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고 주임은 한소은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리가요! 지금 우리가 조심스럽게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아요. 게다가 변이 확률이 높아서 잘 통제하지 않으면 퍼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때는…….”“이 환자는 조금 특이해요. 우리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이미 전문가가 방역 조치를 했어요. 게다가…… 그와 밀접한 사람들도 모두 방역 조처를 했을 거예요. 하지만 안전을 위해 우리가 그들을 센터로 데려가 격리하여 관찰할 거예요.”“전문가라니요??”예민하게 이 몇 글자를 붙잡은 한소은은 눈썹을 찡그렸다.“이 환자의 곁에 의사가 있었다는 말인가요?”고 주임의 굳게 다물었던 입이 다시 열렸다.“그렇게 이해해도 되요!”그는 피곤한 듯 말을 끝내고 머리를 뒤로 기댄 채 눈을 감았다.한소은은 원래 몇 마디 더 묻고 싶었지만, 그가 그렇게 피곤한 모습을 보이자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소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큰 의심이 있었다.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한소은이 차에서 내리자 도착한 위치가 지하 주차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이곳은 낯이 익었다.“고 주임님?”한소은은 차에서 내리고 있는 고 주임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담담한 눈빛으로 손을 들었다.“위층으로 올라갑시다!”스태프들과 한소은은 고 주임을 따라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마음속의 불안감이 커지자, 한소은은 다시 고개를 돌려 고 주임을 바라보았다.“고 주임님…….”“땡!”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문이 열리자, 밖에서 경호원이 그들을 막았다.“당신들 뭡니까! 여기는 개인 병실이니 출입 금지입니다!”“우린 58번 환자를 데리러 왔어요. 이건 우리의 신분을 증명해 줄 서류에요!”그들 중 스태프 한 명이 경호원에게 서류를 보여주었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조금도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당신들이 누구든 출입
“난 이해 못 하겠어요. 만약 서진 씨를 데려가려는 거면 왜 내게 말하지 않았나요? 58번 환자는 뭐고 새로운 환자는 또 뭔가요?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 좀 해봐요!”한소은이 고 주임에게 따져 물었다.이번에 한소은은 정말 화가 났다.만약 정말 김서진을 데려가려 하는 거라면, 그들이 김서진을 발견해 그런 거라면 그녀는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기지에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자기에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었다.고 주임은 한소은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내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거죠? 내가 반대할까 봐, 내가 서진 씨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 봐 말하지 않은 거죠?”고 주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한소은이 제멋대로 추측했다.“한소은 씨, 그렇게 많은 생각할 필요 없어요. 당신도 기지에 한동안 머물렀고, 이 병이 얼마나 특수한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겠죠.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도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만일이라니요!”한소은은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이건 명백히 나를 믿지 않는 거예요! 당신들이 나에 대한 신뢰가 이렇게 없는데 왜 나를 받아준 거예요? 당신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더 이상 기지에 남을 필요가 없어요. 안 그런가요?”“한소은 씨를 못 믿는 게 아니라, 그냥…….”“서진 씨를 데려갈 수 없어요!”한소은이 한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고 주임의 말을 끊었다.“당신이 말했듯이, 서진 씨의 곁에는 가장 전문적인 의료진이 있고, 가장 전문적인 의사가 있어요. 여기서 절대로 병을 퍼지지 않을 거예요.”“또한 방역 조치도 철저하게 할 거예요. 그를 기지로 옮기는 건 없던 일로 해요. 고 주임의 호의는 마음만 받을게요. 그만 돌아가세요!”한소은의 말이 끝나자, 경호원들이 다시 그들을 겹겹이 에워쌌다.순간에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고 금방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것 같아 보였다.고 주임은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한소은 씨,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김서진 씨를 위해서, 그리고 이 실험이 더 잘 진행되기 위해서 우리가 그를 데려가게 해줘요.”고 주임은 다시 한소은을 설득했다.그러나 한소은은 고개를 돌리고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마음도 갈등하고 있었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 개의 자아가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하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말한다.여기는 더 나은 환경, 더 전면적인 보살핌과 더 완벽한 의료 수단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다른 하나는 이렇게 전염성이 강한 병은 확실히 더 적절한 격리 조치를 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고 있다.한소은은 마음이 고민되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고 주임은 한소은이 아직 망설이고 있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며 다른 스태프들에게 들어가서 사람을 데려가라고 손짓했다.바로 이때, 병실 안에서 갑자기 낮은 목소리가 전해왔다.“다툴 필요 없어요. 당신들과 기지로 가겠어요.”한소은은 깜짝 놀랐다.고개를 돌리자 환자복을 입은 김서진이 얼굴에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방역 고글까지 쓴 채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그의 뒤에는 경 씨가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었다.김서진은 전보다 더 마른 상태였고 아직 허약해 보였다.그의 양쪽 볼이 움푹 들어가 초췌한 모습이었다.하지만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한소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깨어났다는 것!그가 깨어났다! ! !한소은이 여기를 떠날 때 그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상태도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피곤하지만 맑은 눈빛과 낮은 목소리지만 약간 힘이 있었다.그녀는 놀라고 기뻐서 아무 생각 없이 장갑을 벗고 그의 맥박에 손가락을 댔다.“한소은 씨…….”고 주임은 참지 못하고 외쳤다.이런 직접적인 접촉은 그다지 좋지 않다.김서진은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담담한 눈빛으로 한소은을 바라보았다.한소은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맥을 짚었다.비록 방호복을 입어 몸이 감싸져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고집이 셌다.김서진은 방금 그들
김서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많이 좋아진게 느껴져요.”잠시 뜸을 들이다 한마디 덧붙였다.“그동안 당신이 수고 많았어요.”아주 간단한 문장이지만, 천 마디 말이 들어 있다.김서진은 자신이 병에 걸려 그녀를 돌보지 못하고 짐이 되어야만 했던 시절을 감개무량해 했다.이번 사건들을 통해 김서진은 그녀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게 되었다.이전에는 그녀가 매우 강하고 독립적이며 매우 총명하고 유능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이 충분히 강하고 항상 그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병을 앓고 김서진은 원래 자신도 약하고 무기력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원래 그녀도 자신을 지킬 수 있고, 가끔은 자신도 그녀에게 의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결코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지지하고, 서로의 뒷배가 되어 주는 것이다.“무슨 바보 같은 소리예요!”한소은은 작은 목소리로 김서진을 꾸짖었다.흥분된 마음이 조금 가라앉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김서진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당신 정말 우리와 함께 갈 거예요? 당신은 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잖아요?”그는 아마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경 씨가 진작에 연락을 했을 것이다.게다가 고 주임과 다른 스태프들은 급하게 이 곳으로 왔기 때문에 자신조차도 그들이 김서진을 데리러 왔는지 몰랐다.김서진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으니 그들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절대 모를 것이다.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그들과 함께 간다고 말했다.한소은이 무엇을 걱정을 아는 듯한 김서진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싱긋 웃었다.“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필요 없어요. 나는 단지 그곳에 당신이 있다는 것만 알면 되었어요.”한소은은 할 말을 잃었다.“당신 바보예요?!”그녀는 참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김서진에게 한 마디 나무랐다.‘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
이렇게 된 이상, 한소은도 할 말이 없었다.그저 김서진의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주현철은 최근 매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새로운 입찰은 그저 절차만 밟고 프로젝트는 바로 그의 손에 들어왔다.전에 그를 멀리했던 사람들, 그에게 빚 독촉을 했던 사람들, 그리고 협력을 중단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 얼굴을 바꾸어 잇달아 찾아와 아부했지만, 그는 오히려 도도한척했다.이런 상황 앞에서 그는 헤벌쭉 웃으며 전화했다.“아이고, 내가 당신을 돕지 않는 게 아니야! 정말 요즘 너무 바빠서 그래. 당신도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큰 건지 알잖아! 정말 시간이 없다니까!”“그래, 당신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어……. 하지만 정 사장님, 전에 당신이 나한테 돈을 돌려 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한 게 아니었잖아? 지금 난 당장 돈을 벌어 당신 돈을 갚을 생각이잖아! 지금 사업도 잘 안되고 다들 쉽지 않은 거 알아. 그렇지? 에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니까…….”주현철은 일부러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그에게 애걸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 사람은 벌써 이전의 날뛰던 기세가 완전히 사라졌다.지금 주현철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고 이렇게 당당할 수가 없었다.심지어 그의 아내조차도 지금 이런 그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다.옆에 있던 유해나는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보았다.“네 아버지 좀 봐, 저 꼬리가 하늘로 치켜 올라가겠어! 무슨 열정을 가지고 자랑하는지도 모르겠네. 이 프로젝트는 이제 막 손에 넣었는데, 이윤이 있을지도 아직 모르는 상황인데!”“이건 국가 프로젝트야. 누구의 손에 들어가도 떼돈을 벌 기회지. 돈을 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많이 벌고 적게 벌면 그만이야.”주효는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긴 하지!”입으로는 싫은 말을 했지만, 사실 유해나 자신도 매우 기뻐하고 있다.전에 모임을 자주 가졌던 다른 사모님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로 달라졌다.자기에게 겸손하고, 심지어 주동적으로 그녀의
“몰라!”주효영은 더 이상 인내심이 없어 보였다.“엄마는 왜 계속 그 사람이 궁금한 거야!”딸의 말투가 좋지 않자 유해나는 꺼내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난…… 그냥 물어본 거지!”유해나는 전에 원철수를 모셔 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그 시절, 원철수를 한번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부탁하고 문전박대를 당해도 몇 번이고 원철수를 찾아갔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가짜 신의라고 밝혀지니 한심했다.전에 자기가 원철수를 회유하려 보냈던 많은 물건과 돈들을 생각하면 속이 탔다.그 사람이 가짜 신의이니 이것들을 돌려받고 싶었다.하지만 지금 원철수의 행방이 묘연해졌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그가 어쩌면 안 좋은 일을 당했다는 것 같았다.“아니, 만약 그 사람을 찾게 된다면 전에 주었던 돈들을 조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가짜 신의라는 걸 알았으니 그 돈들이 아깝잖아!”유해나는 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까 봐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런데 그에게 속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되어 홧김에 그를 납치했을지도 몰라.”주효영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유해나의 옷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눈살을 찌푸렸다.“응, 그럴 수도 있지!”주효영이 말을 얼버무렸으나 유해나는 매우 기뻤다.그러면서 자기의 추측이 맞을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네가 한 말도 맞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 어차피 앞으로 우리 집은 더 높이 올라갈 일만 남았어. 참, 효영아, 네 고모부에게 무슨 비밀을 말해줬는지 엄마에게 살짝 말해주면 안 돼?”이 비밀에 대해 유해나는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하지만 이 말을 꺼내면 딸이 분명히 화를 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해나는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와 주현철은 몇 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진정기의 비위를 맞추려 온갖 노력을 다했다.그런데도 진정기는 그들에게 좋은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았다.그러나 주효영이 무슨 수를 썼는지 진정기가 그녀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들었다.유해나는 이럴 줄
옆에서 전화기로 허풍을 떨던 주현철도 진정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바삐 전화를 끊고 그들에게로 달려왔다.“형부, 잘 왔어요! 여기 좀 봐요. 거의 다 됐어요. 내가 보기에도 실험 장비들이 잘 갖춰져 있어요. 곧 실험을…….”그러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정기가 짜증스럽게 그를 밀어냈다.주현철은 주효영을 바라보며 입을 벌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인상을 찌푸렸다.“매형…….”주현철은 어리둥절했다.그냥 상황을 보고했을 뿐이다.전에 진정기가 그에게 상세한 프로젝트 진도와 자료 등을 보고하라고 요구했었다.비록 그가 관리하는 게 아니지만 진정기가 그렇게 말했으니, 자기 손에서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주동적으로 보고를 했는데 진정기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아빠, 엄마…… 고모부랑 단둘이 얘기 좀 할게요.”주효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부부는 서로 한 번 마주 보며 의심스러워했지만,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해졌다.그들도 정확히 무슨 비밀로 주효영과 진정기가 이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주효영은 어렸을 때부터, 이 고모부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는데 지금은…….주현철은 아내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진정기가 데리고 온 수행원도 눈치껏 뒤로 물러나 그를 보호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가연이를 아직 찾지 못했어!”그들이 거리를 벗어나자, 진정기는 약간 조급해하며 말했다.“어떤 사람이 가연이가 차에 올라탄 것 같다고 말했어. 그 차는 김씨 가문의 것이야.”“김씨 가문?”주효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약간 불쾌해했다.“또 김씨 가문이야!”“이 일이 한소은과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까?”진정기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그녀를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전 실험실에 있던 사람들을 백신 기지에 무사히 들어가게 하는 겁니다.”“이 백신 기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요?”“3분의 1은 내 사람이다.”진정기가 대답
“고모부의 신분으로도 상관할 수 없는 건가요?”주효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렸다.진정기가 다시 설명했다.“내 신분이 낮지 않더라도 담당 부서가 다르면 내가 맡을 수 없어.”“쳇…….”주효영은 피식하며 약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모부가 얼마나 대단한가 싶었는데, 그게 전부였어요?”그녀의 비아냥에도 진정기는 반박하지 않고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한편, 멀리 옆에서 곁눈질하는 주현철 부부는 어리둥절하게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우리 효영이가 진정기의 무슨 꼬투리를 잡은 걸까? 나는 여태껏 형부가 이렇게 말을 잘 듣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예전에 내 누나 앞에서도 그는 이렇지 않았어. 이 느낌은 마치…….”주현철은 잠시 머뭇거리며 그 단어를 말하지 않았다.오히려 직설적으로 유해나가 말했다.“느낌이 마치 한 마리 개 같다는 거죠?!”주현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를 째려보았지만, 꾸짖지 않았다.그의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아까 딸한테 슬쩍 물어봤어요. 도대체 무슨 비밀인지…….”“그래서 효영이가 뭐라고 했어?”주현철은 매우 흥분했다. 사실 그도 매우 궁금했었다.“효영이가…… 들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대요. 그래도 들어야 하냐고…….”그 말을 하는 딸의 눈빛을 생각하니 유해나는 다시 소름이 돋았다.주현철은 어이가 없었다.“갈수록 이 계집애의 마음을 알 수 없어요!”유해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다 자기 말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져 한마디 덧붙였다.“어쩌면 우리가 딸을 너무 몰랐을지도 몰라요. 난 우리 딸이 그렇게 대단해서 어린 나이에 누구에게 독을 먹였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게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잖아요.”당시 주현철이 진정기의 말을 들었을 때, 마치 어불성설처럼 느껴졌다.어떻게 무색무취로 독을 먹일 수 있는지! 어떻게 장기적이고 만성적인 독을 먹인 건지! 게다가 독은 흡입하는 방식으로 중독된다니! 무슨 무협 소설도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