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은 잠시 멍해졌다. 이전에 진석도 강솔에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형 앞에서 마음속 답이 분명하게 떠올랐다. 이에 강솔은 솔직하게 예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가 됐든, 10년 전이든, 그 이후든, 네가 아니라 진석을 선택했을 거야.” 강솔은 한때 예형을 정말 좋아했고, 그를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예형은 그녀에게 이상적인 존재였다. 반면에 진석은 강솔의 삶의 일부였고, 뼛속 깊이 스며든 사람이었다. 진석을 잃으면, 강솔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다. 예형의 눈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줄기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 강솔은 휴대폰을 내려다봤지만, 여전히 진석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평소라면 이 시간쯤, 진석은 그녀에게 여러 메시지를 보냈을 텐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자, 조금 불안해졌다. 서빙 직원이 음식을 가져오자, 강솔은 말했다. “음식은 필요 없어요. 이분께 포장해 주세요.” 예형은 강솔을 의아하게 바라보았고, 강솔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할 말은 다 했어. 더 이상 같이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이제 집에 가고 싶어.” 강솔과 진석이 함께하는 그 집으로. “내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했어. 우리 관계에서 부족했던 걸 보완하고 싶었어. 아마 이게 우리 마지막 식사일 수도 있어. 끝까지 같이 먹어줄 순 없어?” 강솔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끝난 관계야. 감정을 잘못된 곳에 쏟지 마.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꼭 잘 대해줘.” 예형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늦은 깨달음을 비웃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나와 줘서 고마워. 이제야 모든 걸 명확히 알았어. 더 이상 너를 괴롭히지 않을게. 네 말대로, 우리 평화롭게 헤어지자.”“나중에 나를 떠올릴 때, 좋은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어.” 강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거야.” 그러고는 일어나며 말했다
강솔은 참지 못하고 진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돌아와?] 강솔은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밖에는 따뜻한 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고, 기지개를 켜며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하지만 진석에게서 여전히 답장이 오지 않자, 강솔은 씻으러 갔다. 아침을 먹고 차를 몰고 회사로 가는 동안에도 진석의 답장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 건가?' 강솔은 계속해서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그의 프로필 사진 옆에는 여전히 새 메시지 알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마음이 하루 종일 지속되었다. 강솔은 진석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혹시 중요한 일로 바빠서 전화를 받지 못하거나, 자고 있을까 봐 망설여졌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어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그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제와 똑같이 진석은 통화를 거절했다. 곧 이어온 메시지는 그저 한마디뿐이었다.[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강솔은 급히 답장을 보냈다. [나야 괜찮아,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지?] 하지만 진석은 더 이상 답을 하지 않았다. 강솔은 소파에 힘없이 기대어 앉았다. 휴대폰은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 평소 좋아하던 간식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드라마를 볼 기분도 아니었다. 강솔은 소파에 누워 무심코 잠에 들었고, 한밤중에 추워서 잠에서 깼다. 휴대폰을 다시 들고 확인했지만, 강솔의 기대는 단번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진석에게서 온 메시지는 없었다. 강솔은 혹시 두 나라의 통신망에 문제가 생겨 자신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은 것인가, 진석의 메시지가 도착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실망한 채 휴대폰을 소파에 던져버리고는,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 잠을 설치고, 다음 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강솔은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오전 회의를 마친 후, 윤미가 강솔의 사무실로 와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인터넷에서의 문제는 다 해결됐잖아요?” “괜찮아
곧 소희에게서 전화가 왔고, 강솔은 즉시 전화를 받으며 다급히 물었다. “소희?” 소희는 말했다. [아까 선배에게 전화했어. 아무 일도 없대. 아마 아침 먹고 있어서 네 전화를 못 본 걸 거야. 강솔은 잠시 멍해졌다. “정말이야?” 소희는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이야, 내가 널 속일 리 없잖아!] 강솔은 잠깐 머뭇거렸다. “알겠어.” 강솔은 마음이 서서히 진정되었지만, 동시에 한기가 몰려왔다. 진석이 아무 일도 없었다면, 일부러 연락을 피한 게 아닐까? ‘소희의 전화를 받았는데, 왜 내 전화는 받지 않았을까? 그때는 못 받았더라도, 이후에 남긴 부재중 전화는 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도 진석은 한 번도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강솔은 마치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서늘해지며, 그 차가운 기운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왜 이러는 거지? 진석이 왜 갑자기 날 이렇게 외면하는 거야?' 강솔은 지난 며칠간의 일을 되짚어보며 진석이 무슨 이유로 자신을 피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인터넷에서 본 그녀의 스캔들을 믿은 걸까? 아니면 경성대 포럼에서 올라온 그 사진을 봤을까?’하지만 사진은 과거에 주예형과 찍힌 것이었고, 진석은 충분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그걸로 그녀를 멀리한다는 게 말이 될까? 진석은 지금껏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이에 강솔은 스스로를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분노와 슬픔, 억울함이 복잡하게 얽혀 가슴을 짓눌렀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며 눈가가 붉어졌다. ‘막 사귀기 시작했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거야? 이런 작은 일에도 자존심을 부리며 연락을 끊다니, 예형과 뭐가 다르지?' 강솔은 너무나도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가서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가지고 왔던 그 작은 여행 가방에 자기 옷과 물건을 모두 챙겨 넣고, 강솔은 진석의
수요일 저녁 7시 정각 소희는 전위 호텔 앞에 나타났다.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리자 소희는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아빠 소정인이었다. [소희야, 아빠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차가 좀 막히네. 먼저 들어가있어.]소희는 발걸음을 늦추며 이따 임구택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생각하고 있었다.결혼 3년 동안 그들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임구택이 이 결혼을 동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부한다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그렇다고 임구택을 탓할 일도 아니었다. 과거 소씨 가문의 회사가 위기를 맞자 뻔뻔하게 임씨 가문을 찾아가 혼인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였고, 당시 임씨 가문의 장남은 이미 결혼을 한 터라 자연스레 그 약속은 차남 임구택이 이행하게 되었다. 그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임씨 가문은 당연히 소씨 가문에 좌지우지 당하지만은 않았다. 예물로 50억 원을 건네어 소씨 가문이 난관을 이겨내게 도우면서도 조건을 제시했다. 3년 뒤에 이 혼사가 자동 해지되는 것으로.3년 전, 그녀는 아직 법정 결혼 연령이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대리인이 가서 혼인신고를 마쳤다. 결혼하자마자 임구택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결혼 해지를 석 달 앞두고 돌아왔다. 결혼을 거부한다는 태도가 너무나도 뚜렷했다.하필이면 오늘, 그녀의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그녀를 앞세워 다시 한번 그를 찾아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소희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 생각하였다. “임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 아내에요!”그가 그녀를 거들떠보기나 할까?듣건대 임구택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강성의 유명한 악질이었다고 한다. 강성의 흑과 백을 모두 통솔하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매섭고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하지만 며칠 전 TV의 경제 채널에서 임구택을 본 적이 있는데 그녀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명품 양복을 입고, 거만하면서도 우아하고 듬직해 보였다.그녀는
그의 손에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일을 마친 후 돈을 지불하다니. 그녀는 그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남자가 냉담한 얼굴을 하고 발코니로 성큼성큼 걸어가니 과연 창문이 열려 있었다.여기는 층고가 높아서 3층이 4층 높이일 텐데 그녀는 어떻게 뛰어내렸을까?그가 그렇게 무서웠나? 죽음을 무릅쓰고 도망칠 만큼?창문으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물을 끼얹은 듯 청량한 바람이지만 남자의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화는 식히지 못하였다. 이 여인은 만 원으로 그를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이 끝난 후에 창문으로 뛰어내려 도망쳤다... 잡히기만 해봐! ......택시에 앉은 소희가 재채기를 하자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보며 물었다. “아가씨, 괜찮아요?”이렇게 예쁘게 생겨서 홀딱 젖어있다니, 딱 봐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기사는 웃으며 말했다. “아직 학생이죠? 밖에 혼자 다닐 때 각별히 조심해야 되요.”“네, 감사합니다. 기사님.”소희는 대답하고 휴대폰을 꺼내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천위 호텔의 7시와 9시경에 내가 찍힌 CCTV 기록은 모두 없애!”“ok!” 상대방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시에 따랐다.남자의 귀에 거슬리는 말이 다시 귓가에 울려 퍼졌다. 소희는 오늘 임구택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따위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다만 임구택이 그녀가 왔었다는 사실을 모르게만 하고 싶었다.운해로에서 내리면서 소희는 뒷좌석을 적신 대가로 택시비를 두 배로 지불했다.별장으로 돌아오자 하인은 소희의 젖은 옷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작은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일이 좀 있었어요, 일단 올라가서 샤워부터 할게요.”소희는 위층으로 걸음을 옮겼다.“목욕물 준비해 드릴게요.”하녀는 더 묻지 못한 채 위층으로 올라가 준비했다.몇 분 후 소희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긴장했던 몸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머릿속이 복잡해서 머리까지 물속에 파묻고 오늘 밤에 있
소희는 멍해졌다.남자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왜 절 따라오시는 거예요? 강성대 학생이신가요?”그는 오는 길에서부터 이 여자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멈추면 그녀도 무슨 일이 있는 척 멈추더니 엘리베이터까지 따라왔다.소희는 얼굴이 빨개졌지만 이내 다시 냉정을 되찾고 반문했다. “여기가 당신 집으로 가는 길인가요? 모든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을 왜 제가 따라다닌다고 하는 거죠?”남자의 눈동자의 싸늘한 빛이 스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며 소희에게 올라오라고 눈짓했다.소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비꼬듯 말했다. “됐어요, 오해받을 만한 행동 안할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돌아서서 계단으로 걸어갔다.그녀 뒤로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며 남자의 가늘게 뜬 눈을 가렸다.소희는 임구택과 다시 마주칠까 봐 아예 계단으로 9층까지 올라갔다.회의실에 도착하니 조교가 학과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교는 그녀를 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눈짓했다.그 옆에는 몇몇 학생들도 자료를 제출하러 왔는데, 그중 한 명은 따가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소희는 못 본 척 휴대폰을 꺼내 스도쿠를 했다.5분도 안 돼 한 판을 풀고 나니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돌아온 지 얼마 안 됐죠? 출국한지 오래됐으니 돌아올 때 됐구나 싶었는데”교장선생님의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한 사람은 교장선생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소희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임구택도 소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머물지 않고 바로 지나갔다.학과장은 급히 마중 나가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방 교장은 그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LS그룹의 대표이사님이십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 학생이었지요. 참, 우리 학교 여러 항목의 장학금도 임 회장님이 후원한 것입니다.”그러자 학과장은 냉큼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임구택과 악수를 나누었다. “오늘 마침 학생들에게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출
임구택은 그날 창문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명우는 제일 먼저 천위 호텔의 CCTV를 조사했다.이상하게도 7시와 9시 두 시간대 모두 공백 상태였고 천위 호텔의 보안요원조차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지 못하고 당시 인터넷이 끊겼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었다.그래도 명우는 한 사람을 찾았다. 서이연.서이연은 B급 배우로 청순하고 러블리한 이미지의 노선을 걷고 있으나 줄곧 뜨지 못했다. 어제 저녁 6시 50분쯤 그녀가 천위 호텔에 들어가 연풍관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CCTV에서 볼 수 있었다. 이후 CCTV 기록에는 공백이 있어 그녀가 어느 방으로 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9시 5분경 서이연의 매니저가 그녀를 부축하고 연풍관 밖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그 뒤로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에 명우는 서이연이 어떤 차를 타고 떠났는지 몰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어젯밤 그녀는 왼쪽 다리를 수술했다.명우는 이미 차트를 확인했는데 낙상이었다.그날 밤, 강성의대 부속병원.VIP706호. 병상에 누워있는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불안한 표정으로 맞은 켠 소파에 앉은 임구택을 바라보았다. “임 대표님 무슨 일이에요?”“다리 어떻게 다쳤어요?” 임구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이연은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반쯤 늘어뜨린 눈꺼풀 아래 눈물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임 대표님과 관련이 있나요?”“숨길 필요 없어요, 사람을 시켜 이미 CCTV를 확인했으니까. 어젯밤 9시쯤 매니저가 당신을 부축해서 차를 타고 떠날 때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죠. 그날 밤 제 방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맞나요?” 임구택의 어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했다.손님의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천위 호텔은 카메라가 객실 창문을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이연이 어디서 뛰어내렸는지는 볼 수 없지만,
여인이 달려들며 손에 들고 있던 꽃들은 소희의 몸에 던져졌다. 힘껏 소희를 뒤로 밀치고는 소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진원은 긴장한 채 소연의 몸을 살펴보며 물었다. “다친 거야? 혹시 피났어? 어디 아프니?”이슬을 머금은 꽃잎이 온 바닥에 흩어지고 꽃의 가시가 소희의 목덜미를 찔러 따끔거렸다. 그녀는 여인의 긴장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소정인은 이내 다가와 소희에게 물었다.“안 다쳤니?”진원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소희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야, 소연이를 죽이려는 거니?”소희는 여인의 눈에 비친 혐오와 원한을 보고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소연은 소희를 한 번 쳐다보고는 급히 진원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엄마, 오해예요. 제가 언니한테 머리 좀 잘라달라고 했어요. 언니는 절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그렇구나!”소정인은 ‘하하’하고 웃으며 진원을 원망했다. “당신은 항상 너무 급해서 문제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낸단 말이야. 당신 때문에 소희 옷이 다 더러워졌잖아.”진원은 자신이 소희를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무안해하며 변명했다. “들어오자마자 소희가 가위를 소연이의 목에 대고 있길래... 머리를 자르는 건줄도 모르고...”“그만 해!”소정인은 진원에게 눈짓을 하고는 소연에게 말했다. “언니 데려고 가서 옷 좀 갈아입혀. 옷이 다 더러워졌네.”“언니, 이리 와!”소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희는 어깨의 꽃잎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2층 침실로 들어가자 소연이 사과했다. “언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이 시간에 돌아올 줄 몰랐어. 나 때문에 언니가 다쳤네.”“너 때문이 아니야!”소희의 순수한 얼굴에는 한 줄기 미소를 띠고 있었다.소연은 옷방에 가서 흰색 티셔츠를 가져와 소파에 놓았다. “언니, 이건 새거야, 한 번도 안 입었어. 옷 갈아입어, 난 내려가서 기다릴게.”“응.”소연이 문을 닫자 소희는 소파 위의 옷을 보며 안색이 흐려졌다. 한쪽에서는 머리를 잘라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