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아홉 시야!” 소희는 조금 아쉬운 듯이 이마를 찌푸렸다.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나서 집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임유민이 곧 기말고사를 보잖아. 부족한 부분을 도와주고 싶었어.”소희는 구택을 바라보며 웃었다. “난 정말로 형편없는 가정교사야. 형님도 나한테 불평하기 어려우실 텐데.”구택은 소희의 얼굴을 가볍게 꼬집었다. “너는 형수님이 애써 데려온 사람이야. 불평해도 어쩔 수 없지.”“그렇게 말하지 마.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소희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럼 형수님께 보답하는 의미로 내가 직접 유민이를 가르칠까?”소희는 삼촌과 조카가 근엄하게 같이 수업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구택은 소희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지 말자. 양재아 일 때문에 계속 바빴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청원에서 우리만의 완벽한 주말을 보내자.”“난 스승님 댁에 가는 게 재아 일 때문만은 아니야. 할아버지가 강성에 계신 동안 할아버지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어.”재아 이야기가 나오자, 구택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다. “어제 재아에게 많은 물건을 사줬다고 들었어. 도경수 어르신의 손녀인지 확실하지 않은데, 이렇게 많은 걸 주는 게 옳은 걸까?”소희는 구택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재아가 돈 때문에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하는 거야? 재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온두리에서 손님들이 돈을 펑펑 쓸 때도 재아는 흔들리지 않았어.”“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있어!” 구택의 눈빛이 깊어졌다. “네가 재아에게서 자신을 봤다는 걸 알아. 너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고, 양부모가 자식을 낳고 나서 너를 잘 대해주지 않았지.”“이제 재아가 가족을 찾았으니, 도경수 어르신이 재아를 두 배로 잘 대해주길 바라는 거 이해해.”“하지만 난 결국 너희의 진심이 재아에게 탐욕을 일으킬까 봐 걱정돼. 자신이 친손녀가 아니라는 걸 알면, 지금의 부를 놓지 못할 거야.”소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네
임구택은 소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양재아가 바라는 것이 가족의 사랑이길 바라. 그리고 너랑 어르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초심을 잃지 않길 바라고. 부에 눈이 멀지 않도록.”소희는 가볍게 입술을 다물며 말했다.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나도 신중해질게.”“그러면 일단 지켜보자. 만약 재아가 정말로 도경수 어르신의 마음에 든다면, 친손녀든 아니든 상관없겠지.”“하지만 만약 재아가 그렇지 않다면, 돈을 좀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그러자 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운에 맡기지 뭐.”두 사람은 재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구택은 소희를 안고 일어났다. “먼저 세수하고 아침 먹자. 내가 이미 오영애 아주머니에게 전화했어. 너를 위해 맛있는 걸 준비하고 있어.”소희는 구택을 껴안고 말했다. “나 설희도 보고 싶어!”“내가 보고 싶다는 말은 한 적 없더니.”“말한 적 없나? 난 여러 번 말한 것 같은데!” “난 기억 안 나는데!” 구택이 정색하며 말하자 소희는 더 이상 구택과 이 애기로 다투지 않고 더 꽉 껴안았다. “그럼 지금 말할게. 자기야, 보고 싶어!”그러자 구택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투덜거렸다. “성의가 하나도 없네!”“어떻게 해야 성의가 있다고 할 수 있어?” “나랑 같이 출근해. 안 그러면 10분마다 나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구택의 말에 소희는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자기야, 오버하지 마!”구택은 소희를 화장대 위에 앉히고 몸을 숙여 팔을 뻗고 바라보며 말했다. “뭐라고?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소희는 웃음을 참으며 구택의 얼굴을 감싸고 깊이 키스했다....시그니엘 강시언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침대 위에 새 셔츠와 바지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언이 평소에 입는 브랜드와 동일하고, 디자인도 똑같았다.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으로 몸을 숙여 옷을 집었다.“시언 님, 제가 국수를 끓였어요.”강아심이 갑자기 들어와, 방 안에서 수건을 풀고
강시언이 갑자기 물었다. “왜 연애를 안 해?”강아심은 시언의 말에 잠시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당신 때문에 눈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은 못 받아들일까 봐.”이에 시언은 할 말을 잃었다. 아심은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더 대담해졌고, 한마디로 시언의 입을 모두 막아버렸다. 게다가 그렇게 진지하고 순진한 어조로 말하니, 뭐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아심은 말을 마치고 자신도 웃음을 터뜨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여 조용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후, 아심은 시언에게 차 한 잔을 내주고, 자신은 커피를 한 잔 끓였다.커피와 차향이 어우러져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롭게 어울렸다. 아심은 시언의 품에 안겨 목을 감싸 안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당신과만 함께 있을게, 어때요?” 아심은 약간의 애교를 부리며 말하자 시언은 깊은 눈빛으로 아심을 바라보며 갑자기 웃었다. “너는 나와 함께 있고 싶은건가? 아니면 나를 착취하려는 건가?”아심은 밤새 시언을 휘어잡았고, 이제 커피를 마시면서 함께 있겠다고 하는 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에 아심은 눈을 크게 뜨며, 시언의 목에 이마를 대고 깔깔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에 의해 몸이 꽃병에 꽂힌 꽃처럼 흔들거렸다. 그리고 시언은 아심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숨이 점점 가빠졌다. 이윽고 시언은 아심의 턱을 잡고 강하게 입맞춤했다. 아심은 여전히 웃고 있었는데 눈은 봄물처럼 빛나고, 점점 더 농익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더니 아심은 웃음을 멈추고 다시 남자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고 이 순간에는 당당하게 볼 수 있었다....진석은 오전 내내 바빴고, 점심 무렵 강솔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승님을 보러 갈 거야? 내가 데리러 갈게.”하지만 강솔은 조금 웅얼거리며 말했다. “안 갈래!”“아직 자고 있어?”진석은 약간의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응!”“또 감기 걸렸어?”그러자
강솔이 말했다. “좋아, 소희에게 전화해 볼게. 하지만 소희가 임씨 그룹의 사업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것 같아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그러자 주예형은 즉시 말했다. “소희가 임구택 사장님께 한마디만 해주면 문제없을 거야.”소희는 임씨 그룹의 사모님이기 때문에 그 정도 권한은 있을 것이다. 게다가 King의 일로 봤을 때, 구택을 포함한 임씨 가족 모두가 소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협력 여부는 소희의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그러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한번 물어볼게!”이에 예형은 기뻐하며 말했다. “고마워, 강솔. 임씨 그룹과의 협력을 성사시키면 한동안 편해질 거야. 그때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자.”“좋아!”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너무 큰 압박을 주지 마.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아직 부족해. 난 더 노력해서 강성의 신흥 부자가 되어 너에게 큰 집을 사주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야.”“사실 난 너만 있으면 돼. 정말로, 너무 큰 압박을 느끼지 마. 지금 상태로도 난 만족해.”“사업은 전쟁터와 같아.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남에게 짓밟힐 수밖에 없어!” 예형은 단호하게 말했다가 웃으면서 얘기했다. “이제 그만 얘기하자. 나 전화 받으러 가야 해. 쉬어.”“응.”강솔은 전화를 끊고, 몸이 아주 불편하고 마음도 복잡했다. 예전에는 예형을 매우 리스펙했었다. 왜냐하면 예형이 정말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걱정도 되었다. 그가 이렇게 한순간도 쉬지 않고, 스스로에게 큰 압박을 주는 것이 예형을 불안하게 만들까 봐.강솔은 침대에 누워 몸이 차가워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마를 만져보았고, 아마도 다시 열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일어나서 약을 먹고 싶지 않았고 그냥 자고 싶었다.‘잠들면 괜찮아질 거야.’ 강솔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졌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 채, 누군가가 강솔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약 먹기 싫으면 아프지도 말아야지!”“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줄 알아?” “아프기 싫으면 왜 한밤중에 찬바람 맞고 서 있었던 거야? 찬바람이랑 감정이 있는 거야?”강솔은 진석의 말을 이길 수 없어서 약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진석은 이를 보며 얼굴을 찡그리고는 서둘러 물을 건넸다.강솔은 너무 급하게 마셔서 사레가 들렸고,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숙여 기침했다. 강솔은 면 소재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디자인이 헐렁해서 몸을 숙일 때 하얀 피부가 드러났다.진석은 갑자기 그날 오후를 떠올렸다. 강솔의 뜨겁고 부드러운 몸이 자신의 품에 안겨 왔고, 뿌리칠 수 없었던 순간을. 이때 진석의 마음속에 이질적인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그래서 강솔의 등을 두드리려던 손이 멈추었고, 더 이상 내려놓지 못했다.강솔은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기침하고, 헐떡이며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강솔은 진석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 혹시 내가 아픈 틈을 타서 사적인 원한을 갚으려는 거야? 나를 괴롭혀서 죽이려고?”진석은 갑자기 화가 나서 강솔을 한 번 쏘아보고 일어나려 하자 강솔은 곧바로 진석의 옷을 붙잡았다. “농담이야, 가지 마!”진석은 강솔의 손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입으로는 여전히 매정하게 말했다. “내가 널 죽이려고 한다며?”강솔은 사슴 같은 눈으로 진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불쌍한데, 너는 나한테 좀 잘해줄 수 없겠어?”“난 너에게 충분히 잘해주고 있잖아?”강솔은 눈을 굴리며 웃었다. “생각해 보니까, 정말 잘해주는 거 같아.”진석은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고 그저 강솔의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더 말하지 마, 약 먹고 좀 자. 난 안 나가고 밖에서 잠시 앉아 있을게.”“왜 밖에 나가려고 해? 우리 같이 자란 사이잖아, 형제 같은 사이인데 뭐가 문제야?” 강솔은 진지하게 말했는데 그 말은 따뜻하게 들렸지만, 진석에게는 씁쓸하게 느껴졌다. 강솔은 계속해서 말했다. “난 오래 잤어, 이제
강솔은 잠시 멈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석아, 우리가 스승님 댁에 자주 가는 이유는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잖아.”“이제 스승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겼으니, 우리가 기뻐해야지. 난 재아 씨가 나를 배척하는 걸 신경 쓰지 않아.”“너는 스승님이 재아 씨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를 생각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강솔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석이 계속해서 말했다. “너는 어릴 때부터 스승님 곁에서 자랐어. 그러니 스승님에게는 네가 친손녀와 다름없지.”“스승님이 재아 씨를 좋아하는 것은 그저 집착 때문이지, 너를 좋아하는 마음과는 상관없어. 재아 씨 때문에 스승님과 멀어지지 마.”“난 그런 적 없어!” 강솔은 즉시 부인했다. “스승님과 내 감정이 어떻게 멀어지겠어?”“네가 스스로 이해하면 됐어. 재아 씨가 스승님의 손녀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재아 씨의 한마디 때문에 네가 스승님과 많은 세월을 포기할 필요는 없어. 설령 재아 씨가 친손녀라 해도, 너를 쫓아낼 자격이 없으니까!”“난 재아 씨와 싸우고 싶지 않아. 스승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바보야!” 진석은 강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있잖아!”이에 강솔은 웃으며 말했다. “응.”두 사람은 서로 깨어 있었고, 진석은 강솔에게 손을 뻗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곧바로 손을 내렸다. “약 먹었으니, 좀 쉬어. 너무 많은 생각하지 마. 점심 때 뭐 먹고 싶어?”약기운이 올라와 강솔은 정말로 졸렸다. 그리고 강솔은 진석의 요리 솜씨를 생각하며 힘들게 말했다. “난 생선구이 먹고 싶어.”하지만 진석은 거절했다. “감기 걸려서 열나면 생선은 안 돼. 가벼운 음식 먹어야 해.”“그럼 매운 랍스터 먹고 싶어.”진석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얼른 자.”“응.” 강솔은 순순히 눈을 감자 진석은 이불을 강솔에게 덮어주고 방을 나갔다. 한 시간이 지나고, 진석은 강솔의 방에
진석은 강솔이 식욕이 없을까 봐 다양한 요리를 준비했다. 새우와 브로콜리 볶음, 토마토 계란 두부, 여러 가지 나물무침, 그리고 토마토 계란 볶음이 있었다. 모두 맛있어 보였다. 진석은 강솔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 “식욕이 없으면 먼저 나물무침을 조금 먹어봐.”강솔은 작은 오이를 한 입 먹고, 상쾌한 맛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요리 솜씨가 점점 좋아지네. 어떤 여자가 너와 결혼할지 정말 부러울 정도야.”진석은 강솔을 한 번 노려보며 말했다. “너랑 주예형 둘 중에 누가 요리해?”강솔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는 데이트할 때 항상 외식해. 예형은 요리를 못하니까 집에서는 배달 음식이나 라면을 먹어. 그래서 너에게 배워서 나중에 요리해 주려고.”진석은 자신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후회했다. 자신이 아끼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위해 요리를 배우려 한다니, 마음속의 화를 참기 힘들었다. 진석은 얼굴을 굳히고 말없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강솔은 자신의 생각에 잠겨 있어서, 진석의 표정이 변한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강솔은 몸이 불편했지만,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식욕이 별로 없어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식사가 끝나자, 진석은 설거지를 하면서 강솔에게 가서 쉬라고 말했다. 강솔은 잠을 자면서 땀을 많이 흘려서 몸이 끈적거렸고, 깨끗한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진석은 부엌에서 설거지하다가 갑자기 침실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진석은 얼굴이 굳어지고, 설거지하다 말고 곧바로 침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욕실 문이 잠겨있지 않아, 진석은 재빨리 들어갔지만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욕실 샤워기가 여전히 켜져 있었고, 강솔은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강솔은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고, 진석이 들어오자 얼굴이 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들어 수건을 몸에 덮었다. 진석은 등을 돌리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혼자 일어날 수 있겠어?”강솔은 전신이 힘이 빠져 머리가 어지러웠고, 한 손으로 수건을 잡고 다른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나려고
강솔은 주예형의 차가운 시선에 마음이 무거워져, 급히 해명하려 하지 않고 조용히 누워있었다. 진석은 침실 문을 닫고, 거실 소파로 가서 앉으며 냉정하게 말했다.“강솔이 아픈 거, 정말 몰랐나요? 왜 직접 와서 돌보지 않는 거죠? 당신 사업이 그렇게 중요한가요?”예형은 매우 화가 났지만, 진석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강솔이 말하지 않아서 몰랐어요.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고,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왔죠.”진석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말했다. “전 제가 전화해서 강솔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고, 돌보러 왔어요.”“조금 전에 강솔이 욕실에서 넘어져서 내가 들어가서 데리고 나온 거예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란 얘기죠.”진석은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에 사람들이 오해해도 입을 열어 해명하지 않았으나 오늘은 강솔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진석은 강솔이 예형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기에 강솔이 아플 때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진석의 얘기에 예형은 얼굴을 찡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솔이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잘 알잖아요. 강솔을 믿을지 말지는 당신이 결정해요.” 진석은 일어나며 말했다. “강솔은 심하게 감기 걸렸어요. 방금 식사했고, 약은 침실 탁자에 있어요.”“당신이 강솔을 믿는다면, 남아서 챙겨요. 아무리 당신 사업이 아무리 중요해도 여자친구보다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이에 예형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솔을 대신해서 고마워요.”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옷을 챙겨 나갔다. 진석이 나갔고, 예형의 분노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진석에게 한 소리를 들었으니, 마치 둘 다 무고한 듯 행동했다.예형은 점점 더 화가 나서 강솔을 보고 싶지 않아 나가려 했다. 그러나 문 앞에서 자신이 강솔에게 전화로 소희에게 말 좀 잘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생각났다. 지금 강솔과 헤어진다면, 임씨 그룹
홀의 좌석은 60%가 차 있었고, 손님들의 웅성거림과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곳에 앉아 있는 소희는 단번에 눈에 띌 만큼 분위기가 남달랐다.그녀는 이제 임구택 와이프라고 불리는 몸이었지만, 여전히 그 특유의 차분하고 단정한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서인은 차와 과일을 들고 다가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낮고도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오늘은 안 바빠?”소희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요즘 북극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어. 가끔 아는 감독들이 의상 디자인을 맡기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지.”서인은 검은색 티셔츠 차림에 깊은 이목구비가 더욱 도드라졌다. 그는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오늘은 주말도 아닌데, 바쁜 와중에 여기까지 올 시간이 있었어?”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샤부샤부 먹고 싶어서 왔지. 한 끼 얻어먹으려고. 안 돼?”서인은 가볍게 웃으며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괜찮지. 그런데 사실은 유진이 때문이지?”소희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그걸 알고 있다는 건, 지금 조금 신경 쓰인다는 거 아닌가?”서인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뭐가 신경 쓰이겠어?”소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심장한 톤으로 말했다.“맞아. 원래 의리도 중시하고, 정정당당하게 살아온 사람이지. 그동안 양심에 찔린 적도 없었을 테고.”“그러니, 누군가 당신을 몇 년 동안이나 좋아하고, 한낱 평범한 샤부샤부 가게에서 일하며 온갖 고생을 감수해도, 당신은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당연해.”“그리고 이제 와서 아무 여자나 붙잡고 연애를 시작해도, 그건 전적으로 유진의 착각이었으니까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겠네.”서인은 소희의 눈을 응시했다. 목구멍이 막힌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후, 그는 낮게 속삭였다.“난 유진이를 위해서 이런 결정을 한 거야.”소희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날카롭게 반박했다.“유진이가 그게 좋다고 생각해야 진짜 좋은 거지. 제멋대로 유진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해
멀리서, 임구택은 혼자서 말을 타고 있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깊은 주름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인과 함께 다녀와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된 줄 알았는데, 겨우 며칠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소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두 사람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어때?”소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했다. 서인이 유진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 누구보다도, 소희는 서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택은 고개를 저었다.“유진이는 자기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문제는 서인이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다는 거야. 말로 풀어볼 문제가 아니야.”“서인이 유진이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정이 깊지 않다는 뜻이야.”“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구택은 단호하게 덧붙였다.“유진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서인을 좋아했는데도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면,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됐어.”“이번 일을 계기로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면,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어.”소희는 유진이 기울인 노력과 그동안 겪었던 아픔을 생각하니 쉽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러네. 유진이가 하루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길 바라야겠어.”구택은 옆에 있는 소희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살짝 입맞춤했다. 그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하며 말했다.“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는데, 우리 어디 조용한 곳에서 좀 쉬다 갈까?”소희는 주위를 둘러보며 멋쩍어했다.“유진이 옆에 있어야지. 방금까지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는데, 삼촌이 돼서 너무 무심한 거 아니야?”구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씨 집안 사람들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소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화제를 돌렸다.“그러면 일단, 차가운 탄산음료부터 마실래!”구택은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탄산음료 대신 과일 주스로.”“좋아요. 근데 아이스로!”“그건 괜찮아.”구택은 가
임유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소희와 임구택은 함께 승마하러 가기로 했다. 집에서 이를 알게 된 우정숙은 소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유진이를 잘 부탁할게.”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구택이 운전해 모두를 마장으로 데려갔다. 조수석에는 소희가 앉았고, 뒷좌석에는 유진과 임유민이 나란히 앉았다.차에 오르자마자, 유민은 예쁜 막대사탕을 유진에게 건넸고, 유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뭐야?”유민은 얼굴색 변하지 않고 말했다.“사탕 먹고, 울지 말라고.”이에 유진은 볼이 붉어졌다.“나 애도 아닌데!”앞자리에서 운전하던 구택이 갑자기 물었다.“유진이만 사탕 있는 거야?”그러자 유민은 하나를 더 꺼내 소희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유진을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봤지? 이건 경쟁이 붙을 정도로 귀한 거야!”차 안에 웃음이 터졌고,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졌다.가는 길에 소찬호가 유민에게 전화를 걸어 게임하자고 했다. 그러자 유민은 그를 승마장으로 불렀고, 소시연까지 따라오면서 더욱 북적이는 분위기가 되었다.뜨거운 햇볕 아래, 모두가 말을 타고 달렸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자, 유진의 감기도 거의 다 나은 듯했다.유민과 찬호는 말 경주를 펼쳤고, 두 청년은 강렬한 햇살 속에서 늠름하고 당당하게 말을 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까지 환호하며 응원을 보냈다.한참을 신나게 논 뒤, 유진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익숙한 실루엣이 말을 타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오자, 탄탄한 승마복을 갖춰 입은 남성이 빛을 받으며 멋스럽게 말을 멈췄다.그는 능숙하게 말에서 내려 유진의 앞으로 다가왔다.유진은 놀라며 물었다.“여기 웬일이에요?”여진구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유진의 옆에 앉았다.“이모가 전화 주셨어. 다들 여기 있다고.”유진은 순간 표정을 굳히며 그를 바라보았고, 이제야 상황이 이해되었다.진구는 물을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햇빛 아래, 젊고 잘생긴 얼굴에 물방울이 맺혀
임유진은 발코니의 카펫 위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얼른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임유민이 유진의 곁에 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구은정 삼촌이랑 싸웠어?”유진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왜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유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우리 반에도 날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있어. 근데 난 그 애들을 좋아하지 않아.”“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누나가 아무리 잘해도 상대가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유진의 콧등이 붉어졌고, 유민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넌 그 애들이 귀찮아?”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유진은 더 큰 상실감을 느꼈다.“그럼 나도 마찬가지겠네. 난 계속 샤부샤부 가게에 갔고, 서인은 사실 엄청 귀찮았겠지.”유진은 초라함에 입술을 깨물었다.“나는 정말 실패했어.”유민은 한숨을 쉬며, 마치 어른이라도 된 듯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그냥 잊어버려. 전에 한 번 실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냥 실패한 거라고 생각해.”유진은 코끝이 시큰해지면서도, 애써 농담을 던졌다.“넌 날 위로해 주러 온 거 아니었어?”그러나 유민은 단호했다.“방향이 잘못됐으면, 노력하는 게 오히려 독이야.”유진은 풀이 죽은 채 중얼거렸다.“적어도 위로해 줄 줄 알았는데...”유민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세상에 완벽한 공감이란 건 없어. 내가 누나를 위로한다고 해도, 누나 마음이 금방 좋아지진 않잖아. 다들 성인이니까, 이제 스스로 위로하는 법도 배워야지.”그 말에 유진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울다가도 웃는 그녀를 보며, 유민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그래도 누나가 겨우 이걸로 좌절할 것 같진 않아.”“넌 몇 살이나 됐다고 그렇게 어른인 척하는 거야?”“어른이 되는 건 나이가 아니라 정신이야.”유민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누나 정신 연령으로 보면, 아직 미성년자 같은데? 그러니까 울고 싶으면 울어. 울 수 있는 건 어린애들
유진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비 내리는 거리에서 방향도 없이 걸었다. 손에는 여전히 서인을 위해 산 셔츠가 들려 있었다. 서인에게 전해주지도 못한 채, 유진은 그것을 잊어버린 듯 꼭 쥐고 있었다.언제부터인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굵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순식간에 흠뻑 적셔 버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유진의 몸을 더욱 식혀 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이 오히려 유진을 속 시원하게 만들었다.[분명 포기하고 싶었는데.][하지만 여전히 널 붙잡고 싶어.][이렇게까지 부딪혔는데도, 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오랫동안 널 사랑했는데...][그냥 친구가 되는 건 너무 가혹해.][네가 다른 사람과 손을 잡는 걸 보고 싶지 않아.]길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서인은 늘 유진을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했지만,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사랑은 단순한 감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유진은 그렇게 순진한 소녀가 아니었다. 이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도, 한순간의 설렘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뼛속까지 스며든 깊은 사랑이었다.하지만 결국, 유진의 마음은 공허한 바람 속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서인은 단 한 번도 유진에게 흔들리지 않았다.유진의 사랑은, 서인에게 있어서 오로지 부담일 뿐이었고, 그것이 그녀의 사랑 결말이었다.유진은 계속해서 떠올렸다.흥성에서의 그 며칠. 유진은 서인을 당연한 듯 의지했고, 장난도 마음껏 쳤다. 그리고 그는 묵묵히 그녀를 받아 주었다. 그게 마치 자신도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했다.그래서, 이문 오빠의 생일날 밤 유진은 서인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 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유진은 선을 넘었기에, 서인은 화가 났고 결국 유진을 밀어내 버렸다. 그러니 유진은 후회해야 할까, 아니면 슬퍼해야 할까?그저 알 수 없이 눈물만 흘렀고, 빗물과 섞여, 감정을 숨길 수도 없었다.[날 차갑게 외면할 때, 넌 또 누구의 마음을 데우고 있는
유진은 애써 참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없이 낮추며 간신히 말했다.“지난번엔 내 잘못이었어요. 내가 순간적으로 충동적이었어요.”그러나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삼켰다.“다시는 안 그럴게요.”유진은 간절하게 속삭였다.“더는 사장님이 부담스러워할 말도 하지 않을게요. 다시는 좋아한다고 말하지도 않을게요. 사장님을 곤란하게 하지도 않을 거예요.”“사장님이 싫어하는 건 절대 안 할게요. 정말이에요.”눈물이 쏟아지는 걸 막지도 못한 채, 그녀는 마지막으로 애원했다.“그러니까 제발, 제발 나를 쫓아내려고 다른 여자를 이용하지 마요.”유진은 불안했다, 서인이 갑자기 진수아와 사귀게 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가능성만이 떠올랐다.‘지난번, 이문 오빠 생일날 내가 키스해서 화가 났던 걸까?’‘그때부터 모든 게 변해버린 걸까?’서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다. 유진이 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바라보지 못했다.그는 속이 답답해지는 걸 억누르며, 차갑게 말했다.“임유진, 왜 아직도 모르겠어?”“너와 나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아무리 붙잡아도, 아무리 애써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그는 마치 자신에게도 되뇌는 듯,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사랑 같은 건 몰라.”“그냥 적당한 사람이면 돼. 그래서 진수아와 사귀는 거야.”유진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그럼 우리 둘은요? 우리는 맞지 않는 거예요?”서인은 잠시 침묵하더니, 단호하게 답했다.“맞지 않아.”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차가운 한마디가, 그녀의 가슴을 산산이 부수어버렸다. 눈앞이 흐려지고, 심장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유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도, 서인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더는 매달리지 마.’‘이건 사랑이 아니야. 그저 나 혼자만 미쳐 있는 거야.’유진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고, 눈물이 연신 뺨을 타고 흘렀다. 그녀의 시야 속에서 서인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오현빈이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누굴 찾으시죠?”진수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사장님을 찾아왔어요.”그 순간, 서인이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평소처럼 검은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소박한 차림이었지만, 다부진 체격과 날카로운 이목구비 덕분에 여전히 눈에 띄는 분위기를 풍겼다.임유진은 진수아가 서인을 바라볼 때, 그녀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살짝 수줍은 기색까지 보였다.그러나 서인은 유진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오직 수아에게만 시선을 두고 무덤덤하게 말했다.“위층에서 이야기하죠.”수아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서인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진은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가슴 한쪽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이에 현빈이 그녀를 위로하듯 말했다.“아마도 형님의 친구겠지.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거겠고.”그러나 오직 유진만이 알고 있었다. 수아는 서인과 맞선을 본 상대라는 걸.시간이 길어졌고, 유진은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꾸만 위층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심지어 올라가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엿듣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한 시간쯤 지나, 수아가 2층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수아의 얼굴은 처음보다 더욱 밝아 보였다. 수아는 현빈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며 가게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그러다, 우연히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아, 여기서 일하고 있었네요?”수아는 놀랍다는 듯 말했고 유진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사장님을 구은정이라고 부르네?’그 순간, 수아도 무언가 떠올랐다. 과거 설날 맞선 자리에서, 유진과 유민이 자신을 골탕 먹였던 일을. 그녀는 경계의 눈빛을 띠며 물었다.“여기서 일한 지 얼마나 됐어요?”현빈이 대신 대답했다.“꽤 오래됐어요.”수아는 현빈이 유진을 보호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러고는 손을 까닥이며 말했다.“나 과일 주스 한 잔 가져와 줘요. 생과일로 직접 짠 걸로요.”그러나
오현빈이 다가와 말했다.“애옹이 데려왔어요. 그리고 형님, 같이 술 한잔하러 가시죠?”“너희들끼리 마셔.”서인은 무심하게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현빈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님, 다들 보고 있어요. 유진이가 왜 매번 주말마다 여기 오는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쇼핑도, 놀러 가는 것도 마다하고 굳이 여기 와서 서빙하겠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서인은 여전히 묵묵히 담배를 피우며 대답하지 않았다. 현빈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형님도 아시겠지만, 유진이는 다른 여자들과 달라요. 이렇게 오랫동안 묵묵히 기다려온 사람이 또 있을까요?”“이제는 형님도 뭔가 답을 줘야 하지 않겠어요?”서인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가 내뿜는 연기 속에서 복잡한 심경이 스며 나오는 듯했다.그러다, 서서히 고개를 들고 차갑게 말했다.“걔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걔를 받아줘야 해?”그러고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덧붙였다.“어떻게든 결론은 내릴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술이나 마셔.”현빈은 서인의 말에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형님 제발 신중하게 생각하세요.”그러나 서인의 태도는 단호했다.“사랑과 현실은 다르다.”그의 목소리는 낮고도 차가웠다.“내가 원하는 게 유진이를 평생 이 샤부샤부 가게에서 살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인은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나는 이미 충분히 생각했어.”현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서인은 담배를 힘껏 비벼 끄고 불을 껐다. 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차단됐지만, 달빛이 여전히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그는 짜증스럽게 속으로 중얼거렸다.‘비 온다면서 왜 이렇게 달이 밝은 거야?’뒤척이기를 반복하다 결국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인가 손에 닿는 느낌이 들어 서인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창밖에서 커다란 천둥이 울려
우정숙은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그의 대답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서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죄송해요. 제가 임유진에게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에요. 그러니 유진이를 탓하지 마세요. 아직 어리고 철이 없을 뿐, 전부 제 문제예요.”우정숙은 뜻밖이라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래서 우리 유진이가 혼자만 짝사랑하고 있었던 거군요?”서인은 굳게 다문 입술을 움직이지 않았고, 우정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꽤 부담됐겠어요. 대신 사과할게요.”서인의 가슴 한쪽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아니에요.” 우정숙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렇다면 앞으로 유진이가 여기에 오지 않도록 했으면 해요. 시간이 지나면 유진이도 점점 식어갈 테고,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않겠죠.”서인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지만,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방법을 생각해 보죠.”“좋아요. 믿을게요.”우정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오래 머물지 않고 곧바로 떠났다. 서인은 2층 베란다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들어 구은태에게 전화를 걸었다.“전에도 말했던 맞선 이야기요. 언제 진행할 건가요?”구은태는 뜻밖이라는 듯 놀라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드디어 마음을 정한 거야?]서인은 담담하게 말했다.“집에는 당분간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에요. 상대방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만나볼 수 있어요.”구은태는 한순간 고민하더니 물었다.[그러면 언제쯤 집으로 돌아올 거야?]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구은태는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아무튼 서인이 결혼을 전제로 여자를 만날 마음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였기 때문이다.전화를 끊자마자, 구은태는 곧바로 서선영을 찾아가 맞선 일정을 조율했다.다음 날, 서선영이 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지난번 만났던 진수아 어때? 사실 걔가 너를 마음에 무척 들어서 했어.]그리고 덧붙였다.[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