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 지나서야 소희는 일어섰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마치 생기발랄한 한여름에서 갑자기 황폐한 겨울로 접어든 것 같았다.서인은 의자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힘껏 한 모금 빨았다."가, 오늘 나랑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거나! 넌 임구택의 여자가 되었으니 부귀영화를 잘 즐겨. 오늘 너도 여기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얼른 가!"소희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임구택 씨와 맞서지 말고 위험한 일도 하지 마. 살아있는 이상 인생을 잘 살라고!"서인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코웃음쳤다."내가 임구택을 귀찮게 할까 봐? 너 그 사람 좋아하는 거야? 너도 신경 쓰는 사람이 있구나! 결국 우리는 네가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소희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적으로 일 처리하지 마!""안심해!" 서인은 냉소했다."나는 우리가 안다고 말하지 않고 네가 임 부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이제 가봐!"소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그는 더 이상 듣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걷다가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너희 가족은 줄곧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들을 속이는 건 말이 안 되니 시간이 있으면 한 번 돌아가 봐!"서인은 말을 하지 않았고 표정은 좀 더 어두워졌다.소희가 문을 나서자 후덥지근하고 어지러운 창고 안의 십여 명의 사람들은 모두 동시에 일어나 무섭게 그녀를 쳐다보았다.소희는 평소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수많은 매서운 눈빛의 주시하에 침착하게 이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나왔다.밝은 햇살이 갑자기 떨어지자 소희는 눈앞에서 멀지 않은 번화한 항구를 바라보며 한순간에 자신이 방금 두 개의 다른 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고 느꼈다.그리고 자신은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소희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자 진일이 서인을 찾아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화가 난 채로 다짜고짜 그에
진일은 납득이 안 됐다."이 부두에서 임구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서 사장뿐인데 내가 어디 가서 또 다른 사람을 찾겠나? 당신은 이 건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한테 왜 그러는지 이유만 말해 줘.""이유 없어, 그냥 하기 싫어졌어." 서인은 담배를 피우며 푸른 수염이 자란 얼굴은 무척 오만했다.진일은 자신의 말이 도무지 먹히지 않자 참지 못하고 안색이 어두워졌다."모두 서 사장이 의리를 지킨다고 하는데, 내가 봤을 땐, 한다면 한다는 말은 모두 다 개뿔이구먼!"이문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쳤다."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봐요!""입 닥쳐!" 서인은 이문을 꾸짖은 뒤 고개를 돌려 진일에게 말했다."난 틀림없이 이 건을 하지 않을 거야. 전에 당신한테 빚진 것도 우리는 떼먹지 않을 테니까 내 손을 베거나 아님 돈을 가지고 간다거나!"진일은 싸늘하게 웃었다."그래, 당신들 참 독하군! 호랑이도 평지에서는 개들에게 물린다지만, 내가 다시 내가 재기하면 당신들 절대로 가만 안 둬!"말이 끝나자 진일은 책상 위의 돈을 몽땅 챙긴 뒤 두 사람을 힐끗 보고는 분개해하며 떠났다.진일이 떠나자 이문은 의자를 잡아당겨 서인 맞은편에 앉고는 눈살을 찌푸렸다."형님, 우리 도대체 왜 송진일의 그 건을 하지 않는 겁니까? 설마 형님 정말 임구택을 무서워하는 건 아니겠죠?"서인은 포커 몇 장을 손에 들고 담배를 물고 고개를 들었다."내가 임구택을 무서워할 것 같아?"이문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굴렸다."설마, 방금 온 그 소녀 때문입니까?"서인은 검지와 중지로 포커 한 장을 쥐고 밖으로 던졌다. 포커는 회전하며 날아가 바로 벽면에 꽂혔다. 그는 안색이 담담한 채로 계속 두 번째 포커를 던졌다.이문은 그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알아맞혔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소녀는 누구입니까?"서인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함부로 알아보지 마! 형제들한테 내 말을 전해, 나중에 그녀를 보면 모두 피해 다니
소희는 고개를 들어 희미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사실이에요. 만약 내가 나가서 싸웠다면 이마만 다칠 수도 없잖아요."구택은 그녀의 몸을 다시 한번 훑어보며 다른 상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물었다."멀쩡한 사람이 왜 미끄러졌죠?""별일로 크게 놀라지 마요. 조심하지 않아서 미끄러지는 건 정상 아니에요?"소희는 졸려서 그의 어깨를 껴안았다."빨리 자러 가요!""정말 사람 걱정하게 만든 다니깐요!" 구택은 낮게 웃으며 목욕 수건으로 그녀를 감싼 뒤 품에 안고 침실로 갔다.소희는 그의 품에 안겨 속눈썹을 떨며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침대에 눕자 그녀는 곧 잠이 들었다. 밖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먹구름은 달을 가려서 방안은 엄청 어두웠다.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그 버려진 공장으로 돌아갔다. 새벽 2시, 하늘에는 별이 하나도 없었고 사방은 어두컴컴했다.이번 임무는 납치된 아이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그들 7명은 무기를 휴대하고 소리 없이 이 버려진 기름 공장에 잠입했다.공장은 20명의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고 그들의 무기도 그렇게 강력하지 않은 편이라 이런 임무는 그들에게 있어서 무척 홀가분했다.그들 7명은 방심하지 않았고 지형과 상대방의 화력을 미리 계산하여 계획을 세웠다. 홍복은 감시 카메라를 파괴하고 백양과 주옥은 후방에서 잠입하며 서희와 다른 세 사람은 정면에서 기습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이었다.그들은 줄곧 호흡이 잘 맞아서 요 몇 년 동안 맡은 임무는 수십 개에 달했지만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서희는 나이가 가장 어리고 몸매가 야위었지만 가장 날렵했다. 그녀는 지붕에서 뛰어내려 손에 있는 날카로운 칼로 빠르고 정확하게 밖에 있는 두 간수를 신속히 해결하고 소리 없이 넘어뜨렸다. 전반 과정은 날카로운 칼이 몸을 찌르는 경미한 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다른 세 사람은 그녀의 뒤에 바짝 붙으며 네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 감시 카메라를 파괴하러 간 홍복이 재빨리 달려와 급하게 소리쳤다."빨리 철수해, 매복이
소희는 헐떡거리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구택의 옷을 꽉 잡았고 손가락이 새하얗게 변하며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괜찮아요, 자기야, 무서워하지 마요!" 구택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위로했다.소희는 눈을 감고 잠잠해졌다. 눈앞의 붉은색이 사라지고 노란색의 따뜻한 빛으로 변했다.그녀는 온몸에 땀이 나고 허탈해진 채 구택의 품에 안겼다.한참 동안 두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구택은 그녀를 꼭 껴안으며 팔은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감쌌다.소희는 완전히 현실로 돌아오자 구택의 품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안색은 비록 창백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담담해졌다."나 괜찮아요, 그냥, 꿈 좀 꾼 거뿐이에요!"구택과 함께 있은 후부터 그녀는 오랫동안 그들을 꿈꾸지 못했다. 설사 전에 꿈꿨다 하더라도 그들 7명이 함께 어깨 겯고 싸워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꿈이었다.그녀는 표용이 죽는 장면을 자동으로 차단했고 한 번도 그곳에 관한 꿈을 꾸지 않았다.아마도 오늘 서인을 만났기 때문일 가, 그녀와 한 팀이었던 주옥을, 그래서 다시 한번 그녀를 평생 잊을 수없는 장면으로 돌아가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무슨 꿈 꿨어요?" 구택은 그녀의 얼굴을 받들며 대체 어떤 꿈이길래 그녀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궁금했다.소희는 눈빛이 좀 막연했다. 사실 그날 그들이 사람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분노와 다른 사람한테 배신당한 원망만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적들을 죽일 때, 또 조금의 미친 쾌감을 느꼈다. 표용 그들과 함께 죽는 것도 그들의 가장 좋은 결말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꿈속에서 그 창고로 돌아갔을 때, 백양과 표용 그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무척 당황하고 두려웠다.마치도 그녀는 그녀가 살아남을 것이고 그들은 정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소희는 구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말하고 싶지 않아요!"구택은 그녀가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한
택시 기사는 그가 보여준 주소에 따라 그를 데려다주었는데 말투는 유난히 상냥했다."임가네 사람을 아시는 거예요?""네?" 주민은 멈칫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심히 내리세요." 기사의 태도는 매우 공손했다.주민은 차비를 지불하고 양측에 꽃이 가득 심어진 아스팔트 길을 따라 맞은편으로 갔다. 그는 그 별장과 가까워질수록 점점 놀랐다. 맞은편 별장의 정원은 아주 컸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높이의 식물이 교차되어 있었다. 검은색 울타리를 통해 정원의 수림 같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별장 문 앞까지 걸어가면 낮은 단풍나무 뒤의 아름다운 별장을 볼 수 있었다.임유림 미친 거 아냐?이렇게 큰 별장을 빌리려면 하루에 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겠지?주민은 한편으로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 기뻐했다. 유림이 이렇게 신경을 써가며 그를 약 올리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여전히 그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다!"주민아!"유림의 몇몇 학우들이 도착했는데 그중에 정남이라는 사람이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몇 사람은 서로 인사를 한 뒤, 정남은 웃으며 말했다."주민아, 여기서 우리 기다리고 있었어?"주민은 어색하게 웃었다.다른 한 장선희라는 여학생이 별장 문을 들여다보았다."이 별장 정말 너무 기품 있어 보인다. 이런 별장 하나 세내는데 돈 꽤 들겠지!""이야 주민아, 너 돈 좀 많이 벌었구나!"다른 학우들은 주민을 놀렸다.주민은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너희들 저것 좀 봐!" 정남은 별장 위의 팻말을 가리켰다."임가네."선희는 감탄했다."간판까지 걸어준 걸 보면 여기 정말 프로네!"몇 사람이 재잘거리는 가운데 갑자기 정원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문을 열자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몸에 맞는 양복을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맨 노인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며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의 동창들이죠? 얼른 들어오세요!"정남 몇 사람은 서로 쳐다보며 안으로 들어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서비스가 너무 좋은 데다 너무 프로네. 내 생일도 여
유림이 소희와 함께 회전 계단에서 내려오자 사람들은 분분히 일어나 경악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주민도 일어서서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유림을 보고 넋을 잃은 듯 멍하니 거기에 서 있었다.유림은 주민을 보지 못한 듯 귀엽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 거 환영해. 너희들한테 소개해 줄게. 내 친구 소희."말을 마치고 그녀는 또 소희에게 말했다."소희야, 내 동창 정남, 장선희, 방시원이야."그녀는 일일이 소개를 했고, 소희와 정남 그들은 서로 인사를 했다.소개가 끝나고서야 정남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유림아, 여기가 네 집이야?"유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미안해, 줄곧 너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못했어. 나중에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와!"주민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멍해졌다.선희는 집안 형편이 좋아 평소에 부잣집 사람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유림아, 너 임가네 사람이야?"다른 사람들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주민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유림을 바라보았다.유림은 눈꼬리로 주민의 그 충격적인 얼굴을 살피며 속으로 코웃음쳤다."응!"주민은 그만 제자리에 몸이 굳어졌다!그는 유림과 거의 1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그녀가 임가네 사람이란 것을 몰랐다!이 순간, 그의 머릿속은 혼란 속으로 빠졌다. 마치 광풍이 스쳐 지나간 것처럼 혼란스러움 뒤에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황폐감이었다.소희는 정남 등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했다."유림은 뒤뜰에서 모두들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거 준비했어. 우리 먼저 거기로 가자!"정남 몇 사람은 주민의 안색이 좀 이상한 것을 보고 유림과 인사를 하고는 함께 뒤뜰로 갔다.순식간에 거실에는 유림과 주민 두 사람만 남았다.오늘 유림이 생일이라 그녀의 부모님은 외국에서 돌아오며 저녁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에서 친구들을 초대하겠다고 말하니 노부인은 젊은 사람들이 구속받지 않고 즐겁게 놀게 하기 위해 특별히 어르
유림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는 빨간 가죽으로 만든 주얼리 상자를 하나 꺼냈다. 안에는 지엠의 귀걸이 한 쌍이 들어 있었다."네가 귀걸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던 거 기억나. 그래서 나는 나의 전 재산을 모아 이 귀걸이를 샀어. 네 생일에 이걸 전해주면서 나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으면 하고. 그러나 오늘 나는 여기에 와서야 내가 얼마나 유치한지를 알게 됐어. 넌 이런 물건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나도 네가 전에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았어!"유림은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빛으로 또박또박 말했다."하지만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지 않아!"주민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아니, 유림아, 날 용서해 줘 제발,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유림은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난 치근덕거리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 우리 좋게 헤어지자, 서로를 너무 난처하게 하지 말고. 너도 이제 가!""유림아!" 주민은 다시 설명하려 했다.유림은 일어나며 말투는 무뚝뚝했다."내가 사람 시켜서 너 쫓아낼까? 정남 그들도 모두 여기에 있으니까 나도 마지막으로 너한테 체면을 주는 거야!"주민은 유림의 매정한 모습을 보고 안색이 돌변하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유림아, 너 오늘 일부러 나를 네 집으로 오게 해서 나를 난처하게 하려고 했던 거지? 송지연이 없었어도 넌 나와 함께 있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너는 임가네 큰 아가씨고, 높은 곳에 있는 공주님인데 어떻게 나 같은 가난한 녀석을 좋아하겠어? 송지연은 그냥 네가 나와 헤어지려는 핑계에 불과하고, 맞지?"그는 슬퍼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내가 멍청한 거지, 지금까지도 줄곧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나는 내가 잘못한 줄 알았어. 알고 보니 내가 전혀 너와 어울리지 못했던 거야! 나와 헤어진 것은 맞는 일이야. 나와 함께 있으면 넌 수준이 떨어지니까!""넌 전혀 나를 존중한 적이 없었어. 그렇지 않으면 신분을 숨기고 나와 사귀지
"유림아!" 주민은 유림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어찌 됐든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해, 정말이야!"유림은 뒤돌아 보지도 않았다.뒤뜰의 잔디밭에는 생일파티 장식이 배치되었다. 거대한 파라솔 아래의 긴 탁자에는 각종 양식, 디저트, 칵테일이 있었고 핑크색 풍선이 가득 놓여 있었다. 수영장 옆에도 그들을 위한 수영복이 준비되어 있었다. 정남 그들 몇 사람은 먹고 마시고 한담을 나누면서 한창 떠들썩하게 놀고 있었다.소희는 그네에 앉아 있다가 유림이 혼자 걸어오는 것을 보고 눈썹을 골랐다.유림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 후련한 미소였다."유림아!" 방시원이 소리쳤다."너희 집 수영장 너무 크다. 우리 수영 시합할 건데, 너도 올래?""응!" 유림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쪽을 향했다.그녀들은 유림 혼자만 여기로 오며 주민은 그녀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의혹했지만 감히 묻지 못하고 유림을 향해 달려가 그녀를 빼곡히 둘러싸고 꽃으로 엮은 화환을 그녀의 머리에 씌우고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주민은 세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지연이 잠옷을 입고 침실에서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새 둥지처럼 흩어진 머리카락에 밤새운 후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은 기름투성이가 되었고 두 볼에는 검은 반점이 몇 개 있었다. 마치 팔리지 못한 호떡 같았다. 그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번만 봐도 아침밥을 토하고 싶을 지경이었다.주민은 멍하니 그녀를 보며 또다시 유림의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더욱 답답해졌다. 그는 도대체 왜 송지연을 선택하고 유림을 포기했을까? 집안을 논하면, 송지연은 유림의 신발을 핥을 수준도 되지 못했다!이 순간, 그는 자신을 몹시 미워했고 그런 나머지 또다시 유림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녀가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면 그는 어떻게 송지연 같은 여자와 함께 했고 또 어떻게 이렇게 초라한 지경으로 됐을까?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지연이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내 지엠 귀걸이 한 쌍이 없어졌는데, 오빠
정현준이 어색하게 분위기를 풀며 말했다.“소혜 씨는 원래 목표를 정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자세는 우리가 본받을 만하죠.”그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팀장님,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팀장님도 부담스럽다면, 우리 영업팀 쪽이랑 다시 얘기해 볼까요? 그쪽도 이제 이 프로젝트 포기하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소혜의 도발 섞인 말투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감정 기복 없이 차분했다. 속마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상대가 당황할 정도였다.자료를 대략 훑고 나서야, 유진은 마음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들었다.“굳이 물어볼 필요 없어요. 소혜 씨의 기획서 봤는데 문제없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제가 직접 구씨그룹과 협의하죠.”소혜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 소혜는 구씨 그룹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부서와 이미 친분을 쌓아두었고, 사실 이 프로젝트는 이미 내부적으로 다른 회사와 협력하기로 내정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었다.결코 우리 쪽으로 넘어올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유진이 이 프로젝트를 맡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그래야 결국 성과를 못 내고 망신을 당하게 되니까.계획이 잘 흘러가자, 소혜는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역시 팀장님답네요. 저도 열심히 도울게요. 이번 프로젝트 꼭 함께 성공시켜요.”유진은 차분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그래요, 잘 부탁해요.”이후 이틀 동안, 유진은 구씨그룹 프로젝트 담당자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었다. 하지만 매번 비서가 전화를 받았고, 바쁘다는 이유로 면담은 번번이 거절당했다.유진 측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자, 소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조만간 유진이 자진해서 포기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되면 팀 내에서의 리더십도 자연히 무너지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소혜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유진은 능력으로 올라온 게 아니라, 인맥으로 자리를 꿰찼다는 걸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유진을 꼭
“아니에요, 그냥 오해일 수도 있어요.”유진이 말했다.“만약 방연하가 아직 나를 좋아한다면, 내가 다시 한번 만나서 말할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너라고 직접 말할 거야.”구은정의 말에, 유진은 순간 멍해졌다. 눈가가 살짝 붉어졌고, 부드러운 얼굴은 더더욱 복숭앗빛으로 물들었다. 그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누가 말하래요?”그날 서로 솔직하게 얘기한 이후, 며칠 동안 두 사람의 분위기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그런데 은정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니, 오히려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랐다.은정은 말했다.“솔직히 말해도 안 되는 거야?”유진은 표정을 다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나랑은 상관없어요. 연하 안 좋아하면 분명하게 말해요. 괜히 질질 끌지 말고요.”은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그런 사람이야?”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효성은 분명 오해하고 있었다. 이 일은 셋이 제대로 마주 앉아 솔직하게 풀어야 할 것 같았다.그때 은정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집에도 안 들르고, 옷도 안 갈아입고 그냥 온 거야? 이거 물어보려고?”“그럼 뭐겠어요?”유진이 코웃음을 치자, 은정은 검은 눈동자를 고정시키며,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난 네가 날 보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유진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마치 연하처럼 화난 척하며 외쳤다.“아니, 삼촌 진짜 안 끝낼 거예요? 계속 이러면, 나 진짜 다시는 안 올 거예요!”은정은 입가를 살짝 풀며, 한발 물러나는 어조로 말했다.“알겠어. 최대한 자제할게.”유진은 그의 웃음소리에 더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애옹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말했다.“나 갈래요!”“수업은 안 해?”은정이 묻자, 유진은 어딘가 토라진 말투로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안 해요!”은정은 유진을 배웅하며 문 앞까지 나갔다. 하지만 유진은 등을 돌린 채 문을 닫아버렸고, 단 한 번도 고개를 돌려보지 않았다.은정은 무의식적으로 혀끝으로 어금니
연하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유진아, 너랑 효성이랑 둘이 쇼핑하러 가. 난 회사에 잠깐 다녀와야 해.”유진은 당황한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상사가 방금 전화해서 오라고 하셨어.”연하가 말하자, 임유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래, 그럼 얼른 다녀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우리한테 연락해.”연하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그때 갑자기 장효성이 말을 받았다.“정말 가식적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네! 유진아, 그렇게 마음 쓰지 마. 쟤는 애초에 네 도움 필요 없어. 괜히 네 손으로 호랑이 새끼 키우지 마.”연하는 끝까지 참다가, 결국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효성을 노려보았다.“장효성, 너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오히려 효성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난 네가 전화 받는 소리 못 들었거든.”연하의 얼굴빛이 굳어졌다. 애초에 임유진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조용히 넘어가려 했는데, 효성이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예의 하나 없이 공격해 온 것이다.유진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조용히 물었다.“도대체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둘 다 왜 이래?”그때 옆자리 손님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것을 본 연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여기서 싸울 자리는 아니잖아. 나중에 어디 조용한 데서 얘기하자.”“난 딱히 할 말 없어. 그냥 갈래.”효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었고 떠나기 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남의 남자 훔치는 거에 익숙해진 사람은, 친구 남자친구도 똑같이 건드려. 너도 조심해.”그 말을 끝으로 효성은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고, 이내 연하를 바라보며 물었다.“효성이, 무슨 말이야?”유진은 효성이 말한 그 사람이 혹시 구은정을 말하는 게 아닐지 생각했다. 그러나 연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효성이가 괜히 오해한 거야. 난 네게 부끄러운 행동한 적 없어.유진아, 나 믿어?”유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히 믿지.”“
두 사람이 막 자리에 앉았을 무렵, 연하가 도착했다. 유진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길, 자신은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니 먼저 메뉴를 고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장효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연하까지 부른 거야? 미리 말 좀 해주지.”유진은 웃으며 말했다.“단톡방에 말했는데? 못 봤어?”사실 그날 일 이후, 효성은 연하를 다시는 안 보겠다고 마음먹었고, 셋이 있는 단체 채팅방 알림도 꺼둔 상태였다. 예전에 유진이 왜 채팅방에서 말을 안 하느냐고 물었을 때도, 그냥 일이 바쁘다고 둘러댔을 뿐이었다.이에 효성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못 봤네, 정신이 없어서.”곧 연하가 들어왔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유진아, 효성아!”효성은 메뉴판을 보는 척하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연하가 다가오는 순간, 옆자리에 자기 가방을 일부러 내려놓았다.연하는 그 행동을 눈치채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유진의 옆자리에 앉았다.유진은 해맑게 웃으며 물었다.“길 막혔어?”“아니, 우리 대학 때 자주 가던 케이크 가게 들렀거든. 거기서 디저트 몇 개 샀어.”연하는 말하며 가방에서 디저트 상자를 꺼내 효성의 쪽으로 내밀었다.“효성이, 네가 제일 좋아하던 두리안 파이야.”연하의 화해 제스처는 분명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냉담하게 말했다.“괜찮아. 요즘은 그런 냄새 나는 거 싫어해서.”연하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나 유진은 아직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서 그저 웃으며 물었다.“예전엔 냄새나도 잘만 먹더니, 입맛 바뀐 거야?”효성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유진을 보며 말했다.“그러게. 예전엔 냄새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만 해도 역겨워.”탁. 연하는 파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입을 열면서는 또다시 화를 억누르고 부드럽게 말했다.“예전에 좋아했다는 건, 그만큼 취향이 맞았다는 뜻이지. 왜 그렇게까지 싫은 티를 내?”효성의 얼굴이
컵 안에는 짙은 갈색의 한약이 담겨 있었고, 향이 진하게 퍼졌다.연하는 소파 위에서 다리를 접고 앉아, 약을 작은 모금씩 천천히 마셨다. 진구는 옆에서 얇은 담요를 가져와 연하의 다리 위에 덮어주며 말했다.“아까 약 달이는 동안 검색해 봤는데, 여자들은 생리 중에 몸이 차가워지면 안 되고, 술 마시는 건 더더욱 안 된대. 너, 진짜 목숨 걸었구나?”연하는 창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약을 마신 덕분인지 한결 나아졌고, 정신도 조금 돌아온 연하는 장난스럽게 말했다.“선배, 의외로 따뜻한 남자였네요? 사실 유진이가 선배랑 사귀었어도 꽤 행복했을 것 같아.”진구는 코웃음을 쳤다.“이제야 알아봤어? 지금이라도 후회돼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냐?”연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가 유진이랑 아무리 친해도 대신 선택해 줄 순 없어요.”“알아.”진구는 소파에 앉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서, 나 이번에 유진이한테 고백할 생각이야.”그 말에 연하는 조금 놀랐다.“결심했어?”사실 진구는 그동안 줄곧 망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가 서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입도 못 뗐고, 나중에 서인을 잊은 후에는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유진이가 자신을 다시 좋아해 주길 바랐다.요즘 유진이와 구은정이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진이는 다시 그 남자를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고백하지 않으면, 나중에 정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연하는 생각에 잠긴 듯, 조용히 약을 한 모금 더 마시고 물었다.“결과는 생각해 봤어요?”진구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이가 받아준다면야 좋겠지만, 거절당한다면 아마 친구 사이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었다.특히나 유진이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자신이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담스러워서 사표라도 내는 건 아닐지. 이
진구는 고개를 돌려 방연하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가 나더러 너 데리러 오라고 하셨어.”연하는 바로 상황을 이해하고 투덜거렸다.“엄마한테 곧 간다고 말했는데, 왜 또 오빠까지 부른 거야?”“너 데리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진구의 말투는 점점 더 다정해졌고, 하현욱은 재빨리 말했다.“연하 씨, 남자친구가 왔으니 얼른 들어가요!”연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석한에게 말했다.“다음에 꼭 사장님 노래 들을게요. 전 먼저 갈게요.”구석한도 더는 말할 수 없어, 체면상 걱정스러운 말만 건넸다.“조심히 들어가요.”연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진구를 바라봤다.“가자, 집에 가자.”진구는 연하를 데리고 차로 향했다. 차에 올라탄 연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시트에 몸을 기대듯 기대고는 완전히 맥이 풀린 듯한 모습으로 물었다.“근데 선배 어떻게 거기 있었어요?”진구는 말했다.“지나가다가 우연히 봤어. 몇 명이랑 실랑이 중인 거 같아서 혹시 곤란한 일 생긴 건가 싶더라고.”연하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정말 고마워요. 안 그랬으면 오늘은 진짜 피 토했을지도 몰라요.”진구는 그제야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무슨 일 있어?”연하는 그를 친구처럼 여겼기에 거리낌 없이 말했다.“생리 중인데, 배가 너무 아파서요.”진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병원 갈래?”“괜찮아요!”방연하는 씩 웃었다.“딱 봐도 여자친구 없어 보여요. 이거 매달 하는 되게 평범한 거예요.”“아...”진구는 더욱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그렇게 아픈데도 술 마시러 나갔어?”연하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어쩔 수 없잖아요.”“그러면 잠깐 눈 좀 붙여. 집까지 데려다줄게.”진구가 말에, 연하는 감사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선배, 진짜 고마워요.”“고맙긴.”연하는 정말 배가 아파서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눈을 감았다.진구는 연하가 어깨를 감싸 쥐고 참고 있는 표정을 보며, 평소의 활달한 모습과
은정은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를 내려놓았다.“이거 먼저 마셔. 곧 밥이 다 돼.”그 말을 남기고, 곧장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유진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지고, 이내 푸르스름해졌다.‘이게 어떻게 친구 사이야?’‘예전엔 왜 몰랐을까, 이 남자 이렇게 능숙하고, 설레게 하는 타입이었나? 하.’역시, 유진은 은정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적었다. 은정은 지난번 남겨 냉동해 두었던 생선을 꺼내 생선찜을 만들었다.맛은 나쁘지 않았고 달걀 몇 개를 볶고, 간단한 국도 하나 끓였다. 유진은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이 익숙한 냄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 건지, 자리에 앉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은정은 생선살을 발라 접시에 담아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고, 유진은 한 손으로는 자신이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애옹이에게 먹이를 주었다.계란볶음은 아주 평범한 요리였지만, 유진은 파티장에서 먹던 최고급 참치초밥보다도 더 향긋하고 맛있게 느껴졌다.은정은 말없이 생선 살을 모두 유진의 앞 접시에 덜어주고, 조용히 유진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며 업무 관련 메시지 몇 개를 간단히 회신했다.유진이 물었다.“왜 안 먹어요?”이에 은정은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파티 가기 전에 먹었거든.”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야근해서, 진구와 함께 바로 파티장으로 갔었다. 원래는 파티가 끝나면 함께 야식을 먹기로 했었다. 유진은 이내 그 생각이 나 휴대폰을 꺼내 진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미안해요. 약속 못 지켜서요.]진구는 이미 파티장을 떠나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유진의 메시지를 받은 그는,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답장을 보냈다.[괜찮아.]폰을 내려놓은 진구는, 갑자기 집에 가고 싶지도 않고, 혼자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 봐도 누구를 만나 수다를 떨 만한 사람도 딱히 없었다.대학 친구들은 다들 바쁘고, 모인 지도 오래됐다. 회사에서 자신이 있는 위치에선, 누군가와 진심을 나누는 것도 어렵다.유진이 그나마
“그날 밤 이후로, 계속 잠을 못 잤어.”“나, 좀 수척해 보이지 않아?”유진이 잠깐 멈칫했다. ‘눈을 감고 있었으면서 어떻게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 거지?’유진은 순간 당황스러웠고, 동시에 남자의 말이 괜히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은정은 반쯤 눈을 뜬 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지금은,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유진은 은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을 지었다.“친구가 되니까 마음이 놓였다고요? 그럼 우린 원래 친구였잖아요. 왜 그렇게 돌아서 가려고 했는데요?”어두운 조명 아래, 은정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더욱 짙고 어두워져 먹물처럼 깊었고, 저음의 목소리는 자석처럼 끌리는 울림이 있었다.“왜 그런 것 같아?”유진은 은정의 눈 속에서 깊은 바다 같은 소용돌이를 느꼈다. 괜히 빠져들 것만 같아서, 아예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작게 투덜거렸다.“그럴 만하니까 그렇죠.”은정은 다시 눈을 감으며, 혼잣말처럼 낮게 말했다.“네 말이 맞아. 내가 그럴 만하지.”원래 하늘이 은정에게는 치트키를 줬다. 왕으로 곧장 올라설 수 있었던 삶을, 굳이 밑바닥 계급부터 정글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던 그였다.27층으로 돌아왔을 때, 유진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이제는 좀 놔줘도 되지 않아요?”그러나 은정은 손을 놓지 않았다.“애옹이 보고 싶지 않아?”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내가 야식 만들어줄게. 넌 애옹이랑 잠깐 놀고 있어.”은정은 목소리를 낮추어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리고 유진이 아무런 반박을 하지 않자, 그는 그녀가 동의한 것으로 알고 그대로 유진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집 안으로 들어선 유진은 문득 말했다.“집에 가서 옷 갈아입어야 해요.”그 말에 그제야 구은정이 손을 놓았다.“얼른 다녀와.”“네.”유진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대답하고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갔다. 은정은 문을 닫지도 않고 열어둔 채, 달려오는 애옹이를 받
은정은 유진을 바라보다 담담히 말했다.“이제 좀 진지한 얘기를 하자.”“진지한 얘기?”유진은 아직도 어떻게 하면 구은정을 도와 서성을 견제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기에, 그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은정의 짙은 눈동자는 깊었다.“친구로 지낼 건지, 아니면 내가 널 계속 쫓아다닐 건지. 결정했어?”유진은 입술을 깨물며 화가 난 듯 말했다.“그게 지금 진지한 얘기예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내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유진의 가슴 한쪽이 찌릿하며 저렸다. 분노도 사라지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잘 모르겠어요. 아직 생각 안 해봤어요.”‘이미 고백도 받고, 키스도 했는데, 어떻게 친구로 돌아가라는 걸까?’“결정 못 했으면, 그럼 나는 계속 널 쫓아다닐게.”은정의 목소리는 장난기 섞인 당당함으로 가득 찼다.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소파 등받이에 손을 짚고, 유진의 입술을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그리고 유진은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났고, 등이 소파에 닿을 만큼 밀려나며 외쳤다.“친구 할게요!”은정의 얇은 입술은 유진의 입술 코앞에서 멈췄다. 단 몇 센티미터만 더 가면 닿을 거리였다.뜨거운 숨결이 유진의 얼굴에 닿자, 그녀는 숨을 참은 채 눈을 내리깔고 은정의 어깨를 밀었다.은정은 결국 몸을 물러섰다. 이 이상 밀어붙일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오늘 이 정도면 충분했다.은정은 유진의 긴장한 얼굴을 보고는 가볍게 웃었다.“좋아. 친구 하자. 하지만 조건 있어. 예전처럼 나 피하지 않기!”유진은 속눈썹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고, 은정은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우리 이제 집에 가자.”유진은 급히 말했다.“아직 난 못 가요.”말이 끝나기도 전,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에는 여진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통화를 받았다.“선배!”진구는 다급한 목소리였다.[유진아, 어디야? 파티장 안에 네가 안 보여서.]유진은 자기를 바라보는 은정의 눈빛이 너무나 뜨겁다는 걸 느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