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진은 진정기의 행방을 알기 위해 주호영을 다시 한번 찾을까말까 고민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먼저 찾아왔다.“김 대표님.”김서진은 상대방을 알아보았다. 바로 진정기의 경호원, 엄밀히 말하자면 비밀 경호원이었다. 비밀 경호원이기에 보통 그를 만날 수 없었다.김서진도 진정기와 친하게 지내면서 겨우 한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사정민, 1급 경호원.사정민을 보고 김서진은 진정기의 행방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잠깐만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양쪽을 둘러보며 사정민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사정민은 인파 속에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지만 그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김서진을 알고 있다.격투기뿐만 아니라 각종 무기, 열병기도 매우 익숙하다. 하여 진정기를 세밀하게 보호하기 위해 그의 신변에 안배했다.때문에 진정기가 당시 주호영에게 납치된 것은 그의 의도였다. 주호영이 아무리 교활해도 사민정의 손에서 진정기를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다.김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생각이에요!”가사 도우미와 서한을 내보낸 후 김서진은 사민정과 함께 서재에 들어가 문을 닫은 후에야 물었다.“진 부장님인가요? 소식이 있어요?”사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부장님께서 당신을 찾으러 오라고 하셨어요.”이 말을 들은 김서진은 안심이 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 부장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부장님께서 나타나기 불편하기에 김 대표님께서 필요하실 거라며 저한테 이걸 가져다주게 하셨어요.”사정민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김서진에게 건네주었다.김서진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는 어리둥절했다.“이건...”“김 대표님께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지만 부장님의 신분과 현재 상황으로는 나서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어떤 일은 대표님께서 직접 해야 합니다.”사민정이 이런 말을 할 때 김서진은 당시 진정기가 어떻게 전달했는지 거의 알 수 있었다.“좋아요!”물건을 치우고 김서진은 다시 고개를 들어 사정민을 바라보았다.“진 부장님께 전달해 주세요. 고맙게
“천만에요!”사정민은 대답을 마치고는 떠났다.사정민이 떠나자 김서진은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냈다. Y 국 대사관을 순조롭게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이었다.그리고 통행증 외에 진정기는 자신의 친구이니 잘 대접하라는 쪽지도 써주었다.비록 일반적인 통행증이지만 김서진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김서진은 대사관을 알아봤지만 함부로 드나드는 곳이 아니어서 방법을 찾고 있었다.진정기가 그에게 보낸 이 물건은 급시우였다.이것만 있으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산후 5일째 날, 한소은은 자신의 몸이 거의 회복되었음을 느꼈다. 상처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물론 격렬한 동작은 여전히 무리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한소은은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 다녔다. 몸 상태가 빨리 회복되지 않으면 많은 일이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한소은이 허리를 짚고 천천히 방안을 거닐고 있을 때 병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이어 서너 명이 휠체어를 밀며 걸어 들어왔다.한소은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그러나 그들은 대답하지 않고 한소은의 눈을 가린 후 휠체어를 이용해 밖으로 이동시켰다.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진정되었다.다만...이 사람들의 수법은 우스웠다. 눈을 가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고 또 그들의 신분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물론 처음에는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었고 또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면 단서를 찾기 어려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하니 이젠 규칙을 알게 되었다.처음에 한소은은 이 신비로운 조직에 대해 궁금해했다. 배경과 실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며칠 머물면서 점차 이해가 되었다.‘이제 나를 데리고 그 프레드를 다시 만나러 가는 걸까, 아니면 배후에 있는 사람일까?’한소은은 조금 기대가 되었다.거리가 멀어서일까 아니면 빙빙 돌아서 왔을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했다.휠체어가 멈춰서자 한소은은 서너 명 사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진 한소은은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병풍 뒤편에서 나온 소리였다!한소은의 주위에는 의자 몇 개 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커다란 병풍이 있었고, 병풍 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만족하나요? 사람을 조종하고 모든 것이 다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하세요?”앞쪽을 바라보면서 한소은은 휠체어에 앉아 침착하게 말했다.한소은은 조소했다. 사실 병풍 뒤에 있는 분이 바로 배후의 지배자인지는 모르나 기왕 여기에 온 바에는 심심풀이 겸 다른 사람과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요.”상대방은 한숨을 내쉬었다.“한소은 씨, 이런 방식으로 만나 뵙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사실 나는 당신을 아주 좋아해요.”“네?”한소은은 눈썹을 찡그리며 웃었다.“나의 재능, 나의 능력, 아니면... 내 몸?”그쪽에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이 흘렀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영광이네요. 그래서 내 몸이 회복되면 사용하려고요?”한소은은 고개 숙여 자기 몸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마치 수시로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거래할 수 있는 물건인 것처럼 말이다.“한소은 씨, 사실 나도 일이 이렇게 되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어요. 미안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거나, 혹은 이루지 못한 소원이 있다면 내가 다 들어줄게요.”상대방은 겸손하게 말을 건넸다. 아마 자초지종을 모르고 들었다면 대범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하지만 한소은은 맞은편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기에 찬웃음을 날렸다.“정말인가요?”“약속해요.”“좋아요. 난 살고 싶어요. 내 몸을 주고 싶지 않고 여기를 떠나고 싶어요. 그리고 당신들은 모든 사람을 해치는 실험을 포기해야 해요. 할 수 있어요?”한소은은 멈추지 않고 단숨에 말을 했다.맞은편에서는 답이 없었고 단지 숨소리만 거칠게 들려왔다.“한소은 씨, 당신은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알잖아요, 난 할 수 없어요!”“그럼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준다며 허풍을 떨
병풍 뒤에 확성기를 놓았기에 바로 이 확성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들었다.‘역시 교활하군!’여기에 와서도 경계심을 가지고 늦추지 않고 본색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다만, 이젠 중요하지 않다.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면 정확하면 그만이다!한소은이 확성기를 들고 살펴볼 때 안에서 갑자기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훨씬 다급하고 날카로운 말투였다.“방금 무슨 사람을 해치는 실험이라고 했어요?”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한소은은 깜짝 놀라 손에 들었던 확성기를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한소은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서 마이크를 보고 말했다.“알고 싶으면 직접 나와 얘기하세요. 인제 와서 모른 척할 필요가 있어요?”“나... 나서기가 좀 곤란해요.”잠시 머뭇거리다 계속해서 말했다.“당신이 다치게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대승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었어요. 당신의 양해를 바라지 않지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노인의 ‘진지한 사과’를 들으면서 한소은은 그저 우습다고 생각했다.“먼저 당신에게 목숨을 빼앗고 몸을 빌려야 한다고 알려준 후 사과하면 그만인가요? 이게 당신네 나라의 예의인가요? 이 나라의 예의는 이렇게 우스운가요?”한소은은 방자하게 비웃었다.안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너무 하지 마, 한소은!”한소은은 멍해졌다. 비록 두 사람은 변성기를 사용했으나 뒤에 있는 목소리와 어조가 이전에 몇 번 보았던 프레드라는 것을 알아챘다.한소은은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너무 심했어? 내가 R10을 만들어 준 다음 내 몸을 용기로 삼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겨우 두 마디로 불쾌했어? 내가 심했어?”“하물며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한소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아니면 여기에 데리고 온 게 무슨 뜻인지 네가 나에게 알려줄래? 너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야? 필요 없어, 너 같은 사람은 죄책감이 무엇인지 몰라.”“한소은 씨, 당신의 분노를 이해해요. 하지만 맹세해요. 당신의 아
한소은의 호칭은 그야말로 벼락같았다.저쪽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서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났다.입꼬리를 올리며 한소은은 웃었다.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그를 데리고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마치 이곳에서 잊힌 것 같았다.한소은은 거기에 앉아 있기 따분하여 아예 일어나서 두 걸음 움직였다.다섯 번이나 걸은 후에야 문이 열렸는지 방안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했다. 이 방에는 분명히 다른 문이 있었다.그 뒤로 휠체어가 바닥을 찧는 소리가 나자 한소은은 자신이 타고 온 휠체어는 보았다. 하지만 이 휠체어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병풍 뒤에서 휠체어 하나가 천천히 나타났다. 휠체어 위에는 나이가 든 여인이 앉아 있었다.그 여자는 약간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고, 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있었으며 옆에는 프레드가 지팡이를 짚고 따라갔다.한소은은 가만히 서서 조용히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은 눈이 마주쳤지만 잠시 말이 없었다.“예의를 차려야지!”프레드가 말했다.눈을 한 번 고르고 프레드를 쳐다본 후 한소은은 차갑게 말했다.“무슨 예의?”“여왕 폐하를 만나고도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니!”프레드는 노인의 신분을 인정했다.한소은은 빙그레 웃었다.“이제야 인정하는군요, 여왕 폐하?”“이젠 신분을 알았으니 무릎을 꿇지 못할까!”지팡이로 바닥을 찌르며 프레드는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여왕은 손을 들어 조급해하지 말라고 표시했다.겉보기에는 자비롭고 상냥하지만 한소은은 여왕 폐하가 어떤 악의를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앞에 계신 분이 진짜 여왕 폐하인지, 설령 여왕이라고 해도 단지 당신 나라의 여왕일 뿐이야. 난 당신 나라 사람도 아닌데 왜 절을 해야 해?”한소은이 반박했다.“너!”“그만해!”여왕은 화가 난 듯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여왕이 화를 내는 것을 보고 프레드는 그제야 멈추었고 어두운 표정으로 옆에 서서 한소은을 주시했
여왕 폐하는 휠체어에 앉아 상냥한 목소리로 한소은을 불렀다.“죄송해요. 당신에게 불공평한 일임을 인정해요. 그런데 당신은 운명을 믿나요?”한소은은 약간 놀랐다.“왜, 당신 나라에서도 운명을 믿어요?”“난 믿어요.”여왕은 고개를 끄덕였다.“어쩌면, 젊었을 때는 믿지 않았지만 이제는 믿어요. 몸이 점점 허약해지고 있어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나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요. 단지, 아직 끝내지 못한 일과 미완성된 일이 많아요. 제 백성들은 제가 필요해요.”“저는 죽을 수 없어요. 한소은 씨,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당신만이 가장 적합한 사람이에요. 심지어 당신의 혈액형마저도 나와 같으니 이것은 운명 아닌가요? 하늘이 정해준 거라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여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진심어린 말을 하였지만 하는 짓은 악의가 가득했다.한소은은 웃으며 몸을 돌려 자리를 찾아 앉아 여왕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내 몸은 늙고 허약하면 안 되겠네요?”“아니에요. R10의 약효가 있어서 당신의 몸은 잘 보존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가장 뛰어난 의사와 가장 똑똑한 과학자가 있어요. 그들은 당신의 몸을 잘 보호해 줄 거예요!”여왕은 고개를 돌려 프레드를 쳐다보았다.프레드는 대답하듯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한소은은 그들의 동작과 눈빛을 눈여겨보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받치며 물었다.“당신들의 의사와 과학자들이 이렇게 대단한데 왜 나에게 R10을 연구하라고 했어요? 그들은 연구할 수 없나요?”여왕은 분명히 어리둥절했다. 한소은이 물은 이 문제는 이미 자신이 알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 분명했다.눈썹을 찡그리며 여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때 프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실 당신만이 R10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발 과정에서 약물에 젖어 오랫동안 천천히 흡수해야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어.”여왕은 문득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요.”“당신들의 말이 모두 맞는다고 해도, 여왕 폐하...”잠시 후,
그들을 흘겨보던 한소은은 잠시 후 다시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관둬, 그냥 해본 소리야. 결국, 이런 입에 발린 말을 행동으로 실현하기엔...”한소은은 잠시 후 프레드를 쳐다보더니 말했다.“게다가, 혈액형이 맞아야 한다고 하니 너의 혈액형이 어쩌면 귀한 여왕 폐하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어. 모든 면에서, 어쩌면 내가 정말 최선의 선택일지도 몰라.”“맞아.”프레드가 말을 이어갔다.“나는 여왕 폐하와 일치하지 않아.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지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어. 한소은, 너는 나와 여왕 폐하의 관계를 이간질하려 하지 마. 나의 충성은 천지가 증명할 거야!”“그래, 정말 충성스럽구나. 이렇게 큰 연구실과 거대한 실험 계획은 확실히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야.”한소은은 말을 대충하면서 여왕의 얼굴을 살폈다.여왕은 비록 입을 열지 않았지만 양미간을 찌푸릴수록 얼굴빛은 점점 무거워졌다.“이 모든 것이 여왕 폐하의 위대한 삶을 위한 계획이야.”턱을 치켜들며 프레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여왕과 국민을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더라도 가치가 있어.”“프레드!”여왕이 갑자기 입을 열어 프레드를 불렀다.“여왕 폐하!”프레드는 고개를 숙여 공손히 대꾸했다.“나 피곤해.”곧 프레드는 알아차렸다.“곧 쉬도록 모실게요.”프레드가 여왕 뒤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눈짓하자 휠체어는 방향을 돌려 병풍 뒤로 나갔다.휠체어가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한소은은 다시 한번 여왕을 불렀다.“여왕 폐하!”휠체어는 멈추지 않았지만 여왕이 손을 들어 손잡이에 올려놓자 휠체어를 밀던 사람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었다.프레드가 쏘아보는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한소은은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이 계획이 실패하는 경우에 대해 고려해보았어요?”“계획은 실패하지 않아!”프레드가 말을 끊었다.그러나 한소은은 프레드를 무시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어요. 만일, 만일 실패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
“교수님 말이 맞아요!”한 번 쳐다본 김서진은 휴대전화에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차에 태워.”김서진은 앞사람에게 분부했다.우글쭈글하고 지저분한 차림을 하여 임상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차 문이 열리자 임상언은 차 안으로 뛰어들었고, 욕설을 퍼부었다.“김서진, 너무해요! 난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지 범인이 아니에요. 나를 가두다니!”“날 뭐로 보는 거죠? 시험 품?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내 몸에서 피를 뽑고 실험도 하면서 나를 바이러스로 취급하는가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였어요?”임상언은 고지호 교수를 몰랐고 그들 역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X 부서에서 이틀 동안 구박을 받지는 않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었다는 게 찝찔했다.그래서 임상언은 풀려나니 가장 먼저 김서진을 찾아가서 화풀이했다.김서진은 변명하지 않고 그가 욕하도록 내버려 둔 다음 수건을 건네주었다.임상언은 멍하니 그 수건을 보며 물었다.“뭐에요?”“좀 닦아요.”김서진은 담담하게 말하더니 목을 돌려 뒤쪽을 가리켰다. “뒤에 제 옷이 있어요. 평소에는 여분으로 둔 옷이에요. 아마 사이즈가 맞을 거예요. 이따가 갈아입으세요.”“왜? 내가 더럽다고 싫어요?”임상언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더러운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야! 너무해요! 이젠 알겠죠? 내 몸에는 바이러스가 없어요! 비록 내가 온종일 바이러스와 씨름하지만 난...”“나 주효영을 잡았어요!”김서진은 임상언의 말을 끊어버렸다.“어?”임상언은 놀래 했다.“백신 기지를 다녀왔어요.”“네?”“더는 주효영과 협력할 필요가 없어요.”“오...”짤막하면서도 정보량이 많은 일련의 말들을 단번에 소화할 수 없었던 임상언은 눈을 깜박거리면서 멍청히 김서진을 쳐다보았다. 임상언의 머리는 급속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더는 말을 하지 않자 임상언은 넌지시 물었다.“지금 어디로 가요?”“내 와이프와... 당신 아들 구하러 가요.”임상언을 바라보는 김서진의 눈동자는 평온하기 그지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