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뇨, 아무 말도 안 했어요.”장명원이 말했다. 그는 약간 의기소침한 채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오후, 소희는 오 씨와 함께 정문에 대련을 붙이러 갔다.오랜만에 본가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고용인들에게 전부 휴가를 줬다. 그래서 집에는 요리사 한 명과 기사 한 명, 그리고 오 씨만 남았다.오 씨는 평생 결혼하지 않으셨고 이젠 강씨 가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설에도 이 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오 씨는 이제 나이도 나이인지라, 소희는 그를 배려하여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며 의자를 딛고 높은 곳에 대련을 붙였다.잠시 후, 소희가 방에 들어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임구택에게서 전화가 수없이 와 있었다. 그녀가 막 임구택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고 할 때, 그에게서 전화가 또 걸려 왔다. “전화를 왜 안 받아요?”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휴대폰 너머로 임구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자 소희는 살짝 웃었다.“대련을 붙이러 갔는데 휴대폰을 그만 안 가져가서요.”임구택은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앞으로 어딜 갈 때 꼭 휴대폰을 들고 가세요. 걱정했잖아요.”“네, 알았어요.”소희는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떼어내며 말했다.그때, 민이가 소희 앞으로 달려와 그녀 곁에 자리를 잡은 채 휴대폰을 향해 목청을 돋구었다.“소희야, 소희야.”“무슨 소리야?”임구택이 물었다. 소희는 휴대폰을 움켜쥔 채 민이를 향해 소리쳤다.“조용히 해.”민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소희?”“네, 이웃집 아이인데 절 부르고 있어요.”소희가 말했다.“목소리만 들어도 무례한 아이일 것 같네요.”임구택은 농담으로 한 말이다.“••••••”소희는 민이를 손으로 밀쳐내며 말했다.“됐어요. 전 이제 할아버지께서 음식을 준비하는 걸 도와주러 가봐야 해요. 구택 씨도 자꾸 메시지 보내지 마세요.”“소희 씨가 자꾸 생각나는데 그럼 어떡해요?”임구택이 말했다.그러자 소희는 부끄러웠는지 수줍게 피식 웃었다.
설날 전 마지막 저녁밥이 풍성하게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깨끗하고 넓은 창문은 고풍스러운 방을 한결 더 돋보이게 했다. 방에는 은은한 홍매화 향기와 백단향이 서로 어우러져 그 향기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곧, 이 은은한 향기는 음식의 향기로 가려졌다.오 씨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점심부터 지금까지 장장 여섯 시간 동안 끓였으니 어르신께서도 어서 드셔보십시오.”강씨 노인은 천천히 음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아가씨께서 안에 있는 햄과 죽순을 좋아해서 제가 먼저 한 그릇 떠드리고 오겠습니다.”강씨 노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회색 솜저고리를 입고 있었다.“걔는 내버려 둬,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강씨 노인의 말에 오 씨는 피식 웃었다.“아가씨께서 이 집에서 함께 설을 몇 년 보내지도 못하셨는데 저라도 아이 취급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아이요? 무슨 아이요?”소희는 강씨 노인에게 따뜻하게 데운 술을 들고 와서 물었다.“너 말이야, 너. 어째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린애 같은지 참…”강씨 노인은 허허 웃었다.“오히려 좋은 거 아니에요?”소희는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네. 맞아요. 저랑 어르신은 아가씨가 항상 이렇게 아이 같기를 바란답니다.”오 씨는 햄과 죽순이 가득 담긴 그릇을 그녀에게 주었다.“맛있어요.”음식이 거의 다 나오자 소희가 오 씨를 불렀다.“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여기 앉으세요.”“저는 괜찮습니다. 아가씨와 어르신께서 천천히 담소를 나누시면서 드세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요.”오 씨는 상냥하게 웃으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이제 이 집에 외부인은 없어요. 그러니까 같이 설을 보내요.”“우리 가문에서 평생을 지냈으면서 아직도 우리를 남으로 생각하는 거야? 소희 말 들어, 빨리 앉아서 같이 먹게나.”강씨 노인의 말에 오 씨는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어르신…”“내 말 들어, 빨리 앉아.”강씨 노인은 오 씨에게 술잔을 가져다주었다.“네.”오 씨는 조심스럽게
이정남, 그리고 장시원 등등.소희는 상대방이 이 새해 축복 메시지를 대량으로 여러 사람한테 보낸 것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일일이 답장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긴 새해 덕담 중 하나를 복사해 임구택에게 전달했다.곧이어, 임구택도 메시지를 보내왔다.[황정아 씨를 대신해 새해 축하 인사를 하는 거야? 모든 일이 잘 풀리라고?]그의 문자에 소희는 어리둥절해서 조금 전 임구택에게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글 제일 마지막에 황정아라고 이름이 적혀있었다.메시지가 워낙 길다 보니 미처 채 읽지 못해 벌어진 대참사였다.[축복 메시지를 이렇게 많이 보낸 것을 보고 좀 감동 받았는데 마음이 좀 아프네요.][미안해요. 처음이라 좀 서툴렀어요. 제가 다시 이름이 적혀있지 않은 메시지를 복사해서 보내드릴게요.][••••••]그때, 소희는 임구택에게 666만 원을 입금했다. [마음이 더 아파졌어요.]임구택에게서 곧바로 문자가 왔다.임씨 가문.소파에 앉아 소희와 메시지를 나누고 있는 임구택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임유민이었다.“삼촌, 할머니께서 내려와서 같이 카드놀이를 놀재요.”임지언과 임구택 아버지는 같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 카드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카드놀이를 할 사람은 임구택 어머니와 우정숙, 임유림뿐이었다.“알았어. 지금 갈게.”임구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1층, 임구택 어머니는 그를 보자마자 재촉했다.“구택아, 어서 일로 와.”임구택은 소파에 앉아 거실 TV를 보며 물었다.“엄마, 야회는 언제 시작해요?”“여덟 시. 왜? 혹시 보려고?”“네. 심심한데 야회나 보려고요.”임구택이 말했다.임유민이 텔레비전을 켜자 임구택은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야회가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 벌써부터 백스테이지에서는 야회에 참가하는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있었다.그때, 고용인이 다가와 임구택 어머니에게
구은서는 옆문으로 나가 몇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임구택이 돌길 한쪽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얇은 흰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는 임구택은 벤치를 등지고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의 옆모습의 윤곽은 짙고도 아름다웠다.지극히 평범한 자세였지만 임구택이 하고 있으니 어딘가 나른하고 귀티가 배어 있어 보였다.구은서는 걸음을 늦추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소년 시절의 앳된 모습을 벗어던진 남자는 진중함은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숙한 남자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어른이 되었다. 무표정에서도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을 선사하는 어른 말이다.구은서는 예전에는 소년 시절의 임구택에게만 호감을 가졌다면, 이제 그녀는 임구택이라는 이 남자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그녀는 앞으로 임구택보다 더 나은 남자를 절대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그를 다른 여자에게 양보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먹었다.임구택은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그렇게 적게 입으면 춥지 않아?”구은서는 아무 일도 없었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임구택은 눈을 내리깔고 휴대폰으로 문예 야회를 검색하며 말했다.“괜찮아.”“네가 나를 보자마자 피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야.”구은서는 임구택 옆에 앉았다.임구택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오늘은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 거니까.”그의 말에 구은서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난 손님이고, 그럼 소희는?’“엄마가 하도 같이 가자고 하셔서. 네가 날 보고 기분 나빠할까 봐 안 오려고 했는데, 나도 오랜만에 아주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구은서가 말했다.“난 기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너도 이젠 나랑 소희 씨 마음을 추측할 필요도 없고.”임구택은 미적지근하게 말했다. 그의 말에 구은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싫어요. 전 야회를 볼 거예요.][야회가 저보다 더 좋아요? 선택하세요. 저예요? 야회예요?][야회는 설날 밤에만 볼 수 있는데 구택 씨는 꼭 오늘이 아니어도 매일 볼 수 있잖아요.]“••••••”순간, 그녀의 답장에 임구택은 뭐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야회도 보고 채팅도 하니 시간은 점점 11시가 되어갔다. 소희는 할아버지와 함께 새해 카운트다운을 세고 싶어서 임구택을 먼저 자게 할 심산이었다.[전 안 졸려요. 소희 씨가 언제 자면 저도 언제 잘게요.]임구택에게서 문자가 왔다.아래층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마도 구씨네 가족이 이제 막 집으로 가는 것 같았다.소희는 매년 설 카운트다운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엔 임구택과 문자를 주고받은 덕분에 예전보다 더 쉽게 밤을 지샐 수 있었다.12시가 거의 가까워지자 오 씨는 폭죽을 터뜨릴 준비를 했다. 어느새 야회 사회자도 설 카운트다운을 하며 새해를 맞이하기 시작했다.밖에서는 폭죽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고, 텔레비전에서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12가 되기 바쁘게 소희는 임구택으로부터 계좌이체를 받았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숫자 뒤에 붙은 0을 샜다. 몇 번이나 금액을 세어보던 소희는 경악했다.[이건 뭐예요?][세뱃돈.]띠링-그때, 임구택에게서 문자가 또 하나 날라왔다.[세뱃돈을 줬으니 저를 점점 더 좋아해 주세요.]소희는 오글거림을 참지 못해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정 표현을 할 때도 이렇게 오글거리는 편이구나.’소희는 그가 보낸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강씨 노인이 한마디 했다.“왜 그렇게 실없이 웃어?”소희는 이내 휴대폰을 감추고 다급히 변명했다.“새해니까요. 새해여서 기분이 좋은 거죠.”“내가 보기에 임씨 가문 그 자식 때문에 이렇게 기뻐하는 것 같은데?”강씨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피식 웃었다. “가서 자. 나랑 함께 있어 줄 필요 없어. 내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안 졸려요.”소희는 고개를 가
정월 초하루.아침 일찍부터 밖에서 귀청이 터질 것 같은 폭죽 소리에 소희는 일찍 잠에서 깼다. 전날 임구택과 수다를 떨다가 새벽 2시에야 잠을 잤으니 아직 날이 채 밝기도 전이기 때문에 그녀는 기껏해야 겨우 3시간 남짓 잔 것이다.소희는 너무 졸린 나머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녀는 귀가 따갑게 들려오는 폭죽 소리에도 다시 잠이 들었다. 그렇게 늦잠을 잤더니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햇빛이 나무창을 통해 온 집안에 쏟아졌고, 바닥에는 등불의 붉은 그림자가 비쳤다. 창밖에는 몇 그루의 대나무들이 축축 드리워져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온 세상이 고요한 잠에 빠진 것만 같았다.띠링- 띠링-침대 머리맡에 뒀던 그녀의 휴대폰이 계속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모두 카톡 단체방에서 온 메시지들이었다.조백림이 만든 단체방에서는 기프티콘을 나눠주고 있었고, “파워맨”이라는 낯선 단체 채팅방에서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울렸다.소희는 자신이 언제 이 단체 채팅방에 가입한 것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단체방에 한 번 들어가 보니 그제야 모두 서인의 샤부샤부 가게 사람들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임유림이 단체 채팅방을 만든 김에 그녀도 요청한 것이다. 처음에는 온갖 새해 인사말들로 화면을 빽빽하게 채웠었는데 임유림이 먼저 기프티콘을 보내면서부터 평화롭던 채팅방이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로 금액이 더 큰, 더 좋은 기프티콘을 보내겠다고 앞다투어 난리를 피웠다.[사장님, 유림… 두 사람 대체 뭐 하는 거예요?]임유림과 서인은 서로 지지 않으려고 엄청난 금액의 기프티콘을 보내기 시작했다.이문을 포함한 채팅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전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임유림이 서인에게 문자를 보냈다.[아직도 나랑 비기는 거야?][누가 너랑 비긴다고 그래? 난 사장이니까 당연히 내가 모두에게 선물을 주는 게 맞다고.][감사합니다, 사장님.]이문을 포함한 직원들은 서둘러 감사 인사를 표했다.하지만 임
“소희 씨는요? 소희 씨는 제가 안 보고 싶어요?”임구택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영상 통화 가능해요?”“할아버지가 절 부르세요.”소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묵묵히 대꾸했다.임구택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천천히 말했다.“할아버지한테 전화 바꿔드릴 수 있어요? 새해 인사 좀 드리려고요.”“됐어요. 설에 할아버지를 놀랠 킬 일이 있어요?”소희가 말했다.“내년에 할아버지께 직접 인사드리러 갈게요.”“그래요.”소희는 무심결에 대답하고는 잠시 주춤했다.“이만 끊을게요.”“네.”임구택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베이비, 사랑해요.”임구택의 말에 소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먼저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고 나서야 소희는 그 몇 초간의 침묵이 사실 임구택이 자신이 대답하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소희는 침대에 엎드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깥은 날씨도 좋고 햇살도 따스했다. 그녀는 처마 밑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등불을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 머릿속은 온통 임구택으로 꽉 차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 그가 말하는 모습, 사랑한다고 말하는 말투까지… 소희는 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갑자기, 그녀는 그가 그렇게 보고 싶어졌다.•••••잠시 후, 소희가 일어나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좀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뜻밖에도 그녀를 깨우지 않았던 것이다.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갔는데 복도를 지나가다 오 씨가 홍매화 화분을 들고 오는 걸 발견했다. “아가씨, 일어났네요? 배고프죠? 부엌에 닭고기 수프와 만두가 있어요.”“네.”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홍매화를 바라보았다. “꽃이 피었네요?”“네. 어젯밤에 꽃을 피웠는데 어르신께서 아가씨가 홍매화를 좋아하신다고 아가씨 방으로 보내라고 하셔서요.”“할아버지는요?”“정원에 계십니다.”“오늘은 왜 이렇게
소희는 상품권을 주머니에 넣었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아 고용인이 끓여준 만두를 먹었다. 소희는 식초 접시 두 개를 가져다가 강씨 노인에게 한 접시 건넸다. “할아버지, 저랑 같이 만두 몇 개만 더 드세요.”강씨 노인은 코를 찌르는 식초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 매년 설마다 저희끼리 이렇게 보내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내년엔 네가 임씨 가문에 가서 설을 쇠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그의 말에 소희는 정색했다.“아니요. 제가 시집을 가든지 말든지 전 매년 설마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쇨 거예요.”“모든 여자아이들이 시집가기 전엔 다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정작 시집 가봐. 그게 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게 될 거야.”강씨 노인이 말했다.“할아버지, 절 몰라요? 전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아요.”소희의 말에 강씨 노인은 허허 웃었다.“그래, 알았어.”소희는 만두를 한 입 먹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속아 넘어간 것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오늘따라 만두가 유달리 맛있구나.”강씨 노인은 즐겁게 웃었다.그렇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소희는 강씨 노인과 함께 잠시 바둑을 두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바둑 한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요 며칠 소희가 집에 있던 탓에 강씨 노인은 기쁜 나머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었었다. 아침에도 만두를 먹었기 때문에 오 씨는 특별히 점심에 담백하고 식욕을 돋구는 음식으로 준비했다.점심을 먹고 난 후, 강씨 노인은 뒤뜰 연못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 소희도 그의 뒤를 함께 따랐다.날씨도 좋고 기온도 높아서 연못가의 개나리는 이미 화창하게 피었다. 제법 새봄을 맞이하는 듯했다. 두 사람은 오붓하게 연못가에 앉아 햇볕을 쬐었다.오 씨는 소희가 추워할까 봐 특별히 화로에 불을 붙여 그녀 옆에 놓았다.강씨 노인은 낚시를 하고, 소희는 난로에 기대 불을 쬐었다. 그녀는 난로의 물이 끓어오르면 강씨 노인에게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