”“누가 안된다고 하던가요! 당신 예뻐요. 가장 예뻐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주물렀다.김서진은 약간 힘을 줘서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고 몸의 방향을 바꾸어 소파 쪽으로 그녀를 밀었다.그녀는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김서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가 반문하듯 물었다.말을 마친 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제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저 의심하는 건가요?” 그는 매우 영리했기에 곧 일련의 일들을 떠올렸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당신이 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의 인맥과 능력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당신이 아니라고 하면 전 믿을 거예요.”그녀의 눈에는 믿음이 가득 차 있었고 김서진도 그녀의 말이 그를 달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아니에요.” 김서진이 말했다.부인할 가치가 없을 만큼 작은 일이었기에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다만 그녀의 이러한 언급은 그를 조금 불편하게 했다.“걱정했나요?” 담담하게 묻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질투심은 숨길 수 없었다.함께한 지 정말 오래되었기에 한소은은 듣기만 해도 그가 질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가 걱정했다면 이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묻지 않았을 거예요. 단지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좀 의외여서 그랬어요.”“그런 사람한테는 어떤 일이 생겨도 상관없어요.” 그녀의 말은 그를 달래고 있었지만 김서진의 질투를 가라앉히기엔 쉽지 않았다. 김서진의 말투에는 비아냥거림이 섞여있었다.잠시 후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내일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도록 할게요.”질투는 하더라도 만약 그녀가 그의 행방을 알고 싶어 한다면 그녀를 도울 의향이 있었다.“아니에요.” 한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실종된 건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고 만약 정말 실종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신고했겠죠. 이런 실종 사건은 경찰에게 맡기는 것이 좋아요. 당신이 나설 필요는 없어요.”“제 능력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는 기쁘면서도 일부러 의심하는 척하면서 그녀를 놀렸다.한소은은 두 팔을 벌려 그의 목을 감쌌다.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단지 그 사람 때문에
윤설아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눈앞에 있는 물건을 보았다.“내가 말 안 했다고 하지마. 이런 물건은 너희 같은 여자들한테 좋지 않아. 너 그거 가지고 뭐 하려고?” 노형원은 몸을 일으켜 그녀를 항해 걸어왔다.“넌 일에만 신경 써, 다른 것엔 신경 쓸 필요 없어.” 세어보니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양은 충분할 것 같았다.노형원은 그녀의 앞에 서서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왜, 나를 도구로 생각하는 거야?”“네가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 윤설아는 물건들을 챙기는 그의 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다른 일은?”“내가 말할 필요 없이 너도 잘 알지 않아?” 노형원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겉으로는 그녀에게 모든 권력을 넘겼지만, 사실 어떻게 완전히 손을 뗄 수 있단 말인가. 그녀에게 보고하는 사람은 물론, 모든 사람이 그녀의 명령에 따랐지만 꼭두각시에 불과했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를 대신해 책임을 져줄 사람일 뿐이다. 이 여자는 그의 이복동생이다.“여기서 이상한 소리 할 필요 없이, 협력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지 떠나도 좋아.”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내가 간다고 했었나? 난 네가 나에게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노형원은 곧바로 핸드폰을 들고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네가 찾고 있는 사람이야. 곧 해성에 도착할 거야. 시간은 아마 다음 주,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확인되면 보내줄게,”“알았어.” 윤설아는 핸드폰의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연락하지마. 일이 있으면 내가 찾아올 거야.”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노형원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가 이 일 하고 있는 거, 엄마는 모르시지?”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가 돌아보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네가 상관할 일 아니잖아.”그녀는 말을 마친 후 떠났다.재미있군!이 여동생과 같이 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말
“우연아 너 정말 할 거야? 너... 그 사람 절대 협박 같은 거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윤설아는 그녀를 떠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협박은 안 통해도 자기 선은 지키는 사람이야.” 허우연은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 사람 곁에 있던 몇 년 동안 그는 줄곧 자제했었고, 어떤 스캔들도 만들지 않았어.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절대로 한 발자국도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해왔지만, 만약 나를 건드린다면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야!”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점을 잘 이용하려 하고 있다.당연히 그녀도 잘 알고 있다. 이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와 그녀의 사이는 새로운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악화할지, 아니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지금 도박을 하려고 한다.“그 사람이 너를 책임질 수도 있지만, 만약에 네가 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려고?” 윤설아는 다시 한번 언급했다. “그 사람이 널 싫어해도 상관없어?”“나도 무서워!” 허우연은 심호흡을 한 뒤 그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녀는 몸을 떨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두렵더라도 해야 돼! 설아야, 그 사람이 날 싫어하는 건 두렵지 않아.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의 눈에 내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나를 잊을 거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그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아.”윤설아는 그녀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쉰 뒤 말했다. “좋아, 네가 이미 결정했다면 난 널 응원해 줄 거야. 네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고마워. 항상 옆에서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고, 조언해 줘서 고마워!” 허우연은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설아야, 넌 정말 가장 좋은 친구야!”그녀는 문득 무엇인가 떠오른 듯 말했다. “맞다, 그리고 파파라치 그쪽, 절대 잊지 마, 10시야. 30분 전에 다시 한번 얘기해 줘.”“걱정하지 마, 기억하고 있어
바쁘게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김서진은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아니면 우리 같이 갈까요?”비록 이번엔 해외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에서 그 사건 이후 그는 그녀가 출장을 갈 때마다 본능적으로 걱정을 했다. “아니면 그냥 가지 말까요?”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정말요?!” 김서진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나며 목소리도 높아졌다.“바보!” 그녀는 웃으며 그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고 짐을 챙겼다. “단지 이틀 가는 것뿐이에요. 금방 돌아올게요.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이번엔 출국이 아니라 제성으로 가는거 예요. 코앞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걱정돼요!” 그는 그녀에 대한 자신의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녀의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며 잠시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한소은은 약간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는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녀에 대한 걱정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녀는 짐 챙기던 것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를 안았다. “바보, 전 스스로 절 지킬 수 있어요!”그는 그녀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비록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납치범들은 보통의 조폭들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환경에서도 버텼고 거의 다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웠다.당연히 그녀도 말하지 않았고, 김서진도 그렇게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는 차 씨 가문 사람이었고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했을 것이다. 그녀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당신이 차 씨 가문에서 어느 정도 배운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사람을 해칠 수 있는 것이 주먹과 발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해요. 어떤 것들은 보이진 않지만, 주먹이나 발에 수천 배에 효과에 달하는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 명심해요.”그는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 뒤 그녀를 바라보며
“왜 뭐냐고 안 물어봐요?” 그녀는 그의 망설이지 않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어떤 것이든 간에 다 동의할게요!”그는 그녀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다 들어준다.이렇게 나오면 그녀가 어찌 요구할 수 있겠는가?이미 그가 이렇게 말했으니 자신도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그럼 제가 환아 전부를 갖고 싶다고 하면요?” 그녀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도발하는 듯한 눈빛이었고, 그 눈빛으로 인해 그들의 모습은 보통의 남녀가 연애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그렇게 해요!”그는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고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말했다. “당신이 힘들어하지 않고 관리할 수 있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절차를 밟을 수 있어요.”“...” 한소은은 그가 이렇게 진지하게 말을 하자, 그에 대응하여 계속해서 말했다. “누가 힘들게 관리를 해요! 제가 물려받으면 바로 팔 거예요. 그럼 정말 많은 돈이 생길 거잖아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곁눈질로 그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돼요! 정말 큰돈이에요. 적어도 우리, 아니 우리 아이까지 평생 걱정할 필요 없을 거예요. 당신이랑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있어요.”한소은: “...”“하지만...” 갑자기 말을 바꾸려 하자 한소은이 재빨리 물었다. “하지만 왜요?”“하지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후회한 거지?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역시 받아들이지 못할 줄 알았어요. 과연 말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죠, 뭐.”“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수지 타산에 맞지 않아요.”그는 침대에 기대어 서있는 자세가 불편했는지 침대에 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안은 손은 풀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환아를 판 돈은 정말 큰돈이고 당신과 제가 살기에 충분하지만, 우리의 손자와 후손들에게는 부족할 수도 있고 편히 살기에도 모자랄 수 있어요. 우리 후손들을 위해 환아를 남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관리하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관리도 제
소성에서 열리는 연례 경제 회의 만찬은 여전히 열기가 뜨거웠다. 각 업계의 뛰어난 인재들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는 올해 협력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친목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 고객을 발굴하고 더 좋은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이 만찬에서 김서진은 여전히 많은 주목을 받고 있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환아와 협력하거나 투자하고 싶어 했기에 모두 그에게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 허우연은 술잔을 쥐고 긴장한 채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를 많은 사람들 속에서 끌어낼 기회를 찾지 못했다.“시간이 늦었어.” 윤설아는 그녀에게 다가와 앞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소리가 크지 않았기에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정도였고, 물론 그녀 둘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알겠어.” 허우연이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어.”“기다리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야. 더 끌었다가는 오히려 떠날 것 같아.” 윤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가볍게 술을 마셨다. 그녀는 여전히 얕은 웃음을 띈 채 주변에 눈인사를 보냈다.허우연은 사실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었다. 오늘 꼭 실행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조금은 두려워하고 있었다.김서진은 그녀가 줄곧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했던 사람이고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그를 마주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그녀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가 얘기했던 거 기억해!”그녀는 이 말을 던지고 김서진 쪽으로 성큼성큼 나아갔다.거의 다 왔을 때 웨이터의 쟁반에서 술 두 잔을 들고는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해치며 사람들에게 둘려져있던 김서진에게 다가갔다. “오빠...”김서진이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오빠, 전에는 내가 철이 없었나 봐. 충동적으로 오빠 화나게 했어, 용서해 줘.” 그녀는 그에게 술 한 잔을 건네며 진심으로 말했다. “대인배로써 예전의 일은 잊어줬으면 좋겠어.”김서진은 그녀를 보고 예의를 갖추며 술잔을 받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며 잔을 비웠고 빈 잔을 들어 보였다. “됐지?”“그, 그래.”그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오히려 그가 술을 마시면서 그녀의 가슴은 더 안심하지 못한 채 빨리 뛰었다.‘마셨어, 정말로 마셨어. 모든 것이 내 계획에 따라 진행되고 있어. 곧 가장 중요한 단계야.’ 그녀는 이번 단 한 번의 기회가 잘못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시간은 9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저녁 만찬의 분위기는 한창 무르익었다. 물론 몸이 피곤한 몇몇 사람들은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허우연은 줄곧 김서진의 동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15분 전에 연회장을 떠나 쉬러갔다.그녀는 이미 방 열쇠를 확보한 상태였다. 1808호. 약 효과가 이미 충분히 돌았을 것이다. 그녀는 윤설아에게 눈짓을 하고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윤설아는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베란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지금 하면 될 것 같아.”전화를 끊은 뒤 노형원은 사전 계획에 따라서 파파라치에게 소식을 전했다. 클라우드 호텔 1808호에 정말 놀랄만한 소식이 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이지만 파파라치들은 이런 소식들에 대해 매우 민감했다. 그들은 냄새를 맡고 움직인다.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일단 움직이고 봐야 한다.사실, 노형원도 어떤 소식인지 정확히 몰랐다. 단지 윤설아의 말에 따라서 행동한 것뿐이다.윤설아에게 협조하는 동안, 그는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깨닫고 있었다.그는 너무 단순했다. 그는 자신이 황새인 줄 알고 있었지만 사마귀에 불과했다. 그는 한소은을 자신이 쥐고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잠시 힘을 비축하고 있는 상태에 불과했다. 그녀는 힘을 모으자마자 날아가 버렸다.그는 근래 들어 시원 웨이브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윤 씨 가문 전체를 장악하면 그는 김서진과 충분히 맞설 수 있었다. 만약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었다. 예전의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