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남, 그리고 장시원 등등.소희는 상대방이 이 새해 축복 메시지를 대량으로 여러 사람한테 보낸 것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긴 새해 덕담 중 하나를 복사해 임구택에게 전달했다.곧이어, 임구택도 메시지를 보내왔다.[황정아 씨를 대신해 새해 축하 인사를 하는 거야? 모든 일이 잘 풀리라고?]그의 문자에 소희는 어리둥절해서 조금 전 임구택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글 제일 마지막에 황정아라고 이름이 적혀있었다.메시지가 워낙 길다 보니 미처 채 읽지 못해 벌어진 대참사였다.[축복 메시지를 이렇게 많이 보낸 것을 보고 좀 감동 받았는데 마음이 좀 아프네요.][미안해요. 처음이라 좀 서툴렀어요. 제가 다시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메시지를 복사해서 보내드릴게요.][••••••]그때, 소희는 임구택에게 666만 원을 입금했다. [마음이 더 아파졌어요.]임구택에게서 곧바로 문자가 왔다.임씨 가문.소파에 앉아 소희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는 임구택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임유민이었다.“삼촌, 할머니께서 내려와서 같이 카드놀이를 놀재요.”임지언과 임구택 아버지는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카드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카드놀이를 할 사람은 임구택 어머니와 우정숙, 임유림뿐이었다.“알았어. 지금 갈게.”임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1층, 임구택 어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재촉했다.“구택아, 어서 일로 와.”임구택은 소파에 앉아 거실 TV를 보며 물었다.“엄마, 야회는 언제 시작해요?”“여덟 시. 왜? 혹시 보려고?”“네. 심심한데 야회나 보려고요.”임구택이 말했다.임유민이 텔레비전을 켜자 임구택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야회가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 벌써부터 백스테이지에서는 야회에 참가하는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그때, 고용인이 다가와 임구택 어머니에게
구은서는 옆문으로 나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임구택이 돌길 한쪽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얇은 흰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는 임구택은 벤치를 등지고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옆모습의 윤곽은 짙고도 아름다웠다.지극히 평범한 자세였지만 임구택이 하고 있으니 어딘가 나른하고 귀티가 배어 있어 보였다.구은서는 걸음을 늦추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소년 시절의 앳된 모습을 벗어던진 남자는 진중함은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숙한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어른이 되었다. 무표정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선사하는 어른 말이다.구은서는 예전에는 소년 시절의 임구택에게만 호감을 가졌다면, 이제 그녀는 임구택이라는 이 남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그녀는 앞으로 임구택보다 더 나은 남자를 절대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를 다른 여자에게 양보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었다.임구택은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그렇게 적게 입으면 춥지 않아?”구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은 눈을 내리깔고 휴대폰으로 문예 야회를 검색하며 말했다.“괜찮아.”“네가 나를 보자마자 피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야.”구은서는 임구택 옆에 앉았다.임구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오늘은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 거니까.”그의 말에 구은서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난 손님이고, 그럼 소희는?’“엄마가 하도 같이 가자고 하셔서. 네가 날 보고 기분 나빠할까 봐 안 오려고 했는데, 나도 오랜만에 아주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구은서가 말했다.“난 기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너도 이젠 나랑 소희 씨 마음을 추측할 필요도 없고.”임구택은 미적지근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구은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싫어요. 전 야회를 볼 거예요.][야회가 저보다 더 좋아요? 선택하세요. 저예요? 야회예요?][야회는 설날 밤에만 볼 수 있는데 구택 씨는 꼭 오늘이 아니어도 매일 볼 수 있잖아요.]“••••••”순간, 그녀의 답장에 임구택은 뭐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야회도 보고 채팅도 하니 시간은 점점 11시가 되어갔다. 소희는 할아버지와 함께 새해 카운트다운을 세고 싶어서 임구택을 먼저 자게 할 심산이었다.[전 안 졸려요. 소희 씨가 언제 자면 저도 언제 잘게요.]임구택에게서 문자가 왔다.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마도 구씨네 가족이 이제 막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소희는 매년 설 카운트다운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엔 임구택과 문자를 주고받은 덕분에 예전보다 더 쉽게 밤을 지샐 수 있었다.12시가 거의 가까워지자 오 씨는 폭죽을 터뜨릴 준비를 했다. 어느새 야회 사회자도 설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밖에서는 폭죽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텔레비전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2가 되기 바쁘게 소희는 임구택으로부터 계좌이체를 받았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숫자 뒤에 붙은 0을 샜다. 몇 번이나 금액을 세어보던 소희는 경악했다.[이건 뭐예요?][세뱃돈.]띠링-그때, 임구택에게서 문자가 또 하나 날라왔다.[세뱃돈을 줬으니 저를 점점 더 좋아해 주세요.]소희는 오글거림을 참지 못해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정 표현을 할 때도 이렇게 오글거리는 편이구나.’소희는 그가 보낸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씨 노인이 한마디 했다.“왜 그렇게 실없이 웃어?”소희는 이내 휴대폰을 감추고 다급히 변명했다.“새해니까요. 새해여서 기분이 좋은 거죠.”“내가 보기에 임씨 가문 그 자식 때문에 이렇게 기뻐하는 것 같은데?”강씨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식 웃었다. “가서 자. 나랑 함께 있어 줄 필요 없어.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안 졸려요.”소희는 고개를 가
정월 초하루.아침 일찍부터 밖에서 귀청이 터질 것 같은 폭죽 소리에 소희는 일찍 잠에서 깼다. 전날 임구택과 수다를 떨다가 새벽 2시에야 잠을 잤으니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이기 때문에 그녀는 기껏해야 겨우 3시간 남짓 잔 것이다.소희는 너무 졸린 나머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녀는 귀가 따갑게 들려오는 폭죽 소리에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늦잠을 잤더니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햇빛이 나무창을 통해 온 집안에 쏟아졌고, 바닥에는 등불의 붉은 그림자가 비쳤다. 창밖에는 몇 그루의 대나무들이 축축 드리워져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온 세상이 고요한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띠링- 띠링-침대 머리맡에 뒀던 그녀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모두 카톡 단체방에서 온 메시지들이었다.조백림이 만든 단체방에서는 기프티콘을 나눠주고 있었고, “파워맨”이라는 낯선 단체 채팅방에서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울렸다.소희는 자신이 언제 이 단체 채팅방에 가입한 것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단체방에 한 번 들어가 보니 그제야 모두 서인의 샤부샤부 가게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임유림이 단체 채팅방을 만든 김에 그녀도 요청한 것이다. 처음에는 온갖 새해 인사말들로 화면을 빽빽하게 채웠었는데 임유림이 먼저 기프티콘을 보내면서부터 평화롭던 채팅방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로 금액이 더 큰, 더 좋은 기프티콘을 보내겠다고 앞다투어 난리를 피웠다.[사장님, 유림… 두 사람 대체 뭐 하는 거예요?]임유림과 서인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엄청난 금액의 기프티콘을 보내기 시작했다.이문을 포함한 채팅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전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임유림이 서인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직도 나랑 비기는 거야?][누가 너랑 비긴다고 그래? 난 사장이니까 당연히 내가 모두에게 선물을 주는 게 맞다고.][감사합니다, 사장님.]이문을 포함한 직원들은 서둘러 감사 인사를 표했다.하지만 임
“소희 씨는요? 소희 씨는 제가 안 보고 싶어요?”임구택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영상 통화 가능해요?”“할아버지가 절 부르세요.”소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대꾸했다.임구택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천천히 말했다.“할아버지한테 전화 바꿔드릴 수 있어요? 새해 인사 좀 드리려고요.”“됐어요. 설에 할아버지를 놀랠 킬 일이 있어요?”소희가 말했다.“내년에 할아버지께 직접 인사드리러 갈게요.”“그래요.”소희는 무심결에 대답하고는 잠시 주춤했다.“이만 끊을게요.”“네.”임구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베이비, 사랑해요.”임구택의 말에 소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희는 그 몇 초간의 침묵이 사실 임구택이 자신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소희는 침대에 엎드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은 날씨도 좋고 햇살도 따스했다. 그녀는 처마 밑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등불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 머릿속은 온통 임구택으로 꽉 차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 그가 말하는 모습, 사랑한다고 말하는 말투까지… 소희는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갑자기, 그녀는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졌다.•••••잠시 후, 소희가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좀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뜻밖에도 그녀를 깨우지 않았던 것이다.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갔는데 복도를 지나가다 오 씨가 홍매화 화분을 들고 오는 걸 발견했다. “아가씨, 일어났네요? 배고프죠? 부엌에 닭고기 수프와 만두가 있어요.”“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홍매화를 바라보았다. “꽃이 피었네요?”“네. 어젯밤에 꽃을 피웠는데 어르신께서 아가씨가 홍매화를 좋아하신다고 아가씨 방으로 보내라고 하셔서요.”“할아버지는요?”“정원에 계십니다.”“오늘은 왜 이렇게
소희는 상품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고용인이 끓여준 만두를 먹었다. 소희는 식초 접시 두 개를 가져다가 강씨 노인에게 한 접시 건넸다. “할아버지, 저랑 같이 만두 몇 개만 더 드세요.”강씨 노인은 코를 찌르는 식초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매년 설마다 저희끼리 이렇게 보내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내년엔 네가 임씨 가문에 가서 설을 쇠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그의 말에 소희는 정색했다.“아니요. 제가 시집을 가든지 말든지 전 매년 설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쇨 거예요.”“모든 여자아이들이 시집가기 전엔 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정작 시집 가봐. 그게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거야.”강씨 노인이 말했다.“할아버지, 절 몰라요? 전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아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허허 웃었다.“그래, 알았어.”소희는 만두를 한 입 먹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늘따라 만두가 유달리 맛있구나.”강씨 노인은 즐겁게 웃었다.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희는 강씨 노인과 함께 잠시 바둑을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바둑 한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요 며칠 소희가 집에 있던 탓에 강씨 노인은 기쁜 나머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었다. 아침에도 만두를 먹었기 때문에 오 씨는 특별히 점심에 담백하고 식욕을 돋구는 음식으로 준비했다.점심을 먹고 난 후, 강씨 노인은 뒤뜰 연못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 소희도 그의 뒤를 함께 따랐다.날씨도 좋고 기온도 높아서 연못가의 개나리는 이미 화창하게 피었다. 제법 새봄을 맞이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오붓하게 연못가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오 씨는 소희가 추워할까 봐 특별히 화로에 불을 붙여 그녀 옆에 놓았다.강씨 노인은 낚시를 하고, 소희는 난로에 기대 불을 쬐었다. 그녀는 난로의 물이 끓어오르면 강씨 노인에게 차
강씨 노인은 소희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예전에는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는데 이번에는 왜 이러는 거야? 어째 점점 더 못나지는 거 같네.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혼자 집에서 잘 지내고 있어. 게다가 요 며칠은 손님이 올 거라서 네가 집에 있어도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출근해야 해요. 그럼 그때 다시 전화할게요.”“그래.”저녁, 소희는 강씨 노인과 바둑을 두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자 그녀는 강씨 노인을 방으로 데려다준 후, 자신도 방으로 돌아갔다.오 씨는 등불을 들고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아가씨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제가 어르신을 잘 모시고 있으니 아가씨는 일에만 열중하세요.”“할아버지, 수고 많으셨어요.”“수고라니요? 어르신과 함께 있으면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오 씨는 등불을 들고 줄곧 소희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며 자상하게 웃었다.“밖이 추우니 아가씨는 얼른 들어가세요.”“네. 할아버지도 일찍 들어가 주무세요.”철컥-소희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틀에 놓인 홍매화는 불처럼 붉게 피었고, 온 방 안은 은은한 매화 향기로 가득 찼다. 소희는 홍매화 사진을 찍어 아무런 문구도 없이 매화꽃만 확대해서 SNS에 올렸다. 잠시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소희는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조백림, 황정아, 오진수 등이 소희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소희야, 네가 SNS를 올리다니, 1년이 지났더만 어른이 다 됐구나. 감동이야.]어느새 그녀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어쩐지 누군가 엉뚱한 사진을 올린다 했더니 알고 보니 소희였구나.][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정남이 단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다.[다른 인사말은 없어?][돈 많이 버세요.][그래. 난 이 말이 제일 듣기 좋더라. 새
다음 날 아침, 소희는 강씨 노인, 오 씨와 작별을 고했다. 강씨 가문 운전사가 그녀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9시 정각, 소희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VIP 통로를 빠져나오는 임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늘씬한 몸매에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못 본 지 며칠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구택은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는 두 팔을 뻗고 그녀를 품에 꽉 껴안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소희는 힐끔 두 사람 쪽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더니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언제 가요?”“원래 10시 비행기였는데 지금은 못 가요." 임구택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 그 호텔로 갈까요?”그의 말에 소희는 귓불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녀는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그의 눈에 비친 절박함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져 거절할 수가 없었다.지난번 호텔의 스위트룸. 문을 닫자마자 임구택은 현관 벽에 소희를 밀쳤다.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조용히 물었다. “제가 보고 싶었나요?”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소희의 이마에 키스했다.소희는 그의 키스에 말문이 막혀 두 팔을 그의 목덜미에 걸쳤다. 임구택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소희 씨가 없는 동안 전 잠을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자도 꿈에는 온통 소희 씨뿐이었어요. 소희 씨, 진짜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소희는 촉촉한 눈망울을 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임구택을 꽉 감싸 안고 끊임없이 키스를 했다.••••••소희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깨어났다. 깨어나 보니 시간은 오후 1시였고 임구택은 어디로 갔는지 방에 없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몸이 나른하여 다시 자리에 누웠다.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베이지색 얇은 셔츠를 입은 임구택 들어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소희 씨, 이제 일어나요.”얇은 담요를 뒤집어쓴
재아는 시언의 냉랭한 시선을 받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자기 말에 허점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언이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에 불안감이 밀려왔다.검사실 밖시언이 검사실에 도착했을 때, 아심은 문밖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시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시언은 아심에게 다가가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팔에 약간의 긁힌 상처가 있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아심이 먼저 물었다. 시언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날 나한테 뭐라고 약속했지?”아심은 잠시 멈칫했다. 곧바로 그날 저녁 그의 별장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시언은 그녀에게 다시는 승현과 얽히지 말라고 했었다.아심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일 외에는 사적인 연락은 없었어요.”시언은 아심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아니겠지?”아심은 그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시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답하려던 찰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검사 끝났어요. 보호자 분, 빨리 오세요!”아심은 시언을 한 번 바라본 뒤, 검사실로 향하는 침대로 먼저 달려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기운이 마음속 깊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시언은 재아의 이간질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심은? 승현이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아심은 간호사들과 함께 승현을 검사실에서 병실로 옮겼다. 병실로 돌아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복도를 살피며 시언을 찾았지만,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속에서 차오르는 불안을 애써 누르며, 그녀는 승현을 돌보는 데 집중했다.잠시 후, 의사가 결과를 들고 와 말했다.“다행히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것 말고는 내장이 다치지 않았어요. 머리 외상으로 출혈이 많고 가벼운 뇌진탕이 있지만,
양재아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래선 급히 택시를 잡아 아심이 타고 간 차량을 따라갔다.병원에 도착하자 재아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다섯 번, 여섯 번 울렸을 때까지 상대가 받지 않아 그녀는 체념하려던 순간,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재아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둘러 말했다.“시언 오빠, 큰일 났어요. 빨리 병원으로 와 주세요!”시언이 물었다.[무슨 일이지?]재아는 다급히 말했다.“아심 씨랑 지승현 씨가 차에 치였어요. 둘 다 병원에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재아는 상대방의 숨소리가 잠시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다급하고 불안했다.[어느 병원이지?]재아는 병원 이름을 말했고, 그녀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언은 전화를 끊었다.시언은 최대한 빠르게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심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그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20분 후, 시언은 병원에 도착해 바로 프론트로 갔다.“30분 전쯤 교통사고로 남녀 한 쌍이 이 병원에 실려 왔나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프론트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정리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네요. 다른 데 물어보세요.”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쉰 듯, 서늘하고 날카로웠다.“그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직원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꽤나 긴장시켰고, 그녀는 얼른 말했다.“바로 확인해 드릴게요!”프론트 직원은 최근 접수 기록을 찾아 시언을 승현과 아심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응급실 안에서, 의사들은 지승현의 출혈을 멈추고 붕대를 감으며 각종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의사 중 한 명이 물었다.“가족분은 오셨나요?”아심이 급히 대
고객은 지승현에게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넨 뒤 먼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고 하길래, 너도 부른 줄 알았어.”아심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너희 어머니와 이미 다 얘기 끝낸 거 아니었어?”승현 역시 의아한 듯 대답했다.“그렇지, 이미 어머니께 우리가 헤어졌다고 말했어. 그런데 어머니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아심은 양재아가 지아윤을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승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재아가 너희 어머니랑 아윤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승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이미 친어머니와 지아윤의 계략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재아와 결혼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레스토랑 안에.재아는 창문 너머로 승현과 아심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심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아심이 승현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까 봐 마음이 불안해졌다.재아는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어, 정말 우연이네요!”재아는 승현의 옆으로 다가가 친근한 척하며 아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심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고, 승현은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도재아 씨,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승현이 아심의 앞에서 자신을 도재아라고 부르자 재아는 순간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승현 씨 어머니가 저를 여기로 부르셨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마치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승현 씨도 어머님이 부르신 건가요?”승현은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고, 그의 표정은 차갑고 딱딱해졌다.“마침, 저도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오늘 만난 김에 제대로 얘기 나누죠.”재아는 지승현이 자신을 거절하려는 것임을 직감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얼굴에는 억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좋아
오늘 강아심은 철저히 준비하고 왔다. 분명 지승현이 정보를 흘려 미리 아심에게 알렸을 것이었다.‘나를 회사에서 해고할 뿐만 아니라, 외부인과 짜고 집안사람을 괴롭히다니.’순간, 지아윤의 마음속에서 승현에 대한 증오가 아심에 대한 분노를 훨씬 뛰어넘었다.아윤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복수할 것이었다....양재아는 출근길 내내 심란했다. 권수영의 생일이 지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지만, 권수영은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했다.심지어 예전보다 더 정성스럽게 대해줬지만, 정작 승현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 받은 그 전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잠시 고민한 뒤, 재아는 권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재아 씨, 출근했어요?]권수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네, 출근했어요.”권수영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아침에 보내주신 옷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사모님.”[고맙긴. 곧 우리도 한 가족이 될 텐데, 내가 재아 씨를 아끼는 건 당연한 거죠.]권수영의 말투는 여전히 따뜻하고 세심했지만, 재아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분은 그날 이후로 저를 전혀 찾지도 않으셨어요. 그분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알아요.”“그러니 앞으로는 선물 같은 것도 주지 마세요. 저희는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죠.”권수영은 순간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재아 씨, 그건 재아 씨가 오해한 거예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집에도 잘 못 들어오고 있어요.][정말로 재아 씨를 일부러 소홀히 하는 게 아니예요. 사실, 옷을 사주라고 부탁한 것도 승현이예요.]재아는 비웃듯 말했다.“정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윤이가 전화해서, 승현 씨가 여전히 강아심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저더러 마음을 접으라고 하더라고요.”권수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에만 신경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본 강아심은 왠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강시언에게 물었다.“외할아버지가 우리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지 물으시면, 뭐라고 설명할까요?” 게다가 둘이 같이 돌아왔으니 말이었다. 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굳이 설명이 필요해?”아심은 미소를 지었지만,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쳤다.거실에는 도경수와 강재석이 여전히 깨어 있었다. 두 사람은 체스를 두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경수는 도우미가 전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재희야, 또 야근했니?”아심은 강재석에게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네, 굳이 저 때문에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도경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잠이 안 와서 바둑 두고 있었어. 배고프지 않아? 간식 준비해 줄까?”이에 시언이 끼어들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뭐 좀 먹고 왔거든요.”도경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쉬거라!”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럼, 위로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 다 좋은 꿈 꾸세요!”“그래, 올라가!”재석은 아심을 향해 자상하게 미소 지었다. 아심이 계단을 올라간 뒤, 강시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도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도 너무 늦지 않게 주무세요.”...강재석은 두 사람이 차례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미소를 참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도경수는 잠시 미소를 멈추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뭐가 좋아지는 건데? 그저 같이 야근하고 돌아온 것뿐이야. 너무 앞서가진 말아.”그러나 강재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계속 그렇게 현실을 외면해 봐. 어차피 아심이는 시언일 좋아해. 막으려 해도 소용없을걸.”도경수는 일부러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내가 막으면 결혼 못 하게 할 수도 있어!”강재석은 바둑판에 돌을 탁 놓으며
강아심과 강시언은 차로 돌아와 엔진을 켜고 떠났다. 희미한 조명 속에서 시언의 날카로운 턱선이 드러났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양재아가 뒤에서 꽤 많은 일을 꾸민 것 같아.”아심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길을 떨구며 말했다.“그녀는 지씨 집안의 힘을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소희의 결혼식 날, 아심은 이미 지씨 집안이 재아에게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마침 지씨 집안은 아심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이는 재아가 그들을 이용하기에 적합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런 관계는 대부분 상호 이용에 가깝다.시언은 단호히 말했다.“돌아가면 도경수 할아버지에게 말해서 네 정체를 빨리 공개하고, 양재아를 쫓아내도록 할게.”아심은 눈빛을 번뜩이며 미소를 지었다.“아뇨,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마세요.”시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왜?”아심은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지씨 집안이 재아의 도씨 집안의 손녀라는 가짜 정체에 의지하고, 재아는 또 지씨 집안의 힘이 필요해요.”“이런 동맹 관계는 더 단단할수록 나중에 깨질 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죠. 그러니 우리도 침착하게 지켜보는 게 좋아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게다가 지금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려봤자, 외할아버지는 양재아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믿지 않으실 거예요.”“그동안 외할아버지께선 재아를 꽤 좋아하셨잖아요. 괜히 실망시키지 않는 게 낫죠.”시언은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네가 어떻게 하고 싶든, 네 뜻에 따를게.”아심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보며 나른하게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뭐든 제 뜻에 따르시니, 제가 정말 감격스러워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하면 저 정말 버릇 나빠질지도 몰라요.”시언은 눈길을 살짝 그녀에게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버릇 나빠져도 상관없어. 널 아끼는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까.”그의 평범한 듯한 말투였지만, 아심은 그 한마디에 심장이 순간적으로
아심은 시언의 굳은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눈길을 돌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함께 건물을 올라가, 오형서와 약속한 방 앞에 도착했다.아심이 문을 두드린 뒤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은 희미한 조명이 깔려 있었고, 안쪽에는 다섯에서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그 중 아심의 시선은 단번에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지아윤을 향했다.아윤은 형서, 그리고 낮에 정아현을 모욕했던 이승협과 백현우와 함께 있었다. 그 외에도 남성 세 명이 더 있었다.그들은 소파에 앉아 아심과 시언을 마치 포위라도 하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아심이 남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본 아윤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옆 사람에게 눈짓을 보냈다.그 눈짓을 받은 사람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옆에 섰다. 분위기는 한껏 거만하고 위협적이었다. 마치 아심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암시처럼.아윤은 차가운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강아심 씨, 진짜 오다니, 무지한 거예요?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예요?”그러자 아심은 담담하게 물었다.“나한테 이렇게 하는 이유가 할머니의 유언 때문인가요? 하지만 유언은 내가 이미 포기했잖아요.”아윤은 화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당신이 포기하긴 했지.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게 내 사촌오빠 손에 들어갔잖아요. 이건 둘이 짜고 친 고스톱이죠?”“그렇지 않았으면 적어도 우리 집이 절반은 가졌을 텐데!”아심은 고요한 눈빛으로 말했다.“어른의 재산은 그 어른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그건 할머니의 권리였어요.”“만약 당신이 할머니께 조금이라도 효심을 더 보였더라면, 한 푼도 못 받는 일은 없었을 거고요.”아윤은 조롱하듯 비웃으며 말했다.“어머, 몇 명의 남자들에게 받들려 다니더니 이제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요? 우리 집 일까지 신경 쓰고 말이예요? 어딜 감히 주제넘게!”아심은 술잔을 들고 아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오늘 내가 당신을 가르치려고 온 건 단순히 할머니의 재산 때문이 아니야. 양재아 때문이기
이때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꽃을 잠시 보관해 드릴까요?”그러나 강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고마워요.”직원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더니 손에 무릎 담요를 들고 있었다.“저희 식당은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서요. 남자 친구분이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어요.”아심은 전화를 걸고 있는 강시언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배려에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이에 그녀는 담요를 받아서 들며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직원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남자 친구분 정말 다정하시네요!”그는 그녀에게 레몬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네, 고마워요.”아심은 시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물컵을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며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졌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과 초여름의 산들바람은 기분 좋은 상쾌함을 전해주었다.찬란한 불빛은 깨끗한 유리창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그 빛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더욱 빛났다.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긴 머리, 화사한 붉은 입술, 나른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아심의 모습은 이 도시의 밤과 어우러져 있었다.이 순간, 강성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언이 전화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샤브샤브와 재료들이 이미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그는 아심이 주문한 음식을 보며 말했다.“이렇게 많이 주문했어?”아심은 고개를 들며 웃었다.“배불리 먹어야 힘이 나죠.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시언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가 뭘 싸우겠다고 그래. 옆에서 보기만 해.”아심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아심은 시언이 가르쳐준 많은 기술을 떠올렸다. 본래는 그를 위해 일하고, 그를 위해 싸우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그녀에게 싸우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고 했다.아심은 그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은 결국 그녀의 눈과 입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아심은 고
아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미소는 아름다움과 매혹으로 가득 찼다.“정말 참 시원시원하시네요!”시언은 아심의 농담에 대꾸하지 않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곧 네 회사 도착해. 아래에서 기다릴게.]아심은 약간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금방 갈게요.”전화를 끊고, 아심은 짐을 챙기며 퇴근 준비를 했다.아현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아심이 물건을 정리하는 걸 보고 놀라며 물었다.“사장님, 오늘 이렇게 일찍 퇴근하세요?”아심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럼, 퇴근 시간이잖아요.”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다른 사람들이 정시에 퇴근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사장님이 야근 안 하고 일찍 퇴근하는 건 엄청난 일인데요. 꼭 연애라도 시작하신 것 같아요!”아심은 서류를 정리하며 가볍게 말했다.“아현 씨 연애는 어때요? 요즘 남자 친구 얘기를 잘 안 하던데?”예전엔 아현이 틈만 나면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었기에 궁금한 듯 물었다. 아현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시무룩해지며 말했다.“별로 좋지 않아요. 우리 막 사귀었는데, 남자 친구가 곧 F 국으로 2년간 발령을 받아요. 그래서 요즘 헤어질지 고민 중이에요.”“헤어지려고?”아심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네, 헤어질지 생각 중이에요.”아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막 시작했는데 곧 떠난다는 건, 그의 마음속에서 제 일이 얼마나 우선순위가 낮은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장거리 연애는 못 받아들이겠어요.”“너무 힘들잖아요. 1년에 한 번 얼굴도 못 보고, 서로의 상황도 모르고, 무슨 일이 생겨도 곁에 있어 줄 수 없는걸요.”아심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말했다.“맞아, 그런 건 정말 힘들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괜히 마음에 벽이 생기면, 나중에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좀 아쉽긴 해요.”아현은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