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림의 차 안에서, 백림은 기사에게 유정을 먼저 집에 데려다주라고 지시했다. 유정은 백림의 얼굴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미소 지으며 물었다.“왜 그래, 아직도 도민혁 일 때문에 화났어?”백림은 자조하며 말했다.“걔를 데려가서 장시원 형을 만나게 하려고 하다니, 정말 창피해!”유정은 말했다.“시원 씨는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야.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우리끼리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 외부 사람을 데려와서 부탁하지 않기로 했는데, 오늘 삼촌 댁에 갔다가 민혁을 만났어.”“그리고, 시원이 형을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근데 삼촌 앞이라 거절할 수 없었어.”“넘버 나인에 도착하고 시원 형에게 진짜 목적을 말했을 때, 이미 화가 나 있었어. 그런데 강아심을 희롱하다니, 정말 역겨워!”“이렇게 된 것도 잘된 일이야. 민혁의 본모습을 알아차리고, 네 사촌 여동생이 빨리 헤어지게 할 수 있으니까.”백림은 냉소하며 말했다.“삼촌네 그 바보가 민혁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줄 알아? 걔도 밖에서 두 명의 젊은 남자랑 놀고 있어. 둘이 똑같애!”유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게 너의 집안 가풍인가 보네.”이에 백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무슨 의미야?”유정은 말했다.“본인의 사촌 동생을 비난하면서도, 너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했잖아.”이에 백림은 냉소하며 말했다.“내가 어쨌다고?”유정은 백림을 바라보며 말했다.“한 명 한 명 상기시켜 줄까? 조수정 그리고 나중의 오유이와 이승아,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잖아.”하지만 백림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연애가 어때서? 맞지 않으면 헤어지면 되지. 연애한다고 꼭 함께 있어야 했나? 모두가 너처럼 한 사람만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성준은 유정의 마음속 상처였기에 유정은 얼굴이 굳어지며 기사에게 말했다.“앞에서 세워주세요, 내릴게요.”그러자 백림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그래, 너는 나를 놀려도 되고 난 그러면 안 돼? 그렇게 소심하게 굴지 마.”유정은 고개를 돌
늦은 밤, 조백림 같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과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은 평소라면 유정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유정은 백림이 바람둥이이지만 절대 여자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이득을 보려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시그니엘 아파트로 가는 차 안에서, 강아심과 강시언은 내내 침묵을 지켰다. 아심은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시언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거의 다 왔을 때, 앞에서 운전하던 기사가 오랜 침묵을 깨고 시언이 물었다.“보이차가 숙취 해소에 도움이 되나?”아심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부드럽게 대답했다.“물론이죠.”그 후 두 사람은 다시 말하지 않았다. 기사는 두 사람의 맥락 없는 대화에 어리둥절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운전에 집중했다. 시그니엘 아파트에 도착하자, 두 사람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아심은 기사에게 팁을 주며 스스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라고 했다. 기사는 두 사람이 함께 아파트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가 두 사람이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꽤 적지 않은 팁을 보고 기사는 기뻐하며 서둘러 떠났다....아파트에 올라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불을 켜기도 전에 아심은 시언의 허리를 감싸고 발돋움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시언은 아심의 키스에 회답하듯이 외투를 벗고 아심을 현관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더욱 깊이 키스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심은 숨을 헐떡이며 멈추고 어둠 속에서 남자의 눈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오후에 왜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했어요? 내가 당신을 실망하게 했나요?”시언의 눈빛은 차갑고 침착했다.“넘버 세븐, 너는 너만의 삶을 살아야 해. 우리 관계도 예전으로 돌아가서는 안 돼.”그러자 아심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우리는 예전에 서로가 필요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서로가 필요해요.”“며칠 후면 운성으로 돌아갈 거야.”아심은 시언의 어깨에 팔을 얹고 매혹적인 눈빛으로 말했다.“그래서 시간이 적으니 더 소중히 여겨야 하
양재아는 도씨 저택에 돌아왔다. 도경수는 거실의 작은 서재에서 서예를 연습하고 있었고, 옆에 강재석은 차를 마시다 졸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재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재아 돌아왔구나.” 도경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자 재아는 다가가서 도경수에게 차를 한 잔 따라드리며 말했다.“할아버지, 일찍 주무세요. 저 때문에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 시언 오빠가 있어서 저는 괜찮아요. 건강을 더 챙기셔야 해요.”도경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오후에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 잠이 안 와서 말이다. 재미있게 놀았니?”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재미있었어요. 많은 친구를 만났어요.”이때 강재석도 깨어나며 말했다.“재아가 왔구나.”강재석은 재아의 뒤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손자 녀석은 어디 갔지?”이에 재아는 눈빛이 어두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언 오빠는 친구를 데려다주러 갔어요. 아마 조금 늦을 거예요.”“어떤 친구?” 도경수가 묻자 재아는 눈을 내리깔고 말하지 않았고 도경수는 눈에 빛이 반짝이며 강재석한테 놀라며 물었다.“아 시언이 여자친구가 생겼어?”강재석은 피곤한 얼굴로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나도 몰랐어!”도경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돌아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여자친구가 생겼다고?”그러자 재아는 말했다.“성연희 씨가 시언 오빠에게 소개해 준 사람이에요. 사실 저도 알아요.”강재석은 웃으며 말했다.“정말 여자친구가 생겼어? 너도 알아? 이름이 뭐야?”재아는 눈빛을 빛내며 천천히 말했다.“강아심이에요.”“좋은 이름이구나!” 강재석은 칭찬을 아끼지 않자 도경수는 강재석을 쏘아보며 말했다.“강재석, 이 일을 네가 신경 안 쓰겠다고?”강재석은 태연하게 말했다.“연애 문제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있나?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이때 재아가 말했다.“강아심 씨는 매우 아름다워요. 시언 오빠가 좋아하는 것도 당연해요. 다만 놀라운 건, 예전에 온두리에서 아심
강재석은 도경수에게 눈짓하며 말했다.“양재아 앞에서 소리 지르지 마. 아이가 겁먹잖아.”도경수는 강재석을 흘겨보았지만, 의도를 이해하고 재아에게 말했다.“네가 잘못한 게 아니다. 밤이 늦었으니, 너는 자러 가거라. 나와 이 늙은이는 조금 더 이야기할 게 있어.”재아는 두 사람이 할 말이 있는 것을 알고 더 머무르지 않았다.“그럼 두 분도 일찍 주무세요. 다투지 마세요!”“걱정 마라, 싸우지 않을 것이다.” 도경수는 자상하게 웃으며 말했다.“가서 자라.”“네!” 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두 분, 안녕히 주무세요.”“그래, 잘 자라.” 강재석은 미소를 지었다가 재아가 떠나자, 강재석은 천천히 웃음을 거두며 말했다.“시언이 재아에게 마음이 없으니, 강아심뿐만 아니라 하남주가 있어도 무슨 상관이야?”도경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다.“재아가 아니라 시언을 걱정하는 거야. 매일 그런 일을 하는 여자와 어울리는 것을 너는 정말로 마음 놓고 있을 수 있어?”“그런 일을 하는 여자라니?” 강재석은 찡그리며 말했다.“아직 상황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험담부터 한다니. 공공관계도 정당한 직업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직업이 아니야!”도경수는 혐오감을 드러내며 말했다.“너는 진짜 그 여자를 네 손자며느리로 삼고 싶어?”그러다가 도경수는 점점 화가 나며, 냉소적으로 말했다.“성까지 강이라니, 너희 집과 진짜 인연이 있구나!”강재석은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너와는 말이 안 통해!”“너도야? 나도 마찬가지야! 내일 바로 소희를 불러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겠다!” 도경수는 화를 내며 말했다.“네 맘대로 해. 나는 잠자러 간다!” 강재석은 일어나서 자신의 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조금도 급한 기색이 없었다. 도경수는 불만에 찬 얼굴로, 당장 시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 아심이 도대체 누구인지 너무 알고 싶었다....주예형은 늦은 밤까지 일하느라 이제야 일을 마쳤다. 강솔이 아직 아
심서진은 당황하며 말했다.“그래서 무서워요. 경찰에 신고해도 증거가 없어서 잡아갈 수 없고, 보복당할까 봐.”이에 주예형은 말했다.“그럼 당장 이사 가. 여기 살면 안 돼!”“하지만 여기 반년 치 집세를 냈어요. 쉽게 돌려받을 수 없고, 회사랑 가까워서 겨우 구한 집인데 떠나기 싫고요.” 서진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면 앞으로 더 조심해.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해.” 예형이 걱정스럽게 말하자 서진은 머뭇거리며 말했다.“전화 많이 하면 강솔 언니가 싫어할까 봐 걱정돼요.”“네가 나를 찾으러 강성에 온 건데, 여기에는 네 가족이나 친구가 없으니 내가 도와주는 건 당연해. 강솔은 이해심이 많아서 화내지 않을 거야.”“맞아요, 강솔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선배, 정말 행운스러운 것 같아요!” 서진은 순진하게 웃자 예형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그래.”둘은 몇 마디를 나누다가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 이에 서진은 물컵을 앞으로 밀며 말했다.“선배, 물 좀 마셔요.”늦은 밤, 남녀가 단둘이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 예형은 일어나며 말했다.“괜찮아, 네가 안전하면 됐어. 이제 가야겠다.”“선배, 조금만 더 있어 줄 수 있어요?” 서진은 부드럽고 두려운 눈빛으로 예형을 바라보며 말했다.“혼자 있으면 너무 무서워요. 조금만 더 있어 줄 수 없나요?”그러자 예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금 더 있어 줄게. 그 남자가 또 올까 봐서 걱정이야.”“고마워요, 선배!” 서진은 환하게 웃었는데 그 미소는 꽤 달콤했다.“천만에, 내가 널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야.”이에 서진은 일어나며 말했다.“선배, 앉아 있어요. 저 씻고 올게요.”주예형은 뜨거워진 마음을 느끼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씻고 와. 내가 여기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네!” 서진은 예형을 깊이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난방이 켜져 있었고, 예형은 목이 말라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겁내지 마, 내가 있잖아!” 주예형은 급히 심서진을 안심시켰고 서진은 무력하게 예형에게 안기며 말했다.“선배, 선배가 여기 있어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이 들어왔을 거니까.”“그럴 일 없을 거야. 절대 쉽게 문을 열지 마.” 예형은 서진을 달래며 말했다. 서진은 방금 샤워를 마친 상태로, 얇은 잠옷만 입고 있었다. 그랬기에 따뜻한 몸이 예형의 품에 안기자 예형의 몸은 긴장되었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예형은 강솔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친밀했던 행동이 키스였다. 첫째로, 예형은 모든 신경을 회사에 쏟아부어 남녀관계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둘째로, 항상 강솔이 적극적으로 따라다녔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신체적인 방법으로 확인하는 것을 경멸했다. 예형은 신체적으로 감정을 강화하는 남자는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서진을 안았을 때, 예형은 이상하게도 감정이 생겼다. 이에 예형은 즉시 서진을 밀어내고, 시선을 피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겁내지 마. 다시 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면 돼.”서진은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선배, 오늘 밤은 가지 말아줄 수 있어요?”“뭐라고?” 예형은 당황했다.“오해하지는 말고요. 선배는 침실에서 주무시고, 내가 소파에서 잘게요. 너무 무서워서 그래요.” 서진이 급히 설명하자 예형은 잠시 망설이며 말했다.“그렇게 하는 건 좀 안 좋을 것 같아. 회사의 여직원을 불러서 너와 함께 있게 할게.”“이렇게 늦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서진은 고개를 숙이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됐어요, 선배는 이제 돌아가요. 오늘 밤은 그냥 안 잘래요.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라 출근 안 해도 되니까.”예형은 깊이 고민한 후에 말했다.“알겠어, 내가 남아 있을게. 내가 소파에서 잘 테니, 너는 침실에서 자.”“선배를 소파에서 자게 할 순 없어서 그래요.”“됐어!” 예형은 서진의 말을 막으며 온화하게 웃었다.“우리가 다투지 말자. 네가 나를
소희는 방금 어정에 돌아왔는데 전화가 울리자, 소희는 임구택을 밀치고 거실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선배!]진석은 말했다.[소희, 자고 있었어? 강솔이 아파서 열이 나. 가서 봐줘.][강솔이 또 아파요?]그러자 소희는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알겠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서두르지 말고, 운전 조심해.][오케이.]소희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다가오는 구택에게 말했다.“강솔이 혼자 집에서 열이 나고 있어. 가봐야 해.”그러자 구택은 소희의 코트를 가져와 입혀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좋아.”두 사람은 서둘러 집을 나서서, 차를 타고 강솔의 집으로 갔다. 강솔의 아파트에 도착하자, 소희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택은 거실에 남았고, 소희는 곧장 침실로 갔다.“강솔!”소희가 불을 키자 강솔은 간신히 눈을 뜨고, 얼굴이 창백하게 말했다.“소희, 왜 왔어?”소희는 침대 옆에 앉아 강솔의 이마를 만져보았는데 이마는 굉장히 뜨거웠다.“진석 선배가 전화해서 왔어!” 소희는 찡그리며 말했다.“이렇게 열이 나는데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해.”강솔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이번에는 그 말을 들어줄 수 없어!” 소희는 옷을 찾아 강솔에게 입히며 말했다.“반드시 병원에 가야 해!”“소희야,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강솔이 애원하며 말했다.“소희야,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아.”“안 돼!” 소희는 단호하게 말했다.“이런 상태로 두면 안 돼. 병원에 가자!”구택은 거실에 앉아 있다가 소희가 강솔을 안고 나오는 것을 보고 일어섰다.“병원에 가야 해?”“응, 열이 심하게 나.” 소희가 진지하게 말했다.“이 미련한 사람이 병원에 가기 싫다고 해.”구택은 차 열쇠를 가지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고 차에 막 타자, 진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희는 간단히 강솔의 상태를 설명했다.“병원에 가고 있어.”“어느 병원? 지금 갈게!”
의사가 곧 나와서 소희에게 말했다. “환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성 감기와 상부 호흡기 감염으로 인한 발열입니다.”이에 소희는 안심하며 말했다.“좋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임구택은 전화를 걸어 병원에 VIP 병실과 최고의 간병인을 빠르게 배치했다. 강솔은 저녁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몸이 약해져서 링거를 맞으면서 잠들었다. 간병인은 방 안에서 지키고 있었고, 소희와 몇 명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진석이 말했다.“소희, 너와 임구택 사장님은 돌아가. 내가 여기서 지킬게.”진석은 강솔이 자신의 여동생이라 생각한다면 챙기는 것이 당연했다. 주예형이 이 일로 강솔과 헤어지려고 한다면, 예형은 강솔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예형의 행동은 진석을 실망하게 했다. 하지만 소희는 구택을 돌아보며 말했다.“이만 돌아가. 나랑 선배가 여기서 지킬게.”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둘이 지키는 것과 셋이 지키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겠어. 오늘 밤 여기에 모두 남아 있지 뭐.”진석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폐를 끼쳐 죄송하네요, 사장님.”“가족 같은 사이이니까,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구택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세 사람은 강솔의 링거가 끝나고 열이 내린 후에야 조금 안심했다. 소희는 내실에서 나와 진석에게 말했다.“간병인더러 쉬도록 했으니까 들어가서 강솔을 좀 돌봐줘요.”소희는 진석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이 순간에는 진석이 강솔을 조용히 지킬 수 있는 기회였다. 소희의 말에 진석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일어나 말했다.“좋아, 내가 안에서 강솔을 돌볼 테니까 둘은 먼저 쉬어.”“응.”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진석이 방으로 들어가자 소희도 따라가며 문을 닫았다. 병상 위에서 강솔은 눈을 감고 깊이 잠들어 있었고, 열은 내렸지만 여전히 얼굴이 창백했다. 진석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조용히 강솔을 바라보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씁쓸함이 올라왔고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학
어둑한 조명이 드리운 긴 벤치에 서인이 앉아 있었다. 서늘하고 적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그때, 누군가 서인의 앞에 멈춰 섰는데, 임유민이었다. 유민은 미간을 좁히고 냉정하게 말했다.“이제 가세요.”서인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저었다.“난 유진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러자 유민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 눈빛으로 그는 조용히 말했다.“전 삼촌을 원망하지 않아요. 누나가 삼촌을 혼자 좋아한 거, 그건 우리도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번 일은 누나와의 마지막 정리라고 생각하세요.”“이제 누나는 삼촌을 찾지 않을 거니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마세요. 그리고, 죄책감 때문에 다시 찾아오지도 마세요.”유민의 말은 칼날처럼 서인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머리가 더 깊이 숙여졌고, 눈동자는 공허했다.유민은 그 자리에 잠시 서 있다가, 조용히 등을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새벽녘이 되자, 임지언이 병원에 도착했다.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그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임지언은 병실로 향하며 다급하게 물었다. “유진이는? 상태가 어때?”상황을 전해 들은 뒤에야, 그는 비로소 깊게 숨을 내쉬었다.임지언은 곧장 병상으로 다가가 딸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 유진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한없이 애틋한 눈빛을 드리웠다.그러고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아빠가 너를 잘 지켜주지 못했구나. 그러니까, 제발 어서 일어나거라.”우정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겨우 가라앉혔던 감정이 다시 북받쳐 올라 참을 새 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 밤, 임지언과 우정숙은 잠도 자지 않고 유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밤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서인은 그 비를 피하지 않았다. 마치 조각상처럼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서인은 온몸이 흠뻑 젖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해가 떠오를 무렵 소희가 서인을 찾았다. 소희는 조용히
유진은 천사처럼 착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하늘도 그런 그녀를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었다.서인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살짝 떨군 채로 붉게 충혈된 눈을 번뜩였다.그러고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걔가 잘못되면, 나도 그냥 죽어버릴게.”소희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임구택을 찾으러 갔다.병원 복도에는 이미 가족들이 다 모여 있었다. 출장 중이던 임지언도 급히 강성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모두가 조용히 응급실 문 앞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임유민은 소희를 바라보며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물었다.“숙모, 우리 누나 괜찮겠죠?”소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물론이지.”유민은 고개를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아침에 누나가 나갈 때,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소희는 유민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유민아,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순 없어. 그러니까, 네가 스스로를 탓할 필요는 없어.”그때, 우정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를 조용히 안았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정숙의 목소리에는 깊은 후회와 죄책감이 서려 있었다.“내가 잘못했어. 서인을 찾아가선 안 됐어. 내가 괜히 움직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소희는 우정숙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우정숙의 등을 토닥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에요, 형님 탓이 아니에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이건 그냥 단순한 사고일 뿐이에요.”사고를 낸 차량의 운전자는 원래 일반 도로로 합류하려 했지만, 빗길이라 행인이 적다는 이유로 보행자 도로를 질주했다.그리고 핸드폰을 보며 운전하다 뒤늦게 임유진을 발견한 순간, 이미 늦어버린 것이었다.운전자는 강성에서 꽤 배경이 있는 집안의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대리운전자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만, 상대가 임씨 가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응급실 앞의 공기는 한없이 무겁고 적막했고, 모두들 숨소리조
유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인이 애옹이를 진수아에게 넘겨버렸다고 생각했다.유진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애옹이를 되찾으러 나섰다.밖에서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진은 한 손에 우산을 쥐고 서둘러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비 내리는 거리에서 두리번거리던 유진은, 앞쪽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 사이로 어렴풋이 서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유진은 가슴이 터질 듯한 불안감을 안고 서인을 향해 달려갔다.빗줄기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있었고, 서인과 수아는 나란히 걸으며 점점 멀어져 가는 듯 보였다.유진은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아무리 달려도 그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그 순간, 유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제 사장님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야. 아니, 애초에 한 번도 내 것이었던 적이 없었어.’잔잔했던 빗줄기는 거센 바람을 타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유진의 온몸을 찌르기 시작했다.마치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듯한 고통. 하지만 유진은 여전히 서인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서인은 우산을 쓰고 애옹이를 품에 안은 채 동물병원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에 서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불법 개조된 스포츠카 한 대가 위험천만하게 보행자 도로 안으로 돌진하고 있었다.서인은 그 순간, 자신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시야 끝에 보이는 익숙한 실루엣 유진이 있었다.서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유진을 향해 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임유진!”서인의 목소리는 공포와 절박함으로 뒤엉켜 있었다.“빨리 비켜! 임유진, 제발!!”우산을 쓰고 있던 유진은 그제야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엔진 소리를 들었다. 이에 유진은 본능적으로 뒤돌아보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차량 운전자는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순간, 자기 차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운전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애옹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본 야옹이가 곧바로 경계하며 짖기 시작했다.“멍! 멍! 멍!”깜짝 놀란 진수아는 뒷걸음질 치다가 뒤에 있던 화초에 발이 걸렸고,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와장창! 넘어지는 충격으로 인해 청자 화분이 산산조각 났고,깨진 도자기 조각이 그녀의 팔꿈치를 긁었다.“꺅!”수아는 고통보다도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고, 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가 수아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수아는 다소 초라한 모습으로 일어섰다. 사실 팔꿈치에 살짝 긁힌 정도였지만, 아까의 비명은 단순히 놀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하지만 수아가 품에 안고 있던 애옹이도 함께 떨어졌다. 애옹이의 배가 깨진 도자기 조각에 닿으면서 새하얀 털 위로 희미한 핏자국이 번졌다.애옹이는 깜짝 놀라 도망치듯 나무 위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앓는 소리를 내며 스스로 상처를 핥기 시작했다.서인은 한 걸음 다가가 애옹이를 살폈다. 애옹이는 억울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서인의 어깨 위로 뛰어올라 몸을 웅크렸다.“정말 깜짝 놀랐네!”수아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널린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발로 차버렸다. 그러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야옹이를 향해 분한 듯한 눈길을 보냈다.야옹이는 목줄이 묶여 있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수아를 경계했다.“고양이도 다친 거예요?”수아는 애옹이의 배에서 피가 번진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서인은 애옹이의 상처를 가볍게 만져보았다.“네, 약을 좀 발라야겠어요.”수아는 즉시 말했다.“이렇게 작은 고양이가 다치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받게 하는 게 좋겠어요.”서인은 애옹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나도 같이 갈게요!”수아는 급히 그를 따라갔다.샤부샤부 가게가 있는 거리에는 작은 규모의 애완동물 병원이 하나 있었다. 그랬기에 서인은 그곳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
오현빈은 순간적으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우리 사장님은 그냥 우리 사장님일 뿐입니다. 다른 신분이 있든 없든, 그건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죠.”“어떻게 상관이 없을 수가 있겠어요?”진수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잘 생각해 봐요. 만약 그 사람이 그냥 샤부샤부 가게의 사장이라면, 당신들은 단순한 직원일 뿐이겠죠.”“하지만 만약 대기업의 총수라면 어떨까요? 적어도 부장이나 팀장 정도의 직책은 받을 수 있을 텐데요. 그러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겠죠?”그 말에 현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진수아 씨가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네요. 우리는 몸으로 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사무실에서 일할 수도 없고, 관리직도 맡을 수 없어요.”“사장님이 총수든 아니든, 우리는 여전히 잡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결국엔 지금과 다를 게 없죠.”“대기업에서 잡일을 하는 것과, 샤부샤부 가게에서 잡일을 하는 건 완전히 다르죠.”수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여기서는 누구도 당신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겠지만, 만약 그룹에 들어가게 된다면 상황이 다를 거예요.”수아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그러니까, 당신이 사장님을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죠. 그게 당신들을 위해서도, 사장님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이니까요.”현빈의 얼굴이 굳어졌다.“우리 사장님이 어떻게 살든, 그건 전적으로 사장님의 자유죠. 그리고 저희는 그저 직원일 뿐이니, 사장님의 일을 결정할 권리는 없고요.”“진수아 씨, 저희한테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어요. 찾아올 사람을 잘못 찾으셨네요.”그 말을 끝으로, 현빈은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후원으로 향했고, 수아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쓸모없는 것들 같으니.”수아는 차 한 모금 마시려다, 찻잔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멀리 밀어버렸다.오현빈은 곧장 주방으로 가서 서인에게 보고했다.“형, 진수아 씨 왔어요.”서인은 한 손으로 칼을 쥐고 야채를 썰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응.”현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유진은 고개를 돌려 동생을 바라보았다.“네 생각엔 그 사람이 정말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유민은 유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누나, 그 사람이 누날 좋아하는지 안 하는지, 세상 누구보다도 누나가 가장 잘 알지 않아?”유진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날 좋아하는 걸까?’유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살짝 고개를 기울여 턱으로 자기 어깨를 가리켰다.“어깨 빌려줄게. 기대.”유진은 조심스럽게 동생의 어깨에 기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유민의 어깨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넓었다. 이에 유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임유민, 너 정말 다 컸구나.”유민은 코웃음을 쳤다.“누나만 계속 안 크는 거지.”예전에는 누나가 늘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놀아주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동생이 누나를 지켜주고 있었다.유진은 눈을 감았다.“어른이 된다는 게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 나중에 네가 연애하게 되면, 꼭 널 진심으로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유민은 유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누나가 만난 남자가 너무 적어서 그래. 세상에는 괜찮은 남자들 많아. 주말에 좀 나가서 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 봐.”“잘생기고 젊고 능력 있는 남자들이 줄 서 있을걸? 누나만 원하면 언제든 결혼할 수 있어!”유진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눈물이 속눈썹 끝에서 맺혀 떨어질 듯 흔들렸다.“오, 너 제법인데?”유민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연애도 수학 문제랑 똑같아.문제를 많이 풀어 보면 익숙해지고,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법이지.”유진은 고개를 갸웃했다.“그럼 사장님은 어려운 문제야?”이에 유민은 단호하게 말했다.“사장님은 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대회 최종 문제 같은 존재지.”유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속눈썹 끝에 맺혔던 눈물이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입술 위로 스며든 눈물은 짜고 씁쓸했다.다음 날유민이 계단을 내려가려다가, 문 앞에서 나갈 채비를 하는
밤새 술을 많이 마셔,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도 아팠다.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람이 정말로 극도로 슬퍼지면, 심장이 아플 수도 있다는 사실을.늦은 밤, 샤부샤부 가게에는 몇 명의 손님만이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서인은 후원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한 대를 다 피우기도 전에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화면을 한 번 보더니 바로 받지 않았다. 그러나 벨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울렸다. 마치 상대가 서인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결국 서인은 화면을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오직 조용한 숨소리만이 미세하게 들려올 뿐이었고, 서인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한참 후, 핸드폰 너머에서 참을 수 없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진은 아주 슬프게 울고 있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실망하고, 애달픈 감정들이 전화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늘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다. 이렇게 울 정도라면, 얼마나 깊은 슬픔에 빠진 걸까?서인의 가슴이 조여들었고,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임유진.”서인은 낮은 목소리로 유진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유진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막은 듯, 최대한 소리를 죽이려 애쓰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울음소리는 오히려 더 애달프게 느껴졌다.슬픔과 절망이 어두운 밤을 가로질러, 서인을 깊은 침묵 속으로 빠트렸다.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유진의 모든 감정이 전달되는 듯했다.유진이 힘겹게 삼켜온 모든 아픔과 서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미안해요.”서인이 조용히 말하더니 몇 초 후, 전화는 뚝 끊겼다. 이에 서인은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고, 갑자기, 불안이 엄습했다.유진이 자신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 서인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 같다.여진구가 유진을 찾았을 때,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거의 잠들어 있었다. 이미 얼굴에 흘렀던 눈물은 말라 있었지만, 붉어진 눈가가 그녀의 슬픔을 증명하고
오현빈은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으며 말했다.“그럼 두 분 먼저 드세요. 저는 주방에서 다른 요리 준비할게요.”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빈이 떠난 후, 소희는 뜨거운 육수에 채소와 고기를 넣으며 진지하게 식사를 시작했다. 고기가 다 익자, 그녀는 젓가락으로 들어 서인의 접시에 먼저 놓아주었다.“일단 먹어.”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이 일은 내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게 맞아. 처음부터 더 단호하게 해야 했는데...”소희는 젓가락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췄다.“그렇게 신경 쓰는 문제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한가?”서인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희도 더 이상 설득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담담하게 말했다.“네가 유진이의 미련을 끊게 하려고 여기에 못 오게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받아들이지는 마.”서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나도 내 감정 정도는 분별할 수 있으니까.”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한층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 될 때마다 유진이 좀 챙겨줘. 나 같은 놈은 빨리 잊어버리고, 자기 인생을 잘 살았으면 좋겠으니까.”소희는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알겠어. 하지만 스스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라.”서인은 미소를 지으며 마치 별 의미 없는 일이라는 듯 넘겼다.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유진은 평소처럼 출근했지만, 예전보다 한층 무기력해 보였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혼자 방에 들어가면 사방에서 슬픔이 밀려왔다.밤이 되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았고, 잠이 들었다 해도 자주 깼다.그런 모습을 본 여진구는 유진이 빨리 기운을 차리길 바라며 금요일 밤 부서 회식을 주선했다. 직원들을 모두 불러내 넘버 나인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화려한 룸에서는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
홀의 좌석은 60%가 차 있었고, 손님들의 웅성거림과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소희는 단번에 눈에 띌 만큼 분위기가 남달랐다.그녀는 이제 임구택 와이프라고 불리는 몸이었지만, 여전히 그 특유의 차분하고 단정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서인은 차와 과일을 들고 다가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낮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오늘은 안 바빠?”소희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요즘 북극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어. 가끔 아는 감독들이 의상 디자인을 맡기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지.”서인은 검은색 티셔츠 차림에 깊은 이목구비가 더욱 도드라졌다. 그는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올 시간이 있었어?”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샤부샤부 먹고 싶어서 왔지. 한 끼 얻어먹으려고. 안 돼?”서인은 가볍게 웃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괜찮지. 그런데 사실은 유진이 때문이지?”소희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걸 알고 있다는 건, 지금 조금 신경 쓰인다는 거 아닌가?”서인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뭐가 신경 쓰이겠어?”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톤으로 말했다.“맞아. 원래 의리도 중시하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이지. 그동안 양심에 찔린 적도 없었을 테고.”“그러니, 누군가 당신을 몇 년 동안이나 좋아하고, 한낱 평범한 샤부샤부 가게에서 일하며 온갖 고생을 감수해도, 당신은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당연해.”“그리고 이제 와서 아무 여자나 붙잡고 연애를 시작해도, 그건 전적으로 유진의 착각이었으니까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겠네.”서인은 소희의 눈을 응시했다. 목구멍이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 그는 낮게 속삭였다.“난 유진이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한 거야.”소희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날카롭게 반박했다.“유진이가 그게 좋다고 생각해야 진짜 좋은 거지. 제멋대로 유진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