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가 말했다. “사실 지금이 딱 좋은 때인 것 같아. 마음이 확고해질 때야말로 이 관계가 시험을 견뎌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잖아.”“그래서 네가 아무 걱정 없이 전심으로 이 사랑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거야!”우청아는 소희를 바라보며 눈가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고마워, 소희야.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네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항상 나를 지지하며 이해해 줬잖아.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아니야.” 소희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너라면 나 없이도 잘 해냈을 거야. 나는 단지 네가 자신의 마음을 따르게 도움을 줬을 뿐이고.” 청아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조용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 성연희는 아직 요요가 아빠를 만났다는 걸 모르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다음에서 연희한테 만나자고 해야겠네. 연희도 좋아할 것 같아!”소희가 제안하자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동의했다. “그래!”장명양과 간미연이 늦게 도착했는데, 미연은 소희가 있는 발코니 쪽으로 걸어갔다. 곧 청아는 시원이 명양에게 자기 딸을 자랑하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요요를 자랑하기 바쁜 딸바보 시원을 청아는 도저히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요요가 있기 때문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자진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계속해서 요요 주변을 맴돌았다. 시원이 옆에 있어서인지 요요는 더욱 용기를 내어 사람들의 질문에 답했고, 때때로 순진한 아이의 말투로 모두를 웃게 했다. 그 후로 계속해서 비서들이 선물을 가지고 왔다. 백림이 먼저 자신의 선물을 시원에게 건넸다. “이건 작은 별장인데, 요요에게 첫 만남 선물로 줄게. 조금 늦긴 했는데 애초부터 요요는 내 마음속에 딸 같은 존재였어!”명양도 뒤처지지 않았다.“나는 어차피 내 진짜 조카니까. 나랑 미연이 미리 준비를 못 했지만, 아파트 한 채를 선물로 주고 나중에 다른 선물 더 줄게요.”“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자면, 형, 형이 괜히 형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이에 시원은 몹시 자랑스
장시원은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우청아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하면 어때? 평소에는 이경숙 아주머니가 요요를 돌보고, 주말에는 요요를 부모님 댁에 모셔다드리는 거지. 부모님도 요요를 매우 좋아하시니까.” 그러면 주말에는 청아와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기에 청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시원은 그렇게 쉽게 어머니에게 답을 주지 않고 밀당을 했다.[청아한테 잘 얘기해서 엄마한테 베네핏이 있게끔 노력해 볼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봐요.][네가 결정할 수는 없는 거야?][네. 당연한 얘기를 뭐하러 하세요.]이에 김화연에게서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았다....구택과 소희는 청아네 뒤를 따라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구택은 소희를 벽에 기대게 하고 열정적으로 키스했다. 그 키스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는 듯했다. 잠시 후, 구택은 멈추고 이마를 소희의 목에 기대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야, 나도 딸이 갖고 싶어.” 이에 소희는 웃음을 터트렸다. 구택이 오는 내내 침묵하며 얼굴색이 좋지 않았던 이유가 시원에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소희는 구택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우리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승부욕을 부추기지 말자.” 하지만 구택이 고개를 들자, 잘생긴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했다. “진짜 딸이 갖고 싶어. 우리도 아이를 가져보자!” 소희는 구택의 허리를 꼭 안고 말했다. “조금만 진정하고 요요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잖아.” 구택도 소희를 꽉 안으며 말했다. “우리 결혼한 지도 꽤 됐고 이제는 아이를 가져야 할 때잖아.”“드라마 촬영도 거의 끝나가고, 약도 끊었으니, 결혼 준비하면서 임신도 준비하자. 둘 다 지체되지 않을 거야!”구택의 말에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구택의 아이,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질까? 구택은 소희에게 키스하면서 안아 들고 주방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늘 밤부터 우리에게 새로운 임무가 생겼어, 같이 노력하자!” 소희
아침 9시에 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 시간에 회사 임직원들은 바르게 앉아 장시원이 한 손으로 회의원고지를 듣고 다른 한 손으로는 딸을 달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두 살 조금 넘어 보였고, 아주 얌전히 시원의 품에서 시원의 펜으로 종이에 낙서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분명히 시원을 닮았다. ‘사장님이 비밀리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나? 그동안 어떻게 소식이 전혀 없었던 거지?’“계속 모른 척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라도 축의금을 내야 하니? 축의금을 낸다면 결혼 축의금과 출산 축의금을 함께 내야 하나?’회사 임직원들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회의에 집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배강만이 시원의 옆에 앉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회의에 참여했다. 회의가 끝나자, 시원은 요요를 안아 들고 차분하게 말했다.“별일 아니니까, 다들 각자 일에 집중하세요!”이에 임직원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대답했다.“네!”시원이 요요를 안고 나가자, 모두 시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배강에게 다가가 물었다. “배강 부사장님, 저 아이가 정말 회장님 아이인가요?” “사장님 언제 결혼하셨나요?” “사장님 부인은 강성 어느 집안 출신이죠?” ... 배강이 일어서서 웃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방금 뭐라고 했죠? 일에 집중하라고 하셨잖아요, 헛소문에 신경 쓰지 마세요!” “부사장님, 우리한테 좀 알려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배강은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분 모두 똑똑하신 분들이잖아요, 제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나요? 사장님이 회의에 아이를 안고 오셨잖아요, 누구의 아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사장님께서 이미 지시하셨으니, 모른 척하고 각자 할 일에 집중하세요. 사장님께서 진짜 좋은 소식이 있다면 분명히 알려주실 겁니다.” 이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알겠습니다, 부사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도 알겠습니다. 상부에 무슨 일이 있으면 부사장님께서 저희에게 언질 좀 해주세요.” “걱정 말고, 열심히 일하세
배강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너랑 우청아 씨가 그저 비서와의 사무실 로맨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미 깨지고 난 뒤의 재회였네!”배강의 말에 시원은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깨졌다는 건 여전히 금이 가 있는 건데 나랑 청아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진 천생연분이야.”배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제는 사람의 감정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배강이 떠난 후, 시원은 지사의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우강남에 관해 물었다.“우강남 씨 최근 업무태도나 실적이 어떤가요?”이에 책임자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굉장히 잘하고 있습니다. 이틀 내로 회의를 열어 우강남 씨에게 승진과 연봉협상을 다시 할 계획입니다.”“그럴 필요 없이 바로 해고하세요.” 시원이 차갑게 말하자 책임자는 놀라서 되물었다.“해고요?”“그래요, 계약에 따라 보상하고 해고하세요.” 시원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가웠다. “알겠습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오전에 시원은 서류를 보고 있었고 요요는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은 아름다워서 시원을 찾아와 서명을 요청하는 사람들마저 숨죽이게 했다. 요요가 그림 그리기를 그만두고 싶어 하자, 시원은 요요를 안고 내려갔고. 요요는 사무실 안에서 뛰어다니며 혼자 놀았다. 장씨 저택에서 김화연은 요요가 집에서 며칠밖에 지내지 않았지만 갑자기 데려가자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장명석은 혼자서 요요의 놀이방에 잠시 들렀고 내려올 때 김화연에게 물었다. “요요를 돌보는 그 아주머니, 믿을 만하대? 전문 육아사야?” “괜찮다고 들었어요.” 김화연은 무심히 대답하며 생각에 잠겼다. “우청아를 찾아가 볼까요?” “당신이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면 가지 마요. 시원이 불쾌해할 거야.”장명석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생각해 봐, 청아가 혼자 해외에서 임신해서 요요를 낳고 2년 동안 키웠어. 근데 요요를 쉽게 포기할 리가 있겠어?”
강래원이 소개했다. “허홍연 여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우림 테크놀러지의 책임자이고, 이분은 우리 그룹의 사모님이십니다.”허홍연은 마음이 어수선해 래원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바로 말했다.“당신들이 누구든 상관없어요, 그 화재 보상 문제는 우리와 관련 없으니 우청아를 찾아가세요!” 그러자 래원은 표정이 굳어지며 어쩔 줄 몰라 하며 김화연을 바라보았고 김화연은 의외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청아 씨를 찾으라는 거죠? 우임승은 당신의 남편이고, 청아 씨만의 아버지가 아니잖아요!” 정소연이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청아는 이미 우리와 협약을 맺었어요. 앞으로 우리는 어머니를 부양하고, 아버지 문제는 청아가 책임지기로.”“청아가 회사에 보상할 일도 청아 스스로 해결하기로 했어요!” 김화연이 래원을 바라보자, 래원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화연은 원래 이 문제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지만, 바로 이렇게 말을 꺼내자 깜짝 놀랐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런 큰 보상금을 한 사람더러 지불하라고 하나요?” 그러자 소연이 바로 대답했다. “우리랑 상관없고 청아 스스로 원한 거예요!” 허홍연도 동의했다. “청아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돈이 많은 친구들이 았으니 그들에게 빌려 회사에 보상하게 하세요!” 김화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청아가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되나요? 제가 들었던 걸로는 청아에게도 아이도 있는데, 엄마로서 왜 딸을 챙기지 않는 거죠?” 이에 허홍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우리도 돈이 없어요.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김화연은 허홍연을 바라보며 비꼬았다. “엄마라면 딸을 많이 걱정하지 않나요?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위해 자녀를 돌보지 않는 걸 봤지만, 당신들은 정말 제 상식을 뛰어넘네요.” 뼈를 때리는 팩트에 소연은 건방진 태도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우리 집안일에 간섭하나요? 어쨌든 보상금을 원하면 청아를 찾아가세요!” 김화연이 허홍연에게 물었다. “다시 물을게요. 정말
강래원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원래 우씨 집안 사람들은 우임승 씨가 다친 것을 보고 돈을 요구하려 했지만, 회사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도망치려 했어요.”“게다가 책임을 전부 우청아에게 떠넘겼는게 청아 씨는 정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그 자리에서 가족들과 부양책임에 관한 협의서를 체결하고 모든 빚을 갚겠다고 했어요.”“청아 씨는 정말 용감하고 착한 사람이에요. 그 후에도 계속 저에게 자신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든 배상하겠다고 했고요.”“솔직히 말해서 청아 씨와 우씨 집안사람들은 정말 다르다고 느꼈어요.” 김화연은 래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이 없었다. 아파트를 나와 차에 올라타 돌아갔고 김화연의 차가 멀어지자, 래원은 장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예상하셨던 대로 우씨 집안 사람들은 저를 보자마자 청아와의 관계를 단절하려 했고, 사모님께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은 전혀 하시지 못했습니다.”“그리고 사모님께서 떠나실 때 매우 화가 나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우씨 집안이 청아 씨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김화연이 래원에게 우씨 집안의 주소를 알아보라고 했을 때, 래원은 혼자서 결정할 수 없어 시원에게 연락했다. 시원은 알겠다고 김화연과 함께 가서 도착하면 바로 말을 꺼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제야 래원은 시원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곧이어 시원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요. 우씨 집안 사람들을 잘 관찰하세요. 그 사람들이 다시는 청아를 괴롭히거나 제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해야 해요.” 래원은 즉시 대답했다. “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시원은 ‘음' 소리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장씨 저택에서 장명석은 정원애서 돌아오자 소파에 앉아 있는 김화연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우씨 집안사람을 만나러 갔던 거야? 화가 난 걸 보니, 우씨 집안 사람
장명석은 진지하게 말했다. “우청아는 본성이 착하고 해외에서 공부도 많이 해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어.”“청아는 독립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우씨 집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만약 당신이 청아를 아직 받아들일 수 없다면, 청아와 시원의 관계를 망치지 말아요. 시원이 화를 내면 나도 당신을 도울 수 없으니까.”“지금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야. 시원과 청아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보고, 관계를 악화시키지만 말아.”“그래야 우리가 요요랑 더 가까워질 수 있어.”김화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장명석의 말에 설득되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당신 말 듣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게요. 요요를 위해서라도 시원이랑 청아를 좀 더 지켜보도록 해요.”“그래, 잘 생각했어!” 장명석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주말에 요요가 돌아올 수도 있어.”“돌아올 수 있다고요?” 김화연은 놀라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이 그들을 갈라놓으려고만 하지 않으면 나도 시원에게 말할 수 있어.”“빨리 물어봐요!” 김화연이 재촉했다.“정원의 놀이터도 거의 완성되가고 있어요. 요요가 보면 얼마나 좋아할지 몰라요!”김화연이 요요의 해맑은 웃음을 생각하자 점점 더 들떴다.“알았으니까 서두르지 마. 지금 시원이한테 전화해 볼 테니까!” 장명석이 일어나 시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시원은 굉장히 곤란한 척했다. “엄마가 청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청아가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돼요.”이에 장명석이 말했다. “요요는 결국 우리 장씨 집안의 아이잖아요. 우리가 주말에만 요요랑 같이 있겠다고 하는 게 무리한 부탁은 아니잖니?”시원은 웃으며 말했다. “청아는 싫어하면서 청아가 낳은 딸을 그렇게 원하는 게 어디 있어요?”장명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어머니가 너희들의 연애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어. 나도 네 엄마가 청아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거야.”“천천히 해 나가야 하는 건 알지? 그러니까 일단 요요가 주말에 돌아오
정소연은 기뻐하며 말했다. “오빠, 딱 좋은 타이밍에 돌아왔어. 인터넷에서 유명한 해물 요리 전문점을 봤는데, 오늘 저녁 거기 가자!” 우강남은 소파에 지친 몸을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지금 기분이 별로라 밥도 못 먹겠어.”“왜 그래?” 소연이 물었고 허홍연은 강남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보고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에 강남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회사에서 해고당해서 지금 실직 상태예요!”강남의 폭탄 발언에 허홍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왜 널 해고한 거야?” 소연도 마음이 급해져 물었다.“그래, 무슨 잘못을 했다고 해고하는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서 경리로 승진한다는 얘기가 있었잖아, 어떻게 갑자기 해고돼?”허홍연이 소연을 부축하며 말하자 소연은 허홍연의 손을 휙 뿌리치며 강남을 노려보았다.“소연아, 조급해하지 마, 배 속의 아기가 더 중요해. 우선 강남이 얘기를 들어보자. 말 좀 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야?”강남이 고개를 들자 둘 다 강남에 집중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책임자가 나를 사무실로 불러서 회사가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내 이름이 해고 명단에 있다고 했어.”“해고 보상금을 준다고 하더니 그냥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 소연은 실망한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소연은 임신하자마자 일을 그만두었다. 그건 강남이 승진할 것이라 생각해서 안심하고 집에서 쉬며 태교에 전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강남의 승진 실패와 해고에 당황스러웠다. 이제 둘 다 수입이 없게 되었고 소연은 임신 중이라 다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 최근에는 차와 가방을 사느라 저축도 많이 줄었고, 그리고 곧 추가되는 지출도 있었기에 만약 둘 다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강남이 곧 일자리를 찾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고, 소연은 부잣집 아내가 되길 원했으나 그 꿈이 언제 이루어질지 미지수였다.“잘하고 있고 곧 승진할 거라고 했는데, 왜 해고 대상이 된 거야
점심을 마친 후, 구은정과 최이석은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은정이 갑자기 물었다.“우리 회사에 직원들을 위한 피트니스 공간이 있다고 들었어요.”이에 최이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B동 30층에 있죠.”은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군요. 마침 시간이 있으니, 저랑 함께 가서 구경시켜 주시겠어요?”“물론이죠!”최이석은 거리낌 없이 바로 승낙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룹 본사 B동 30층으로 향했다. 이곳은 회사 직원들을 위한 피트니스 센터로, 전 층이 운동 시설로 조성되어 있었다.점심시간이라 대부분의 직원은 식사 중이었고, 운동하는 직원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몇몇 직원들만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은정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도장 한편에 마련된 링을 발견했다. 그는 돌아서서 최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평소 운동을 즐기시나요?”이에 최이석은 자신감 있게 웃으며 대답했다.“물론이죠. 업무가 아무리 바빠도, 건강이 최우선 아니겠어요?”그러자 은정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보호 장비를 챙겨 팔에 착용하기 시작했다.“한 판 겨뤄 보실까요?”최이석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고 황급히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아, 저는 그냥 가볍게 조깅하거나 덤벨 정도 드는 수준이에요. 격투기는 좀 무리죠.”그러나 은정은 태연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살살할 테니 부담 가지지 마세요. 룰도 따로 정할 필요 없어요. 원하시면 주먹을 쓰셔도 되고, 발차기해도 좋고요.”은정은 말하는 동시에 링 위로 올라섰고,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최이석은 속으로 이를 악물고 보호 장비를 착용하며, 외투를 벗어 링 위로 올라갔다.잠시 후,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섰다.최이석은 젊은 시절 복싱을 배운 적이 있어, 나름대로 방어 자세를 제대로 잡았다.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가벼운 펀치
그 말에 마심호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구은정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놀라면서도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드리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좋아요.”구은정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심호가 떠난 뒤, 비서 한경아가 들어와 몇 개의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사장님, 여기 서명하셔야 할 서류들이에요.”은정은 서류를 받아 들고 검토하기 시작했다. 경아는 그가 빠르게 문서를 훑어보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서류를 내려놓은 은정은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제야 경아는 그가 모든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당황한 그녀는 곧바로 자세히 설명하며 질문에 답했다.모든 내용을 확인한 후에야 은정은 서명했다. 서류를 모두 처리한 후, 시간을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리고 은정은 내선을 눌러 경아에게 지시했다.“최이석 본부장을 내 사무실로 부르세요.”약 20분 후, 최이석이 태연한 표정으로 들어왔는데,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건성으로 말했다.“사장님, 저를 찾으셨나요?”은정은 그의 무례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편하게 앉으세요.”그러나 최이석은 이를 전혀 예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참는다고 생각했다.구씨 집안의 후계자라고 해도 지금껏 회사 운영에 관여한 적이 없으니, 권력은 있어도 실질적인 영향력은 전무했다. 결국, 경험도 없고 인맥도 없는 허울뿐인 꼭두각시일 뿐이었다.‘마심호가 구은정을 내세워 반격을 노린다고? 터무니없는 꿈이야.’최이석은 비웃음을 감추며 넉살 좋게 물었다.“저를 부르셨다길래,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는 건가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죠. 사장님, 뭐 드실래요?”은정은 천천히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사내 식당에서 간단히 먹죠. 점심을 마친 후에 할 이야기가 있거든요.”최이석은 느슨한 미소를
월요일.구씨 그룹의 회의에서, 구은정은 회의실의 주석에 앉아 있었고, 양옆으로는 각 부서의 고위 관리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그는 방금 시작된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하며, 마케팅부 본부장인 최이석을 바라보았다.“일주일 내로 정확한 시장 조사 데이터를 제출해 주세요.”그러자 최이석은 눈을 살짝 돌려 서성을 바라본 뒤,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사장님, 현재 제 손에 이미 령익회사와 PWE 프로젝트가 걸려 있고, 게다가 코넬회사의 3세대 신제품 홍보까지 맡고 있어요.”“신사업 관련 조사는 다른 분께 맡기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그러고는 덧붙였다.“참고로, 저희 부서에 새로운 인턴 두 명이 들어왔는데, 능력이 괜찮아요. 그들에게 맡기면 충분히 잘 처리할 거예요.”새로 부임한 은정의 업무 지시를 대놓고 거절하면서, 인턴을 추천하는 태도는 누가 보아도 대놓고 무시하는 행동이었다.회의실의 분위기가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군가는 최이석이 서성의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외척 세력이 점점 도를 넘고 있다고 분노했다.또 누군가는 새로 온 사장이 난처한 상황에 놓이자 고소해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구은정과 서성 사이의 권력 다툼을 지켜보며 어느 쪽이 우세한지를 판단하고 있었다.그때, 마심호가 최이석을 흘끗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PWE 프로젝트는 이미 막바지 단계에 도달했죠. 그러니 굳이 최이석 본부장이 개입할 필요는 없겠군요.”“그리고 신제품 홍보도 지난주에 완벽한 홍보 전략이 마련된 상태죠. 보아하니, 요즘 꽤 한가하신 것 같은데요?”그러자 최이석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마심호 사장님, 우리는 부서가 다른데, 제 업무량을 보고할 필요까지는 없겠죠?”마심호는 표정을 굳힌 채 입을 다물었고, 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분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다시 생각해 보고, 퇴근 전까지 다시 논의하도록 하죠.”그러자 최이석은 서성을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고, 그 외 사람들도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어떤 이들은
유진은 진소혜가 여진구의 비서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분명 그를 목표로 한 행동이었다. 유진은 손가락을 접으며 분석하기 시작했다.“진소혜는 명문대 석사 출신이고, 미인은 아니지만 단정하고 매력적인 외모죠. 호감형이죠. 아버지는 의대 교수, 어머니는 엔지니어라서 유전적으로도 괜찮고...”“임유진!”진구가 단호하게 유진의 말을 끊었다.“난 걔한테 아무 감정도 없어. 그러니까 그만 분석해.”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내렸다.“그래요? 그럼 됐어요.”신호가 바뀌자 진구는 액셀을 밟으며 도로를 지나갔다. 그러다 슬쩍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근데 넌 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고는 생각 안 해?”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그럴 리가 없잖아요.”진구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왜 그렇게 확신해?”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우리 성격이 비슷하잖아요. 비슷한 사람끼리는 끌리지 않는 법이에요.”그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유진은 이제 막 지난 관계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진구는 지금 고백을 한다면, 그저 틈을 노린 것처럼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다.유진이 완전히 서인을 잊을 때까지는, 천천히 자신의 감정을 전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서인은 혼자 차를 몰고 구씨 저택으로 돌아왔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인이 현관을 들어서자, 서선영이 반갑게 일어나 환한 미소로 맞았다.“은정아, 돌아왔구나! 네 아버지 아까도 네 이야기를 하셨는데.”그러나 서인은 서선영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이에 서선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멈춰 섰고, 그녀는 억울한 눈빛으로 구은태를 바라보았다.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던 구은태는 담담하게 말했다.“이제 막 돌아왔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서선영은 바로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알아요. 괜찮아요. 은정이가 집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니까요. 제가 잘 보살펴서, 집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할게요.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유진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구은정을 떠올렸다. 그녀는 가볍게 눈썹을 올리며 생각했다.‘그분이 여자친구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방연하한테 연락처를 물어봐 준다고 한 건 너무 성급했던 거 아닌가?’유진은 여진구를 돌아보며 물었다.“선배, 구은정 삼촌이랑 친해요?”그러자 진구는 순간적으로 긴장했다.“잘 몰라. 왜 갑자기?”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방연하가 연락처를 알고 싶어 하더라고요. 혹시 여자친구 있는지 알아요?”진구는 마음속으로 안도하며 자연스럽게 웃었다.“한 번 보고 마음에 든 거야?”유진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연하는 잘생긴 남자만 보면 좋아해서, 하나도 이상할 거 없어요.”진구는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흘깃 바라보며 물었다.“만약 네가 그 사람 연락처를 알게 된다면, 방연하한테 줄 거야?”“당연하죠. 그런데 나도 몰라요.”유진은 어깨를 으쓱였다.“만약 다시 마주치게 되면, 그때 한 번 물어볼 수도 있죠.”진구는 화제를 바꾸며 말했다.“곧 생일이지? 원하는 선물 있으면 미리 말해. 사실 하나 준비해 두긴 했지만.”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빛나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선물은 필요 없어요. 생일날 내가 걸어서 다닐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니까.”그 말에 진구는 호탕하게 웃었다.“그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의사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걸로 말해 봐.”유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유진은 짐짓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누가 생일 선물을 물어보는 거예요? 그러면 놀랄 일도 없잖아요!”이에 진구가 웃으며 말했다.“괜히 쓸데없는 걸 주는 것보다,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주는 게 낫잖아.”유진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그럼 난 안 어렵게 할게요. 내가 회사 출근하면, 휴가 좀 더 주는 걸로 해요.”이에 진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럼 내가 휴가 쿠폰 만들어 줄게. 네가 원할 때마다 쓸 수
방연하는 임유진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우산을 씌우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제가 들게요!”서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우산을 넘겨주고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그때, 한 차량이 서점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여진구는 우산을 들고 서 있다가 서인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곧장 긴장한 듯 발걸음을 재촉하며 유진에게 다가갔다.“유진아!”유진은 진구를 보자 놀란 듯 기쁜 표정을 지었다.“어? 선배 왜 왔어요?”유진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 서인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꼭 다물었다. 진구는 서인을 경계하듯 바라보며, 한 손으로 우산을 높이 들어 유진의 머리 위를 가려주었다.그리고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비가 올 것 같아서 걱정됐어. 운전기사가 제때 도착하지 못할까 봐 직접 데리러 왔어.”진구는 오는 길에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위치를 확인했지만, 차가 막혀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다.유진은 고개를 들어 진구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선배는 정말 빈틈이 없네요!”“이제 집에 가자.”진구는 외투를 벗어 유진의 어깨에 걸쳐 주었고, 유진은 연하를 돌아보았다.“집까지 태워 줄게.”“괜찮아!”연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곧 효성이 차 가지고 올 거야. 우리 둘이 같은 방향이니까, 넌 먼저 가. 도착하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 남길게.”“알겠어. 효성이랑 나 대신 인사해 줘. 나 먼저 갈게!”유진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진구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를 밀며 그녀를 자신의 차로 데려갔다. 그는 일부러 공간이 넉넉한 SUV를 타고 왔다.조심스럽게 유진을 들어 올려 차에 태운 뒤, 문을 닫았다. 그제야 유진은 무언가 떠올랐다.유진은 고개를 돌려 서인을 바라보았고, 서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 너머로 그의 표정이 희미하게 보였고, 어깨 한쪽이 젖어 있었다.유진에게 우산을 씌워 주느라 비를 맞은 것이었다. 그러나 유진이 서인을 바라본 것은 한순간이었다.진구는
유진은 병원에 있을 때 서인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깊게 파인 눈두덩과 덥수룩한 수염,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로 피폐한 기운이 가득했다.그러나 지금, 눈앞의 남자는 크림색 캐주얼 정장을 입고 깔끔하게 면도를 한 상태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단단한 인상은 그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해요!”서인은 책을 내려서 유진에게 건네며 반쯤 무릎을 굽혀 마주 앉았고, 깊고 어두운 눈빛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다리는 좀 어때?”유진은 공손하게 미소 지었다.“많이 좋아졌어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앞으로 반 달 정도면 걸을 수 있을 거래요.”서인은 유진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지금이 가장 조심해야 할 시기야. 뼈가 아직 약하니까, 부상 조심해야 해.”“감사해요!”유진은 예의 바르게 웃으며 물었다.“그런데, 삼촌은 여기 어쩐 일이세요?”‘삼촌?’유진이 마침내 자신을 삼촌이라고 불렀으나 서인의 가슴 한편이 묘하게 저려왔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나도 책을 사러 왔어.”“정말 우연이네요!”희미하게 붉어진 노을이 책장 사이로 스며들어 유진의 옆얼굴을 감쌌다.살며시 흔들리는 눈동자는 맑고 생기 있었으며,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담담함과 거리감만 남아 있었다.유진은 반쯤 무릎을 굽혀 자신과 시선을 맞추는 서인을 보며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를 대하듯 부드러운 목소리와 친절한 태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유진은 책을 받아들며 말했다.“제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잘 가.”유진은 가볍게 웃었다.“안녕히 계세요, 삼촌!”유진은 휠체어를 조종해 몸을 돌렸고, 다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가볍게 스쳐 지나간, 특별할 것 없는 우연한 만남처럼.서인은 천천히 일어섰다. 유진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며, 서인의 눈빛은 점점 더 깊고 어두워졌다. 마치 구름에 삼켜진 석양처럼,
우정숙이 집에 없었기 때문에, 노정순은 도우미를 붙여 임유진을 돌보게 하려 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진은 탐탁지 않아 했다.“할머니, 저를 돌봐 줄 친구들도 있어요. 굳이 도우미까지 따라오면, 친구들이랑 편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워요.”노정순은 손녀를 아끼는 마음에 그녀가 기분 나빠할까 걱정되었지만, 결국 장효성에게 유진을 잘 돌봐 달라고 신신당부했다.효성과 친구들은 긴장한 듯 조심스럽게 대답했고, 집을 나서자마자 효성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아까 너희 할머니가 나한테 말씀하실 때, 너무 긴장해서 혀가 꼬일 뻔했어.”그러자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우리 할머니 엄청 온화하신데, 뭐가 그렇게 무서워?”효성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우, 넌 몰라. 그 분위기라는 게 있어. 아무 말 안 해도, 그냥 위엄이 철철 넘치는 그 느낌 말이야!”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여진구가 차에서 내렸다. 그의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유진아, 어디 가는 거야?”그러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친구들이랑 좀 돌아다니려고요.”효성이 슬쩍 친구에게 눈짓을 보내자, 진구는 곧바로 말했다.“나도 같이 가도 돼?”유진이 눈썹을 찌푸렸다.“친구들이랑 모임인데, 선배가 왜 따라와요?”진구는 그녀의 다리를 걱정하며 물었다.“다리는 괜찮아?”유진이 웃으며 말했다.“걸어 다니는 것도 아닌데요, 뭐.”이에 진구는 할 수 없이 물러났다.“몇 시에 돌아올 거야? 데리러 갈게.”“그걸 지금 내가 어떻게 알아요?”“그러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전화해.”“알았어요!”임씨 저택에서는 휠체어를 올릴 수 있도록 특별히 개조한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진구는 직접 휠체어를 밀어 그녀를 차에 태운 후, 차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서 효성이 장난스럽게 물었다.“그 사람 네 남자친구야? 완전히 잘생긴 데다가 다정하기까지 하네!”유진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그냥 친구야.
구은정이 갑작스럽게 회사로 돌아오자, 그룹 내에서는 환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해하는 이들은 바로 외척인 서씨 집안이었다.한편, 구은서는 서선영을 원망하며 말했다.“엄마가 굳이 진수아를 구은정에게 소개해 줄 필요가 없었어요. 그게 결국 회사로 돌아오게 만든 거잖아요.”하지만 서선영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태도로 담담하게 말했다.“구은정은 어차피 언젠가는 돌아올 사람이야. 진수아가 아니었어도, 결국 돌아왔겠지.”은서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외삼촌께서 아직 완전히 회사를 장악한 것도 아니잖아요.”서선영은 거울을 보며 얼굴에 파우더를 두드리면서 비웃듯 말했다.“너희 아버지를 몰라? 왜 그렇게 외삼촌들에게 기회를 준다고 생각해? 그건 결국 구은정을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구은태는 모든 걸 철저히 계산하고 있어. 너희 외삼촌들에게 맡긴 일들은 죄다 돈이 되는 자리야. 설령 실수하더라도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줬지.”“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대단한 권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에는 단 한 번도 관여하지 못했어.”“구은태가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오직 하나, 바로 구은정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거야. 심지어 구은정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지도 않을 거야.”“나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구은정만 돌아오면, 구은태도 경계를 늦출 테니까.”서선영의 눈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구은태가 철저한 전략가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구은태가 살아 있는 한, 서씨 집안은 그저 작은 이득을 취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구씨 그룹의 핵심 권한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것이었다.하지만 은정은 달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반항적이었고, 타고난 기질이 자유분방했다. 오랫동안 밖에서 떠돌며 방탕하게 살아왔고, 배운 것도 없으며, 늘 무기력하고 한심한 태도를 보였다.은정이 회사를 맡는다는 것은, 곧 회사를 한심한 인물의 손에 맡기는 것이나 다