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에는 작은 강이 있었고, 소희와 임구택은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구택은 나뭇가지를 들고, 외투를 벗고, 셔츠 소매를 걷어붙이며 기세 좋게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소희는 이미 네다섯 마리를 잡았고,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며 물었다. “이제 생선구이 해서 먹을래?”강아심은 강시언의 손을 놓고 두 걸음 빠르게 걸어가며 놀라워했다. “강에 물고기가 있어?”“있어, 아주 통통해요!” 소희는 작은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를 아심에게 보여주자 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준비도 안 했는데, 어떻게 구워요?”“오빠가 라이터 가지고 있잖아요. 장작만 있으면 돼요!” 소희는 얼굴에 물이 튀어 눈처럼 하얀 피부가 반짝였고,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구택은 나뭇가지를 던지고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내가 장작을 구해올게.”구택은 큰 걸음으로 산비탈을 향해 걸어갔다.“나도 같이 갈게.”시언은 구택을 따라가며, 맑은 눈빛으로 말했다. “정말로 소희를 이렇게까지 봐주네!”그러자 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희가 기쁘면 나도 기쁘니까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나도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거죠.”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동의하는 듯 말했다. 구택은 산길을 안정적으로 밟으며 걸었고, 천천히 말했다. “형도 마찬가지죠.”시언은 걸음을 멈추고 강가를 바라보았다. 소희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빛이 깊어졌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택은 장작을 구하러 갔고, 소희는 강가에서 물고기를 손질했다. 소희는 날카로운 돌을 찾아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내는 등 능숙하게 작업을 했다. 아심은 넉넉한 니트 가디건을 벗고, 강가에 반쯤 쪼그리고 앉아 물고기를 잡아 손질했다. 아심의 동작은 소희만큼 빠르지 않았지만, 침착하고 차분하게 처리하며, 부드러움과 연약함이 전혀 없어 아심의 얼굴과 기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평소에 이런 일을 하지 않을 줄
“할 줄 알아?” 시언이 아심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연하죠!” 아심은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불타는 화로에 던졌다. 시언을 돌아보는 그 순간 불빛에 비친 아심의 얼굴이 반짝이며 매혹적으로 보였다. 이내 시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하네, 장작 넣는 것도 잘하네.”아심은 자신을 놀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살짝 눈을 흘기며 손을 불 위로 가져갔다. 뜨거운 열기가 몸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손도 점차 온기를 되찾았다. 소희와 구택은 맞은편에 앉아 네 사람이 함께 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운 겨울날의 즐거움이었다.물고기가 천천히 익어가며, 물고기 향이 연기와 함께 퍼지자 구택은 하나를 꺼내어 손으로 뜯어 소희에게 건네주었다. 시언도 뒤처질 수 없어, 물고기를 손질해 깨끗한 나뭇잎에 담아 아심에게 건넸다. 아심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받으며 미소 지었다.“고마워요!”시언은 아심을 힐끗 바라보고는 계속해서 물고기를 손질했다. 구운 물고기에는 아무런 양념이 없었지만, 물고기 자체의 신선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심은 하얀 손가락으로 물고기 살을 뜯어 시언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생각보다 맛있어요, 먹어볼래요?”시언은 무심코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화로 너머로 소희와 임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느라 아무도 이쪽 대화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시언은 입을 벌려 물고기 살을 받아먹으며, 아심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었는데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아심은 웃으며 손을 뻬고는, 계속해서 물고기를 먹었다. 몇 마리의 물고기가 금세 사라졌고, 비록 아무런 맛이 없었지만, 모두가 더 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물고기를 다 먹은 후, 네 사람은 화로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 산은 매우 고요했고, 매미 소리나 벌레 소리는 없었다. 바람 소리와 산새 소리만이 산속의 고요함을 더욱 강조했다.시언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아심은 턱을 괴고 화로의 불꽃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가 타며 내는 탁탁! 소리가 들렸고, 아심의 귀에는 시언의 부드럽
시언은 침착하게 말했다. “아니, 네 의견을 묻는 거야.”“당신이 나를 여기에서 새해를 보내게 하려고 하지 않았나요? 내가 다시 나돌아다니지 않게.”시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조금 거리를 두며 말했다. “강아심, 비록 모두가 말하지 않았지만, 네가 내 할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을 거야.”“전에 할아버지에게 설명했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어. 나는 너에게 부담이 될까 봐 걱정돼.”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난 아무런 부담도 없어요.”시언은 잠시 침묵하다가 어둡게 말했다. “아심아, 너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백협의 진언이야. 새해가 지나면, 최대한 설 연휴까지는 여기 있어야 해.”아심은 시언을 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아심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곧 고개를 들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나도 여기서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떠날 거예요.”“근데 며칠 더 머무는 건 안 돼요? 내일은 설인데, 당신은 날 어디로 쫓아내려고요?”시언은 아심의 미소가 짙고 촉촉한 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심은 두 걸음 다가가서, 시언을 부드럽게 안으며 품에 기대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가 함께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가 행복하잖아요. 아닌가요?”“내가 당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닌데,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 그러니 쫓아내지 말아요!”시언은 아심을 꼭 안으며 말했다. “쫓아내는 게 아니야. 그냥 네 의견을 묻는 거야. 항상 나에게 순종하는 습관을 가지지 마.”“너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니 나에게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아심은 입술을 깨물었고, 긴 속눈썹이 빛을 반사하며 말했다. “난 여전히 어린애고 영원히 그럴 거예요.”아심은 웃으며 말했다. “반항하는 것도 못 하잖아요. 내가 싫다고 하면, 당신은 날 때릴 거잖아요?”“내가 너를 때린 적이 있어?” 시언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있어요.
“뭐라고?” 윤미래는 놀라서 화를 냈다. “걔가 바람을 피웠다고?”“사실은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여자를 저보다 더 신경 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강솔은 울먹이며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심서진 사건 이후로 예형이 한 번도 강솔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예형은 몇 번의 메시지를 보내며 그날 서진이 스토킹을 당해 도와줬다고 설명했을 뿐이었다.예형이 정말 강솔을 신경 쓴다면, 메시지에 답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찾아왔을 것인데도 오지 않았다. 강솔은 더 이상 기다리기 싫어 경성으로 돌아왔지만, 그조차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철저히 절망했다.“연애하면서도 이렇게 힘든데 결혼하면 더 힘들지 않겠니? 내가 보기엔 그 사람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그렇지 않다면 여러 번 부모님을 만나겠다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을 거야.”윤미래는 강솔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만 털고 일어나. 연애하면서 죽을 것 같이 힘들어하지 말고. 나까지 창피하니까. 얼른 일어나서 나랑 같이 나가자.”“어디 가는데요?”“진석의 엄마가 내가 만든 고기반찬 먹고 싶다고 해서 방금 만들었어. 같이 가져다주자.” 윤미래는 강솔의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힘내고 일어나서 세수하고 옷 갈아입어. 아래층에서 기다릴게.”두 집은 가까웠고, 허수희는 항상 강솔을 친딸처럼 대해 주었다. 강솔은 돌아온 후 한 번도 진씨 집안에 가지 않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반대하지 않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반 시간 후, 모녀는 함께 외출했다. 윤미래는 어두운색의 코트를 입고, 패셔너블하면서도 단정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강솔은 화장도 하지 않고 무릎까지 오는 롱패딩에 스노우 부츠를 신었다. 또한 짧은 머리는 대충 귀 뒤로 넘기고 털방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어서 무기력해 보였다.그 모습에 윤미래는 살짝 화가 났는데 애써 웃으며 말했다. “적어도 외출하는데 조금 꾸밀 수는 없니?”강솔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왜 꾸며요? 다른 사람 집에 가는 것도
강솔은 롱패딩을 벗고, 안에 입은 연한 파란색 셔츠를 드러내며 무기력하게 말했다. “아마 환경에 적응을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윤미래는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말을 한다니 맞아야 해! 집에 돌아와서 환경에 적응을 못하겠다고? 너를 대서양으로 보내서 찬바람을 맞게 해야겠구나!”강솔은 바로 허수희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보세요, 매일 저한테 이렇게 엄하게 대하시니 제가 건강해질 리가 없잖아요?”윤미래는 고개를 돌려 무시했고 허수희는 웃으며 강솔을 안았다. “우리 집에서 지내면 되지. 네 엄마 눈치 볼 필요 없어.”“누가 우리 집에서 지내겠다고?” 갑자기 계단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솔이 고개를 들자 진석이 흰 셔츠를 입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진석의 안경 너머의 눈이 살짝 놀란 듯했다.진석은 강솔이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그 순간 강솔의 의존적이고 애교 부리는 표정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강솔은 바로 일어나서 놀라며 물었다. “언제 돌아왔어?”진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먼저 윤미래에게 인사했다. “이모!”“진석아!” 윤미래는 진석을 자애롭게 바라보았고 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모가 이 반찬 만드셨군요? 내려오자마자 냄새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엄마가 며칠 동안 기다렸어요.”“응, 내가 계속 재채기를 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었어.”그러자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강솔은 여전히 허수희의 어깨에 기대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이모, 저와 이모가 사이가 좋고, 진석이는 우리 엄마와 사이가 좋으니, 우리 둘이 바뀐 것 아닐까요?”허수희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의심해. 차라리 지금 바꿀까?”진석은 강솔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바꿀 필요 없어. 우리 엄마를 좋아하면 언제든지 우리 집에 와서 살아도 돼.”“어서 데려가. 나도 편하게. 매일 게으른 모습을 보면 머리가 아파.”진석은 강솔의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진석은 강솔이 누구 때
“어떻게 생각해?” “주예형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지만, 그 여자, 심서진은 분명히 고의로 접근한 거야!” 강솔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나 예형은 그 여자의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거리를 두지 않고 서진이 가까이 다가오게 놔두었다. 이 점이 강솔을 더 힘들게 했다. 예형이 정말로 강솔을 신경 썼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진석은 차분한 얼굴로 강솔을 한 번 힐끗 보고는 말했다. “지금 네 머리는 혼란스러워. 집에 있는 동안 그 사람 생각하지 말고, 마음을 좀 편하게 가져.”“냉정해진 다음, 둘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봐. 앞으로 계속 함께 할 수 있을지.”강솔은 진석에게 물었다. “내가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진석은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널 바보처럼 보게 만들어!”강솔은 말문이 막혔다. 연휴가 되면 외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경성의 도로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한적했다. 진석은 강솔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갔다.“내려. 내가 표를 살 테니, 너는 입구에서 기다려.” 진석의 말에 강솔은 멍하니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일 보러 간다면서, 왜 놀이공원에 왔어?”“일 다 봤으니까, 이제 놀러 가자.”진석은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고 강솔은 어리둥절했다. ‘일이 다 끝났다고? 언제 일을 본 거지?’강솔은 입구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진석이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함께 입장했다. 진석은 지도를 들고 물었다. “뭐 탈래? 아니면 다 한 번씩 타볼까?”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너 참 한가하구나?”진석은 강솔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아주 한가해. 한가해서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야.”강솔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알겠어. 나도 같이 놀아줄게. 의리 있지?”진석은 강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가자. 먼저 회전목마 타자.”이 놀이기구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었다. 강솔은
“더 탈래?” 진석이 웃으며 물었다.“탈래!” 강솔은 얼굴이 창백했지만, 눈에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마치 처음 주예형을 쫓아다닐 때의 그 용맹함처럼. “가장 스릴 있는 걸로 탈래!”진석은 강솔을 데리고 자이드롭이 있는 데로 갔다. 자이드롭에서 내린 후, 강솔은 진석의 어깨를 붙잡고, 한동안 다리가 떨렸다. 그 모습에 진석이 차분하게 말했다.“어떤 순간에는 죽음이 가까이 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래서 생명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강솔은 놀라서 진석을 바라보았는데 진석의 눈은 깊고 어두웠다. “어떤 사람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서 멀어져. 아무도 너의 소중한 시간을 아픔과 슬픔에 쓰게 할 자격이 없어.”“생명은 본래 짧고 연약하니까, 가치 없는 사람에게 낭비하지 마.”강솔은 마음 깊이 감동하여,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 말이 맞아!”“이제 깨달았어?” 진석의 물음에 강솔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알았어!”그제야 진석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내 품에서 내려올 수 있어? 물론, 사람들이 보는 게 부끄럽지 않다면 계속 안고 있어도 돼.”강솔은 웃으며 진석의 품에서 내려와 진석의 손목을 잡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이제 뭐 탈까?”진석이 함께 있다면, 어떻게 소리치고 창피를 당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창피는 둘이서 함께 당하는 거니까! 그 후, 둘은 거의 놀이공원의 모든 놀이기구를 탔다.진석이 말한 대로, 강솔은 모든 것을 잊고 무심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즐겁게 놀았다. 어린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도 강솔을 진석을 끌고 함께 탔다. 비록 못마땅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어쨌거든 강솔을 따랐다.놀이공원을 나왔을 때는 이미 오후였고 강솔은 여전히 신이 나서 말했다. “집에 가기 싫어. 우리 계속 놀자!”진석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무심하게 말했다.“영화 보러 가자.”“좋아. 지금 뭐가 상영 중인지
[강솔, 네가 경성으로 돌아간 걸 알아. 하지만 나는 강성을 떠나지 않았어.][넌 한때 나를 위해 M 국까지 쫓아왔으니, 이제는 내가 강성에서 너를 기다릴게.][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기다릴 거야.]강솔은 마음이 아팠지만,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핸드폰을 넣고 표를 확인한 후 영화관에 들어갔다.설 전에 개봉한 코미디 영화는 전체 관객들을 웃게 했다. 강솔도 함께 웃으며, 이 기간에 쌓인 고통과 억압을 모두 발산하는 듯,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이에 진석은 티슈를 건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울어도 돼. 어차피 아무도 못 보니까.”강솔은 고개를 돌려 눈에 눈물을 머금고도 고개를 저었다. “울지 않아. 가치 없는 사람을 위해 울지 않아.”진석은 미소를 짓고 계속 영화를 보았다. 두 시간의 영화가 끝나고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밖의 차들과 불빛이 번쩍이는 야경을 보며 진석은 물었다. “집에 가서 먹을래, 아니면 밖에서 먹을래?”강솔은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밖에서 먹자. 네가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녀 줬으니, 내가 살게!”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먹을까?”강솔은 털 방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사는 거니까, 네가 결정해!”“날씨가 추우니 샤부샤부 먹자.”강솔은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역시 나를 배려해 주는구나!”샤부샤부는 진석보다 강솔이 더 좋아했다.“가자!” 진석은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둘은 소문은 없지만 맛이 뛰어난 전통 샤부샤부 집을 선택했다.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는 샤부샤부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진석은 강솔의 입맛을 잘 알았기에 강솔이 좋아하는 소스를 준비했다. 강솔은 턱을 괴고 남자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진석아, 만약 우리가 서로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를 이렇게 잘 알고 매일매일이 이렇게 행복할 텐데.”진석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를 좋아하려고 노력해 봐.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
이날, 임유진은 티타임에 진소혜와 마주쳤다. 소혜는 입술을 다물고 웃으며 말했다.“팀장님, 구씨그룹의 총애를 받으니 우리 부서 실적도 쭉쭉 오르겠죠? 부서 직원들 대신 감사드려요, 팀장님.”유진은 커피를 받아 들고 나가려다, 소혜의 옆을 지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 소혜 씨가 한 거라는 거 알아요. 이미 누가 나한테 말해줬거든요. 그래서 소혜 씨 그냥 두지 않을 거예요.”소혜의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고, 고개를 돌려봤을 땐, 유진은 이미 자리를 떠나 있었다.오후 회의에서 유진은 이렇게 발표했다.“이번 평가 기간 동안 곽시양 씨가 업무에 성실히 임했고, 탁월한 성과를 보여주었어요. 따라서 정현준 씨의 직책을 승계하여 부서 부팀장으로 승진해요.”“인사팀에서 곧 공식 공지드릴 예정이에요.”유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엔 놀라움이 번졌고, 시양 본인조차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부서 내에서도 존재감이 적었고, 입사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으며, 능력이나 실적 모두 소혜에 비해 부족했기에, 시양이 발탁된 건 모두에게 의외였다.소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팀장님, 부팀장 선발 기준이 뭔가요? 기준을 명확히 해주시죠.”유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소혜를 응시하며 말했다.“기준? 내 마음대로 정하는 게 기준이라면 기준이겠죠”소혜는 눈을 크게 떴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멍하니 있는 시양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시양 씨, 제 사무실로 잠깐 와요.”“네?”시양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소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유진을 따라갔다.유진이 회의실을 나서자, 안에서는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최근 있었던 일로 인해 유진은 여전히 비난의 대상이었고, 그런 유진이 능력도 부족한 신입을 뛰어넘어 부팀장으로 발탁했다는 점에서 불만과 의문은 더 커졌다.현준도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이 인사 결정은 사전 상의 없이 유진이 발표한 것이었고, 그 역시 놀라고 있었기 때문이다.소혜는 맞은편에 앉은 베
유진은 구은정의 표정을 보고, 가슴 어딘가가 서늘해졌다. 그는 평소와는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고, 유진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어제 술 마셨다던데, 괜찮아요?”은정은 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안 좋아 보이던데, 이제 술은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유진이 조용히 은정에게 당부했다.“응.”그 말에 은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시간 됐어요. 나 출근해야 해요.”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고,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유진은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조금 전 은정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순간 망설임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고, 급히 뛰쳐나왔다.그러나 복도엔 이미 그의 모습이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이없었다.‘내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 지금은 내 문제부터 정리해야 해. 괜히 그 사람한테 짐이 되어선 안 돼.’그날 오후, 은정은 늦게서야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법무팀에 최이석 관련 고소를 철회하라고 지시했다.마심호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다.“그 사람 같은 놈은 봐줄 이유가 없죠. 이번 기회에 서성 라인 애들도 좀 눌러놓는 게 나아요.”그러나 은정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저도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요.”그날 저녁, 은정은 늘 그랬듯 이경 아파트로 돌아왔다. 조용히 복도를 지나, 곧장 유진의 집 앞으로 갔다.문 비밀번호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은정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예전 그대로였고, 유진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그런데도 방 안은 왠지 썰렁했는데,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져 있었다. 은정은 그녀가 드라마를 자주 보던 소파에 앉았다. 그 자리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드리울 때까지 그렇게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책상 위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녹음 안 했어요.”서선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은정아, 이 일은 내가 밖에 알리지 않을게. 대신 조건이 있어. 최이석 일, 바로 고소 취하하고 다시는 들추지 마.”“그리고 스스로 구씨그룹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회사도, 강성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네 아버지에겐 그냥 말하면 돼. 죄책감 때문에 이 집에 더는 못 있겠다고. 이번엔 분명히 놔줄 거야.”“네가 떠날 땐, 내가 사람을 시켜서 돈도 챙겨줄게. 아버지한텐 그걸로도 충분히 체면 세워준 셈이 될 거야.”은정은 서선영을 냉랭하게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당신 딸을 희생해서까지 날 함정에 빠뜨린 이유가 최이석 때문이었네요.”서선영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곧바로 해명했다.“그 사람은 내 동생 밑에서 오래 일했어. 난 내 동생을 위해서 한 거야. 은정아, 지금 네가 분위기 바꿔서 빠져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마.”“내가 당신 말대로 안 하면요?”은정은 담배를 내뿜으며 한껏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어차피 난 이미 악명 높은 놈이 됐어. 하나쯤 더 얹혀도 그만이죠. 오히려 구은서는 이제 절대 부잣집 자제와의 결혼은 꿈도 못 꾸겠죠.”서선영의 얼굴은 날카롭고 차가웠다.“끝장을 보겠다는 거야? 그렇게 되면 은서는 동정받는 쪽이 될 거야.”서선영은 은정을 똑바로 노려봤다.“임유진하고 너, 꽤 가까운 사이잖아. 그 애는 나랑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맞붙었지. 근데 만약 그 애가 네가 술에 취해 여동생을 건드린 놈이라는 걸 알게 되면?”“그 아이 눈엔 네가 어떻게 보일까? 널 어떻게 생각할까? 넌 그걸 감당할 수 있어?”그 말에 은정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서선영은 그 반응에 확신을 얻은 듯 미소를 지었다.“내 말대로 해. 열흘 안에 강성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안 그러면 임유진이든, 임씨 집안이든, 강성 전체가 너란 인간이 얼마나 추잡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널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거고, 임유진도 널 경멸하
은정은 격노한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했다.“저는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이건 서선영 저 사람이 꾸민 함정이에요.”서선영은 엉엉 울면서 외쳤다.“내가 내 딸을 희생시켜서 너한테 함정을 판다고? 구은정, 네가 나를 미워하는 건 알아.”“예전부터 나한테 편견이 있었지. 그래, 미우면 나한테 손찌검을 해. 왜 애먼 은서를 괴롭혀?!”“은서는 아직 시집도 안 갔어. 이제 어떻게 살라고 해? 이 소문이 밖에 나가면, 우리 집안은 완전히 끝장이야!”은정은 오직 구은태만 바라보며 물었다.“저를 믿으세요?”구은태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른 기억 하나가 떠오르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그때 갑자기 은서가 벽을 향해 몸을 던지듯 달려갔다. 죽을 각오로 내달리는 눈빛이었다.“은서야! 안 돼, 은서야!”서선영이 급히 은서를 껴안고 붙잡았고, 울음이 멎지 않았다.“은서야, 제발 그런 짓 하지 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거기 누구 없어요! 얘 좀 붙잡아줘요!”서선영은 울먹이며 도우미들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의 도우미가 급히 달려와 은서를 붙들고 감싸 안았다.그중 평소 은서를 따르던 도우미가 조심스럽게 구은태 앞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회장님, 사실은 전에도 도련님께서 밤에 아가씨 방문을 두드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하지만 도련님이 너무 무서워서, 보복당할까 봐 말씀 못 드렸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 도우미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제가 좀 더 일찍 말씀드렸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은정은 도우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애옹이가 은서에게 보내졌던 그날 밤, 은정은 술에 취해 돌아와 애옹이가 사라진 걸 알고 은서를 찾아갔다. 그때 이 도우미가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은태는 거기까지는 떠올리지 못했다.죽을힘을 다해 몸을 던지려던 은서, 그리고 도우미의 일방적인 증언이 더해지자, 구은태는 은정을 더 이상 믿지 않았다.다시 근처에 있던 물
[말 좀 해봐요.][삼촌?]서선영이 천천히 2층에서 걸어 내려오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 장말숙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눈짓을 보냈다. 이에 장말숙 아주머니는 눈치를 채고 전화를 받아 들고 말했다.“유진 씨죠? 저희 도련님이 술에 취하셨어요.”유진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네, 신세 좀 질게요. 잘 부탁드려요.]“네!”장말숙 아주머니는 괜히 말을 더했다가 실수라도 할까 봐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은정의 까만 눈동자가 서선영을 향해 있었지만, 그 시선은 이미 흐릿했다.서선영은 은정을 부축하듯 손을 내밀며,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은정아, 술 너무 많이 마셨잖아. 방으로 데려다줄게.”“으악!”날카로운 비명에 은정은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을 떴고, 날은 훤하게 밝아 있었다.옆에서는 구은서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옷가지로 몸을 허둥지둥 가리고 있었고, 얼굴은 절망감에 젖은 눈물로 가득했다. 그녀는 분노로 떨리는 눈으로 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구서의 비명은 곧 서선영과 집 안 도우미들을 방으로 불러 모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 풍경을 본 순간, 모두가 굳어버렸다.은정은 조금씩 의식을 되찾았고, 은서를 훑어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이불을 들추고 자신을 확인해 보니, 바지는 제대로 입고 있었지만 상의는 전혀 없었다.은정은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 이마를 짚으며 침대 머리에 기대앉았다. 머리가 묵직하게 지끈거렸다.“엄마!”은서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울부짖었다.“은서야!”서선영이 달려와 은서를 안고, 옷을 덮어주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몰라요!”구은서는 서선영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밤에 오빠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어요. 술에 취해서 저를 한 대 치더니 그다음은...”은서의 머리는 흐트러져 있었고, 드러난 어깨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짐승 같은 놈!”서선영은 벼락을 맞은 듯 충격에 빠져 온몸을 떨며 은정을 향해 소리
우정숙은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예전에 은정은 분명히 임유진은 내 스타일 아니라며 선을 그은 적이 있는데, 왜 지금 와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쫓고 있는 걸까?“넌 어떻게 생각해?”우정숙이 묻자, 유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조금 냉정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돌아왔어요.”그 말투가 생각보다 무거워, 우정숙은 분위기를 일부러 누그러뜨리며 웃었다.“이미 거절했는데도 냉정해져야 해?”유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어쨌든, 엄마는 이 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줘요. 그리고 삼촌한테도 되도록 비밀로 해주세요.”그 말에 우정숙은 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갑자기 이렇게 서둘러 집에 돌아온 이유 혹시 일이 더 커질까 봐? 너희 할아버지가 구은정한테 가서 따질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 아니야?”유진은 재빨리 대답했다.“누가 그 사람 걱정했대요? 밖에서 사는 게 질려서 온 거지, 그 사람이랑은 아무 상관 없어요.”하지만 우정숙의 따뜻하고 조용한 눈빛은 유진의 진심을 꿰뚫고 있었다. 우정숙은 다만 조용히 숨을 내쉬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날 밤, 구은정은 외부 일정으로 접대를 나갔고, 유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오늘 좀 늦을 것 같아. 집에 들어가면 애옹이 좀 봐줘.]유진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저도 집에 왔어요. 아주머님께 부탁하세요.]은정은 유진이 하루 정도 집에서 자려는 줄로만 알고, 별 의심 없이 답했다.[알겠어.]밤 10시.은정은 아직 접대 자리에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구은태가 보낸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다.[은정아, 나 몸이 좀 안 좋다. 한번 집에 들러줄래?]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몸 안 좋으면 병원 가시죠.]그렇게 답장을 보냈지만, 더 이상의 응답은 없었다.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이미 자정 무렵이었다. 은정은 그래도 아버지를 확인하고자 구씨 저택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 애옹이를 돌봐주던 장말숙 아주머니가 거실에서 그
정현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지난번에 뭐라고 했죠? 임유진 건드리지 말랬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진소혜는 웃었다.“들었어요. 적이 내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없애버리라는 그 말, 정말 감명 깊었거든요. 곧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쫓겨날 거예요.”현준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임유진은 쫓겨나지 않아요. 사장님이 반드시 지킬 거니까요.”현준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덧붙였다.“유진 씨, 그 정체가 간단하지 않아요. 사장님이 곤란한 일에 휘말릴 때마다 뒤에서 도와준 사람이 바로 그 애였다고요.”“이렇게 성급하게 나가면 결국 당하는 건 소헤 씨라고요.”소혜는 비웃으며 말했다.“그런 것도 그 얼굴 덕 아니었을까요? 임유진이 무슨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돼요?”현준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 애, 성이 임이야.”소혜는 비웃었다.“강성에 임 씨 많은데요? 임씨라고 다 임씨 집안이예요?”“임유진이 정말 그 임씨 집안 사람이었으면, 이런 작은 곳에서 평사원으로 일할 일이 없죠.”강성에서도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집안, 그 임씨 집안 사람이라면 당연히 격이 달랐을 것이다.현준은 소혜를 바라보며, 무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소혜 씨, 소혜 씨는 너무 자만해요.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이잖아요. 세상이 어떤지 아직 몰라요.”“내가 경력은 부족하지만, 머리는 좋아요.”소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가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넣을 수 있어요.”현준은 더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막막했고, 소혜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번 달 말이면, 임유진은 이 회사에서 존재 자체가 사라질 거예요.”이메일은 해외 IP에서 발송된 것으로 확인되어, 추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벌써 영업팀까지 퍼진 상황이었다.한때 유진이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걸 보고 감탄했던 동료들조차, 그녀가 정말 실력만으로 이룬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너무 젊은 나이에, 임씨 그룹 같은 대형 고객을 설득하고, 이미 다른 부서에서 거의 성
서선영은 유혹적인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거절하려는 듯하면서도 몸은 피하지 않았다.“안 돼. 나, 한 시간밖에 못 나와 있어.”“당신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니까.”최이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선영의 치마 지퍼를 내렸다.“밖에 사람 세워놨어. 아무도 안 들어와.”...오전, 임유진은 구씨그룹과의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후에는 회사 고위층 회의에 참석했고, 회의가 끝나고 마케팅부로 돌아왔을 때쯤, 팀 동료들의 시선이 평소와 달랐다.유진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모두는 급히 예의를 갖춘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유진은 손에 든 자료를 들고 여진구를 찾아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진구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유진이 들어오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무슨 일 있었어요?”유진이 맑은 목소리로 묻자, 진구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아니야. 너 손에 든 거, 청원안 자료야? 나 좀 볼게.”하지만 유진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휴대폰, 보여줘요.”진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 화면을 다시 켰다. 방금 보고 있던 건, 유진과 은정이 함께 있는 사진들이었다.둘이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 그리고 둘이 함께 아파트 단지에 들어가는 장면. 얼마 전 중식당에서 있었던 그날이었다.진구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누군가 이 사진들을 너희 팀 메일에 전체 전송했어. 내용은, 네가 구씨 프로젝트를 따낸 게 구은정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어서라고.”유진은 이미 그 메일을 확인했었다. 메일에는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구씨 그룹 사장을 유혹했다는 식의 악의적이고 천박한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업계 풍기를 망친다는 말까지, 표현이 거칠고 추했다. 유진은 이를 꽉 물었지만, 곧 침착하게 물었다.“발신 IP 추적할 수 있어요?”진구가 답했다.“지금 IT팀에서 추적 중이야. 내부 직원일 수도 있고, 유지그룹 쪽의 보복일 가능성도 있어. 하지만 반드시 밝혀낼 거야.”“일단 외부로 확산은 안 됐고, 회사 내부 루머 수준이야. 이미 전체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