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는 원래 장시원과 함께 있었지만, 시원이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 혼자 나비를 따라 달려가며 모습을 감췄다. 요요는 나비를 따라 과수원으로 들어갔다.작은 바구니를 들고 땅에 떨어진 블루베리를 줍던 중,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얘, 꼬마야!” 요요는 뒤를 돌아보았고, 거기에는 예인이 있었다. 예인은 백림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내자 차단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던 순간, 혼자 있는 요요를 발견했다.어제 요요 때문에 성연희에게 당해 망신을 당한 예인은 오늘 화풀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요는 예인을 경계하는 큰 눈을 뜨고 뒤돌아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요요는 아직 세 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고, 몇 발짝 뛰지도 못해 예인에게 금방 따라잡혔다. 예인은 요요의 길을 가로막으며 차갑게 웃었다. “도망갈 줄도 알고, 머리는 꽤 잘 돌아가네. 네 엄마 닮았나 보지? 출신부터 천한데, 부자들을 꼬드기려 하다니, 정말 뻔뻔해!”요요의 작은 얼굴은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우리 엄마 욕하지 마!”“욕하면, 너는 날 어떻게 할 건데?” 예인은 요요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서 요요를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다. 요요는 몇 걸음 물러나더니, 좌우를 살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빠! 아빠!”“소리 지르지 마!” 예인은 요요를 매섭게 노려보며 협박했다. “다시 한번 소리 지르면 널 죽여버릴 거야!”“아빠!” 요요는 예인을 피해 도망치면서도 계속해서 시원을 불렀다.“이 망할 년!” 예인은 요요를 따라잡아 시원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나서 아예 입을 막아버렸다. 그리고는 요요의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안 그러면 널 죽여버릴 거야!”요요는 코와 입이 막힌 채, 커다란 눈으로 공포에 질린 채 예인을 바라보았다. 작은 목이 여자의 손에 의해 조여지면서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예인은 요요의 목을 잡아 몸을 들어 올리며, 잔인한 웃음을 지었다. “
연희는 순간 멍해졌다가 외쳤다. “이런 미친년을 봤나!”연희는 화가 폭발할 것만 같았다. 성큼 다가가서 예인의 얼굴을 한 발로 차며 말했다. “세 살도 안 된 아이를 괴롭히다니, 네가 인간이냐?”예인은 소희에게 맞아 허리가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연희에게 또 맞아서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소희는 요요를 품에 안고 차갑게 말했다. “저 여자는 밖으로 끌어내서 혼내, 요요가 보지 않게.”연희는 돌아서서 요요를 바라보며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변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할게. 청아가 요요를 찾고 있어. 너는 요요를 데리고 가,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요요를 안고 자리를 떠났다. 연희는 정원에 있는 정원사 두 명을 불러 예인을 옆문으로 끌어내 바닥에 던져버렸다. 예인은 옆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몸을 일으키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희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연희는 손을 들어 예인의 뺨을 한 대 때리며 말했다. “아까 그 아이, 장씨 집안의 외동딸이자, 나와 소희의 딸 같은 존재야. 그런 애를 네가 감히 괴롭혔으니,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예인은 잠시 얼어붙었다. 연희는 다시 배를 걷어차 예인을 비틀거리며 바닥에 넘어뜨렸다. 연희는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아, 옆에 자라 있는 장미 덤불을 보고 예인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얼굴을 그대로 장미 덤불에 눌러버렸다. 겨울의 장미는 잎이 떨어져 줄기와 가시만 남아 있었고, 예인의 얼굴은 가시에 찔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질렀다. 연희는 정원사들에게 명령했다. “저 여자 묶어요.”정원사들은 즉시 예인을 붙잡아 나무에 묶었다. 예인은 얼굴에 피가 흐른 채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날 풀어줘, 성연희, 너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거야?” 연희는 냉정하게 예인을 바라보며 한발 물러서서 정원사들에게 말했다. “물 뿌려요.”촤아악! 정원사들은 예인에게 얼음물을 들이부었다. 예인의 얼굴에 있던 피가 얼
청아는 조금 진정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나도 잘못한 것 같아, 요요를 잘 보지 못했어.”소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임씨 집안의 장소라서 다들 방심했지.”누구도 예인이 이 정도로 악랄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소희는 계속 요요를 달래며 말했다. “내가 아까 그네를 만들었는데, 타고 싶어?”요요는 어린아이답게 금세 기분이 풀려 소희를 바라보며 웃었고, 손을 뻗어 안아달라고 했다. “시원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야겠어. 요요를 찾고 있거든.”“그래.” 소희는 요요를 안고 그네를 타러 갔다....청아는 시원에게 요요가 예인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원은 요요를 찾았을 때 그녀의 목에 난 손자국을 보고 곧바로 얼굴이 굳어졌다. “요요의 목이 왜 이래?”소희는 예인의 일을 설명했다. 그 설명에 시원은 화가 치밀어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요요를 청아에게 맡기고 곧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시원 오빠!” 청아가 시원을 불렀다.“시원 오빠!” 연희도 다가와 그가 상황을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말했다. “내가 이미 주예인을 혼내줬어, 오빠가 가봐야 몇 대 때리는 정도겠죠. 근데 그건 내가 이미 했어!”시원의 가슴 속 분노는 끓어올랐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성인 여자가 왜 요요를 괴롭혀?”이에 청아는 말했다. “아마도 날 싫어해서 요요에게 화풀이한 거겠지.”연희도 냉소하며 말했다. “아마도 조백림에게 차였어서 그랬을 거야. 그래서 요요에게 화풀이한 거겠지.”“내 딸에게 화풀이했다고?” 시원의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좋아, 주예인이 이걸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니면 주씨 집안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지 보자고!”시원은 전화를 꺼내 예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곧바로 연결되었고, 주홍건의 기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시원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그러나 시원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새해 인사는 필요 없고, 지금 당장 운성으
시원의 마음은 부드러우면서도 아팠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오진수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화가 나서, 시원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했다. “시원 형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형님이 아직 화가 안 풀리셨다면, 제가 대신 맞겠습니다.”“네 탓이 아니야!” 시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누가 저지른 일인지, 그 사람이 스스로 책임져야 해!”구택의 얼굴도 어두워졌고, 곧 담당자를 불러 지시했다. “방금 일이 있었던 장소의 CCTV 영상을 찾아서 내 휴대폰으로 보내세요.”이에 담당자는 즉시 명령을 따랐다. 구택은 요요의 목을 한 번 더 살펴보며 말했다. “전신 검사를 받아야 할까?”시원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다른 데는 다친 곳이 없어.”구택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그래도 저택에 있는 의사를 불러 요요의 상태를 확인하고 멍과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을 처방받았다.구택은 시원의 분노를 깊이 공감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딸에게 손을 댄다면, 그 사람의 가문을 전부 없애버릴 생각까지 할 것이었다. ...주홍건이 강성에서 운성까지 오려면 몇 시간이 걸렸다. 시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위기를 망치지 말고, 평소처럼 즐기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원은 요요를 계속 안고 다녔고,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모든 사람들이 요요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요요도 시원의 품에서 조금씩 미소를 되찾기 시작했다.사람들이 거의 다 과일을 수확한 후, 정원에 긴 테이블을 놓고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식사는 모두 자신들이 수확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과일은 그대로 테이블에 올려졌고, 채소는 주방에서 요리로 변신했다. 자신이 직접 딴 재료라 그런지, 맛도 더 좋았다.요요도 조금씩 사건을 잊고 다시 사람들의 웃음꽃이 되었다. 사람들은 바베큐를 만들고, 과일 샐러드를 준비하며 최대한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구택은 후식 담당 셰프까지 불러 테이블에 디저트
그 말에 주홍건은 충격에 빠졌다. “미친 거 아니야?”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예인이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주홍건은 말하면서 자신에게 뺨을 때렸으나, 시원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당신 딸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커도 되고, 내 딸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까?”“아니요, 아니요! 예인이 통제가 안 돼서 해외로 보냈었는데, 돌아와서도 여전히 이러네요!” 주홍건은 완전히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원은 얼굴을 굳히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주홍건은 급히 핸드폰을 꺼내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인을 찾았나?”운전기사는 급하게 대답했다. [네, 찾았습니다. 그런데 나무에 묶여서 얼어붙을 정도로 쓰러졌습니다. 하지만 저택 직원들이 아가씨를 데리고 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그 말에 주홍건은 냉정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걔의 다리를 부러뜨려!”[네?] 운전기사는 놀라며 물었다. [사장님, 뭐라고 하셨죠?]“내가 예인의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했어!” 주홍건은 시원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후, 이를 악물고 명령했다. “양쪽 다리를 다 부러뜨려! 그리고 깨어나면 기어서 가서 장시원 사장님의 딸에게 사과하게 해!”[알겠습니다.] 운전기사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홍건은 전화를 끊고 시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후에 예인을 데리고 와서 사장님의 따님께 무릎을 꿇고 사죄하게 하겠습니다. 언제쯤 화가 풀리실지 말씀만 해주십시오.”그 말에 시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또 한 번 내 딸에게 상처를 주겠다는 건가요?”이에 주홍건은 급히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사장님, 어떻게 처벌하면 좋을지 말씀해 주십시오.”그는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시원의 앞에서 몸을 약간 구부렸다.“예인이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죽여도 마땅합니다. 제발 사장님과 어르신께
진수는 고개를 숙이고, 자책과 죄책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문이 다시 열리고, 시원은 들어오는 사람을 힐끗 보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면서 말했다. 청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아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주예인도 이미 혼냈으니, 너무 화내지 마. 요요는 괜찮아졌어. 곧 이 일을 잊을 거야.”“청아, 우리 결혼하자.” 시원이 갑자기 말하자 청아는 놀라며 몸을 일으키고는, 시원의 깊고 어두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 후, 말했다. “우리 결혼한다고 해서 나의 평범한 출신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그러자 시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결혼하면, 아무도 감히 널 비웃지 못할 거야.”“비웃음은 여전히 존재할 거야. 다만 그들이 내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 몰래 비웃겠지.” 청아는 차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요요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 나도 자책하고 후회했어. 하지만 소희가 곧 나를 깨우쳐 줬는데 오빠는 어때? 이 상황이 신경 쓰여?”시원은 무겁게 말했다. “네가 알다시피, 내가 신경 쓰는 건 그런 게 아니야.”청아는 마음이 부드러워지며 그를 꼭 껴안았다. “이건 그저 우연한 사고였어. 평소에 우리,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잖아?”시원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면 먼저 약혼하자. 최소한 사람들이 네가 내 사람이라는 걸 알게 하고, 내가 반드시 너와 결혼할 거라는 걸 알게 하자.”“그럼 더 이상 아무도 널 무시하지 못할 거야. 요요도 마찬가지야.”요요를 언급하자 청아의 마음이 움직였다.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우리 먼저 약혼하자.”“설이 지나면, 바로 준비할게. 네가 원한다면 계속 일을 해도 돼. 너에게 방해되지 않게 할 테니까.” 시원은 청아의 동의를 얻자 조금 안심하며 말했다. “청아, 나랑 함께 있는 게 정말 그렇게 부담스러워?”청아는 그의 가슴에 기대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담보다는 더 큰 자신감이야.” 이 몇 년 동안
주홍건이 과수원 쪽에서 예인을 발견했을 때, 이미 통증으로 다시 기절해 있었다. 나무에 묶여 있던 예인의 다리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고, 무릎에서 흘러내린 피는 바닥까지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주홍건은 마음이 아팠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냉정하게 자기 사람들에게 말했다. “차에 실어 강성으로 바로 돌아가자.”운전기사는 즉시 명령을 받아 예인을 나무에서 풀어내어 안고 밖으로 나갔다. 주홍건은 임구택 앞에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사람들과 함께 비밀 통로로 저택을 빠져나갔다.... 이미 저녁이 되어, 부드러운 석양이 내려앉고, 날씨는 따뜻했다. 소희와 성연희,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요요를 데리고 잔디밭에서 공놀이하고 있었다. 요요는 뛰어다니며 은방울 같은 웃음을 흩뿌렸고, 그 웃음소리는 공기 속에서 퍼지며 바람마저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구택과 시원은 긴 의자에 앉아 그녀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감시 카메라 영상을 봤을 때, 죽여버리고 싶었어.”시원의 말에 구택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해해. 내가 봤을 때도 네가 그렇게 반응할 걸 알고 있었어.”시원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어 깊고도 긴 눈길을 보냈다. “난 정말 요요를 너무 사랑해. 청아와 요요는 내 인생의 전부야. 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난 아마도 살아갈 수 없을 거야.”다행히 요요는 어렸을 때부터 사랑받으며 자라, 활발하고 밝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 사건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부모님과 함께, 소희와 연희가 곁에서 도와준 덕분에 금세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구택은 소희의 모습을 따라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충분히 이해해.”시원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도 딸을 하나 낳아서 요요와 함께 놀게 해줘.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 소식도 없네. 혹시 네가 안 되는 건 아니야?”구택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시원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나중에 두 명을 한꺼번에 낳을 수도 있어!”발끈하는
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고마워!” “소희도 알고 있었어?” 연희의 질문에 아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었어.” 연희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이를 갈며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은 것도 기가 막히지만, 소희가 나한테 말 안 한 건 더 어이가 없네!” 그러고 나서 연희는 화가 나서 소희를 찾으러 갔다. “소희야, 그만 놀고, 나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아심은 그 자리에 서서 멀리서 구택과 몇몇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언을 보며, 석양을 배경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강성, 설 연휴 둘째 날 오후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임유진은 2층의 발코니에 서서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고, 옆에 임유민은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유진은 마당 밖에서 차들이 하나씩 떠나고 또 하나씩 오는 것을 보며 두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설은 정말 재미없네. 사람만 많아졌지, 아무런 설 분위기도 없잖아!” 유민은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는 감사해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 손님들을 대하느라 더 힘드니까.” 그 말에 유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서 소희가 제일 낫다는 거야. 조용히 도망가서 혼자 평화롭게 지내고 있잖아. 단톡방에 올린 사진 봤어? 저택에서 정말 재밌게 놀고 있더라!” 유민이 물었다. “그럼 넌 왜 안 갔어?”유진은 입술을 내밀며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유진도 가고 싶었다. 어제 조백림이 단톡방에 사진을 올리자, 유진도 함께 운성으로 놀러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서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유진도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오늘 오전에 유진은 샤부샤부 가게에 갔는데, 그곳에는 이문과 오현빈만 있었고, 서인은 집에 돌아갔다고 했다. 그가 가게에 없어서, 유진도 오래 머무르지 않고 현빈에게 선물을 전하고, 야옹이를 먹인 후 바로 돌아왔다.그 후로 서인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직 답장이 없었기에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