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한 손에는 통조림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성연희를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성연희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통조림을 먹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역시 사람이 좋아. 비록 날지는 못하지만 통조림은 먹을 수 있잖아!”소희가 그녀의 이마를 만져보고 말했다.“그렇게 많이 마실 수 없으면 마시지 마!”“안 취했어!”티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녀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 소희가 가져와 보니 노명성이 영상통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소희는 휴대전화를 성연희에게 건넸다.전화를 받은 성연희는 기뻐하며 말했다.“명성, 방금 뭘 봤어?”영상으로 노명성은 성연희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뭘 봤냐고?”“날 수 있는 새 한 마리!”성연희는 잔뜩 흥분한 채 말했다. 소희는 한숨을 내쉬며 둘이 대화를 나누게 하고는 혼자 방으로 돌아갔다.샤워하고 침대에 누운 그녀는 임구택이 문자를 보냈다는 걸 발견했다.【뭐해?】【방금 샤워를 마치고 자려던 중.】한참 후에야 임구택이 답장했다.【만나러 갈게.】소희가 곧 답장했다.【안 돼, 성연희가 우리 집에 있어서 한밤중에 나갈 수 없어.】임구택은 바로 영상 요청을 보냈고 소희는 거절했다.【연희가 집에 있다니깐.】영상 통화 요청을 중단한 그는 전화를 걸어왔다.“소희야!”“응.”소희는 전화기 너머로 조금 시끄러운 소리를 들었다.“내가 찾아갈 테니 넌 나올 필요 없어. 내가 집 밖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게.”임구택이 속삭였다.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그다음엔? 날이 밝으면 다시 강성으로 돌아갈 거야? 장난 치지 마!”“장난 아니야, 오늘 밤은 분명 잠을 못 잘 거야.”“어딘데?”“케이슬,장시원이랑 카드놀이 중이야.”“그럼 가서 카드놀이 해.”“재미없어!”그는 잠시 주춤하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소희야, 사랑한다고 말해줘.”소희는 잠시 침묵했다. 남자의 낮고 느린 숨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을 두드
성연희는 새침하게 입을 삐죽거리고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그리고 한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만약 임구택씨가 이 동영상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가? 아마 엄청 샘이 나겠지~"소희도 이에 깔깔 거리며 웃었다."그럼 이왕이면 이 것도 노명성씨한테 보내줄가?""에잇~ 명성씨 그런걸로 질투 안해."성연희가 답했다. 소희는 그런 성연희를 곁눈으로 한번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침대에 편히 주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고 있었다.이때 성연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 결혹식에 너 꼭 와야돼, 알겠지? 와서 신부 들러리 해줘야 한다고!""신부 들러리? 근데 나 이미 결혼 했는걸.""얘를 좀봐, 너가 말만 하지 않으면 누구도 몰라! 그냥 와서 모른척 하면 되는거라고!"성연희는 전혀 문제가 될게 없다는듯 소희를 졸랐다."그리고 너랑 구택씨가 결혼할때도 나를 꼭 불러야돼! 나도 너 결혼식에서 신부 들러리 할거야!"그녀와 임구택의 결혼식이라...소희는 잠시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기였다. 이 순간 만큼은 임구택과의 결혼식이 멀게만 느껴졌다.성연희는 여전히 침대위에서 뒹굴거리며 상상의 세계속에 흠뻑 빠져있었다. "구택씨도 결혼식에 참석하게 된다면 완전 금상천화인데... 아쉽다, 그 신분으로는 불가능이야, 불가능!"성연희는 혼자말로 중얼거리였다. 옆에 있는 소희도 점점 피곤함이 몰려오는듯 했다.그러나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성연희가 말을 걸어와서 밤잠을 방해하는 거였다."근데 소희야, 그 서인 오빠는 어디있어? 같이 운성으로 돌아가서 새해를 맞이하려 했던거 아니였어?""음? 아... 오지 않겠대. 아마 이문씨랑 같이 있나봐.""뭐야 그럼? 이문씨도 그럼 집으로 않가고?""그러나봐.""그 것도 그리 나쁜건 아니네. 삼삼오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이나 마시며 놀면 그만인 거지."소희는 눈을 게슴츠레 떠서 성연희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쏠려오는 잠을 가까스로 밀어내고 있었다.바로 이때 탁상위에
소희도 사실 잠이 오지 않는건 매한가지 였다.그녀는 서서히 눈을 뜨더니 예전에 있던 일을 회억해 냈다."예전에 나 사실 특수한 임무 하나를 수행한 적이 있었어. 불곰이라는 사람 밑에서 잠복하는 임무였었지. 불곰은 아이스랜드 부근에 작은 섬 하나를 소유하고있었는데 글쎄 그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으로 생물학 병기를 연구하는 거였어. 그렇게 3개월 잠복하고 있다 섬의 방어시스템을 장악하고 오빠랑같이 섬을 성공적으로 폭파했었어. 그렇게 모든 불곰이 진행했던 연구들은 물거품으로 되고 바다밑에 가라 앉는듯 싶었는데...""아쉽게도 당사자인 불곰은 도주한 상태였고 그뒤로 종적을 감춰버렸지 뭐야. 그래서 그냥 그러러니 했는데 어느날엔간 문뜩 나타나 오빠 밑의 사람들을 매수해서 복수를 계획했더라고.""그렇게 정작 나는 죽지 않았고 대신 백양 그들이 죽은거야."성연희는 귀담아 듣고 있었다."그래서 너랑 서인이 살아 남게 된거고?""그렇지."말하는 소희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 있었다."그뒤 나도 그렇고 서인도 그렇고 모두 조직에서 탈퇴했어.""그럼 아까 전화에서 서인씨가 한 말은 뭐야? 그래서 불곰은 여직 살아있고 새로운 복수를 꾀한다는 거야?"소희는 머리를 저었다."아니, 그런 거는 아니야. 사실 내가 되려 그를 쫓고 있는거지."그녀의 오빠를 배신한 자들은 모조리 죽은 상황에 정작 모든 일의 근원인 불곰은 살아있는게 소희는 너무 싫었다. 그래서도 친히 손으로 죽여버리리라 마음 먹었던 거다.백양의 복수를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생명 의의를 이렇게 정의했다.강성의 케이슬.임구택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서 소희와의 대화기록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이때 구은서가 한접시의 과일을 들고 나타났다."시원 오빠는 무슨 뉴질랜드로 간다네 스위스로 간다네 되게 바쁘게 보내고 있더라고.""그래? 바쁘군... 나도 나만의 계획이 있는데..."임구택의 말에 구은서는 잽사게 말꼬리를 잡았다."계획? 무슨 계획? 소희씨와의 계획인거에요?""응."임구택은 눈길한번 주지 않고
“네.”간미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먼저 끊을게요.”전화를 끊고, 간미연은 밖을 내다보았다.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형형색색의 등불이 비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적막해 보였다.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간미연은 자신의 아버지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아 한동안 슬픔에 휩싸였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가족은 남 부러울 것 없이 화목했고 그녀도 자기 아버지가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아버지가 바깥에서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있을 때, 그 부드럽고 자상함은 그녀가 여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간미연은 차마 아버지의 외도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혼자 속으로 괴로워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그녀는 그 불륜녀를 쫓아내고 가족의 평화를 다시 찾으려고 시도했다. 간미연은 몰래 두 사람을 미행하면서 사진을 찍고, 증거를 남겼다.모든 증거를 수집해 그녀의 아버지와 당당히 맞섰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침착하게 그녀의 엄마는 이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게다가 그녀의 어머니 또한 밖에 숨겨둔 애인이 있다고 알려주었다.간미연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같이 차를 타고 그녀의 어머니를 미행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별장으로 들어갔다가 밤새 나오지 않는 것을 목격한 후, 간미연은 더 깊은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알고 보니 화목하고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는 건 모두 허상이고 거짓말이었다.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두 사람은 감정이 없는 정략결혼을 했고, 결혼하기 전에 모두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결혼은 하되, 각자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서로 합의 봤다고 했다. 간미연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아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혼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그러자 그녀의 아버지는 간미연
간미연은 고개를 돌려 장명원을 바라보았다.장명원은 며칠 전에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잘생긴 그의 얼굴이 더 돋보였다. 웃으면 드러나는 순진함 속의 왠지 모르는 사악한 기운, 마치 판타지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 소년 같았다.“한밤중에 데이트라고? 왜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장명원은 농담을 건넸다.간미연은 그런 그를 묵묵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명원이 그녀를 노려보며 무슨 말을 하려는데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도착하는 바람에 간미연은 그를 뒤로한채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한밤중의 엘리베이터 안. 그들 단 두 사람밖에 없었는지라 분위기는 조용하고 적막했다.두 사람의 관계는 다소 복잡했다. 원래 가짜 연애를 하는 척하기로 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관계가 조금씩 달라졌다.장명원은 술기운을 빌어 질투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몇 차례의 키스까지 나누었다. 하지만 날만 밝으면 둘 중 누구도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못 하는 사람처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서로를 대했다. 마치 지금처럼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속마음을 품고 있었다.엘리베이터를 나오자, 간미연은 집 문을 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곧 설이니까 집으로 가 봐. 내일 나도 갈 거야.”장명원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말했다.“가기 싫어.”간미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현관에서 두 사람은 신발을 바꿔 신고 거실로 들어섰다.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유리 창문 너머로 바깥의 화려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간미연은 말없이 집마다 환히 켜진 등불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가족들끼리 함께 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부유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설날을 보내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과 재회하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장명원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간미연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간미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장명원은 거실 불을 켜고 소파에
그때, 그는 갑자기 간미연의 휴대폰을 빼앗아 한쪽에 던졌다. 그는 아예 간미연 쪽으로 몸을 돌려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장명원은 간미연에게 할 말이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머리가 횅해져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간미연, 그녀의 까만 두 눈동자는 오늘따라 유달리 아름다워 보였고 촉촉하고 빨간 입술에 쌀쌀한 표정까지… 장명원은 마음속으로 겨우 말할 수 없는 충동을 꾹 삼켰다.장명원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잊고 그녀의 입술만 쳐다보며 다가갔다.그러자 간미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냉소했다.“장명원, 또 많이 마셨어?”“아니.”장명원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그는 간미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키스하고 싶어.”“만약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면 어떡할 거야?”그녀의 말에 장명원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뭐라고?”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그녀와 묵언이 함께 있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고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장명원은 한 번 피식 냉소하더니, 간미연의 시선을 피했다. 그는 이제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바로 그때, 간미연이 갑자기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무슨 뜻이야? 설마 양다리라도 걸치려고?”장명원은 그녀를 돌아보며 콧웃음쳤다.그런 그를 올려다보는 간미연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심장박동은 확연히 빨라졌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나지막했다.“오늘 여기서 자고 가.”예상치 못한 간미연의 말에 장명원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어서 샤워하러 가. 난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간미연은 태연하게 말을 마친 후,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장명원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으로 한창 샤워를 하면서 조금 전 간미연이 했던 말과 그녀의 표정을 머릿속으로 곰곰이 곱씹었다. 샤워를 하니 취기가 솟아올랐다. 그는 말할 수 없는 모종의 충동을 느끼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서둘러 몸을 닦고 부랴부랴 욕실을 나갔다. 거실의 불은 아직도 켜져 있었다.
장명원이 깨어났을 때, 날은 이미 밝았고, 따스한 햇볕이 짙은 남색의 큰 침대에 비껴 침실 안에는 밝은 빛으로 가득했다.오늘은 섣달그믐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밖에서는 어느새 은은한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장명원은 졸린 얼굴로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어젯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나자,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간미연은 어디로 갔는지 그의 옆자리는 텅 비어있었다.막 일어서서 그녀를 찾으려는데,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본능적으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며 아직도 자는 척했다.간미연은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위에서 아직도 자고있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쿵쾅쿵쾅-장명원은 주체할 수 없는 심장 떨림에 더 이상 자는 척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눈을 뜨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간미연은 파자마를 입고 벽에 기대어 침대 위의 남자를 말없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장명원은 그런 그녀의 시선에 부끄러워 그만 얼굴이 '쓱' 붉어졌다. 그는 이불을 다시 끌어당겨 머리 위로 뒤집어썼다.“좋•••••• 좋은 아침.”장명원은 계속 이불로 입을 가리고 있다가 겨우 말을 걸었다.간미연은 웃음이 났지만 겨우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고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아침 만들었어. 옷 입고 나와서 밥 먹자.”“알았어.”장명원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다급히 이불 속으로 몸을 감췄다. 간미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쿵-문이 닫히고 나서야 장명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그는 자기 손바닥이 온통 땀투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어젯밤, 그는 간미연과의 싸움에서 압승을 거뒀다. 평소 게임을 할 땐, 간미연에게 지기 일쑤였는데 마침내 그에게도 판도를 뒤엎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하지만 밤까지만 해도 장명원이 이긴 줄 알았는데 왜 날이 밝자마자 정작 침대에서 주도권을 차지한 사람은 오히려 간미연 같은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런 생각에 장명원은 화가 나 단숨에 이불을 걷어 올리고 막 일어나 욕
간미연은 고개를 들고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난 정략결혼은 진짜 싫어. 연애하는 척 연기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우린 이만 끝내.”간미연은 정략결혼의 거짓된 친밀감을 싫어했다. 그녀는 장명원과 자신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두 사람도 자기 부모님 같은 사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훨씬 더 커졌다. 간미연은 다른 사람의 거짓말과 속임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장명원과 그런 쇼윈도 부부가 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장명원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혹시 마음속에 묵언을 품고 있어서 그런 것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정말 묵언을 좋아한다면 어젯밤엔 왜… 하지만 장명원에게는 묵언을 좋아하냐고 물어볼 권리도 없었다. 그는 줄곧 가짜였으니까…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장명원과는 달리 간미연은 줄곧 냉정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빨리 먹어.”간미연은 컵에 담긴 물을 비우고 바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간미연은 방으로 돌아가 물건을 챙기고 집에 가려고 했다.이런 상황에 어떻게 계속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장명원은 혼자 잠시 앉아 있다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는 문에 기대어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혹시 어젯밤, 내가 너를 만족시키지 못한 거야?”“…”간미연은 캐비닛 앞에 반쯤 쭈그리고 앉아 USB를 손에 꽉 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며 장명원을 바라보며 말했다.“꺼져.”“나… 난…”잘생긴 장명원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는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인정할게. 난 어젯밤이 내 인생에서 처음 겪어본 경험이었어. 무슨 문제가 있다면 바로 나한테 알려줘. 고칠게.”그의 말에 간미연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그녀는 순간, 장명원을 때려죽이고 싶어졌다.“간미연, 우리 결혼하자.”당황한 장명원은 그녀를 붙잡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간미연은
재아는 시언의 냉랭한 시선을 받자, 등골이 오싹해졌다.자기 말에 허점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시언이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느낌에 불안감이 밀려왔다.검사실 밖시언이 검사실에 도착했을 때, 아심은 문밖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시언이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뒤늦게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놀란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시언은 아심에게 다가가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팔에 약간의 긁힌 상처가 있었다.“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아심이 먼저 물었다. 시언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날 나한테 뭐라고 약속했지?”아심은 잠시 멈칫했다. 곧바로 그날 저녁 그의 별장에서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시언은 그녀에게 다시는 승현과 얽히지 말라고 했었다.아심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일 외에는 사적인 연락은 없었어요.”시언은 아심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너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건 아니겠지?”아심은 그의 질문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시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대답하려던 찰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검사 끝났어요. 보호자 분, 빨리 오세요!”아심은 시언을 한 번 바라본 뒤, 검사실로 향하는 침대로 먼저 달려갔다. 시언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기운이 마음속 깊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시언은 재아의 이간질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심은? 승현이 그녀에게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아심은 간호사들과 함께 승현을 검사실에서 병실로 옮겼다. 병실로 돌아온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복도를 살피며 시언을 찾았지만, 분주한 사람들 틈에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속에서 차오르는 불안을 애써 누르며, 그녀는 승현을 돌보는 데 집중했다.잠시 후, 의사가 결과를 들고 와 말했다.“다행히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진 것 말고는 내장이 다치지 않았어요. 머리 외상으로 출혈이 많고 가벼운 뇌진탕이 있지만,
양재아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자리에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것이다.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래선 급히 택시를 잡아 아심이 타고 간 차량을 따라갔다.병원에 도착하자 재아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다섯 번, 여섯 번 울렸을 때까지 상대가 받지 않아 그녀는 체념하려던 순간,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재아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서둘러 말했다.“시언 오빠, 큰일 났어요. 빨리 병원으로 와 주세요!”시언이 물었다.[무슨 일이지?]재아는 다급히 말했다.“아심 씨랑 지승현 씨가 차에 치였어요. 둘 다 병원에 있어요. 빨리 와 주세요!”재아는 상대방의 숨소리가 잠시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남자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다급하고 불안했다.[어느 병원이지?]재아는 병원 이름을 말했고, 그녀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시언은 전화를 끊었다.시언은 최대한 빠르게 차를 몰아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아심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그의 마음은 점점 더 초조해졌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20분 후, 시언은 병원에 도착해 바로 프론트로 갔다.“30분 전쯤 교통사고로 남녀 한 쌍이 이 병원에 실려 왔나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프론트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정리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네요. 다른 데 물어보세요.”시언의 목소리가 조금 쉰 듯, 서늘하고 날카로웠다.“그들이 어디 있냐고 물었습니다.”직원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시언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를 꽤나 긴장시켰고, 그녀는 얼른 말했다.“바로 확인해 드릴게요!”프론트 직원은 최근 접수 기록을 찾아 시언을 승현과 아심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응급실 안에서, 의사들은 지승현의 출혈을 멈추고 붕대를 감으며 각종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의사 중 한 명이 물었다.“가족분은 오셨나요?”아심이 급히 대
고객은 지승현에게 예의 있게 인사를 건넨 뒤 먼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승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어머니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 너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고 하길래, 너도 부른 줄 알았어.”아심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너희 어머니와 이미 다 얘기 끝낸 거 아니었어?”승현 역시 의아한 듯 대답했다.“그렇지, 이미 어머니께 우리가 헤어졌다고 말했어. 그런데 어머니는 대체 뭘 하려는 걸까?”아심은 양재아가 지아윤을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리며, 승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재아가 너희 어머니랑 아윤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승현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이미 친어머니와 지아윤의 계략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재아와 결혼하라는 그들의 요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레스토랑 안에.재아는 창문 너머로 승현과 아심이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심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아심이 승현의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까 봐 마음이 불안해졌다.재아는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어, 정말 우연이네요!”재아는 승현의 옆으로 다가가 친근한 척하며 아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심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고, 승현은 즉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도재아 씨,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승현이 아심의 앞에서 자신을 도재아라고 부르자 재아는 순간 당황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승현 씨 어머니가 저를 여기로 부르셨어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마치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설마 승현 씨도 어머님이 부르신 건가요?”승현은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고, 그의 표정은 차갑고 딱딱해졌다.“마침, 저도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오늘 만난 김에 제대로 얘기 나누죠.”재아는 지승현이 자신을 거절하려는 것임을 직감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얼굴에는 억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좋아
오늘 강아심은 철저히 준비하고 왔다. 분명 지승현이 정보를 흘려 미리 아심에게 알렸을 것이었다.‘나를 회사에서 해고할 뿐만 아니라, 외부인과 짜고 집안사람을 괴롭히다니.’순간, 지아윤의 마음속에서 승현에 대한 증오가 아심에 대한 분노를 훨씬 뛰어넘었다.아윤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복수할 것이었다....양재아는 출근길 내내 심란했다. 권수영의 생일이 지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지만, 권수영은 여전히 친절하고 다정했다.심지어 예전보다 더 정성스럽게 대해줬지만, 정작 승현은 한 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특히 오늘 아침 받은 그 전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잠시 고민한 뒤, 재아는 권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재아 씨, 출근했어요?]권수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네, 출근했어요.”권수영은 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아침에 보내주신 옷 잘 받았어요. 고마워요, 사모님.”[고맙긴. 곧 우리도 한 가족이 될 텐데, 내가 재아 씨를 아끼는 건 당연한 거죠.]권수영의 말투는 여전히 따뜻하고 세심했지만, 재아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분은 그날 이후로 저를 전혀 찾지도 않으셨어요. 그분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저도 알아요.”“그러니 앞으로는 선물 같은 것도 주지 마세요. 저희는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걸로 하죠.”권수영은 순간 당황하며 서둘러 말했다.[재아 씨, 그건 재아 씨가 오해한 거예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집에도 잘 못 들어오고 있어요.][정말로 재아 씨를 일부러 소홀히 하는 게 아니예요. 사실, 옷을 사주라고 부탁한 것도 승현이예요.]재아는 비웃듯 말했다.“정말이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아윤이가 전화해서, 승현 씨가 여전히 강아심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저더러 마음을 접으라고 하더라고요.”권수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바로 반박했다.[그럴 리가 없어요! 승현이는 요즘 회사 일에만 신경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본 강아심은 왠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 강시언에게 물었다.“외할아버지가 우리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지 물으시면, 뭐라고 설명할까요?” 게다가 둘이 같이 돌아왔으니 말이었다. 시언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굳이 설명이 필요해?”아심은 미소를 지었지만, 현관문을 들어설 때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쳤다.거실에는 도경수와 강재석이 여전히 깨어 있었다. 두 사람은 체스를 두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경수는 도우미가 전하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며 그녀를 살피며 물었다.“재희야, 또 야근했니?”아심은 강재석에게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네, 굳이 저 때문에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도경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잠이 안 와서 바둑 두고 있었어. 배고프지 않아? 간식 준비해 줄까?”이에 시언이 끼어들며 말했다.“괜찮아요. 방금 뭐 좀 먹고 왔거든요.”도경수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얼른 가서 쉬거라!”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그럼, 위로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 다 좋은 꿈 꾸세요!”“그래, 올라가!”재석은 아심을 향해 자상하게 미소 지었다. 아심이 계단을 올라간 뒤, 강시언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도 올라가서 쉴게요. 두 분도 너무 늦지 않게 주무세요.”...강재석은 두 사람이 차례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미소를 참지 못했다.“두 사람 사이가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아!”도경수는 잠시 미소를 멈추더니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뭐가 좋아지는 건데? 그저 같이 야근하고 돌아온 것뿐이야. 너무 앞서가진 말아.”그러나 강재석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계속 그렇게 현실을 외면해 봐. 어차피 아심이는 시언일 좋아해. 막으려 해도 소용없을걸.”도경수는 일부러 고집을 부리며 말했다.“내가 막으면 결혼 못 하게 할 수도 있어!”강재석은 바둑판에 돌을 탁 놓으며
강아심과 강시언은 차로 돌아와 엔진을 켜고 떠났다. 희미한 조명 속에서 시언의 날카로운 턱선이 드러났고,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보아하니, 양재아가 뒤에서 꽤 많은 일을 꾸민 것 같아.”아심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눈길을 떨구며 말했다.“그녀는 지씨 집안의 힘을 이용하려는 것 같아요.”소희의 결혼식 날, 아심은 이미 지씨 집안이 재아에게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마침 지씨 집안은 아심에 대해 반감이 있었고, 이는 재아가 그들을 이용하기에 적합한 상황이었다. 물론, 이런 관계는 대부분 상호 이용에 가깝다.시언은 단호히 말했다.“돌아가면 도경수 할아버지에게 말해서 네 정체를 빨리 공개하고, 양재아를 쫓아내도록 할게.”아심은 눈빛을 번뜩이며 미소를 지었다.“아뇨,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마세요.”시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왜?”아심은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대답했다.“지씨 집안이 재아의 도씨 집안의 손녀라는 가짜 정체에 의지하고, 재아는 또 지씨 집안의 힘이 필요해요.”“이런 동맹 관계는 더 단단할수록 나중에 깨질 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죠. 그러니 우리도 침착하게 지켜보는 게 좋아요.”그녀는 이어서 말했다.“게다가 지금 외할아버지께 말씀드려봤자, 외할아버지는 양재아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믿지 않으실 거예요.”“그동안 외할아버지께선 재아를 꽤 좋아하셨잖아요. 괜히 실망시키지 않는 게 낫죠.”시언은 그녀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네가 어떻게 하고 싶든, 네 뜻에 따를게.”아심은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돌려 그를 보며 나른하게 미소를 지었다.“당신이 뭐든 제 뜻에 따르시니, 제가 정말 감격스러워요. 그런데 이렇게 계속하면 저 정말 버릇 나빠질지도 몰라요.”시언은 눈길을 살짝 그녀에게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버릇 나빠져도 상관없어. 널 아끼는 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니까.”그의 평범한 듯한 말투였지만, 아심은 그 한마디에 심장이 순간적으로
아심은 시언의 굳은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살짝 눈길을 돌리고는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함께 건물을 올라가, 오형서와 약속한 방 앞에 도착했다.아심이 문을 두드린 뒤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은 희미한 조명이 깔려 있었고, 안쪽에는 다섯에서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그 중 아심의 시선은 단번에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지아윤을 향했다.아윤은 형서, 그리고 낮에 정아현을 모욕했던 이승협과 백현우와 함께 있었다. 그 외에도 남성 세 명이 더 있었다.그들은 소파에 앉아 아심과 시언을 마치 포위라도 하듯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아심이 남자를 데리고 온 것을 본 아윤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옆 사람에게 눈짓을 보냈다.그 눈짓을 받은 사람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옆에 섰다. 분위기는 한껏 거만하고 위협적이었다. 마치 아심이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암시처럼.아윤은 차가운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강아심 씨, 진짜 오다니, 무지한 거예요?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예요?”그러자 아심은 담담하게 물었다.“나한테 이렇게 하는 이유가 할머니의 유언 때문인가요? 하지만 유언은 내가 이미 포기했잖아요.”아윤은 화난 듯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당신이 포기하긴 했지. 그런데 결국 그 모든 게 내 사촌오빠 손에 들어갔잖아요. 이건 둘이 짜고 친 고스톱이죠?”“그렇지 않았으면 적어도 우리 집이 절반은 가졌을 텐데!”아심은 고요한 눈빛으로 말했다.“어른의 재산은 그 어른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주는 거예요. 그건 할머니의 권리였어요.”“만약 당신이 할머니께 조금이라도 효심을 더 보였더라면, 한 푼도 못 받는 일은 없었을 거고요.”아윤은 조롱하듯 비웃으며 말했다.“어머, 몇 명의 남자들에게 받들려 다니더니 이제는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건가요? 우리 집 일까지 신경 쓰고 말이예요? 어딜 감히 주제넘게!”아심은 술잔을 들고 아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오늘 내가 당신을 가르치려고 온 건 단순히 할머니의 재산 때문이 아니야. 양재아 때문이기
이때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꽃을 잠시 보관해 드릴까요?”그러나 강아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고마워요.”직원이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돌아오더니 손에 무릎 담요를 들고 있었다.“저희 식당은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서요. 남자 친구분이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어요.”아심은 전화를 걸고 있는 강시언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배려에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이에 그녀는 담요를 받아서 들며 고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직원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남자 친구분 정말 다정하시네요!”그는 그녀에게 레몬 물을 따라주며 말했다.“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네, 고마워요.”아심은 시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물컵을 손에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며 도시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졌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풍경과 초여름의 산들바람은 기분 좋은 상쾌함을 전해주었다.찬란한 불빛은 깨끗한 유리창에 반사되어 반짝였고, 그 빛 속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더욱 빛났다.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긴 머리, 화사한 붉은 입술, 나른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아심의 모습은 이 도시의 밤과 어우러져 있었다.이 순간, 강성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언이 전화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샤브샤브와 재료들이 이미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그는 아심이 주문한 음식을 보며 말했다.“이렇게 많이 주문했어?”아심은 고개를 들며 웃었다.“배불리 먹어야 힘이 나죠. 싸우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시언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가씨가 뭘 싸우겠다고 그래. 옆에서 보기만 해.”아심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아심은 시언이 가르쳐준 많은 기술을 떠올렸다. 본래는 그를 위해 일하고, 그를 위해 싸우는 게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가 오히려 그녀에게 싸우지 말고 지켜보기만 하라고 했다.아심은 그 말을 떠올리며 속으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은 결국 그녀의 눈과 입가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아심은 고
아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 미소는 아름다움과 매혹으로 가득 찼다.“정말 참 시원시원하시네요!”시언은 아심의 농담에 대꾸하지 않고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곧 네 회사 도착해. 아래에서 기다릴게.]아심은 약간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금방 갈게요.”전화를 끊고, 아심은 짐을 챙기며 퇴근 준비를 했다.아현이 사무실로 들어왔을 때, 아심이 물건을 정리하는 걸 보고 놀라며 물었다.“사장님, 오늘 이렇게 일찍 퇴근하세요?”아심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럼, 퇴근 시간이잖아요.”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다른 사람들이 정시에 퇴근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사장님이 야근 안 하고 일찍 퇴근하는 건 엄청난 일인데요. 꼭 연애라도 시작하신 것 같아요!”아심은 서류를 정리하며 가볍게 말했다.“아현 씨 연애는 어때요? 요즘 남자 친구 얘기를 잘 안 하던데?”예전엔 아현이 틈만 나면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었기에 궁금한 듯 물었다. 아현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시무룩해지며 말했다.“별로 좋지 않아요. 우리 막 사귀었는데, 남자 친구가 곧 F 국으로 2년간 발령을 받아요. 그래서 요즘 헤어질지 고민 중이에요.”“헤어지려고?”아심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네, 헤어질지 생각 중이에요.”아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막 시작했는데 곧 떠난다는 건, 그의 마음속에서 제 일이 얼마나 우선순위가 낮은지 보여주는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장거리 연애는 못 받아들이겠어요.”“너무 힘들잖아요. 1년에 한 번 얼굴도 못 보고, 서로의 상황도 모르고, 무슨 일이 생겨도 곁에 있어 줄 수 없는걸요.”아심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조용히 말했다.“맞아, 그런 건 정말 힘들지. 받아들일 수 없다면 빨리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괜히 마음에 벽이 생기면, 나중에 함께 있어도 행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좀 아쉽긴 해요.”아현은 살짝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심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