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집에 들어서자, 강솔은 바로 물었다. “말해봐, 왜 그렇게 한 거야?” 진석은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앉았다. 그의 등 뒤로는 미국식 흰색 나무창이 있었고, 저녁 햇살이 따뜻하게 그의 뒤에 금빛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온화하고 눈 부신 빛이 그의 안경테에 반사되면서, 차갑고 금속성의 냉기를 풍겼다. 그리고 진석은 깊은 눈빛으로 강솔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가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 그 말에 강솔은 냉소를 지었다. “당연히 물어야지. 이렇게 혼란스럽게 넘어갈 수는 없잖아.” 진석은 잠시 강솔을 응시한 뒤, 휴대폰을 꺼내 강솔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은 강솔과 주예형이 석양 아래 함께 서 있는 장면이었다. “이 사진, 왜 또 그를 만난 거야? 내가 떠날 때 너는 나한테 뭐라고 약속했지?” 강솔은 사진을 보고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이 사진이 자신이 동창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날 밤, 예형과 그 동창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찍힌 사진임을 기억했다. 사진은 아주 선명했고, 촬영 각도를 보니 작업실 맞은편 카페에서 찍힌 것이 아니었다. 분명 배석류가 몰래 찍은 사진이었다. 석류가 이 사진을 심서진에게 넘겼고, 서진이 마지막으로 이간질을 시도하며 진석에게 보낸 것이 분명했다. 강솔은 변명하려 했으나, 이내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날 외면한 거야?” 진석은 어둡고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강솔, 지난 10년 동안 내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 너를 포기하려 했어.”“한 번은 네가 주예형을 따라 M국에 왔을 때였고, 또 한 번은 설날에 네가 제사를 지내고 나서 돌아와 나와 만두를 빚기로 했을 때였어.”“그런데 윤미래 이모가 네가 주예형 때문에 다시 강성으로 갔다고 말했지.”“그 두 번 모두 나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자, 더는 기다리지 말자라고 스스로 말했어.” 강솔은 고개를 숙이며, 아픈 기억이 떠올라 눈물이 맺혔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강솔은 고개를 기울여 진석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그의 셔츠에 문지르며 훌쩍거렸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갑자기 나를 무시하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네가 여기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정말로 많이 걱정했어, 진짜 알기나 해?” 강솔은 진석의 어깨에 엎드려 울면서 몸이 떨렸다. 진석의 마음은 마치 칼로 도려내듯 아팠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진석은 고개를 돌려 강솔의 얼굴에 키스했다. 진석은 그 사진을 보고 단순히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혼란스러웠고, 강솔이 주예형을 만나 그에게 다시 마음이 흔들릴까 봐 두려웠다. 더욱이 강솔이 전화를 걸어 영상 통화로 자신의 혼란과 불안함을 보일까 봐 걱정했다. 그는 강솔을 놓아주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할지 확신이 없었다. 한참 동안 강솔은 천천히 진정되었고, 진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둑해진 하늘과 함께 아름다운 석양이 창문에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고, 슬픔도 조금씩 옅어졌다. 강솔은 코를 훌쩍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넌 여전히 날 믿지 않는 거야, 그렇지?” 진석은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강솔, 넌 나를 사랑해?” 강솔은 입술을 깨물고, 마치 반항하듯 대답했다. “안 사랑해!” 진석은 약간 찡그렸지만, 강솔의 부은 눈을 바라보며 더는 그를 추궁할 힘을 잃었다. 강솔은 벽에 기대어 고개를 들었다. 눈물에 씻겨 더 맑고 투명해진 눈이 단단한 결심을 내비쳤다. “다시 말하지만, 나 주예형이랑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야. 우린 이미 모든 걸 끝냈고, 다시는 연락하지도, 만나지도 않을 거야.” “비록 우리가 처음에 네가 강제로 밀어붙여서 사귀게 된 거지만, 내가 원치 않았다면 누구도 날 억지로 어쩌지 못했을 거야. 그걸 이해하겠어?” “게다가 우리 이미...” 강솔은 얼굴이 붉어지며 시선을 피했다.진석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진석은 강솔에게 키스를 하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이 내가 투정 부릴 유일한 기회야. 나 좀 달래줄 수 있겠어?” 강솔은 그의 말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오빠, 그날 주예형을 만난 건 그가 다른 동창과 함께 나를 동창회에 초대하러 왔을 때야. 난 초대에 응하지 않았어. 사진 속 상황은 실제와 달라.”“그건 배석류가 몰래 찍은 거야. 그리고 심서진에게 넘겼고, 심서진이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한 거야.” 진석은 강솔의 말에 잠시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비서 그 배석류 말이야?” “그래, 심서진에게 매수당했어.” 강솔은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심서진의 일이 끝난 후에, 예형과 한 번 만나서 우리 사이의 모든 걸 정리했어. 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그 사람도 더는 날 찾지 않겠다고 약속했어.”“그 사람도 오빠랑 똑같은 질문을 했거든.” “무슨 질문인데?” 진석이 묻자, 강솔이 말했다. “만약 그 10년 동안 그와 네가 동시에 나에게 고백했다면,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누구 선택할 거냐고.” 이에 진석은 초조하게 강솔의 답을 기다리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넌 뭐라고 대답했어?” 강솔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말했어. 당신이 아니라 오뻐를 선택할 거라고. 남자친구는 없어도 되지만, 진석 오빠는 없어선 안 된다고.” 아마도 예형에게 그 답을 내린 순간부터, 강솔은 자신이 진석에 대해 얼마나 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 얼마나 확고해졌는지를 깨달았다. 진석은 강솔의 대답에 눈빛이 흔들리며 마음속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강솔은 깊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알겠어? 네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솔은 주저 없이 진석에게 다가가 키스했고, 그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오빠와 함께 있고 싶어. 이제 확신해. 그건 감동 때문이 아니야. 그저... 난 누구도 잃을 수 있
진석은 이마를 찡그리며 칼과 포크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꺼내 국내 뉴스를 확인했다. 이전의 사진들은 이미 삭제되었지만, 고하선과 조길영의 공개 사과문은 여전히 인터넷에 남아 있었다. 진석은 그들의 사과문을 읽으며 강솔이 그들로부터 입은 상처가 얼마나 큰지 점점 더 분명히 느꼈다. 진석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강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자 한 조각을 물고 대답했다. “일이 금방 해결됐거든. 소희가 나를 도와줬어.” 진석은 강솔의 말에 이어 경성대 포럼을 열어 관련된 글들을 다시 확인했다. 심서진이 올린 글은 이미 삭제되었지만, 주예형이 올린 해명 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댓글을 훑어보면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진석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심서진은 어디 있어?” “잡혀갔어. 소희 말로는 몇 년 동안은 못 나올 거야. 감옥에서 썩게 될걸.” 강솔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한테 뭐라 하는 건 참을 수 있는데, 오빠를 모욕한 건 용서할 수 없어. 경찰서에 가서 한 번 더 걷어차고 싶을 정도였어.” 진석의 마음은 원래 무거웠지만, 강솔의 말을 듣고 그의 눈에 부드러운 기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강솔은 큰 한 모금의 채소 수프를 마시며 자연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강솔은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잠시 멈추었고, 눈을 살짝 굴리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시 고기를 먹었다. 진석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까는 말이 없더니, 이제 와서 솔직하네.” 강솔은 얼굴이 더욱 붉어지며 말했다. “대화 주제나 흐리지 마.” 진석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웃었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조금 무거웠다. “내가 없는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구나.” “사실 별거 아니야.” 강솔은 낙천적인 성격답게 대답했다. “조길영과 유사랑의 일은 겉보기엔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 심서진이 뒤에서 조종한 거야.
“사랑해.” 진석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강솔을 품 안에 끌어안았다. “영원히 사랑할 거야.” ... 그날 밤, 강솔은 진석의 품 안에 얌전히 안겨 있었다. 더 이상 그 품이 답답하다며 멀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주 편안하고 달콤한 잠에 빠졌다. 반면, 진석은 밤에 몇 번이나 깨어나 강솔에게 하는 입맞춤을 참을 수 없었고, 더 많은 것을 원했지만, 달콤한 꿈을 방해할 수 없어 억눌렀다. 다음 날 아침, 강솔이 눈을 떴을 때는 아직 해가 막 떠오를 무렵이었다. 강솔은 진석의 품 안에 더 깊이 파고들며, 진석의 따뜻한 향기에 취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해 떴어?” 진석은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낮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출근 안 해도 되니까 좀 더 자.” 잠시 후, 강솔은 게으르게 고개를 들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오늘 귀국하는 거야?” 그말에 진석은 강솔의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에 빠져들었다. “원래는 돌아가려고 했는데 네가 왔으니 며칠 더 있어도 돼.” 강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출근해야 해. 딱 이틀 휴가만 냈거든.” 진석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장님이 여기 있잖아. 언제든지 휴가 연장해 줄 수 있어.” 강솔도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안 돼, 난 성실한 직원이거든.” 진석은 강솔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럼 조금만 더 자고, 일어나면 같이 집에 가자.” “응.” 강솔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진석의 팔을 베고 다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일어나서 강솔은 소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진석이 함께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오전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돌아왔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 시간이 가까웠다. 그들은 아래층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고, 강솔은 침대에 몸을 던지며 말했다. “사장님, 하루만 더 쉬고 내일 출근하면 안 될까요?” 진석은 강솔의 어깨를 살짝
진석은 드라이어를 들고 와 침대 옆에 앉아 천천히 강솔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강솔은 눈을 감은 채, 진석의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질 때 느껴지는 편안함에 빠져 있었다. 머리가 다 마르기도 전에 강솔은 반쯤 엎드린 채 잠들어버렸다. 진석은 드라이어를 치우고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조용히 방을 나섰다.그는 서재로 가 몇 통의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한 뒤,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침대 위를 보니 강솔은 이미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 끝으로 굴러가 있었다. 진석은 강솔을 다시 안아 제자리로 옮기고 이불을 덮어준 후, 그녀를 품에 안고 잠들었다.강솔은 한 시간쯤 자고 나서 진석의 입맞춤에 깨어났다. 아직 정신이 몽롱했지만, 그의 뜨거운 가슴이 자신에게 닿는 게 느껴졌다. 창문에 드리운 커튼이 서서히 닫히면서 방안의 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강솔의 작고 귀여운 항의는 진석의 키스에 의해 완전히 제지당했다....오후 5시, 강솔은 침대에 엎드린 채 밖에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욕실에서 나온 진석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나 배고파!” 진석은 안경을 쓰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아직 축축했다. 깊고 냉철한 눈매였지만, 눈빛은 부드러웠다. “뭐 먹고 싶어?” 강솔은 눈을 살짝 굴리며 말했다. “우리 스승님 뵈러 가자, 저녁 시간에 딱 맞을 거야.” “좋아.” 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일어날 수 있겠어?” “당연하지!” 강솔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순간 미간을 찡그리며 말끝을 흐리고 진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진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네 옷이 도착했으니까 내가 가져올게. 잠시만 쉬고 있어.” 강솔은 진석이 방을 나서는 것을 보며, 이불을 확 걷어 머리 위로 덮어버렸다....두 사람이 도경수 저택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양재아가 진석을 보자마자 달려와 말했다. “진석 오빠!” 진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일 뿐이니, 호칭에 예의를
도경수는 바로 문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있냐?” 강솔이 대답했다. “위층에 있어요, 곧 내려올 거예요.” 도경수는 그제야 깨닫고 물었다. “너랑 진석이랑 사귀는 거야?” 강솔의 귓불이 살짝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보시기엔 어떠세요?” 도경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강솔의 이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톡 쳤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너!” 이에 강솔은 입술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사부님은 왜 진석이 이제 눈 떴다고는 안 하세요?” “아, 진석의 마음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어. 네가 눈치가 너무 없었던 거지! 이제야 정신 차려서 다행이다.” 도경수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드디어, 진석이가 너에게 쏟은 그 마음이 헛되지 않았구나.” 강솔은 약간 자랑스럽게 말했다. “맞아요, 오빠가 저한테 정말 잘해줘요!” “알면 됐어. 앞으로는 너도 진석에게 잘해줘야 해.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고.” 도경수는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넸다. “알겠어요, 스승님 말이라면 제가 어디 감히 안 듣겠어요?” 강솔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정말 그렇게 순종적이라면, 내가 분명히 10년은 더 살 수 있겠구나!” 강솔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스승님,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히 백세까지 징수하실 거예요!” 두 사람은 잠시 웃고 떠들다가, 강솔은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저 소고기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배고파서 더는 못 참겠어요. 저 가서 아주머니한테 소고기 좀 덜어달라고 할래요.” “가라, 가. 배고프면 먼저 먹어도 된다.” 도경수는 웃으며 말했다. 강솔은 소고기 냄새에 이끌려, 먹고 싶은 마음에 참지 못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갔다.잠시 후, 진석이 들어와 조용히 말했다. “스승님!” 도경수는 고개를 들어 자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기분이 풀렸냐?” 진석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눈빛에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벌써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겨울 동안 잠잠했던 강성의 거리도 어느새 화사한 색들로 물들었다. 강아심은 밤 8시가 되어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사무실의 불을 끄고 회사 건물을 나서니, 거리의 불빛이 눈부셨다. 도로는 사람들로 붐볐고,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창문을 반쯤 내리자 바깥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간판에 봄옷 광고가 번쩍이는 것을 보며, 아심은 그제야 봄이 정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아심은 다시 차를 몰고 계속해서 나아갔다. 늦은 시간이었고, 피곤해서 집에 가서 밥을 해 먹을 기운이 없던 그녀는 자주 가는 단골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사람이 많았다. 데이트하는 연인들, 아심처럼 퇴근길에 저녁을 먹으러 들른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심은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며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식사가 나오기 전 잠깐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 먹을 때도 이렇게 바쁘면, 몸이 보복할 거야!” 청아한 목소리에 아심은 살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진지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띤 지승현이 서 있었다. 그는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식사가 나왔으니 먼저 밥부터 먹어, 일은 잠시 접어둬. 일이야 언제나 바쁘지만, 하루 세 끼는 제대로 먹어야지.” 아심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기서 널 보게 될 줄이야. 어떻게 여기에 있어?” 그러자 승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우연히 마주쳤다고 하면 믿을 거야?” 아심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 솔직히 말할게. 우연은 아니야. 정아현 씨가 네가 자주 이곳에 온다고 해서 일부러 와봤어.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만났네!” 승현이 웃으며 말하자, 아심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야?” “먼저 밥부터 먹자. 다 먹고 나서 이야기해.” 승현은 자신의 쟁반을 가져오며 말
강솔과 진석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강솔은 기쁜 표정으로 소희를 부르며 소희에게 달려갔다.오늘은 모두가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비록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였고 불안감도 여전히 있었지만 말이다.진석과 임구택도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옆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희는 강솔과 함께 대화를 이어갔다.소희가 강솔에게 물었다.“양재아는 어디 있어?”강솔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아침 먹을 때까지만 해도 있었어. 상태도 괜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도경수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며 말했다.“걔도 마음이 복잡할 테니 억지로 불러내지 말게. 혼자서 마음을 가라앉히게 둬.”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아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어색했으니, 혼자 위층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언젠가는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될 것이었다....아침 8시, 아심은 시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자 시언은 그녀에게 내려오라고 했다.몇 분 후, 아심은 차에 올라탔다.“도도희 이모는요?”“먼저 가셨어.” 시언은 도로 상황을 살피며 말했다.“우리는 먼저 아침을 먹고 나서 합류할 거야.”“저는 이미 아침을 먹었어요.”시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심을 돌아보자, 아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왜요?”“아무것도 아니야.” 시언은 무심하게 대답하고 차를 출발시켰다.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아 조그만 아침 식당이 보였고, 아심이 말했다.“여기 아침 식사가 괜찮아요. 당신은 여기서 아침을 먹고 오세요. 저는 차에서 기다릴게요.”그러자 시언은 무심하게 말했다.“괜찮아, 안 먹어.”“안 먹으면 배고프지 않아요?” 아심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안 고파.” 시언은 무뚝뚝하게 대답하며 운전만 계속했다. 아심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가방에서 따뜻한 우유 한 병과 직접 만든 샌드위치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샌드위치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시언은 그녀를 흘긋
[내가 그 사람을 좀 찾아볼게요. 문제없을 거예요. 그냥 미리 보는 거잖아요. 결과를 조작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절대 못 하죠!] 권수영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아는 권수영의 숨겨진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일부러 자신감 넘치는 척 말했다.“당연히 결과를 바꿀 필요 없죠. 그냥 한 시간만 미리 알게 되면 전 그걸로 충분히 기쁠 거예요.”[걱정하지 말아요. 내일 시간 알려주면 미리 가 있을게요.]“정말 감사드려요!” 재아는 감격해서 말했다.“내일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그래요!]두 사람은 몇 마디 더 나눈 후, 재아는 약간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듯, 씻어야 한다는 핑계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내려놓은 재아의 가슴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리 볼 수만 있다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재아는 속으로 다짐했다. 설령 자신이 도도희의 딸이 아니더라도, 도도희가 아심을 인정하게 두진 않을 거라고.‘만약 강아심이 진짜라면, 내가 이 집에 계속 있을 수 있을까?’재아는 절대 도경수가 친손녀를 찾게 둘 수 없었다. 진짜 재희가 돌아오지 않는 한, 자신이 가짜라도 진짜가 될 수 있었다.재아는 속으로 끝없이 계산하며 내일의 계획을 철저히 준비했다....다음 날 아침, 재아는 이층 창가에 서서 도도희가 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다.도경수는 도도희를 따라가며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 그의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에서 도도희와 강심의 결과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에 재아는 비웃음을 지었다.‘할아버지는 입만 열면 나를 친손녀처럼 여긴다고 하지만, 결국엔 강아심이 진짜 손녀이길 더 바라고 있어.’재아는 분노와 억울함으로 창가의 커튼을 움켜쥐었고, 손아귀의 힘 때문에 커튼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만 같았다.한편, 아래층으로 소희와 임구택이 도착했고, 도경수는 소희에게 도도희가 이미 나갔다고 말했다.소희는 도경수의 팔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안으로 들
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조금 옅어져 있었다.“오늘 양재아랑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예상대로 도씨 저택에서 떠나고 싶지 않아 하더라고.”임구택은 눈빛을 깊게 가라앉히며 말했다.“그건 예상했던 일이야.”소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래서 그게 문제예요. 만약 아심이 스승님의 외손녀로 밝혀진다면, 양재아는 어떻게 해야 할까?”소희는 이 상황이 자신이 만든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소희가 책임지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했다.소희는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한 가지 더 있어. 재아가 요즘 지씨 집안과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아.”구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내가 양재아를 주시하도록 사람을 붙여둘게. 어찌 되었든, 가 너나 도씨 집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그 외의 일은 문제없을 거야.”...한편, 재아는 저녁 내내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도도희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에 상실감과 걱정이 가득했고, 또 한편으로는 도도희가 친딸을 찾을 가능성에 대해 기뻐하는 척해야 했다.이 모순된 감정들로 인해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는 억지스럽고 어색했다. 도경수는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다가와 말했다.“재아야, 인제 그만 올라가 쉬어라. 너무 무리하지 말고.”재아는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문을 닫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는 억지로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과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다.‘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것도 이미 절망스러운데...’‘이제 강아심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니?’재아는 손으로 옷을 움켜잡고, 억울함과 분노에 눈물을 흘렸다.‘어떻게 강아심일 수 있지? 왜 꼭 그 여자여야 하는 거야?’온두리에서 자신을 데리고 온 사람은 소희였고, 도경수도 자신을 좋아해 줬는데, 왜 마지막에 와서 모든 것이 아심 쪽으로 기울어져야 하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재아는 아심을 처음부터
강시언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그때 들어보니, 친자식이 아팠고 치료비가 급히 필요해서였던 것 같아요.”그 말에 도도희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심을 팔아넘길 정도였던 양부모라면, 아심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었을 리가 없었다.“그럼 그 양부모는 어디에 있는 거니? 아심은 언제부터 그들에게 맡겨졌던 거야?”도경수가 이어서 묻자, 시언은 차분히 대답했다.“그들이 말하길, 아심은 강가에서 주운 아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어요.”“그 사람들도 강 씨였나?”“아니에요.”강시언은 잠시 말을 멈추다 덧붙였다.“제가 강 씨라서, 아심도 제 성을 따라 강 씨가 된 거예요.”방 안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고, 각자 복잡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도경수가 다시 무언가 물으려는 순간, 소희가 나섰다.“내일 아침이면 도도희 아줌마와 아심의 친자 검사가 진행될 텐데, 스승님께서 너무 서두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내일 결과가 나오면 그때 더 자세히 알아봐도 늦지 않잖아요.”소희는 아심의 과거에 대해 성급한 판단이나 의심이 생기지 않도록, 이 대화를 중단시키고 싶었다. 소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시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아심의 과거는 내일의 검사 결과와 무관해요. 결과를 보고 나서 판단하는 게 더 중요하죠.”도경수는 고개를 숙이며 자책하듯 말했다.“내가 조금 조급했구나.”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시간 동안 이반스가 C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고, 도경수도 몇 마디 거들었다.강솔은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 분위기를 풀었고, 덕분에 식사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에서 끝났다.식사가 끝난 뒤 밤이 깊어지자, 소희와 임구택은 먼저 도도희 집을 떠났다. 강재석은 도씨 저택에 머물렀고, 시언 역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떠나기 전, 시언은 도도희에게 말했다.“내일 아침에 아심을 데리러 가고, 그 후에 이모를 모시러 올게요.”도도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굳이 오지 않아도 돼. 오늘 가는 길을
강아심은 고개를 숙이고 국물을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그렇게 우연한 일이 있을까요?”아심과 도도희는 오랜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들이 친 모녀라고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드라마 같았다.“지금의 삶이 바뀌는 게 두려운 거야?”강시언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들렸다.그 말에 아심은 멍하니 시언을 바라보다가,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과 마주쳤다.길고 고운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이윽고 아심은 자리에서 일어나 빈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하며 말했다.“내가 설거지할게요.”“내가 할게.”시언이 그녀를 막아섰다.“자기 그릇은 자기가 씼는 거예요.”아심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시언은 약간의 불만이 담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따라 주방으로 들어갔다.설거지가 끝난 뒤, 시언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아심에게 건넸고, 아심은 요구르트를 마시며 거실로 걸어갔다. 뒤따라오는 강시언을 보며 그녀는 약간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밥도 다 먹었는데, 아직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시언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날 쫓아내려는 거야?”시언은 아심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눈빛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럽게 울렸다.“만약 네가 도도희 이모의 딸이라면, 넌 재희인 거야.”아심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가만히 입을 열어 말했다.“재희라면요?”“별다른 건 없어.”시언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말했다.“그저 내가 널 만나게 된 걸 무척 기쁘게 생각할 거야.”시언의 손끝이 약간 차가웠다. 그 차가움이 아심의 뺨을 스치자, 아심의 가슴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두근거렸다.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시언은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오늘 밤은 여기 안 남아. 지금 상황에서
양재아는 도도희와의 친자 검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시언이 아심이 도도희의 딸일 가능성을 제기하자 모든 것이 이미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그랬기에 재아는 이 상황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도경수는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재아야, 네가 지금 감정이 격해져서 그런 것 같구나.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라.”재아는 도경수를 바라보며 복잡한 눈빛을 보냈다. 예전엔 자신이 아심에 대해 무슨 말을 해도 도경수는 그녀를 믿어줬다.하지만 지금은 검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도경수는 벌써 강아심 쪽으로 기우는 듯했다.도경수는 계속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라. 네가 내 친손녀가 아니더라도, 이 집에 계속 있어도 괜찮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단다.”재아는 그가 할아버지라는 말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졌지만,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고마워요, 할아버지. 정말 저에게 잘해 주시는 것 같아요.”도경수는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사이에도 정이 들었지 않니. 네가 친부모를 찾고 싶다면 내가 도와주마. 찾고 싶지 않다면 여기가 네 집이야.”재아는 감동한 듯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지만 곧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아심이 정말 도도희 아줌마의 딸이라면, 저를 받아줄 수 있을까요?”도경수는 웃으며 대답했다.“만약 아심이 정말 우리 집안의 사람이라면, 걔도 자기 엄마처럼 마음이 따뜻하고 착할 거다. 그런데 어떻게 너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니?”재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재아는 아심에 대한 나쁜 말을 더는 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내심으로는 내일의 친자 확인 결과가 오늘과 같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시언은 아심을 그녀의 아파트 아래까지 데려다주었고, 아심은 차에서 내리려다 말했다.“오늘 데려다줘서 고마워요.”“고맙다는 말이 다야?”시언은 이미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말했다.“이렇게 늦었는데, 저녁 한
강솔이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저도 할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생각해요! 강아심이 정말로 도도희 아줌마의 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아니더라도, 도도희 아줌마도 하룻밤 차분히 생각하고 나면 당장 떠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만 되어도 괜찮잖아요?”도경수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그래.”소희는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양재아를 바라보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분명 양재아 역시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을 것이다. 소희는 기회를 봐서 그녀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강솔은 조금 전 도도희와 아심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아까 보니까 정말 놀랐어요! 두 분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깜짝 놀랐어요!”도경수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너도 닮았다고 생각해?”강솔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 많이 닮았어요!”도경수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으로 강재석을 보며 말했다.“설날 때 아심이 네 집에 있었지? 우리가 화상 통화를 했을 때 본 그 아이가 바로 아심이었어. 그때부터 낯이 익다 싶었어!”사람들은 점점 더 흥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재아는 이 모습을 그저 지켜보다가 조용히 뒷걸음질 쳤다.소희는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임구택에게 짧게 말한 뒤 따라갔다. 재아는 정원 한쪽의 긴 벤치에 앉아 무릎을 껴안고 작은 소리로 울고 있었다.“재아야.”소희가 다가가 그녀를 부르자, 재아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말했다.“소희.”소희는 재아의 곁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이번 일은 나도 책임이 있어. 널 온두리에서 데리고 온 뒤, 확인을 늦춘 건 내 잘못이야. 너를 이곳에서 오래 머물게 하면서 정이 들게 만든 것도 마찬가지고.”재아는 입술을 깨물며 울먹였다.“맞아. 나 정이 들어버렸어. 이제는 여기를 제집처럼 느껴지고.”소희는 쟈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네 친부모를 찾는 걸 도와줄게.”그러나 재아는 고개
관계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지금, 강아심은 도씨 집안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도도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내일 보자.”그녀는 말을 마친 뒤 강시언을 바라보며 말했다.“시언아, 아심을 데려다줘.”“네.”시언이 짧게 대답했고 아심은 강재석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할아버지, 이렇게 빨리 또 뵙게 될 줄 몰랐어요. 하지만 오늘 저녁에는 함께 식사하지 못하겠네요. 내일 다시 찾아뵐게요.”강재석은 다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앞으로는 기회가 많을 테니, 오늘은 괜찮아. 가는 길 조심하고.”아심은 소희와 임구택 등에게도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는 시언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도경수는 그녀를 떠나보내며 계속해서 아심의 모습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저무는 저녁빛 속에서 선명한 아심의 옆모습은 젊은 시절 도도희를 떠올리게 했다. 그랬기에 도경수는 그녀를 붙잡아 두고 싶다는 말을 거의 입 밖으로 내뱉을 뻔했다.양재아는 도경수의 이러한 반응을 감지하고 더더욱 불안해졌다. 이에 본능적으로 아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예전엔 단지 아심이 싫었다면, 지금은 알 수 없는 증오가 스며들기 시작했다.‘아심일 리 없어. 이렇게 우연일 수는 없잖아!’재아는 자신을 계속해서 다독이며 안심하려 했다.시언은 차를 몰고 아심을 데리고 떠났다. 그리고 소희는 도도희의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들며 말했다.“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얘기해요.”도도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모두 다시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어딘가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처음에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양재아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두가 실망과 무거운 마음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아심의 등장으로 다시 새로운 희망이 피어올랐다.마치 끝없는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비쳐 들어온 것처럼. 그 한 줄기 빛 덕분에 모두의 침울했던 마음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도경수의 얼굴에서도 이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은 사라진 듯했다. 도도희는 도경
도도희는 필사적으로 참아왔던 눈물을 더는 막지 못하고 흘러내렸다.“시언아, 재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그 순간, 마치 재희가 사라진 직후로 되돌아간 듯했다.10대였던 강시언이 강성으로 달려왔을 때, 도도희는 목이 터지라 울며 절망 속에서 물었다.“시언아, 재희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시언은 그때처럼 오늘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찾을 수 있어요.”그의 눈빛은 단호했다.“한 번 더 확인해 보면 안 될까요?”도도희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놀라며 되물었다.“뭐라고?”옆에 있던 도경수도 그 말에 희망을 얻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검사 결과가 실수일 수도 있다는 건가? 한 번 더 하면 더 정확한 결과가 나오는 거야?”“아니요.”시언은 고개를 돌려 아심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어둠 속에서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도도희 앞에 세우며 말했다.“이모, 이번엔 아심이랑 친자 확인을 해보죠.”시언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사람이 놀라며 굳어버렸다. 도도희와 아심은 물론이고, 재아조차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재아는 얼굴이 새하얘지며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저, 저와 이모가 어떻게.”아심은 당황하며 손목을 뿌리치려 했지만, 시언은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강아심, 네가 겪었던 일들과 재희가 겪었던 일이 비슷해. 그리고 네 등에 있는 태어나면서 생긴 점도 그렇고.”“많은 사람이 너와 도도희 이모가 닮았다고 한 적 있잖아?”도도희는 놀란 눈빛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등에도 그런 점이 있어?”아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있긴 하지만 문신 때문에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아심은 시언을 돌아보며 덧붙였다.“비슷한 일을 겪은 아이들은 많아요. 그 점도 단순히 우연일 뿐일 수 있어요. 괜히 이모를 또다시 상처받게 하지 마세요.”시언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단호하게 말했다.“검사를 하지 않는 게 진짜 평생 후회로 남을 수도 있어. 검사를 해보고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