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의 고집과 명령으로 서한은 타협해야 했다. 서한은 김서진이 다른 사람을 보낼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가 직접 결말을 볼 줄은 몰랐다.김서진은 혼자 차를 몰고 백신 기지의 뒷문 자리까지 왔는데 지금 이곳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출퇴근 체크를 하고 있다.이건 매우 정상적이었다. 정상적인 작업 흐름은 여전히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숨어 있는 가장 깊은 미스터리 조직의 그 사악한 실험이 이미 며칠 동안 중단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실험실에는 완전히 멍한 얼굴로 연락이 끊어진 몇 명의 직원이 남아 있었고, 이곳에서는 아무도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거나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예전에는 주효영이나 임상언이 일을 주선했지만, 지금은 둘 다 사라진 지 이틀째였다.다행히 여기서 살며 먹고 마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지만 유일한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그들 모두는 조직을 따라 이곳에 왔고, 자신이 한 일을 외부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비록 진정한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실험과 실험에 필요한 도구 등은 모두 불법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이곳을 떠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들도 잘 모른다.리더가 없으니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아무도 실험을 하지 않았으며 조직에 어떻게 연락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고 모든 사람은 어리둥절했다.김서진이 밤에 잠입했을 때, 바로 이런 장면을 보았다.원래 이곳의 모든 사람은 질서정연하게 자기 일을 할 것이고 밤이 되면 매우 바쁜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몇 사람만이 하품하며 방을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또 다른 몇 사람은 그곳에 앉아 반쯤 눈을 감고 거의 잠이 들려고 했다.사실 방에 들어가서 자도 되는데 혹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위에서 들어오면 게으름 피우고 있다고 생각할까 봐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에 앉아 있으려니 확실히 할 일이 없었다.실험은 모두 중단되었다. 예전에 하던 실험이든 시작도 안
가장 안쪽에는 문이 하나 있었는데, 김서진은 그 문 앞에 멈춰 서서 자세히 살펴보았다.대문은 분명히 첨단 기술이 더해진 것이었다. 지문이나 홍채를 사용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김서진 역시 이렇게 순진하게 자신의 지문이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김서진은 거기에 서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에 잠겼다.생각을 마친 김서진은 가지고 있던 주머니에서 작은 몰드를 꺼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그 몰드는 한소은의 지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들 부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문을 남긴 몰드를 상대방에게 준 적이 있다. 언젠가 긴급 상황에 대비해 사용하기 위해서였다.이번에 나올 때 뭔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뜻밖에도 김서진의 생각이 맞았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 왔다.한소은은 여기 오래 있었고, 여기는 중요한 연구기지이고, 계속 실험을 하고 있었으니 이 문은 그녀의 지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누구냐!”갑자기 누군가가 김서진의 뒤에 나타나서 소리쳤다.김서진은 어리둥절했다. 미혼향에 빠지지 않고 정신을 차린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문 위의 반사광으로 힐끗 보니 상대방은 바로 그의 뒤에 서서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잠시 후, 김서진은 천천히 돌아서서 웃으며 말했다.“나는 너희를 구하러 온 사람이다!”“말도 안 되는 소리! 첩자야!”상대방은 분명히 김서진을 믿지 않았고, 쇠몽둥이를 집어 들었다.“순순히 손을 들어라!”이런 졸개들은 당연히 김서진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서진은 고개를 살짝 돌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믿지 않으니 할 수 없지...”쏜살같이 발을 걷어차자 그 사람은 발길에 맞아 땅바닥에 우당탕 넘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쇠몽둥이도 한쪽으로 떨어졌는데 공교롭게도 옆구리를 내리쳤다. 그때 안에서 비상벨 소리가 났다.김서진은 할 말을 잃었다.이렇게 공교로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번에는 좀 번거롭게 됐다고 생각한 김서진은 코뼈를 주무르며 다음 일을 계속할 것인지
서한은 김서진을 이끌고 구석으로 달려가 한 방으로 들어갔다.방문이 스르르 닫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시끌벅적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뛰어가며 말했다.“정말 외부인이 침입했어? 우리가 있는 이곳이 어디 그렇게 쉽게 침입하고 들어올 수 있는 거야?”“공기 중에 미혼향 냄새가 나. 이상해, 외부인이 있는 게 틀림없어. 수색해!”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으니, 그들은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는 것 같았다.정신을 가다듬은 김서진은 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오지 말라고 했잖아...”말이 입가에 맴돌다가 삼켰다. 만약 방금 서한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혼자 대처하기에는 여전히 좀 까다롭고 번거로웠을 것이다.자신은 졸개 몇 명을 상대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람을 놀라게 하면 수사를 계속할 수 없다.“걱정이 돼서요, 이곳의 상황은 정말 너무 복잡하거든요. 이쪽 밀실에도 뭐가 있으니 제가 오지 않으면 대표님이 잘 모를 거예요.”서한이 나지막이 말했다.“방금 그 실험실은 다행히 만지지 않았네요.”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아, 지문이나 홍채를 사용해야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한소은의 지문 몰드가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그러나 서한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요, 문제가 커요. 사모님의 지문이라도 들어갈 수 없어요.”김서진은 어리둥절했다.이 사실이 놀라웠다.“설마 한소은이 안에서 실험을 한 적이 없단 말이야?”“아뇨, 사모님은 거의 매일 그 안에서 실험을 해요. 그 실험실이 바로 가장 중요한 곳이고 가장 비밀스러운 곳이에요. 핵심적인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어요, 윗사람의 홍채와 지문 없이는 절대 들어갈 수 없어요.”“그럼...”“하지만 사모님의 지문은 소용이 없어요.”서한은 말을 이었다.“그들은 사모님의 가입을 간절히 원하지만, 사모님을 극도로 신뢰하지 않아요. 제 기억으로는, 이 실험에 들어가서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릭이라는 사람과 그 사장을 제외하고는... 주효영뿐이에요.
주효영이 진정기를 납치한 것은 인질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살아있는 인질이라야 쓸모가 있다. 죽으면, 조금도 쓸모가 없으니 이런 힘만 들고 아무 소용없는 일을 주효영은 하지 않을 것이다.“그럼 사람을 숨길 수 있는 다른 곳이 있을까?”서한은 김서준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생각해봤는데, 여기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사장님의 사무실뿐이에요!”“지금 사장님이 죽었으니 사무실이 비어 있어요. 그곳은 평소에는 사람이 갈 수 없어요. 지금, 숨기기 가장 좋은 장소일 거예요!”이어 서한이 자책하며 말했다.“미안해요.”“늦지 않았어!”서한의 어깨를 툭툭 친 후 김서진이 말했다.“지금 바로 보러 가자!”밖에서는 여전히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왔고 서한은 문짝에 기대어 잠시 듣다가 말했다.“여기는 나가기에 적합하지 알아요.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들킬 거예요. 우리 반대편으로 가요!”그는 잠시 더 기다리다가 밖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바깥 복도가 텅 비어 있는데, 다른 곳을 찾아보던 서한이 나오더니 김서진을 향해 손짓했다.김서진은 따라 문을 나섰고 두 사람은 나란히 아무 소리 없이 복도를 따라 반대편으로 향했다. 마치 막다른 골목인 것처럼 보였지만, 서한이 이렇게 굳게 앞으로 나가자, 김서진도 따라나섰다.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모퉁이를 돌면서 반대쪽을 향해 지나갔다.따라간 후에야 김서진은 여기에 모퉁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모퉁이를 돌면 다시 모퉁이가 나타났다.미로처럼 몇 번을 돌자 서한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위로 뛰어올라 두 손을 위로 들고 천장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위쪽의 통풍구 뚜껑이 열렸다.서한은 뛰어올라 양손을 양쪽 옆을 붙들고 힘을 내 안으로 들어간 후, 몸을 돌려 김서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좀 참으세요!”김서진은 고개를 들어 한 번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너 좀 비켜!”눈치 빠른 서한이 옆으로 비켜서자 김서진이 훌쩍 뛰어올랐다.환풍구 덮개를 다시 닫으면, 마치 그들이 한
“너 여기 있느라 수고했어!”김서진은 감탄했다.이렇게 숨겨진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고, 이렇게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고, 게다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보면, 틀림없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도움이 됐네요.”그걸 생각하면 서한은 또 사모님에게 더 큰 폐를 끼칠 뻔한 것이 미안했다.“네 탓이 아니야.”김서진도 대충 한소은에게 들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서한이 돌아오면 몸조리 잘하며 자신이 돌아와서 해독해 주기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하지만, 그것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서한을 데리고 동분서주하고 있다.“대표님, 이쪽으로 오세요.”서한이 지체없이 길을 안내했다.길을 잘 아는 만큼 빠르게 사장실을 찾았고, 그동안 경비가 삼엄했던 이곳을 지금은 쉽게 들어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당직자조차 없는 걸 발견한 서한은 걸음을 멈추었다.“왜?”서한이 멈추는 것을 보고, 김서진은 틀림없이 무슨 문제를 발견한 거로 생각했다.망설이다가 고개를 돌린 서한이 대답했다.“여기도 없을 것 같아요.”김서진은 곧 그의 뜻을 이해했다. 만약 여기에 누군가가 지키고 있다면 쉽게 그들을 올라오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쉽다는 건 사람도 쉽게 납치할 수 있다는 말이다.주효영의 복잡한 생각으로는 절대 이런 일을 할 수 없다.“어쨌거나 여기까지 왔으니 가보자.”김서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서한은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곧장 사무실로 들어갔다.사무실은 어수선하고 모든 물건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데, 이렇게 큰 곳이 지저분해 보이니 뜻밖에도 발 디딜 틈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밀실로 통하는 문도 열려 있어 안을 한눈에 볼 수 있다.“텅 비었어요!”서한이 쳐다보며 말했다.김서진도 당연히 그 광경을 봤다. 안이 텅 비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더러웠는데 문을 들어서자마자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임상언의 말이 떠오른 김서진이 서한에게 말했다.“여기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 수 있으
그의 말을 들은 김서진이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금고가 가장자리에 버려져 있고, 문이 크게 열려 있었는데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물건은 이미 없어졌다.“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서한은 고개를 저었다.“약제 같은 거 아닐까요? 주효영이나 실험실의 사람이 만들어낸 약제 말이에요. 바이러스겠죠. 그들의 일을 전 잘 몰라요.”한동안 이곳에 숨어있었지만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웠으므로 들을 수 있는 소식은 제한적이었다.김서진은 금고를 향해 걸어가서 몸을 웅크리고 손가락을 살짝 건드려 자세히 살펴보았다.“왜요?”그 모습을 본 서한도 따라왔다.그러나 김서진은 대답하지 않고 금고 안을 들여다보고는 다시 손으로 안을 만졌다.그러고는 쓰다듬어보는가 하면 손가락 마디로 안을 살짝 튕기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탁탁, 톡톡...’“칸막이가 있어요?!”소리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곁눈질로 김서진을 보았지만, 김서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금고만 바로 세우고 그 안에서 더듬어 틈새를 열었다.겹겹이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으며, 빈틈없이 밀봉되어 있어 이렇게 폭력적으로 뜯어도 발견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신경을 써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었다.김서진은 버클의 위치를 찾아내고 살짝 힘을 주었는데, 아주 작은 ‘딸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칸막이를 열었다.칸막이는 사실 매우 얕아서 무엇인가를 넣을 수 없었다. 안에서 한참 동안 만지작거린 끝에 마침내 서류봉투를 하나 꺼냈다.크라프트지 서류봉투에 왁스까지 씌워져 있어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았다.“이건...”서한도 그 안에 물건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이곳을 수색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가져가자!”김서진은 조용히 말하며 자신의 옷자락을 열고 크라프트지 봉지를 쑤셔 넣었다.“네!”여기는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진 부장이 여기 없으니 빨리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이틀째,한소은은 유난히 조용했다. 평
“너...”프레드는 격노했고 파란 눈에서 분노의 불꽃이 튀었다.프레드는 심호흡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그래, 죽을 사람은 마땅히 만족해야지. 주인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당신의 영광일 거야.”프레드가 허락하는듯하자 한소은은 마침내 배후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프레드가 갑자기 말을 바꾸었다.“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한소은은 조롱 조로 웃으며 말했다.“죽은 자의 몸도 걱정해준다니 당신들은 정말 착하네!”프레드는 그녀의 비아냥거림을 알아듣고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이 몸뚱이가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라거든.”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가려는 듯 말했다.“맞다, 당신 바깥양반... 내 말은 남편이 요즘 활동적인 것 같아. 당신을 구하려... 시도하는 것 같다고!”단어를 다시 고르며 한 손을 허공을 두 번 휘젓던 프레드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하지만 내 생각에는 헛수고한 것 같아! 당신 남편이 사업을 많이 하는 거 알아. 해외 여러 나라에도 있고, 당신 나라에서도 대단한 인물이야. 하지만 아쉽게도, 결국 그냥 상인일 뿐이지. 일개 상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적어!”말 속에 경멸의 뜻이 없지 않았다.그러나 한소은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반박도 부끄러운 내색도 보이지 않은 채, 그 말을 듣지 못한 듯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한소은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프레드는 실망하여 몸을 돌려 떠났다.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한소은이 눈을 깜박거렸다.김서진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많은 문제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연락할 방법이 없다.그 의사에게도 두 번이나 암시했지만 그는 반응이 없었다. 불편한 건지 소식이 없는 건지 알 수 없었다.소식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힘들었고 믿는 것 외에 한소은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김서진은 백신 기지에서 돌아온 후 자신을 혼자 방에 가두었다.책상에 앉아 불을 켜고 책상을 깨끗하게 치운 뒤 손을
사실 김서진의 죽음은 우연의 일치이고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먼저 서한의 출현은 하나의 의외였다. 한소은과 임상언은 현실적으로 김서진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서한은 그 사실을 모르고 무심코 행동했다.죽음을 앞둔 김서진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조직을 파괴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한을 찾았다.대표님 주변의 보호는 강력하지 않다. 모든 이들이 주인공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가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려워서 못 건드리는 것뿐이다.그래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서한을 만나자 첫 번째 장벽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한소은과 임성언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고, 김서진이 조직의 버림받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조직은 김서진을 방치했다.물론, 조직이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이 일을 그르칠 가능성도 크다.처음에는 김서진의 손에 있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죽을 위협을 받으며 묶여 있으므로, 조직은 그가 죽으면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었다.그러던 중 주호영은 김서진에게 약을 시험했고, 독살당했다.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였고, 또한 운명으로도 여겨졌다.김서진이 죽음 후 사무실이 뒤집혔고, 아마도 조직의 사람이 그 자료를 찾으러 왔을 것이다.그러나 결과는 예상과는 다르게 조직에서 가져간게 아니라 김서진이 찾은 것이었다.그는 물건을 다시 확인하고 크라프트지 봉투에 다시 집어넣고 비밀 칸에 넣은후 책장을 닫았다.그는 이미 단서를 찾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배후의 의도에 대해선 전혀 생각지 못했다.이런 신분은 정말 까다로운 존재였다!문을 열고 나온 후에도 서한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대표님...”서한은 김서진을 바라보며 한 발짝 다가갔다.사실 서한은 이런 성격의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엔 말 한마디로 모든게 끝이었고 김서진의 지시대로 행동하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이번 일은 서한과도 직접적으로 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