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 있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문을 통해 간간이 들려왔다. 방안에는 불빛이 스치며 고요했다. 소희는 남자의 숨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찰나에 그녀는 온몸에 피가 솟구치고 심장은 더욱 빠르게 두근거렸다.그녀가 등지고 있었던 벽은 차갑지만 그녀의 가슴은 오히려 뜨거웠다. 냉열이 번갈아 전해오는 느낌에 그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남자는 마침내 키스를 멈추었지만 벽을 받치고 있던 손은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고 허스키하며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결정적인 순간에 둘째 삼촌이라고 잘도 부르던 군요."소희는 낮게 숨을 쉬며 남자가 이 일을 끄집어낼 줄 알았다.그녀는 그가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몰랐기에 목소리를 낮추며 천천히 말했다."할아버지는 내게 말했죠.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지름길이 있으면 바로 선택해야지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요."남자는 낮게 웃으며 미적지근하게 물었다."왜 심명을 찾지 않았어요?"소희는 손가락으로 그의 옷자락을 살짝 쥐었다."그가 일부러 날 이렇게 만들려고 한거 눈치 못 챘어요? 나한테 복수하고 있는 거예요.""알면서 왜 따라왔어요? ""신세를 져서요."구택은 소녀의 그림같이 예쁜 눈을 내려다보며 물었다."이혁 그 일 때문에요?"소희는 경악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그녀는 묻자마자 깨달았다. 그날 밤 그녀는 블루드 부근에서 그에게 전화를 했으니 그는 틀림없이 후에 조사했을 것이다.구택은 그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이혁 그 사람들은 안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을 거예요. 경찰도 소희 씨를 찾을 수 없을 거고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아요.소희는 인차 깨달았다. 그는 이미 그녀를 위해 수습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눈빛에는 따뜻한 기운이 스쳤다.그녀가 말을 하지 않자 남자는 또 그녀의 귓가에 대고 계속 말했다."심명하고 가까이 지내지 마요. 나는 다른 사람과 섹스 파트너를 공유하는 습관 없어요."소희는
소희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정도 인정도 하지 않은 채 심명이 마음대로 생각게 놔뒀다.심명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산만하게 말했다."내 사람이 되는 건 어때요? 그가 소희 씨에게 얼마를 주든 난 두 배를 더 주죠. 그리고 나는 소희 씨를 더욱 아껴줄 거예요. 적어도 임구택보다는!"소희는 눈빛이 차가웠다."당신 정말 한가하군요?"심명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했다."아니요, 나 바쁜 사람이에요. 평소에 업무 스트레스도 매우 커서 항상 재밌는 일 찾아서 하고 싶거든요. 예를 들면 임구택의 여자를 가로채는 거요."그는 또 웃기 시작했다. 사악한 웃음이었다."지난달에 그는 내가 찜해둔 땅을 빼앗아 갔으니 만약 내가 소희 씨를 빼앗아 간다면 우리는 비긴 거겠죠?"소희는 귀찮아하며 말했다."당신들의 일에 왜 내가 끼어들어야 하는 거죠? 이제 우리 두 사람은 퉁친 셈이에요."심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회가 끝나야 퉁치죠, 지금은 아직이에요."말이 끝나자 그는 갑자기 앞으로 다가가 소희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연회장으로 끌고 갔다.소희는 뿌리치려 하며 목소리를 낮췄다."지금 뭐 하려는 거예요?"심명은 그녀가 쿵후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을 힘껏 잡고 방긋 웃었다."곧 알게 될 거예요."복도와 연회장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말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이미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구택은 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심명이 이렇게 소희를 데리고 나타나자 연회장은 서서히 조용해졌고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심명은 소희를 연회장 한가운데로 데리고 가서 줄곧 소희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이때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웃으며 말했다."정식으로 소개할게요. 내 여자친구, 소희입니다."그는 잠시 멈추며 안색이 어두워진 구택을 바라보았다."임 대표님의 먼 친척 조카이기도 하죠.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소희는 바로 고개를 들어 구택을 보았다. 그는 얼음
심명은 총애하는 눈빛으로 소희를 한 번 보았다."감정이 좋으면 진도가 빠르게 되는 거죠. 안 그래요?"소희는 그를 우주 밖으로 걷어차고 싶었다.구택은 두 사람이 여전히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렇다면 나는 소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잘 이야기해 봐야겠군요."그는 소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집에 가서 말하자!"소희는 이 기회를 틈타 앞으로 나아가며 심명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온순하고 얌전한 말투로 말했다."알았어요, 둘째 삼촌."구택은 그녀를 한 번 보더니 몸을 돌려 하 대표와 작별을 고했다.하 대표는 얼른 말했다."얼른 가보세요, 임 대표님. 아이들의 혼사가 중요하죠."구택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 밑은 더욱 어두워졌고 더는 말을 하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소희는 인차 따라갔다.구택은 혼자 차를 몰고 왔다. 소희는 뒷좌석으로 향하며 올라타려는 순간 구택은 차가운 눈동자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앞에 타요."소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앞에 올라탔다.그녀가 막 안전벨트를 매자 차는 인차 달리며 멋진 드리프트를 하고 별장의 대문을 나와 아스팔트 길로 올라갔다.차의 속도가 안정되자 소희는 입을 열었다."그는 고의로 그런 거예요.""알아요." 남자는 앞을 보며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고의라는 거."소희는 남자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는 질투나 감정과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와 심명은 원래 사업상의 상대인데다 지금 심명은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남자라면 누구나 화를 냈을 것이다. 이것은 남자의 소유욕이 일으킨 결과였다.소희는 이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구택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더는 설명을 하지 않고 창밖의 풍경을 한참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오늘 토요일이라 길에 차가 매우 많았다. 별장에서 시내까지 한 시간이 걸렸는데 차가 어정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저녁이었고 날이
그는 말을 마치자 바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거칠지 않았고 부드럽게 그녀의 응답을 애원하며 그녀의 감정을 배려했다.그는 매번 그녀의 입술의 깊숙한 곳을 탐색하며 마치 신사가 연회에서 한 여자를 초청하는 것만 같았다.소희는 원래 태연자약했지만 그의 부드러운 시도에 더는 참지 못하고 몸이 점점 뜨거워지며 자기도 모르게 그의 키스에 응답하기 시작했다.그녀가 응답하자 그는 즉시 달라붙으며 우아한 왈츠가 아니라 뜨겁고 섹시한 재즈를 추는 것 같았다.날이 조금씩 어두워지자 방 전체는 짙은 노을로 물들였다. 소희가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 구택은 그녀를 안고 작은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소희를 침대에 눕히자 구택은 오히려 서두르지 않았다.그녀는 디저트를 좋아했기에 구택은 일부러 주식을 주지 않고 그녀에게 다양한 디저트를 주었다. 하지만 소희는 디저트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더 갈망하며 배가 더욱 고팠다.구택은 자신의 고의를 조금도 숨기지 않고 그녀가 그에게 애원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소희가 입을 열고 구걸하자 그는 즉시 응답했다. 그도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소녀가 숨을 죽이고 있을 때 구택은 그녀를 억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급해하지 마요. 내가 다 들어줄게요."소희의 눈빛은 희미해지며 바로 잔잔하게 흩어졌다.......소희가 깨어났을 때 방안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침대에는 그녀 혼자밖에 없었다. 그녀는 시간을 한 번 보았는데 밤 12시 30분이었다.그녀는 겨우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갈증이 심해지자 소희는 옷을 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에 가서 물을 마시려 했다.거실에 들어서자 소희는 멈칫하며 베란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난간 앞에 커다란 그림자가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별빛처럼 반짝이며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 같았다.어두운 밤, 거실의 불을 켜지 않았으니 거실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남자의 그림자는 우뚝 서있었으며 왠지 모르는 외로움을 보였다.소희는 다가가 그의 곁에 서서 눈
"그래요!" 구택은 웃었다."소희 씨가 그렇게 말하면요."소희는 살짝 난감해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잠시 침묵한 뒤 소희는 고개를 돌려 물었다."배 안 고파요?"두 사람은 모두 저녁을 먹지 않았다.구택이 물었다."뭐 먹을 거 있어요?"소희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내가 면 끓일게요. 이게 좀 빠르거든요."구택은 얇은 입술로 살짝 웃었다."좋아요!""그럼 잠깐만 기다려요!"소희는 말하며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구택은 또 담배 하나를 꺼내며 난간에 기대어 천천히 피웠다. 방금 소녀가 담배에 사레가 들린 모습을 생각하니 그는 웃고 싶었다. 뒤돌아보니 주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소녀가 바삐 요리하는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그는 어둠 속에 서서 불빛과 밥 냄새가 나는 부엌을 보면서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20분 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 앉았고 앞에는 각각 라면 한 그릇이 놓여 있었다.간단한 라면에 계란 프라이였다."얼른 먹어요!" 소희는 젓가락을 들고 먼저 라면을 먹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구택은 방금 탄 냄새를 맡았기 때문에 한동안 감히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그녀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그는 먹기 시작했다.라면을 한 입 먹은 남자는 멈칫했다. 그의 표정은 약간 복잡했다. 그는 티슈 한 장을 꺼내 입에 있는 것을 뱉었다. 계란 껍데기이었다.그는 원래 무엇을 말하려고 했지만 맞은편 소희가 배가 고팠는지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고 입을 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계속 라면을 먹었다.소희는 인차 자신의 라면 한 그릇을 다 먹고 앉아서 구택을 기다렸다.구택이 마지막으로 국물을 마신 뒤 젓가락을 내려놓자 소희가 물었다."맛 어때요?""괜찮네요." 남자는 티슈로 천천히 입을 닦고 점차 웃으며 말했다. "라면을 이렇게 맛없게 만드는 것도 대단한데요."소희는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맛없어요?"구택은 대답하지 않고 반문했다."평소에 이런 것만 먹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랐죠."소희는 어이가
소희는 고개를 돌려 그에게 물었다."무서워하는 거예요?"구택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그럴 리가요.""그럼 적합한 거죠. 공포영화도 수면에 도움이 되는걸요. 나는 볼 때마다 잠이 잘 오는데."소희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았다.10분 후, 구택은 벌떡 일어섰다."갑자기 졸리네요. 먼저 자러 갈 테니 소희 씨 혼자 마저 봐요."소희는 영화에 집중하다 그의 말에 정신이 들며 웃었다."내 말 맞죠? 공포영화는 확실히 수면에 도움이 된다고요."구택은 어두움 속에 서서 알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상대하지 않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자신의 침실로 걸어갔다.소희는 혼자서 3시 다 되어갈 때까지 영화를 봤다. 그리고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이를 닦은 후 침대에 누워 바로 잠이 들며 날 밝을 때까지 잤다.그녀가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구택은 아침밥을 차리고 있었는데 여전히 5성급 호텔에서 배달해온 음식이었다.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 구택은 뒤돌아 보았다. 소희는 하얀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고 윤기 있는 머릿결은 귓가에 흩어져있었다. 갓난 아기처럼 통통한 얼굴은 보기에 부드럽고 악의가 없어 보였다. 완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이 같았다.소희는 인사를 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구택 씨가 이미 외출한 줄 알았어요."구택은 계속 아침을 차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오늘은 주말이라 일이 별로 없어요. 이따 소희 씨 데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갈게요."소희는 맞은편에 앉아 만두를 들고 한 입 깨물며 무심결에 물었다."어젯밤 잘 잤어요?"구택은 고개를 들어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럭저럭이요."소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앞으로 구택 씨 잠이 안 올 때마다 나랑 같이 공포영화 봐요."구택은 죽 한 모금 먹으며 갑자기 삼키기 어려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한번 보았다. 그녀의 진심 어린 웃음을 보며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밥을 먹고 구택은 차를 몰고 소희와 함께
오후 수업이 끝나자 어정으로 돌아온 소희는 진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물었다."작업실에 설백현이란 사람 있어요?"디자인 작업실은 최초에 그녀와 진석이 함께 설립했지만 후에 그녀는 학교 때문에 모든 일을 진석에게 맡겼다. 그리고 소희는 평소에도 거의 가보지 않았기에 작업실에 온 신인에 대해서 확실히 잘 몰랐다.진석은 인사 부장을 불러 와서 물어본 후에야 소희의 말에 대답했다."이 사람 없어요."소희는 인차 알아차렸다. "그래요, 알았어요."진석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요즘 많이 바쁜 가봐요? 언제 시간 있으면 같이 사부님을 보러 가요."소희는 젓가락으로 솥의 면을 저으며 말했다."주말에 알바가 있어서요. 곧 여름방학이니까 그때 같이 가요.""그래요."전화를 끊자 소희는 찬호에게 전화를 걸며 확실하게 말했다."북극에는 설백현이라고 하는 사람 없어."찬호는 화가 났다."엄마와 누나가 속을 줄 알았어요.""응, 엄마한테 말해 줘. 제때에 빠져나와야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어." 소희는 담담하게 말했다.한편, 찬호는 소희와 통화를 마치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순희는 마침 거실에서 나오며 고개를 들어 그에게 소리쳤다."찬호야, 밥 먹어."찬호는 그녀에게 설백현에 대해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누나가 마침 집으로 돌아왔다."오늘 왜 이렇게 일찍 끝났어?"순희가 물었다.시연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다."학교에 별일 없어서 먼저 돌아왔어요.""그럼 잘 됐네, 같이 밥 먹자."정민은 회식이 있어 집에 없었기에 그들 세 사람만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밥 먹을 때 시연은 고개를 들어 순희를 쳐다보며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때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엄마, 나 2000만 원만 더 줘요."순희는 고개를 들고 물었다."왜 또 돈을 달라고 하니? 그 사람이 달래?"시연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응, 설백현이 그들 부팀장이 거의 마음을 정했다며 나보고 귀중한 선물 좀 더 사서 주면
순희는 시연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이따 2000만 입금해 줄게."찬호는 조급해했다."엄마랑 누나 바보예요? 그 설백현이 사기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한테 돈을 주는 거냐고요!""누가 사기꾼이야?"시연은 또 찬호의 얼굴을 꼬집었다."내가 보기에 네 그 소희 누나야말로 사기꾼이야!""소희 누나는 사기꾼이 아니지만 누나는 틀림없이 바보야!"찬호가 소리쳤다."찬호야, 누나한테 그러면 못 써!" 순희는 엄숙하게 찬호를 꾸짖었다.그녀들이 모두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찬호는 눈물이 핑 돌았다."그에게 속은 거라고요, 엄마랑 누나는 언젠간 후회할 거예요!"말을 마치고 그는 의자에서 내려와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순희는 고개를 저었다."찬호는 어쩜 철이 그렇게 없니!"시연은 차갑게 웃었다."다 그 소희한테서 배운 것인걸요. 엄마, 청호한테 소희랑 놀지 말라고 해요."순희는 화가 났다."누가 놀게 했다고. 그날 본가에서 그들 두 사람이 잠깐 게임을 했는데 그 소희가 바로 우리 찬호한테 매달렸지 뭐야."시연은 입을 삐죽거리며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말투로 말했다."너무 뻔한 거 아니에요? 소희는 소 씨 집안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녀를 상대하지 않으니까 우리 집 순진한 찬호를 이용하려는 거잖아요."순희는 표정이 굳어졌다."이따 찬호한테 따끔하게 말해줘야지. 앞으로 소희를 상대하지 말라고!"찬호는 위층으로 올라가자마자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희가 전화를 받자 그는 조급해서 울기 직전이었다."소희 누나, 우리 엄마와 누나 모두 소희 누나의 말 안 믿어요. 어떡하죠?"소희는 금방 밥 먹고 냉장고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찾고 있었다. 찬호의 말을 들은 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네 아빠 찾으면 되지."찬호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우리 아빠는 평소에 바쁘셔서 이런 일은 모두 우리 엄마의 말을 들어야 돼요. 내가 아빠한테 말해도 소용없어요."그는 목소리를 낮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강아심은 인터넷으로 강성 군수 공장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었고, 유용한 정보는 전무했다.공장 뒤의 책임자에 대한 정보는 더욱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감탄했다.‘역시 철저히 감춰져 있군.’책임자에 대해 알 방법이 없으니, 결국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대처해야만 했다.아심은 다시 허형진 회사의 자료를 꺼내들고, 오후 내내 그의 회사 제품에 대해 숙지했다. 그저 자리에만 앉아 있는 장식품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완벽히 전문적이지는 못해도, 적어도 기본적인 질문에는 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했다....퇴근 후, 허형진이 직접 아심을 데리러 왔다. 허형진은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흔히 볼 수 있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과는 달랐다.배가 나오지도 않았고, 머리도 빠지지 않았으며, 상업적인 느끼함과 세속적인 느낌이 없었다.검은색과 회색이 조화를 이룬 스포츠웨어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그의 모습은 세련되고 단정했다.아심은 그를 보자 놀란 듯 웃으며 말했다.“오늘같이 중요한 자리에서, 이 복장은 좀 너무 캐주얼한 거 아닌가요?”허형진은 선글라스를 벗으며 맑은 눈빛으로 답했다.“이런 자리에서는 제가 주인공이 아니잖아요. 너무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낫죠. 낮추는 게 전략이예요.”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좋은 꿀팁이네요!”허형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사장님, 제가 오히려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제가 이렇게 아는 척하는 건, 고수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거나 다름없어요.”아심은 생각하는 척하며 말했다.“이렇게 저를 띄워주시면, 오늘 저한테 맡기신 일에 오히려 긴장돼서 제대로 못 할까 봐요.”허형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세요. 긴장할 사람은 저죠. 제가 사장님을 모시고 가는 이유도 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예요.”그들은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은 뒤, 함께 넘버 나인으로 향했다.넘버 나인에 도착하자, 이미 몇몇 사람들이 와 있었다.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도경수는 여전히 자신의 기쁨에 취해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기대어 마치 어린 시절처럼 의지하는 도도희를 보며 순간 멍해졌다.늙은 눈동자가 붉어지더니, 그는 도도희의 어깨를 감싸안고 다정하게 등을 두드렸다. 아무 말 없이도 두 사람의 마음은 혈연으로 연결된 듯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수요일, 강아심은 한 오래된 고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사장님, 부탁드릴 일이 하나 있는데요.]아심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사장님, 말씀하세요.”허형진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사실 이번에 강성에서 아주 큰 규모의 군수 공장을 설립하려고 해요. 이 공장은 공사 협력 기업 형태로 시작되지만, 곧 국내 최대 군수 산업체가 될 예정이고요.][지금 투자 유치 단계에 들어가는데, 많은 공급업체의 참여가 필요해요. 그리고 우리 회사 제품이 딱 적합해요.]아심은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의 회사는 실력과 평판이 있으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그러나 허형진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제 실력은 믿지만, 문제는 군수 공장 뒤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죠.][다른 공급업체들도 지금 난리예요. 여기저기 이 비밀스러운 인물의 배경과 정보를 캐내고 있죠.]아심은 흥미롭게 물었다.“그럼 뭔가 알아내셨나요?”허형진은 약간 자랑스럽게 대답했다.[다행히 제 인간관계가 괜찮아서요, 몇 가지 실마리를 잡았습니다.] [오늘 저녁, 주요 군수 장비 공급업체 몇 곳이 이 인물을 모시기 위해 넘버 나인에서 저녁 자리를 마련했대요.][저도 얼굴에 철판 깔고 참석하려고 해요. 그래서 사장님께 전화 드린 거예요. 번거롭겠지만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그 말에 아심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제가요? 그분을 아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서 도울 수 있을까요?”허형진은 급히 말했다.[사장님,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바라는 건 사장님께서 그분의 성향을 파악해 주시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서 강아심 사장님은 전문가시잖아요.]그는 곧 덧붙였다.
“누가 네 아버지를 파티에 초대했는데, 굳이 재희를 데리고 간 거야. 내 생각엔 재희를 자랑하려고 데리고 간 게 분명해!”강재석은 투덜거리며 말했다.“재희는 워낙 착해서, 네 아버지 뜻에 다 맞춰주고 있잖아!”도도희는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재희를 데리고 가서 뭘 하시려고 그러는지.”강재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 양반 말이, 재희가 청년 인재들을 많이 알아둬야 한다더군. 이게 다 나를 약 올리려고 하는 거라니까!”도도희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우리 아버지, 생각이 점점 더 많아지시네.”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누그러지며 말했다.“오늘 재희 아빠를 만났어요.”강재석은 그녀의 얼굴을 살피며 부드럽게 웃었다.“결국 만나러 갔구나.”도도희는 고개를 숙이며 가볍게 끄덕였다.“재희를 걱정하실까 봐, 만나서 얘기하고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그리고 오늘 알게 됐는데, 그 사람이 유학 갈 때 썼던 돈이 사실 우리 아버지가 준 거였어요.”강재석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그 일, 나도 알고 있었어. 그때 네 아버지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해서 너한테 이야기하지 못했을 뿐이지.”“아저씨도 알고 계셨어요?”도도희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강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그때 네가 재희를 낳고 나서, 네 아버지도 마음이 흔들렸었지. 너와 재희 아빠를 강하게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양반도 고집이 꽤 세잖아.”“그때 네 아버지는 그 남자가 너를 좋아하는 게 정말 진심인지 의심했어. 그래서 찾아가 돈을 주며 시험해 본 거야.”강재석은 말을 이어갔다.“네 아버지의 생각은 그랬어.”“만약 돈을 거절하고 너와 함께하는 걸 택한다면, 비록 아이가 태어난 상태라 해도 네 아버지는 너희 관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지.”“그런데 안타깝게도 돈을 받고 떠났고, 그 일로 네 아버지는 크게 실망했지.”“네가 계속 그 남자를 그리워하니 더 화가 났던 거
이도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은 듯 도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차분하고 냉정했으며,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치솟았다.한때 자신만 바라보던 도도희를 결국 스스로 놓쳐버렸다는 뼈아픈 자각이 가슴을 후벼 팠다.후회와 고통이 이도하의 마음을 가득 채우며, 그는 그 시절의 선택을 다시금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이도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우리 딸을 찾았다고 들었어. 맞아?”이도하가 말을 마치자, 도도희의 표정에 경계심이 스쳤고, 이를 알아챈 그는 즉시 덧붙였다.“걱정하지 마. 절대 딸을 빼앗으려는 게 아니야. 솔직히 너무 궁금하긴 하지만, 내가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단 한 번도 다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아.”“그러니 네 곁에서 데려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도도희는 그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그 아이는 당신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고,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아. 그러니 굳이 만남을 주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이도하는 순간적으로 희미한 기대를 품었지만, 도도희의 말에 완전히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했다.“그 아이에게 내 이야기는 하지 마. 난 만날 자격조차 없으니까.”그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이번에 귀국한 건 부모님을 해외로 모시러 온 거야. 아마 이번이 마지막 귀국일지도 몰라.”“그런데 떠나기 전에 네게 꼭 말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연락했어.”도도희는 말했다.“무슨 얘긴데?”이도하는 두 손을 맞잡고,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듯 고개를 숙였다.“도도희, 20년 전 내가 갑자기 떠난 건 네 아버지가 날 찾아왔기 때문이야.”도도희는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네 아버지가 날 찾아와서, 해외로 떠나라고 돈을 줬어.”이도하는 고개를 떨구며, 미안함에 목소리가 낮아졌다.“그 당시 나는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해서 집안 형편으론 해외 유학을 갈 수 없었어.”“결국 그 돈의 유혹에 넘어갔지. 미안해. 이건 20년간 내 마음을 짓누
이도하는 말했다.[며칠 전 강성대학을 지나가다, 우리가 자주 가던 대학교 맞은편 식당이 사라졌더라고.][지금은 카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곳이 그립더라. 내가 거기 예약했어. 기다릴게. 너 안 오면 난 안 가!”도도희는 이도하에게 확답을 주지 않았다.잠시 후, 이도하는 침묵 속에서 전화를 끊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도도희는 고민 끝에 이도하를 만나기로 결심했다. 20년 전 그는 갑작스럽게 떠났고, 둘의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그래서 이번 만남은 20년 후에 과거를 정리하는 마침표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도도희가 집을 나서려 할 때, 이반스가 뒤에서 다가왔다. 그는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고, 깊은 갈색 눈동자에는 온화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도경수 어르신 말씀에 따르면, 정원에 개미가 이사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오늘 비가 올지도 모르니 우산을 가져가.”도도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우리 아버지가 재희를 위해 장난으로 하신 말이야.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데, 개미를 보고 날씨를 예측하다니?”그러나 이반스는 고집스러웠다.“그래도 가져가.”도도희는 결국 손을 내밀어 우산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 이반스.”이반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천만에. 빨리 돌아오기나 해.”도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이도하는 이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보는 순간 도도희의 감정은 물밀듯이 몰려왔다.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이도하는 도도희의 기억 속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약간 체격이 커졌고, 눈빛은 예전만큼 맑지 않았다.그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했으며, 얼굴에는 세월의 풍파보다는 여유가 담겨 있었다. 여전히 점잖고 잘생긴 모습이었지만, 더 이상 도도희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니었다.그들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물결처럼 떠올랐다.도도희는 여전히 믿고 있었다. 그 시절, 이도하는 자신을 사랑했었다
아심은 살짝 민망해하며 도도희를 속일 수 없다는 걸 알고 부드럽게 웃었다.“그냥 오해였어요.”...도도희와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아심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하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책을 한 권 꺼내 읽어 보았으나 흥미가 생기지 않아 한쪽으로 던지고, 다시 몸을 뒤집어 침대에 엎드렸다.한참 지나 새벽이 되자, 휴대폰이 진동하며 알림이 왔다. 아심은 바로 휴대폰을 열었고, 누군가 그녀에게 음악 공유를 요청하는 화면을 보자마자 눈가가 붉어졌다.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부드럽고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그녀의 감정이 출렁이며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노래 한 곡이 끝난 뒤, 아심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아직 화났어요?]그러자 강시언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내가 듣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야.]아심은 다시 물었다.[그럼 뭘 듣고 싶은데요?][스스로 생각해 봐. 생각나면 알려줘.]아심은 휴대폰 화면을 이마에 댄 채 잠시 머물렀고,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답장은 보내지 않은 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토요일 아침이 되자 막 잠에서 깨어난 도도희는 도경수와 아심이 정원에서 함께 꽃나무를 손질하는 모습을 멀리서 보았다.도경수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가득했고, 요즘 그의 기분은 나날이 좋아져 몸 상태까지 달라 보였다. 거실에서는 강재석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에 도도희는 다가가 인사를 건네며 웃었다.“재희가 어렸을 때랑 정말 비슷하네요. 항상 아버지 뒤를 졸졸 따라다녔었죠.”강재석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이젠 도경수도 뭐만 해도 꼭 아심이를 데리고 하려고 하니까.”도도희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때, 양재아가 계단을 내려와 밝게 인사했다.“할아버지, 도도희 이모.”재아는 정원에서 도경수와 아심이 함께 있는 모습을 힐끗 보며 약간의 어색함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제가 도경수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니라는 게 확정됐으니, 이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온 강시언은 넓은 거실의 어둠과 고요 속에 발을 들였다. 거실에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커다란 통유리창을 통해 바닥에 옅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그는 조명을 켜고 셔츠의 단추를 풀며 담배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발코니의 라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한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느긋하게 걸친 채 어두운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시언의 손가락 끝에서 담배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어두운 조명 속에서 남자의 차가운 분위기는 더욱 서늘하고 날카롭게 느껴졌다.잠시 후, 휴대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그는 컴퓨터를 열어 화상 회의를 시작했다.시야는 온두리 지역의 몇 가지 상황을 보고했다. 그러나 시언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대답만 할 뿐이었다.시야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그는 최근 문제를 일으킨 노도 일행의 부하 몇 명을 체포했고, 은신처 하나를 철저히 파괴했다.이 정도면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는데, 시언은 조금도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시야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진언님! 혹시 또 강아심 씨와 다투신 겁니까?]시야는 설날 무렵, 자신이 시언의 연애를 방해한 일을 뒤늦게 알고는 몹시 불안해했었다.당시 아심은 남자 친구를 만난 상태였고, 그 일로 시언이 몇 날 며칠 동안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소문을 들었다.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 걸까 싶었다. 그의 질문이 끝나자, 화면 속에 있던 시경과 시온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그러나 시언의 얼굴은 한층 더 차갑고 어두워졌다.“다른 보고할 내용은 없나?”그의 목소리에는 억누를 수 없는 냉기가 서려 있었다.시야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화상 통화로 안전한 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시경은 시야에게 조용히 입을 닫으라는 눈빛을 보내며 시언에게 보고했다.[요청하신 자료는 오늘 이미 전달했습니다.]시언은 짧게 대답했다.“알겠어.”시경은 이어서 말했다.[몇 가지 세부 사항은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회의는
여준석은 바로 강아심 옆에 앉았다. 그의 눈은 순수하고 꾸밈없으면서도 젊음의 활기로 빛나고 있었다.“누나, 대학은 졸업하셨어요?”아심은 잔잔하게 웃으며 말했다.“제 모습이 아직 학생 같나요?”준석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뭐랄까,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누나는 정말 특별해 보여요!”아심의 눈은 깊고 매혹적이었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처럼 심오한 아름다움이 느껴졌고, 많은 일을 겪은 뒤의 투명함이 담겨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이목구비는 여전히 순수하고 온화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맑음과 매혹 사이에서 저절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아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나는 대학에 다니지 않았어요.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죠.”준석은 놀라움과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말했다.“정말 아쉽네요.”준석은 아심이 도씨 집안에 돌아오기 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로 생각하고는 말했다.“하지만 이제 집에 돌아왔으니, 다시 공부를 시작해 볼 수도 있잖아요.”아심은 흥미를 느낀 듯 말했다.“사실 그런 생각도 하고 있어요.”준석은 열정적으로 말했다.“어떤 전공을 공부하고 싶으신지 말씀해 주시면 제가 학교를 추천해 드릴게요. 저도 요즘 해외 유학을 고민하고 있어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있거든요!”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우선 자료를 좀 찾아볼게요.”이때 도경수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느라 음식이 다 식겠네. 일단 밥부터 먹어라!”다른 사람들도 그의 말을 듣고 시선을 두 사람에게로 돌렸다. 아심은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는 시언의 깊고 어두운 눈빛과 마주쳤다.시언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아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마디 농담을 나눈 뒤 다시 식사를 이어갔다....식사 후, 모두 거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경수는 아심이 최근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이야기를 꺼내며 여정에게 그녀의 그림 실력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여정은 겸손한 태도로 말
잠깐 네 눈이 마주친 뒤, 아심은 시선을 피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성을 바꾸는 건 급하지 않아요. 관련된 서류도 많고, 회사 법인 자료나 도장 같은 것들도 처리해야 해서 조금 번거롭거든요.”도경수는 단호하게 말했다.“어차피 바꿀 거니 걱정하지 마라. 할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줄게.”강재석은 웃으며 시언에게 물었다.“시언아, 넌 어떻게 생각하니?”시언은 여전히 냉담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건 아심의 일이니,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죠.”아심은 속눈썹을 살짝 떨며 정원의 꽃나무를 바라보았다. 저녁이 깊어지면서 낮 동안 화려했던 목련꽃은 저무는 빛 아래서 쓸쓸해 보였다.도도희는 두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부드럽게 웃었다.“성을 바꾸지 않아도 호적은 올릴 수 있어요. 천천히 해도 되니까요. 대신 파티는 언제 열지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강재석은 말했다.“파티 준비도 생각보다 많아. 초대장을 몇 장 보낼지, 누구를 초대할지도 결정해야 하고.”도경수는 금세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초대장은 내가 직접 쓰지!”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준비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겠는데.”도도희는 달력을 살펴보며 말했다.“그러면 이달 말에 하는 게 어떨까? 그때까지 초대장을 준비해서 발송하면 되겠네.”현재는 5월 중순이었고, 말까지는 열흘 남짓 남아 있었다.도도희는 강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재희야, 네 생각은 어때?”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할아버지와 엄마께서 알아서 정해 주세요. 저는 괜찮아요.”강재석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그럼 그렇게 정하자. 성을 바꾸는 건 아심이 번거롭다고 하니, 파티 이후에 해도 늦지 않겠지.”도경수는 강재석의 의도를 눈치채고 반박하려 했으나, 아심이 말했다.“그럼 저는 강재석 할아버지 말씀을 따를게요.”도경수는 한마디 더 하려다 말을 삼키고 씩씩거리며 입을 다물었다.그때 도우미가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여정 씨 오셨어요!”도경수는 고개를 들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