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상품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고용인이 끓여준 만두를 먹었다. 소희는 식초 접시 두 개를 가져다가 강씨 노인에게 한 접시 건넸다. “할아버지, 저랑 같이 만두 몇 개만 더 드세요.”강씨 노인은 코를 찌르는 식초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매년 설마다 저희끼리 이렇게 보내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내년엔 네가 임씨 가문에 가서 설을 쇠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그의 말에 소희는 정색했다.“아니요. 제가 시집을 가든지 말든지 전 매년 설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쇨 거예요.”“모든 여자아이들이 시집가기 전엔 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정작 시집 가봐. 그게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거야.”강씨 노인이 말했다.“할아버지, 절 몰라요? 전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아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허허 웃었다.“그래, 알았어.”소희는 만두를 한 입 먹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늘따라 만두가 유달리 맛있구나.”강씨 노인은 즐겁게 웃었다.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희는 강씨 노인과 함께 잠시 바둑을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바둑 한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요 며칠 소희가 집에 있던 탓에 강씨 노인은 기쁜 나머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었다. 아침에도 만두를 먹었기 때문에 오 씨는 특별히 점심에 담백하고 식욕을 돋구는 음식으로 준비했다.점심을 먹고 난 후, 강씨 노인은 뒤뜰 연못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 소희도 그의 뒤를 함께 따랐다.날씨도 좋고 기온도 높아서 연못가의 개나리는 이미 화창하게 피었다. 제법 새봄을 맞이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오붓하게 연못가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오 씨는 소희가 추워할까 봐 특별히 화로에 불을 붙여 그녀 옆에 놓았다.강씨 노인은 낚시를 하고, 소희는 난로에 기대 불을 쬐었다. 그녀는 난로의 물이 끓어오르면 강씨 노인에게 차
강씨 노인은 소희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다 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예전에는 왔다 갔다 하면서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인 적 없는데 이번에는 왜 이러는 거야? 어째 점점 더 못나지는 거 같네.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이나 해. 혼자 집에서 잘 지내고 있어. 게다가 요 며칠은 손님이 올 거라서 네가 집에 있어도 같이 있을 시간이 없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면 바로 출근해야 해요. 그럼 그때 다시 전화할게요.”“그래.”저녁, 소희는 강씨 노인과 바둑을 두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자 그녀는 강씨 노인을 방으로 데려다준 후, 자신도 방으로 돌아갔다.오 씨는 등불을 들고 그녀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다.“아가씨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세요. 제가 어르신을 잘 모시고 있으니 아가씨는 일에만 열중하세요.”“할아버지, 수고 많으셨어요.”“수고라니요? 어르신과 함께 있으면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오 씨는 등불을 들고 줄곧 소희를 문 앞까지 바래다주며 자상하게 웃었다.“밖이 추우니 아가씨는 얼른 들어가세요.”“네. 할아버지도 일찍 들어가 주무세요.”철컥-소희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무틀에 놓인 홍매화는 불처럼 붉게 피었고, 온 방 안은 은은한 매화 향기로 가득 찼다. 소희는 홍매화 사진을 찍어 아무런 문구도 없이 매화꽃만 확대해서 SNS에 올렸다. 잠시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소희는 머리를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조백림, 황정아, 오진수 등이 소희가 올린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소희야, 네가 SNS를 올리다니, 1년이 지났더만 어른이 다 됐구나. 감동이야.]어느새 그녀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어쩐지 누군가 엉뚱한 사진을 올린다 했더니 알고 보니 소희였구나.][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정남이 단 댓글에 대댓글이 달렸다.[다른 인사말은 없어?][돈 많이 버세요.][그래. 난 이 말이 제일 듣기 좋더라. 새
다음 날 아침, 소희는 강씨 노인, 오 씨와 작별을 고했다. 강씨 가문 운전사가 그녀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9시 정각, 소희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VIP 통로를 빠져나오는 임구택을 발견했다. 그는 여전히 늘씬한 몸매에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못 본 지 며칠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구택은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는 두 팔을 뻗고 그녀를 품에 꽉 껴안고 한참 동안 놓아주지 않았다.소희는 힐끔 두 사람 쪽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보더니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언제 가요?”“원래 10시 비행기였는데 지금은 못 가요." 임구택은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난번 그 호텔로 갈까요?”그의 말에 소희는 귓불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녀는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운 그의 눈에 비친 절박함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져 거절할 수가 없었다.지난번 호텔의 스위트룸. 문을 닫자마자 임구택은 현관 벽에 소희를 밀쳤다. 그는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조용히 물었다. “제가 보고 싶었나요?”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소희의 이마에 키스했다.소희는 그의 키스에 말문이 막혀 두 팔을 그의 목덜미에 걸쳤다. 임구택은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 “소희 씨가 없는 동안 전 잠을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어요. 자도 꿈에는 온통 소희 씨뿐이었어요. 소희 씨, 진짜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요.”소희는 촉촉한 눈망울을 하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임구택을 꽉 감싸 안고 끊임없이 키스를 했다.••••••소희는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깨어났다. 깨어나 보니 시간은 오후 1시였고 임구택은 어디로 갔는지 방에 없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몸이 나른하여 다시 자리에 누웠다.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베이지색 얇은 셔츠를 입은 임구택 들어와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소희 씨, 이제 일어나요.”얇은 담요를 뒤집어쓴
임구택은 그녀를 데리고 3층 침실로 갔다. 침실에는 커다란 발코니가 있었고, 발코니에 서면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과 멀리에서 로마사 건축 양식의 대성당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겼다.“샤워하러 갈래요?”임구택이 소희에게 백허그를 하며 물었다. 소희는 몸을 돌려 임구택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발뒷꿈치를 들고 임구택에게 입을 맞추었다.임구택은 곧 그녀를 끌어안고 욕실로 향했다.욕실에서 침대까지, 소희는 어렴풋이 자신이 아직 운성의 스위트룸에 있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장장 열 몇 시간 동안 지구의 반을 건너 파리로 왔는데 단지 장소만 바뀐 채 두 사람은 서로를 쟁취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 같았다.이런 생각에 소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임구택은 그런 그녀의 팔을 잡고 그녀를 침대에 눕히며 말했다.“왜 웃어요?”소희는 그를 빤히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말해줘요. 같이 웃자고요.”임구택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농담을 하며 그녀의 입술에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자신을 설레게 한 소희의 보조개도 한 입술에 삼켰다.*둘은 파리에서 하루를 보낸 뒤, 노르웨이로 날아가 오로라를 함께 봤다. 눈 속을 달리고, 한밤중에 순록 썰매를 탔다. 도심에서 멀어지니 세상 모든 것이 깨끗해 보였다. 두 사람은 이곳에 온 다른 연인들처럼 포옹하고 키스하며 연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 바빴다.노르웨이를 떠난 임구택은 소희에게 도박의 통쾌함을 맛보게 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두 사람은 오후 내내 도박장에 머물렀고, 저녁 무렵 소희는 고급 VIP룸에서 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중간 복도를 지나갔다. 한 독일 남자가 복도 창가에 서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는 소희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온몸이 팽팽해지며 소희의 뒷모습을 빤히 노려보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Bach.”그의 옆에 있던 금발의 한 여자가 소희 쪽을 바라보았다. 예쁜 여자한테 자연스럽게 적대적인 감정이 들었다.독일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소희가 사
남자는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소희를 바라보며 천천히 설명했다.“이 여자는 제 여자친구예요. 저는 이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소희는 금발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 여자가 당황하고 긴장한 채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보고, 이미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빛이 반짝였다. ‘남자 눈치를 많이 보는가 보군.’소희는 예전에는 불곰 곁에 있는 그 누구도 절대 봐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Susan.”남자는 그녀를 비밀 요원 시절 때의 이름으로 불렀다.“전 이미 불곰을 떠났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저를 제발 믿어주세요.”소희는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그는 옆으로 비켜서서, 마찬가지로 영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여기서 나를 본 건 다 잊어버려. 그렇지 않으면.”그녀는 남자 뒤에 있는 금발 여인을 바라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저 여자와 함께 여기에서 흔적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게 할 거야.”Bach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전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습니다.”그의 말에 소희는 고개를 숙이고 문밖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Bach는 즉시 길을 양보하고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소희가 가고 나서야 금발의 여자가 남자에게로 달려와 그의 팔짱을 끼며 한껏 당황해하며 물었다.“누구야?”남자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말했다. “아주 무서운 사람.”불곰 세력은 작은 나라 정도는 가볍게 없앨 수 있었다. 소희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은 길거리의 개들처럼 여기저기 널려있었다.그녀는 확실히 무서운 사람이다.••••••고급 VIP 홀.임구택은 베란다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돌아와 보니 소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리고 막 그녀를 찾으러 가는데 문밖에서 종업원이 들어와 영어로 속삭였다.“대표님, 조금 전 대표님 여자 친구분께서 화장실에 갔는데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따라 들어갔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낼까요?”그의 말에 임구택의 눈에 한기가 서렸다. 그는 빠른
아파트는 위아래 2층으로 되어있었는데 노인은 1층에서 살고 청아는 2층에 산다.청아는 중국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는 재간이 있었기 때문에 노인은 특별히 그녀의 집세를 면제해 주었고 청아는 그 노인과 함께 생활에서 서로 보살펴 주며 잘 지내고 있다.소희와 임구택이 도착했을 때 노인은 상냥하게 그들을 맞아들였고, 이 나라의 설 풍습에 따라 갖가지 사탕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창아는 소희와 임구택을 보고 감격해하며 소희의 손을 잡고 좀처럼 놓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소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밤에 둘이 함께 자고 임구택더러 옆방에서 혼자 자게 했다.청아는 소희에게 여기에서 겪었던 사정을 얘기했다.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언어가 안 통해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혼자 타국살이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다 견뎌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적응했다. 그녀는 수업하고, 집에 가고, 또다시 수업하러 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 간단하지만 충실한 하루를 보내며 살고 있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의 생활에 매우 만족했다.“나중에 너랑 둘째 삼촌이 내 카드에 그렇게 많은 돈을 줬다는 걸 알았어. 다행히 그 돈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었고.”청아가 웃으며 말했다.“힘든 시절은 다 지나갔어.”소희가 말했다.“그래, 다 지나갔어.”청아는 소희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배 위에 그녀의 손을 올려놓았다. “며칠 전에 갑자기 태동을 느꼈어. 의사가 말하길, 태동이 매우 빨랐다고 해. 뱃속의 녀석은 분명 활발하고 활동적인 아이임이 틀림없어. 내가 가장 힘들 때 견딜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 아이가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야. 아이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난 흥분해서 하룻밤을 잘 못 잤어. 아이를 남겨둬서 정말 다행이야. 소희야, 너한테도 많이 고마워. 애초에 네가 내게 아이를 남길 용기를 줬잖아.”소희는 손을 그녀의 배에 살짝 얹었다. 태동이 소희의 손에 전해졌을 때, 그녀는 가슴이 뛰며 색다른 감
강성. 설 연휴인데도 디저트 가게는 여전히 문을 열었다. 아직 연차 휴가 중이라 그런지 디저트 가게는 매일 사람들로 꽉 차서 간미연은 밤 10시가 되어야 집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바빴다.그날 밤, 집에 돌아오니 벌써 11시가 넘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외투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장명원이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순백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고 깔끔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건달티가 났다.간미연이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도 장명원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채소를 계속 썰었다.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자기 일만 열심히 했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자기 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샤워를 마친 후, 간미연은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주방으로 나왔다. 나와보니 테이블 위에는 야식이 가득 놓여 있었고 장명원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따뜻한 우유 한 잔, 새우 계란찜 한 그릇, 야채전 등등 모두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간미연은 하루 종일 바빴던 지라 저녁에는 디저트 몇 조각밖에 먹지 못했었다. 정말 배가 고팠던 그녀는 식탁 앞에 앉아 혼자서 모든 야식을 다 먹었다.장명원은 이후 며칠 동안 간미연이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야식을 꼬박꼬박 만들어 주었고, 이따금 부엌을 깨끗이 치운 뒤에야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두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장명원은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하며 간미연이 야식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그날, 집으로 일찍 돌아온 간미연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문밖에 서 있는 장명원을 발견했다.그는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집 비밀번호 바꿨어?”장명원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응.”간미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왜?”장명원이 물었다.“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나 신경 쓰지 마.”간미연은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장명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문이 반쯤 닫히자, 장명원은 갑자기 팔을
간미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등을 벽에 갖다 대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 난 이런 정략결혼은 싫다고. 나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로 부족해?”장명원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네가 바쁘다는 것도 알고, 밥도 잘 못 챙겨 먹는다는 것도 알아. 그래서 네가 잘 먹지 못할까 봐 매일 저녁 너에게 와서 밥을 해 주는데, 너는 정말 내가 그렇게 한가하다고 생각해? 이게 좋아하는 게 아니면 뭔데?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 봐. 말만 하면 내가 뭐든 다 해줄 테니까.”간미연은 고개를 들고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뭐야, 지금 고백하는 거야?’“솔직하게 말할게. 우리 연애는 가짜지만 내 맘은 진짜였어. 난 너랑 묵언이 같이 있는 것만 봐도 짜증 나고 참을 수 없어. 하루라도 널 안 보면 미칠 거 같다고.”장명원의 하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어느새 그의 눈도 약간 붉어졌다. 마치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난 다른 사람과 키스해 본 적이 없어. 네가 처음이야. 그날 밤도 내 첫 경험이었다고. 네가 지금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한번 시도해보면 되지 않을까?”“어떻게?”장명원은 벽에 팔을 기대고 몸을 기울여 간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진짜 연인들처럼 함께 지내보자. 넌 나를 좋아하려고 노력해.”간미연은 묵묵히 눈을 내리깔고 있었는데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없는 것이 마치 한창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장명원은 그녀가 거절할까 봐 조마조마했다.“3개월만 시도해 보자.”그의 말에 간미연은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의 팔을 밀치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디 인턴 체험하러 가? 3개월은 무슨 3개월?”“그러면 얼마?”간미연은 고개를 들고 똑바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어디가 좋아? 난 재미없는 여자야.”그녀도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처럼 차가운 여자를 좋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