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은이 샤워를 하고 나오자, 조현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숨소리가 깊은 걸 보니 오늘 정말 피곤했던 모양이다.살금살금 그녀에게 걸어가 이불을 덮어준 후, 스위치를 끄고, 조심스럽게 침실에서 나왔다.여기의 스위트룸의 다른 한 방은 소파와 테이블 같은 것이 있었고, 다 먹은 야식 봉투를 현아는 테이블 위에 올려둔 것 같았다. 한소은은 아직 잠이 오지 않았다.오늘 시음회는 꽤 성과가 있었다, 출시된 몇 가지 신제품들은 완전히 다르지는 않았지만, 모두 이번 주제와 잘 어울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로젠의 그 향수를 나중에 주최 측에서 제공한 샘플을 테스트해 봤을 때 향은 국화꽃 향과 약간 비슷하지만, 전문가라면 한 번에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어쩌면 로젠은 잔머리를 굴려 정제된 화학 향신료를 사용했을 것이다, 향은 국화와 비슷했지만 달랐다. 어쩌면 품평에 참여한 사람들을 테스트해 보려는 심상이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자신의 실력을 잘난 체하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그는 자신의 이 작은 수법이 간파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실력 또한 그리 만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너무 오만방자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강시유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강시유의 말에 맞장구를 쳐 그녀를 모든 사람의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 방법 또한 꽤나 흥미로웠다.휴대폰이 윙윙 두 번 진동했고, 한소은은 폰을 들고 한 번 보았다. 상대는 김서진이었다.“양치기 소년은 결국 늑대에게 잡아먹혔죠.”.한소은은 말없이 문자를 보았다.한동안 문자에 대해 생각을 했다, 지금 자신을 양치기 소년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한소은은 분명 그에게 찾아가겠다고 했었고, 미처 그를 찾지 않았기에, 거짓말을 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양치기 소년에 비유한 것이다.늑대한테 먹힌다니! 생각하는 꼬락서니 하고는!삐딱하게 말도 제대로 안 하고, 굳이 빙빙 돌려서 말하는 모양새가 너무 어이없었다. 빙빙 돌려서 말하면 상대
김서진 그녀를 향해 키스하고 뜨겁게 안아주고 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멈췄다.손가락으로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주무르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난 당신을 원해요."한소은은 그를 껴안고 "나는 정말 당신을 원했고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그녀의 눈빛은 확고했었고, 김서진 또한 절대적으로 그것을 믿었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품에 문지르고는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끊임없이 가볍게 키스만 했다. "나도 알고 있어요.”"그럼 왜?" 소은은 조금 난감했다."나는 당신한테 경솔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에게 기대어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한소은을 아기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소은은 말없이 두 팔을 벌려 그를 감싸 안았다. “솔직히, 난 괜찮아요.”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겉치레일 뿐이었다.그는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흐뭇해하며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이제 자자."라고 말했다.한소은은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리고 그녀는 간격을 좁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이렇게 푹신한 침대, 이렇게 부드러운 입술, 자기가 마음에 품었던 그녀가 바로 그의 품 안에 있으니, 아무리 성자라 해도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이것이 바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고, 다른 조건은 필요 없었다, 다만 서진의 마음속에는 오직 자신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이게 내 선택이에요!"라고 말한 소은은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당겼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붉은 입술이 살짝 벌렸고 뽀얀 치아가 사이로 드러난 그의 불룩한 목젖 부근을 살짝 깨물었다.한소은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날이 밝기도 전이었다, 그녀는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눈 밖에 파란 장막이 깃든 하늘을 보고, 다시 시간을 보니, 다행히도 4시였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돌려 아직 잠자고 있는 김서진을 바
또 조현아다. 그는 눈썹을 찡그리며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현아를 본부로 불러야겠네.”한소은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보복하려고 하지 마요, 대표님!"그녀를 본부로 불러 들이면, 전 새로운 동료가 필요해요, 안 그럼 저한테는 동료가 한 명도 없잖아요, 그러다 남직원이라도 오게 되면.."이라고 말꼬리를 흘렸다.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서진은 그녀를 단숨에 자신의 품 아래로 끌고 와 몸으로 짓누르며 표독스럽게 바라보았다. “당신이 감히?”한소은은 살포시 웃으며, "설마요, 그보다는 현아 씨가 있는 게 낫지, 안 그래요?"그는 흥하고 소리를 냈지만, 그녀를 억누르는 힘을 아까보다 덜했고,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차라리, 공개합시다."얼굴에 웃음이 띠고 있던 한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서진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쨌든 그는 여전히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줬다, 애초에 비밀 결혼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가지지 않았다, 어쨌든 결혼은 했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든 말든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하지만 더 이상 이렇게 몰래 만나는 날들은 그에게 조금의 자극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원망스럽기까지 했다."어쨌든 난 당신의 아래층에 묵고 있으니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잖아요!" 한소은은 그를 가볍게 두드려 달래며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곧 있으면 돌아가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은 충분해요!" 김서진은 코웃음을 내면서 가볍게 흥얼거리다, 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래, 함께 할 시간은 아주 충분하지!”한소은은 그의 말투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멍을 때리다 이내 그의 눈을 노려보며 천천히 얼굴을 붉혔다, "이 변태!”그리고 그를 밀어내고 일어섰다.——날이 밝았다.햇빛이 눈부시게 훤히 들여다보이는 창밖으로 쏟아져 들어왔다.눈꺼풀이 흔들리면서 강시유가 겨우 눈을 떴다, 창밖의 끝없는 절경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온몸이 시
한소은은 살금살금 방문 앞에서 카드를 긁고 방에 들어가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보이도록 했다."돌아올 줄은 아시나 보죠?" 돌아서서 문을 닫고 있는데 뒤통수에서 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소은은 깜짝 놀라 숨이 턱 막혔다."어, 깼어요?" 머리를 돌려 조현아를 돌아보니 그녀는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자신을 보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내가 깨운 건가요? 아이고, 내려가서 쓰레기 좀 버리고 근처에서 뭐 좀 살려고 했는데, 시끄럽게 해서 미안해요!"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말들을 쏟아냈다."그래요!" 무거운 흥얼거림으로 조현아는 "계속 지어내보세요!”라고 말했다. "뭘 지어내요?” 한소은은 두 눈을 깜박거리더니, "에이, 너무 일찍 일어났나 봐요, 피곤하네요, 가서 눈 좀 붙일게요!" 하면서 기지개를 켜고 방으로 가려고 했다.그러나 현아의 동작이 더 빨랐다, 그녀는 다리를 뻗어 소은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로 도망가요!"한소은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 "뭘 도망쳐요, 자러 가는 건데!" “안돼요! 솔직히 말해보세요, 어젯밤에 망나니처럼 어디를 돌아다니신 거예요?" 그녀는 마치 심문하듯 그녀를 캐물었다.한소은은 몇 번 입맛을 다시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망나니 같다니!“아니에요, 내가 누구랑 놀아요! 어제 샤워하고 나왔는데 당신은 이미 자고 있던걸요, 나도 좀 쉬다가 바로 잤어요. 내가 당신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을 뿐이지, 내가 무슨 망나니에요, 왜 그렇게 말해요!"손을 뻗어 그녀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조현아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잡았다, "새벽 1시에 깨어났는데, 소은씨는 어디에도 없던걸요? 진정 당신이 잤다고 말할 수 있어요? 몇 시에 일어났어요? 한시에 일어나서 쓰레기를 버리고 난 후 뭐 했나요? 지금까지 쓰레기를 버린 건가요?”소은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도 현아가 그렇게 일찍 깨어날 줄은 몰랐다.이 꼴을 보니 계속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설마 밤새 안 잤어요?" 가까이 가서 그녀의 얼굴
그녀가 자신을 걱정해서 이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소은은 이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고 그녀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해주었다.하지만, 자신과 김서진과의 관계를 공개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다, 일부러 숨기는 것이 맞았기에, 나중에 사과할 수밖에 없는 도리였다."걱정 마요, 제 친구도 여기의 사람이 아니에요, 해외에서 왔어요, 그가 이쪽으로 온 것도 마침 일이 있어서 온 것이고 그래서 만났을 뿐이에요."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었다."이렇게 늦게 만난 것은 그가 막 일을 끝냈기 때문이었고, 낮에 각자 할 일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밤에 뛰러 나갔다가 길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스러운 해명이었다.생각에 잠긴 듯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던 현아는 갑자기 되물었다, "남자인가요?"대꾸할 겨를도 없이 말문이 막힌 그녀의 표정을 보고 조현아는 알아차렸다."남자친구인가요?" 곧이어 현아가 되물었다..한소은은 반쯤 포기한 채 "그런 셈이지!"라고 말했다.혼인신고를 했으면 남편이고, 혼인신고를 안 했으면 남자친구인 셈이다, 어찌 됐든 비슷하니까."네." 현아는 긴 숨을 내쉬었더니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현아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소은은 조금 웃겼다. "어째서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당신이 매우 기뻐하는 것 같죠?” 이 장면은 마치 엄마가 딸이 만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상황 같았다."솔직히 아주 기뻐요.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당신은 그러지 않았다는.."그녀는 멈칫하더니 말을 잇지 못했다.그녀가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니, 한소은은 어젯밤 품평회에서 못다 한 말이 떠올렸다.그때도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말 꺼내는 것을 어려워했었다.당시 그녀 또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 또다시 언급되자 "뭐가 그러지 않았다는 거죠?"라고 물었다."아닙니다, 다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입니다."라며 손을 흔들었다, 유언비어를 믿었던 자신이 창피했다.하지만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한소은은 대
한소은은 태연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환아의 누구 같은데요?”이를 지켜보던 조현아는 “뭐가 누구예요, 모든 것이 오해로 밝혀진 마당에. 회장님이 당신을 남겨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전 그것이 절대 인맥이나 운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는 것도요.” 조현아의 이 말 한마디는 한소은에게 충분히 긍정적이었다."고마워요, 그렇게 생각해 줘서.”"됐어요, 아부는 여기까지 떨죠! 주무신다고 하셨죠? 어서 가서 눈 좀 붙여요, 하지만 너무 오래 주무시면 안 돼요.” 조현아는 시계를 한번 보더니, "재배지에도 가봐야 하니까요"라고 그녀에게 일러주었다."재배지?" 한소은은 조현아의 말을 되풀이하다 곧 알아차렸다.진해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화초가 재배하고 있었다, 따뜻한 기후는 화초 재배에 적합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넓은 재배지가 있었고, 품종이 많을 뿐만 아니라 인공 합성 배아로 새로운 품종도 발견했고 그 수량 또한 압도적이었다.조향사로서 자연에서 천연 향료를 찾는 것은 가장 좋은 선택지였다, 자연이 우리에게 내려준 선물과도 같은 풀들과 꽃들은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들은 정제와 2차 가공 거쳐 다양한 향을 지닌 향수 또는 향료로 변한다."그럼 잠은 나중에 자고, 지금 바로 출발해요." 한소은은 시계를 한번 보더니, “씻고 나올게요, 옷만 입고 바로 출발해요.”라고 말했다."괜찮아요?" 조현아는 그녀가 화장실 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괜찮아요, 밤에 잠깐 잤어요." 말을 마치고 보니 그녀는 문득 자신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아를 바라보자, 과연 현아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됐어, 해명을 제대로 못할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을 거야.곧 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현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아침식사를 좀 해야겠네요. 지금쯤이면 조식도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막 문을 나서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누구세요?" 근처에 있던
그는 정말 세심했다!아침밥을 먹고 나니 7시가 채 되지 않았고, 밖은 선선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일교차가 조금 심하기는 했다.한소은은 얇은 외투를 걸치고 선글라스를 꼈다, 재배 기지에 갔으니 당연히 햇볕에 타지 않도록 자외선 차단에도 신경 써야 했었다.이번에 그녀들을 데리러 온 것은 롤스로이스가 아니라 지프차였다.현아의 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 번쩍이었다. 이런 차는 외형도 정말 멋있었고 험한 길에 비교적 잘 어울렸다. 오늘 사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회사에서 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쓸 줄은 몰랐네요, 출장 가는 동안 이렇게 다양한 차종을 제공하는 줄도 몰랐어요."바깥 풍경을 보며 조현아는 감탄을 금치 말했다.이어 고개를 돌려 한소은을 바라보았다.한소은의 머리는 창문에 닿아 있었고, 그녀는 자신에게 닿은 현아의 시선을 느꼈지만, 뭔가 시선을 마주치면 들킬까 봐 모른 척하고 계속 창밖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조현아는 갑자기 그녀의 귀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혹 남자친구가 환아의 고위직은 아니겠죠?"소운은 말없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흘겨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왜 내가 환아에 가지 않고 여기에 왔겠어요?”현아 역시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에이, 아무튼 이번 대우는 정말 훌륭해요, 앞으로의 출장에서 이런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전 너무 슬플 거예요." 조현아의 하소연을 소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화원에는 금방 도착했고, 안쪽으로 들어서자 드넓은 꽃밭이 길을 따라 펼쳐진 모양새는 오색찬란했고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줬다.이 화원은 육안으로는 전체 면적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넓었다, 차에서 내리자 향긋한 꽃향기가 코를 찔렀다."에취, 에취.” 두 번 연달아 재채기를 했고, 한소은은 마스크를 꺼내 꼈다.그녀의 미각은 아주 예민했고 수백 가지의 향을 잘 구분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진한 향을 맡게 되면 재채기를 하기 일쑤였다.현아 역시 그녀의 행동
화원의 사람들이 허풍을 떤 것은 아니었다. 그곳의 크기는 엄청났고, 두 사람은 오전 내내 걸었더니 다리가 시큰거렸다, 아직 다 걷지도 못했고, 어림잡아도 이미 면적의 3분의 1은 걸은 것 같았다."자, 이제 돌아가도 될 것 같아요. 이따가 모든 꽃의 샘플을 가져오면, 좀 더 고민해 보고 결정을 내리시면 될 것 같아요." 손뼉을 치며 말을 하는 조현아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흘렀다.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탓에, 아침에는 쌀쌀했건만, 지금은 겉옷을 벗어도 입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아주 더웠다."조금만 좀 더 둘러봐요." 소은이 말했다."네? "조현아는 놀라서 되물었다, "어디를 더 보시려고요? 사실 거의 다 봤어요, 너무 커서 우리가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볼 수 없을 거예요, 아니면 보고 싶은 곳이나 찾는 꽃 종류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부탁해 운전해서 같이 가도록 해요.”이렇게 계속 간다면 정말 너무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았다!"아뇨, 딱히 꽃을 보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해 보고 싶어서요.""모든 꽃들은 샘플이 있고, 가장 우수한 품종으로 선택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여기서 직접 찾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요." 현아는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고집하는 것을 보고 "그래요, 찾고 싶으면 같이 찾아줄게요."라고 말했다.사실 그녀의 말도 맞았다, 업계 대부분의 회사는 거의 샘플로 결정을 해왔기에.샘플을 보고 꽃의 종류 골라 대략적인 수량을 정하면 재배지에서는 직접 배송할 것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화원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그럼, 부탁할게요."조금 미안했지만 그것 때문에 둘러보는 것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재배지의 모든 품종의 샘플을 본다 하더라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꽃만이 아니었다!자연 속의 꽃, 풀, 나무, 다양한 덩굴과 식물 등 모든 것이 향료의 추출원이 될 수 있으며 직접 찾지 않으면 빼먹을 수도 있었다.최근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지만 마땅한 재료를 찾지 못했고, 어쩌면 여기서 얻을 수도
소은은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어요.”“무슨 일이에요?” 임남을 달래던 임상언이 무심히 되물었다.“로사 왕자는 감금된 것이 아니라 그날 Y국으로 송환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왜 그동안 로사 왕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던 걸까요?” 소은의 말에 임상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겠죠. 신호가 나쁘거나 핸드폰을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로사 왕자가 저희 연락을 거부하고 있을 수도...”두 사람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말은 없었지만, 둘 다 이미 답을 얻은 듯했다. 로사 왕자가 그토록 연락을 피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도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가?...3일 후. 소은은 마지막 침을 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여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시술로 폐하의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실 겁니다. 하지만 일어서는 건 천천히 시도하셔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 돼요.”소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무엇 때문에 웃는 거지?” 여왕은 여전히 자신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 이미 이틀 전부터 약간의 감각이 돌아왔음을 느낀 터라, 소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사실 R10 실험을 고집하신다면 결국 폐하께서는 이 몸을 떠나게 되실 텐데, 제가 이 몸에 애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여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한 거지?”“어쩌면, 폐하께서 마음을 바꾸실 지도 모르니까요.” 소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어쩌면 자신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우리 모두 이 세상에 올 때 두 손은 비어있지만, 이 몸만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것이죠. 몸마저 버리신다면, 그 영혼은 여전히 진짜 자신일 수 있을까요?”“그렇구나.” 여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
소은은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여왕을 쳐다보았다. “물론이죠.” 소은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 대답에는 원망이나 비난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그렇다면... 조금 아쉽네.” 여왕은 생각에 잠긴 듯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균형을 맞추려 하죠. R10이 폐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꿈이라면, 저는 그것을 막을 수 없어요. 다만, 그때가 되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저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할 테니 부디 후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소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밖으로 나갔다.릭은 여전히 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녀와 여왕의 대화가 거의 다 들렸던 듯, 둘의 시선이 잠시 교차했다. 소은이 그를 지나쳐 나가자, 릭은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여왕 폐하.” 릭은 여왕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다리에 꽂힌 은침을 보자 릭의 눈빛이 굳어졌다. “이건...”“괜찮아. 곧 소은이가 와서 침을 빼줄 거야.” 여왕은 무심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릭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 “폐하께서 너무 방심하시는 것 아닙니까? 만약 한소은이 폐하께...”“그럴 리 없다.” 여왕은 단호히 그의 말을 잘랐다.릭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 여자를 믿으시는 겁니까?”여왕은 대답 대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녀도 릭의 질문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소은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누구도 쉽게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녀는 소은을 의심하지 않았다. 심지어 은침에 독이 묻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제가 가서 잡아오도록 하죠.”여왕이 생각에 잠기자 릭은 바로 뒤돌아섰다.“거기 서!”여왕은 결연히 말했다. “난 믿어.”릭은 한참을 침묵하며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였다....임상언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아들을 구하려는 결심을 굳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다.
소은은 허리춤에서 허리띠처럼 생긴 물건을 꺼내더니 조심스럽게 풀어내며, 그 안에 숨겨진 가느다란 은침을 꺼냈다.“이건...” 여왕은 깜짝 놀라며 소은을 쳐다봤다. 소은이가 은침을 항상 가지고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말해봐, 네 요구가 뭐지?” 여왕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너무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하면 그만이다. 여왕은 절대 소은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소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나올 수 있었던 건 로사 왕자님 덕분입니다. 그러니, 왕자님을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그게 다야?” 여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소은이 여기까지 와서 자신과 조건을 따지는데, 결국 요구한 게 단지 로사를 처벌하지 말라는 거라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로사는 내 아들이다. 내가 정말 내 아들에게 손을 댈 리는 없지. 괜히 기회를 헛되게 쓴 건 아닌가?”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전 폐하께서 정말 로사 왕자님께 처벌을 내리시지 않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왕자 폐하께서 저를 구해준 건 사실이기에 저도 왕자 폐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소은은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지금 왕자 폐하를 감금하시고 자유를 제한하고 계시지 않나요?”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야. 난 단지 로사를 Y국으로 돌려보냈을 뿐이야.”“로사가 여기서 내 일을 여러모로 방해하긴 했지만, 우리 모자 사이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로사가 필요하니 Y국으로 돌려보낸 것뿐이다.” 여왕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왜 왕자 폐하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죠?” 소은은 잠시 멈칫했다. 단지 귀국했다면 국제전화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연락이 닿지 않았기에 여왕이 로사를 가둬놓았다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여왕은 깊은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군. 그날 내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곧바로 Y국으로 돌아가도록
“삼일이면 됩니다.” 소은은 여왕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삼일? 고작 삼일?” 여왕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녀는 적어도 몇 달, 아니 최소한 몇 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고작 삼일이라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시간이었다.삼일쯤이야. 십 수년을 이렇게 버텨왔는데, 삼일쯤 더 기다린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삼일 안에 정말 나아질 수 있는 건가? 내가 정말 다시 일어서서 걸을 수 있는 건가?” 여왕은 두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힘껏 눌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녀는 소은의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다리가 감각을 잃은지 너무 오래되어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왕은 여러 나라의 명의를 찾아 다녔지만, 그들은 단지 병의 악화를 늦출 수 있을 뿐 다리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소은은 그녀 앞에 서서 확신에 찬 얼굴로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이전처럼 완벽하게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어요. 너무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많이 위축됐거든요. 하지만 서서히 일어나서 조금씩 회복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소은은 진지한 어조로 답했다.여왕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정도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젊었을 때처럼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휠체어와 지팡이 없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그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희망이었다.“좋아. 삼일, 기다리겠네. 필요한 게 있나?” 여왕은 기분이 좋아져 말을 한층 부드럽게 했다.“임남...” 소은이 말을 꺼내자마자 여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안 돼. 그런 요구는 하지 마라.”“제가 말한 건 임남을 바로 풀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 아이가 괜찮은지 알고 싶고, 가능하다면 아버지와 한 번 만날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실험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프레드 뿐이기 때문입니다.” 소은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아니면 주효정을 믿으실 건가요?”“나는... 아무도 믿지 않아.” 여왕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며 휠체어를 돌렸다.“여왕 폐하께서 이 실험에 집착하고 계시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요?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거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신가요? 수십 년간 왕좌에 오르셨지만, 정말로 아직도 그 삶이 좋으신가요? 언제나 긴장하며 위태로운 자리를 견디는 고단한 나날, 정말 아직도 벗어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소은은 여왕의 등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여왕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떨구었다. 그녀는 시선을 다리로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을 둘러본다? 나는... 걷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잊어버렸어.”여왕은 오랜 세월 동안 다리를 쓰지 않았고,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일어설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태는 악화되었고 이제는 아예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휠체어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소은이 ‘세상을 둘러보라’는 말을 꺼내자 가슴이 아팠다.“만약... 폐하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요? 제가 다시 걷게 해드린다면요?” 소은은 조용히 여왕의 뒤에 서서 말했다.여왕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휠체어를 돌려 소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말이냐?” 여왕의 눈에는 억누를 수 없는 희망과 깊은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소은은 대답 대신 그녀의 시선을 천천히 여왕의 다리로 내리고, 천천히 다가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뻗어 여왕의 무릎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여왕은 살짝 몸을 떨었다. 사실, 그녀의 다리는 거의 완전히 감각을 잃은 상태라서 소은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너무나 간절히 다시 일어서고 싶기 때문이었을 것이다.소은은 아무 말 없이 여왕의
“맞아요, 임남 때문이기도 하지만, 폐하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은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정말로 떠나버렸다면, 가장 초조해지는 사람은 사실 여왕 폐하 아닐까요?”여왕은 코웃음을 치며 차갑게 말했다. “내가 초조해질 이유가 뭐지? 어차피 내 손엔 네 약점이 있잖아. 너를 다시 잡아오는 것도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고.”“약점이요? 임남 말씀이신가요?” 소은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잊지 마세요, 임남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제 친자식이 셋이나 있어요. 만약 제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임남을 포기해 제 아이들을 지키려 한다면, 그 약점이 과연 제게 약점이 맞을까요?”여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소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그 아이에겐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하려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만약 임상언이 폐하께 끝까지 맞서기로 결심한다면...” “폐하께서야 높은 자리에 있으니 이런 평범한 상인을 하찮게 여기실 수 있지만, 임상언 씨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는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임상언 씨의 사업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어요. 임상언 씨가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겠죠. 혹시라도 바깥에 소문이 퍼져 폐하와 Y국의 명망이 손상된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너...” 여왕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반박할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여왕이 화가 난 것을 보고, 소은은 한결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화내지 마세요. 제가 돌아온 건 폐하를 자극하려는 게 아닙니다. 함께 최선의 방향을 찾고자 돌아온 거예요. 사실 폐하께서 H국에 오신 일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 H국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정말로 H국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여왕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건 폐하의 체면을 살려드린 겁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르시며 혹여 무리수를 두신다면, 얼마나 더 체류하실 수 있을까요? Y국도 계속해서
릭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여왕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소은을 데려와.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할지 들어보자. 또 어떤 이야기를 꾸며낼지 궁금하네.” 여왕은 휠체어를 살짝 돌려 더 이상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여왕 폐하?” 릭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한소은이 거짓말을 할 걸 아시면서도 굳이 왜...” 그러나 여왕은 그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 “듣고 싶어!” 이 한마디에 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는 곧장 소은이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소은이 정말로 잠이 들려고 하던 순간, 문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녀는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릭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왕께서 한소은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소은은 차분한 표정으로 릭을 쳐다보았다. 마치 모든 상황을 예견한 듯 고요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임상언은 소은보다 먼저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문에 도착하자마자 릭이 손을 들어 그의 앞을 막았다. “그쪽은 남아 계시죠.” “뭐? 우리 둘은 같이 온 거야!” 임상언은 소은을 돌아보며 그녀에게 눈짓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릭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쪽을 부르지 않았으니 여기 남으시죠.” 릭은 더 이상 임상언에게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소은은 임상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절 기다리고 있어요.” 임상언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그녀가 릭과 함께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요.” 임상언은 소은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소은은 미소를 지어 그에게 답했고, 릭을 따라 여왕의 방으로 향했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는 그녀는 곧 여왕의 방에 도착했다. 릭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왕 폐하, 데려왔습니다
소은이 임상언을 데리고 대사관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한 사람이 서둘러 소식을 알리러 가더니, 이내 주변 구석구석에서 누군가가 몰래 그들을 엿보는 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소은이 잘 알고 있는 여왕의 측근 몇 명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다가와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소은과 임상언의 몸을 샅샅이 검사하며 위험 물품을 소지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철저한 검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경계가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왕을 만나지 못했고, 한적하고 깊숙한 방에 대기하도록 배정받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곳은 소은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익숙한 것은 이 장소였지만, 낯선 것은 지금의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싫고 불쾌하기만 했으며,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임무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고, 그녀의 목표는 단순히 여기를 떠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일을 완수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었다.반면, 임상언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였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무릎 위에 놓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가볍게 떨고 있었다. 소은은 그의 초조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임남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여기까지 왔으니 임남을 반드시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긴장 좀 풀어요.” 소은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임상언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땅에 꾹 눌러 다리를 멈췄다. 겉으로는 조금 안정된 듯 보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긴장감이 가득했고 미세하게 떨리는 얼굴 근육이 그의 불안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은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참을 기다렸지만, 여왕을 만나러 오라는 사람은커녕 상황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긴장했던 임상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의도인 거죠? 왜 아직
“제발 부탁이에요. 안에서는 소은 씨 말만 따를게요. 소은 씨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절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임상언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소은에게 간청했다. 자존심은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을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그를 이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소은이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순간, 임상언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 자신이 함께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가면 의심을 받거나 제지를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아니에요.” 임상언은 계속 설득을 이어갔다. “임남이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잖아요. 제가 아들을 만나고 구하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제 목숨을 바치는 것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죠. 그러니 제가 가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에요.” 긴 침묵 끝에, 소은이 입을 열었다. “임상언 씨 말이 맞아요. 전 동의합니다.” 소은은 말을 마치고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원청현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잠시 침묵하던 진정기 역시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의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고 손을 펼쳤다. “모두 동의했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하겠어. 나도 찬성이야.” 사실 원철수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임상언에게 지지를 표현하는 의미였다. 임상언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이게 뭔 감사할 일이라고. 어쨌든 안에 들어가면 절대 신중해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네 입으로 한 말 반드시 지켜!” 원철수는 그의 결심을 칭찬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원철수는 속으로 임상언의 결단에 감탄했다.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는 분명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