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진은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다.경찰은 잇달아 고개를 돌렸다. 아직 성연희의 신분을 알지 못해 장시원의 앞에서 그를 꾸짖지 못했다.“아가씨, 그만 해요.”성연희는 손에 남은 술병 반 개를 집어던지고 경찰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그가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피해를 줬는지 알아요? 이 쓰레기의 편을 들어줘요?”경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빨리 가!”정진 등을 압송하는 경찰이 외쳤다.정진은 머리의 피를 가리고 성연희와 소희를 싸늘하게 훑어보더니 어두운 얼굴로 나갔다.팀장도 다가와서 소희와 성연희에게 말했다.“미안하지만 두분도 저희와 함께 가시죠.”성연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하지만 빨리 해주세요. 우리 소희가 잠 자는걸 방해하지 말고!”“…….”임구택은 소파에 기대어 소희가 걸어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보일락말락하는 허리는 유독 그를 화나게 하였다.그녀가 다가왔을 때, 결국 못참고 비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나랑 있을 때 내가 널 방해했나봐.”소희의 뒤에 있던 성연희는 임구택을 차갑게 흘겨보았다.“당연한거 아니에요? 임 대표님을 떠난 우리 소희는 보는 사람마다 좋아했어요. 어디를 가도 꼬시는 사람이 있어 원하든 말든 다 우리 소희에게 달렸어요!”임구택의 안색은 순간 새파랗게 질렸다.소희는 임구택을 쳐다보지도 않고 캡모자의 챙만 다시 아래로 당겨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장시원은 동정심이 담긴 눈빛으로 임구택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따라가 볼게, 걱정 하지마!”조백림이 말했다. “나도 같이 가!”안색이 어두운 임구택은 사람들이 다 나간 후에야 일어서서 따라갔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있었다.구은서는 즉시 앞으로 나가 그를 말렸다.“어디 가? 장시원도 있으니 소희는 괜찮을 거야. 너 까지 갈 필요는 없어.”“신경 꺼, 명원이보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해!”임구택은 싸늘하게 대답해주고는 계속 나갔다.구은서는 갑자기 눈물이 솟구쳐 임구택의 팔을 잡
장명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이따 전화 할게요.”“응.”구은서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사람들이 잇달아 떠났다. 단지 사진을 찍어 증거를 수집하는 몇몇 경찰만이 가게의 사장과 이야기하고 있었다.한 경찰이 다른 경찰에게 말했다.“이건 방금 그 두 아가씨의 핸드폰이에요. 여기에 두고 갔네요. 제가 지금 경찰서로 가겠습니다.”경찰이 오자마자 소희 등의 핸드폰을 압수했다. 정진 그 사람들의 핸드폰은 가져갔지만 소희와 성연희의 폰은 두고 갔다.경찰이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구은서는 마스크를 쓰고 따라왔다.“안녕하세요. 소희 친구입니다. 저도 경찰서로 같이 갈 수 있을까요?”그녀는 올때 임구택의 차로 왔고 다른 사람은 이미 가버렸다.경찰이 웃으며 말했다.“그럼요. 같이 가요.”두 사람은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경찰은 차를 몰면서 고개를 돌려 구은서에게 말했다.“친구분이 참 대단한 거 같아요. 예전에 배운 적이 있죠?”구은서는 웃는 듯 마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갑자기 조수석에 놓여 있던 핸드폰 켜졌고 독수리의 머리가 반짝였다.경찰은 차를 모느라 앞을 주시하고 있었고 구은서는 독수리의 머리를 한눈에 보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기울였다.소희의 핸드폰이네!그녀는 이 독수리 머리가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익숙하다고 느껴졌다.스크린의 독수리 머리가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하자 구은서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조수석의 핸드폰에 대고 사진 한 장을 찍었다.경찰서에 도착하자 장명원은 나와서 구은서를 맞이 했다.“누나는 들어가지 마세요.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구은서는 장명원을 보고 문득 생각났다. 그녀는 장명원의 핸드폰에서도 똑같은 독수리 머리를 본 적이 있다!게임인가?그녀는 눈빛이 반짝이고 마음이 급해졌다.장명원은 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아직도 임구택 때문에 슬퍼하는 줄 알고 낮은 소리로 말해줬다.“누나, 구택형이 홧김에 한 말이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구은서는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지금 안에 상
곧 장씨 집안의 사람도 왔다.정진의 아버지 정임은 신구 구청장의 비서이다. 권력이 좀 있어 먼저 취조실에 가서 아들을 만났는데 상처투성이가 된 아들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이정도로 때려놓고 정당방위라고? 때린 사람은 얼마나 다쳤는지 한번 봅시다.”국장은 담담하게 말했다.“정 선생, 잠시만요. 지금 피해자 측의 일은 모두 장 선생께서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니 그와 이야기 해보세요.”“장 선생?”정임은 성이 장씨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장시원을 보자마자 마음속의 분노가 갑자기 사라졌다.30분 후, 장시원은 소희, 성연희와 함께 나왔다.조백림은 일어나서 말했다.“끝났어?”장시원은 일부러 임구택을 한번 보고 웃으며 말했다.“끝났어, 이젠 가도 되.”여러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왔다. 구은서는 임구택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돌아서 말했다.“구택아, 안가?”임구택은 냉담하고 분별할 수 없는 태도로 담담하게 말했다.“먼저 가, 난 아직 할 일이 있어.”구은서는 어리둥절해졌다.“무슨 일이야?”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있겠어?“그럼 우리 먼저 가자!” 장시원은 소희에게 웃으며 말했다.“두 분은 술을 드셨으니 제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괜찮아요!”성연희는 웃으며 말했다.“약혼자가 왔어요!”그녀는 소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모두 안녕, 안녕!”두 사람은 먼저 떠났고 장시원과 조백림 등도 잇달아 떠났다.임구택은 일어나서 취조실로 들어갔다.이미 깊은 밤이라 경찰서마저도 쓸쓸하였다.국장은 임구택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속삭였다.“정진 그 사람들은 모두 취조실에 갇혀 있어요. CCTV도 꺼놨아요.”“네!”임구택은 문을 열고 들어가 차갑게 말했다.“제가 말 하기 전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마세요.”“알겠습니다!”국장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문이 닫히자 국장은 감히 떠나지 못하고 직접 밖에서 지키고 있었다.임구택이 취조실에 들어서자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정진 등 사람들은 곧바로 일어섰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피투성인 남자를 보고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모습을 본 그는 순간 슬퍼져 냉정하게 말했다.“임구택, 너 정말 나쁘구나!”임구택의 차가운 얼굴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마지막이야!오늘 이후, 그는 그이고, 소희는 소희이고,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다!......노명성은 먼저 소희를 풍림로의 저택에 데려다 준 후 성연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성연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노명성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화 났어?”“아니!”노명성은 담담하게 말했다.성연희는 부러진 네일아트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우리 소희가 임구택이랑 헤어졌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속으로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아, 원래 모든 감정을 숨기기 좋아해! 그녀를 데리고 화풀이 하고 싶어 술만 마시고 놀려고 했는데 이상한 사람들이 시비를 걸었어. 마침 우리 소희가 화풀이를 할수 있게 했지!”그녀는 끊어진 네일아트를 노명성에게 보여주며 입을 삐죽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여보 호- 해줘, 아파!”육명성은 힐끗 보더니 그의 손을 잡고 정색했다.“화풀이를 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 너희 둘 다 호신술을 배웠다해도 걱정 되잖아!”“응, 알겠어!”성연희는 순종하는 표정을 지었다.육명성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걱정마, 장씨 집안에게 말을 해놨으니 더 이상 소희를 괴롭히지 않을거야.”성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임구택이 있으니 그 누구도 소희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장시원이 오늘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 잘 알고 있었다.육명성이 물었다.“서로 좋아하면서 왜 헤어졌어?”성연희는 오늘 임구택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는 구은서를 떠올리며 말했다.“아마도 얍삽한 사람이 방해를 하고 있는 거같아. 가만히 두지 않겠어!”“누구?”육명성이 물었다.“구은서!”성연희가 말을 마치자 생각에 잠겼다.“사실 나에게 구은서를 상대할 좋은
시후는 매의 머리를 한참 쳐다보더니 얼굴이 굳어진 채 뒤돌아봤다. “어디서 나온 거예요?”은서가 물었다.“이게 뭔지 알아요?”시후는 냉담한 표정이었다.“잘은 모르지만, 강호에 ‘매골’이라는 사조직이 있어요. 우두머리는 매부리라고 하는데, 혹시 이것과 관계가 있는지도 몰라요.”“매골?” 은서는 눈썹을 찌푸렸다.“뭐하는 조직이에요?”시후는 설명을 이어갔다.“용병처럼 돈을 받고 일하는 조직이에요. 하지만, 그들은 합법적인 일 외에는 하지 않아요. 보통 국경 끝자락에서 거래를 하죠. 그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맡은 일은 거의 실패한 적이 없어요. 물론 커미션도 꽤 높고요.”은서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신비한 조직과 소희가 어떤 관계지?’‘혹시 내 생각이 지난친걸까?’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장명원이 강성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일 역시 매우 신비로웠다. 그는 임구택의 질문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주시후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의혹을 털어놓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혹시 소희와 장명원 두 사람 모두 ‘매골’의 멤버가 아닐까요?”하지만, 은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만약 그들 두 사람이 모두 ‘매골’의 멤버라면 왜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장명원은 처음에 소희를 만났을 때 낯선 사람을 본 것 같은 태도였다. 후에 그는 임구택의 일로 소희를 상대하긴 했지만, 소희는 그를 매우 싫어했다.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두 사람은 친분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시후는 은서에게 그들 조직에 대해 설명했다.“‘매골’이라는 조직은 신비로운 조직이라고 들었어요. 그들 조직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신비로워요. 그들은 정해진 방법만을 통해 연락하고, 멤버들끼리 서로 만나지 않아요.”은서는 다시 사진 속 매의 머리를 쳐다보며 냉소했다.“정해진 방법? 아마도 이 소프트웨어일 거예요!”‘소희가 ‘매골’ 사람이라니!’은서는 이 같은 사실이 의외였다. 시후 역시 마찬가지였다.하지만, 소
은서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그 사람은 분명히 나를 도와줄 거예요!”……다음날 아침, 소희가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니 연희가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붉은색 스포츠카에 기대어 아침거리가 담긴 봉투를 흔들며 눈웃음을 지었다.“생크림 빵, 마카롱,바나나 우유. 모두 네가 좋아하는 거야!”“고마워!” 소희가 종이봉투를 받아 들며 물었다. “들어가서 같이 먹을래?”연희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아니야, 바로 회사에 가야 해. 봐,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하니? 나는 새벽 한시가 다 되어서야 잠들었고, 아침 일찍 회사에 가야 하지만 너를 위해서 이렇게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 들고 왔잖아! 나처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니?”소희는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르면서 순간 마음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별장으로 향했다. “고마워. 그럼, 잘 가!”“흥! 어쩜 듣기 좋은 말은 한 마디도 안 해주니?”연희는 그녀의 뒤에 대고 불평하다가 이내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갈게!”“조심히 가!”소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손을 흔들었다.그녀는 목욕을 한 뒤,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제 ‘매골’의 문자를 빠뜨린 것을 발견했다.푸른 독수리가 보낸 문자였다. 그는 소희와 하얀 독수리에게 자기는 완전히 폐쇄된 경기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일주일 정도 연락이 안 될 거라고 했다. 하얀 독수리는 답장을 하면서 소희에게 이 사실을 재차 알려주었다. 소희도 그에게 답장했다. [알았어!]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서재로 들어가 디자인 원고를 만들기 시작했다.……소희가 찍힌 영상은 인터넷에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전 국민이 실력이 대단하면서 아름다운 검은 옷을 입은 아가씨를 찾고 있었다.이현과 다음 영화를 같이 하게 된 조 감독은 그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며 웃었다.“우리 영화에 여자 협객 캐릭터가 있는데,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서 이런
이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소희 일거예요. 소희에게 전화해서 괜찮은지 물어보려던 참이었어요!”그러자 이정남이 피식 웃더니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그럴 리가, 소희의 실력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면 몰라도 맞고 다니진 않을 거야.”잠시 고민하던 이정남이 제안했다.“잘됐어. 우리 세 사람 언제 한번 모이자고. 영화가 끝나고 약속 잡자. 서로 오랫동안 못 만났잖아!”“그래요!”이현이 쿨하게 대답했다.“정남 씨가 쏘는 건가요?”“쳇!”이정남이 비아냥거리며 대답했다.“설마 너 같은 구두쇠가 털을 뽑기를 바라겠어?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 당연히 내가 쏘는 거지. 어디서 모일지는 네가 골라!”“좋아요!”이현이 웃으며 대답했다.이정남은 곧바로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 사람은 모두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했다.그러나 서인의 가게는 영화 촬영장 쪽에 있었다. 너무 멀어서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세 사람은 거리가 가장 가까운 해운 샤부샤부에 가기로 했다.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자, 이현은 먼저 소희를 크게 안았다.“소희!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그러자 소희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제 다 강성에 살고 있으니 보고 싶을 때 오늘처럼 만나서 같이 밥 먹으면 되지!”“그러게, 말이야!”이정남은 이현을 끌어 자리에 앉혔다.“억지 부리지 말고 먼저 주문해, 얘기는 먹으면서 하면 되지!”그이 말에 이현은 메뉴를 들어 가장 먼저 소희가 좋아하는 고기와 디저트를 주문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술도 마실까요? 갈 때 대리 부르면 되잖아요!”“그러든지. 너희 둘이 마실 수 있으면 술도 시켜!”이정남이 쿨하게 대답했다. 이현은 추가로 청주도 한 병 주문했다.샤부샤부와 디저트가 하나둘씩 나오고 세 사람은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이정남은 먼저 소희에게 동영상에 관해 물었고 소희는 대충 경과를 그들에게 알려주었다,“다치진 않았어?”이현이 걱정스러운 듯 소희를 바라보며 물었다.“아니!”그러자 소희가 고개를
“둘 다 그만해!”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제지했다.“둘 다 그만 싸워.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일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 얘기는 그만하고 다른 얘기 하자!”이현은 소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다른 얘기 하자! 소희야, 올해 대학 졸업하는 거지? 졸업하고 뭘 할지 생각해 봤어?”이정남도 바고 화제를 돌렸다.“차 감독이 아직도 널 배우로 캐스팅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졸업하고 다른 일 하고 싶지 않으면 차 감독한테 가봐.”이정남의 말에 이현이 비꼬듯 물었다.“믿을만한 사람인 거예요?”“믿을 만해. 나와 몇 번 같이 일한 적 있었거든!”“나는 소희가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 남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세 사람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말하며 더 이상 임구택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저녁에 집에 돌아온 소희는 샤워한 후 서재에 가서 웨딩드레스 디자인 원고를 계속 그렸다.술을 조금 마시고 저녁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자, 그녀는 나른하게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조용해진 서재를 보며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게 변한 것 같았다.그녀는 카카오톡을 열어 이리저리 보다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뭔가에 홀린 듯 소희는 그 남자의 프로필 사진을 클릭했다.그의 스토리에는 달랑 사진 한 장 뿐이었다.이건 설날에 그녀가 기분이 좋아서 찍었던 사진인데 그가 “훔쳐” 간 것이다.소희는 예쁘게 피어난 붉은 색의 매화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지금 헤어지기까지 고작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다.소희는 가슴이 답답하고 아팠다. 지금 그 사진을 보니 더 풍자적이었다.그러다 자기의 스토리에 가서 망설임 없이 그 사진을 삭제해 버렸다.한편, 베란다에 앉아있던 임구택도 그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는 사진을 응시하며 뚫어지게 흐려진 배경을 바라보았다.순간, 매화 뒤에 자단의 책상과 책꽂이가 있는 것 같았다.‘소희가 이 사진을 어디
강시언은 도도희와 함께 앉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와서 건배를 청하려 했지만,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히 방해하지 못하고 지나갔다.시언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앉으며 물었다.“왜 도경수 할아버지랑 같이 안 계세요?”도도희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답했다.“오랜만에 만나면 결국 싸우게 되더라고. 우리 부녀는 전생에 원수였나 봐. 그 업보를 이번 생까지 끌고 온 거지.”도도희는 아침에 아버지를 봤을 때 한동안 감회가 새로웠다. 아버지는 이제 늙어서 젊은 시절처럼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어쩌면 이제는 과거를 내려놓고, 그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그는 나이는 먹었지만 여전히 강압적이고 독선적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양재아의 말에 휘둘리는 모습까지 보였다.만약 재아가 그녀의 딸이 아니라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도도희 자신도 알 수 없었다.“싸우셨나요?”시언이 길고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며 물었다.“강아심과 양재아 때문인가요?”도도희는 시언의 예리함에 전혀 놀라지 않은 채, 잔에 술을 따르며 조소 섞인 미소를 지었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시언은 말을 이었다.“아심은 제가 지켜요. 양재아의 작은 계략으로 아심이 다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 일로 할아버지와 다투지 마요.”“할아버지는 이미 선입견에 사로잡혀 양재아를 손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그렇게 감싸고 아끼는 모습은 오히려 이재희에 대한 깊은 죄책감 때문일 거예요.”도도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되새겼다. 생각해 보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하지만.”도도희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난 양재아에게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만약 걔가 내 딸이라면, 우리가 20년 넘게 떨어져 있었더라도 무언가 영혼이 통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지만 양재아를 볼 때, 난 이재희와 연결될 만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요.”
‘이번엔 또 뭐야? 강아라니’아직도 그리운 배강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렇게 불렀던 별명이 떠올랐다.윤성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소시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왜 배 부사장님을 해치겠어요? 그런 헛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 부사장님이 고용한 사람이죠? 일부러 쇼하려고 온 거 아니에요?”“쇼?”시연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당신이 연기하는 게 훨씬 낫네요!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 배강 씨를 함정에 빠뜨리러 온 주제에, 그렇게 억울한 척 깊이 있는 연기를 하다니!”“내가 배강 씨를 잘 몰랐다면, 진짜 믿었을지도 모르겠네요.”성아는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당신이 배강을 안다고요? 만약 배강이 당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그건 저 사람이 바람둥이라는 뜻이겠죠!”이에 시연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배강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배강을 사랑하는 거죠!”시연은 배강에게 눈웃음을 보내며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강아, 걱정 마. 내가 이 여자가 거짓말쟁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어. 당신은 저 여자를 모를뿐더러, 저 여자도 당신을 전혀 모르니까!”“이게 다 무슨 일인가?”배기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녹음을 들려드릴게요!”소시연은 아까 녹음한 내용을 틀었다. 녹음은 윤성아가 빨간 드레스의 여자에게 배강이 어떻게 언니를 화나게 했나요? 라고 묻는 부분부터 시작됐다.녹음의 후반부는 더욱 명확했다.배강이 정진아 집안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정진아가 이를 앙심에 품고, 배강의 맞선을 망치고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며 장씨 그룹까지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성아는 녹음 내용을 듣다가 도망치려 했고, 배강이 다가와 시연에게 말했다.“놔줘요. 그냥 가게 두고요.”배강은 냉소를 띠며 덧붙였다.“그리고 돌아가서 정진아에게 전하세요. 오늘 일에 대해, 정진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시연이 손을 놓자 성아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이윽고 배기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윤성아는 망설이며 물었다.“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그 말을 믿을까요?”정진아는 냉혹하고 독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믿든 안 믿든 상관없어. 배강의 맞선 자리를 망치면 되는 거야!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망신당하게 만들고, 동시에 장씨 그룹에도 타격을 줄 수 있어.”“이걸로 우리 집안의 복수를 갚는 거지.”만약 회사 부사장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린다면, 장씨 그룹도 연관되어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어쩌면 내일 주식시장에 변동이 생길지도 모른다.진아는 한꺼번에 배강과 장씨 그룹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점점 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다시 소곤소곤하며 세부 사항을 논의한 뒤,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소시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입안 가득 치즈 케이크를 물고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약자를 돕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시연은 케이크를 삼키고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따라갔다....한편, 배강의 부모는 배강을 위해 맞선 상대를 소개하고 있었다. 배강의 집안은 꽤 괜찮은 편이었고, 부모가 소개한 상대 역시 그와 비슷한 수준의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었다.여자는 대학 졸업 후 직접 회사를 차려 성공을 거두고 있어, 앞으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컸다.지금 두 집안은 막 서로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좋은 결과가 나올 듯했다.그 순간, 파란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가 나타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부사장님!”모두가 잠시 말을 멈추고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배강은 성아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저를 아시나요?”그러자 성아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어떻게 모르는 척할 수 있죠? 어제 밤에 우리 함께 있었잖아요.”배강은 순간 멍해졌고, 그녀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함께 있던 상대방 집안 사람들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표정이 굳었다.배강의
“아까 이문 오빠는 알아보지 못했어요.”“그런데 난 한눈에 알아봤잖아!”유진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고, 유진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그건 내가 사장님 눈에만 비치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니 나를 보자마자 알아챌 수밖에 없지.”서인의 심장이 순간 철렁이었다.“자, 춤춰요!”유진은 서인의 다른 손을 자기 허리에 올려놓으며 말했다.“춤 한 곡 추는 거예요. 사장님이 저격용 총을 다루는 것보다는 어렵진 않을 거고요.”“만약 사장님이 안 따라주면, 우리가 여기서 계속 실랑이를 벌이는 게 오히려 더 눈에 띌 거예요.”서인은 한숨을 쉬며 속으로 이 어린 여자애에게 종종 속수무책이 되는 자신을 탓했다.“난 정말 춤을 못 춰.”“내가 가르쳐준다잖아요. 내가 천천히 추고, 사장님은 내 페이스에 맞춰 따라오기만 하면 돼요.”유진은 왼손으로 서인의 손가락을 깍지 끼고, 고개를 들어 밝게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됐어요? 시작해도 돼요?”결혼식의 즐거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서인은 오늘만큼은 유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마음을 따라주기로 했다.서인은 손바닥으로 유진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며 드레스의 실크 같은 감촉과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느꼈다.손가락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펴졌고, 서인은 목소리를 낮추며 약간 쉰 소리로 말했다.“좋아, 시작하자.”“내 리듬에 맞춰야 해요!”유진은 눈만 드러낸 가면 너머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였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눈 속에는 오로지 서인만이 비치고 있었다.서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맞췄다. 하지만 춤을 추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고정되었고, 서인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져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그와 반해 유진은 너무나 즐거웠고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 서인의 단단한 팔과 유진의 기본적인 춤 실력 덕분에, 서인이 미숙하게 움직여도 유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춤을 이어갔다.회전하고 날아오르는 유진의 춤사위는 서인의 시선
유정은 아는 사람들을 만나 연달아 다섯, 여섯 잔의 술을 마셨다.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약간 어지러워져 바람을 쐬기 위해 조용한 곳으로 이동했다.그때 누군가 다가와 차가운 과일 주스를 건네며 말했다.“유정 씨,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들러리도 하시고, 손님도 상대하시느라 힘드셨겠네요.”유정은 주스를 받아들며 가볍게 웃었다.“손님을 상대한다고 하기엔 그렇죠. 다들 좋은 분들이고, 또 우리 사장님의 경사이니 다들 즐겁게 몇 잔씩 하게 되네요.”진우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늘 일로 실례가 있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유정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에요. 그런 상황에서 우행 씨는 충분히 신사적이었어요.”“처음인가요?”“처음인가요?”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고, 잠시 멈칫한 뒤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정이 먼저 말했다.“네, 처음이에요!”우행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저도 처음이라, 경험이 없네요.”“그래도 진짜 침착하셨던데요!” 유정이 칭찬하자, 우행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정 씨도 정말 대단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주위에서 떠들어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침착하고 단아했죠.”유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장님 곁에 있다 보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에요.”우행은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사장님도 그럭저럭 괜찮죠. 다만 갑자기 일이 생기면 저한테 전화해서 대신 처리하라 하시곤 한 달씩 사라져 버리세요.”유정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을 참으려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공감되나요?”우행이 묻자 유정은 그와 눈을 마주치더니,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유정은 과일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 시원한 바람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부드럽게 말했다.“저기 친구가 보여서요. 먼저 가볼게요!”“네.”우행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과일 주스, 고마워요!”유정은 몇 걸음 물러난 뒤, 컵을 들어 보이며 고운 미소를 보였다
소희는 마지막으로 준비한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옅은 금빛의 실크 광택이 흐르는 비대칭 어깨 드레스였다. 겹겹이 화려하게 층을 이룬 치맛자락 덕분에 그녀의 모습은 한층 더 늘씬하고 우아해 보였다. 고귀한 분위기 속에서도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풍겼다.임구택은 그녀의 드레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높은 하이힐로 인해 걸음이 불편할 것을 알기에, 그는 소희를 아예 들어 올려 계단을 내려왔다.1층에 도착하자 구택은 소희를 내려놓고 그녀의 손을 잡아 춤추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음악이 흘렀고, 두 사람은 음악에 발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주변 사람들은 점점 뒤로 물러서며 중앙의 공간을 온전히 두 사람에게 내주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들 주변에 모여들었고, 모두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춤추는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았다.갑자기 하늘에서 요란한 굉음이 들려왔다. 몇 대의 비행기가 머리 위를 날아가자, 사람들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비행기가 지나간 하늘에는 커다란 원형 디스크들이 나타났고, 그 디스크가 회전하면서 수많은 불꽃놀이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우와!”군중 속에서 감탄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디스크에서 터져 나온 불꽃은 저택의 하늘 전체를 뒤덮었다. 쏟아지는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화려한 불꽃들은 마치 꿈처럼 눈부시고 장엄한 장관을 만들어냈다.그 불꽃 아래서도 구택과 소희는 춤을 멈추지 않았다.은은하고 고운 왈츠 선율 속에서, 남자는 길고 날렵한 실루엣을 자랑했고, 여자는 가벼운 몸짓으로 우아함을 뽐냈다.아름다운 드레스 위에는 하늘의 불꽃이 비치며 마치 은하수를 두른 듯한 환상이 만들어졌다. 그녀의 몸짓에 따라 은하수는 흐르고 춤추는 듯했다.그 화려한 광경은 마치 동화 속 왕자와 공주의 결혼식 같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불꽃 아래 모든 것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황홀했다.춤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하늘에는 한 줄로 늘어선 드론들이 등장했다. 소희는 구택의 어깨에 기대어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그 순간, 멀리서 거대한 독수리 한
강재석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장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그럼 시언에게는 아직 말하지 말렴. 그 녀석도 한 번쯤은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을 느껴봐야지!”강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할아버지, 저는 할아버지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아마 시언 씨랑 사귀지 않을 거예요.”아심이 시언에게 자신과 승현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사귀지 않을 관계라면 말하든 말든 별다른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왜 그러니?”강재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심은 멀리 바라보며 눈빛에 자유에 대한 동경을 띄었다.“그냥,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아심은 앞으로의 삶을 기다림과 실망 속에 가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 얽매이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강재석은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단지 말했다.“젊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이 있는 법이지. 너만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해.”“죄송해요, 할아버지.”아심은 이 할아버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너는 나에게 조금도 미안할 필요가 없다.”강재석은 여전히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오히려 우리가 일방적으로 너의 감정을 무시하며 계획을 강요했을 뿐이지.”“아니에요.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베풀어주신 따뜻함은 언제나 저를 위로했고,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을 줬어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강재석은 그녀가 고아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더욱 마음이 아팠다.그들은 산책을 이어갔고, 강재석은 말했다.“아까 재아가 너에게 적대감을 품고 있는 것 같던데, 그 아이의 말에는 신경 쓰지 마라.”아심은 이미 느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신경 쓰지 않을게요.”두 사람은 정원을 한 바퀴 더 돌아서 돌아와서 강재석이 말했다.“가서 놀아라. 소희랑 도도희랑 저녁 만찬도 즐기고, 기분을 좀 풀어봐.”아심은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네, 그럼 도도희 이모를 먼저 찾아볼게요.”“그래, 즐겁게 놀아. 다
강재석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아심에게 온화한 미소로 말했다.“아심아, 여기 공기가 답답하구나. 나랑 같이 밖에 좀 나가자.”“좋아요!”아심이 즉시 대답하며 그를 따라 일어섰다.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나가자, 강시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할아버지, 도도희 이모랑 천천히 이야기 나누세요. 전 잠깐 밖에 다녀올게요.”“그래, 다녀오너라.”도경수가 응답했다.시언이 떠난 후, 재아는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할아버지, 제가 혹시 말실수한 건가요?”도경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도도희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양재아 씨, 좀 급했던 것 같네요.”뼈를 때리는 말에 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말을 더듬었다.“저, 저는 무슨 뜻으로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도도희는 차갑게 말했다.“잔꾀는 결국 본인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에요.”“도도희!”도경수가 그녀의 말을 막았으나 도도희는 아버지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아버지는 여전히 본질을 보지 못하시고, 모든 것을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하시네요.”도경수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재아가 무슨 말을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냐? 그 강아심이라는 아이는 분명히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강시언과 엮이면서도 다른 남자와 엉뚱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도도희는 얼굴을 붉히며 날카롭게 대꾸했다.“엉뚱한 관계라니요? 그걸 직접 보시기라도 했나요? 아니면 단지 추측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시는 건가요?”도경수는 흔들리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직접 보지 않아도 다를 바 없어.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할게. 재아는 네 친딸이야. 너야말로 분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해.”도도희는 재아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내 딸이 만약 저 아이처럼 행동했다면, 차라리 딸로 인정하지 않겠어요.”그 말을 남기고 도도희는 단호히 자리를 떠났다. 이에 도경수는 분노로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거의 내던질 뻔했으나, 재아는 급히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이 모든 게 제
“아심아!”강재석이 먼저 웃으며 이름을 부르며 반겼다.“할아버지!”강아심이 미소를 띠며 다가갔다.“오랜만이에요. 건강은 어떠세요?”“좋아, 아주 좋아!”강재석은 더욱 인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축하드려요. 소희가 이렇게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정말 부러워요!”강재석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같이 기뻐해야지, 같이!”도경수는 여전히 아심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바로 강아심인가?”아심은 도경수를 향해 고개를 돌려 고운 미소를 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네, 제가 강아심이예요. 도경수 어르신 맞으시죠? 안녕하세요!”도경수는 이전에 아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었으나, 지금 그녀의 밝은 미소를 보자 목이 메고 눈이 뜨거워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모두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에 도경수도 정신을 가다듬고 도도희에게 물었다.“소희는 봤니?”도도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봤어요.”강재석은 바로 물었다.“우리 소희는 지금 뭐 하고 있나?”“친구들과 함께 있어요.”도도희가 웃으며 말했다.“좀 더 일찍 소희와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늦게 만난 게 아쉬울 정도로 대화가 잘 통했어요.”그 말에 강재석은 호탕하게 웃었다.“그렇게 오래 이야기했다면, 정말 서로 마음에 든다는 뜻이지!”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갑자기 도경수가 질문을 던졌다. “도도희, 너는 아심 양과 어떻게 알게 된 거니?”도도희는 아심을 바라봤고, 아심은 침착하게 대답했다.“꽤 오래전이죠. 한 미술 전시회에서 처음 만났어요.”도경수는 바로 물었다.“미술을 좋아하나?”“네, 좋아해요. 하지만 진지하게 배워본 적은 없어요.”아심이 부드럽게 대답했다.“예전엔 무슨 일을 했나?”도경수가 다시 묻자, 강재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갑자기 조사라도 하려는 거야? 이제 막 알게 된 아이에게 이것저것 묻다 보면 겁을 줄지도 몰라.”이에 강시언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