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원철수를 찾아내지 못한 것은 한소은도 예상했던 일이다. 어쩌면 진작에 눈치를 채고 원철수를 다른 곳으로 이송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탐지견도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니! 그렇다는 건 원철수가 연구소에서 실종된 게 아니거나 그들이 무슨 수를 써서 원철수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는 것이다.“여보세요? 언니 듣고 있어?”한소은의 대답을 듣지 못한 오이연이 그녀를 불렀다.“듣고 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니 경찰 쪽에서도 뭐라 말 못 하고 그냥 계속 수색한다고만 말했대.”잠시 멈칫하던 오이연이 말을 이어갔다.“근데 이 사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연구소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대.”"연구소를 옮긴다고?"한소은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어디로?""글쎄, 아직 부지 선정 중이라고만 했어. 확정되지 않은 거 같아."연구소를 옮긴다는 건 실제로 이상했다.‘그쪽에서 벌써 눈치를 채고 자리를 뜨려는 건가?’“응, 알았어. 이것 말고 다른 일은 없어?”한소은은 한숨을 내쉬더니 오이연에게 물었다.“없어. 아, 참, 한 가지 더 있었네…….”한소은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에 오이연의 목소리를 듣고 핸드폰을 다시 귀로 갖다 대었다.“무슨 일?”“전에 언니하고 향수 계약 건을 제기했던 y국 쪽에 어떻게 답장 보냈어? 그쪽에서 다시 메일이 왔는데 며칠 후에 제성에 도착한대. 언니보고 시간 내서 얼굴 보고 얘기하자더라.”이렇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여전히 올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거절 의사를 밝힌 것임을 잘 알면서도 직접 만나러 오다니.상대방이 정말 제성에 오면 다시 거절하기가 어려울 것이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소은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알았어, 시간 정할게. 그 사람이 제성에 도착하면 그때 다시 얘기해!""응."오이연은 간단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지 않았다.한참이나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그…… 나한테 할 말 없어?""몸 잘 챙기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나도 네가 지
지하실에서 올라온 한소은은 집 밖으로 조금 더 걸어 나가서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핸드폰의 위치 추적 기능은 꺼져 있었지만, 의도를 가진 누군가가 핸드폰을 추적할까 봐 그녀는 안심할 수 없었다."여보세요?"한소은이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아닌 엉엉 우는 소리에 한소은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귀에서 멀리 뗐다.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다 울 때까지 기다렸다.그러나 상대방은 멈출 생각이 없었고 울면서 말하기 시작했다."소은 언니, 나…… 엉엉…… 나…… 엉엉……."한소은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해. 다 울고 말해도 좋아."‘얘가 왜 이러지?’중요한 것은 진가연이 평소에는 이렇지 않았다. 그녀가 갑자기 이렇게 우는 걸 보면 뭔가 큰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원래 불만이 있어도 마음속에 담아두는 성격인데, 오늘은 갑자기 전화로 엉엉 울고 있었다."이제 다 울었어!"진가연은 이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천천히 말해, 기다릴게. 아니면 나중에 다시 전화해도 되고!"한소은은 한숨을 쉬며 다소 무력한 기분이 들었다."끊지 마! ……."한소은이 전화를 끊을까 봐 진가연은 서둘러 킁킁거리며 힘겹게 목을 축였다.한소은은 전화기 너머에서 진가연이 울음을 그치려 노력하는 걸 알 수 있었다.그녀는 살짝 한숨을 쉬며 진가연이 마침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소은 언니, 내 아빠가…… 변했어."이 말에 한소은은 어리둥절해졌다."네 아빠는 왜?"한소은은 진가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잠시 이해하지 못했다."오늘 외숙모와 외삼촌, 그리고 사촌 언니가 우리 집에 왔어. 아빠는 내가 독에 중독되었다는 일을 대놓고 그들에게 말하고 사촌 언니를 감옥에 가두어 벌을 받게 하겠다고 말했어.”진가연은 숨을 헐떡였지만 적어도 자기 말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한소은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그래서?""그러다
"연구소의 비밀?!"한소은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연구소! 또 연구소야! 모든 것이 다 그 연구소와 연결되어 있어!’자기가 떠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연구소에는 정확히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응."진가연은 이 사건들과 연구소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몰랐고, 그저 마음속의 억울함을 토로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친구가 많지 않았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한소은이 떠올랐다."연구소의 …… 무슨 비밀?"한소은은 숨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진가연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모르겠어. 사촌 언니가 중요한 문제라면서 아빠와 단둘이 얘기해야 한다고 했어.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서재로 갔고 나중에 나오고 나니 아빠가 사촌 언니에게 설득당해 있었어"“아빠가 내가 독에 중독된걸 더 이상 따져 묻지 않는 건 둘째 치고 백신 프로젝트 어쩌고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했어.”한참이나 말하니 진가연은 조금 진정되었다. 더 이상 울지 않았지만 억울한 느낌은 여전했다. 그녀는 콧소리가 섞인 말투로 계속 말했다.“소은 언니, 내 사촌 언니가 아빠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누가 말 몇 마디로 아빠를 설득한걸. 본적 없었어.”"……."한소은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멀리에는 하늘을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 속으로 걷다 안개가 자욱한 숲에 뛰어든 것처럼 모든 곳이 나무였고 모든 곳이 미스터리였으며 길을 찾을 수 없었다.모든 사건이 연구소와 관련된 이유가 무엇일까?"소은 언니?""네 아빠가 마음을 바꾸게 하려면 몇 마디 말로는 부족할 것 같아."한소은이 가볍게 말했다.진가연은 흠칫 놀라며 한소은에게 물었다."소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아무것도 아니야. 어쩌면 연구소와 관련된 일은 정말, 정말 중요해서 네가 독에 중독된 것도 잠시 제쳐둘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거겠지."한소은은 심호흡 한번하고 미간을
"좋아, 그럼 네 아빠가 변했다고 치자.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네 아빠와 연을 끊기라도 하겠다는 거야?"한소은은 진가연이 홧김에 하는 말이라는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따라 그녀를 달래려 했다."못 끊을 것도 없지! 내가 두려울 게 뭐가 있어?"진가연은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한소은은 그런 진가연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버렸다."두렵고 말고 문제가 아니잖아. 네가 정말 네 아빠와 연을 끊고 살 수 있을 거로 생각해?”“당…… 당연하지! 내가 못 할 거 같아?”“이 바보 같은 계집애야! 아빠와 한번 싸웠다고 연을 끊겠다는 거야? 다 큰 사람이 일의 장단점을 따져볼 줄도 알아야지! 어쩌면 네 아빠가 다른 생각이 있으실 수도 있잖아! 내가 네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조금 더 기다려 봐.”사실 한소은은 진씨 가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그녀는 그곳에 있지 않았고 보지 못했지만 진가연의 말을 듣고 나니 분명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한소은은 진정기와 몇 번 만난 적 있었다. 그가 정말 진가연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눈에 보였다. 게다가 김서진이 자기 앞에서 진정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언급한 적 있었기 때문에 작은 이익을 위해 자기가 가장 아끼는 딸을 버리면서까지 타협할 것 같지는 않았다.어쩌면 말 못 할 비밀이 숨겨져 있거나 진정기가 따로 계획이 있는지도 모른다."장단점이 뭔데, 장단점이 뭔데! 아빠는 나를 버렸어!"진가연은 한소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아빠가 두 가지 선택지 중 자신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지 마. 네 아빠는 널 아주 잘 보호 해 주셨어. 넌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아! 많은 것들은 표면적으로 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야.”“아무튼, 진정하고 잘 생각해 봐. 네 아빠가 네게 어떻게 잘해줬는지 생각해 봐. 정말 네가 생각한 것처럼 널 위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사람인지. 그건 네가 더
임상언이 원철수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흰색 의사 가운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남자는 주사기와 물약이 담긴 그가 가장 익숙한 쟁반을 들고 있었다.남자는 몸을 구부리고 원철수의 팔 하나를 잡고 바늘을 찔러 넣었다.모기에게 물린 것처럼 따끔함에 원철수는 몸부림치며 주삿바늘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몸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아…… 아……."원철수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지만, 마치 누군가가 목구멍을 꽉 쥐고 있는 것처럼 소리를 낼 수 없었다.한참이 지나서 흰 가운을 입은 남자는 빈 주삿바늘을 뺐다. 알 수 없는 물약이 원철수의 몸에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러났고 임상언만 그 자리에 서서 조용히 원철수를 지켜보았다.원철수는 욕을 퍼붓고 싶었다. 도대체 자기에게 무슨 약을 주입한 것인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그의 입은 마치 천근만근의 돌멩이에 짓눌린 것 같았다.아직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죽은 것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더욱 괴로웠다!예전은 적어도 자신이 연구소 지하에 갇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은 여기가 어디인지, 이 남자가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이 어둠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원철수의 몸은 금방 반응이 생겼다. 덥고 짜릿한 느낌에 수만 마리의 개미가 혈관을 타고 기어가며 자기의 살을 물어뜯는 것 같았다. 괴로움에 울부짖고 싶었고 눈앞의 남자에게 욕을 하고 싶었다."아 ……."얼마 지나지 않아 원철수는 드디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원철수는 처음에 얼어붙었다가 순간 기쁨에 휩싸였다.그러고는 임상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개X, 짐승 새끼!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들과 한통속이었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내 몸에 뭘 주입한 거야?
원철수의 말에 임상언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도 완전 바보는 아니네!”"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다고?!"너무 충격을 받아 원철수의 목소리가 갈라졌고, 짐작은 했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역사에서 무자비한 무리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인체로 실험하는 건 거의 없었다.이건 반인류적이고 학살 적이며 국제기구의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실험이다.의학을 어떻게 연구하고 어떤 약을 발명 하더라도 실험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이들이 정녕 사람인가!’그리고 그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자신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다.임상언은 대답하지 않고 냉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안경 뒤의 눈은 심연처럼 깊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뭘 쳐다봐, 내가 뭘 잘못 말했어?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했다면 당신들은 정말 짐승 같은 놈들이야! 아니! 당신들은 짐승보다 더 나쁜 놈들이야! 당신들, 당신들 ……."원철수는 욕을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무언가에 꽉 막힌 듯 목구멍이 막혀서 숨이 찼다.그뿐만 아니라 몸의 나머지 부분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듯 불편했고 피부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어느 순간 그는 피부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아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임상언은 여전히 옆에 서서 종이와 펜을 꺼내 들고 무엇을 기록하는지 원철수가 고통에 발버둥 치든 말든 모르는 체하며 서 있었다.이런 종류의 고통은 원철수를 다른 것에 신경 쓸 수 없게 만들었다.마치 달군 기름 안에 빠져 탈출 할 수도 이 고통을 끝낼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원철수는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가슴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수년 동안 의사로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니 어쩌면 그런 환자를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 이상하고 고통스러운 감각이었다.고통과 투쟁은 얼마나 반복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이나 지속되다 마침내 고통이 서서히 진정되었다.원철수는 이미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 더 이상 말을 할 힘도 없어
남자는 임상언이 가져온 결과를 만족해 하지 않은 것 같았다."그저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보스도 아시잖아요. 난 약에 대한 프로가 아니어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임상언은 두 손을 벌리며 내 잘못이 아니라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런 건 주효영 씨가 해야 맞다고 봐요.""그러니까 지금 주효영 대신 당신을 보냈다고 불만이 있는 거야?”남자는 불쾌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임상언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의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서 다른 사람이 듣기 거북했다.“그 뜻이 아니에요.”임상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저 내가 이 분야의 프로가 아니니 데이터상으로 작은 오차가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아무튼…… 나 때문에 실험의 진도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이라는 말이죠.”“음…….”진지하게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주효영이 요즘 다른 실험을 하고 있어. 그 실험이 더 중요하고,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실험이야. 지금은 인력이 부족해. 그렇지 않았다면 널 여기로 보내지도 않았을 거야."임상언은 침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도 알아, 당신은 아직도 부드러움과 친절함을 버리지 못했어. 왜, 이런 실험을 하자니 마음이 약해지기라도 한 거야?”남자는 높은 의자에 서서 테이블 위로 올라가 임상 언 더욱 조금 더 높은 것에 섰다. 이게 그가 위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임상언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요."임상언은 자신이 부인해도 남자가 믿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가볍게 말했다."허허허허 ……." 남자는 이상한 웃음을 터뜨리며 임상언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조금? 당신들은 정말 위선자야! 당신이 나를 위해 기꺼이 이런 일을 하고 내 명령을 기꺼이 수행하는 건 다 당신 아들을 위해서잖아!”“그래서 인간의 본성은 모두 이기적이라고 하는 거야. 친절한 척하는 이유가 뭐지? 이 실험이 성공하면 세상이 어떻게 뒤집
경찰이 얼마 전에 원래의 연구소를 조사했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었다.더군다나 이곳은 제성이다. 이런 곳에서 아무도 몰래 어떤 일을 벌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이런 낡은 병원의 지하실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쉽지 않았다.여기에 있어야만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고 조용히 실험할 수 있다."어렵긴 뭐가 어려워! 그냥 하기 싫은 것 같은데!"남자는 으르렁거렸다. 그는 임상언이 어떻게 연구소를 옮길 곳을 찾을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다만, 하루 종일 이런 곳에 있으면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이사할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면 당신 아들은……."생각 끝에 남자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임상언을 협박했다.순간 임상언의 안색이 바뀌었다."내 아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당신이 내 아들을 죽인다 해도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예요. 나는 최선을 다했고, 실험도 곧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어요. 여기보다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은 없다고요!”“게다가 여긴 병원이니 실험에 영향을 주지도 않아요.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실험의 차질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잖아요!”임상언은 그 남자가 정말 자기의 아들을 해칠까 봐 두려워 재빨리 말을 꺼냈다.그는 이미 아들에게 많은 걸 빚졌다. 더 이상 아이가 다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임상언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남자는 만족해했다. 남자는 그를 불안하게 만들고, 당황하게 만들고, 자신을 위해 일을 잘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알았어. 그럼 어쩔 수 없지!"남자는 손을 흔들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당신이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진작에 다른 사람을 보냈으니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실험하기에 매우 크고 매우 적합한 장소로 연구소를 옮길 거야. 그러니 이 시간 동안 이사할 준비를 하면서 실험 관찰일지를 잘 기록해 둬. 나머지는 당신이 신경 쓸 거 없어."임상언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벌써 장소를 찾았다고요? 어딘데요?""그건 당신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