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언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아이의 아버지입니다.”“아이가 알레르기가 심해서 평소 알레르기 반응 일으키는 음식을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의사가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아이는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사실 한소은이 추측한 것과 거의 비슷했다. 그녀는 의사가 아니지만 이전의 알레르기 응급처치 방식을 본 적이 있었다.아이가 병실에서 쉬는 것을 확인한 후 한소은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일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잠시만요.” 임상언이 그녀를 불러 세운 뒤 그녀에게 갔다. “제 아이를 구해주셨는데 아떻게 보답을 해야 할까요?” 한소은: “???”“괜찮아요. 저도 사실 별로 한건 없어요. 감사를 표하려면 의사에게 하셔야죠.”그녀는 의사의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정말 필요 없으신가요?” 그는 의외라는 듯 더 강조하며 말했다. “돈이든 어떤 일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소은아, 임상언은 파리의 한국인 사회에서 여전히 영향력이 있어.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도 돼.” 리사는 작은 목소리로 한소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사실 리사가 말을 안 해줘도 한소은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그는 겉보기에도 분위기가 달랐고 어떻게 보답해야 하냐고 물었을 때도 얼굴에 부자인 것이 드러났다.더군다나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그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한소은은 일부러 그를 난처하게 했다. “선생님께서 굳이 보답을 원하신다면...”“사실 저는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다른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혹시 ‘꽃 피는 시기’라는 향수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꽃 피는 시기요?” 그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얘기하시죠.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고 리사가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맞다 소은아, 방금 말한 향수,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신상품이야?” 윌 선생은 최고의 조향사이자 향수계의 거물이지만, 그의 딸은 이런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이 업계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았다.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재능이 없고 별로 관심이 없다고 했다.한소은은 웃으며 말했다. “신상품이 아니라 이미 단종된 상품이야.”“응?”리사는 매우 놀랐다. “그러면 엄청 찾기 힘든 거 아니야?”“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향수는 100여 년 전에 개발 및 출시된 스페인 최초의 자체 개발 향수였다. 향수뿐만 아니라 향수가 담긴 병도 정교하고 아름다웠다.향수는 단종되었고 스페인의 박물관에 단 두 개의 작은 제품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 매물 자체가 없었다.그녀가 관심 있고 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임상언이 구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요구는 순전히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의 기세를 꺾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서 요구했을 뿐이다. 정말로 ‘꽃 피는 시기’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한소은의 속마음을 듣자 리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점점 나를 더 놀라게 하는 것 같아. 임상언이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파리 전체에서도 영향력 있는 사람인데 어느 누가 감히 그를 놀리려고 하겠어.”“그 사람이 먼저 사례하고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라 했는데, 나는 단지 제시만 했을 뿐이지 꼭 성공하라고 하지도 않았어.”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희롱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렇다. 그녀도 강요하지는 않았다.리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강요하지 않았지만 임상언이라면 약속했으니 반드시 가져올 거야.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걸.”“...”한소은은 주저하며 말했다.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당연하지” 특히 임상언 같은 남자라면 자존심을 매우 중요하게 여길 거야!”“아... 응, 내가 생각이 짧았네. 다음에
과연 호텔로 돌아오니 인경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펜과 종이까지 들고 있는 모습이 회의를 하려고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그녀는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것을 포장해 오지 않았기에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문을 열어 그녀를 들어오게 하였다. “인경 씨, 밥 먹었어요? 먹을 것 좀 시켜줄게요.”음식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면 좀 더 편안히 얘기할 수 있었지만 인경은 거절했다. “아니에요. 전 이미 먹었어요. 내일 품평회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한소은은 물을 따라 몇 모금 마셨다. “네, 얘기하죠, 어떻게 생각하세요?”이 비서는 항상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돌아온 후 계속 한소은을 붙잡고 있었기에 분명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그녀를 찾은 것일 것이다.“회사 측과 상의해 본 결과 내일 품평회는 소은 씨가 참가해야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설득할 준비를 하였다.한소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녀는 깜짝 놀란 듯 한소은을 바라보았다. 인경이 말했다. “당신…동의하신 거예요?”“그럼요. 거절할 이유가 있나요.” 그녀가 말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혹시 준비 다 하셨나요?”“만약 제가 준비가 다 되지 않았다면 회사 대표해서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게다가 제가 업계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점검해 보고 싶어요.” 그녀는 컵을 쥔 채 솔직하게 말했다.회사는 그녀를 보내 명성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시험을 치르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더군다나 결과에는 개의치 않은 듯했다.“하지만 회사를 대표해서 왔으니 상 받으려 노력해야죠!”당연히 1등을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확신할 수도 없었고 스스로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저도 노력할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저도 장담할 수 없어요.”“...” ‘노력한다는 사람이 그렇게 나가서 이제야 들어와?’ 인경은 속으로 그녀를 비난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럼 이렇게
깊은 밤 호텔 방 안에서는 강시유가 전화를 끊자마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눈살을 찌푸린 채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로젠이 한 손에 술병을 쥔 채 문 앞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왜 왔어요?” 강시유는 문을 다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 “이미 늦었어요, 저 쉬고 있는 중이예요.”“뭐 하는 거예요!” 그가 손에 힘을 주자 문이 밀리면서 열렸다.그녀는 그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는 취기가 오른 채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뒤 문을 닫았다.“로젠, 우리가 뭐 하러 왔는지 잊지 마요. 지금 당신 상태 좀 봐요!” 그녀는 애써 거리를 두고 그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우리가 뭐 하러 왔는데요?” 로젠이 피식 웃었다. “당신이 오고 싶어 해서 내가 데리고 왔잖아요. 근데 전 아직 제가 하고 싶은걸 못했어요. 그럼 이자부터 먼저 줘야 하는 거 아니예요?”그는 말하면서 두 팔을 벌리고 그녀에게 향했다.강시유는 옷을 꽉 여민 채 다가오는 그를 피했다. “뭐가 이리 급해요!”“뭐가 이리 급하냐고요? 프랑스로 오면 일이 쉬워진다 그랬는데 지금 그녀한테 윌 선생이 있어서 더 어려워졌잖아요.”원래 계획에선 프랑스로 오면 일이 수월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윌 선생 때문에 번거로워졌었다.“윌 선생?”강시유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윌 선생의 딸과 조금 알고 있을 뿐이지 윌 선생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예요.”“그래도 크게 다른 건 아니잖아요. 윌 선생이 딸을 아낀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사실이예요.”로젠의 상태는 분명 좋지 않았다. 얼굴은 붉고 유난히 흥분한 상태였다. 술 냄새가 나긴 했지만 많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강시유는 그의 눈빛을 보니 그가 또 그것을 먹고 왔음을 깨달았다.정말 사람을 짜증 나게 한다.“로젠, 지금 당신은 휴식이 필요해요. 일단 쉬고 나서 다시 얘기하죠.”원래 그녀도 진지하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지금 그의 상태를 봐서는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계속 말하는 건 헛수고라 생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로젠도 깨어나서 그녀를 돌아봤는데 그의 눈동자도 어젯밤과는 달리 매우 맑은 상태였다.“깼어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가운을 두른 채 침대 옆 소파에 앉았다. “그럼 우리 진지한 얘기 좀 해볼까요?”“무슨 얘기요?” 로젠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몸을 그녀 쪽으로 돌린 뒤 여유 있게 물었다.“오늘 품평회 시작인데 어떻게 할 거예요?” 그녀는 두 다리를 꼰 채 유유한 눈빛으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네?”강시유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말했다. “난 1등을 해야 해요.”1등을 해야만 윌 선생의 시선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국제 조향계에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 그녀에게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가장 중요한 기회이기에 그녀는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로젠의 눈에서 괴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 뿜어져 나왔다.몇 초 동안 그녀를 쳐다본 후 그는 크게 웃었다. “강시유씨, 날이 밝았는데 꿈 깨요! 여기 프랑스예요. 여기가 아직도 소성인 줄 알아요? 손 좀 쓴다고 바로 1등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그는 거리낌 없이 말했다. 강시유는 그가 그렇게 말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화를 내지 않고 비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여기 프랑스죠. 난 여기서 아무것도 아닌 거 알아요. 그럼 당신은? 당신은 뭔데요?”“...”로젠은 표정을 바꾸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게 무슨 뜻이예요?”“아무 뜻도 아니예요.”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인 무슨 거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당신도 나와 똑같구요, 그래요. 나는 한소은의 작품으로 그녀의 이름을 대신했지만 당신은 나보다 더하잖아요. 당신이 말하는 수상, 작품 모두 표절이라는 비난받고 있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 둘 다 같은 부류의 사람 아니예요?”“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얼굴이 파랗게 질린 로젠은 바지를 입고 벨트를 매며 말했다. “
“그래서 당신이 내 뒤를 밟은거예요?” 그는 담뱃불을 붙인 뒤 그 자리에 서서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당신 뒤를 밟긴 했지만 안심해요. 내가 당신한테 뭐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우린 한배를 탔잖아요. 우리의 목적은 같아 그렇지 않나요?”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로젠도 그녀의 말 뜻을 이해했다. 그녀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몰라요, 저도 당신을 1등 만들어 줄 수는 없어요.”“당신은 할 수 있어요. 왜 못해요!” 강시유는 그에게 반쯤 기대며 말했다. “작년에 유럽에서 다른 조향사의 작품이 좋았는데 당신이 1등을 했다면서요.”나중에 뒷말이 나오긴 했지만 어찌 됐든 빼앗기지는 않았잖아요.”로젠은 담배를 든 손을 멈춘 채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니까 난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무슨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다 얘기했잖아요. 여기는 프랑스고 당신 구역이예요. 당신은 분명 당신만의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렇죠?” 로젠이 말했다. “사실 이 일은 간단할 수도 있고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어려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품평회는 이미 주제를 알고 있으니 준비하기 쉽지 않아요?”그녀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실력으로 경쟁하면 1등은커녕 후보에도 모르지 못하지만 만약 그녀가 주제와 답을 미리 알고 있더라면 모든 것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조향사 세계에서 부정행위를 하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후각은 조작할 수 없지만 최종 결과는 조작할 수 있었다.대회인 이상 빈틈이 있을 것이고 부정행위를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그렇지 않으면 로젠 같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게다가 그도 더욱더 오래갈 수 있었을 것이다.로젠은 입을 열지 않고 계속 담배만 피웠다. 그는 담배 한 대를 거의 다 피울 때까지 입을 열지 않다가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난 뭘 얻게 되는데요?”“대회가 끝나고 한소은을 당신에게 보낼게요. 그다음엔
“그게 무슨 말이죠?”로젠이 주저하며 말했다.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당신 스스로 기분 좋게 해주는 물건 있지 않나요? 걔랑도 같이 공유해 봐요. 그녀도 기분 좋게 해준 다음 그거 없으면 살 수 없게 만들어 버려요. 당신 없이 살 수 없게요.”로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역시 당신은 매우 독한 여자군요!”“아니면 당신도 맛 좀 볼래요? 나랑 같이 즐길래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키스하려 했다.강시유는 재빨리 피하며 말했다. “난 당신에게 진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농담이나 하다니 그 귀중한 건 한소은이나 즐기라고 해요.”로젠은 계속 그녀를 압박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녀가 그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었다.“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다시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물었다. ——김서진은 전화가 울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전화기를 귓가에 댔다. “여보세요?”전화기에서는 귀엽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넷째 오빠, 나야! 일어났어? 아침식사 가져왔는데 문 좀 열어줘!”“...” 시간을 보니 이제 7시 밖에 되지 않았다. 어젯밤 서한이 그녀를 데려다준 시각도 꽤 늦었는데 정말 힘이 없었다.“잠시만 기다려.” 그는 일어나 슬리퍼를 신었다. “보안 요원에게 전화해.”“응!” 허우연은 명랑하게 대답했다. 허우연은 매우 기뻐하며 보안 요원에게 전화를 했다. “문 좀 열어줘요! 비밀번호 모르겠으니까 열어줘요!”원래 보안 요원에게 전화를 해 열어주라고 했지만 그는 슬리퍼를 신는 순간 옆에 있는 한소은의 슬리퍼를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지금 그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많은 여성용품이 있었다. 만약 허우연이 이것을 보게 된다면...그녀가 결혼한 사실을 알아도 상관이 없지만 전에 한소은에게 당분간은 결혼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허우연의 성격이라면 아는 순간 상대가 누군지 캐려고 할 것이다.그래서 보안 요원에게 전화를
김서진은 길가에 주차된 그녀의 차를 힐끗 보았다. “나 회사 가야 해. 아니면 너도 같이 갈래?”그는 그녀가 차를 가져왔기에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뻐하며 바로 조수석으로 와서 차 문을 열고 앉았다.김서진: “... 네 차는 어떻게 할 거야?”“뭐 어때, 여기 두면 되지! 밤에 같이 와서 내가 가져갈게.”생각만 해도 매우 즐거워서 그렇게 결정했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밤에 누가 견인해서 가져가면 어떻게 하려고?”김서진은 무기력해 보였다.“견인되면 견인하라고 하지 뭐. 사람 시켜서 다시 가져오면 돼. 넷째 오빠는 뭐 좋아해? 지금 입맛이 어떤지 몰라서 여러 종류 샀는데 뭐 먹고 싶은지 봐봐.”그녀는 말하면서 그에게 봉투를 내밀었다.김서진은 뒤로 물러선 뒤 조수석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병을 보았다. 그건 한소은이 아무거나 배합해서 만든 향수로 차 안의 냄새를 없애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던 것을 생각하고 허우연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내려서 뒤에 타.”그가 말했다.허우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조수석은 안전하지 않아!” 그는 아무렇게나 핑계를 댔다. “게다가 이렇게 먹을 거 많이 들고 내 차에 타면 나 운전하는데 방해돼.”“나...” 허우연은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지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웃어 보였다. “음식이 방해되는 거야 아니면 내가 방해되는거야? 오빠, 내가 방해되는 거 인정해?”김서진: “... 이상한 생각 하지마!”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 머릿속에 든 생각이 다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헤헤헤...” 허우연은 한 대 맞긴 했지만 기뻐했다. 그는 김서진이 자신 때문에 집중을 못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이 대답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녀는 손을 뻗어 문을 열었지만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내가 차에서 내리면 어쩌려고! 나 속이지 마!”“...”김서진은 한숨을 쉬었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