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일을 마치면 바로 널 데리러 갈 거야. 너…….”임상언은 잠시 멈칫하며 말을 이어갔다.“아빠가 옆에 없어도 홀로 잘 챙기고. 넌 다 컸어, 알았지?”“알았어요!”임상언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도 몸조심하세요!”이 말은 임상언이 눈물을 흘리게 할 뻔했다.임상언은 눈물을 겨우 참으며 마음속의 씁쓸함을 삼키고 또 삼켰다.“아들…….”그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도 전에 화면이 깜빡거리더니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아들! 아들!!!”임상언은 화면을 향해 달려갔지만, 화면은 이미 꺼졌고 아들의 귀여운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임상언, 시간 다 되었어!”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어둠 속에 있던 남자는 리모컨을 손에 쥐고 빛 아래로 걸어 나왔다.“약속한 대로 했으니, 당신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이 말을 뒤로하고 남자는 밖으로 나섰다.임상언은 하염없이 화면을 두드렸다. 이렇게 하면 아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하면 아들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두드리기만 했다. “내 아들을 놔줘요! 그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크크크크크크…….”남자는 웃으며 소리쳤다.“날 바보로 생각하는 거야? 네 소중한 아들이 내 손에 없었다면 당신이 이렇게 순종할 수 있을까? 임상언,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어! 그런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마.”“당신 아들은 내가 잘 돌보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면 이 아이가 계속 이렇게 평화롭고 무사히 지낼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지!”남자가 협박하는 말에 임상언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그는 이전에 이 조직의 수단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남자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임상언의 검게 변한 얼굴을 본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상관없으니, 한소은을 데려와. 이 실험의 마지막
“서진 씨 좀 어때요?”의사에게도 물어봤었지만 경씨가 계속 김서진의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묻는 게 가장 빨랐다.“한 번도 깨어나지 않으셨어요.”경씨의 대답은 언제나 그랬듯이 간단했다.깨어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태가 악화한 것은 아니다. 그저 깊은 잠에 빠져 눈을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한소은은 한 손의 장갑을 벗고 손을 들어 김서진의 맥을 짚었다.전보다 평온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적이 심했다. 아직도 그의 몸이 허약하고 불안정하다는 뜻이다.김서진의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도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를 계속 지켰다.이 독소는 실로 이상했다.이리저리 잘 숨는 건 물론이고 때론 맥을 짚을 때 단번에 나타나기도 한다.한소은도 처음에는 이런 상황인 것을 몰랐다.그녀는 단순히 김서진의 몸속에 독소가 다 빠져나가 맥을 짚어도 찾지 못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김서진이 다시 발작을 일으켰을 때야 바이러스가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이 바이러스는 생명과 생각이 있는 것처럼 숨어서 면역 계통을 피하고 자신을 위장하였는데 능했다. 이렇게 사람들과 열심히 투쟁 중이다.손을 다시 거둔 한소은은 마음속에 짐작이 조금갔다. 소독약으로 손을 깨끗이 씻고 장갑을 다시 끼고서야 경씨에게 시선을 옮겼다.경씨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서진을 지키고 있었다.“안 피곤해요? 여긴 서진 씨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가서 쉬셔도 되는데.”“괜찮아요.”경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래도 쉴 땐 쉬어야죠.”한소은이 그를 타이르며 말했다.“서진 씨가 깨어나지 않았는데 당신까지 쓰러질까 봐 겁나요.”“산에서 살 때 사냥을 라면 삼일동안 잠을 자지 않을 때도 있었어요.”경씨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리고 전쟁할 때도…….”말이 입까지 나오다 다시 멈추었다. 얼핏 들은 한소은은 깜짝 놀랐다.“전쟁터에 나갔었어요?”그러자 경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오래전 일이에요.”그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자, 한소은
“미안한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한소은은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X 부서로 가려고 했다.하지만 임상언은 그녀의 손목을 획 잡아당겼다.“심각한 문제에요.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해요.”고개를 숙여 당겨진 손목을 바라보던 한소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내가 무술을 할 줄 안다는 걸 알면서 이러는 건 일부러 내가 당신에게 손을 대게 만들려는 건 아니겠죠?”한소은의 눈을 바라보며 임상언은 천천히 손가락을 풀었고, 한소은은 즉시 돌아서서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연구소의 비밀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갑자기 임상언이 그녀의 뒤에서 물었다.발걸음을 멈춘 한소은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예요?”“그럼 김서진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도 알고 싶지 않은 거죠?”그의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한소은의 발목을 붙잡았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김서진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김서진이 이 병원으로 오면서까지 보안에 그렇게 신경을 썼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한소은은 잠시 망설였다. 지금 아직 임상언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지만, 결국 그는 진실에 가까웠고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다만…… 그를 믿어야 할지 말지 조금 머뭇거렸다.정말 그가 진실을 말해줄지, 아니면 함정을 파는 건지 알 수 없었다.“그냥 얘기 좀 하고 싶어서요. 가까운 곳,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요. 여기서 얘기하기는 불편하니까!”임상언은 한소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을까 봐 진심이라고 장담하듯히 한마디 덧붙였다.“당신은 무술을 할 줄 알잖아요.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거예요.”한소은은 생각해 보니 말이 되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다.“가요.”마침 병원 근처에 식당이 있었다.너무 급한 나머지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던 지라 임상언과 얘기를 나누면서 뭐라도 조금 먹을 생각이었다.자리에 앉은 한소은은 무심코 몇 가지 요리를 주문했
“이 연구소는 그냥 쪼개져 나온 분신일 뿐, 진짜 기지는 해외에 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임상언은 빙 둘러 아주 미묘하게 말했다.정확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소은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이곳에 있는 건 그중 한 지점에 불과하고 진짜 본체는 해외에 있다는 말인가요?”임상언이 고개를 신중하게 끄덕이며 말했다.“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보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해서 우리가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한소은 씨, 더 이상 조사하지 마요. 계속 조사하면 당신이 위험할 수 있어요.”“그럼 내가 그만 조사하게 하려고 이 모든 얘기를 내게 털어놓는 건가요?” 한소은은 웃으며 조롱하듯 말했다.“아니에요!”임상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당신과 거래를 하고 싶어요.”“거래?”“연구실도 돌아가서 실험을 계속하세요. 이번에는 더 깊은 프로젝트에 접촉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실험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생각하지 말고 실험에만 집중해 줘요!”“그렇다면 대가는?”한소은은 궁금했다. 거래인 만큼 당연히 교환 조건이 있을 테니까.임상언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김서진이 감염된 바이러스 샘플을 줄게요. 그것으로 김서진을 살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그의 말을 들은 한소은은 큰 소리로 웃을 뻔했다.“해독제도 아니고 고작 바이러스 샘플을 준다고요?”‘정말 말 같지도 않네!’그녀는 적어도 해독제를 조건으로 내걸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바이러스 샘플이라니! 그렇다는 건 스스로 해독제를 만들라는 말이다.만약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들과 상관이 없다고 잡아뗄 예정인가 보다.그렇게 되면 김서진을 살리지 못해도 계약으로 인해 계속 그들을 도와 실험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역시 비즈니스 하는 사람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할 줄 아는구나!’잠시 침묵하던 임상언이 천천히 말했다. “사실 이 바이러스는 아직 해독제가 없어요.” “뭐라고요?!”너무 놀란 한소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테이블 위에
“특정 사람만 감염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어요!”당연히 한소은은 그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집요하게 물었다.“누구를 상대로? 누구를 노리는 거죠?”그녀의 끈질긴 물음에 임상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두 손을 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이건 아시아 사람을 겨냥한 거예요.”“원래?”한소은이 질문을 이어갔다.임상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지금 상황이 조금 통제를 벗어났어요! 당신도 봤겠죠. 바이러스는 빠르게 확산하고 있어요. 게다가 통제할 수 없게 되었죠. 지금 발견한 곳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감염되었어요. 그렇다는 건 원래의 실험은 실패했다고 봐도 돼요. 지금 바이러스는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감염시키고 공격하고 있어요.”“연구소 측에서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어요. 이전에 당신이 만든 몇 가지 완제품은 비록 대량 생산은 하지 않았지만, 효과적이었고 부작용이나 통제할 수 없는 효과도 없었기 때문에 보스는 당신이 다음 작업을 계속하기를 원해요.”할 수만 있다면 임상언도 그녀를 다시 여기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능력이 이미 상사의 눈에 띄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처음에 보스는 한소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었다. 이 교수가 소개해 들어온 사람이었고 이 교수가 한소은을 칭찬하는 건 몇 번 들은 적 있었을 것이다.나중에 이 실험이 그녀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천천히 발견했다.한소은은 한낱 조향사였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한약에 대한 연구와 성취가 있고 약초에 대해 친숙 함과 통제력이 연구소에서는 그녀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주효영의 능력도 뛰어났지만, 그녀는 너무 앞서 나가기에만 급급해 인간의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약의 극단적인 효과를 지나치게 추구했다. 그녀의 과욕으로 인해 실험 대상자가 몇 명 사망한 적도 있었다.보스는 실험 대상자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지만 결과의 속도와 효율에는 관심이 있다.그래서 보스는 한소은이 연구소로 돌아가서 다음 실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
이 말을 듣고 웨이터는 안심하고 조용히 물러나며 방문을 닫았다.한소은은 임상언을 바라보며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임상언 씨, 그 쪽에서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걸 줬길래 그들의 개가 된 거지?”어쨌든 친구로서 진심으로 대했고, 입장이 다르더라도 말을 심하게 하지 않았는데, 그의 몇 마디가 한소은을 정말 화나게 했다.김서진은 지금 죽음과 싸우며 병실에 누워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그런데 임상언인 김서진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알면서, 그가 지금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면서 가 보기는커녕 이런 말과 거래를 하자고 말하다니!한소은은 여전히 앉아 있었고 임상언은 자리에 서서 한소은을 내려다보았다.그는 담담해 보였지만 한소은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그녀가 화를 내며 컵을 떨어뜨리고 험한 말을 내뱉어도 임상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임상언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입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뭘 줬냐고?”“그 사람들이 내 아들을 데려갔어.”그는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우는 것보다 더 슬퍼보였다. 컵을 든 손은 꽉 쥐고 있어서 손가락 마디마디에 핏줄이 튀어나왔다.“뭐?!!!”한소은은 충격을 받았다.“임남이…….”“거의 반년이 돼가고 있는데 남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을 수 없어. 모든 인력, 재력을 동원해 전 세계에 투입했는데도…… 단서 하나도 찾을 수 없었어.”임상언은 고개를 떨구며 마침내 마음속으로 참아왔던 말을 모두 쏟아냈다.“그럼 난 이제 어떻게? 김준이 잡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그는 고개를 기울여 한소은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정당당하게 화를 내며 임상언을 비난할 수 있었던 한소은은 이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갑자기 왜 그가 아들의 삶과 전혀 관계없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비교하면 아들의 삶을 선택할지 물었는지 이해가 되었다.그 당시에는 그런 가상의 질문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내가 당신을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당신의 무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아!”임상언은 한소은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내가 당신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들이 내 아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도 알고 있어…… 미안해!”“차에 독을 탄 거야?”한소은은 눈살을 찌푸렸다.“걱정하지 마. 아주 적은 양의 마취제일 뿐이니 배 속의 아이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 다만 당신은 나와 같이 가야겠어…….”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섰던 임상언의 몸이 흔들리고 눈앞의 풍경이 그녀와 함께 흔들리는 것 같았다.“당신…….”한소은은 바닥에 떨어진 컵 잔해들을 가리키며 웃었다.“당신 보스가 왜 나를 고용하려 했는지 잊었어? 이 분야에서는 내가 전문가니까!”그녀는 컵을 들고 차 냄새를 맡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차 안에 무엇이 첨가되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임상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들어있는 약은 실제로 아이를 해치지 않을 것이지만 잠깐 혼수상태에 빠뜨릴 것이다.한소은은 몰래 두 사람의 컵을 바꿨다.“너…….”임상언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약효가 빠르게 나타나자 곧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볼 수 없었다.“날 탓하지 마! 난 그저 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당신이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나도 어쩔 수 없어. 걱정하지 마. 당신 아들을 구해 주겠다고 약속할게!”한소은은 눈앞에서 서서히 쓰러져 테이블에 주저앉은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의 눈꺼풀은 주체할 수 없이 감겨 있었다.한소은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방문을 열고 나가면서 웨이터에게 말했다.“내 친구가 취했으니 조금만 더 자게 놔둬요. 내가 계산할게요! 오후 내내 이 방의 값도 내가 낼게요!”……한소은이 X 부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예정된 시간보다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임상언과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한 한소은은 그의 아들이 그들에게 잡혀있다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런 이유로 인해 그가 연구소의 일에 간섭하고 투자까지
“내 말 끊지 마!. 지금 내가 말하는 내용은 모두 매우 중요한 것이니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큰코다쳐.”모 선생은 언짢은 듯 한소은에게 말했다.어깨를 으쓱하며 한소은은 그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다.사실이 전염병은 사소한 것이 아니며 조심하는 것이 옳았다.벽에 붙은 주의 사항을 흘끗 훑어보며 한소은은 하품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모 선생이 규칙과 규정을 설명하는 걸 끝나길 기다렸다.그가 끝낼 때까지 겨우 잠을 참다 마침내 가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그녀는 이 부서가 전염병은 얼마나 연구가 되었는지, 자신이 배운 것과 얼마나 다른지, 더 나아가 그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알고 싶었다.보호복을 갈아입고 소독을 받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조금 실망했다. 사실 그녀는 이곳이 훌륭한 실험 기지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짧고 빈 복도였다.모 선생이 앞에서 걷고 한소은은 뒤에서 따라갔다. 앞에 넓은 엘리베이터가 있었다.한소은은 모 선생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층까지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한층 한층 내려갈수록 한소은은 기분이 좋아졌고 이곳에 대해 아주 살짝 감명받았다.역시 국가 수준의 연구소는 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고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내부에는 큰 연구소였다.연구소의 사람들은 고글을 쓰고 보호복을 입은 상태로 바쁘게 실험하고 있으며, 잡담하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고 모두 자기의 실험에만 열중했다.보호복을 입은 순간부터 모 선생은 한소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그는 가슴 앞에 칩 카드를 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칩을 적외선 스캔해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한소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기 있는 모든 것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만 했다.전의 연구소 때문인지 한소은은 이제 이 모든 것에 대해 관찰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 실험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아이디어도 참신했고 이 교수의 초기 의도를 믿었었다.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