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들리지도 않는 듯 여전히 그녀와 얘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요영 여사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얘기 안 할 거면 나 그냥 갈게.”“아들이 교통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졌는데 어떻게 가만히 계시고만 있을 수 있죠.”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말했다.“그래서 너 보러 온 거 아니니!”“그렇죠, 이제 와주시다니 정말 감사하네요.” 그는 평소에는 어머님께 이렇게 말하지 않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 있는 상태이다.사람이 가장 약할 땐 의지할 사람을 찾기 마련이지만 그에게는 그럴 사람조차 없었다.“형원아! 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말투는 매우 진지했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도와줄 수 있는 한 도와줄 거야. 나도 수소문하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미안하지만 넌 아직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없어!”훈계를 듣고 난 후 노형원이 정신이 좀 맑아졌다.그는 얼굴을 돌려 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귀하고 우아했다. 설령 50살이 넘었다 하더라도 그녀의 얼굴엔 세월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재혼 선택은 옳은 듯했다.“엄마, 죄송해요. 이렇게 말하면 안됐는데.” 그는 예전과 같이 목소리를 낮추었다.“됐어!”요영 여사는 한숨을 쉬었다. “네가 다쳐서 마음이 복잡한 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대략적인 소식만 들었을 뿐이다. 당시 차도 별로 없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사고가 난 거야?노원형은 대답 대신 다시 물었다. “엄마 로젠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에요?”요영 여사는 어리둥절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야?”“아니에요. 그냥 소개해 주신 사람인데 누군지 잘 몰라서.”“전에 우연히 만났는데 나도 그를 한번 도와주고 나도 그에게 신세 한번 졌었다. 그가 조향사들 사이에서 그렇게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마침 너한테 그런 일이 생겨서 내가 도와달라 그랬어. 왜 뭐 무슨 문제 있니?”그가 이렇게 묻자 요영 여사는 바로 두 가지 일에 대해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노형원은 여전히 대
그녀는 집에 없던 적이 많았고 늦게 돌아왔다. 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모두 로젠과 함께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매우 역겨웠다.그의 말에 요영 여사는 어리둥절했다. “시유 말하는 거야?”“그럼 제가 두 번째 약혼녀라도 있었나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요영 여사는 오히려 거침없이 되물었다. “그랬던 적 있잖아?” 노형원: “...”그는 말문이 막혔고 요영 여사도 그를 쏘아붙이지 않았다. “지금 로젠과 강시유가 함께 있다는 말을 하는 거야?”이 단어는 매우 직접적이었다. 노형원은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엄마...”“이미 다 잃었는데 체면 세울게 남아 있는 거야?!” 그녀는 거침없이 말했다. “그럼 내가 물어볼게. 이 일이 내 탓이란 말이야? 내가 로젠을 너한테 소개해 줘서?”“...”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적은 있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녀를 탓할 수는 없었다.어찌 됐든 누구도 이러한 일이 발생할 줄 몰랐다. 게다가 로젠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당시에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아니에요, 엄마 탓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요양 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정신 차리고도 나를 탓한다면 진짜 방법이 없다. 형원아,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네가 아니라 그 여자 탓이다. 난 처음 봤을 때부터 좋게 보지 않았다. 너와 동고동락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로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똑같이 너를 배신할 거다. 빨리 알아채서 다행이고 제때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는 아쉬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됐든 처음부터 그 여자를 좋게 보지 않았다. 다만 아들이 좋아했기에 묵인했을 뿐이다. 이젠 그도 사리분별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제 혈육을 임신했어요...”결국 그는 그녀에게 감정이 있었다. 노형원은 그녀에게 진심을 다했고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정말 헤어져야 한다.“너의 혈육?” 요영 여사는 그를 비웃었다. “무슨 근거로 믿고 있는거야? 그녀의 뱃속에
노형원이 한소은을 안 생각해 본 것은 아니었다, 뉴스 기사가 이렇게 크게 나고 어머니까지 위험을 무릅쓰고 왔는데 한소은이 모를리가 없었으나 오지 않은 것이다. 강시유가 얼마나 잘못했다 한들 그녀는 제일 먼저 와주었다.그 말에 요영은 냉소했다.“잘 들어, 너가 한소은에게 한 일들, 내가 만약 그 여자라면 널 찢어 죽여도 틀리지 않아, 그런데도 널 보러 온다고?!”“……” 노원형은 억울했다, 어떻게 다른 사람 편을 들어 준단 말인가.“엄마! 저야 말로 엄마 아들이예요”“맞지! 너가 내 아들이니까 너한테 이런 말들을 해주는 거지 아니었으면 너가 죽든 말든 뭔 상관이야”말이 험해지고 그의 안색이 안 좋아지는 게 보이자 요영은 한숨 돌리고 말했다. “난 너를 훈계하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니야. 부모로서 항상 자녀를 위해 많이 생각해. 엄마는 오래 살았고 장단점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어, 강시유랑 같이 있으면 너한테 좋을 게 없어.” “그럼 한소은 이랑 하면 또 무슨 좋은 점이 있어요? 걔가 조향을 할 줄 안다 해서 조향사가 돼요? 내가 굳이 조향사와 결혼해서 조향사를 아내로 두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엄마는 걔가 저 무는 모습도 봤는데 안 무서우세요?” 노형원은 수그러들지 않고 반박했다.하지만 속으로는 확실히 한소은과 함께 있을 때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 당시 노형원은 신제품과 폭발적인 주문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한소은은 항상 적시에 새로운 공급원을 받아왔고, 노형원의 회사의 일에 대해 참견한 적도 없었다. 일단 레시피나 원자재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한소은은 아주 쉽게 해결했다. 노형원은 그때도 작은 레시피 하나가 회사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노형원은 강시유와 함께 살지 않았지만 가끔 가면 항상 따뜻한 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시유는 손가락에 양춘수를 묻히지 않았다, 그녀의 말로는 기름 연기가 피부를 상하게 하고 손가락의 민감도를 떨어뜨린다고 했
요영이 냉소했다.“걔는 고아가 아니야”노형원의 의혹의 눈초리를 마주하며 요영은 천천히 말했다.“너 강성의 차 씨 집안에 대해서 들어봤어?”“차 씨 집안이요? 그 화국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옛 무술에 능하고 신비스럽게 행동한다는 전설 속의 차 씨 집안이요?”노형원이 물었다.화국에서 제일 유명한 네 가문인 허, 운, 사, 차 가문 중 하나인 혁혁한 가문인데 어떻게 못 들어 봤겠는가.차 씨 집안은 주로 정치계에서 발전하여 몇 대를 세워왔는데 후에 대대로 나온 사람들은 모두 우수한 장수들이었고 가풍도 매우 엄격하고 뿌리가 깊었다.해성의 운 씨 가문과 소성의 사 씨 가문은 주로 상업계에 종사하지만 영향력을 미치는 범위가 또 각기 달랐다. 운 씨 집안은 주로 부동산과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고 사 씨 가문은 패션과 오락업에 종사하고 있다. 비록 업종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오래전부터 서로 협력해 왔다.그리고 가장 신비롭고 알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강성의 차 씨 가문이었다.전해져 오는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차 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무공을 가지고 있고 평상시에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고 보기엔 그저 점잖은 학자 집안일뿐이라고 한다. 그 소문의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만 차 씨 집안의 가업 역시 굉장히 컸다. 강성에서는 아무도 감히 차 씨 집안의 사람을 건드릴 수 없었다.그런데 갑자기 차 씨 집안을 언급한 것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한소은이 차 씨 집안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아니죠?”노형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속으로는 믿지 않았다.요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녀는 눈빛으로 소리 없이 그에게 답을 줬다.“……불가능해요!”노형원이 단호하게 말했다.“엄마, 엄마는 아직도 한소은이라는 사람을 아직 잘 모르시는 것일 거예요! 걔는 그냥 아주 평범한 여자애일 뿐이예요, 다만 조향에 있어서는 작은 재능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걔가 차 씨 집안과 관계가 있을 수 있어요? 걔는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여자애일 뿐
시간이 거의 다 됐고 할 말도 다 한 요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자, 이 일들은 네가 다 나은 후에 천천히 얘기하자, 지금은 우선 회복하는데 집중해”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맞다, 그 강시유, 됐다 그만하자!”이 말은 그녀의 가장 확실한 의사 표현인 셈이었다.노형원은 좋다고도, 안 좋다고도 하지 않았고 병실은 또 이렇게 조용해졌다.다음날 아침 일찍 강시유는 길에서 산 죽과 만두를 들고 그를 보러 왔다.그가 사고를 당했을 때부터 두 사람이 완전히 까밝혀진 이후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듯이 그 일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분명한 간극이 생겼을 뿐이고 강시유는 여전히 물건을 들고 그를 보러 와 그를 돌봤고 노형원도 더 이상 그녀를 욕하며 쫓아내지 않았다. 모든 것이 과도하게 조용했고 폭풍전야처럼 고요했다. 늘 하던 대로 그에게 아침을 먹이고 또 깨끗이 치우고 그를 도와 얼굴과 손을 닦아주고 나서야 강시유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오늘 할 말이 있었다.“실험실 쪽에 가봤는데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별문제 없어. 새로 온 그 몇 명은 일 처리도 빨라. 회사에서 새로 뽑은 조향사는 기초는 있지만 수준이 아직 멀어서 더 뽑는 게 좋을 것 같아.”그녀는 회사의 모든 일을 빠르게 보고했다.사실 그녀가 보고하지 않더라도 이 일들은 노형원도 알고 있었다.그는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레시피 조정 건은 확실히 너 덕분이야, 수고했어.”노형원은 레시피 조정 건을 대충 넘겼다, 왜냐하면 더 이상 언급하면 그때의 역겨운 기억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강시유도 다 알고 있었고 그를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겼다.“다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결국 나도 회사가 잘 됐으면 해서 한 거야.”그녀의 매 한마디는 매번 모두 반복해서 강조했다, 자신은 회사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너도 책임이 있고 나만 탓할 수는 없다고.노형원은 듣고 더 이상 논
업계에선 신생의 대우가 가장 좋은 축에 속하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사람들이 가장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만약 신생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다음 단계, 다다음 단계의 목표는 환아로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중상위층에도 올라가는 것도 가능했다.한소은은 어떻게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 들어간 것뿐만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을 돌아보면 신생이 그녀를 잘 지켜 줬었다.강시유는 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를 쳐다보며 갑자기 물었다.“참, 너 걔랑 알고 지낸지도 오래됐는데 너 한소은이 무술 할 줄 아는지 알아?” “한소은이 무술을 할 줄 안다고?”노형원이 놀라 물었다.“너 누구한테 들었어?”그의 반응을 보고 강시유는 조금 의외란 생각이 들었지만 곧 무언가를 확정했다.그가 말한 것은 “그럴 리가!” 가 아니라 “누구한테 들었어!”였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표현 방식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말해 한소은이 정말 무술을 할 줄 안다고?근데 강시유는 어떻게 몰랐을까? 노형원이 알고 있었다면 그녀는 왜 몰랐을까.“너 안지 얼마나 됐어?”“……”노형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도 확실하지 않아, 그냥 네가 왜 이걸 물었는지 좀 의아하네.”“난……” 강시유는 로젠이 한소은에게 맞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그는 당연히 로젠이 맞았다는 일에 속 시원 해 하겠지만 지난 일을 다시 꺼냈다간 스스로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로젠이 왜 한소은에게 맞았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다. 강시유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그냥 누가 봤데, 근데 난 별로 못 믿겠어, 내가 걔를 알고 지낸 지가 얼만데 나 걔가 무슨 무공을 할 줄 안다는 건 전혀 몰랐어. 태권도나 가라테 같은 것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고.” “그런데, 확실하지 않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너도 알고 있다는 거야? 아님 걔가 무술 하는 걸 봤어?” 강시유는 노형원의 말에서 중요한 키워드를 움켜쥐고 물었다.“본 적 있어, 근데 나도 걔가 진짜 무술
모든 일을 그는 그냥 대충 묘사하고 넘어간 셈이었다, 사실 어디가 지지 않은 것인가, 경호원들이 그녀를 때려눕히지 않은 것이지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를 쉽게 건드리지도 못했고 더구나 그녀를 잡으려고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창피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제 엄마가 그 말들을 한 이후에 그는 갑자기 마음이 탁 트였다. 만약 그녀가 차 씨 집안의 사람이거나 차 씨 집안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모두 납득이 됐다.그녀의 무술 실력이 이렇게 좋으니 그녀가 시원 웨이브를 떠난 뒤 이렇게 순조롭게 신생에 들어가 풍성하게 사는 것도 당연했다.만약 차 씨 집안이 뒤를 봐주고 그녀를 도와 관계를 손봐 준거라면 이 모든 것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강시유는 그의 생각을 몰랐고 차 씨 집안의 관계가 있다는 건 더욱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한소은이 무술을 한다는 이 일을 납득하지 못했다, 충격뿐만 아니라 분노와 질투만 늘었다.왜 그녀는 조향에 재능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좋은 솜씨가 있을 수 있는지, 왜 그녀는 로젠의 신분도 따지지 않고 때리라고 했다고 진짜로 때릴 수 있는지 납득이 안됐다. 하지만 자신은 로젠에게 다 맞춰줘야 되고 심지어 유산까지 할 뻔했는데 왜 한소은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은 정말이지 불공평했다.“하, 내가 한소은이 만만치 않다고 했지, 겉으로는 순정 어린 백련처럼 행동하면서 어디서 배워 온 건지도 모르는 못된 잔꾀나 부리고, 여자가 어떻게 그렇게 대단한 무술을 할 수 있는지 분명 무슨 잘못된 방법이 있었을 거야.”강시유가 말했다.“형원, 난 지금 네가 걔를 떠났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님 언제까지 걔한테 속아 넘어갈지 몰라.”예전 같으면 그는 강시유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그녀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소은과 차 씨 집안의 관계를 알고 있고 그의 관점에서 보면 한소은은 확실히 자신을 위해
이런 말도 입 밖에 내다니 강시유는 문득 그 순간 노형원과 완전히 끝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좋아, 네가 걔한테 미안하니까 난 갈게!”그녀는 일어서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오늘부터 나랑 아이는 상관할 필요 없어! 내가 갈게, 됐지?”그녀는 일부러 아이를 언급해서 이걸로 약점 잡아서 그의 반응을 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이 비장의 카드도 소용이 없었다.노형원은 그녀를 굉장히 차갑게 쳐다보았다.“시유야, 너 정말 내 아이를 낳을 계획이야?” 강시유는 곧바로 마음이 약해졌다.그녀는 원래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했었고 이미 수술을 하려고 예약까지 했었다. 자신의 건강 문제 외에 그녀와 로젠의 일은 결국 노형원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찌를 것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자신의 퇴로를 막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이 아이는 절대로 낳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 일을 완전히 털어놓기 전에 아이는 그녀의 보험이었고 그녀가 노형원과 협상하는 카드였는데 지금 이 카드가 무효가 된다고?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허점을 숨기며 말했다.“너 이 말은 무슨 의미야? 설마 임신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 너 임신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기나 해? 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너랑 회사를 도우려고 하는데, 이게 다 누굴 위한 거야!” “나도 알아, 너 아직 그 일을 탓하고 있는 거, 너도 사실 마음속으로 날 미워하고 있는 거 다 알아! 내가 아무리 너를 위해, 시원웨이브를 위해 애써도 넌 나 용서 못 하지?”그녀는 통곡하며 그를 질책했다.“난 이해할 수 있어, 넌 이런 핑계 대서 나한테 상처 주지 마, 넌 받아들일 수 없어, 우린 헤어지는 게 맞아, 근데 너 나중에 후회하지 마!”말을 마치고 그녀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걸음은 높이 들었지만 떨어지는 걸음은 매우 작았다. 과연 문 앞에 도착하기 전에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시유!” 멈춰 섰다, 그녀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미 입가에 웃음기가 돌았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