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셨어요?"이런 순간에 그를 마주치니 한소은은 매우 기뻤다.김서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자상하게 뒷자리의 에어컨 바람을 줄여주며 겉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요?”시간상으로는 그녀가 진작 이 길을 나왔어야 했는데, 조금만 더 있었으면 그는 차에서 내려 직접 가서 볼 뻔했다.“별일 아니에요.”그녀는 손가락 사이를 벌리며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 했지만, 손을 들 때 무의식적으로 “앗” 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그녀가 숨을 헐떡이는 소리에 김서진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손을 잡아당겼다.그의 얼굴빛은 차갑고 목소리는 더욱 차가웠다. 그의 얼굴에 있는 모든 선들은 그가 지금 불쾌하다는 걸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소은은 황급히 설명했다."아뇨, 오랫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좀 시큰거리는 것뿐이에요.”그가 믿지 못할까 봐 그에게로 몸을 돌리며 다시 말했다."못 믿겠으면 한 번 보세요, 자, 어딜 다쳤나요?”김서진은 그녀를 응시하다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그녀의 뺨 양쪽을 가볍게 쥐었다.그러고는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상하좌우를 꼼꼼히 체크했고, 그의 시선은 그녀의 목, 쇄골, 팔뚝까지 이어졌다......한소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그녀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지만, 그는 정말 꼼꼼하게 그녀가 다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그녀의 마음속에 있던 섭섭함이 많이 풀렸다. 솔직히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노형원을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녀가 알던 그는 점잖고 매너 있는 남자였지만, 최근 잇달아 일어난 일이 그녀의 인식을 바꿔버렸다. 그는 양다리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매우 계산적이었고, 그의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뒤로는 그녀에게 무력을 쓰기까지 하니......비록 이 남자에 대해 완전히 단념했다고 하지만, 5년 동안의 감정인데 그녀가 이렇게 자유자재로 감정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그에 대한 분노 말고도 슬프고 실망스러운 감정 또한 있기 마련이다. "한 가지
그가 요 며칠 그녀를 위해 한 일은 몇 년 동안 노형원도 불가능했던 일이었다."왜냐하면......당신은 제 아내니까요."수줍어하면서도 피하지 않는 그녀의 반응은 김서진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에게 키스했다.——노형원이 완전히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그는 언젠가 누군가가 목에 칼을 대고 위협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한소은이라니! 그녀의 권법은 어떻게 그렇게 좋을 수 있단 말이지?그녀가 언제 그렇게 연습했는지 왜 자신은 모를까? 그녀는 도대체 그가 모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 걸까?“쨍그랑.”발밑에 조각들이 흩어지며 소리를 냈다. 이 난장판 속에서 강시유는 거실 가운데 소파에 앉아 품에 쿠션을 안고 있다가 그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에게 말했다. "용케도 돌아왔네!”그녀가 던진 쿠션이 그의 등 뒤에 있던 문을 박은 뒤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허리를 굽힌 뒤 조각들을 피해 그녀에게 다가와 옆에 앉았다.예상은 했지만 이런 광경을 실제로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뭐 하는 거냐고?"강시유는 똑바로 앉아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이제 어떡할 거야? 한소은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들을 너도 다 들었잖아, 난 걔가 분명 믿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넌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이제 됐어, 걘 이제 물고 늘어져서 놓지도 않을 거야. 내가 지금 무서워서 sns도 못 들어가고 있는 걸 알기나 해?”"왜 못 들어가?"노형원이 말했다."넌 켕기는 것도 없고 당당한데 말이야.”"됐어. 이런 말은 기자들 앞에서나 하면 그만이지. 지금 너한테 방법을 찾으라는 거지 날 얼렁뚱땅 달래라는 게 아니야!"그녀는 노형원의 팔을 잡아당기며 애교를 부렸고, 그녀가 발표회에서 홀연히 자리를 뜨게 된 것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소은이 그렇게 소란을 피우면 계속 자신에게 불리해지니 차라리 화를 내며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이제 와서 나한테 방
이번에 노형원 입장에서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얼마되지 않아 회사 홈페이지에 변호사내용증명을 게시하여 한소은을 고소할 것이며 그녀의 사과 및 회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큰소리 쳤다.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SNS 카페 등에도 시원웨이브의 성명서가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이번엔 진짜 제대로 한번 붙어볼 기세였다.시원웨이브 쪽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나서는 반면, 신생 쪽에서는 완전 조용하니 전체적인 여론이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지 분명했다.그날 발표회에서 있었던 일이 복잡하게 뒤섞여서 어떤 사람들은 한소은이 억울하다고 믿을 정도였지만 결국 시원웨이브의 입장 표명으로 그들의 입장 또한 바뀌어버렸다.만약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생 쪽에서 왜 나서서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한소은은 왜 유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을까?그리고 시원웨이브에서 이렇게 강하게 따지고 드는데, 한소은은 너무 담담한 반응을 보였고, 그는단지 변호사내용증명의 글을 전달하면서 언제든지 상대해주겠다고만 답장하였다.가볍게 받아주는 듯한 글에 경멸이 배어 있었고, 마치 그녀의 무시하는 눈빛이 보이므로 시원웨이브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그녀의 답장이 곧바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켜 한때 실검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원래 조향사라는 직업이 대중적이지 않고, 향수나 뷰티도 신상품이 런칭하거나 인기 스타가 광고하지 않으면 실검에 오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결국 최근 들어서 이번 '스캔들'과 '개싸움'으로 인해 실검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이번 사건으로 제대로 유명세를 탔다. 많은 네티즌들은 표절은 봤어도 이렇게 당당하게 표절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양쪽 모두 부인하고 또 자기한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단정하여 정말 구분하기 힘들다고 비난했다.네티즌들의 열정에 비해 당사자는 너무 침착했다. 지금 그녀는 신생으로 가는 길이고 도중에 이연의 전화를 받았다."휴가 잘 다녀왔어?"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지었으나 오이연은 완전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저도 밖에서 회사에서 보
하지만 신생은 환아(环亚)의 계열사일 뿐, 모회사에서의 지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고, 아직까지 신생 쪽에서 그녀를 도와주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연은 여전히 찜찜하지만 노형원이 계속 재촉하니까 일단 회사로 들아가서 한소은을 도와 진실을 알아보기로 했다.한소은은 정식 신생에 출근하기 시작했다.그전에 협의가 다 끝났지만 아직 계약 체결은 하지 않은 상태이며 어제 약속 시간을 잡고 오늘 첫 출근이다.김서진의 말로는, 먼저 회사 분위기에 익숙한 후 정식 입사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하였다.한소은의 강력한 요청하에 김서진은 많은 개입을 하지 않고 서한에게 준비하라고 맡겼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이직이 결코 태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업무공간을 지나 곧바로 신생의 사장실로 향했는데, 안에는 이미 세 분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 중 두 명은 그녀가 본 적이 있었다."왕 사장님."그 가운데는 신생 사장 왕석(王硕)이 앉아 있었고, 왼쪽의 남자는 인사팀 팀장, 이 두 사람은 모두 본 적이 있지만, 다른 한쪽의 여자는 낯선 사람이었다.한소은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왕석은 바로 일어나서 테이블을 돌아 그녀를 향해 다가가서 한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가볍게 걸쳤다. "한소은씨, 신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안녕하세요,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팀장님!" 그녀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면서 시선은 그 여자분에게 멈추었다."소개해 드릴게요. 이 분은 저희 프로젝트 팀의 조현아팀장이에요. 그녀는 매우 강한 여성입니다.앞으로 서로 잘 도와주기를 바래요." 왕사장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안녕하세요, 조팀장님." 한소은은 인사를 했지만, 직감적으로 우리 미래의 상사는 상대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과연, 조팀장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을 뿐, 눈은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다, "사장님, 저희 프로젝트팀에는 사람이 부족하지 않는데요.""사람은 부족하지 않지만, 인재가 부족하잖아요! 신생은 결국 아직 초기 발전 단계에 있으니까 회사에 이익을 가져
그냥 면전에 대놓고 이런 의혹을 받으니 왕석은 체면을 구기지 못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조팀장, 말 조심해요.”"제가 한 말들이 아무런 문제없어요. 다 제 진심이에요. 그녀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절대 표절자가 이렇게 그냥 내 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예요!"말한 뒤 조팀장은 돌아서서 사무실을 떠났다."조팀장, 조팀장. 아이고……" 인사팀장은 그녀를 말리지 못해 조금 어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사장님, 조팀장의 성질이 원래 저래요. 좀 직설적으로 말을 하지만, 출발점은 역시 회사를 위한 것이니까 마음에 두지 마세요.""내가 조팀장과 같은 식견이었다면 조팀장이 이 프로젝트팀장 자리에 이렇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을까?왕석은 고개를 흔들며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아.. 소은씨도 마찬가지로 조팀장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저 사람은 앞으로 지내다보면 알게 될 거예요. 성격이 좀 나쁘고 독설이지만 마음은 착해요. 앞으로 둘이 잘될 것 같아요.""……" 잘 지낼 수 있을까? 한소은도 매우 의심스러웠다.하지만 이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저는 조팀장님, 그리고 밖에 사람들이 저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사장님께서 이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해보겠습니다."그녀의 대답에 왕석은 만족스러웠다.그는 또 뭐가 생각나서 물었다. "참, 지난번 신제품 대회에 관한 일은 아직 최종 결과도 확정도 안 나왔어요. 시원웨이브 쪽에서 당신을 단단히 물고 있던데 무슨 대책이라도 있나요?"그는 넌지시 질문을 던진 것 같았지만 말 속에 숨은 뜻은 반드시 이 일을 해결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한소은은 당연히 그의 뜻을 이해하고 바로 대답했다. "사장님, 안심하세요. 이 일은 제가 반드시 최대한 빨리 해결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가장 유력한 증거는 실력으로 이기는 겁니다.”"그럼...잘 해결되길 바래요!" 잠깐 망설이다가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팔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 일에 신생이 개입하지
"대표님, 오이연이 왔어요." 비서가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며 대답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어오라고 해요."오이연은 다소 어색하게 웃으면서 휴대폰을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지, 먼저 한소은에게 사실 확인을 한 다음…"대표님." 그녀는 딱딱하게 부르면서 조용히 옆에 서서 노형원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솔직히 오이연은 노형원이라는 사람에게 별로 호감이 없다.그녀는 한소은을 오랫동안 따라다녔고, 대부분 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오이연은 자신이 부지런하다고 생각했고, 학교 다닐 때는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이었는데, 한소은의 곁에서 지켜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쉼없이 열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여러 번이나 실험실에서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한소은은 항상 데이터를 기록하고 분석 연구 중이라서 정말 감탄스러웠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노력하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오로지 노형원만을 위해 일했는데, 이 쓰레기 같은 남자는 지금 자신을 위해 그렇게 고생한 여자를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다.그녀가 그를 향해 침을 뱉지 않고 참은 것도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이다."이연씨, 휴가를 취소하고 왔어요? 어때요? 재밌게 놀았어요?”노형원의 인사말은 너무 위선적으로 보여서 이연은 그저 웃기만 했다. "제가 휴가를 취소한게 아니라 취소 당한 것이죠. 대표님께서 빨리 들어오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예정대로라면 아직 반나절의 휴가가 남아 있거든요."아무런 감정없는 한마디에 노형원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화기애애하게 말했다. "맞아요, 수고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일이 터져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불러 우리를 도와줘야 했어요. 이 일이 다 끝나면 휴가를 세 배로 돌려줄게요.”"정말요?" 눈썹을 치켜세우자 못 믿겠다는 듯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 세 배요?""그럼요! 걱정마요! 하지만 이연씨가 먼저 나를 도와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잊지 말아요." 그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옆에 있는 강시유는
"한소은은 회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또한 다른 회사와 결탁하여 시원웨이브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제명되었어요." 노형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그녀에게 봉투 하나를 던졌다. "당신은 오랫동안 시원웨이브에서 일해왔고 당신의 실적은 회사에서도 다 알고 있어요. 잘해보세요. 앞날이 창창합니다!"이연이는 불룩한 봉투를 내려보았다.“열어봐요.” 노형원은 턱으로 가리키면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사실 열어볼 필요도 없이 그가 책상 위에 던질 때 봉투가 열려서 안에 있는 핑크색 현금이 보였으며 두께가 두꺼워서 적은 금액은 아니었다."대표님, 저를 매수하려고요?"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돈은 받지 않았다."그게 무슨 말이에요!" 노형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은 회사가 당신에게 주는 인센티브에요. 당신이 잘하기만 하면, 그리고 회사 말을 잘 들으면 분명 이득이 많을거에요.""그렇다면 회사에 고맙죠."그녀는 봉투를 집어 주머니에 넣으면서 돈하고 원수 질 일이 있겠냐고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준다는 인센티브라는데 안 받을 리가 있나요.오이연이 고분고분 돈을 받는 것을 보고 노형원은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가 돈을 받았으니 그들 편에 서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이연씨, 최근 회사에서 진행한 연구 개발과 제품에 대해 지금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앞으로 강시유씨의 조수로 일해요."이제서야 강시유는 천천히 일어나서 오이연 앞으로 다가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살펴보았다. "당신은 한소은과 함께 오랫동안 일하면서 뭐 비법 같은거 배운게 없어요? 밖으로 돌리지 않은 그런거."이연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저는 자질이 부족해서 그저 옆에서 도와주기만 했어요. 모든 레시피와 아이디어는 소은언니가 직접 연구 개발한거에요.""닥쳐요!" 강시유는 짜증내면서 "소은 언니? 내 앞에서 언니 동생하면서 수작을 부리지 마요. 누가 당신에게 월급을 주는지, 당신이 받는 돈은 누구의 돈인지 똑똑히 알아야 해요! 한소은은 회사를 배신하
그러나 그의 협박은 별 소용이 없었고, 오이연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돌아서서 그의 화나서 어쩔바 모르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노대표님, 맘대로 하세요! 하지만 오늘부터 제가 출근할지 안 할지, 언제 할지는 모두 제 기분이에요. 결근, 무단결근, 지각, 조퇴는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방문을 열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그냥 이대로 보내는거에요?!"강시유는 못 믿어워 텅 빈 문앞을 바라보며 고개를 돌려 노형원을 바라보았다."아니면요?!" 노형원은 새파랗게 질려 화를 냈다. "여기는 회사에요!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오이연이 내 사무실로 들어오는 걸 봤는데 내가 가둬둘 수 있나요?!""그럼 이제 어떡해요?" 아랫입술을 깨물며 강시유는 초조했다.지금 밖에서는 그녀를 의심하는 소리도 많고, 그녀가 어렵게 얻은 이 작은 명성도 이제 모두 망가졌다는 생각을 하니 한소은이 찢어버릴 정도로 원망스러웠다.이 여자가 도대체 뭐 때문에 몇 년 동안 잠잠하다가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걸까?노형원은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너무 힘을 줘서 손가락 마디에 핏줄이 보이면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이제 와서 먼저 손을 쓸 수밖에…한번 해보는거지!” 그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다시 고개를 들자 단단한 마음을 먹은 눈빛이 보였다. "당장 변호사를 불러요. 소송 서류를 작성할 거에요. 그리고 당신은 대학 동창 몇 명한테 연락해봐요.""네?" 순간 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강시유는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의심했다. "아니, 이 결정적인 타이밍에 당신은 무슨 대학 동창에게 연락하라고! 설마 무슨 동창회라도 열려고요?""동창들을 통해 한소은을 설득하려고요? 꿈도 꾸지 말아요. 그럴 리가 없어요! 한소은 걔는 학교 다닐 때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몇 년 동안 연락하지 않은 동창들의 말을 들을 것 같아요?"그녀는 노형원이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노형원은 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